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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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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4, 2019 21:29에 작성됨.

히나코에요.


사실 지금까지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제겐 영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야기 초반부터 웬 허무맹랑한 얘기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진짜에요.
그럼 이제 이야기를 들려드릴 텐데,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아마 빠져들게 되실 거예요!



인간은 몸, 뇌, 영혼으로 이루어져요. 몸은 뇌에 의해, 뇌는 영혼에 의해 컨트롤되죠.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몸은 나라, 뇌는 정부기관, 영혼은 대통령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얘기를 왜 하냐고요?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에요.
국가에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잘못하면, 시위를 통해서 재판하고 파면시키잖아요? 그렇게 해서 파면된 정치인도 몇몇 있고요.


그런 것처럼, 영혼이 썩은 사람들은 뇌가 그 썩음에 물들고, 그것이 육체로 하여금 맛이 가게 만들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깽판치고 다니는 걸 막기 위해 영혼을 꺼내고 다루는 일을 해요. 더러운 건 미리 닦아놔야 나중 사람들이 깨끗하게 쓰는 걸 말이죠.


일종의 살인이기 때문에, 이게 악한 일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에요. 저도 인정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세상은 손도 못 쓸 정도로 난장판이 될 거예요. 여러분도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으시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 일을 해야 해요.


언제부터 이런 능력이 있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왠지 계실 것 같아서 말씀 드려요.
저도 몰라요.
저도 이 능력이 언제부터, 왜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어요.



현재 저는 아이돌을 하는 중이에요
작년에 미시로 프로덕션 선거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첫 음원을 낸 뒤로, 여기저기서 많이 불리고 있어요. 최근엔 전국투어도 했답니다. 세계에도 나가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연예계 생활하면서 느낀 거지만, 영혼이 썩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네요!
방송 조작, 뒷거래, 베개 영업, 갑질, 기타 등등 분야를 안 가리고 썩은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아무리 사람 모인 곳이라고 해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더럽히려고 온갖 술수를 쓰는 이 세상, 그 일이 있고 난 뒤의 꿈은 결코 두 번 다시는 깨끗해질 수가 없을 거예요.


도대체, 그들에게 사람이란 뭘까요. 그냥 돈다발 갖고 다니는, 살아있는 ATM, 샌드백, 호구, 뭐 이런 걸까요?
하루빨리 이 영혼들을 가져가야만 꿈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거예요.



오늘의 스케줄이 정해졌습니다.
오늘 할 일은, 악수회인 거예요. 즉 제 팬 분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사실 제 팬들 중에서도 영혼이 심하게 썩은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없을 리가 없죠, 그분들도 사람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딱히 영혼을 꺼내갈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제 팬인데 죽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악수회장에 도착했어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네요. 마치 제 팬카페의 모든 분들이 다 오신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큼은 뉴제네 백만 팬 부럽지 않아요. 저도 많으니까요!


한 분 한 분 악수를 해드리는데, 어떤 여성분의 차례가 됐어요.
인상이 나쁘지는 않은데, 어째 뭔가 불길한 느낌을 주는 분이시네요.
그분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제 손을 딱 잡고 말씀하셨어요.


“오오히나코짱안녕하세요진짜팬이에요꼭만나고싶었어요사랑해요으헤헿”


...뭔 소리에요?
솔직히 말해 이건 말이 ‘말했다’지 제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웅얼거렸다’에요.
보니까 다른 분들 표정이 안 좋으세요. 마치 ‘아, 쟤 또 시작이네.’하시는 듯한 느낌?
이제 다음 분 받아야 하는데 안 떨어지시네요. 제 손을 꽉 잡고 있어요.


결국, 저는 이 한마디를 농담처럼 던졌어요.


“Life or Love?”


그분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모르겠지만, 대답하셨어요.


“Life!”


저는 손을 폈고, 동시에 그분의 영혼이 빠져나왔어요.
받아서 제 영혼 보관주머니인 ‘키타노히메’에 쑤셔박아뒀습니다.


쿵.


그 분이, 정확히는 몸이 쓰러지셨습니다.
장내는 소란스러워졌고, 저도 놀란(척 한)겁니다.
경호원 분들이 그분을 끌어내셨고, 저는 붕 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음 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은 제 팬카페에서도 위험인물로 낙인찍힌 유일한 분이세요.


제 팬덤인 ‘프린시아’는 아이돌 팬덤 내에서도 자유롭기로 세 손가락 안에 손꼽혀요.

웬만한 팬덤에서는 터부시되는, 팬픽이나 팬아트, GL만화, 또는 제 사진을 엄청 찍어서 움짤로 만드는 게 모두 용인돼요. 제가 허락했으니까요.
그런 프린시아에서조차 위험인물로 낙인찍혔으니 그 막장성은 말 다했죠.


만약 프린시아가 아닌 다른 팬덤이었으면, 아마 진작 무개념 팬으로 세상에서 매장 당했을 걸요?
저지른 짓들 중에서 공개된 것만 해도 음란 발언, 스토킹, 파파라치, 문화재 낙서, 다른 아이돌 비하 및 타 팬들에 대한 민폐, 기타 등등 손가락에 못 꼽을 정도라니까, 뭐 말이 더 필요한가요?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오사카로 로케를 갔을 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본 것 같아요.
만약 그때 저를 스토킹하고 있었던 거라면, 어우 소름끼쳐요!!! 진작에 영혼을 거뒀어야 하는 건데!


아무튼 그런 팬, 팬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연예인 본인마저 기피하는 팬이 드디어 죽었습니다.
프린시아 여러분, 축배를 드세요. 드디어 이 범죄자가 죽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삼고빔 솔라빔 액션빔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세요.



집에 돌아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요, 히나코!”
“다녀오셨어요~?”


이들은 누구냐고요? 제가 점토와 찰흙으로 빚은 뒤 영혼을 넣어 만든 존재들이에요.
각각의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통칭해서는 ‘자유시코’라고 부른답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이건 러시아어인데, 토끼라는 뜻이죠.
현재 저는 자유시코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어요.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피곤하네요.
누워있는데, ‘눈사람’ 유키네가 저에게 물었어요.


“히나코짱, 왕자님은 언제 데려오세요?”
“아아~그러게요~무흐흐~왕자님~어디에 계시나요오~”


대답하다가 망상에 빠져버렸습니다.
진짜로 언제나 오시려나~


어떤 분들은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어요.
능력도 있는데, 왕자님을 직접 만들면 되지 않냐고.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에요.
하지만, 만들어낸 왕자님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히나코의 왕자님은, 단언컨대 운명적으로, 자연스럽게 히나코에게 오실 거라고요.


게다가, 자유시코의 기본 법칙 중 하나가 ‘창조자에게 절대 복종’이에요.
이 말은, 자유시코류 왕자님한테 ‘나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인 거라고요.
게다가 들어준다 해도 그건 제가 시켰으니까 하는 거지 본심이 담겨서가 아니에요.
저와 왕자님의 사랑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아, 맞아. 깜빡 잊고 있었던 게 있어요.
아까 꺼내온 영혼 있죠? 그 영혼에게 새로운 몸을 주어야 해요.
아무리 썩은 영혼이라도, 몸에서 꺼내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순수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러면 새로운 몸을 주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면 돼요.


지점토를 꺼냈어요.
모양을 빚는 저를 본 ‘태양’ 루이가 물었어요.


“새로운 영혼을 데려오신 건가요?”
“그렇죠. 어떤 모양으로 빚어볼까요?”


빚고, 빚고, 빚은 끝에 나온 모양은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이종족을 만들어본 건 ‘세이렌’ 우미 이후로 오랜만이에요.
영혼을 넣고, 기다렸어요. 보통 이럴 때는 한 3분 정도 소요되기 마련이죠.


기다리는 동안,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했어요.
지혜로운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의 이름을 따 ‘케이’, 이게 제 결론이에요.
어째 너무 대충 짓는 것 같지만 뭐 어때요, 멋있잖아요?



4분이 지나고, ‘켄타우로스’ 케이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안녕하세요~”
“어...어우...안녕하세요~”
“히나코랍니다~”
“히나코...? 처음 뵙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이라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히나코는 히나코에요.”



사실 비밀이긴 하지만, 모든 영혼을 전부 자유시코로 만드는 건 아니에요.
악질 범죄자 같은 사람의 영혼은 소멸시키니까요.
그런 영혼은, 너무 썩어서 순수해지려면 너무 오래 걸리거나, 아예 그럴 가망이 없게 되죠.
그렇게 소멸시킨 영혼이, 자유시코로 만든 영혼보다 훨씬 더 많아요.


따지고 보면 자유시코는 일종의 갱생 프로젝트 같은 개념이라고 해도 틀린 것 같지는 않네요.



배가 고프네요. 시간도 마침 저녁 때가 되기도 했고.
부엌에 가서 식사 준비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히나코! 배고프신가요? 밥을 준비할까요?”
“부탁드릴게요, ‘밥솥’ 레이.”


‘밥솥’ 레이는 밥을 재가열 시켰고, 그동안 저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낸 뒤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제 슬슬 반찬들이 떨어져가네요. 조만간 장을 좀 봐야겠어요.



준비가 완료된 밥을 먹고 있는데, 저의 ‘스마트폰’ 카린이 말했습니다.


“히나코짱! 문자가 왔어요!”
“문자요? 누구에게서 왔나요?”
“「프로듀서님」이에요!”
“프로듀서님께서? 읽어주세요.”
“「To.히나코.
   오늘 악수회장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어.

   괜찮아? 많이 놀라진 않았어?」”


별로 안 놀랐는데요...오히려 제가 죽인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의 영혼이 지금의 ‘켄타우로스’ 케이에요.


“답장 보내주세요. ‘저는 괜찮아요.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스마트폰’ 카린이 그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거짓말도 아니지 않나요, 별로 놀라지도 않았고, 또 괜찮기도 하니까.



밥을 다 먹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아까 제가, ‘프린시아는 굉장히 자유로운 팬덤이다’라고 말씀드렸었는데요.
사실 저도 ‘비교적 그렇다’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다른 팬덤들은 어떤지 한번 보려고 해요.


우선은, 저희 프린시아 공식 팬카페에 들어가봤어요.
예상대로, 그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 다들 축하하는 분위기네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대체 얼마나 인망이 없었던 걸까요, 그 사람.


그 다음으로, 뉴제네 공식 팬카페에 들어가 보았어요.
뉴제네 팬덤인 'GENEOUS‘는 크기로는 탑을 달리는 팬덤이지만, 그 속에 있는 보수파 팬덤과 진보파 팬덤 사이가 꽤나 좋은 편이에요. 서로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니까요.
역시 아이돌 트렌드의 선두주자이자 중심답게 팬들도 젠틀하네요.


세 번째로는, 아인헤리아 팬카페에 들어갔어요.
로키(아인헤리아 팬덤)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보수적인 팬덤이에요. 분위기도 정적이고요.
어쩌면 프린시아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번째 들어가 본 곳은 섹시길티 팬카페.
히어로폴리스(이건 팬덤은 아니고 팬카페 이름인데, 다들 이 이름으로 많이 불러요.)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가입자들 대부분이 경찰 쪽 직업이라는 거죠. 사나에씨가 홍보를 많이 하셨었나 봐요.



그 외에도 많은 팬카페를 들어가 보았는데, 기억에 남는 팬카페가 있었어요.
나루미야 유메 팬카페인데요, 루시드(유메짱 팬덤)들의 행동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 게, ‘미술작품’이라는 게시판이, 그것도 시대별로 나눠져서 있더라고요.
게시글 업로드가 매우 활발해서, 전 처음에 미술관 사이트로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우스운 건, 유메짱 직캠이라든가, 공연 영상이라든가 하는 음악 관련 게시글은 거의 주목을 못 받는다는 거죠.
이쯤 되면 루시드들은 유메짱을 아이돌 취급도 안 해주는 거 아닐까요.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였어요.
어떤 곳에든 사양한 사람들이 있네요. 프린시아에 그 민폐 팬이 있는 것처럼, 다른 팬덤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그런 팬에 대해 각자 골머리를 앓고 있고요.
저희만 이상한 건 아니었어요.



컴퓨터를 끈 뒤, 내일 스케줄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내일은, 딱히 스케줄이 없네요. 하루종일 오프에요.
그러면 내일은 하루종일 시간도 널널하니 놀러 나갈까...


마음 같아서는 자유시코들 모두와 같이 놀러나가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이게 능력의 규칙이에요.
예전에 한번, 자유시코 한명을 데리고 밖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나간 지 5분 만에 지점토로 된 몸이 모두 녹아버렸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인지 자유시코들도 딱히 나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이래서 역시 집이 좋다는 거예요.



다음 날 아침이 밝았어요.
아침 식사를 간단히 때운 뒤, 예정했던 대로 밖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어요.


“히나코, 어디 나가시려고요?”


‘붓꽃’ 아야메가 물었어요.


“네,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여러분들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아쉬워요.”
“저희는 괜찮아요. 안심하고 잘 다녀오세요.”


그럼, 다녀올게요.



교토에 도착했습니다.
일본 3대 도시라고 불리는 것 답게 북적거리네요!


오늘 제가 가려고 하는 것은 청수사, 즉 ‘기요미즈데라’입니다.
예전부터 여기를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오게 됐네요.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목을 걷고 있었어요.
길이 길어서 조금 힘들긴 한데, 바람이 시원해져서 좋은 것 같아요.
걸어가며 도랸셰를 흥얼거렸어요.


“여기는 천신님께로 가는 샛길입니다~삶은 좋아요 좋아요~지나가세요~지나가세요~”


근데 누군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오네요.


“혹시 시간 좀 되시나요?”
“얼굴에 복이 굉장히 많으세요~”


빌어먹을.
왜 와도 이런 사람이 오나요?
영혼이 썩어도 심하게 썩은 티가 확 나는 사람이에요.



그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프로증산도의 영혼을 꺼내갈 수 있는 방법을요.
그것도 전혀 티도 안 나고, 뒤처리도 할 것 없는 그런!


“아, 예. 감사해요.”
“혹시 어디 가는 길이세요?”
“이 길이면 당연히 기요미즈데라 가는 길이죠.”
“저도 같이 걸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당신이 같이 가줘야 제 계획이 잘 진행될 거예요.



그렇게 저와 증산도는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증산도는 제 옆에서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고, 저는 대충 흘려들으며 걸어갔어요.


입도 안 아픈가봐요.
기요미즈데라로 가는 길목 입구에서 기요미즈데라까지는 꽤 거리가 있고, 또 도착해서 무대(舞坮)에 올라가는 것도 꽤 높습니다.
근데 이 증산도는 그동안 한시도 말을 안 멈췄어요!
이야, 이건 진짜 리스펙리스펙 존중존중!


기요미즈데라는 교토의 대표 명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니만큼 사람들도 많이 붐비죠.
전해내려오는 전설로 기요미즈데라의 무대(舞坮)에서 뛰어내려서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있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어떻게 살아남아요? 높이가 몇 미터인데.
좀 우스운 건, 그걸 진짜로 믿고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무대(舞坮) 난간에 이르자, 제가 증산도에게 장난스레 물었어요.


“Life or Wish?"


그러자 증산도는, 이해하지 못했단 표정으로 대답하네요.


“어...Wish?”
“소원이라~소원이 있는 건 좋죠~”


말하고, 저는 뒤로 빠졌어요.
그 사이에도 증산도는 무대(舞坮) 난간 밑을 보고 있었고요.


손을 편 뒤, 앞으로 뻗었습니다.
그러자 증산도의 영혼이 빠져나왔고, 몸은 기우뚱하더니 난간 밑으로 떨어졌어요.


“꺄아아아악!”
“사람이 떨어져요!!!”


기요미즈데라에 소란이 일었어요.
아니 왜 놀라요? 소원 이루겠다고 자발적으로 떨어지는 사람들 못 봤어요?
저 사람도 그런 사람인(거라고 생각해주면 나야 좋은) 거예요.



어쨌거나 기요미즈데라 경치도 구경하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교토박물관도 가보았어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또 들려드려야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이것까지 적으면 여백이 부족할 테니 생략할게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증산도의 영혼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어요.
처음에는 그냥 소멸시켜버릴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얘가 불쌍해졌어요.
솔직히 얘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믿을 걸 잘못 믿어서 이렇게 된 거죠.
다행히, 영혼은 아직 순수한 면이 있으니까, 잘 갱생시키면 좋은 자유시코가 될 거예요.



기차가 집 근처 역사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근처 길목에서 반갑지 않은 불청객을 만나게 됐네요.


전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적 있죠.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어디든 있다’고요.
네, 그런 사람이에요. 지적장애인, 무식하게 힘만 센 얘.
이 사람은 평소에도 동네를 시끄럽게 했던 전적이 많아요. 언젠가 꼭 처리하고 싶었던 골칫덩어리인데.


“우으으으아우으우으아아”


아니 왜 말도 제대로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지적장애인이라고는 해도 원래 이 정도로 스톤헤드는 아니었는데.
영혼이 이미 썩을 대로 썩어서 완전히 맛이 간 건가.


“Life or..."


아니다.
말하다가 그만뒀어요.
쟤한테는 이걸 말해봤자 이해도 못할 테고, 또 그러기엔 시간이 아까워요.


해서 그냥 꺼내버렸습니다.


털썩.


지적장애인은 송장이 되어버렸고, 그 시체는 일부러 거기 놔뒀어요.
그리고 영혼이 이미 썩을 대로 썩었기 때문에 바로 소멸시켜 버렸답니다.
이런 건 갱생시킬 가치도 없어요. 빠른 소멸만이 답입니다.



그날 저녁에, TV를 켰더니 그 일이 뉴스에 보도되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아무런 외상도 없고, CCTV도, 증인도 없어서 증거 확보가 없다고 하네요.


TV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어요.
조사한 바로는 심장마비가 사인이라는데, 공개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소리를 질러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 수 있냐고요.


안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죠.
말할 틈도 없이 제가 죽여 버렸으니까요.
제가 자백하지 않는 한,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겠죠~



아, 맞다, 증산도의 영혼에게 갱생을. 잊을 뻔했네요.
이번에는 좀 어려운 도전을 하려 해요.
몸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카린이나 ‘밥솥’ 레이처럼, 있는 물체에 영혼을 넣을 생각이에요.
그게 왜 큰 도전이냐고요?


집에다가 넣을 생각이거든요.


이름을 ‘호시’라고 지은 영혼을, 집의 벽에 넣었습니다.
10분쯤 지나자, 호시가 말했어요.
집이 커서 그런지 시간이 유달리 많이 걸리네요.


“아...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호시!”
“반가워요~”


‘우리 집’호시에게도 집에 대한 규칙을 설명해주었어요.
특히 호시는 집 그 자체이니 행동에 대한 책임이 더욱 크죠.


이제 제게 필요한 건 왕자님뿐...
무흐흐~어디서 뭐하고 계시려나~
어서 오셔서 히나코 하우스를 완성해주세요~
무흐~무흐흐~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스케줄이 있어요.
저의 3번째 의상을 촬영하는 일이에요.
의상의 이름은 ‘True Dream', 공주님풍 의상이네요~.


한가지 충격적이랄까 놀라운 말을 들었어요.
총 두 컷을 찍는데, 베네치아에 가서 찍는대요.
베네치아라~


이탈리아잖아요?!
그럼 외국?!


와아~! 외국이래요!
외국은 왠지 처음이에요!


해서 짐을 간단히 챙기고, 여권에 영혼을 넣었어요.
들어보니까, 베네치아엔 소매치기가 많다는데, 혹시 도둑맞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이죠.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베네치아로 드림 여행을 떠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베네치아에 가서 얻은 거라고는 잘 나온 사진 두 장과, 소매치기들의 영혼밖에 없어요.


한번은, 프로듀서님의 지갑을 노리는 도둑놈 4인조가 뒤에서 따라오길래, 뒤로 손을 뒷짐 지듯 뻗어서 말없이 영혼을 꺼냈어요. 작은 거 털어가려다가 오히려 큰 게 털렸네요.


얘네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요. 일부러 이러는 거죠.
차라리 생계형 범죄였으면 갱생의 기회라도 줬을 텐데, 일부러 이러는 거 보면 그럴 건덕지도 없네요.
참고로 이 영혼들은 제가 비행기 안에서 소멸시켜 버렸습니다.

그것 말고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며칠 후 데X스테에 저의 ‘트루 드림’이 출시되었고, 저는 쥬엘도 안 쓰고 무료 연차로 얻었어요. 진짜로요.
제가 제 쓰알을 얻는다는 건, 느낌이 많이 묘하긴 하네요.



베네치아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방송국에서 토크쇼 촬영이 있었는데요.
같이 촬영하는 분 중 성우 ‘후카가와 세리아’라는 분이 계셨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팬인데, 이렇게 뵙게 되서 진짜 진짜 영광이에요!
아마 남자 분이셨으면 완벽한 히나코의 왕자님이었을 텐데!!!


토크쇼가 시작되었는데요.
세리아상, 토크 수위가 엄청 아슬아슬하신데요?! 자칫하면 편집되기 일보 직전이에요!
사실 여기까진 예상을 못했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하실 줄 몰랐지만! 그래도 좋아요.
저런 능청스러움이 또 매력인거죠! 안 그런가요?



모든 토크쇼 촬영이 다 끝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죠. 제가 정말로 팬인 세리아상을 뵈었는데, 사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저기! 후카가와상!”
“아! 키타 씨! 무슨 일이신가요?”
“저기...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 팬이시라고 들었어요.”
“마...맞아요! 알고 계셨네요!”
“네! 제 팬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이 말에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습니다.
저야말로, 저의 연예인이 되어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사인을 받고 부푼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려는 순간, 뒤에서 별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그러네요, 스태프 두 명이 세리아상에게 치근덕댑니다.


“후카가와 씨, 같이 밥 먹으러 안 갈래요?”
“저희가 좋은 식당을 알고 있는데 말이죠~.”


저건 의심할 것 없이 거짓말이고, 분명히 못된 짓을 할 거예요.
설령 말 그대로의 의미라 하더라도 제가 싫습니다. 저도 못해본 겸상을 어떻게 저 두 분과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건 농담이지만, 아무튼 저 사람들은 세리아상에게 못된 짓을 할 게 틀림없어요.
지금 세리아상도 싫어하시는 표정을 짓고 계시잖아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동태를 살펴보다가, 중얼거렸습니다.


“Life...or...Fan...?"


그러고서 혼자 대답했습니다.


“Fan.”


그리고 손을 폈습니다.
순간 둘의 영혼이 빠져나왔고, 잡아서 소멸시켰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너무 성급했다는 걸요.


지금 세리아상의 눈앞에서 사람이, 그것도 둘이나 죽었습니다.
이건 분명 세리아상에게 큰 트라우마가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설상가상으로 영혼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즉 되돌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성급했습니다. 실수했어요.



우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세리아상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후카가와상?!”
“키타 씨?”
“어떻게 된 거예요? 화장실 다녀온 사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모르겠어요...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일단 110에 신고해 시체들을 병원으로 이송한 뒤, 저희는 놀란 마음을 달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중간에 경찰 조사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조사이니만큼 무혐의로 풀려나왔고요.
돌아가면서, 저의 성급함을 후회하고, 다신 이런 일이 없게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썩어버린 영혼들을 꺼내가며 소멸 또는 갱생시키는 일들을 반복했고, 덕분에 저희 집에는 여러 명의 자유시코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10명 남짓했었는데, 한 달 만에 37명으로 늘었네요!

그럼에도 히나코의 왕자님은 찾지 못했어요. 너무 슬프지만, 어쩌겠어요! 언젠간 오시겠죠!



누군가는 저에게 물을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죄책감 들지 않느냐’고요.
옛날이었다면 그랬을 텐데, 지금은 아니에요. 저 자신을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니면 다크 히어로라거나.
뭐, 제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지만.



영혼은 고귀해요.
몸과 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고귀함이 달라져요.


지금 당신의 영혼은 어떤가요? 깨끗한가요?
깨끗하다면, 평생 동안 그 영혼을 간직해주세요.
하지만 여기저기가 썩어있다면,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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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 시리즈 1편인 히나코 스토리를 다시 써보았습니다. 초인계 소울소울 열매에요.
하지만, @피스 시리즈는 아닌, 같은 주제, 별개의 스토리죠.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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