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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천 엔 포장마차 입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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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31, 2013 01:14에 작성됨.




햇볕이 점점 따가워지는 시기다.

아직 한여름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지만 긴팔을 입기엔 충분히 후덥지근한 날씨.

고로 오늘의 메뉴는 냉소바다.

무, 양파, 간장, 다시마, 다랑어 등등을 넣고 끓여낸 육수를 식혀 살얼음을 담아낸 후 그 위에 갈은 무, 파, 고추냉이를 풀어 메밀로 만든 면을 담가먹는 면요리.

그 성질이 찬 메밀은 요즘 처럼 더운 날씨에 알맞고 소화도 잘되기 때문에 부담없이 먹기 좋다.

물론 그 말은 애초에 몸이 찬 사람이 메밀을 자주 또는 많이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단 말이지만 그것 때문에 메밀의 찬 성질을 조금 중화시켜주는 따뜻한 성질의 무를 넣어 먹는것이고.

무엇보다 무슨 음식이던 적당히만 먹으면 괜찮으니 알레르기 같이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면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하긴 화학적인 작용이 어떤지는 관계없이 그저 더운 날씨를 잊게 만드는 달달한 국물이 묻어난 시원한 메밀국수 한 젓가락이 좋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당한 말."

"그래도 그렇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으신분이 점심부터 이런 포장마차에 와선 소바를 먹고 있으니 좀 그렇네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으면 사람 아닌가? 나도 이런 음식을 먹을 자유는 있는게야."

"그거야 그렇지만 평범하게 자택에서 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설마하니 자택 요리사가 메밀국수 하나 못만들진 않을텐데."

"너무 거창해서 싫다. 이런 후줄근한 곳에서 편하게 먹는게 좋아."

"거 주인 앞에서 후줄근하다고 말하깁니까."

"흥."

나이에 맞지않는 투정섞인 코웃음 한번 치곤 다시 소바를 먹는데 열중하는 굴지의 기업 미나세 그룹의 전대 회장, 미나세 옹.

일선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무게감있는 거목 그 자체인 미나세 옹은 유독 내 앞에선 그간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철없는 할아버지 같은 면모를 보인다.

딱히 싫다는건 아니지만 이래서야 다른사람 눈치가 보인단 말이지.

지금은 이른 점심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으니 상관은 없다만.

아무튼 한창 소바를 먹는 미나세 옹 옆엔.

"생각보다 잘먹네."

"뭐, 뭐가! 그냥 배가 고파서 어쩔수 없이 먹는것일 뿐야!"

미나세 옹의 손녀딸이자 요즘 주가를 올리는 아이돌 미나세 이오리가 있다.

오전에 미나세 옹으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오늘 메뉴는 무엇이냐고 물어보길래 솔직히 소바라고 대답했더니 그걸로 통화를 마쳐 버렸다.

그냥 저녁때쯤 잠깐 들리려나 했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예의 검은 리무진이 포장마차 앞에 서곤 그 안에서 미나세 옹과 이오리가 나왔다.

보아하니 미나세 옹이 나오려는 차에 이오리도 데려나온것 같은데.

"오늘은 일이 없나보네."

"모처럼의 휴일이니까."

"호오. 바쁜 와중 모처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포장마차를 찾기 위해 나와주시다니 이것 참."

"착각하지마! 할아버님이 하도 사정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온거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것치곤 제법 맛있게 먹는것 같은데."

"흥! 그냥 그런 수준이야. 겨우 이정도로 이 이오리 님의 입맛을 만족시킬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그렇다네요 할아버지."

"흐음, 이 늙은이 입맛에는 제법 맞는다만. 우리 이오리 입맛이 까다로운건 알고 있었지만 이거야 원 괜히 억지로 데려온것 같구먼."

"아, 아니에요 할아버님. 정말 맛있어요. 데려와 주셔서 감사해요."

"호오 맛있단 말이지."

"키이잇!! 넌 입 다물어!!"

나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이오리의 모습을 보며 결국 할아버지와 난 웃음을 터트린다.

그 덕분에 얼굴이 새빨개진 이오리는 화가 난듯 고개를 픽돌리고 젓가락마저 내려놓는다.

그 토라진 모습을 보며 난 빙그레 웃곤 말한다.

"뭐, 솔직하지 못한점이 이오리 네 매력인건 알겠지만 가끔은 조금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해서 한거니까 기분 상해하지마. 요리하는 입장에선 빈말이라도 맛있다고 한마디 해주는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

"비, 빈말은 아니야. 맛은 제법 괜찮아. 전에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날에도 말했지만 이 이오리 님 입에 괜찮다고 평가받을 정도면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다는거니까 맘껏 기뻐해도 좋다고."

"그래 고맙다. 그럼 계속 들어, 얼음녹으면 미지근해져서 맛없어."

이오리는 쭈뼛거리다가 이내 다시 젓가락을 들고 소바를 먹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정말 이오리는 놀려먹기 좋은 아이라니까.

속마음은 배려깊은 여린 아이면서 겉으로는 틱틱거리는걸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장난을 치고 싶어져 버린다.

야요이도 그렇지만 이오리같은 여동생이 있어도 좋을것 같다.

정확히는 재밌을것 같아.

"그러고보면 이오리는 형제나 남매가 있던가?"

"위로 오라버니 두 분이 계셔."

"그렇구만. 부럽네 그 오빠라는 사람들은."

"무, 뭐?!"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자 이오리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옆에 있던 미나세 옹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도둑놈도 정도가 있지 이정도면 상도둑놈일세. 하기야 뭐 어중이 떠중이 녀석들이 데려가는것 보다야 나을진 모르겠다만."

"아니 그냥 저런 동생 있었음 좋겠다 한게 무슨 도둑놈입니까."

어디가서 그런말 하시면 저 정말로 잡혀갑니다.

"하기야 오라비라고 있어봐야 이오리에게 크게 신경써주진 못했지. 부모란 것 들도 뭐가 그리 바쁜지 제 자식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으니 오죽할까. 쯧."

"하, 할아버님."

그러다 못마땅한듯 중얼거리는 미나세 옹의 모습에 이오리가 다시 당황한다.

음……잘은 모르겠지만 미나세 그룹같은 대기업의 구성원들이니 평범한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만들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랑이야 있겠지만 그걸 서로 표현하고 공감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하면 맞으려나.

그 과정에서 홀로 남은 이오리는 외롭게 자랐던 모양이고.

나랑 비슷하려나 그건.

"비슷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게냐."

"저도 뭐 어릴적에 가족 품안에서 자란 기억은 없으니까요. 요즘와서 이오리같은 아이를 보며 저런 동생하나쯤 있었음 좋겠다 하는것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호오, 네 부모님들도 어지간히 바쁘셨던 모양이구먼."

"예, 뭐. 지금도 바쁘신건 그대로지요."

아버지는 안계시는거지만 그걸 말해서 굳이 분위기를 어둑어둑하게 만들 필욘 없겠지.

"그럼 빨리 결혼해서 가정이라도 차리지 그러냐."

"사실 그것도 생각이 아주 없는건 아니에요. 나이도 이제 슬슬 차고 있으니. 그래도 당장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네요. 말은 아까 그렇게 했어도 그다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라 홀로 지내는것도 나쁘진 않구요."

언젠간 하긴 해야겠다만 그래도 역시 아직은 생각이 없다.

어쩌면 이러다 말지도 모르겠다라는 불안함도 들지만 아무래도 난 정말 하고싶다고 생각하지 않는이상 시작하진 못하겠다.

나름 진지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 해서 그런지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 해져버렸다.

화제를 돌려보고자 이오리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이오리 넌 왜 아이돌을 시작한거야?"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경제적인 면에선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을 이오리가 아이돌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한창때의 여자아이가 가진 환상 때문에 가볍게 임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오리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진지하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이처럼 순식간에 인기몰이를 할 수 있는것이겠지만 여튼 그렇게 진지하게 아이돌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오리는 내 질문에 잠깐 옆에 있는 미나세 옹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쉬고 대답한다.

"내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오라버님들은 전부 대단한 사람들이야. 능력도 뛰어나고 무엇하나 모자람이 없지. 그래서 저마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성과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어. 단지 미나세란 껍질만 가지고 있었을 뿐 이오리라는 사람의 무언가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스스로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다는걸 인정받기 위해서 시작한거야. 만약 집안의 도움은 전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아이돌로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이오리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일테니까."

이오리는 당차게 긴 말을 잇는다.

옆에 있던 미나세 옹은 미리 알고 있던것인지 별 다른 감흥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이거 참 훌륭하기 그지없구만.

저 나이대의 아이가 하는 말이라기엔 나조차 뜨끔할 만큼 소신있는 목표의식이다.

내심 찔리는 바람에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오리가 새침하게 물어온다.

"그러는 넌 뭣때문에 포장마차를 하는거야? 할아버님이 말씀하신대로 라면 예전에 요리 대회에서 첫 출전인데도 수상을 했었다면서?"

"어어. 최우수상은 아니었지만 그 뒤의 우수상이였었지 아마."

"그럼 계속 요리쪽으로 나아가고 싶은거야?"

"글쎄? 확답은 못하겠는데. 솔직히 이 포장마차도 언제까지 할진 장담하지 못하겠고."

내 헐렁한 대답에 이오리가 어이없어 하는 눈치다.

"그게 뭐야. 너 요리 잘하잖아? 그러고보면 노래도 나름 괜찮았었지. 그럼 너도 가수 쪽에 마음이 있는거야?"

"흠. 아직 까진 그럴 생각은 없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또 마음이 바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장은 아니야."

"하아? 그럼 모델은? 저번에 타카네와 함께 패션잡지 모델을 했었잖아. 그 잡지 엄청 호평이었고 그것 때문에 지난번에 우리 사무소에 너를 대상으로 러브콜이 왔던적도 있었어."

"아니 그것도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은……."

내 어물쩡한 태도에 이오리의 눈초리가 매서워진다.

"뭐야 그게? 그러고보면 너 듣기론 뭐든지 그때그때 하고 싶은게 생기면 전에 하던건 버려두고 다시 그것에 빠져든다면서?"

"잘 알고 있네."

"그렇게 대책없이 사는게 옳다고 생각해?"

이오리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인다.

우선 질문에 성실히 대답한다.

"옳고 그른건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잘 모르겠는게 아니라 그른거야. 지금이야 아직 젊고 홀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계속 대비없이 살아가다 미래는 어떻게 하려는거야."

"글쎄? 그건 그때가서 고민해야지."

"하! 그야말로 천재의 사정이네. 뭐든지 하면 되는 사람이라 이거야? 다른 사람들은 무엇 하나만이라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경쟁하는데."

"음~ 하고싶은 말이 뭐야 이오리?"

감정적으로 변하는 이오리의 말에 잠시 제지를 걸어보자 아차 한듯 이오리가 놀란 기색이다.

하지만 잠시 얼굴을 붉힐 뿐 여전히 퉁명스런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게 전부야."

"이오리. 아직 이른 점심이라 손님들이 오려면 시간도 조금 있고 네 옆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너에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말할만한 분이잖아."

"……그래서."

"아까 말했지? 솔직해져도 좋다고."

여기까지만 말한 뒤 가만히 이오리의 반응을 기다린다.

이오리는 옆을 힐끗, 미나세 옹의 눈치를 살핀다.

아까부터 쭉 미나세 옹은 차분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이오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오리는 그 미소에 잠시 고개를 돌리고 고민하듯 우물거리다 이내 말을 시작한다.

"……솔직히 말해서 질투나. 난 오라버님들이나 너처럼 재능같은건 없어. 언제나 앞에선 잘하는게 당연한것이고 난 그래야만 하는것 처럼 굴지만 뒤에선 수도 없이 노력하고 땀흘려. 너 같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또 잘할 수 있게 된다는게 분해."

말을 마친 이오리는 창피함에 미처 지금까지처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옆을 바라본다.

"그, 그렇다고 오라버님이나 너처럼 재능있는 사람들이 싫다는건 아니야. 그건 어쩔수 없는거고 오히려 잘할 수 있다는건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넌 어째서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대충 살아가는거야? 마치 자기는 이렇게 하면서 살아도 평범한 너희들보단 더 잘살 수 있다고 비웃는것 같아."

거기서 이오리는 약간 물기어린 눈으로 다시금 나를 노려본다.

용기를 내어 솔직히 심정을 말한 이오리를 위해 조금이지만 도움이 되려 나도 입을 연다.

"대충 살아가는게 아니야. 나도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거라구."

"하지만 넌 꾸준히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잖아. 매번 하고싶은 일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충 시작하고……."

"정말로 대충한다고 생각해?"

거기서 얼굴을 굳히고 이오리를 노려본다.

이오리가 갑자기 바뀐 내 얼굴에 놀랐는지 작게 숨을 들이킨다.

"난 여지껏 단 한번도 하고싶어하던 일에 대해 대충한적 없어.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뛰어들땐 언제나 진심이었다구. 그 과정에서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것에 남들보다 노력과 시간이 조금 덜 필요했을지는 몰라. 아마 그게 네가 말한 재능이 있다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적어도 마음가짐만큼은 절대로 다른사람들에 비해 허술하지 않다고 자신해."

이오리는 내 긴 말을 듣고 난 후 작게 중얼거린다.

"뭐야 그거.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만 한심해지잖아. 괜히 투정만 부린것 같고."

"전혀. 서로의 생각이 다를 뿐 한심하고 말고는 없지."

하며 웃는 내 모습에 이오리는 뭐가 다시 울컥한건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래도 넌 조금은 나중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 지금 포장마차도 그래. 아무리 아는 사이라지만 친인척도 아닌 사람들을 위해 휴일에도 지나치게 싼가격에 가게를 열어주고 야요이와 그 동생들을 위해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주며 저녁까지 먹여주고. 저축은 생각하고 있어?"

"그렇긴하네. 사실 운영은 아슬아슬하게 흑자긴 하지만 그리 많은 돈이모이진 않지. 내가 아주 쓰는돈이 없는것도 아니고."

"그러다 너한테 쓸 돈도 없어지면 어쩌려는거야?"

"어쩔수 없지."

"어쩔수 없다니……너 착한것도 좋지만 정도라는게 있잖아."

"착하다기 보단 철이 덜 든것일지도 모르지. 현실이야 어쨌건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안되는 성격이거든."

돈은 물론 필요하다.

다만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건 맞지만 돈을 벌기 위해 사는건 아니잖아.

언젠가 힘들지도 모르니까 나중을 위해 지금을 대가로 치룬다는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나중을 위해 하나씩 현실과 타협해가면서 먼 훗날 남에게 인정받는 내가 되더라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 같거든.

이룰것을 다 이루고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위치에 선다 한들 지난날 그 위치에 서기 위해 바빠, 정말 보고 싶었던 언젠가의 새해 해돋이가 문득 생각난다면 난 만족하지 못할것 같다.

설령 내게 남들보다 모자란 재능이 주어져 하고 싶은일을 하지만 잘 되지 않아 하루하루 연명하기 힘든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굶주리는 고통보단 스스로에게 충실했단 기쁨이 더 클테니까.

"바보같아…."

이오리가 투덜거린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어쩐지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옆에서 나와 이오리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미나세 옹이 헛기침을 한다.

"꼭 나보고 하는말 같구먼"

"설마요. 미나세 할아버지는 예전일을 후회하고 계신겁니까?"

"후회가 없다면야 그게 사람인가. 너도 말은 그리 했지만 내 나이 먹을 때 쯤이면 아무렴 하나 둘 정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야. 그래도."

미나세 옹은 가만히 그 주름진 손을 들어 이오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후회한 것 보단 만족한 것들이 더 많으니. 내가 여지껏 일구어 논 것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처럼 귀여운 손녀딸 얼굴도 볼수 있었고."

"하, 할아버님."

이오리가 부끄러워하며 가만히 그 손길을 받는다.

그 보기 드문 이오리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날 그러고보면, 이라며 운을 띄운다.

"아까부터 네 입으로 너 자신이 평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평범하지 않아."

이오리가 무슨 의미냐며 찌릿 눈총을 보낸다.

"넌 충분히 재능있어. 그토록 매력적이잖아. 물론 노력이야 어마어마하게 했을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돌로 이처럼 인기를 얻어가고 있을리가 없지."

"하, 하아~? 바, 바보야 너?! 뭘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거야?!"

이오리가 아까 이오리의 오빠가 부럽다고 말했을 때 보다 배는 격하게 반응한다.

"이놈이 아무리 그래도 옆에 할아비가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거늘 대놓고 손을 뻗어?!"

"손을 뻗긴 뭘 뻗어요!"

미나세 옹의 반응 또한 배는 격렬하다.

결국 셋이서 뒤늦게 찾아온 기사아저씨가 말릴 때까지 와글와글 떠들다 겨우 진정되게 되었다.

허이고 이제 장사 시작인데 벌써 진이 다 빠진 기분이다.

"너."

"응?"

이오리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잠시 뒤를 돌아 나를 부른다.

"그냥 생각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는데."

"생각보단 제대로 정신차리고 사는 녀석이었잖아?"

라며 니히힛! 웃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선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 뒷머리를 쓸어내린다.

이거참 기뻐해야 하나.



두명의 세침떼기 들을 보내고 내 자리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대충이라."

그런 말을 들은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예전에도 아마 이런 일이 여러번 있었지.

아무리 스스로에게 둔감한 나라고 한들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다방면에 있어 난 재능이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에 대한 성과가 그걸 입증한다.

그런 내가 한가지 일에 오래 매달리는 것 없이 매번 바꿔가며 이것저것 해보는것이 다른 사람의 눈엔 대충아무거나 건드려보는것 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그렇다 한들 신경쓰진 않았다.

이오리에게 말했던 것 처럼 나도 나 나름의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가끔 그런생각을 한다.

난 우수한 성적을 받아낸적은 있어도 최고가 된적은 단 한번도 없다.

대회에선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그 자리가 항상 나의 위치였다.

물론 들인 시간에 비해서 그정도 성적이라면 평생 그것에 매달려 왔을 이들이 보기에 못마땅해할 결과이긴 하지만 어찌됬던 여태까지 해왔던 수만가지 일들중 최고가 되었던 적은 전무全無이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정점에 오르고자하는 욕심이 없었기에 그런걸까.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하고싶어하고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아닌 최고가 되어보자 라고 생각할만한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장사나하자."

좀 더 고민해볼 문제네.



그냥 일기.

그러고보면 기사아저씨는 미나세 할아버지와 이오리가 식사 하는동안 어디갔을까 했었다. 설마하니 미나세 할아버지가 넌 딴데가서 먹고와, 라고 했을까 싶었는데 그냥 일이 좀 있어서 그것 다녀왔단다. 늦게라도 왔을 때 먹고 가라고 했지만 이미 둘이 식사를 마쳤는데 혼자 먹을순 없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면과 육수만이라도 따로 챙겨드렸다. 다만 미나세 할아버지가 그걸 보며 탐내던 눈빛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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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이오리의 차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오리는 지기싫어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성격이 매력인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쉽게 인정받을수 있고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 재능넘치는 점주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케이스인 미키와도 티격대는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나요?)
뭐 천성이 나쁜 아이로 설정된것은 아니니 어디까지나 새침대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겠지만 조금쯤은 이오리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할법도 한 이야기를 소재로 이번 화를 써 보았습니다.

ps. 혹시나 이번 화의 진행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까 염려되네요. 어째 뜬금없이 진행된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 그리 마음에 드는 화는 아니네요 

ps. 수정합니다. 뒷부분이 살짝 더해진거니 크게 달라진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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