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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1:하야미 카나데-고독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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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30, 2019 00:59에 작성됨.

(이전 챕터 제 1화)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0667

(이전 챕터 마지막화&막간)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0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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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날마다 조금씩 야위어 갔다.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창백하고 볼은 움푹 패어버렸다. 뼈와 가죽만 남았다 할 만큼 말라서 이러다간 얼마나 오랫동안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1964) 


'높은 곳에서 깊은 물로 뛰어들면 몸이 수면에 닿는 충격으로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높이가 모자랐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잘못된 정보였던걸까. 강물의 짓눌려오는 수압의 감각만이 온몸에 퍼진다.

뛰어들기 직전, 이미 폭우에 흠뻑 젖은 몸을 덜덜 떨고 있었기에 차가운 감촉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바로 직전에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마주쳤던 코호쿠 다리의 가로등 빛은 수면 아래까지 닫지 않는다. 눈앞은 완전한 암흑이다.

폐에 물이 차고, 강의 물살에 휩쓸리는 고통에 머리가 점점 새하얗게 되어간다.

분명 죽기로 마음먹었을 텐데,

몸과 본능은 아 직 까지 도살 려      달 라고     비      명       지      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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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도, 찾아줄 사람도 없으면서."


뛰어내리기 직전, 하야미 카나데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이윽고 악명높은 자살 명소에서 태풍으로 난폭해진 강물에 몸을 맡긴다. 그 모습은 굵고 난폭한 빗줄기에 섞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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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ssful Death-Chorus>>


<<Yuuko Iida>>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오전 10시경>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다. 한동안 멍하니 소녀 쪽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는 소녀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인다.

쟁반만 한 크기의 검은색 챙모자, 타원형 안경, 회색의 꽃들이 수 놓여있는 검은색 양복, 그리고 건강미가 느껴지는 갈색 피부. 허리춤의 벨트에 매달아 놓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녹음 버튼이 눌러진 채로 돌아가고 있다. 나이가 소녀보다 두 세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이국의 여성이 어째서인지 집 앞에서 소녀를 기다리고 있다.


소녀에게 있어서 양복을 입은 어른은 여전히 거부감이 드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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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3일 목요일 오전 11시경>


유창한 일본어로 조심스레 인사를 하는 그녀로부터 명함을 받는다.

명함에 적힌 여자의 이름은 웬디 파블로프나 윌리엄스. 하지만 그들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다다. 이름의 바로 왼쪽, 자신의 금쪽같은 딸을 유린한 자들의 혐오스러운 상징이 이름 옆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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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2일 수요일 오전 11시경>


"Here it goes again(또 시작이구만)..."


웬디는 들고 있던 녹음기와 수트케이스를  자신의 옆으로 던진다. 내용이 밖으로 삐져나온 테이프를 뱉어내며 포장도로를 구르는 카세트 플레이어. 정면으로부터 날아온 물벼락에 웬디가 흠뻑 젖은 것은 그 직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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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1일 화요일 오후 8시경>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오는 주먹이 웬디의 안면을 갈긴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대문 밖의 흙길로 튕겨 나가면서 모자와 안경이 머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게 기적일 지경이다.

중심을 잡고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하지만 이어서 날아오는 두 번 째 주먹에 다시 나가떨어지고 만다.

제동하지 못하고 그대로 논밭을 향해 기울어진 경사를 굴러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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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월요일 오후 9시경>


"내가 그냥 그 엿 같은 회사에서 잘려서 이러는 줄 아냐? 우리야 다른 길이라도 찾았지, 우리 얼굴 팔아서 애들 인생을 어떻게 고치지도 못하게 완전히 조져놓고 이제 와서! 이제 와서 회사가 신경도 다 써주시고 참 고맙다 그래!!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나!!!"


그러고는 쓰러진 모습에 눈길 하나 안 주고 쾅 하고 철문을 닫아버린다. 저년이 돌아가든, 그대로 아파트 복도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든 그에겐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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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9일 일요일 오후 4시경>


[근데 ■■■■ 엄마. 아까 우리 아들내미가  ■■■■ 집 앞에 양복 입은 외국인이 계속 서 있다고 하던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용수철처럼 소파에서 튀어 올라 베란다의 커튼을 열어젖힌다.


"■■ 씨, 좀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남편이 발작을 일으키는 딸을 업어 들어가고, 자신이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무시하고  문을 닫아버린 게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빗줄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거리를 씻어내도 자신의 딸과 그 회사의 사람은 별로 바뀐 게 없다.


한 사람이 비에 흠뻑 젖은 것만 빼면 말 그대로, 그 어떤 것도 바뀐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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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8일 토요일 오후 3시경>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무릎을 꿇고 다소곳한 자세로 방석에 앉은 그녀는 어느새 물기를 닦은 수건을 곱게 접어두고, 소녀가 급하게 만들어 온 인스턴트 녹차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좀 전에 그녀에게 저질렀던 문전박대가 없었던 것처럼, 그저 살갑고 친절한 태도.

여전히 물에 흠뻑 젖은 양복과 태도의 괴리감에 소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저기, 아까는 미안."


그러나 웬디는 고개를 젓는다.


"미안해하실 거 없습니다. 당연한 반응이고, 앞으로 당신과 같은 건에 휘말린 사람들을 더 만나야 하니, 예행연습한 셈 치죠, 뭐. 다만."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표정에 소녀는 절로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새끼를 잡아 족치는 건 좀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그쪽도 저랑 생각은 같잖아요."


>>>>>>



[2015년 8월 7일 금요일, 오후 9시 34분 녹음. 피해자와의 면담을 방금 끝-]


▶▶



[346 프로덕션 ZBS 방송국 출장사무소에 들어간 새내기 프로듀서들과 아이돌들은 분명 각자의 마음속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쿠로사키 코우이치, 그 씹새끼-Fuckward-가 대선배 겸 사무소장이 아니었다면, 방송국 내부에 마련된 사무소에서 일하며 346의 얼굴로서 상승세를 탔겠지. 그렇게 이용을 당하고 버림을 받을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


>>>>>>


<2015년 8월 6일 목요일, 오후 11시>


웬디가 건넨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쿠로사키 놈하고 그 '중요한 면담'을 가졌어. 말이 면담이지 그저 높은 양반들한테 아이돌의....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잖아."

"그러고는 그 모든 이익을 자신한테 돌리는 거군요. 도구로써 명을 다했다고 생각되는 프로듀서와 아이돌들은 죄를 덮어 씌우거나 서서히 말려죽이면서."

"...."

"...미친 거 아니에요?"


>>>>>>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사람 중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나 합니까? 제가 무슨 말 하는지는 알고 계세요?"

"이봐! 왜 그런 오해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 오해, 오해, 지랄, 오해, 오해..."


웬디는 절반 정도 태운 담뱃개비를 마저 깊게 빨아들인다. 늘 하던 버릇대로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재떨이 꺼내려다 혀를 차며 담배꽁초를 튕겨 보낸다.


ㄱ자로 구겨진 담배꽁초는 회전하며 옅게 주름이 새겨지기 시작한 남성의 얼굴로 날아간다.


"히익!"


남성은 뒷걸음치면서 양팔로 담배꽁초를 막으려 한다. 갑자기 날아오는 담배꽁초에 그는 자신의 뒤에 세워져 있는 선물용 주스 박스를 깨닫지 못한다. 무릎 정도까지 올라오는 박스에 다리가 걸린다. 곧바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박스 안의 내용물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부터, 그리고 등, 마지막으로 엉덩이를 차례로 책상과 바닥에 박고 만다.


"쿠로사키 코우이치 씨."


천장을 향해 들이마셨던 연기를 내뿜고, 쓰고 있던 챙모자는 입구 옆에 걸려있는 옷걸이에 조심스레 걸어놓는다. 반면 한 손에 들고 있던 공구 상자는 난폭하게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 들고는 바닥에 대충 떨어뜨린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이 아주 끝장난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잖아요."


페인트와 엉겨 붙은 톱밥으로 더럽혀져 있는 못총. 발사구의 안전장치는 접착제 같은 것으로 억지로 해제되어 있다.

웬디가 손잡이에 달린 밸브를 돌리자 귀따가운 압축가스 소리가 못총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멋대로 해석했네요.. 애초에 이런 짓을 지금까지 해온 시점에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할 거란 생각은 안 했겠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참지 못하고 그대로 분출되어 나오는 분노로 처절하게 일그러진다.


"자, 잠깐만!"


이미 쿠로사키 코우이치의 표정과 몸에 비즈니스적 태도는 사라지고 오직 공포만이 남는다.


처음에 그녀가 들어왔을 때, 쿠로사키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웬디 파블로프나 윌리엄스, 얼마 전에 귀국해서 사내를 휘젓고 다니는 미시로 상무의 또 다른 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녀의 라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인물.

그녀와 연결점을 만들어 놓는다면 바로 미시로 상무와 이어져 지금보다도 더 안정적인 생활과 돈벌이가 가능할 터였다.

처음에 그녀가 보였던 어린아이 내지 희극배우 같은 태도, 그리고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구역질이 났지만, 꾹 참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쿠로사키는 위화감의 정체를 이 지경에 와서야 깨닫는다.

사회인으로서, 사회인이기 이전에 비즈니스 우먼으로서, 그리고 비즈니스 우먼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어떤 제동장치가 그녀에게는 결여되어있다.


'이 여자는 어느 쪽이든 정상이 아니다.'


그가 한순간에 내린 결론을 증명하듯, 웬디는 못총을 천장을 향해 발사한다. 애초에 작업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데다 총구 끝의 안전장치 외에는 건드리지 않은 모양인지, 못총에서 발사된 못은 천장에 닿기도 전에 힘없이 쿠로사키의 발치에 떨어진다.


"으헉?!"


얼빠진 비명. 이 정도로 위협이 되었다면 못총의 역할은 이미 충분히 다 한 셈이다. 어디까지나 위협용에 지나지 않았다.

쿠로사키는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주저앉은 채 뒤로 헛걸음질을 한다.


"ZBS측에서는 당신이 물고 빨고 늘어졌던 관련 인원을 처리할 테고, 당신에게도 곧 구속영장이 들어갈 겁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이 당신의 뒤에서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좆됐습니다. '많이 힘들어질 거다', '좋았던 시절 끝났다'. 미시로 상무가 말을 곱게 하라길래 이것 저것 고민했지만, 이 표현 말고 적당한 게 없네요. 당신은 아주 좆됐습니다. 당신이 피해자에게 저지른 짓하고는 비교도 안 되겠죠."


못총을 바닥에 두고 웬디는 웅크려 앉아 양손으로 쿠로사키의 머리를 쥐었다. 그의 얼굴을 흉하게 구기며, 힘이 되든 안 되든 억지로라도 으깨어버리겠다는 듯이.


"당신이 직접 담당했던 아이... 하야미 카나데 양한테도 그딴 식이었나요?"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던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지만, 그 빈자리는 또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진다.


"하야미 양은 지금 어디에 있죠?"


초조함과 불안감이다.


<<Miyuki Sawashiro/ Laura Bailey>>


>>>>>>


"저기, 실례합니다."

"...."

"저기요?"

"...나라는 건 뭘까."

"Hello?"


세 번째가 돼서야 소녀는 뒤를 돌아본다.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에 빛나는 남색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가늘고 고운 한 손으로 머리를 넘기자 드러나는 것은 신비롭고 보기 드문 한 쌍의 금안, 그리고 하얀 여름 교복과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외모.


'말 걸지 말아달라,  심한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여기사 당장 떠나라.'


조심스레 말을 거는 불청객에게 소녀는 그렇게 말할 참이었다.

분노와 슬픔과 외로움이 믹서기 안에서 한데 섞인듯한 상태. 이런 심정으로 소녀는 상대가 팬이든, 헌팅하러 왔든 제대로 대화할 자신이 없다.


"Helloew(안뇨옹)?"


그러나 미국 만화나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용모, 모자란 언어 실력으로도 알아챌 징글맞은 발음에 소녀는 말문이 막힌다.


"당신 누구야?"


약간 얼빠진 얼굴로 소녀가 검은색 꽃무늬 양복을 입은 괴인에게 물었다. 커다란 챙모자 밑의 안경알이 빛난다.


"본명으로 부를까요? 아니면 예명으로 불러드릴까요?"

"...미안. 질문의 의도를 위해 못했어."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 아."


순간, 양복의 여자는 얼굴이 굳어진다.


"아, 내 호칭 얘기구나. 둘 다 알고 있으면 아마 회사 쪽 사람인 걸까? 그냥 편한 대로 부르면 돼."


그런 질문을 받는 것도 익숙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럼 카나데 양으로."

"초면인데?"

"개인적으로 카나데 양은 성으로 불러드리기 좀 찝찝해서요. 그리고 예명이 '블루'라니, 아이돌치고는 우울(Blue)하잖아요."


양복의 여자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케이스를 꺼내 카나데에게 건넨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346 프로덕션 무대 연출 컨설턴트 및 예능 3과 프로듀서, Wendy. P. Williams]


"어머, 내 프로듀서한테 못총을 들고 갔던..."

"소문 참 빠르지요. 덕분에 미시로 상무님이랑 제 담당 아이돌들...빼기 1명 말고는 저를 무슨 맹수 보듯이 한다니까요."

"다친 사람이 없어도 그렇게나 요란하게 했으니까. 솔직히 나도 처음 들었을 때 당신이 무슨 미시로 상무의 청부업자쯤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프로듀서인 줄은 몰랐어.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카나데의 물음에 웬디는 모자 채로 머리를 긁적거린다.


"카나데 양의 학교에 갔더니 무단결석이라고 하길래요. 대충 담임이 카나데 양 뒷담까는 걸 들어준 다음, 카나데 양의 집하고 학교 주위를 헤매다가 우연히 여기에 계시는 걸 봤지요."

"그래서, 나를 학교로 다시 데려가려는 거야?"

"설마요. 제삼자가 나설 정도로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카나데 양을 억지로 학교로 끌고 가기에는 당장 저부터 초중고등학교를 안 나왔는걸요."

"어머..."


대체 이 여자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낸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카나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 쿠로사키와 관련해서?"

"아뇨."

"그럼?"

"카나데 양을 저희 아이돌로 스카우트하려고 왔어요."

"...."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카나데는 약간 적의와 지겨움이 섞인 시선으로 웬디를 노려본다.


"싫다면?"

"계속 카나데 양을 설득해야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당신이 쿠로사키와 별다를 게 없을 수도 있어."

"쿠로사키는 아니었지만 저는 진심입니다. 그 새끼가 조져놓은 당신의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돕고 싶어요!"

"진심이라고 말한 건 쿠로사키도 마찬가지였지. 그런 거짓말엔 이미 익숙해졌어."

"...카나데 양."


카나데는 웬디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원래 보던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카나데의 앞으로 곡선으로 뻗어있는 길고 넓은 강줄기. 강을 양옆으로 감싸고 있는 녹색과 황토색의 공터. 사방으로 넓게 뻗어있는 건물의 숲 한가운데에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자태로 우뚝 서 있다.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만 빼면 경치를 감상하기에 나쁘진 않다.

하지만 카나데는 경치에 관심 없는 듯 난간에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수면으로 시선이 향한다.


카나데의 꿈은 애초에 무너진 적이 없다. 다만 주변의 무너져가는 꿈들 사이에서 성장도 퇴보도 없이 정체되었을 뿐이다.


"저기, 카나데 양? 전 아직 안 가고 있거든요?"

"알고 있어. 그런데 웬디 씨, 혹시 수영엔 자신 있으려나?"

EVERYTHINGISOKAY

"...좀 오래됐지만, 옛날엔 아주 물속에서 살다시피 했죠. 그런데 그런 질문은 제발 이딴 곳 말고 다른 데서 하면 안 될까요?"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나랑 의견이 맞는 것 같네. 당신 덕에 머리가 복잡해졌으니까 집에 돌아갈래."

"집 앞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가는 동안 나한테 말만 걸지 않는다면야."

"혹시 ㅈ,"

"점심은 혼자 먹을 거야."

"...네."


그렇게 카나데는 자살 명소로 악명높은 코호쿠 다리를 떠나, 웬디의 준중형 포드 SUV에 몸을 맡긴다. 초콜릿과 담배 연기의 오묘한 냄새가 옅게 차 안에 풍기고 있다. 가는 길에 웬디가 원래 타던 차와 지금 운전하고 있는 것을 비교하며 투덜댔지만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기에 한 귀로 흘려듣는다.


<<with Asami Takano>>


그리고 잠시 후, 내일 보자는 인사말이 날아오는 뒤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카나데는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왔다. 꼭대기 6층에 위치한, 17세의 고등학생이 사용하기엔 너무 크고, 한 가구가 모두 살기에는 좁은 2LDK의 집. 식기, 수납장, 침대,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잠옷. 거의 새것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반상 옆에 널려있는 숙제지와 유인물. 사진 같은 추억의 흔적은 없고, 그녀의 취미를 나타내는 것은 매트리스의 발치에 선반도 없이 바닥에 어질러져 있는 16인치 브라운관 TV와 컨트롤러도 없이 영화용 리모컨이 올려진 플레이스테이션 2, 그리고 빛바랜 대여점의 바코드가 붙어있는 DVD 케이스 정도다.

두고 나갔던 휴대전화를 켜보니 부재중 걸려온 전화가 10통. 부재중 전화와 똑같은 번호로 현 위치를 묻는 문자 날아온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웬디의 짓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카나데는 햇빛을 철저하게 가리는 검붉은 색의 커튼을 열어 발밑의 도로를 내려다본다.

검은색의 SUV. 검은색 챙모자는 아직도 차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챙모자에서 위로 뿜어져 올라오는 것은 담배 연기일까.


"이상한 사람."


짧은 감상을 내뱉고는 다시 커튼을 닫는다.

리모컨으로 TV를 켜고, 오늘 점심으로 때우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편의점 샌드위치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즉석 수프 가루가 담긴 컵에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샌드위치와 함께 목재 바닥에 놓는다.

TV 앞, 조촐한 점심 식사 옆에 앉아 무릎을 껴안는 카나데.


[네, 오늘은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최적의 날씨였습니다. 현재 18호 태풍 아타우(ETAU)는 오키나와 동남쪽 약 1,250km 부근 해상에서 발생하였는데요, 이후 북북서진을 하며 발달하여 내일 밤 9시에는 칸사이 남동, 모레는 혼슈에 다다를 전망입니다.]


"...앞으로 이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의욕 없이 샌드위치의 한 귀퉁이를 입에 문다.


푸석푸석한 빵부스러기가 어깨를 타고 흐르는 장발과 무릎에 떨어지는데, 그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기계적으로 입안의 내용물을 우물거릴 뿐이다.


<쿠로사키 코우이치 구속으로부터 이틀 후, 2015년 9월 7일 월요일 오후 12시 50분>


>>>>>>


<<<1: 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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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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