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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0:카미야 나오, 호죠 카렌- 재활(1)](재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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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7, 2019 23:19에 작성됨.

-요술이 아니고서야 이 단 하나의 조그만 포장지 속에 그런 행운의 초대장이 들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바람인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도 될 수 있는 한 어린 찰리가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도와 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어른들도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건 아무리 가능성이 없다 할지라도 행운이 바로 이 초콜릿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이 초콜릿 안에도 기회는 있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1964)


[REC: 2014/03/12 15:45]


 제일 먼저 비치는 것은 화면을 한가득 채운 한쌍의 눈. 초록색과 청록색, 서로 다른 색의 눈이 깜빡거린다.


딸깍,딸깍,딸깍.


캠코더의 버튼을 누르는 소리는 그 신비로운 눈빛이 점점 화면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잦아든다. 곧이어  베젤 밖에 숨어있던 청록색 눈 아래의 눈물점, 긴장이 서린 옅은 피부의 얼굴, 풍성한 옅은 녹색의 단발, 그리고 상반신뿐이지만 어깨가 노출된 녹색의 드레스가 차례로 드러난다.

끝내 카메라에서 손을 떼고 화면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그녀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려고 노력해본다. 하지만 얼굴에 담긴 긴장으로 인해 그녀의 미소는 상당히 경직되어있다. 여러 번의 반복, 여러 번의 실패. 그녀는 이내 미소짓는 것을 그만두고, 눈을 감아 깊게 심호흡을 한다.


"후... 이 스틱, 리얼리스틱. 이 스틱, 리얼리스틱, 이 스틱, 리얼리스틱!"


철지난 농담을 몇 번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양쪽 뺨을 가볍게 두드린다. 목을 가다듬고 다시 화면을 응시했을 때, 백색의 조명이 비친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긴장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미소도 훨씬 자연스럽게 나온다.

드디어 만족했는지 그녀가 입이 열린다.


"잠시 후에 제 첫 미니라이브가 시작돼요. 비디오를 찍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아, 틀렸다!"



[REC: 2014/03/12 15:53]


"타카가키씨, 녹화 시작했습니다.  '비디오 로그, 2014년 3월 12일'부터 말씀하시면 됩니다."


화면 밖에서 낮은 텐션의 굵직한 목소리가 화면 안의 그녀에게 말한다. 철골과 전선이 벽에 엉켜있는 무채색의 공간. 그녀가 등지고 서있는 검붉은 색의 커튼 틈새로 연녹색의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이런 것까지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프로듀서. 자 그럼..."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비디오 로그 2014년 3월 12일, 저는 잠시후 저의 첫 미니라이브에 나가게 됩니다.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요? 매일 찍는 비디오 로그인데 오늘따라 자꾸 실수를 해버려서...여러 번 다시 찍다가 결국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와버렸네요. 실은 어젯밤에 비디오로그를 찍은 후에도 너무 긴장이 돼서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하지만 이 긴장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치 크리스마스 전날에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아이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트레이너분들, 음악을 만들어 주신 시이나씨, 오늘 무대를 위해 일해주시는 스태프 여러분들, 팬 여러분들. 그리고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프로듀서분들이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를 선물해주셨으니까요."


말을 멈추고, 녹색 불빛이 나오는 커튼을 뒤돌아본다. 어느샌가 조용했던 커튼 밖에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커튼의 틈새로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예전의 저는 특별한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어요. 하지만 지난해에 처음으로 아이돌을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멋진 무대에 서서 환하게 빛나는 제 모습을요.

오늘 이 공연에 과연 팬 여러분들이 만족해 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비록 리허설 때는 완벽하게 했지만 본 공연 때 어떠한 실수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러한 두려움 보다는 저 무대로 나가서 팬 여러분들께 인사를 건네고 같이 즐기고픈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비디오로그는 일기처럼 말만하고 끝내지 않고, 무대 위에서의 제 모습을, 모두들과 함께 지금까지 받아온 선물을 풀어내는 모습을, 그리고 앞으로 모두들과 함께 나아갈 길의 시작점을 다 담고자 합니다."


다시 정면을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에 더 이상 일말의 긴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확신, 희망, 즐거움, 그리고 기대가 한가득 담긴 아름다운 미소.


"제 이름은 타카가키 카에데. 모두들과 함께 나아가며 밝게 빛나고 싶은 346프로덕션의 아이돌입니다!"


▶▶


>>>>>>


무대 위에 올라간 그녀의 두 눈에 여러 사람의 얼굴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철골과 시멘트가 뒤엉킨 초라한 소극장, '라이브'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인원수. 

하지만 그런 광경마저도 그녀는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가볍게 붕 떠오르는 그녀의 마음과  뇌리에 새겨질 정도로 빈번히 들은 한마디가 늘 자신을 괴롭혔던 망설임을 가로막고 그녀의 등 뒤를 밀어준다.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Everything is okay)'.


과거에 격려를 받으며, 그리고 지금 자기자신에게 던지는 한 마디. 만약 좀 더 일찍 재활에 성공했더라면,


>>>>>>


딩동~.


초인종 소리가 오피스텔의 거실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벽에 걸린 시계의 초바늘과 찬바람을 내뿜으며 날개를 움직이는 벽걸이 에어컨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딩동딩동딩동딩동


그런 상황이 문밖에서 훤히 보이기라도 하는걸까, 두 번 째의 초인종은 빠른 템포로 여러 번 울린다.


"으윽..."


그제서야 신음소리와 함께 거실 창가 맞은편의 침대 위의 하얀색 이불덩어리가 꿈틀댔다. 몇초 정도를 그렇게 있더니 이불 속에서 아름답고 가는 손이 나와 이불을 걷어버린다. 여성은 숙취에 찌든 몸을 침대에서 힘겹게 일으키고는 발바닥을 질질 끌며 현관 앞으로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는다.


"아."


그러다 자신이 팬티 한 장만 입은 알몸 상태인 것을 깨닫고 급히 거실로 되돌아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와이셔츠를 허겁지겁 걸친다.


쿵쿵쿵쿵쿵!


"네~! 금방 나갈께요!"


급한 일이라도 있는건지, 이제는 초인종을 두고 문을 두드린다. 여성은 바깥쪽에서 들리게끔 소리높여 대답하고는 다시 현관 쪽으로 종종걸음을 놓는다. 도중에 바닥의 레깅스를 밟고 미끄러 넘어질 뻔 했지만 겨우 균형을 잡고 현관에 다다라 문을 연다.

에어컨 바람과 커튼에 묻혀있던 여름의 열기와 햇빛과 함께 나타난 것은 풍성한 머리카락과 일자 앞머리가 인상적인 10대 중후반 남짓의 여자아이다.


"좋은 아침이예요, 나오."

"안녕하세요, 카에데 언니. 정말... 어제부터 집에 안 계시고 연락도 안 받으셔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다구요."


카미야 나오는 어째서인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쉰다.  현관문을 열은 직후에 살짝 구겨져있었던 그녀의 두꺼운 눈썹이 다시 평상시의 초승달 모양으로 돌아간다.

타카가키 카에데는 처음에 나오의 그 말과 태도를 이해하지 못해 지난 하루를 되짚어본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숙취의 너머에 있던 기억이 점차 되살아나고, 어제 하루 내내 나오 일행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죄송해요. 어제 새벽부터 밤까지 스케줄이 많아서 중간부터 연락드리는 걸 잊고 있었네요. 그리고 그 후엔 카와시마씨 일행이 '오늘은 정말 고생했으니까 다 같이 마시자~!'스러운 분위기가 되었거든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하지만 어젯밤에 카렌이 카에데 언니는 술을 적당히 마셔야한다고 했으니까 조심해주세요. 그리고..."


나오는 말을 하다 말고 시선을 현관문을 붙잡고 서 있는 카에데의 용모로 향한다.

풍성한 단발, 그리고 알몸에 걸친 와이셔츠. TV나 무대에서 볼 수 없는, 그것보다도 보여져서 득 될게 없는 아이돌의 요염한 모습.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좀 있다 아침 먹으러 올 때는 몸단장은 하고 와주세요."


하지만 부스스하고 아무렇게나 뜬 머리카락, 구겨진데다 케첩으로 추청되는 얼룩이 소매에 묻은 와이셔츠는 '요염함'보다는 '엉망'이라는 단어가 차라리 더 어울린다. 애처로울 지경이다.


"아직 만드는 중이라 급하게 안 오셔도 되니까요."

"후훗, 카렌 양한테 아침식사 기대하겠다고 전해주세요~."


나오를 돌려보낸 뒤, 카에데는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씻은 후, 어젯밤 취기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놓았던 옷가지들과 일어나자마자 입었던 구겨진 와이셔츠를 세탁기에 넣는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다듬고 화장을 하고 옷서랍과 옷장을 열어 큰 고민 없이 하얀색 캐미솔과 핫팬츠를 입고 그 위에 비쳐 보이는 꽃무늬의 자켓을 걸친다. 마지막으로 침대 밑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핸드백을 집어 오늘 필요 없는 물건이나 서류를 빼고, 필요한 것을 채워 넣는다.


"이건...?"


도중에 핸드백의 안팎을 분주하게 오가던 왼손이 멎는다. 그 손에 들린 것은 A4용지 정도의 크기에 하얀 봉투. 봉투의 중앙에는 검은색의 동그란 배경 안에 성이 그려져 있는, 미시로 프로덕션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Eriko Matsui>>


>>>>>>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오전 7시경>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 같이 밥을 먹어볼까요?"


그로부터 15분쯤 뒤, 카에데 언니는 비밀번호로 잠금을 풀고 우리의 오피스텔로 들어온다.

깨우러 갔을 때보다 묘하게 텐션이 높은 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핸드백을 현관 근처에 놔둔다. 옷차림과 화장은 이미 완전 무장. 우리와 함께 아침밥을 먹고 바로 나가려는 모양이다.


"좋은 아침이예요, 카에데 씨!"


내 룸메이트, 호죠 카렌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연여구이를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것은 바로 그 직후다. 나는 방학숙제로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나 물 세 컵,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우리 부엌에 꽃혀 있는 카에데 언니의 것을 포함한 수저를 꺼내 정사각형 식탁 위에 놓는다. 카에데 언니가 냉장고의 반찬통을 다 꺼내기도 전에 세팅을 마무리하고, 덤으로 카렌이 밥솥에서 꺼낸 흰쌀밥을 식탁 위에 놓는다.

모든 음식과 식기가 식탁에 자리잡고, 앞치마를 벗은 카렌,  꽃무늬의 자켓을 벗은 카에데 언니, 그리고 밥을 편하게 먹기 위해 머리를 뒤에 묶은 내가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나와 카렌이 마주보고, 카에데 언니가 그 왼쪽이나 오른쪽에 앉는 것이 이 공동생활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지금은 서로를 평대하지만 카렌은 올해 학기 초에 우리 고등학교에 입학한 1년 후배다.

 우연히도 1, 2학년간의 합동수업 중에 만나게되어 그때부터 인연이 생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4월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카렌쪽에서 내게 룸메이팅을 제안해왔다. 나는 하루 일과를 위해 매일 치바와 도쿄를 오가고 있었는데, 같이 살면 도쿄에서 바로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갈 수 있고, 룸메이트끼리 방값이나 할일을 나누는 등 서로에게 도움이 될거라는게 그 이유. 꽤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고, 의외로 우리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Mai Fuchigami>>


"카에데씨, 나오한테 들었어요. 어제도 술 드셨죠?"

"네~. 잔뜩 마셨어요. 하루종일 일이 정말 많아서 그런지 저나 카와시마씨 일행이나 술이 술술~ 넘어갔죠."

"늘 말하는 거지만 술은 적당히 즐겨주세요. 그리고 늦으면 연락도 미리 해두시고요.  어제 하루 종일 나오는 카에데 씨가 걱정돼서 안절부절..."


넘기려던 숙주나물이 그대로 목에 걸려버린다.


"큭, 케헥! 카,카렌! 카에데 언니한테 그런 건 말해주지마!"


당황하여 콜록거리면서도 소리쳤지만 카렌과 카에데 언니는 내 이야기를 듣는건지, 마는건지, 젓가락을 놓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다.


"선배님 걱정도 많으셔~!"

"귀여움이 솟아나오는 나오 양~!"


카렌이 나의 룸메이트가 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나를 이렇게 강아지처럼 귀여워하고, 거기다 내가 카에데 언니를 '언니'라 부르며 그녀로부터 이렇게 귀여움을 받을 줄은 몰랐다.

타카가키 카에데. 지금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톱아이돌 중 한 명.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내가 여기에 오기 훨씬 전인 2012년 초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다. 카렌이 카에데 언니와 처음 만난 것은 카렌이 막 이사 온 2014년 초 무렵이다.


...복도에서 혼자 만취상태로 울고불고 하던 것을 카렌이 도와주면서 인연이 생겼다고 한다. 

원래 카에데 언니는 TV에서도 그랬듯, 존댓말만 쓰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첫 대면에 저지른게 너무 커서 그때 이후로 카렌에게만, 현재까지 와서는 은근슬쩍 나한테까지 존댓말을 하게 되었다.

언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듣고 본것으로 추측해보건데 별로 심각한 일은 아닐 것이다.


<<Saori Hayami>>


"""잘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8시가 다 되어갔다.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들은 싱크대에 식기와 수저를 담근다.

나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앞치마를 두른 뒤 싱크대의 물을 틀고, 카에데 언니는 출근하기 위해 다시 재킷을 걸치고 현관을 향한다.

카렌이 언니에게 핸드백을 건네주며 묻는다.


"저녁은 어떻게 하시나요?"

"먹고 올게요. 나오 양과 둘이서 먹으면 돼요. 아, 그리고 카렌..."


카에데 언니는 카렌에게서 받은 핸드백을 열고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그리고....


...


그리고?


<<with Miyuki Sawashiro/Laura Bailey>>


갑자기 멎는 두 사람의 소리와 움직임. 두 사람의 모습보다 밀려있던 두 끼 분의 설거지에 쏠려있던 내 시선, 그리고 싱크대의 시끄러운 물소리 사이로도 그 갑작스러운 '없어짐'이 느껴질 지경이라 절로 소름이 돋는다. 나는 물을 끄고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올려다본다.

카에데 언니가 카렌에게 내민 것은 무언가가 인쇄된 4~5장 정도의 A4용지다. 싱크대와 현관 사이의 거리가 있어 자세한 내용은 읽을 수 없다. 하지만 종이의 맨 위에 적힌 큼지막한 글자만큼은 그럭저럭 보인다.


[2015년 3분기- 346프로덕션 아이돌 오디션 신청서]


"그... 나오 양의 몫까지 포함해서 가지고 왔어요."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카에데 언니가 어렵게 입을 연다.


"카렌 양. 아이돌이 되고 싶은 꿈, 다시 가져보지 않겠어요?"


카렌은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내려다볼 뿐이다.


>>>>>>


'장기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희측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만 최악의 경우에는...'

'호죠 양이 다 나으면 저 아이돌들처럼 될 수 있단다. 간호사 언니들도 화려한 옷을 입고 멋진 무대에 올라 춤추는 호죠 양을 기대하고 있어!'

'미안해, 카렌. 하지만 우리도 학교생활이 있으니까...'

'뭐? 그거 예전에나 유행했던 거잖아?'

'우리 환자야. 그것도 아직 어린애라고! 본인도 힘들어하는데, 제일 소중한 하루하루를 병에 빼앗기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당신들이 이렇게 미친놈년들인걸 알고도 같이 일 한줄 알아?!'

'아이돌은 굳이 될 필요 없어. 우리는 그저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돼.'

'타카가키 카에데라고 합니다. 죄송해요, 어제는 민폐를 끼쳐버려서...'

'카렌 양은 분명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죠. 당신이 만약 저희 961 프로덕션에 들어온다면 어떤 아이돌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쟤잖아,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 교직원 회의에서도 얘기 나왔다며?'

'병 때문에 또래들보다 뒤쳐져서 저렇게 됐다더라. 불쌍하긴 하지만...' 

'예전에 좀 아팠다고 아무거나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카렌 양.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꿈, 다시 가져보지 않겠어요?' 


"아뇨, 이제 괜찮아요. 정말로... 괜찮으니까."

"저기, 손님?"


화들짝 놀라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선에 끝에 서있는 것은 검은 앞치마를 두른 가게의 점원이다.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그래도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정오, 하라주쿠>


두툼한 종이봉투를 껴안은 채로 네일용품 매장을 나온다.

에어컨의 냉기를 벗어나니 구름 한점 없는 여름의 지독한 더위가 다시 나를 맞이한다. 가볍게 현기증이 돈다. 어제에 비해 기온이 올라간 것도 문제지만, 오늘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내 머리카락이 목 주위에 열기를 가둬두고 있는 것 같다. 새삼 귀찮다고 머리를 대충 적당히 빗고 집을 나선 과거의 호죠 카렌이 원망스러워진다.


"나오의 말을 들을걸 그랬나..."


오늘 하루는 기온이 높으니까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나오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며 집을 나서기 직전에 걱정스럽게 내게 일러두었었다. 실제로 나오가 나간 뒤 몇 시간동안은 집안에서 방학숙제를 하거나, TV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등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정오 즈음, 네일용품 몇몇이 거의 다 떨어져가는 것을 알고 점심도 먹을 겸 밖으로 나왔다. 나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기겁했겠지만, '오늘 하루는 아무데도 안 나갔고, 점심을 먹은 뒤에 몸도 움직일 겸 설거지도 다 해놨어'라고 우기면 될 것이다. 나오가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접시와 싱크대에 물을 좀 뿌려놓는다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까.

운이 나쁘게 길에서 마주친다면 별 수 없지만.


"오늘은 냉면을 먹어볼까?"


하라주쿠에서의 볼일은 끝났고, 나는 시부야에 있다는 유명한 냉면집에 가기 위해 시부야 행의 야마노테선 전철에 몸을 싣는다. 시부야까지는 고작 한 정거장의 거리지만, 이런 더위에 시내를 걸어 다녔다간 도중에 열사병으로 실려간다. 하라주쿠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에어컨으로 몸을 식히며 감자튀김을 먹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어쩐지 저녁에 감자튀김을 먹게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괜찮냐고 거듭 물으며, 충견 하치코처럼 걱정해오는 나오의 얼굴이 아직도 머릿 속에 어른거린다.


[346 프로덕션 섬머 아이돌 페스 티켓, 8월 1일부터 예약판매 개시! 고 고! 346프로!!]


지하철에서 내려 길을 건너기 위해 시부야의 교차로로 나오니 타이밍 좋게도 어느 빌딩의 전광판에서 346프로덕션의 광고가 나온다. 기존의 346의 아이돌들과 최근에 인기가 상승중인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아이돌들이 함께 출연하는 행사라나.

교차로의 신호등 신호를 기다리며 화면을 보고 있으니, 아이돌들이 카메라 앞에 한데 모여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인원수의 아이돌을 화면에 전부 담다보니 각각의 얼굴은 흐릿하게 보였지만 ,거의 매일 보는 카에데 씨만큼은 화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카렌 양.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꿈, 다시 가져보지 않겠어요?'


겨우 잊고 있었는데, 또다시 카에데씨가 아침에 했던 말과 오디션 신청서가 떠오른다.


이미 신호는 파란불로 바뀌었다.


'아이돌은 굳이 될 필요 없어. 우리는 그저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돼.'


신호음과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교차로에 발을 딛는다.


'카렌 양은 분명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대체 뭐하는 거지..."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수많은 인파들이 교차로를 가로질러갈 때, 나는 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0: 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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