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New world, New life-1. [왠지 재미있는 일]

댓글: 2 / 조회: 1240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9-25, 2019 20:05에 작성됨.

레이짱이 입사한 지 며칠이 좀 지난 날이었어.
얘기를 들어보니 레이짱의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은 꽤나 상타치를 친다고들 평가하더라.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전의 프로듀서는, 딱히 사고의 유연함이란 게 없었어.
뭔가가 막히면 금방금방 대안책을 찾아내야 하는데 굳이 안 될걸 밀어붙이려고 하더라고! 진짜 답답해 죽겠더라!


근데 레이짱은 달랐어.
뭔가 한 가지가 막히면 바로 다른 방법을 찾아내서 막힘없이 진행시키곤 했지.


예시 하나 들어볼까?


어제 저녁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말이야.
계란후라이를 하는데 노른자가 계속 터지더라고.
두 번 정도 그러다가 계속 안 되니까 결국은, 오므라이스 해먹었어.


냐하아~사고가 진짜 유연하지 않아?
이왕 터진 거 아예 오므라이스를 하다니!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이 정도로 유연한데 어떻게 업무 수준이 상타치를 안 치겠냐고?!



어쨌거나, 난 어떻게 지내냐고?
냐하하~평소랑 같아!
일도 하고, 먹고, 자고, 싸고, 가끔 실종크리 쳐주고.


아, 맞아맞아.
실종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레이짱의 프로듀스 업무 개막을 공포탄으로 이 시키쨩의 실종이 당첨됐단 말씀!
그때 실종하면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들어봐!



「어느 날 문득 사는 게 심심하고 지겨운 기분이 들었어.
딱히 계속 살아가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달까.
지금 하는 아이돌 활동도 왠지 오래 안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실종이나 하기로 했어, 저 멀리로.
지금은 몸만 실종하지만 인생도 실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토진보에 다시 와봤어.
예전에 내가 말했던 것 같아. 여기서 죽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그 마음에 변화는 없어. 여전히 여기서 죽고 싶어.
이 절벽에서 크게 웃으며 머리부터 다이빙한 뒤, 토진보의 끝없는 목구멍에 삼켜져버리고 싶다고.


토진보의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으로 내려와서, 토진보의 바닷물을 작은 물통에 담았어.
과연 죽음을 머금은 바다의 냄새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죽음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네.



토진보를 떠나 아오키가하라 수해와 주카이숲에도 가보았어.
토진보서부터 여기 주카이 숲까지는 꽤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왔어.
걱정은 마, 잘 나갈 수 있으니까.



죽음의 숲답게 입구에서부터 절망의 냄새가 훅 밀려들어왔어.


‘여기서 죽는다면 조용히 죽을 수 있으려나.’


여기서 느껴지는 절망의 냄새를 표현해본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마음 속에 있던, 모든 기억들이 악몽으로 바뀌는 기분이야.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창피해’


같이 후회와 부끄러움만 남고, 곧이어 그것들이 뭉쳐져서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는 절망으로 바뀌어.
그렇게 어떤 식으로든 여기서 죽게 되는 거지.


그래서인걸까. 나도 그런 기억이 계속 떠올라.
어렸을 때 레이짱을 좀 괴롭히기도 했었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도 했었어.
좀 놀라워. 나도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이 시키쨩이 후회와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알다니.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비난의 화살이 날아와.


‘왜 그랬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러지 말았어야지.’
‘애들 얼굴 어떻게 볼 거야?’


이렇게, 정말 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비난의 화살이 계속해서 날아와 꽂혀.


“냐아...진짜로 죽고 싶게 만드네, 여기.”


빈 병을 꺼내 주카이 숲의 허공에 대고 휘저었어.
영혼까지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냄새를 가져가기 위해서.



미로 같은 주카이 숲을 어떻게든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어.


집으로 가면서 생각했어.


‘죽는 순간의 기분은 어떠려나.’


죽기 직전이나, 죽은 후는 별로 궁금하지 않아.
가장 궁금한 건, 마지막 호흡이 끝나고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야.
목이 아플까, 기분이 좋을까, 어떨까.
만약 내 삶의 마지막 실험이 있다면 그건 이거겠네, ‘죽는 순간의 기분 탐구하기.’
실험 보고서에는 못 적을 테니 아쉽겠다. 냐하하~.



집에 도착해 실험대를 잡았어.
토진보의 바닷물과 주카이 숲의 냄새를 섞는 실험을 진행했지.
집 안에 죽음을 머금은 향기가 가득 찼어.
레이짱은 아직 안 왔으니 이 냄새, 죽음의 냄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직 나만의 것이야.


실험 끝에 완성한 이 향수. 이름을 메이카이(冥界)라고 부르기로 했어.
명계의 향, 저승의 냄새. 이건, 완벽해.


만약, 내가 죽을 때가 된다면 이걸 뿌린 채 죽어야지. 사전에 명계 느낌이 나도록.」



라는 일이 있었어.
나흘동안 실종한 채 있다가, 그 다음날에 아무 일 없던 듯이 프로덕션으로 돌아왔다구.


레이짱은 나를 보자 말했어.


“어디 갔다 온 거야?”
“뭐, 여기저기?”
“설마 실종했던 거야?”
“알고 있네?!”
“당연하지! 넌 옛날에도 그랬잖아!”


그걸 기억하네. 그때도 레이짱은 날 찾아다녔지.
근데 이번엔 안 찾아다녔나보넹.


“당연하지. 넌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잖아.”
“돌아올 거라 믿어준 거야?”
“예전에 그랬듯이.”



실종에서 돌아온 날 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어.
청하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레이짱이겠지.


“들어와.”


끼익.


“시키, 안녕.”
“내일 스케줄 잡힌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좀 얘기를 듣고 싶어서.”
“실종한 얘기?”
“맞아. 이번엔 어디 다녀왔어?”


좀 의외였어.
레이짱이 이런 걸 묻다니. 별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토진보랑 주카이 숲 및 아오키가하라 수해, 다녀왔어.”
“내로라하는 자살명소 코스네. 죽을 마음이 생겼어?”
“그런 마음 생긴 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그래...?”
“삶에 재미가 없더라. 지루해.”
“...그래도 난 시키가 안 죽었으면 좋겠는데.”


이 말 또한 의외였어.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건 레이짱이 처음인데.


“만약 죽는다면 어디서?”
“토진보.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왠지 기분 좋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거기 좋지...”


‘기분 좋게’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이 ‘좋다’라는 단어가 내 스스로 좋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처음이야.


“. . .”
“만약 시키가 죽는다면, 말해줘.”
“왜?”
“나도 같이 죽게.”


눈이 번쩍 뜨였어.
아무린 내가 친한 친구이기로서니 죽는 것도 동반자살을 생각한 거야?!
대체 내가 뭔데? 굳이 네 목숨까지 버릴 이유는 없잖아!


“너는 왜?”
“...옛날 기억 나? 내가 널 좋아했던 거.”
“아, 응. 그랬지.”
“지금도 그래.”
“그러냐.”
“그렇다.”
“한때의 어린 마음은 아니었나봐.”
“네가 미국으로 간 이후로도 절대 잊지 않았으니까.”
“어째서 날 잊지 않았던 거야?”
“네가 내 친구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친구니까 잊지 않은 거야?
겉으론 티내지 않았지만 속이 울컥하고 코끝이 찡해졌어.


“만약에 말이지...”


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미국을 가지 않고 너와 같은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과거에 만약은 없지만...만약 시키가 미국이 아니라 나와의 길을 선택했다면...그랬어도 아마 지금 같지 않았으려나.”
“별로 큰 상관은 없다는 건가.”
“그럴지도.”
“. . .”
“. . .”


또 침묵이 흘렀다.


“레이짱.”
“응?”
“일단...고마워.”
“뭐가?”
“내가 미국에 간 시간이 6~7년, 절대 짧지 않은 시간동안 기다려줘서.”
“...응.”
“나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대단해대단해~...그리고, 고마워.”


나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였을 줄은 몰랐어.
내 생에서 이 정도까지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내 옆에 앉아있는 레이짱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서렸고, 결국 난 재빨리 일어나 레이짱을 껴안았다.


“우왁?! 시...시키?!”
“고마워, 마음 안 변해줘서. 그리고 나를 찾아줘서.”
“...기쁘네. 시키에게 이런 말 들을 수 있어서. 나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레이짱을 껴안은 채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져버렸다.
왜냐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친구끼리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레이짱.”
“응, 시키.”
“우린, 앞으로 영원히 친구지?”
“당연한 걸. 앞으로도 우린 친구인 거야.”


기뻐.
레이짱이랑 영원히 친구일 수 있어서.
레이짱이라는 친구가 있으니까, 명계의 길 따윈 엿이나 쳐먹으라고 해야겠는걸.



다음 날 아침이 되었어.
눈떠보니 내 옆에는 레이짱이...없넹.


‘벌써 일 나간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주말, 출근 같은 걸 했을 리가 없지.


거실로 나와 보니 레이짱이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레이짱~”
“아, 좋은 아침, 시키.”



아침을 먹으면서, 저녁에 데이트라도 나가기로 했어.
보통 같으면, 이런 건 아이돌이 제안하고 프로듀서 측에서 거절하고는 해. 스캔들 문제가 터질지도 모르니까.
근데 이번엔 오히려 프로듀서인 레이짱이 제안했어. 그러니까 난 놀랄 수밖에 없잖아.


“아이돌이랑 프로듀서랑 스캔들나면 꽤나 골치 아파질 텐데 괜찮겠어?”
“상관없어. 아이돌과 프로듀서로서가 아니라 친구 사이로서의 데이트니까.”


납득했어.
친구 사이라고 생각한다면 왠지 마음이 편한 것 같거든.
게다가, 머리가 다 크고 난 뒤로는 그런 거 처음 해봐.



고대하던 저녁이 되었다.
나도, 레이짱도 옷을 갖춰입고 시부야 시내거리로 나왔어.


나오는 길목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그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봉고차 한 대.
나는 그 봉고차의 번호가 8897인 걸 보고 식은땀이 좀 났어.


왜냐고?
그 차는 카나데의 차야. 내가, 그리고 립스가 스케줄을 갈 때 타는 차고.


레이짱도 그걸 알았는지 말했어.


“방금 위험할 뻔했네.”
“어쩌면 이미 위험해졌는지도...”


이제 차도 저 멀리 갔겠다, 무심한듯이 레이짱의 손을 잡았다.
반응을 보니 레이짱이 좀 놀란 것 같은데, 뭘 놀라고 그래?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시부야 스크램블이라고 불리는 거대 횡단보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확실히 시부야 3대 마스코트라고 불릴 만해.
프로덕션 창문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실제로 여기 서보니 느낌이 또 다르네.


솔직히 말해, 난 시부야구 사정은 잘 모른다.
그냥 프로덕션이 시부야에 있다는 거랑, 린이 시부야씨라는 것만 알고 있는 정도.
그래서 레이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밖에 할 게 없었어.


그래도 데이트는 나름 재미있었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하치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도큐핸즈에서 미시로 프로와 콜라보한 DIY도 구경했을 뿐 아니라 메이지신궁에도 들어가 봤어.


신궁에서 참배할 때는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는데, 내 소원은 우정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어.
나는 그렇게 빌었는데, 레이짱도 그렇게 빌었는지 모르겠네.


데이트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못해준 건 좀 미안해.
근데 딱히 해줄 얘기가 없어. 뭘 알아야 얘기를 해주든가 하지.
그냥 발 가는대로 다녀온 게 이번 데이트였지 뭐.
그래도,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레이짱과 함께였기에 많이 즐거웠어. 냐하하~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가까웠어.
피곤하기도 하니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자야지.


그러려고 하니 이미 레이짱이 씻고 있어.
할 수 없지 뭐, 가글이라도 할 수밖에.


“고로로로로.....”
“퉤푸엨.”


싱크대에서 가글링을 끝내고 이불 속에 들어가자마자 레이짱이 화장실에서 나왔어.


“자려고? 잘 자, 시키. 내일 봐.”
“그래, 꿈 속에서 봐~”



꿈 속에서 보자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잠을 잔 건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침대에 누워 잠들려고 하니까 오늘 한 데이트가 계속 생각나서 자꾸 설렜어.


“냐아~어떡해~”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천하의 이치노세 시키가, 이렇게 경박해질 수 있다니!
고작 친구 사이인데도 너무 행복하잖아!
이러다가 결혼하게 되면 너무 좋아서 결혼식장에서 죽어버릴지도! 냐하아하아하아~



새벽까지 혼자 너무 좋아서 이불을 뻥뻥 차다가 잠든 뒤,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월요일의 시작이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햇빛과 알람이 꿈나라를 부셔버렸어.


침대에서 나와 거실로 나가니 밥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쪽지.


[시키, 밥 먹어.
오늘은 내가 좀 일찍 출근해야 할 것 같아.
같이 밥 먹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꼭 같이 아침 먹자!]


“. . .”


말없이 쪽지를 내려놓았다.
레이짱이 바쁘다니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갈 거면 미리 말 좀 해주지.
밥과 반찬의 상태를 보니 나간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밥을 먹으면서 스케줄 표나 한번 쓱 봤다.
오늘은 딱히 특별한 건 없으니, 그냥 집에나 있어야지.


하지만 집에만 있기도 너무 심심한데.
프로덕션에 가서 놀까? 오늘 립스 멤버들 스케줄 있으려나?


오늘은 딱히 실종 욕구도 안 생긴다.
갈 곳도 없고, 갈 마음도 없고.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한 뒤, 일단 할 게 없기도 하니 프로덕션으로 향했다.


사무소가 있는 3층에 들어오니, 웬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더라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까 새로운 아이돌 둘이 입사했다고 하더라?
게다가 레이짱의 담당 아이돌들이야.


그 아이돌 둘 중 한명은 이름이 ‘쿠로사키 치토세’라고 했다.
근데 다른 것보다,


“프로듀서와는 계약적인 관계랄까?”


이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음도 같이 뜨였다.


레이짱이랑 계약적인 관계라고 했겠다?
감히 네가? 너 따위가?
너 같은 게, 레이짱을 그딴 식으로?


게다가 같이 들어온 또 다른 애는 치토세의 하인이라고 하는데(이름이 ‘시라유키 치요’라고 한다), 예의 따윈 밥 말아먹고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은 놈이다.
치토세는 차라리, 레이짱을 프로듀서라고 부르기라도 하지 치요는 레이짱을 ‘너’라고 부른다.


너?
너?
너?

‘너’라고?
레이짱을 ‘너’라고?
나도 그렇게 안 부르는데 ‘너’라고?


하.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정말~!
웃기는 년들일세.
삶에 재미가 없었는데, 이제부턴 차츰 즐거운 일이 잔~뜩 생길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썩은 실소를 흘렸다.


재미있는 놀이가 생각났어.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놀아줄게, 잔뜩.


정말, 재미있을 거야.
안 그래, 치토세? 치요?



집에 돌아와 향수 컬렉션을 뒤졌다.


“어디 있지~그거~”
#뒤적뒤적


조금 더 뒤적거리다가 결국 찾아냈다.


“여기 있다~!”


메이카이(冥界), 죽음을 머금은 향수.
이걸로, 치토세&치요 콤비와 재미있게 놀아줘야지!


아주 재미있게 놀아줄 테니, 기대하라고?



‘메이카이’를 들고 다시 사무소에 도착했을 땐, 치토세와 치요는 프로덕션 구경을 막 끝냈을 참이었다.
일단 지금은 건드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시키쨩의 천재적인 두뇌로 봤을 땐, ‘메이카이’를 머지않아 쓰게 될 것 같네. 한 한 시간 안에?



과연 그 둘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 한 가지 트러블을 일으켰다.


“어머나~뺨이 말랑말랑~먹고 싶어~”


치토세가 안즈의 뺨을 콕콕 찔러보고 있었어.


“야야, 그러지 마. 왜 그러는 거야.”


곁에서 지켜보던 치요가 말했다.


“엄청 작군. 이런 것도 아이돌인가.”


. . .
이런 것?
‘이 사람’도 아니고 ‘이런 것’?
저 자식은 지랑 안즈의 경력 차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 오랜만이네, 가스 모드는.
웬만하면 안 쓰고 살고 싶었는데.


왼손을 뻗었다.
손가락에서 가스가 뿜어져 나왔고, 곧 가스가 내 손과 팔뚝 아래까지 감쌌어.


‘웬만하면 안 쓰려고 했는데...’


생각하다가 가스를 해제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저곳엔 아직 안즈도 있고.
그리고 이걸 안 써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저녁 6시가 되기 15분 전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유닛명이 ‘벨벳 로즈’라고 한다.)을 혼꾸멍 내줄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어.
다시는 레이짱을 하인취급 못하게 해주겠단 마음뿐이야.


그러다 좋은 타이밍이 생겨났다.



6시가 딱 되었을 때, 벨벳 로즈는 옥상에 올라와 있었어.
옥상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네.
요시노에게 인정(?)받았을 때도 여기 옥상이었는데.


내가 옥상에 올라오자 벨벳로즈가 뒤를 돌아보았다.


“냐하~안녕안녕~!”
“넌 뭐야?”
“너희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다른 아이돌이랄까♪”
“우리 말고 다른 아이돌이 있어?”
“그게 나야~”


말하며 장난 섞인 웃음을 지었어.


“그래, 네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이치노세 시키야~”
“난 쿠로사키 치토세!”
“시라유키 치요다.”


“그나저나, 너도 참 고생이겠군.”
“뭐가?”
“그놈처럼 무능한 녀석의 프로듀스를 받다니.”


이 말에 순간 열받았다.


그놈?
그놈?
그놈?
무능?
무능?
무능?
그놈?
그놈?
그놈?
무능?
무능?
무능?


니가 뭔데 레이짱을 그따구로 판단해?


“뭐~아직은 영 못미덥지만~”


미친.
치토세 이 썅년이 확인사살을 때렸어.


“무능한 프로듀서라~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않을 리가 없ㅈ. . .컥!”


퍽.


치요의 배때지에 내 발이 꽂혔다.


“네깟게, 프로듀서를 판단해?”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너 같은 게 뭔데.
너 같은 게 뭔데.
너 같은 게 뭔데.


털썩.


치요가 쓰러졌어.


“. . .”
“ㅊ...치요...!”


내가 비웃듯이 말했다.


“너희들도 불쌍하네~하필 그렇게 무능한 놈한테 프로듀싱이 걸리다니. 차라리 셀프 프로듀싱하는 게 너 낫겠네, 안 그래?”
“야...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너희는 뭐 다르니? 내 프로듀서한테 무능이니 뭐니 하는 건 잘한 건가봐?”


그때,


퍽.


치토세의 주먹이 내 배를 때렸다.


“. . .”
“치요의 복수야. 앞뒤 안재고 때리지는 말아야지.”
“. . .”


피식 웃었다.


“웃어?”
“앞뒤 안 가리고 때리면 안 된다며? 동감이야.”
“뭐?‘


내 배를 때린 치토세의 왼쪽 팔을 잡았다.


“뭐야?”


그리고, 내 왼손으로 있는 힘껏 치토세의 뺨을 갈겼어.


짝.


치토세가 두 발자국 물러났다.
사실대로 말할게.
치토세가 나한테 배빵을 갈겼지만 가스화 때문에 전혀 데미지가 없어.


치토세가 잠시 비틀거리더니 곧 제대로 섰고, 쓰러졌던 치요도 어느새 다시 일어나 있었다.


“대체 네놈이 왜 우리한테 폭력을 휘두르는지 모르겠군.”
“몰라서 말해? 내 프로듀서를 모욕했잖아.”


저놈들을 어떻게 후려갈겨야 할까?
가스가스 능력은 가급적이면 쓰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순수 신체능력만으로 싸우는 것도 무리인데.


그냥 혼쭐만 내주려는 목적이 언제부터 싸움질로 바뀐 거지...



생각하다가, 그냥 말로 해결하기로 했어.
지금가지 다 때려놓고 뭔 대화냐 싶겠지만, 서로 좋게좋게 끝내려면 대화가 최고야.
안 돼도 일단 해보기나 하자고,


“솔직히 말해서!”
“뭐야?”
“니들도 싸우는 건 좀 그렇잖아.”
“이제 와서?”
“아이돌들끼리 싸워서 어디에 생채기 났다고 소문나면 우리 셋 다 좋을 거 없다는 건 너네들도 잘 알잖아.”
“먼저 선빵 때려놓고서 뭐가 어째?”
“선빵은 내 프로듀서를 모욕한 네 하인이 때린 거고, 어쨌거나 서로 한 방씩 먹이고 먹었으니 됐잖아!”
“뭐래는겨?!”
“어차피 우린 이제 한 회사, 한 사무소, 한 프로듀서의 프로듀싱을 받을 사이야. 좋든 싫든 앞으로 자주 봐야 해.
그런 우리가 볼 때마다 싸울 수는 없잖아. 싸우면 상처만 남을 텐데 그런 사이로 있을 거야?
그건 말도 안돼. 사이가 좋진 않아도 상처가 남아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우리의 프로듀서는 내 프로듀서야. 그리고 너희들 프로듀서고. 프로듀서는 담당 아이돌들끼리 싸우는 걸 원하지 않아. 너희도 그렇잖아.”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설득에 성공했다.
결국 몇가지 합의를 보게 됐는데,


첫 번째, 만나면 서로 인사라도 할 것.
두 번째, 시키가 있는 앞에서 치요는 프로듀서를 ‘너’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것은 치토세가 지정했다.)
세 번째, 서로에게 친절히 대할 것.


이 세 가지야.



솔직히 말해 지킬 순 있어. 딱히 이상한 조건들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쟤네들이 이걸 지킬 수 있냐는 거야.
치토세야 괜찮은 애라 할 말 없지만 치요는 아니거든.
자기보다 연상인 사람한테도 너라고 부르는 애가 이걸 퍽이나 잘 지키겠다!
만약 치요가 이 조약을 안 지키면, 맹세하는데 당장 원펀치 올강냉이를 시전해주겠어.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니 레이짱은 아직 와있지 않았어. 일이 좀 많은가~.
저녁식사는 아까 프로덕션에서 했으니까 상관없고...


방에 들어와 ‘메이카이’를 향수 컬렉션에 다시 넣어놓았어.
그러면서 중얼거렸지.


“이걸 결국 못썼네...앞으로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별로 기대를 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치요가 이 조약을 잘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말이었어.



밤 9시,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레이짱이 돌아왔어.


“나 왔어.”
“어서 와~”


“아, 그러고 보니, 레이짱.”
“응?”
“오늘, 새로운 애들을 맡게 됐더라?”
“아, 봤어?”
“응. 별로 좋은 것 같진 않은 애 한명이랑, 그나마 나은 애 한명.”
“치요랑 치토세?"
“맞아. 어째 예감이 별로다.”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줘. 다들 좋은 애들이야.”
“그렇게 하려고 해. 그래도 같은 프로듀서 담당이니까.”


확실히 벨벳로즈랑 그런 협약 같은 걸 맺긴 했지.



근데 말이야.
걔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게 평화조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평화조약이 아니라 휴전협정이지. 잠깐 쉬는 거야.
즉, 레이짱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준다면 그 즉시 조약이고 뭐고 다 깬 뒤 혼쭐을 내주겠다 이 말인 거라고!!!


적어도 휴전협정을 맺은 지금은 평화롭게 지내야 해.
가스중독으로 만들든, 때려서 피떡으로 만들든, 그건 걔네가 금기를 건드렸을 때 일이고, 그 전까지는 평화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언젠가 레이짱을 어떤 식으로든 상처 입힌다면, 가만 안 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영원토록 괴롭게 해줄 테니까♪



확실히 벨벳 로즈는 그 이후로 조약을 잘 지켜줬다.
특히 치요. 작십삼일로 끝날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의외로 잘 지키고 있어.
아무래도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성질머리 더러운 나쁜 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약속도 잘 지키고 착실한 애였어.
언제까지나 그런다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니까, 이런 때일수록 내가 더 레이짱에게 달라붙어야겠네~.
그렇게 하지 말라는 조항은 없었으니 상관없잖아?
일적인 계약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소꿉친구의 진정한 우정을 보여주지.


냐하~앞으로 정말 재미있겠는데!
------------------------------------------------------------------------------------------------

대망의 1편이 완성되었어요.

2편도, @피스 시리즈도, 또 다른 아이디어들도 재미있게 써오겠습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