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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가 아냐를 피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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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5, 2019 22:23에 작성됨.

 “있잖아, 미오.”

 “왜? 시부린.”

 “요즘 아냐랑 무슨 일 있어?”

 “엥?”

 프로덕션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시부야 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혼다 미오는 입을 헤, 벌렸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 최대한 침착하게 미오는 되물었다. 린은 별 거 아닌 듯이 말을 이었다. 그냥 물어보는 건데.

 “요새 묘하게 거리감이 있어 보여서.”

 “거리감이라니. 어떤 게?”

 “전에는 남들처럼 대했는데 요즘은 멀리 하는 것 같다고 할까. 눈을 안 마주치는 거나, 어쩌다 지나쳐도 먼저 인사도 안 하고. 미오는 보통 저쪽에서 아는 사람이 지나가도 손 흔들면서 인사하잖아.”

 린의 손가락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이를 따라 미오의 시선이 저 멀리를 바라봤다. 내가 그랬던가……. 최근의 행동을 돌이켜봤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랬던 거 같기도.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느꼈다면 빼도 박도 못 하려나. 그것도 함께 유닛을 하며 오래 활동해온 린이 그렇다고 하니.

 우웅. 미오는 입술을 말았다. 하지만, 그게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닌데, 설마 아냐도 그렇게 느낄까, 만약 그렇다면 어쩌지.

 미오. 고민하는 중에 린이 뺨을 쿡, 찔렀다.

 “어떻게 생각해? 아냐를 피한 거야? 왜?”

 “아니! 미오쨩은 절대 친구를 상대로 피하거나 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줄까!”

 “증거까진 됐는데. 미오가 아니라고 한다면.”

 “기다려 봐. 우리가 무려 별도 같이 보고, 새해 참배도 같이 하러 가고, 아무튼 엄청 친한 사이라고!”

 미오는 엉겨 붙어서 아나스타샤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자랑했지만 린은 그것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너무 가까이 달라붙어 움직이기 힘든데도 평소의 미오려니, 하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미오는 끝까지 아나스타샤와의 친분을 주장했다. 휴게실문을 열어 혼자 있던 아나스타샤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랬다.

 “아…….”

 “미오?”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둘 사이에서 눈을 깜빡이던 린이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아냐. 아나스타샤가 반갑게 맞았다. Доброе утро(좋은 아침이에요), 린. 그러자 미오가 이때다 싶어 아냐에게 달려들었다.

 “아냐, 내 말 좀 들어봐!”

 “아, 무슨 일인가요? 미오?”

 “시부린이 우리 사이를 질투해서 자꾸 내가 아냐를 피한다고 그러잖아.”

 “질투한 적은 없는데.”

 아랑곳 않고 미오는 아나스타샤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과장, 혹은 과시. 린이 보기에 그래보였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이 혹 괜한 말을 한 건가 싶어져 린은 이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과장된 태도야 미오게 자주 보이는 행동이기도 하고, 그걸 감안해도 둘의 사이가 나빠 보이진 않았다.

 “알았어. 내가 미안해.”

 “후후. 드디어 인정하는 군, 시부린. 하지만 이미 늦었어. 이제 미오쨩이 먼저 시부린에게 안기는 일 따위 없을 테니까.”

 “뉘앙스도 이상하고 내용도 너무 아저씨 같아. 그보다 아냐가 불편해하니까 떨어져.”

 “Нет(아뇨). 아냐는 괜찮아요. 이러고 있어도.”

 “것 봐라! 누구랑 달리 아냐는 미오쨩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미오, 삐졌어?”

 “질투 나서 삐진 것은 시부린이 아니었던가?”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레슨 가야 되잖아.”

 세 사람은 휴게실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레슨 시간까지 앞으로 10분. 여유롭진 않지만 촉박하지도 않았다.

 “괜찮아. 여기서 레슨실까지 별로 멀지도 않고.”

 “그럼 난 먼저 가 있을 게. 우즈키가 기다릴 거야.”

 “오호. 두 사람이서 뜨거운 시간이라도 보내려는 건가요?”

 “누구누구처럼 말하지 마. 늦지 않게만 오고.”

 린이 휴게실을 떠났다. 문이 굳게 닫히자 다시 정적이 시작됐다. 미오는 슬쩍 아나스타샤에게서 떨어졌다. 역시 너무 대담했나. 뺨을 긁으며 아나스타샤의 눈치를 살폈다. 은빛머리의 소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란 눈으로 미오를 응시했다. 부담스러울 만큼 맑고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 중 하나를 소녀가 풀어냈다.

 “린이 뭐라고 말했나요?”

 “……내가 요새 아냐를 피하는 거 같다고. 혹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더라고.”

 “어째서 미오는 아냐를 피했나요?”

 “피하다니. 그런 게 아니라…….”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나스타샤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추궁이 아닌 자연스러운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벼운 행동만으로도 미오는 강하게 압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소녀와 함께 하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오가 스스로를 추궁하게 만든다.

 고개를 돌려 피해보려고 해도 눈빛은 따라온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은 조여 온다. 견디다 못해 미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미안해, 아냐.

 “피해버렸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들킬까봐. 사귀는 게…….”

 줄어드는 목소리와 빨개진 얼굴이 심정을 요약했다. 겨우 2주 정도 된 일이다. 그 전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한 것도 그 마음에 확신을 가진 것도 처음이었기에 미오에게 ‘지금’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나스타샤도 같은 마음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관점. 아이돌이라는 일을 하면서 연애를 한다는 건 절대 공공연히 드러낼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같은 여자끼리. 당장 주변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예측해 봐도 수만 가지 부정적 반응들이 떠오르는데 예측되지 않는 타인들까지 생각하면 감당키 어려워진다.

 경멸 받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하면 숨이 턱 끝까지 조여 왔다. 두렵다. 예전 어느 아이돌은 몰래 남자친구를 만든 사실이 들키자 팬들에게 질책 당한 끝에 방송에서 공개적인 사과까지 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어쩌면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였다.

 그래서 피했다. 둘 만이 남는 시간에는 솔직해지되 그 외에는 철저히 관계를 숨기기로 했다. 거기까진 아나스타샤도 동의했지만 너무 의식한 게 문제였다.

 “미안, 아냐. 나만 힘든 게 아닌데.”

 고개를 푹 숙였다. 후회가 밀려왔다. 다른 것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이 괴로웠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나봐…….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그러자 아나스타샤가 미오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고 정면에서 눈을 마주쳤다. 티끌 하나 없는 그 눈동자는 몇 번을 봐도 아름다웠다.

 “Я ревную. 질투 났어요.”

 “어?”

 “린은 안 그렇다고 했지만, 아냐는 질투가 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미오와 함께 하는데, 아냐만 남들 앞에서 피하는 게.”

 “그건 정말로 미안…….”

 “исповедь. 고백한 뒤로 미오의 옆은 아냐의 것. 그렇지만, 오히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버렸죠. 이상하게도 미오와 함께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그 시간은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담담하고 솔직하게 아나스타샤는 마음을 전해왔다. 그래도 아냐, 미오 마음 이해해요.

 “미움 받는 거, 너무 아프니까.”

 말이 심장을 찔렀다. 이 소녀는 안다. 외로움을. 시선의 압박을. 그로부터 받는 고통을. 때문에 미오의 불안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평소처럼 서로를 대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파도, 많이 아프더라도, 아냐에겐 미오가 있으니까.”

 순간 울컥, 하고 무언가가 미오의 위로 올라왔다. 항상 이래왔다. 아나스타샤와 함께 있으면 자주 겪는 기분이 있었다. 서툰 언어들이 심장을 파헤치고 마음을 뒤흔든다. 강하게, 진심으로.

 참을 수 없이 흐르려던 눈물을 아나스타샤가 살짝 닦아내주었다. 그리고 양손가락으로 미오의 입꼬리를 올려준다.

 “Улыбка(미소). 미오는 웃는 모습이 좋아요.”

 자신도 살며시 웃으며 말해왔다.

 편안하다. 이 순간이 너무 편안해서 저도 모르게 안주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미오는 강하게 아나스타샤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아냐가 나를 사랑해줘서. 나는 너무 기뻐.”

 “Спасибо(고마워요). 아냐도 미오에게 고마워요.”

 아나스타샤도 미오를 끌어안았다.

 “미오니움, 100% 충전입니다.”

 “오오! 그럼 이쪽도! 신물질 아나스타슘 200% 충전 완료라고!”

 “후후후. 미오의 생각, 정말로 재밌어요.”

 레슨까지 3분. 이젠 가봐야 했다. 뛰어가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려나. 계산을 마친 미오는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서기 전에 살짝 돌아봤다. 아나스타샤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밝은 미소로 화답하고 복도를 달렸다.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단편으로 쓴 미오아냐 입니다.

장편으로 쓸까하다가 단편을 여러 개 이어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휴의 마지막을 좋아하는 이야기로 장식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저도 미오니움, 아나스타슘 충전 받고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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