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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단편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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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9, 2019 01:21에 작성됨.

1.

일어났을 때, P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있었다.


왜 그곳에 있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눈을 떴을 때 P는 그곳에 있었다.


잠시 멍하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있었더니, 갑자기 천장 근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오래된 스피커였을까, 잡음이 섞인 이상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나아갈 길은 인생의 길이며, 인간의 업보를 걷는 길.

선택과 고민과 결단을 요구한다.

걷는 길은 많은 길 중 하나, 결코 모순 위를 걷지 않도록."


열리는 소리에 그제서야 눈치챘지만, P의 등 뒤에는 문이 있었다.


옆에는 붉고 눅눅한 문자로 '전진'이라고 적혀있었다.


문 뒤는 역시 흰 방이었다.

정면의 벽에 다음 방으로 통하는 듯한 닫힌 문이 있었다.

오른쪽에는 TV가 있었고, 그 화면에 많은 사람들이 비쳤다.

왼쪽에는 침낭이 있었는데, 무엇인가가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종이가 방의 중앙에 놓여있었다.


"3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오른쪽의 TV를 부수는 것.

둘째, 왼쪽의 사람을 죽이는 것.

셋째, 당신이 죽는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당신과 왼쪽의 사람은 살지만, 대신 TV에 보이는 사람들은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대신 왼쪽 사람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사람들은 살아남습니다 축하해요.
단, 당신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엉망이다. 어떤 것도 절망적이잖아 말도 안 돼.


그러나 P는 그 상황을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공포로 덜덜 떨었다.


그 정도로 그곳의 분위기는 묘했고, 판단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P는 생각했다.


어딘가의 낯선 수많은 생명인가, 바로 옆에 보이는 하나의 생명인가,
또는 가장 가깝고 잘 알고 있는 이 생명인가.


나아가지 않으면 분명 죽을 것이다.


그것은 "세 번째"의 선택이 될까, 싫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의 생명인가, 여러 생명인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침낭 옆에는 큼지막한 도끼가 있었다.


P는 조용히 도끼를 손에 들고, 천천히 치켜올려 움직이지 않는
고구마 같은 침낭을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둔탁한 소리가, 손의 감각이, 전해진다.


문이 열리는 기색은 없다.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두른다.


콰직.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성이, 죄책감을 마비시킨다.


다시 도끼를 치켜들었을 때, 찰칵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다음 방에 들어서니 오른쪽에는 여객선 모형이, 왼편에는 마찬가지로 침낭이 있었다.


바닥에는 역시 종이가 놓여져 있고,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3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오른쪽의 여객선을 부수는 것.


둘째, 왼쪽의 침낭에 불을 붙이는 것.


셋째, 당신이 죽는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당신과 왼쪽의 사람은 살지만, 대신 여객선의 승객은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대신 왼쪽 사람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사람들은 살아남습니다. 축하해요.


단, 당신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여객선은 단순한 모형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걸 부순다고 사람이 죽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P는 그때 그 종이에 적힌 것은 분명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이유 같은 건 없이,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P는 침낭 옆의 등유를 빌 때까지 뿌리고, 준비되어 있던 성냥을 켜 침낭에 던졌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침낭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다.


P는 여객선의 앞에 서서 모형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물쇠가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시간 감각 따위는 없었지만, 사람이 죽는 시간이니까 아마 2분 정도일 것이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다음 문이 열렸다.


왼쪽이 어떤 상태인지는 확인하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 않은 P였다.


다음 방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오른쪽에 지구본이 있었고, 왼편에는 또 침낭이 있었다.


P는 빠르게 다가가 종이를 들고 읽었다.



"3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오른쪽의 지구본을 부수는 것.


둘째, 왼쪽의 침낭을 쏘는 것.


셋째, 당신이 죽는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당신과 왼쪽의 사람은 살지만, 대신 세계 어딘가에 핵이 떨어집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대신 왼쪽 사람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사람들은 살아남습니다. 축하해요.


단, 당신의 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생각이나 감정은 이미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다.


P는 거의 기계적으로 침낭 옆의 권총을 쥐고 공이치기를 당긴 뒤 곧바로 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탕, 하고 메마른 소리가 났다. 탕, 탕, 탕, 탕, 탕.


리볼버는 6번의 격발로 전부 비었다.


처음 다뤄본 권총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간단했다.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몇 발째에 침낭 안의 사람이 죽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무심코 P는 "엇"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여기가 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조금 안도했다.


겨우 도달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러자, 다시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질문.

3명의 인간과 그들을 제외한 전 세계의 인간. 그리고, 너.

죽인다면, 무엇을 고르는가."


P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가리켰다.


그렇게 하자 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한다.


너는 일관성있게 길을 선택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누군가의 행복 뒤에는 누군가의 불행이 있고, 누군가의 삶을 위해 누군가의 죽음이 있다.


하나의 생명은 지구보다 중하지 않다.


너는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생명의 무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체감해 주기 바란다.


출구는 열렸다.


축하한다.


축하한다."


P는 멍하니 그 소리를 듣고 안심한 듯한, 허탈한 듯한 감정을 느꼈다.


어찌 됐든 전신에서 단번에 힘이 빠지고, 비틀비틀거리며 마지막 문을 열었다.


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장소, 눈을 가리고 앞으로 걸어가면, 다리에 퍽 하고 무엇인가가 부딪혔다.

세 개의 영정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의 영정이.


2.


통나무를 실은 트럭이 우리가 탄 세단으로 돌진해 옴과 동시에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빙판길이라니. 운전을 나와서는 안 됐는데.

잠시 뒤 기대했던 충격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이 멈춰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나나 씨, 그녀는 팔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오루, 밝은 아이였고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띤 채였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둘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앞쪽을 바라봤다.

어느샌가 회색 머리의 십 대 소녀가 조수석에 나타나 있었다.

"오늘 운이 안 좋은 모양이네요."

"그럴지도.." 나는 초조하게 웃었다. "넌 아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하나 있어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뒷좌석을 가리켰다. "나는 저 중 한 명만 데려갈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야?"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 나나는 살아요. 오른쪽은 카오루."

어느 쪽이든 기적적인 생환, 상처 하나 없고, 천수를 누릴 거예요. 다른 쪽은..."

"그러면 나는?" 나는 침을 삼켰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당신은 저와 같이 가게 될 거예요 어느 쪽이든."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앞을 돌아보고 주먹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핸들을 꽉 쥐었다.

"준비됐나요?" 회색 머리의 소녀가 물었다.

"아니."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미안해요, 이제 선택의 시간이에요."

시간이 돌아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핸들 방향을 빠르게


3.


난 침대에 누워 있었어. 잠들기 직전이었지.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불빛이 내 닫혀있는 눈꺼풀 위로 비췄어.

난 내 충전기에서 불빛이 나오는지 확인하려고 눈을 떴어.

하.. 저 불빛은 거슬렸어.

왜냐하면 눈을 감고 있을 때도 불빛이 여전히 보였거든.

난 일어나서 뭔가 저 불빛을 덮을 걸 찾기로 결심했어.

나한테 더 이상 비추지 않게 하려고 말이야.

난 주변에 있는 가까운 책을 집어가지고 빨간 불빛 위로 책을 옮겼어.

불빛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순간, 난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하는 걸 들었어.


"하지 말아 줄래요? 어둠 속에서 당신을 볼 수 없잖아요."


4.


"프로듀서! 당신이 움직이고 있지!"

"토모, 진짜 내가 한 게 아니래도!"


난 항상 콧쿠리상 같은 것은 안 믿어 왔었어.

토모는 철석같이 믿지만 말이야.

토모는 항상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든지 이번 달 운세같은 거에 완전 꼴딱 빠져있거든.

물론 난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야.

그날 밤 전까지는.


그날 밤, 토모와 함께 해온 하트 워머 멤버들이 놀러 왔었어.

근데 같은 멤버끼리 하는 게 고작 콧쿠리상이라고?


토모는 내가 눈을 가리고 하길 바랐어.

아무래도 내가 움직였다고 확신했던 것 같더라고.

그래서 뭐 눈 가리고 하기로 했지.

난 아무것도 숨 길게 없다고.


"제 손가락은 몇 개 일까요 프로듀서?"

세츠나가 물었어.


장난해?


"전혀 모르겠는데."


"좋아! 얼른 시작하자."

토모가 말했어.


우린 여러 가지 질문을 했어.

그리고 짧고 간단한 여러 대답을 들었지.

우린 보아하니 50년 전에 이곳에 납치돼서 살해당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


"어휴 이거 소름 돋는다.."

토모가 말했어.

"나 그러고 보니까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이곳에서 칼에 찔려서 죽었다고 했었어.."


"거짓말 마." 내가 말했지.


"아 진짜래도! 나 그 아이를 본 적 있다니까 프로듀서.
며칠 전 밤에 여자애가 복도를 막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봤다고!


"그건 좀 무섭다.." 우미가 말했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살아!"


"어쩔 수 없잖아! 난 이 집이 좋은 걸."

토모는 아주 당당히 말했어.


"어.. 하던가 마저 할까?"

조금 짜증 난 목소리로 세츠나가 물어봤어.


우리는 뭐 "너 여기 있니", "너 착하니 나쁘니" 이런 것들을 마저 물어봤어.

근데 마지막 질문은 우리 모두를 완전 소름 돋게 했어.


"넌 우리한테서 뭘 원하니?"

우미가 물었어.


그러자 긴 대답이 나타났어.


내-등-에-서.... 칼-을.....빼-내-줘.


난 재빨리 안대를 벗었어.

토모는 공포에 차 비명을 질렀고 세츠나와 우미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했어.


"이런 맙소사! 이, 이.. 이건 아, 악령이 틀림없어!! 없애버려야 돼!"


"하지만 이거 하자고 한 건 토모, 바로 너잖아." 내가 말했어.


"아 됐어," 토모는 소리를 내질렀어.

"얼른 여기서 이걸 치워!"


그래서 난 그랬지.

어... 토모가 콧쿠리상 종이를 조각 내버린 후에 말이야.

난 그 종이들을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우린 방에 가서 잤어.


다음 날, 토모의 더한 비명에 깼어.


"프로듀서!! 여기 악령이 있어!!!"


난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어.

"뭔 얘기를 하는 거야?"


토모는 내 팔을 잡고 현관으로 날 데려갔어.

"봐봐!"


그리고 거기엔 있었어.

콧쿠리상 종이가 말이야.

현관 앞에 다시 맞춰진 상태로 말이지.


토모는 팔을 공중에 엄청나게 흔들어댔어.

"난 여기서 더 이상 못 살아!! 지금 사무소에 전화해서 우리가 딴 집 찾을 때까지 거기서 살 거야!"


그래서 우린 이사했어.

뭐 결과적으로 딴 집은 찾았어.

방도 하나 더 있고 내 물건들을 넣을 창고가 딸린 집으로 말이야.

훨씬 낫네.


그 일이 지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뭐..

아직까지 안대가 다 비쳐 보였던가.. 콧쿠리상 종이를 다 맞춰서 현관에 다시 가져다 놨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어.


그 집은 좀.. 별로였거든.



계절상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슬슬 시원해지고 있고.

아마 다음 괴담은 내년 여름에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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