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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모리 아이코F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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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1, 2019 03:12에 작성됨.

노래를 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되었다고? 거짓말치지 마. 아이돌의 본질은 그런것 따위가 아니니까. 

아이코는 어느 날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너무나도 컸고 점점 갈수록 커져만 갔기에 어느새 그 생각에 아이코는 잡혀먹히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의 뱃속에서 살아가던 아이코는 점점 마음을 굳혔다. 아이코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어. 모두들 아이코를 좋아했었어.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말했다. 비밀인데 사실은 000 군이 아이코를 좋아하고 있어. 둘이 사귀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 같은 반의 친구가말했다. 넌 정말 좋은 애야. 전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키스하려던걸 막았다. 그 순간 운명이란걸 느껴버렸으니. 그야, 아이돌은 첫키스는 하지 않은 상태여야하잖아. 아이코는 평소와 같이 느긋한 눈웃음으로 능숙히 그를 밀어냈다.그는 며칠 후 솔로가 되었고, 그녀는 아이돌이 되기를 자처했다. 아이코는 아이돌의 본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자신했다. 아이코는 팬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저, 팬분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팬 한분한분을 미소짓게 만드는 그런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그 진심이 담긴 미소는 어느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프로듀서는 좋은 사람이었고, 목적이 저급한 셀카회에 온 팬들은 의외로 신사적이었다. 그들은 아이코의 마법같은 몇마디에 걸려 충신이 되었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랬었다. 동료들과도 의견차이가 있었을 뿐 좋은 친구로서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코는 더 이상 아이돌의 본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평생 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다는것은 미쳐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쌍방향이 되어야한다. 밸런스가 맞춰지지 않으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정신병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코의 전 남자친구라 불리는 행운아는 아이코에게 조금은 미쳐있었다. 당당히 좋아할 수 있었기에 표현했다. 손을 만지고,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고, 옷 아래에 손을 넣....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싶어했고 - 무엇보다 그 관계가 지속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던 입장이었다. 아이코가 생각만큼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면 화를 낼수도 있었다. 정도를 넘은 사랑이란 그랬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불어났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정도를 넘어 미쳐버린다면, 그게 '옷 아래에 손을 넣고 싶은' 감정과 다른 개념의 사랑이더라도, 한 사람은 그것을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미쳐버린 사람들을 아이코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곡을 듣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들로만 아이코를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양쪽 다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야....

아이코는 번민했다. 


"그래서...."

총선거가 끝나고 한달 정도 되지 않은 때, 그녀는 프로듀서와 오프 기념으로 데이트를 했었다. 그 전날에는 오랜만에 편지를 읽었다. 아이코의 편지 상자는 무척이나 큰 금고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는 아이코 어머니의 생신으로, 원래부터 가족끼리 쓰던 비밀번호였다. 그 내부는 무척이나 잘 정리되어있었다. 프로듀서는 틈이 날 때마다 편지 분류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글씨체로, 주소로, 내용으로, 다 따져보아 같은 사람이라고 판단이 나면 모아두었다. 종종 미오 등 다른 아이돌이 재미있어보인다며 합세하려고 하면 프로듀서는 완고히 거부했다. 빈틈 없는 자신이 하지 않으면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면 아이코는 프로듀서의 분류대로 같은 사람이 쓴 편지를 읽기도 하고 왔다갔다하며 읽기도 하는 것이다. 그 날은 같은 사람의 편지를 읽었다. 이미 읽은 편지였지만 같은 사람이 읽었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또 느낌이 달랐다. 더군다나 그 편지 모음은 아이코의 번민에 완벽히 들어맞는 것이였다. 마치 아이코가 그 편지의 글쓴이를 망쳐뒀다고도 볼 수 있을 만한, 그런 특종이었다.

"제.... 팬이신거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코는 그 편지를 마음에 담아뒀다. 그리고 다음 날 프로듀서에게 그것에 대해털어놓은 것이다. 이미 스토킹을 당하는 것 같다는 심리적 압박도 털어놓았지만, 솔직하고도 영리하게 원래 말하고 싶었던 것도 잘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네. 저, 정말... 좋아합니다."

"후훗, 감사합니다."

그녀는 글쓴이를 만났다.

***

그 날은 집에 오자마자 쓰러졌다.

이제 일어났는데 얼굴은 지금까지 화끈거린다. 차라리 날치였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도 팔딱팔딱 뛰기라도 했을텐데, 난 쓰레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일 뿐이라 꼼짝 말고 이불을 덮어쓰고 있는법밖에 몰랐다. 안 돼. 진정해야돼. 여기서 날뛰었다간 저 빌어먹을 굿즈들 다 개박살난다. 하 씨. 심장 때리고 싶다. 아직도 숨을 못쉬겠어.

아이코를 만나다니.....

좋아. 침착하게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그게 회사에서 기획하는 이벤트의 일환이란거지? 팬과 아이돌과 소통해서 새로운 오타쿠 컨텐츠를 만드는거. 우리 아이코는 거기서 참여해보겠다고 했고. 그리고 공식 팬카페에서 추첨해서 나를 뽑았다...라는건... .....운이 정말 억세게 좋았구나.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는게 좋겠지.

좋아. 좋아...

.....뭐가 좋냐. 아무런 생각이 안 나. 아이코를 또 볼수 있는건 좋지만...이렇게 되서야 바보같은 모습만보이고 말겠지.... 안 돼. 이러면 안 돼. 첫번째 찍었던 직캠부터 복습하자. 마음을 식혀야 해.

***

그는 자신을 F라고 소개했다. 아이코는 그게 팬카페 이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몰랐지만 예의상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F는 그게 FAN의 약자라고 했다. PRODUCER를 P라고 하는것처럼. 아이코는 재밌다고 웃었다. 

"말 놓으셔도 돼요. 악수회나 하이터치회에서는 늘 반말 하잖아요?"

"그....래도 되는거야?"

"네. 그리고 편하게 아이코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그쪽이 더 편하니까요."

"그렇다면... 아, 아이코."

"네!"

"싸, 싸, 싸인 한장만... 부탁할게...."

아이코는 박장대소했다. F는 안절부절 못했지만 아이코는 단순히 재밌어한 것 뿐이었다. 그 편지로 봐서는 온갖 오프니 다 쫓아갔으니 싸인 정도야 넘쳐날텐데, 그래도 또 싸인이 갖고 싶다니. 참으로 팬심이란 신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쾌히 펜을 든 것은 물론이었다.

"....저, 사랑하시나요?"

"어? 다, 당연히."

"그럼 저도 사랑한다고 써드릴게요."

아이코 딴에는 긴장을 푼다고 하는 말이었지만 그게 F한테 긴장을 푸는 말일리가 없었다. F는 말을 더듬는게 더욱 심해졌다. 살짝 웃기만 해도 심장이 쿵 떨어질텐데 사랑한다는건 무슨 망발인가. 아이코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원망스러운 존재였다.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한 인간으로서는. 그래도 역시 아이코는 느긋나긋의 대명사격인 소녀였다. 한 10분정도도 지나지 않아서 F는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고,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는 롤러코스터보다는 관람차 같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과도 같이, F는 아이코가 좋아할만한 취향에 대해얘기를 꺼내어 지나치게 F에 대해 파고들지 않도록 방어했다. 다행히 아이코는 그 이야기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취향인 것에 이야기 나누는 것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영락없는 그 나이대의 순수하고 순진한 소녀였다. 그래서 F도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네가 좋아하는건 나도 좋아."

"후후, 정말로 다 아시네요. 혹시.... 밀크티도 좋아하세요?"

"'산책 카메라'의 가사 속에 있는 그 밀크티 말하는거야?"

"아, 맞아요! 밀크티를 마실 때는 늘 그 노래를 생각하거든요. 우와, 이건 인터뷰 때도 말 안 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 노래 때문에 처음으로 밀크티를 마셔봤거든.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 항상 밀크티 가게에 들러서..."

1년 전의 얘기다. 지금 F는 산책 같은건 가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이런 사생활에 대해 얘기할 때면 F는 조금 움츠려든다. 아이코에게 자신이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는않다. 

"산책, 자주 하세요?"

"......그게, 자주는 안 해."

"네에."

제발, 그냥 바쁜가보다 하고 넘어가줘. F는 빌었다.

아이코는 이미 편지를 봤다.

전세를 낸 카페 안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공기가 변화하려는 듯 했다.

"F씨는.... 저를 정말로 좋아하시는거죠?"

"응."

"저는 F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응. 알고 있어. 인터뷰에서도 콘서트에서도 매일 그렇게 말하니까. 아이코의 캐치프레이즈잖아."

"그건 그런데...... 혹시... 그래서 진지해보이지 않는건 아니죠?"

"그, 그럴리가! 절대 그렇다고 생각 안 해!"

"휴... 그럼 다행이다. ......F씨, 산책할 때 행복하세요?"

"...응. 행복해. 아이코의 노래를 들으니까."

"그럼, 산책말고 다른 취미를 할 때는요?"

"당연히 행복하지."

F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쳤다.

"그럼.. 지금 저를 보고 있는건... 어때요?"

"당연히...."

F는 입을 다물었다. 아이코의 두 눈을 보자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잠깐, 거짓말? 왜 그게 거짓말이지? 난 아이코를 사랑하는데?

"......."

그렇구나. 나는 거짓으로밖에 네 앞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구나. 진실되게 네 앞에 있었다면 난 행복했을거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너를 사랑할수 있었을거야. 그런데 지금의 난, 미칠듯이 초조해. 내가 들킬까봐.

"혼자 있을 때는 어때요?"

"........"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나... 친구가 없어."

"...아, 아까는 친구랑 당구장 같은곳도 즐겨 가셨다고..."

"이제는 다 연락 끊었어. 내가 마음속으론 친구들이라고 생각해도 걔네한테 난 그냥 연락두절된 인간일 뿐이야. 그래도...." F는 아이코의 원래 질문을 생각했다. 행복하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행복했었...."

삐. 삐. 타이머다. 관람차의 운행 시간이 다 되었다. F와 아이코는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둘 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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