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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프로젝트 크로네 [Prologue:나오, 카렌- 재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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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8, 2019 00:20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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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무언가 덜 된 느낌이었습니다. 일은 제대로 풀린 것 같았지만, 나오 양과 카렌 양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무대는 이게 아니었으니까요.

어쩌면 무언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는 나오 양에게 받은 키보드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습니다. 나오 양은 간단한 조작으로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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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4일 오후 8시 45분, 구 346 프로덕션 캐슬 시어터 1번 탈의실>

 

“시시해.”

“뭐가?”

“나오가. 아까 그렇게 자신 없어 했으면서, 생각보다 틀린 것도 없고,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그건 보통 칭찬이잖아."

"어쨌든 시시하니까 책임지고 문 열어줘."

"네, 네..."


적당히 대답하며 나는 열쇠를 끼워 넣어 잠겨있는 탈의실의 문을 열었다.

곧바로 뒤따라 들어온 카렌과 함께, 우리는 곧바로 화장대 위에 올려진 초콜릿 바구니로 달려가 동전만 한 크기의 초콜릿을 하나씩 집어, 마치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동시에 입에 털어 넣었다.

포장지에 그 흔한 상표도 없어서, 웬디 씨가 자주 우유에 녹여 먹는다는 것 외에는 무슨 초콜릿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맛은 우유에 타 먹는 게 아까울 정도로 환상적. 처음 먹어보는 카렌의 입맛에도 맞는 듯, 감자튀김을 먹을 때나 나타나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게 초콜릿 한 조각으로 1~2분 정도의 달콤한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카렌의 안색을 힐끗거렸다.

초콜릿을 끝까지 녹여 먹는 타입인 걸까? 카렌은 아직도 행복한 표정으로 초콜릿을 입에 물고 <Star!!>의 후렴 부분을 흥얼거리고 있다.


아까도 그렇고 저렇게나 좋아하면서.


카렌으로서는 드물게 무방비한 그 모습에 난데없이 그녀를 골탕 먹이고 싶어졌다. 그동안 당한 것도 있으니까 나도 가끔은 되돌려 줘야겠지.

나는 자신이 입은 치마를 몇 번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의상의 '그 부분'을 찾았다.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옷감, 그 아래부터 발목까지 이어지는 반투명하고 검붉은 천을 일부러 소리가 나게끔 힘을 줘서 뜯어냈다.


"?!"


투두둑 하고 단추가 떨어지는 소리에 한번 놀라고, 치마에서 떨어져 나간 채 내의 손에 들려있는 천에 두 번 놀라는 카렌.

별거 아닌 장난이지만 그에 비해 카렌의 반응은 꽤 만족스럽다.


"놀랐지!"


하면서, 나는 붉은 천의 맨 윗부분에 박혀있는 여러 개의 똑딱이 단추를 보여주었다.


"사실 이건 탈착형이거든."

"...깜짝 놀랐잖아!"

"아이돌 의상의 치마는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으니까. 웬디 씨, 가 아니라 사장님이 그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나 봐."


그 말에 카렌은 아니꼽다는 듯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웬디란 사람은 나오한테 춤은 이상하게 가르쳐놓고, 그런 부분에선 철저하구나."

"...아직도 쌓인 게 남아있어?"

"처음에는 정말로 폭발할 뻔했어. 그건 그렇고 지퍼 내려줄 테니까 뒤로 좀 돌아줄래?"


...역시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겠지.


폭발할 뻔했다는 카렌의 말에 말문이 막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을 어깨 앞으로 넘기고 등을 카렌에게 내보였다. 카렌은 한 손으로 지퍼를,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등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지퍼를 내려갔다.

옷에 짓눌려있었던 가슴이 풀려 답답한 느낌이 사라졌지만, 머릿속은 뭔가 해야 할 일을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에 아직 불편했다.


"이제 여기 볼 일은 다 끝났지?"


도중에 지퍼가 걸린 듯, 안간힘을 쓰는 카렌에게 물으니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연습은 할 만큼 했으니까. 그리고 나오에겐 아직 말 안 했는데, 나랑 카에데 씨는 아직 저녁도 안 먹었어.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야."

"아까 카에데 언니가 빨리 돌아와 달라고 한 게 그것 때문이었구나."

"나오는 저녁 먹었어?"

"제법 든든하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쉴 새 없이 움직이니까 다시 배가 고파졌어."

"그러면 빨리 정리하고 같이 먹자. 자, 서비스로 스커트의 벨트도 풀어드렸답니다."

"고마워."


속옷 바람으로 오래 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카렌으로부터 건네받은 아이돌 의상을 들고 재빨리 탈의실 로커의 문을 열었다.

의상을 정리하고 나의 옷가지를 꺼내다가 로커에 걸린 거울을 보니, 카렌은 팔짱을 낀 채로 내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있잖아."

"응?"

"어쩌다가 서로 흐지부지 넘어간 건데 말이야."

"...뭐가?"


그렇게 물었지만 사실 카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고 있다.

내가 굳이 카렌의 동작을 외운 이유. 카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일이고 진작에 설명해주어야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카렌의 개인지도에 서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카렌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단한 이유니까,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나는 역시나 어쩔 수 없이 약간 긴장된 상태로 카렌의 입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결국 아까 틀린 동작은, 입 모양으로 봤을 때 카렌은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건물 전체에 갑작스럽게 울리는 진동.

그것은 카렌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이후에 나와 카렌이 할 말까지 통째로 집어삼키고 말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우리들은 동그랗게 커진 눈을 서로에게 향한 채로 굳어버렸다. 무심코 옷을 떨어뜨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약하지만 분명하게 흔들리는 물건들.

귀를 괴롭힘과 동시에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

천둥과도 같은 소리 사이로 교묘하게 들려오는 기계음.

압축공기, 관절, 그리고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는 소리.

모든 게 다시 멎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초.

조금 전까지의 일이 마치 거짓이었던 것처럼 찾아오는 정적.  약한 에어컨 소리 이외에는 카렌이나 나나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지진인가?"


얼어붙은 듯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내 쪽이었다.

아닌 것 같은데. 카렌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젓는다.


"뭔가 기계 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무대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나오가 여기에서 일할 때는 이런 일 없었어?"

"전혀. 무대 장치가 작동하는 걸 직접 하나도 빠짐없이 다 확인했는걸."


나도 기계 소리를 듣긴 했지만, 처음에는 지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카렌과 카에데가 오기 전에 나는 직접, 그리고 여차하면 웬디까지 같이 구르고 날아다니면서 무대의 기믹들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점검했다.

우리가 함께 점검한 것 중에서 이렇게 요란한 것은 없었다.


[근데, 이 HOME 키는 뭐야? 여기 봐봐. 화살표로 이어져서 'OPEN SESAME!!!'라고 적혀있는 거. '열려라, 참깨'라는 뜻 맞지?]

[네. 그런데 죄송하지만, 지금은 가르쳐 드리고 싶지 않네요.]


적어도 우리가 함께 점검한 것 중에서는.


[♬Big Mac, McDLT, a Quarter-Pounder with some cheese, Filet-O-Fish, a hamburger, a cheeseburger, a Happy Meal, McNuggets, tasty golden french fries….♬]


어디선가 담백하고도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들려오는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카렌에게 시선이 꽂혔다.

...자세히 들어보니 참 카렌다운 벨소리다.

카렌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고는, 화면을 내 쪽에 보여주었다.

맥주잔과 병이 올려져 있는 탁자에 얼굴을 박고 있는 연녹색 머리. 그 사진 아래에는 히라가나로 대충 '카에데 씨(かえでさん)'라고 적혀있었다.


"카에데 씨 전화인데. 지금 무대에 계신 거 아니야?"

"어디 화장 고치러 가신 게 아니라면 그렇겠지...?"

"그러고 보니 아까 무대를 정말 유심히 살펴보시던데."

"...."

"...."


그리고 나는 카에데 언니에게 심심하면 무대 조종용 키보드를 마음대로 써보라고 했지. 그저 아무렇게나 마구 누른다고 해서 고장 날 구조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설마.""


무의식적으로 입 밖에 낸 말이 카렌의 말과 겹쳤다.

전화기를 든 카렌이 긴장한 기색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가져가지만.


"■■ ■! ■■ ■■ ■■ ■■ ■■ ■■■ ■■■■!"

"으악...!"


수화기로부터 기습해오는, 나로서는 알아듣기도 힘든 귀따가운 호들갑에 놀라 얼굴을 찡그리며 귀를 떼고 말았다.

음량 버튼을 급하게 연타해 볼륨을 낮추고 다시 수화기 건너편의 카에데 언니에게 말을 건다.


"카에데 씨, 조금 전에 지진 같은 거 느끼셨어요? 아뇨, 별일 없었는데, 그걸 저희한테 사과할 필요가 없잖아요.  에, 나오요? 의상은 이미 다 벗었는데요."


카렌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아직 속옷만 입은 상태 그대로였다. 문득 조금 전의 소동에 무심코 발밑에 떨어뜨린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와서 그것들을 주웠다.


"다시 입히라뇨…? 예?"


내가 줍던 사복을 떨어트릴 뻔한 게 첫 번째, 카렌의 표정이 굳은 게 두 번째였다.


"...꼭 해야겠어요?"


이어서 나타나는 것은 아직 나와 낯설 때 보여주곤 했던 체념 어린 얼굴.

보기 힘들다.

그 당시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카렌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불안했다. 자신이 무언가 하지 않으면 그대로 카렌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 나로서는 몇 번을 마주해도 태평해질 수가 없었다.


"카렌."


거기에 조금 전의 카에데에 대한 불길한 추측까지 겹쳐서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무대에 관한 얘기라면 자신에게 전화를 바꿔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카에데가 뭔가를 저질렀다면 형식적으로라도 시찰의 안내 담당이었던 내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세팅하는 대로 나오랑 같이 갈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그러기도 전에 카렌은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유독 오늘따라 자주 듣는 카렌의 깊고 꺼질듯한 한숨.

그대로 갑자기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잠깐, 카에데 언니가 뭐라고 했길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기겁한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카렌은양팔을내등뒤로뻗은채로내품에달라붙었다?


....

....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그 반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속삭이듯이 카렌이 내 귀에 물어온다.

"저기, 나오. 너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

"응.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기에는 너무 푹 빠져버렸어."


단호하게 대답하며 나는 뭐라도 해줘야겠다 싶어서 카렌을 조심스레 껴안았다. 이제는 그때와 같은 망설임은 없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한번 뛰어들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카렌에게 맞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카렌은? 그렇게 열심히 춤을 췄는데 정작 오디션을 안 나가면 뭔가 아깝잖아."

"나는 너보다 결정하기가 더 힘든걸. 이미 두 번씩이나 겪었으니까, 이 길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길인지 알고 있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오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돼. 나오가 멋진 아이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나오까지 내가 거쳐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올까 봐."


'그럴 일은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만화 속의 주인공을 동경해서 이 길을 선택한다 해도, 이건 만화 같은 게 아닌 현실이니까. 카렌의 걱정대로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혀서 큰 상처를 남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함께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함께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내 생각과 카렌의 말이 서로 겹쳤다.

그래도 지금의 우리들은 혼자가 아니니까. 카미야 나오, 호죠 카렌, 타카가키 카에데, 웬디 파블로브나. 사소한 데서 시작된 관계가 엮여 서로에게 진심 어린 도움을 주고, 상처를 보듬어 주니까, 이번에는 모든 게 잘 될 거라 믿고 싶었다.

카렌이 내게서 떨어지려고 해서, 나는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놔주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고는 내 가슴팍을 툭 쳤다.

아니, 내 가슴팍에 자기 오른손에 들린 옷을 올렸다.

그저 내게 안겨 온 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내 뒤의 로커에서 옷을 꺼낸 것이었다.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안심이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입고 있었던 라이브 의상. 지금 보니 치마 아래쪽 천의 단추를 한 칸씩 잘못 끼웠네.

내게 의상을 건넨 카렌은 나머지 왼손에 들려져 있는 시커멓고 커다란 그것을 내게 보란 듯이 치켜들었다.

내가 입었던 것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여분의 라이브 의상. 카렌은 문제의 반투명한 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전히 체념한 듯한, 동시에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 후, 카렌이 입을 열었다.


"짧은 치마하고 긴 치마. 나오는 나한테 어느 쪽이 어울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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