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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프로젝트 크로네 [Prologue:나오, 카렌- 재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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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8, 2019 00:11에 작성됨.

<2015년 7월 24일 오후 8시 15분, 구 346 프로덕션 캐슬 시어터 공연장>


"그,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말이죠."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오 양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복원 작업은 7월 1일에 시작되어 23일에 모두 끝났고, 무대 장치의 작동 여부는 금일 19시경에 전부 확인했습니다."


최대한 크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양손에 든 A4용지 다발을 읽어내려갑니다. 우리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걸까요? 자꾸 종이 너머로 무대 아래를 힐끗거립니다. 아까 곁눈으로 봤을 때 종이에 적힌 내용이 꽤 빽빽해 보였었죠. 잘못하면 힐끗거리다가 읽던 부분을 놓쳐버릴지도 모르는데.


"이후 10일 이내에 청사진, 사진, 영상, 문서 등의 양식으로 된 설계자료를 346 프로덕션 예능사업부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제...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종이를 들고 있던 양팔을 내리고, 나오 양은 관중석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저와 카렌 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종이로 가려져 있던, 부끄러워서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음, 카에데 씨는 질문하실 거 뭐 없어요?"


역시나 카렌 양은 옆에 앉아있는 제게 기회를 넘겼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저는 그저 카렌 양을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녀를 이곳에 데리고 왔으니까요. 아마 나오 양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 거예요.


"어떻게든 보고 싶어서 회사 쪽 지인에게 졸랐는데 대충 '시찰'로 스케줄로 잡아줬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할 줄은 몰랐네요. 아하하하...."


저도 부품 교체, 동력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라면 카렌 양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요.  둘의 눈길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대로 서로서로 꺼낼 말을 찾지 못하고 모두가 조용해졌습니다.

정말로 어색한 분위기. 대본과 설명서를 들고 발표를 나오 양도 이런 경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못 찾는 듯합니다.

난처해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는 나오 양의 표정이 미안한 마음에 어두워지고, 덩달아 이번 일의 시작이었던 저도 미안해집니다.

우선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해결해야 했기에, 저는 좀 짓궂고도 검증된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오 양. 주제 외적인 얘기인데,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나요?"


나오 양에게 미안하지만 바로 직구를 던져버립니다. 보통 이러면 나오 양이 부끄러워하면서 싫다고 하고, 저희 둘은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껴안거나 쓰다듬고 다 같이 기분을 풀곤 합니다.

물론 언제나 성공한 건 아니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으니까요.


"사, 상관없어요. 이쪽으로 올라오실래요? 관중석에서 찍으면 조명때문에  잘 안 찍힐 것 같아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지만 반쯤은 성공했다고 봐도 될까요...? 의외로 나오 양은 거절하지 않고 착하게 저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용모를 보면 당장 구멍을 파서 숨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간이 계단을 타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 제 손을 붙잡아주고는 카렌 양에게 수줍게 말을 겁니다.


"카렌도 찍을래?"


신선하기도 하고, 어딘가 마음이 성장한 듯 대견스러운 나오 양의 모습. 한편으로는 지난 며칠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카렌 양? 그렇게 입 벌리고 있으면 벌레가 들어갈지도 몰라요?"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나오 양의 부름에 이끌려 가는 카렌 양. 정말 입에 벌레가 들어가도 모를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게, 나오 양이 예쁘고 프릴까지 달린 라이브 의상을 입은 채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까요.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 옷감에 마감과 장식은 검붉은 색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특이하게도 종아리 가운데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의 끝에는 반투명하고 검붉은 옷감이 발목 부근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나오 양이 이곳, 346 캐슬 시어터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안 건 불과 조금 전의 일입니다. 본래는 지금처럼 옷을 입고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라 짐을 옮긴다던가, 공사나 작업을 돕는 일이라고 해요. 정규 인원 1명의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라는 극소수 인원의 작업. 나오 양이 이렇게 직접 '시찰'의 안내를 맡게 된 것도 인원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오늘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요? 나오는 '시찰'에 오는 게 우리들인지도 몰랐고, 정황상 자신이 라이브 의상을 입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던 모양이에요.

본래 나오 양이 입을 옷은 공식적인 자리에 여성용 정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탈의실의 락커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좀 오래되긴 했지만 나름 관리한 흔적이 보이는 두 벌의 라이브 의상이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건너편의 탈의실로 가보았지만, 문은 잠겨있었고, 나오 양이 문자로 '사장님'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한참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만,  미팅중일지도 모른다며 전화는 따로 걸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시찰에 정장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한 식탁에 앉아 같이 밥을 먹을 만큼 서로 절친한 이웃끼리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입어볼까요?'


그런데 나오 양 쪽에서 먼저 저희에게 그렇게 물어왔습니다. 알고보니 '사장님'에게 보냈던  메시지도 정장이 어딨냐는 질문이 아니라 라이브 의상을 한 번 입어봐도 되냐는 질문이었죠.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무대 뒤편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하얀색 탑. 그것을 등지고 다소곳이 서 있는 나오 양을 늘 가지고 다니는 캠코더의 셔터를 연달아 누릅니다.

이런저런 포즈까지 잡으라고 하기엔 미안했기에, 손을 오므린 상태로 다소곳이 서 있는 사진을 찍는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그런데도 평소에는 그저 귀엽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웃이었던 나오 양이, 오늘은 아름답고 멋지고 어딘가 늠름해 보이기까지 해서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캠코더로 기록을 남길 시간에 제 두 눈에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 싶을 정도예요. 그렇지만,


"흐음."


역시나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백색의 거대한 탑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캠코더를 내려놓고 그 화려한 모습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좌우로 살펴보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그러고 있어도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저를 당황하게 하고 고민하게 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카에데 언니, 뭔가 잘못됐나요?"


한참 동안 말없이 왔다 갔다 한 게 역시나 이상해 보인 걸까요, 나오 양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아, 아뇨. 별거 아니에요. 그저 제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서요. 두 사람에게 정말 보여드리고 싶었던 무대였는데..."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게 2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한참 만들기 시작할 때라 뼈대밖에 없었지만, 그 뼈대도 이 탑보다 몇 배는 더 거대했었죠. 지금 눈앞에 있는 것도 멋진 무대입니다만, 카렌 양과 나오 양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던 기억 속의 무대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346 프로덕션 캐슬 시어터>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정말 이곳이 그 사람이 만들었던 무대가 맞는 걸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이곳은,


"카에데 언니, 저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곳이 언니가 생각한 곳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 뭐랬더라? 아, 그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에서 아이돌이 사고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무대니까,' 적어도 그 용도에 맞게 써볼 수 있진 않을까요?"

"...네?"


>>>>>>


"아이돌 오디션요. 앞으로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이 자리에서 연습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에……. 아아...! 그렇네요. 사실 카렌 양을 데리고 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거든요!"


애써 평소대로의 말투로 대답하는 카에데 언니는 여전히 어딘가 멍해 보였다.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걸까?


"괜찮으신 거 맞죠?"


그저 뒤에서 우리들을 지켜볼 뿐이었던 카렌까지 다가와서 언니의 안색을 살피고 있고.


"잠시만요. 조금만 준비할게요."


카에데 언니는 우리로부터 등을 돌려 웬디 씨와 내가 없을 때 홀로 작업했던 그 커다란 탑 앞에 다가섰다. 한 손으로 탑의 외벽을 조심스럽게 천천히 쓸어내리고, 고개는 위로 향해있다. 표정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다.


"흐읍, 후우...."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카렌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나도 카에데 언니에 대한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언니에게 다가가려고 한 순간, 그녀가 뒤를 돌아 우리들을 향해 미소지어 보였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고 무언가 안심한 듯한 얼굴.

언니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얘기를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당장 부탁하고 싶은 것이 앞서서 뒤로 미뤄두었다.


"저기, 카에데 언니. 혹시 저희한테 시킬 춤이나 노래를 따로 준비하신 건가요?"

"두 분이 어느 정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것들로 좀 준비해왔어요. 765 올스타즈의 공연에서 나온 건데, 본 적 있으세요?"

"네, 어느 정도는...."


중학교 때, 유행을 넘어 어딜 가도 765 올스타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로부터 벌써 2~3년이나 지났지만 몇 가지 유명한 안무나 노래는 따라할 수 있을 정도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카에데 언니의 말대로, 따라잡기 쉽고 어필이 되는 무난한 래퍼토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만큼은 다른 걸 해보고 싶다.


"카에데 언니. 카렌. 사실 저도 따로 연습한 게 있는데 한번 봐주시지 않을래요?"


비록 제멋대로인 멘토에게서 두리뭉실하게 배우고, 혼자 멋대로 잔꾀를 쓰긴 했지만.


>>>>>>


<약 5시간 전>

▶▶l


[<Star!!>? 정말 이걸로 할 거야?]

[네. 아시는 곡이신가 보네요.]

[응. 346 프로덕션의 신데렐라 프로젝트...? 거기에서 나온 곡이야. 영상으로 봤거든. 안무 영상은?]

[영상…. 비슷한걸로 봐뒀죠. 카미야 양을 이끌 수 있을 만큼은 어느 정도 연습 해뒀으니까 거울 보듯이 제가 하는 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스텝 밟는 게 나름 재미있었으니까 카미야 양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야 상관없지만. 그나저나 자랑할만한 건 아닌데, 난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평범한 여고생 겸 알바생이야. 어떻게든 음악과 춤을 따라가 보겠지만, 부탁할게.]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일단 즐기는 느낌으로 가볍게 시작하시면 돼요. 자, 그럼 준비 자세를 저랑 맞춰주시고. 음악 넣습니다!]

[좋아~! 한번 해볼까!]


음악, 리듬감 있는 발소리.

그리고 한순간에 한 사람의 스텝이 깨지면서 일어나는 불협화음.


[아차! 미안, 다시 할게.]


여전히 계속되는 음악과 한 사람의 발소리.


[웬디 씨?]


계속.

음악이 끝날 무렵에야 그치는 발소리.


[왜 멈추셨죠?]

[스텝이 꼬여서 틀렸으니까. 다시 해야 할 것 같았거든.]

[카미야 양의 후배.... 이름이 호죠 양이었나요?]

[응. 그런데 카렌은 갑자기 왜?]

[이 춤, 그분이 추는 걸 눈으로 보고 외운 겁니다. 그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참고한 적 없어요.]

[아.... 그러면 나는 어찌 보면 카렌과 같이 춤을 추고 있는 거네.]

[대충 그런 셈이죠. 그러니까 호죠 양이 틀린 부분을 제가 똑같이 따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눈으로만 보고 연습한 거니까 제 독자적인 실수까지 섞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까 카미야 양이 틀렸다고 중간에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보통 레슨 중간에 틀리면 지적받잖아.]

[네. 그런데 그것도 지적받는 사람의 특성을 지적하는 사람이 제대로 알고 있을 때야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데 어이쿠? 저는 카미야 양의 퍼포먼스를 절반밖에 못 봤군요.]

['어이쿠'라는 표현 은근 좋아하는구나.... 그러면 내 마음대로 춤추고, 지적은 그 다음 한꺼번에?]

[카미야 양이 제 안무를 지적하셔도 됩니다. 묵혀뒀다가 그 호죠 양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되고요.]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꼭 같이 모여서 방학 숙제하는 것 같잖아. 어쨌든 한 번 더 해볼게. 맞다, 그리고 부탁하게 하나 더 있는데.]

[말씀하세요.]

[칭찬은 너무 하지 말아줘. 너무 받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어... Okay? 그럼, 다시 갑니다.]


두 번째의 음악, 리듬감 있는 발소리.

그리고 또다시 한 사람의 스텝이 깨지면서 일어나는 불협화음.


[...또!]

[멈추지 말고 계속하세요!]


균형이 깨졌다가, 점차 리듬을 다시 찾아가는 소녀의 스텝.

음악이 끝날 때까지도 깨지지 않는 두 사람의 화음.


[이번엔... 어때?]

[....]

[어어... 응? 그, 그게, 뭔가 잘못됐어? 중간에 한 번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마추어치고 리듬도 잘 따라갔는데…. 그, 내가 잘못한 건가?]

[....]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 쓴소리라도 달게 받을 테니까 뭐라도 얘기 좀 해줘~!]

[껴안아도 되나요?]

[에?]

[칭찬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당장 생각나는 게 이건데.]

[만사태평한 얼굴로 잘도 그런 말을 하네! 안 돼! 차라리 칭찬으……. 으을이 아니지. 칭찬하지 마! 쓴소리, 아니, 억지로 쓴소리를 시키면 괜히 내가 미안하고.... 어쨌든 껴안는 건 금지!]

[...그냥 춤이나 한 번 더 출까요?]

[하.... 그게 낫겠네. 그나저나 웬디 씨?]

[듣고 있습니다.]

[아까 <반짝이는 SUPER ST@R로( 輝く SUPER ST@Rに)> 부분에서 올리는 발 틀렸어.]

[네?]

[카렌의 움직임을 전부 익혀둔 거지? 이쪽도 예전에 영상으로 봤던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 카렌을 상대하는 마음으로 할 테니까... 더, 덤벼!]

[...Oh, dear(아이고, 이런).]

▶▶l

>>>>>>

탁, 하고 마지막 구두 소리가 무대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오 야아아앙!!"


그리고 음악과 스텝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오의 품으로 파고드는 카에데 씨.


"정말로 멋졌어요! 혼자서 연습하신 거예요? 아니면 카렌 양이 저 몰래 도와준 건가요?"

"아, 아뇨. 저희 사장님이 같이 도와주셔서."

"그분을 지금 만나 뵐 수는 없을까요? 나오 양을 위해 이렇게까지 도와주셨으니까 언니로서 인사드리고 싶어서요!"

"웬디 씨, 가 아니지. 사장님은 지금 미팅 중이라서 연락하기 힘들어요. 아까 '의상은 내가 테스트할 때 입는 옷이니까 입어도 상관 없다'라고 온 게 전부라고요. 그것보다 카에데 언니, 숨 막히는데...!"


어린 애들 놀듯이 서로 붙은 채로 빙글빙글 도는 두 사람.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나는,


"...."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확실히 카에데 씨의 눈에는 나오의 춤이 정말 멋져 보였을 것이다. 나도 나오의 춤추는 모습에 반해 넋이 나가 있었으니까. 그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월요일 밤, 나오에게 자기 일이나 신경 쓰라는 투로 말했던 과거의 자신이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이게 어떤 끔찍한 상황인지 깨닫기 직전까지는.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녀를 껴안으면서 좋아하는 카에데 씨에게는 약간의 원망이 들었고, 저걸 가르친 사장이란 사람은 당장에라도 그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오가 춘 저 춤은, 몇 번이나,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겹게 봤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화가 난 적은 없었다.


나오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그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전부 호죠 카렌의 것 그 자체였으니까.


끊김 없이 열심히 춤을 추는 나오의 모습은 정말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그 동작에 비친 내 모습에 화가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나오가 저지른 실수 아닌 실수를 목격하고 그 끔찍한 감정들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저 평범한 실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끊임없이 괴로워하던 당사자의 입장에서 도저히 넘길 수가 없는 실수.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하는 걸 수도 있었지만, 나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봄 무렵에 확인한 지 오래였다.

계속 침묵하는 게 이상하게 보였던 걸까, 나오는 카에데 씨와 함께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오."


'괜찮으니까 편하게 얘기해도 돼', 라는 느낌으로 미소지으며 조심스레 나오를 불렀지만,


"...응."


아무래도 내 기분이 안 좋다고 여긴 듯, 나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쪽에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나는 괜찮으니까, 대답해줘. 알고 한 거였어?"

"저번에 같이 돌아갈 때..."

"사장님이 내 모습을 봤다고 했었지. 그건 어느 정도 감이 오니까 말 안 해도 돼."

"...알고 한 거였어. 원래 카렌이 춘 춤이었다는 것도, 몇몇 부분이 틀렸다는 것도."

"그러면 나오는 제대로 된 동작이 어떤 건지 이미 몸으로 익혀놨으면서, 실수투성이였던 내 춤을 우리한테 보여줬던 거네."

"...역시 티가 났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는 한 손으로 그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숨을 한번 들이 쉬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반짝이는 SUPER ST@R로(SAY☆いっぱい輝く 輝く SUPER ST@Rに)!”


말 대신 노래의 한 부분으로 나오에게 대답했다.

<STAR!!>의 다른 파트가 그렇듯, 이 부분의 안무도 아주 어려운 동작은 아니었다.

검지를 곧게 세운 오른팔을 부채꼴로 흔들다가, 타이밍에 맞춰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흔들던 오른팔을 얼굴 쪽으로 휘두르며 약간 점프하듯이 왼 다리를 들어올려야 한다.

월요일에 홀로 연습하고 있었을 때, 나는 오른 다리를 올렸었다.

어렵지도 않은 동작으로 몇 번을 틀리냐고, 스스로 다그치게 했던 수많은 실수 중 하나.

지금에 와서야 연습으로 고쳤다고 해도, 정답인 왼 다리를 올리는 데에는 아직도 어색함이 남아있었다.


나오는 이 부분에서 왼 다리를 들려다가 황급히 오른 다리로 바꿔 들었다.

정답을 고르려다가 황급히 오답으로 돌아선 것이다.


"좋은 퍼포먼스였지만 저도 사실 그 부분이 어색하다고 느꼈어요."


카에데 씨가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든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오가 그 부분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카에데 씨는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지.


"언니도 눈치채셨어요?"

"레슨의 경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되네요. 예전에 유메ㅁ.... 아이돌 한 분이 일부러 실수했는데, 그걸 눈치채신 트레이너 씨가 '가짜 실수를 구별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거의 한 시간 동안 저희에게 강의를 했거든요."


그 Y모 양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다지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나오는 카에데 씨의 말에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그리고 우리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의 입에서 나왔다. 약간 장난스럽고도 뜬금없는 그 말에 위화감을 느낀 게 나 혼자만은 아닌 듯, 카에데 씨도 약간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벌리고 있다.



'카에데 언니와 네가 말한 것 때문에 마음이 끌린 것도 있지만, 그... 예, 예쁜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건 예전부터 동경했거든. 그런데... 결정하기가 힘들더라아...'


내가 한때 그랬듯이, 그날 저녁의 나오는 자신의 길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카에데 씨에게 '선배님'이라니. 그동안 나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오 나름대로 결심을 한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


"기특하네요, 후배님!" 하면서 부드럽게 머리칼을 빗는 카에데 씨의 손길을, 나오는 거부하지 않고 수줍게 웃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카에데 씨와 같이 나오를 쓰다듬었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톱 아이돌과 장래성 있는 아이돌 지망생’. 새롭게 만들어진 이 이해관계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체념과 될 대로 되라는 태도밖에 남지 않은 제삼자일 뿐이다.

그저 '잘 됐네.' 라고, 분위기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게 아마 최선...


...잠깐만.

아니다.

이건 아니다.

'잘됐네'라니, 내가 지금 앞뒤 판단도 없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나오! 그러면 내가 실수한 거 말고, 제대로 된 동작은 다 외웠어?”

“으, 으엑?! 시간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긴 했어.”

“지금 여기서 해본다고 치자, 내 동작이랑 헷갈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저기…. 그……. 미안.”


왜 네가 미안한 건데.


나는 당장에라도 졸도할 것 같은 현기증에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나오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도 빼먹은 것 없이 내 틀린 부분을 소름 끼치도록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그러나 그걸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실전인 오디션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일 뿐이다.

역시나 안 되겠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그 '사장'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떤 식으로든 따져봐야지.

하지만 지금은 당장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카에데 씨. 녹화 좀 하게 그 캠코더 좀 써도 되죠?"

"네? 아, 상관없어요. 그런데 뭘 하시려고...?"

"나오 연습시켜야죠! 지금 이런 상태에서 오디션에 어떻게 내보내요?"


나는 신고 있던 굽 높은 샌들을 벗고 두 발을 바닥에 닿았다. 나오의 일로 열이 올랐기 때문일까, 냉방으로 차갑게 식혀진 바닥에 맨발이 닿는 느낌이 좋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운동화같이 움직이기 편한 신발이 더 어울린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해도, 새삼 아무 생각도 없이 샌들을 신고 온 게 조금은 후회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어색하게 홀로 서 있는 저 탑이 마음에 걸렸지만- 무대와 소품 등, 겉으로 다 무너져가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아이돌 지망생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정성스레 준비해놓은 깜짝 선물처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죠. 당신이 만약 저희 961 프로덕션에 들어온다면 어떤 아이돌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큭."


또다.

나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괴롭혀오는 목소리를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빗질만 하고 풀어놓은 채였던 머리카락까지 거슬릴 만큼 짜증이 솟구쳐서, 머리를 대충 포니테일로 묶어놓았다.

심사위원의 얼굴은 진작에 잊어버렸는데, 그 목소리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이제는 아물지 않는 상처인, 노력과 실패의 기억이 한데 섞인 채로.

마음 한구석의 열정과 미련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때마다, 기억은 나를 몇 번이고 다시 괴롭히며 열정과 미련을 가라앉힌다.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과 같은 아픔이 너무 괴로워서, 나는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아예 도망쳐버렸다.


그러니까 나오에게 만큼은 절대로 내가 겪는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허락된다면, 그녀의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계속 지켜보고 싶다. 불안과 기대가 섞인 소망이었다.


"갑자기 학기 초의 일이 생각나네. 그때 나오 때문에 억지로 뛰는 게 일상이다시피 했으니까, 언젠간 비슷하게 갚아주려고 했거든?"


그 말에 약간 겁을 먹은 듯 움츠러드는 나오의 어깨에 손을 얹어 꽉 쥐고,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예전에 이걸 나오가 내게 했을 때 무슨 공익광고 같은 모양새라서 어처구니가 없었지.


"무슨 의도였든 간에 결국 제가 안무를 망친 책임을 지게 됐으니까, 이 악물고 각오하세요. '카미야 선배'."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 호칭은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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