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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죠 카렌은 상당히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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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5, 2019 22:45에 작성됨.

당신이 키운 아이돌이니깐.
  그 말을 들었을 때 깨달았다. 라이브 하기 전, 언제나처럼 건내는 걱정의 말, 격양되어 있으면서도 또 여유있게 나를 돌아보는 그녀, 마음을 담아 나에게 건내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그 말 한 마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 이 아이한테 반해버렸다. 내가 이 아이에게 특별한 존재이듯이, 이 아이도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아니, 나에게 더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그 깨달음이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에게 반해버린 걸 지각했지만 나는 항상 하던데로 그녀를 대할 수 있었다. 라이브가 끝나고 나서 필요한 걸 건내주거나, 일이 다 끝나고 데려다준다거나, 가능한 여유있게 휴식시간을 주거나 하는 건 습관적으로 진행되었다. 인간, 습관의 동물인지라 마음에 동요가 아무리 커도 평소에 움직이던데로 움직일 수 있다. 다행이었다. 이 아이에게 흑심을 품게 되어버린 걸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관계가 무너질까봐 두려웠다. 주위의 시선도 무섭다. 사회적 관계라거나 나이 차이, 심지어 외모 차이까지 신경쓰이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가장 두려운 것은, 그녀에게 거절당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특별히 생각해주고 있다. 어떤 의미로? 특별하다는 것은 어떤 감정으로 특별하다는 것일까? 이걸 추측하고 짐작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렇기에 비겁한 짓을 하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고 싶었을 뿐이었다지만 비겁한 건 비겁한 것이다. 카렌이 혼자 있거나 나와 떨어질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밟거나 떨어져 있는 척 하면서 그녀의 말과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자국이나 편린을 조금이나마 발견하고 싶었을 뿐이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




  카렌은 생각보다 욕심쟁이였다. 몰래 관찰하면서 알게 된, 내가 모르는 카렌의 모습은 그것이었다.
  “아, 카렌 그거 하나 남은 건데!”
  “하나 남은 거니깐~”
  테이블 위에 있던 마지막 마카롱을 카렌이 먹어버린다. 린은 별 상관없다는 투로 보고 있었지만, 나오만은 울상이 되어서 카렌에게 따진다.
  “너무해 카렌,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둔건데~”
  “마지막까지 먹지 않은 나오 잘못이다 뭐”
  장난치기 참 좋아하는 아이라니깐. 하지만 나오의 항의는 제법 진지했다.
  “레인보우는 하나만 있는 거 알면서!”
  “응, 그래서 먹었지”
  “카렌 방금전까지 3개나 먹었잖아! 그러면 2개 먹은 나한테 양보해야 했던 거 아니야?”
  “으응, 그치만 레인보우였던 걸”
  “카렌~!”
  화를 내며 카렌에게 소리치는 나오. 조금 귀엽다.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
  “내 말이!”
  “그러니 먹어둬야지“
  “카렌, 그래도 나오가 사온건데”
  “나오 고.마.워.”
  “카~레~엔~”
  역시 나오는 지는 포지션이다. 카렌에게 항의하면서도 카렌의 메롱에 결국 져버린다. 그나저나 카렌, 저런 걸 양보 안 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아니, 오히려 남에게 양보를 잘해서 문제였었는데. 내 앞에서만 그런 거였을까? 생각은 묻어두고, 더 계속 엿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놀이공원 공짜표, 필요한 사람?”
  “아 진짜? 나”
  운전중인 웨건 뒷좌석에서 리이나와 카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 쥐즈니 랜드 표네?”
  “어어, 선물로 받았는데 난 안 가서...”
  “에에, 왜?“
  “로꾸하지 않잖아”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미호나 치에리가 어설프게 웃어주는 소리가 들린 듯 싶었다.
  “그리고 이건 디저트카페 이용권인데 필요한 사람...”
  “나”
  또 다시 카렌이 받아간다.
  “리이나, 왜 갑자기 공짜 표를 뿌려?”
  “응, 쌓였던 게 있어서 생각난 김에 나눠주려고 가지고 나왔어”
  그러고보면 리이나, 이상하게 사무실 내에서 인기가 많아서 다른 아이돌들한테 이것저것 선물 많이 받았지.
  “디저트 안 좋아해?”
  “로꾸하”
  “지 않구나, 하이 하이”
  카렌은 리이나의 이유를 대충 넘긴다. 마유나 미호, 치에리는 여전히 조용히 있을 뿐이다.
  “그 다음에는 브랜드 상품권...”
  “아 나 그 브랜드 좋아해”
  “응, 그리고 문벅스 커...”
  “땡큐”
  “그리고 라이온솔트 백당...”
  “아 마침 그거 먹어보고 싶었어”
  “...저기 카렌?”
  “응? 다음은 뭐야?”
  “다른 애들한테도 좀 주고 싶은데...”
  “괜찮아요, 필요한 건 아니었는걸”
  “응, 응”
  “으으음...”
  카렌이 욕심을 좀 부리고 있긴 하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운전을 계속할 뿐이었다. 뒷좌석에서는 카렌이 계속해서 리이나에게서 쿠폰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카렌, 엄청... 관심있는게 많구나. 심지어 남자 구두 상품권까지 받아갈 줄이야.




  이번 오프 날에 시간 있을까? 프로듀서도 오프 맞지?
  카렌에게서 받은 메시지에 내 마음은 들떠있었다. 데이트 신청인가? 데이트 신청이지 이거? 물론 카렌은 그 이유를 ‘쇼핑에서 짐을 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게 돌려말하는 것임은 눈치가 없는 편인 나라도 알 수 있다. 응, 당연히 괜찮지. 나는 바로 답장했고, 내 마음은 답장 속도만큼이나 빨라져버렸다.
  그래서였다. 평소보다도 빠르게 사무실로 돌아온 것은. 발걸음도 가볍고, 이런 나를 축하해주는 듯이 신호등도 하나 걸리지 않고, 엘리베이터마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태워주고. 좋은 일은 갑자기 몰려오나 보다. 그 덕분에 더욱 좋아진 기분은, 사무실에 도착한 나에게 속삭였다. 카렌에게 장난을 치자고. 그래서 나는 사무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사무실 안에는 카렌만이 있었다. 전화를 받고 있던 카렌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녀에게 들키기 않고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몰래 놀래켜볼까.
  “그러니깐 안 된다고”
  조금 목소리가 날이 서 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려던 걸 멈추고 문가에 우두커니 서버렸다.
  “하지만 약속이 있다고... 그래도 이 쪽은 제법 중요한 약속이라니깐?”
  카렌은 짜증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이돌 하고 나서 쉬는 날 적은 거 알잖아... 응, 나도 물론 도와주고 싶어, 도와주고 싶지만... 응, 응...”
  약속이 조율되지 않는 것일까?
  “다음 오프 때 안 될까? ...응? 언제냐고? 아마도 한 달 뒤일 걸?”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카렌은 한동안 그 목소리를 들어만 준다.
  “아무튼, 다음주 월요일은 힘들어! 미안, 끊을게!”
  삑.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카렌. 전화기는 금세 다시 울리지만, 카렌은 다시 화면을 한 번 눌러 전화기를 조용히 만든 다음 소파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와 카렌의 눈은 마주친다.
  “아”
  “하이”
  하이가 뭐냐 하이가, 이 얼빵한 놈.
  “언제 왔어?”
  “음... 방금? 전화는 뭐였어?”
  화제를 돌려야 했는데 아예 본론으로 바로 넘겨버렸다.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수고했어 프로듀서”
  그렇게 말하며 카렌은 얼버무린다.
  “그보다 프로듀서, 다음주 월요일 오프인 거 확실히 맞지?”
  “어, 맞아 맞아”
  반사적으로 수첩을 꺼내 핀다. 수첩 달력에는 다음주 월요일, 확실히 오프라고 적혀있다.
  “그러면 됐어~”
  그렇게 말하며 사무실을 서둘러 나가는 카렌. 어디가냐고 물어보면, 그런 거 묻는 거 실례야 라는 말만 하면서 가버린다. 그 뒤에 남겨진 나는 단지 카렌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아이... 왜 요즘따라 저렇게 욕심을 부리지?




  공연이 끝난 뒤의 대기실에 최대한 시간을 마련한다. 카렌을 위한 나의 배려 중 하나이다. 어떻게든 쉴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지만, 쉴 시간이 끝났다고 알리러 가는 건 왠지 매번 미안해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발길을 옮겨 도착한 대기실은, 그 문이 조금 열려 있다. 살짝 열린 대기실은 나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할 거다.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겠지. 그런 생각에 노크를 하려던 참이었다. 대기실에서 카렌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평소에 듣던 목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격앙된 목소리. 나는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멈추어서서 대기실 안을 엿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을 필요는 없잖아”
  미카의 목소리도 같이 들린다. 그녀도 평소랑은 다른 목소리였지만 카렌과는 달리 당황한 듯한 억양이다.
  “그렇게 듣다니? 난 제대로 들었는데?”
  “카렌, 농담이야”
  “농담? 아아, 그래, 농담이겠지”
  의자가 드르륵, 끌리는 소리. 둘 중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한 모양이다.
  “잘나가는 카리스마 갸루께서는 사랑같은 것도 단순한 농담인 거겠지”
  “카렌, 말이 심해”
  “말이 심한 건 미카였어!”
  갑작스러운 외침에 깜짝 놀라서 나도 이상한 소리를 낼 뻔 했다.
  “뭐? 나누자고? 번갈아서 데이트나 하고 그러자고?”
  “왜? 그게 뭐 잘못됐어?”
  또 다시 들리는 의자 끄는 소리. 싸움을 말리기 위해 들어가야 할려나?
  “카렌, 너가 프로듀서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농담에 너무 지나친 반응 보이는 거 아니야?”
  “미카는 프로듀서한테 특별히 관심이 있지도 않았잖아?”
  “그러니깐 별 일 아닐테고 괜찮지 않아?”
  “하, 그래, 별 일 아닌 데이트가 필요하다?”
  “왜 그래, 혹시 둘이 사귀기라도 해?”
  “그건 아니지만 말이지”
  “그러면 왜 이렇게 화를 내?”
  “내가 화난 건 미카가 프로듀서에게 마음이 있다거나 해서 그런게 아니야”
  아주 잠시 동안의 침묵.
  “단지 말이지, ‘가볍게 데이트나 하고 좀 놀아보면 어때’ 라는 말에 화가 난 거야?”
  “너...”
  미카의 목소리도 변했다. 당황하는 목소리에서 기가 차 하는 목소리로.
  “매사에 진지하지 않던 애가 왜 이런 부분에서는 진지한 척 하는 건데? 그리고, 가볍게 데이트라는 말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 마음에 안 들었어!”
  두번째 폭발.
  “미카는 어차피 여유가 있겠지, 어차피 천천히 즐겨도 아무 문제 없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카렌, 너 혹시...”
  “그런 것도 아니야”
  갑작스러운 걱정에 카렌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야. 지난 번 건강진단에서도 문제 없다고 했었어”
  “그러면 뭐야...?”
  “...미카, 너는 앞으로 너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뭐?”
  무거운 무게는 그대로 둔 채 분위기만이 갑작스럽게 바뀐다.
  “난 말이야, 병원에서 계속 생각했었어. 나는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
  "죽을 병에 걸리거나 그런 건 아니야 물론”
  카렌이 황급하게 덧붙인다.
  “하지만 말이야, 매일같이 병원을 들낙거리면서, 같이 입원한 사람들이 종종 정말로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 말이지. 나는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난 궁금했어, 그리고 두려웠어... 하지만 아무도 이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어”
  “......”
  “의사가 옛날에는 이렇게 말했다고, ‘글쎄요, 저로서도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지만...’ 이라고! 지금이야 웃으면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좋은 걸 많이 경험하니 몸도 제법 좋아지셨군’ 하고 말하던 그 의사가 옛날에는 그렇게 말을 머뭇거렸다고! 나 말이야, 몸이 엄청 약해, 이유야 어찌되었든 몸이 엄청 약하다고.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살지도 못하겠지”
  “카렌, 그건”
  “알어, 알어 그냥 추측일 뿐이지! 몇 달 몇 년 그 생각을 하면서도 답을 내리진 못했는 걸! 하지만 그 때 두려워하고, 이제서야 빛을 보면서 생각한게 하나 있어”
  "......"
  나와 미카는 카렌의 대답을 기다린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얻어낼 거야,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어”
  “......”
  미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또한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미카, 너가 프로듀서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건 네 자유야. 너가 프로듀서랑 연인이 되든지 말든지 하는 것도 네 자유야, 난 뭐라 하지 않아”
  하지만.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나는 함부로 놓치고 싶지 않아. 난 필사적이야, 그것만 알아둬”
  그 말과 함께 발소리가 문으로 다가와, 나는 황급히 숨는 수 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오는 카렌. 어설프게 복도에 있는 화분 뒤에 숨었지만, 카렌은 감정이 격양된 탓인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걸어가버렸다. 혹시 울고 있나? 하지만 지금 카렌을 쫓아갈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미카도 밖으로 나오기 이전에 얼른 몸을 피했다.




  짐이 많으니 잠시만 쉬고 가자. 아무리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만 있다지만, 짐을 이렇게 많이 들고 옮기면 지친다. 내 제안에 카렌은 웃으면서 알았다고 대답한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요즘 유행하기 시작한 카페에 들어갔다.
  “으음, 생각보다 맛없어”
  유행하는 메뉴를 시킨 카렌의 소감은 솔직했다. 그렇게 별로야? 묻는 나에게 카렌은 먹고 있던 컵을 나에게 내민다. 내가 쓰던 빨대라도 써야지 하면서 다른 빨대를 찾는 나에게, 카렌은 그대로 음료수에 꽂혀있던 빨대를 내 입에 물려버린다. 당황스럽지만, 솔직히 부끄럽고 너무 기쁘다. 나는 잠깐 멈추었다가, 그대로 음료수를 빨아마신다. 솔직히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만. 음료수를 내려다보다가 카렌을 쳐다보면, 카렌의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서는 빨갛게 달아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내 얼굴도 저렇게 빨갛겠지? 부끄러움에 우리 둘은 잠시 서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 카렌 이거...”
  “으응, 금지, 지금은 스탑! 아무 말 하지 말 것!”
  내 말을 무엇으로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바로 막는 카렌. 그래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뭘 이렇게 많이 사...?”
  “목걸이는 갖고 싶었던 거! 수영복은 올 여름에 입고 싶은 거, 그리고 신발은 저번부터 갖고 싶었던 거고... 스카프는 엄마 거! 그리고”
  “구매욕 엄청나네”
  “많이 무거워? 그래도 오늘 월요일이라고 사람도 적어서 금방금방 샀잖아”
  “월요일이기도 하지만...”
  손목시계를 슬쩍보면, 11시 17분이다.
  “너무 일찍 나왔는걸”
  “한 번 해보고 싶었는 걸”
  “뭐가?”
  “백화점 문 열리자마자 쇼핑! 하는 거”
  “뭐야 그게”
  귀여워서 웃었다.
  “옛날에 드라마에서 봤어, 왠 부자 캐릭터가 말이지, 백화점 문 열리자마자 들어가서는 ‘이거’ ‘저거’ 이러면서 물건들 척척 사는 모습. 그 때 생각했어, 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상하게 거만한 태도로 물건을 산 거였구나...”
  “그래도 직원들한테는 거만하지 않았잖아?”
  “응, 잘했어, 카렌다워, 착하네”
  “난 안 착한대?”
  소악마처럼 웃으면서 다시 음료를 마시는 카렌. 맛이 없다곤 했어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으, 이거 일단 너무 달아. 이런 거 별로”
  “몸에 좋지 않지. 나 줘, 내가 마실게”
  과한 설탕도 그렇게 몸에 좋지는 않을 거다. 나는 내가 시킨 차를 카렌에게 건내면서 손을 뻗었다. 카렌은 그런 내 손을 막는다.
  “프로듀서, 변태네”
  “네?”
  “레이디가 마시던 걸 가져가서 먹다니, 완전 변태잖아?”
  “아니 방금전에 나 먹이기도 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애초에 마시던 걸 마신다고 변태라는게 너무한데?”
  “아니야, 변태 맞아. 레이디가 마시던 걸 가져가서 마신다니, 그런 건 가족이나 남자친구만이 할 수 있는 걸? 변태가 아닌 이상...”
  카렌이 말 끝을 흐리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난 그런 카렌에게 차마 반응하지 못하고 볼을 긁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떻할래, 프로듀서?”
  “뭐, 뭘?”
  “마실래, 이거?”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마시던 컵을 건내는 카렌. 나는 긴장감과 혼란스러움에 머뭇거린다.
  “나 말이야, 욕심쟁이야”
  “응?”
  “원하는 거 되게 많아”
  “그렇구나”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갖고 싶고... 더 이상 양보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마카롱도 쿠폰도 휴일도 그리고 미카한테도 그랬지.
  “나, 나쁜 아이일까?”
  카렌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지 않다는 걸, 카렌과의 오랜 생활 덕분에 나는 알 수 있었다.
  “프로듀서는, 나쁜 아이는 싫어해?”
  “나쁜 아이는 좀 그렇지, 좋아하지 않아”
  볼을 긁으며 대답한다. 내 대답과 동시에 카렌의 손이 조금 내려간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손에 있던 음료수 컵을 뺏는다. 그대로 빨대를 물고 쪽 빨아마신다. 설탕의 단 맛이 한껏 가득찬다.
  “카렌은 나쁜 아이가 아니니깐 상관없지 뭐”
  카렌이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나를 쳐다본다.
  “아니, 나쁜 아이 맞나?”
  “그게 뭐야”
  “나쁜 아이라도 카렌이면 상관없지 뭐”
  “......”
  “......”
  낮 간지러운 대사를 내뱉은 덕분에, 우리 둘 다 아무 말 하지 못한다. 월요일 오전 백화점 안에 있는 카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 욕심쟁이야?”
  “응”
  “프로듀서한테 이것저것 다 해달라고 할 거야?”
  “그래도 할 수 있는 걸로만 좀 부탁할게”
  “욕심 부리면서 나쁜 짓도 할 지도 몰라”
  “괜찮아 카렌”
  나는 카렌의 손을 꼭 잡는다.
  “카렌, 불안하지?”
  “...뭐가?”
  “너,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욕심 부리는 거잖아”
  “......”
  “괜찮아, 다행이야, 그래도 돼”
  “지나치게 부려도?”
  “응, 옛날마냥 다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카렌을 관찰하면서 여러 걱정을 했다. 욕심을 부리면서 다른 아이들이랑 사이가 좋아지지 않는다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옛날이 나았던 걸까? 잘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포기하는 것보다는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 그게 살아있는 모습이다.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면서 포기하는 것보다, 원한다면, 지금이 아무리 괴롭고 상황이 좋지 않을지라도 원하는 걸 원하는 모습이 더 낫다. 그런 결론이 나왔기에, 나는 카렌을 대할 내 태도도 결정할 수 있었다.
  “극과 극이네, 나도 참”
  “그러게”
  카렌이 나한테 고개를 숙인다. 카렌의 얼굴이 내 눈 앞까지 온다.
  “프로듀서는 내 욕심, 감당할 수 있겠어?”
  “아니, 나는 카렌이 좀 더 욕심 부려줬으면 하는 걸?”
  “뭐?”
  “좀 더 욕심부려, 카렌”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갖고 싶은 건 다 탐내... 너가 원하는 거라면, 그래도 돼. 포기하지 말고, 갖고 싶은 건 갖고 싶다고 말하고, 하고 싶은 건 하게 해달라고 말해... 그리고 하고, 갖고, 그렇게 다 해”
  “......”
  “욕심 부리다가 상처도 받고, 욕심 부리다가 실패도 하고, 그리고 욕심 부려서 원하는 걸 얻어내고, 그러는 카렌이 보고 싶어”
  그러고보면 머리를 쓰다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열심히 계속 쓰다듬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도 이미 늦었겠지. 난 계속 카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살아있는다는 건 욕심 부리고 상처입고 원하는 걸 얻고, 그렇게 울면서 웃는 건데 뭘. 그렇게 자신의 색을 가득 채우는 건데 뭘. 그러니 더 욕심부려, 카렌”
  카렌이 눈동자를 피한다.
  “두려워서 다 포기했었지? 그리고 두려워서, 이번에는 다 가지려고 하고 있는 거지? 응, 괜찮아, 괜찮아...”
  카렌의 머리를 그대로 안아준다.
  “포기하지마, 그리고 너무 욕심 부리지도 마. 무서워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조금 어색한 자세였던 덕분에 금세 카렌을 놓아준다. 카렌은 그대로 나한테서 조금 멀어져서 등을 받치고 앉는다.
  “언제까지고 도와주고 지켜줄게, 계속 옆에 있을게”
  받은 건, 돌려줘야 한다.
  “내가 키우는 아이돌이니깐”
  그것이 사랑일지라도.




  카렌이 점심으로 먹고 싶다고 고집부린 스테이크는, 3조각만 먹고 남긴 덕분에 내가 다 먹게 되었다. 과식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카렌이 먹다 남긴 스테이크에 내가 시켰던 오무라이스까지 너무 양이 많았어.
  “역시 고기는 안 맞네!”
  “그러면 다음엔 다른 걸 시켜!”
  “네!”
  해맑게 대답하며 카렌은 앞서 나간다. 그 뒤에서 나는 짐을 가득 들고 낑낑거리며 따라갈 뿐이었다.
  “좀 들까?”
  “괜찮아”
  “많이 무거워보이는데”
  “내가 무거운게 나아”
  “그래...”
  카렌은 웃으면서 다시 앞선다. 차까지 얼마 안 남았다, 조금만 힘내면 된다. 후욱, 후욱, 후욱...!
  “도-착~”
  주차장 차 앞에서 카렌은 웃으면서 팔을 펼친다. 내가 겨우 리모컨을 누르자, 카렌은 뒷문을 열어준다. 내가 짐을 뒷좌석에 넣는 사이 카렌은 조수석에 앉아버린다. 뒷좌석에 넣고보니 짐, 어마어마하게 많네.
  “자, 그럼 출발~”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긴? 집이지?”
  “그렇지~”
  나는 안전벨트를 매면서 네비게이션을 만진다. 자주쓰는 주소 맨 위에 있는 걸 클릭하고 나면, 네비게이터는 38분 거리입니다 하고 안내를 시작한다.
  “다른 가고 싶은 데는 없어?”
  “많지”
  “안 가도 될까?”
  “일단 짐부터 집에 내려놓고 싶으니깐, 잠깐 집에 들리자”
  “아, 그럴까”
  아무래도 오늘의 데이트는 더 이어질 모양이군. 하긴 아직 겨우 2시지.
  “그리고 말이야”
  “응?”
  차는 지하주차장의 꼬인 오르막길을 오른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응...?”
  위험했다. 오르막길 도중에 차가 갑자기 멈추면, 사고난단 말이다.
  “가자”
  “방금 뭐라고”
  “얼른 가기나 해, 기사!”
  “난폭하구만!”
  “욕심쟁이는 원래 난폭한 법이야”
  베- 카렌이 메롱한다. 그 메롱에 나는 그저 웃으면서, 차를 운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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