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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단편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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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2, 2019 01:35에 작성됨.

1.

저희는 교외에 있는 작은 단층집으로 막 이사한 참이었습니다.
동화에서 나올 법한 동네였죠.
주변도 조용하고, 친절한 이웃들에, 정원을 만들 정도의 앞 뜰과 함께
주위로는 나무로 된 작은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저와 프로듀서에게 새 시작을 꾸려나가기에 충분한 곳이라고 말해두면 될까요.
작년의 그 온갖 극적인 일들과 스트레스에서부터 벗어나 다시 나아갈 시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 이 폭풍우가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과거의 모든 더러움과 잔혹함이 씻겨나가기 전, 최후의 무대라고 느끼며 말이죠.
프로듀서도 전기가 나간 거 치곤 어쨌든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보는 큰 폭풍우였으니까요.
벼락의 불빛이 빈 방안을 가득 들이채웠고,
아직 포장도 채 풀지 못한 상자들 뒤로 길쭉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천둥소리가 들릴 때마다 프로듀서는 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잠 잘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마침내 프로듀서는 진정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프로듀서는 침대에 누운 채 싱긋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치히로 씨, 저 창문에서 벼락치는 거 봤어요!"
프로듀서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프로듀서는 저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프로듀서, 어젯밤엔 천둥이 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꿈을 꾼 것 같네요."
"아..."
프로듀서는 어쩐지 좀 낙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 프로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또 다른 폭풍이 곧 올 거라며 다독여주었습니다.


이런 해프닝은 점점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최소 일주일에 두 번씩, 프로듀서는 창문 밖에서 벼락이 치는 걸 보았다고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폭풍이 불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전 아무래도 프로듀서가 그때 봤던 폭풍우가 머릿속에 남아 계속
그날의 꿈을 꾸는 거겠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내가 그 일에 대해 알 법도 없었다며 절 위안했지만,
그때를 되돌아보면 전 제 자신이 쉽게 용서가 안됩니다.
내가 프로듀서를 지켜줘야 했는데.
사람들의 위안의 말들은 저에게 다 부질게만 느껴졌습니다.


전 아직도 그날 아침을 끊임없이 되새기곤 합니다.
커피를 내리고, 시리얼에 우유를 붓고, 신문을 집어 이 지역 근처 범죄자가 붙잡혔다는 기사를 읽었던 그때를 말이죠.
내용은 1면에 실릴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신문에선 이 사람이 목표를 삼으면 한동안 그 집 주위에서 잠복한 뒤,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틈타 창문을 통해 사진을 찍는다는 내용의 이야기였습니다.
가끔씩 더 심한 짓도 저질렀다고 말이죠.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순간, 제 심장은 주저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전 그게 단지 프로듀서의 상상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건 제가 들었던 것 중 가장 소름 돋는 이야기였습니다.
범인이 잡히기 약 일주일 전, 프로듀서는 잠옷을 입은 채 저에게로 왔습니다.
"치히로 씨?"
"네?"
"더 이상 창문에서 벼락이 치지 않아요!"
저는 말에 맞장구를 쳐줬습니다.
"오 그거 다행이네요. 드디어 벼락이 잠잠해졌군요?"
"아뇨! 이젠 제 옷장 안에 있어요!"


전 아직도 경찰이 가져간 사진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이 이야기는 반전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제가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시작부터 당신께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바로 살인자입니다.

그를 죽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우즈키와 함께 걷다가 절룩거리며 걷고 있는 노인을 발견한 사람도 접니다.

그날, 길을 따라 그를 따라가고 싶었던 사람도 접니다.

살인을 위해 가위를 들고 왔었던 사람도 접니다.

17살짜리 소녀를 이끌고 골목길로 그 노인을 따라간 사람도 접니다.

그를 서른여섯 번 찌른 사람도 접니다.

울고 있던 그녀를 달랜 사람도 접니다.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즈키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약속 시킨 사람도 접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살인자입니다.


3.

누군가 침대 옆에 있는듯한 느낌에, 난 잠에서 번뜩 깨어났어.
카오루였어.
시간은 2시 36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미나미 언니, 뭐가 옷장에 있어. 무서워."

프로듀서는 카오루의 목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어.
".. 응? 왜 그래 카오루?"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반쯤 잠에 취한 채였어.

"옷장 괴물이네, 틀림없어."
내가 말했어.

"그래? 그건 처음 듣는데."
프로듀서는 말했어.
"이리 와, 닛타 언니가 확인해 줄 거야 그동안 옆에 와서 앉아."

난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어.
카오루는 프로듀서 옆 이불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프로듀서가 다시 잠자리에 드려는 걸 바라봤어.

"같이 안 갈 거예요? 쓰러트리려면 우리 둘 다 필요할지도 모른다고요."

"아냐, 혼자 할 수 있어. 너만 믿을게."
프로듀서는 교활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어갔어.
"그리고 돌아오지 못하면... 음, 너는 꽤 좋은 아이였어."

난 웃음을 터트리며 방을 나섰어.
카오루의 방은 위층 반대편에 있어서, 난 계단을 올라 방으로 다가갔어.
복도에서 봤을 때,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옷장의 문은 닫혀 있었어.

거의 다가갔을 때, 정말 옷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드문드문 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 소리를 들으려고 조금 발걸음을 늦췄어.
가장 처음 든 생각은 태블릿이나 다른 기기가 옷더미 밑에서 큰 소리를 계속 내고 있는 건가 였어.
뭐 내 생각이 맞든 틀리든 간에, 난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기로 하고 옷장 옆에 놓여있던 야구배트를 집어 들었어.
배트를 손에 쥐고, 숨을 깊게 들이켜 마음을 진정시킨 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어 제꼈어.

문이 열렸을 때, 적어도 소리가 옷더미 밑에서 나고 있단 건 맞았구나라는 걸 볼 수 있었어.
큰 옷 더미가 옷장 뒤쪽 구석에 놓여있었고, 소리는 그곳에서 더욱 크게 흘러나왔어.

소리가 함께 옷더미는 조금씩 들썩 거리고 있었어.
문이 열렸을 땐 그게 사람의 소리란 걸 알 수 있었어.
아이의 소리가 말이야.
두려움과 땀이 미친 듯이 흘러나왔지만, 난 배트를 꽉 움켜쥐고는,
옷더미에서 옷들을 거둬내기 시작했어.

그리고 소리의 근원을 봤는데... 하.. 지만.. 이건 말도 안...

그건 카오루였어.
입에 재갈이 물려 묶여있는 채로 말이야.
눈물이 카오루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얼굴은 시뻘갰어.

내가 재갈을 벗겨내자, 카오루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소리를 내질렀어.

"그게 선생님을 노려!!"


4.

프로듀서한테 매번 지하실에서 뭐 하냐고 물어볼 때마다, 프로듀서는 똑같은 대답만 해요.

"충분히 크면 보여줄게."

난 내가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말하는 건가라고 상상했어요.
그래야 내가 프로듀서를 위해 숲속에다가 시체를 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아님, 내가 술을 마실수 있을 나이가 됐을 때?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서 다음 먹잇감을 찾게 시키려고 말이에요.
아, 아마 총을 가질 수 있는 나이를 말하는 거 일지도.
그래야 사람들을 죽이는데 더 효과적으로 참가할 수 있으니까.

있잖아요, 프로듀서에 대해서 알아야할게 하나 있어요: 우리 프로듀서는 완벽한 연쇄 살인마에요.

프로듀서는 밖에선 이 사실을 잘 숨기고 있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프로듀서의 이런 더러운 비밀들을 알고 있었어요.

퇴근할 무렵, 프로듀서가 한밤중에 둘둘 말린 방수포를 뒷문에서 질질 끌고 가는 걸 봤어요.
그리고 프로듀서 옷에 묻어있던 핏자국.
아래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들.
그리고 끝없이 생기는 매력적인 친구들.
여기서 결론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요.

프로듀서가 어떤 학살을 벌이고 있든 간에, 하나 확실한 건 있어요.
그건 제가 정말 너무너무 끼고 싶어 죽겠다는 거예요.
프로듀서와 아이돌.
같이 완벽한 팀을 만드는 거죠.
먹잇감을 낚아올려서 처리하는 거.
사실상 내 타고난 권리니까.

18번째 생일이 지나고 며칠 뒤, 프로듀서가 마침내 절 불렀어요.

프로듀서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호소력 넘치게 살인 욕구의 본질에 대해 설명했어요.
하지만 가족이 몇 년 전에 프로듀서를 떠난 이후로, 프로듀서는 망가졌고 그저 재미 삼아 죽였던 거였어요.

"사치코, 난 네가 내 유지를 이어주었으면 좋겠어."
프로듀서는 그렇게 단언했고, 전 그저 경외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어요.

지하실로 내려가자, 남김없이 전부 다 제가 정말 바라던 악몽 같은 모습이 펼쳐져 있었어요.
쇠사슬에, 정육점 식칼, 그리고 핏자국들 - 모든 게 아래에 있었어요.
몇 시간 동안 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고문 기구들을 살펴봤어요.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기구들의 진정한 무게를 느낄 수 있었죠.
그들이 잃은 목숨, 그들이 겪은 모든 고통마저.

"이거 끝내주네요. 프로듀서!"
전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있잖아요 프로듀서, 진짜 이거 말해주려고 지금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됐었어요."

"글쎄."
프로듀서는 히죽히죽 웃었어요.
프로듀서의 목소리에선 악의가 보였어요.

"말했잖아, 난 네가 충분한 나이가 되길 바랬다고.."
프로듀선 잠시 말을 멈추곤, 미소를 지었어요.

"사형을 선고받기 충분한 나이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5.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데, 아리스가 잔뜩 부루퉁해서 화가 난 표정으로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어.

"좋은 아침, 아리스!"이라고 인사하면서 난 주걱을 흔들었지.

근데 갑자기, 아리스의 표정이 어둡게 변하는 거야.

"매일 그렇게 말하잖아요!"

"응?"

"내가 알람을 일찍 설정해 놓든 간에, 매번 9시 반에 깨어난다고요.
그리고 매일 프로듀서는 거기 서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고 있고,
매일매일 나한테 '좋은 아침, 아리스!'이라고 말한다고요."

아리스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어.

좀 혼란스러웠지만, 무슨 나쁜 악몽이라고 꾼 거겠지 라고 넘기기로 했어.

"일로 오렴, 아리스."

난 아리스를 꽉 껴안았어.

"잘 들어, 네가 두려워할 건 하나도 없어! 아무런 나쁜 일도 안 일어날 거란다.
내가 여기 있잖아."

"제가 이 말 하면 프로듀서는 항상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아세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곧 있음 계란 다 태워먹을 거예요."
아리스의 목소리는 체념한 듯이 들렸어.

난 고개를 돌려 아리스의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는, 황급히 불을 껐어.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흠, 그럼 네가 그렇게 확신한다면 저 사람은 누군데?라고 놀리듯이 물었어.

아리스는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
단지 슬퍼 보였지.

"그냥 가서 대답하세요 프로듀서. 그렇지 않으면 끝은 훨씬 더 끔찍할 테니까."


오랜만인 괴담입니다 프로듀서가 피해자 거나 가해자가 돼버렸네요.

프로듀서는 고통받는 게 제일 재밌긴 합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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