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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로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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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31, 2019 19:20에 작성됨.

닛타 미나미는 기본적으로 우등생이다. 자격증을 여러개 가지고 있는 것도, 성적이 우수한 것도 그녀가 우등생이기 때문이다. 이 우등생이라는 말은 단순히 바꾸자면,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사회적으로 맡겨진 어떤 일을 자신의 의지에 반할지라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낸다는 일이다. 그러니 뛰어난 등급의 사람이라는 말이 붙는 것이다.
  그런 우등생들에게 공통되는 특징 중 하나가 있다면 매사 진지한 것인데,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해당한다. 농담이든 답을 모르겠는 질문도 우등생들은 어떻게든 대답을 하려고 한다. 이것이다. 닛타 미나미가 5분 정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곰곰히 생각만 하는 이유가.
  “그냥 편하게 대답해 주세요, 편하게”
  질문을 던진 인터뷰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미나미는 상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그런데 역시... 잘 모르겠네요”
  “그렇죠, 좋아하는 건 딱히 이유가 없다고도 하니깐요”
  “으음, 그건 아니고...”
  잠시 갸웃, 거리는 미나미. 하지만 인터뷰어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럼 다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미나미씨의 이상형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 이상형이요?”
  미나미는 잠시 당황한다.
  “이상형은 그... 그냥 친절하고 착하고 멋진 사람...?”
  “아하하핫, 제일 어려운 거 아닌가요 그거!”
  인터뷰어가 가볍게 웃는다.
  “그런가요?”
  “그럼요! 그거 그냥 상냥하고 예쁜 사람, 이라는 거 같다고요”
  “으음, 그렇네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냥 단순히, 그래요, 지금 좋아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 사람의 특징이라든가?”
  속보이는 유도질문이었지만 미나미는 깨닫지 못하고 대답을 꺼낸다.
  “으음... 연상에... 저질 농담이나 하고 그러고... 조금 못믿음직스러울지라도... 아무튼 저만을 생각해주는 사람...?”
  “포인트는 저만을 생각해주는 사람이군요?”
  “네”
  “팬분들이 모두 이상형이신 거군요!”
  “물론이죠, 팬분들께는 항상 감사하고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접대인사도 인터뷰에 꼭 실어드리겠습니다”
  “지, 진심이에요!”
  “아하하핫, 농담입니다 농담”
  인터뷰어는 들고 있던 수첩에 가볍게 메모를 하고는 페이지를 넘긴다. 남은 인터뷰 시간은 10분을 향해 간다.




  “미나미, 수고했어”
  옆좌석에 타는 미나미에게 프로듀서는 음료수를 하나 건낸다. 미나미가 선전했던 스포츠 드링크. 미나미는 프로듀서가 건낸 걸 바로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목덜미만이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꾸물꾸물 움직인다.
  “감사합니다”
  한 번에 한 통을 다 비우는 미나미.
  “목, 많이 말랐구나”
  “인터뷰때문에 말을 많이 해서요! 기자분, 유쾌한 사람이네요”
  “좀 가볍다고 소문난 사람이긴 해도 인터뷰에 이상한 걸 싣지는 않을 거야, 하하핫”
  프로듀서는 조용히 차를 몰아서 주차장을 나간다. 주차장 입구 턱에 차가 흔들리면서 미나미가 말을 꺼낸다.
  “그런데 프로듀서, 저는 프로필 갱신이라든가 하지 않는 건가요?”
  “응? 왜? 혹시 가슴이 커졌어?”
  퍽. 똑바로 달리던 차가 살짝 흔들린다.
  “운전 중에 때리지 마, 위험해”
  “맞을 소리를 하는게 누군데요!”
  “죄송합니다!”
  이번엔 손을 좀 크게 치켜올렸기에 프로듀서는 즉시 사과한다.
  “그런데 프로필은 왜?”
  “취미 때문에요”
  “취미? 라크로스?”
  “네...”
  “혹시 라크로스가 싫어졌어?”
  “그건 아니에요”
  단지... 미나미는 말을 잠시 멈춘다.
  “저, 정말로 라크로스를 좋아하는 걸까요?”
  “응?”
  갸우뚱. 좌회전하는 차를 따라 두 명의 몸이 살짝 기울어진다.
  “인터뷰 중에 라크로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왠지 대답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라크로스가 정말 내 취미일까?”
  “그렇구만”
  이번에는 우회전. 다시 두 명의 몸이 살짝 기운다.
  “혹시 취미란에 다른 쓰고 싶은게 생겼어?”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라크로스를 그냥 계속 취미로 가지고 있어도 좋지 않을까?”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는걸요?”
  “좋아하는 거에 이유가 필요해?”
  “그건 아니지만 그거랑은 조금 달라요... 뭐랄까, 잘 설명하지 못하겠네요. 그냥 이유없이 좋아, 하는 거랑은 달라요”
  “복잡하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라디오를 켜 놓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차 안은 금세 정적으로 가득찬다.
  “그러면 이러면 어때?”
  프로듀서가 손가락을 딱 튀기며 말한다.
  “오늘 하루정도는 라크로스가 좋은 이유를 생각해보는건?”
  “그래볼까요?”
  “응, 취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하지, 음음”
  역시 우등생이다. 귀찮다거나 필요없다고 쳐낼만한 제안도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 그런 성실함이야말로 그녀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지.
  “생각보다 어렵네요”
  “그럴 때는 말이야 처음부터 생각해보면 어때?”
  “처음이요?”
  “응. 라크로스를 시작한 이유는 뭐야?”
  “왜 했었지... 그렇네요, 그냥 권유받아서 였어요”
  “그렇게 단순한 이유였어?”
  “네, 대학에 들어가서 입학식 날에 저를 권유한 선배가 너무나도 적극적이어서 그만...”
  “그 선배가 미나미한테 흑심을 품었구만”
  “그건 아닐 거에요, 여자였으니깐요”
  여자였어도 흑심을 품을 수는 있지 않을까. 물론 프로듀서는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런데 그냥 끌려간 거 치고는 열심히 하네?”
  “아 네 그냥... 열심히 하다보니 제법 재밌기도 해서요. 동아리를 하나 정도는 들어야지 싶기도 했어요”
  “역시 우등생이야”
  “정말이지, 놀리지 마세요 프로듀서”
  “칭찬이야 칭찬”
  둘이 이렇게 잡담을 하는 사이에 차는 사무실에 도착한다.




  라크로스는 그렇게 유명한 스포츠는 아니다.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고, 대학 내에 동아리는 많긴 하지만 사실 유행하는 건 북미지역 정도로, 올림픽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하고 있을까? 미나미는 우등생이다. 그렇기에 권유받은 건 일단 해본다. 일단 해보는 이상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는 이상 왠만하면 끝까지 다 한다. 단지 그 뿐인걸까? 그렇기에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거 같다.
  라크로스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떠오른다. 열심히 연습하던 것도, 부원들이랑 같이 어울리던 것도, 나름 성과를 내면서 경기에서 이긴 것도... 많은 추억들이 쌓여있다. 그것들이 즐겁기만 했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나름 즐겁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다르지 않나? 좋아하는 이유라는 건? 지금 생각한 건 자신이 해 온 경험과 그 결과지, 좋아하는 이유랑은 다른 거 같다. 좋아하는 이유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할까, 예를 들면 어떤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 남자가 잘생겨서라든가, 상냥해서라든가, 무언가 이런 식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라크로스에서는... 난 라크로스에서 무슨 매력을 느꼈던 거지? 잘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라크로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선배에게 권유받아서 시작해버리기도 했고 운동 동아리는 하나 들어두면 나중에 여러모로 경력 취급을 받으니 쓸모있다'는 점을 뺀다면 오히려 싫어했었다. 그렇다. 처음에는 라크로스가 재미있지 않았고, 싫었다.
  미나미의 생각은 프로듀서가 건낸 도시락으로 끊겨버렸다. 반사적으로 도시락을 받아 뚜껑을 열어보면 구운 닭가슴살과 오일샐러드, 토마토 그리고 호두와 아몬드가 조금 보인다.
  “그러고보면 프로듀서는 요리 좋아하세요?”
  방금 전까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미나미를 보고 있었기에, 맥락없는 이 질문에 프로듀서는 바로 대답을 꺼내진 못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그녀의 몸이 식지 않도록 얼른 외투를 챙겨오고, 다음 일 시간까지 비는 시간이 지금 정도밖에 없으니 준비해온 도시락도 챙겨오고 정신없는 프로듀서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하다.
  “별로 안 좋아하셨죠?”
  “어, 아니, 어 안 좋아하긴 했는데 요즘은 꽤 재밌어”
  “왜요?”
  오전에 얘기하던 것의 연장선이구나. 프로듀서는 알아챈다.
  “글쎄...? 하다보니 제법 재밌어 지더라고? 어때, 이번 닭구이는?”
  “괜찮아요... 조금 식었지만요”
  “아침에 준비해오니깐 식는 건 좀 봐주라”
  “당연히 알죠, 당연히!”
  프로듀서의 농담에 닭을 먹던 미나미가 당황한다.
  “다행이네, 하하핫... 이젠 좀 요리가 감이 잡히는 거 같아”
  “처음에는 정말 맛 없었으니깐요”
  “히잉”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앙탈을 부리며 프로듀서는 미나미 옆에 앉는다. 도시락을 열면 미나미와 같은 메뉴가 들어있다.
  “그걸로 양, 괜찮으세요?”
  “괘아아 괘아아 사패야아오”
  입에 음식물 넣은 채로 대답하지 마요. 미나미의 핀잔에 프로듀서는 바로 음식을 삼킨다. 꼭꼭 씹어드시라니깐요? 이어지는 핀잔에 프로듀서는 멋쩍은 듯 웃으면서 넘긴다. 바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버린다.
  “이제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낫지?”
  “그렇다고 해드릴게요, 후훗”
  “아니 정말이잖아, 애초에 밖에서 사 먹는 건 영양 밸런스가 잘 갖춰진 것도 별로 없고 말이야”
  “그렇다고 프로듀서가 직접 요리를 할 줄은 몰랐지요”
  “어쩔 수 없지, 미나미처럼 완벽한 몸매를 계속 관리하려면 식단에 철저해야 한다고. 거기에 미나미가 절약하고 싶어했잖아”
  “그건...”
  “아직 학생이니깐, 앞으로 혹시 모르니깐, 이런 말 하면서 충실하게 저축하는 것도 참 우등생, 모범생이라니깐...”
  “그런 말에 직접 매일 아침마다 제 도시락을 준비해오기 시작하신 프로듀서도 모범생이시지만요”
  “그런가?”
  우물우물 우물우물. 두 사람이 조용히 음식을 씹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에서만 들린다.




  애초에 프로듀서랑 미나미는 그렇게 잘 맞는 타입은 아니었다. 완벽한 우등생 타입인 미나미에게 프로듀서같이 어중간한 모범생은 ‘흔하디 흔한’ 사람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담당 프로듀서가 아니었다면 만날 일도 없었을 터다.
  처음 둘의 합이 그렇게 잘 맞지도 않았다. 프로듀서의 농담은 재미없거나 미나미에게 통하지 않았고, 미나미의 성실함에 간간히 태클을 거는 건 오히려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었었다. 재미없고 귀찮은 사람. 말로 꺼낸 적은 없지만 첫 한 달 정도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재미없는 태클이 자신의 숨통을 트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미나미가 깨달은 건 한참 나중의 일이었지만서도.
  하지만 둘은 계속 붙어 있었다. 물론 일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프로듀서는 기본적으로 미나미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재미 없는 농담도 먹으면 안 되는 단 간식도 쓰잘데기 없는 제안들도 모두 미나미를 위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농담은 점점 미나미에게 맞는 것으로 변해갔고, 단 간식은 미나미가 필요한 식단의 도시락으로 바뀌었고, 쓰잘데기 없는 제안들은 점점 더 미나미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제안들로 변해갔다. 아니면 또 모르지. 미나미가 프로듀서의 농담에 익숙해지고 그의 도시락을 즐기기 시작했고 그의 제안들을 정말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뿐일지도.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지금은 둘 다 잘 맞는다. 서로가 서로를 제법 비중있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프로듀서가 제안한 퇴근길의 드라이브는 미나미의 기분을 조금 풀어주었고, 미나미가 갑자기 꺼낸 얘기에 프로듀서도 금세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역시 어렵네요,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가, 하긴 감정의 영역이니깐”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차 안으로 석양빛이 계속 각도를 바꾸가며 들어왔다. 그 각도가 종종 프로듀서의 눈을 찌르기에, 미나미는 운전석의 선바이저를 펼쳐주었다. 프로듀서는 자연스럽게 그 호의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결국 오늘 결론이 안 나온 모양이네”
  “그렇네요”
  차는 계속 산 위를 향해 나아간다.
  “좋아하는 이유... 그러니깐, 왜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거지?”
  “네, 아무리 생각해도 라크로스니깐 좋아하게 된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 스포츠를 딱히 좋아한 편도 아니고 말이죠”
  “그냥 스포츠 자체가 좋은 거 아닐까?”
  “그건 아니에요, 라크로스 말고 다른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는걸요”
  “미나미라면 농구도 잘 할 거 같은데”
  “내키지는 않아요”
  “그래?”
  흐음...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러면 라크로스를 좋아하지 않는 거 아닐까?”
  “네? 그건 음...”
  잠시 고민해보는 미나미.
  “아닌 거 같아요. 그랬으면 애초에 취미라고 쓰지도 않았을 걸요”
  “하긴 미나미니깐... 이력서에 쓰는 걸 대충 쓰진 않았겠지”
  돌돌돌돌. 차 밑의 울퉁불퉁한 라인들이 차 안을 조금 소란스럽게 만든다.
  “아, 그러면 그건가?”
  “무엇이죠? P씨”
  “처음에는 좋아한 게 아니다, 라든가?”
  “처음에는...요?”
  “응, 미나미가 흑백으로만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냥 단순하게, 하다보니 좋아진 거일 수 있잖아”
  차의 속력이 줄어든다. 목적지에 슬슬 도착하는 모양이다.
  “그런가요...”
  “엇차, 다 왔다”
  그 말에 둘은 차에서 내린다. 산 중턱에 있는 간이 주차장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노을빛이 저 아래에 있는 도시를 물들이고 있었고, 둘은 그걸 내려다보았다.
  “그렇네요... 라크로스는 그냥, 그렇네요. 하다보니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런 거지”
  “그래도 이상하네요, 그렇다고 해도 라크로스의 매력이 뭔지 딱 잘라 말하기가 힘들어요”
  “으음...”
  프로듀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좋아졌다는 말이 조금 틀린 걸지도 모르겠다”
  “틀렸다고요?”
  “응, 좋아진게 아니라 좋아지게 만들었다, 라고 해야 할 거 같네”
  “라크로스는 사람이 아니에요”
  라크로스가 저를 꼬시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미나미가 가볍게 웃는다.
  “으응, 그게 아니라 미나미가 말이지”
  “제가요? 후후훗...”
  여전히 농담으로 들렸는지 미나미가 웃었다.
  “미나미는 라크로스를 열심히 했지? 권유받아서 들어가고, 체험도 열심히 하고, 훈련도 열심히 하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랑도 열심히 어울리고...”
  “그랬죠”
  “응, 그 말이었어”
  갸우뚱. 프로듀서를 돌아보며 갸웃거리는 미나미에게, 프로듀서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꺼낸 것을 건낸다.
  “P씨? 이건 무엇인가요?”
  포장된 작은 꾸러미를 받으며 미나미가 물었지만, 프로듀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희미하게 웃어줄 뿐이었다. 미나미는 이번에는 반대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꾸러미를 풀러본다. 풀어낸 꾸러미 안에서는 펠트로 만든 작은 라크로스채 모양의 악세사리가 나왔다.
  “아핫, 이게 뭐에요”
  “선물이야 선물. 열심히 만들었어”
  “이런 취미도 있으셨군요 프로듀서”
  미나미는 악세사리를 살펴본다. 펠트로 만든 작은 라크로스채는 허접한 듯 하면서도 정교해서는 제법 귀여웠다. 그 끝에 달려 있는 끈을 보면 핸드폰에 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취미라기 보다는 그냥.. 처음 만든 거지만 말이지”
  “정말요? 꽤나 잘 만드셨는데요?”
  “응, 그건 세번째니깐”
  “네?”
  “앞에 두 개는 실패해서 말이지”
  괜히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프로듀서.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선물을?”
  미나미는 핸드폰을 꺼내 악세사리를 핸드폰에 단다. 미나미의 깔끔한 핸드폰에 조금 어울리지 않는 악세사리가 달린다.
  “오늘이 500일이거든”
  “500일이요?”
  “응, 너랑 만난지 500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시간 빠르지~?”
  “그러게요 P씨”
  “뭐 그냥 그래서 주는 선물인 거니깐”
  부끄러운 듯이 다시 머리를 긁적이는 프로듀서. 미나미는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서 웃었다. 분명히 그냥 평범한 아저씨인데, 왜 귀엽게 보이는 건지.
  “열심히 만드셨군요”
  “어, 펠트는 처음이었으니깐”
  “으응, 아니오 다른 얘기에요”
  응? 하고 되묻는 프로듀서. 그런 프로듀서를 보면서 미나미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좋을 수도 있지만, 좋다는 감정을, 아니 좋아한다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라크로스를 좋아한 이유는 자신이 그렇게 쌓아갔기 때문이다. 라크로스를 하고 즐기고 어울리고 계속 하고... 그러면서 미나미는 스스로가 라크로스를 좋아하도록 만든 것이다. 라크로스를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씩 쌓아간 것이다.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아도, 좋아한다는 걸 점점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소중한 것은, 이렇게 천천히 만들어나가는 것 아닐까. 그런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의미나 가치가 큰 것 아닐까?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채워서 만들어나간 것이니깐. 다음에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계속 하면서 좋아하는 걸 쌓아갔으니깐요, 라고 대답해야겠다. 미나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을 끝내고 미나미는 눈 앞의 프로듀서를 본다. 왠지 귀여워서 웃었다. 그러고보면 100일 때는 괜히 엄한 속옷 같은 걸 선물해서 화낸 적도 있었지. 그걸 생각하니 이젠 우스워졌다.
  “왜, 왜 웃어?”
  괜히 긴장하는 프로듀서를 놀리고 싶어졌다.
  “아니에요, 옛날 선물을 떠올렸어요”
  “뭐? 혹시 레고?”
  “응... 그건 적당히 마음에 든 선물이었는데 말이죠. 제가 말한 건 그 란제리였답니다”
  “아, 아니 그건, 아 진짜 미안...”
  “후훗, 바보...”
  놀리는게 재밌어서 어떻게 해.
  “그거 아세요 P씨?”
  “응...? 혹시 이 선물 별로야...?”
  “아녜요, 이 선물은 마음에 드네요. P씨가 만들어줬다는 점이 더 특히요”
  “그, 그러면 뭔데?”
  미나미는 씨익 웃는다.
  “P씨가 100일이라면서 줬던 그 란제리 말이죠”
  “어, 어어...”
  “사실 아직 가지고는 있답니다?”
  노을은 이제 슬슬 다 가라앉아서, 산부터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둘 사이를 비추고 있던 주홍빛은 물러가고 이제 둘 사이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눈동자만이 빛을 조금씩 띄고 비출 뿐이었다.
  “집에, 말이죠”
  밤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을 감싼다. 식어가는 날씨에 프로듀서는 반사적으로 미나미의 몸을 식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타이밍에 바로 차에 타자고 하면... 머뭇거리는 프로듀서에게 미나미가 마지막 말을 띄운다.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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