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사쿠마 마유의 실종

댓글: 6 / 조회: 1269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7-21, 2019 20:47에 작성됨.

 마유가 사라진지 한 달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납치라고 생각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협박 전화도 오지 않았고, 사무실과 기숙사 근처 CCTV에도 마유가 누군가와 접촉하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마유가 마지막으로 들린 장소는 이 사무소. 내부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왜 밤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찾아왔는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들어가는 장면만이 있을 뿐. 그렇게 어떠한 전조나 수상한 점도 없이 아이돌 사쿠마 마유는 이 세상에서 증발해 버렸다.

 마유가 없어졌다는 걸 알아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출근한 내가 마유에게 전화를 걸었고 수상함을 눈치 챘다. 단지 전화를 받지 못 했을 뿐이지만, 그것은 나와 마유에게 있어 매우 유별난 일이었다. 촬영이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마유가 내 전화를 못 받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첫 전화를 안 받자 나는 바로 기숙사의 다른 아이돌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유가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고, 방을 확인해 봤으나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기숙사 식당에 마유가 만들다 만 것으로 보이는 도시락 통만 세 개가 남아있었다.

 언제나 내가 전화를 걸면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마유예요.” 하고 작게 웃으면서 답하는 아이였다. 그보다 더 많이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애초에 스케줄이 있는 동안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는 게 마유였다.

 때문에 나는 경찰조사에서 1순위 용의자로 꼽혔다. 꽤 오랫동안 불려나가야 했고 한동안은 사무실보다 취조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무소 동료들과 아이돌들의 증언 덕에 생각보다는 일찍 빠져나온 게 다행이었다. 복귀하자마자 밀린 업무에 착수했으나 머릿속에서 마유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꽤 많은 팬들이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마유는 예전에 독자 모델을 했는데 귀여운 얼굴로 그 때부터 인기가 많았다. 아이돌을 시작한 뒤로 본격적으로 미디어 노출도 많아져서 팬층이 늘었기에 사무소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마유의 실종은 우리에게도 팬들에게도 크나큰 상처였다.

 내가 아직 조사를 받고 있던 사건 초기에는 극성팬들로 인해 팔을 다치기도 했다. 발 빠른 가십기자들이 내가 용의자라는 것을 떠벌렸기 때문이다. 사무소의 법적 대처가 아니었다면 더 큰일이 있었을지 모른다. 깁스를 한 팔을 보면서 나는 이 상처를 마유가 봤다면 무슨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하고는 했다.

 담당 아이돌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마유는 조금 섬뜩한 면이 있는 아이였다. 평소에는 착하고 주위의 평도 좋은데다 장기가 많고 귀엽지만 나와 관련된 일에는 눈빛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원래부터 살짝 감겨 있는 눈에서 광채가 사라진다고 할까. 아마 누군가 나를 상처 입혔음을 알게 된다면 극도로 분노할지 모른다. 그 상대가 설령 팬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아이돌을 관두게 되더라도.

 비난 받을 만한 사실을 하나 말하겠다. 나는 사실 마유에게 다친 내 팔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이라도 돌아와 줄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서라도 마유를 되찾고 싶었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나는 마유의 마음에 진심으로 답한 적이 없었다.

 프로듀서님. 지금만은 마유를 봐주세요. 네. 알고 있어요. 프로듀서님이 항상 마유를 봐주고 계신다는 걸. 그치만…… 아주 약간, 어느 새인가 아주 약간…… 시선이 위를 향해 있어요. 라이브를 성공시키고 있는 마유. 톱 아이돌로서 반짝이는 마유. 그런 약간 미래의 마유를 믿고 계속…… 목표로 해주고 계세요. 그건 정말로 정말로 기쁜 일이에요. 그렇지만 지금만은 지금의 마유를 봐주세요. 해피…… 밸런타인.

 그 날 받은 초콜릿과 사랑의 답례를 나는 아직 하지 못 했다. 혹시 몰라 가져온 사탕과 편지를 나는 책상 아래에 놓아두었다. 마유는 자주 내 업무 책상 아래에 들어가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책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아이돌들이 있었지만 마유는 그 중에서도 의도가 분명한 축에 속했다. 그 의도를 피하지 말고 좀 더 빨리 주었더라면…….

 보고 싶어, 마유.

 이런 식의 후회를 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사무소의 아이돌들은 마유에게 좀 더 잘 대해줄 걸 그랬다며 사소한 행동마저 되돌아보았다. 마유는 때때로 오해를 사기 쉬운 성격이라 작은 마찰을 빚기도 했으니까. 시라사카 코우메도 그 중에 하나였다.

 사건이 있은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코우메는 울면서 내게 말했다. 그 날…… 그 날…….

 마유가 사라진 날, 나, 마유랑 싸워버렸어. 마유는 초콜릿을 줬으니까 프로듀서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가 프로듀서랑 그 아이랑 같이 호러 영화를 보는 바람에…….

 밸런타인 데이 다음 날. 나는 전부터 약속한 대로 코우메와 같이 좋아하는 호러 영화를 보았다. 마유는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듯 했다. 어째서 프로듀서와 단 둘이 있었냐며 코우메를 원망했다. 코우메는 단 둘이 아니라고, ‘그 아이’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코우메의 눈에만 보인다는 그 아이가 말이다. 그러나 마유에겐 통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일들이 이 사건의 발단일 리는 없고 잘못이 있어도 그건 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속박시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사람이겠지. 마유가 돌아오지 않는 한 풀리지 않을 속박을.


 마유가 프로듀서님의 책상 아래에 갇힌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디자인에 깔끔하게 정돈된 물건들. 몸을 숙이면 사람 한두 명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책상은 프로듀서님이 입사한 이래로 쭉 쓰고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라서 밑에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을 느낄 수 있는, 자연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 그곳. 문도 쇠창살도 달려 있지 않지만 마유는 그 날 이후로 쭉 이곳에서 나가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날. 프로듀서님께 마음을 담은 밸런타인 초콜릿을 드린 지 이틀째 되는 날. 그 어느 때보다 마유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마유의 모든 것을 전했으니 프로듀서님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화이트 데이가 오기만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사무실에 온지 얼마 안 되어 그 행복은 식어버리고 맙니다. 함께 아이돌을 하는 동료 코우메가 전날에 프로듀서님과 ‘단 둘이’ 영화를 봤다고 자랑하고 있었거든요.

 마유는 알지 못 했습니다. 마유는 방심하고 말았습니다. 프로듀서님은 좋은 분이라 마유 외의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니까요. 어쩌면, 아니 분명 코우메 말고도 프로듀서님께 접근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마유는 프로듀서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실로 연결된 사이라고. 그 누구도 끊어놓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그래서 마유는 그 전에 마유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독자 모델로서 일구어 놓은 것들과 예전 사무소 사람들과의 인연마저 끊을 각오로 프로듀서님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프로듀서님이 마유를 택하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우리의 운명을 누군가 방해하는 것이겠죠? 바로 코우메가.

 생각이 거기서 끊기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마유는 코우메에게 심한 말들을 해버렸고 깊은 후회가 밀어닥쳤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불안일 뿐인데. 단지 프로듀서님과 함께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코우메에게 뒤집어 씌워버렸습니다. 입으로는 운명을 말하면서 그 운명을 믿지 못한 나약함을 코우메 탓으로 돌렸습니다.

 사과해야만 하지만 마유의 잘못을 말만으로 지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마유와 코우메, 그리고 프로듀서님이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함께 나눠먹으며 화해할 계획을 세웠고 준비는 순조로웠습니다. 자주 프로듀서님께 줄 도시락을 싸다 보니 마유는 요리에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완성된 도시락을 보니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여기에 버섯 소테를 장식으로 넣으면 좋을 텐데.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방금 막 떠오른지라 준비된 재료가 없었는데…….

 사무실에 있는 쇼코의 버섯이 떠올랐습니다. 프로듀서님의 책상 아래에서 키우는 버섯. 그걸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밤중에 멋대로 사무소에 들어가도 되는 걸까, 마음대로 버섯을 써도 되는 걸까, 고민하고 있을 때…….

 넌 정말 멋대로 구는 구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고개를 들다 마유는 그만 머리를 찧고 말았습니다. 천장이 이렇게 낮을 리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채 주위를 살펴보니 마유는 어느새 사무실 책상 아래에 와 있었습니다. 프로듀서님을 생각하다 보면 모르는 사이 이렇게 몸이 멋대로 움직여 버릴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보다 방금 목소리는 무엇일까요. 이 시간에 사무소에 또 누가 있는 걸까요. 확인하려고 했지만 마유는 책상 밑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코앞에 있는 바깥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것처럼 마유를 막았습니다.

 마유는 보이지 않는 벽을 때렸습니다. 그것은 눈에만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손에 닿는 감촉도 거리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유의 뒤로 책상 아래의 어둠 속 미지의 공간이 펼쳐져 마유를 가둬버렸습니다.

 이게 뭐야? 누가 도와줘요! 크게 외쳤지만 바깥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설령 사람이 있다 해도 그들에게 닿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유가 낸 소리는 책상 아래를 맴돌 뿐. 그리고 책상 바깥도 어디도 아닌 마유의 귓가에서 아까 들었던 목소리가 말을 걸었습니다. 이건 벌이야.

 코우메에게 못되게 굴은 벌. 넌 이제 그 누구와도 이어질 수 없어. 특히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는 더더욱.

 순간 소름이 돋으며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짐작 갔습니다. 설마…… 그 아이? 대답은 없었지만 침묵이 오히려 긍정으로 느껴졌습니다. 코우메에게만 보이는, 코우메의 친구 그 아이. 그 아이가 마유를 가뒀습니다. 낮에 싸웠던 일 때문에. 마유를 프로듀서와 닿지 못 하게 속박시켰습니다.

 안 돼요, 제발……. 마유는 반성하고 있어요. 코우메에게 사과하고 싶은데, 프로듀서님께 대답도 들어야 하는데. 마유를 풀어주세요, 제발! 제발…….

 날을 세웠습니다. 소리를 질러서 목이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배는 고프지 않았습니다. 허무하게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프로듀서님. 프로듀서님이었습니다.

 아아. 프로듀서님. 와주셨군요. 여기, 여기에 마유가 있어요.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역시 닿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있는 프로듀서의 다리가 마치 우주의 끄트머리로 멀어져가는 것처럼. 그 아이가 말한 대로 이제 우리는 이어질 수 없고,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처럼. 프로듀서님을 볼 수 있는 마유와 달리 프로듀서님은 마유가 어디 있는지 느끼지 못 하셨습니다. 마유는 그만 절망해서 머리를 바닥에 세게 찧고 말았지만, 고통이 세게 일고 이마에 피가 흐를지라도 기절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프로듀서님은 금방 마유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챘고 경찰에 연락하였으나 오히려 오랫동안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마유가 가장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유 때문에.

 프로듀서님이 조사를 받는 시간은 마유에게 있어 가장 큰 지옥이었습니다. 이 아래에서 프로듀서의 발치를 볼 수 없었고, 항상 믿음직했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씩 사무실로 오실 때조차 여느 때보다 피곤에 찌들어 있었고, 이 모든 게 마유의 탓이라는 사실에 심장이 조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프로듀서가 팔을 다쳐서 왔습니다. 책상 아래에선 잘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깁스를 하고 계셨고, 멀리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그것은 마유의 극성팬 때문이었습니다.

 어째서. 마유의 팬이라면서 어째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마유의 팬이라 주장하는 그 사람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 큰 바람이었습니다. 마유는 이 책상 아래에서 나갈 수조차 없습니다. 프로듀서님께 이곳에 마유가 있다고 알리는 것조차 할 수 없습니다. 코우메에게…… 사과할 수도 없습니다.

 코우메 역시 책상 아래의 마유를 보지 못 했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마유와 싸운 것을 후회하였고, 그날 이후로 그 아이도 보이지 않는다며 더욱 슬퍼했습니다. 미안해요, 코우메. 다 마유의 잘못이에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마유를 찾고 있을까요. 아마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바깥의 일을 마유가 알 방법은 없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주워들을 뿐. 자주 책상 아래에 들어왔던 동료들도 마유가 생각나서인지 이젠 책상 아래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죽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시간만을 보내는 마유가 아직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건 프로듀서님 덕입니다.

 프로듀서님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셨는지 자주 책상에 앉으실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마유를 그리워하십니다. 오직 그 사실만이 유일하게 마유를 기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프로듀서님의 출퇴근을 통해 마유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경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보고 싶어, 마유.

 프로듀서님이 사탕과 편지를 책상 아래에 놓으셨습니다. 밸런타인 데이에 드린 마유의 마음에 대한 답례. 좋은 예감만이 듭니다. 분명 저 안에는 마유가 원하는 답이 들어있을 겁니다. 그러나 마유는 거기에 닿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걱정 말아요, 프로듀서님. 마유는 이곳에서 쭉 프로듀서님을 지켜볼 거니까. 프로듀서님과 함께할 거니까. 프로듀서님이 마유를 보지 못 하더라도 마유는 프로듀서님 곁에 있으니까.











좀 더 절망적인 엔딩을 생각하다가

마유가 너무 불쌍해서 이 정도로 끝냈습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