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피스 시리즈]4.시라사카 코우메-영원한 지금

댓글: 5 / 조회: 764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07-20, 2019 23:32에 작성됨.

영원히 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그것은 인류가 항상 꿈꿔오던 소망이니까.


옛날 진시황도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초를 찾아다녔다고 하잖아.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텔로미어의 중요성을 알고서는 그걸 연구하는 기술도 발명됐다고 하지.


그럼에도 우리 중,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 중 오래 산 사람은 몇 있어도 죽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모두 다, 죽었어.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죽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무서워. 그 시간이 벌써 코앞인 듯이, 죽음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와. 천국과 지옥이 바로 내 눈 앞에서 보이는 느낌이라고.


만약, 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간다면, 늙지 않고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조금 늦은 밤, 스케줄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어. 근데 잠이 안 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문득 아까 카와시마 씨가 하던 얘기가 생각나더라.


“나이를 먹어선지 요즘 피부도 같이 늙는 느낌이라니까~”


...그렇구나. 사람은 엄청 빨리 늙는구나. 이제 고작 28살인 카와시마 씨가 벌써부터 늙는 걸 저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라면 대체 사람은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는 걸까. 나도 곧 늙겠지...? 너무 이른 걱정인가?


누워서 그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 위를 두 바퀴 돌더니 말했어.


“아직 어린 애가 왜 벌써부터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

“사람 인생은 모르잖아...넌 유령이라 상관없겠지만...”

“음...그럼, 내가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줄까?”

“에...? 방법? 그런 게 있어? 뭔데?”

“일단 지금은 자, 내일 아침 되면 저 책상에 그 ‘방법’이 준비되어 있을 거야.”

“뭘까...? 궁금하다. 내일 되면 진짜 준비되어 있는 거지?”

“물론이라니까~기대해도 돼. 그러니까 얼른 자.”


그 기대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꿈속으로 빠져들어 프랑켄슈타인이 태워주는 목마를 타고 사다코의 우물을 여행했어. 그것은 정말 즐거웠었어.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 내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사과인지 뭔지 모르겠는, 어떤 과일같이 생긴 무언가.


“저게...그거야? 네가 말한...그 ‘방법’.”

“맞아, 저거야. 코우메가 자는 사이 내가 영세(靈世)로 가서 가져왔어. 저걸 먹으면 늙지 않고 코우메가 원하는 영생을 실현할 수 있다고 뱀파이어 아저씨가 그랬어.”

“그래...? 좋은 것 같아. 한번...먹어볼게.”


손을 뻗어 과일을 쥐고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에퉤퉤, 맛없어. 영세(靈世)의 음식은 원래 이런 건가?

뱉으면 안 된다는 그 아이의 말에 겨우겨우 씹어서 삼켰어.

꿀꺽 삼켰는데, 아무 느낌이 없네.


“먹었어...뭐 있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봐. 곧 효과가 나올 거야.”


그래서 다시 침대에 누워 효과를 기다렸어.



그렇게 4분 정도 지났나? 갑자기 몸이 들썩거릴 듯이 기운이 나기 시작하는 거야.


“아...이제 효과가 도나 봐...!”

“이제, 코우메 넌 불로불사가 될 수 있어!”


무언가 어두운 기운들이 내게서 솟아나 돌고래 다이빙하듯 내 몸을 둘러싸는 걸 느꼈어, 느껴졌어.


잠시 후, (한 3분쯤 지났으려나?) 내 몸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가뿐함을 느꼈어. 몸이 너무나 가벼웠지. 


이게, 그 영세(靈世)의 과일의 능력인 걸까?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가려던 때에 그 아이가 덧붙여 말했어.


“거울을 봐. 너의 모습이 외적으로도 달라진 걸 알 수 있을 거야.”


거울을 보니 특별히 달라진 점이 눈에 띄지 않아서, 뭐가 바뀐 거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입에서 위화감이 느껴졌어.

입을 열어보니, 내 송곳니가 뱀파이어의 그것이 된 거야!


“이...이건...! 뱀파이어의 송곳니...! 예전에 언데드 댄스 록 찍었을 때...그거...! 그거랑 닮았어...!”

“그때는 뱀파이어 역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뱀파이어라고? 코우메가 원하는 대로 된 거야!”

“대...대단해...! 난 이제...뱀파이어야...!”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뛰어나가면서 그 아이가 하는 말,


“뱀파이어 돼서 신나는 건 이해하지만 아무나 붙잡고 피 빨아먹으려고 하면 안 돼. 별로 맛 없어서 입맛만 버리고 득 보는 건 없어.”

“알았어...명심할게...!”


그런데 순간 내 발이 멈췄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어. 열매의 능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우선, 늙지 않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젊다 못해 어린데. 아직 13살 중학생이라고.

두 번째, 영생한다. 살 날이 원래도 많아서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됐는데, 이젠 영생이라는 옵션이 주어졌으니 더 걱정할 필요도 없어서 오히려 긴장이 다 풀렸어.

게다가 영생하는 건 나 혼자고, 나머지는 나이를 먹어 늙고 결국엔 죽겠지? 그럼 난 혼자서 미시로 프로덕션에 남아있어야 하는 걸까? 그건 싫은데.

아니면 그냥, 활동 잘하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은퇴해서, 영원한 시간 속 여행을 떠나야지.


어쨌든 영원히 살게 된 시라사카 코우메의 첫 번째 아침이 밝았어.

그러고 보니까, 내가 여기 왜 나왔더라?


맞아맞아. 아침식사하려고 나왔었지.



아침을 먹으려 냉장고를 열었을 땐 왜인지 모르게 무엇 하나 맛있어 보이는 게 없었어. 어젯밤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다 맛있어보였는데.

그런데 오늘은(같은 반찬인데도) 무엇 하나 맛있어 보이는 게 없었어. 아침이라 입맛이 없는 건가?


그릇에 우유와 오X오 X즈를 부어서 먹었어. 그나마 이것이 내 입맛을 돋운 음식이었지. 게다가 이 정도면 조식으로는 최적이야.


먹다가 그 아이에게 물어봤어.


“입맛이 없어...이건 그 열매의 부작용일까...아니면 그냥 아침이라 그런 걸까?”

“그냥 아침이라 그런 것 같아. 뱀파이어 아저씨가 열매의 효과로 입맛이 없단 얘기는 안 하셨어.”

“잊어버리고 말 안한 거 아니야...?”

“그 아저씨는 기억력이 좋아. 부작용 같이 중요사항을 잊어버릴 리가 없지. 게다가 입맛 없다면서 왜 오즈를 세 번이나 부어먹는 거야?”


...그러네, 아까까진 봉투에 꽉 차있던 X레X 오즈가 어느새 반으로 줄었어. 우유도 한 통을 다 썼고. 

언제 이렇게 많이 먹었지? 그 아이도 같이 먹었나?


“제삿밥이니? 나도 먹게?”


제사 시리얼이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프로듀서님으로부터 오늘의 스케줄을 받았어.

오전엔 라디오 녹음 및 호러 영화 티저 내레이션, 오후엔 사인회와 Bloody Festa 재킷사진 촬영이 있어. Bloody Festa가 나온 지는 꽤 시간이 흘렀는데 재킷사진 촬영을 왜 이제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메챠쿠챠 오전의 스케줄을 마치고 점심으로 간단하게 오니기리 3개를 먹었어. 확실히 점심 되니까 입맛이 살아나더라. 아까는 정말 아침이라 그랬던 건가봐. 지금은 엄청 맛있게 먹었어.


사인회까지는 아직 시간도 남아있어서 사인회장 주변의 길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어.


길가에 예쁜 꽃이 피어있더라. 사진으로는 몇 번 봤는데 실제로는 처음 보는 그런 꽃이었지. 꺾어서 료 씨에게 갖다 주려 했는데 꺾지 말라는 프로듀서님의 재제에 그냥 놔두고 돌아섰어.


꽃이 조금 변해버린 건 알지 못한 채.



시간이 되어서 기운차게 사인회를 시작했어. 내 팬 분들이라서 그런지, 다른 팬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으로 이곳에 온 걸 볼 수 있었지.


보통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는데, 고스트버스터(가칭, 내 팬덤 이름이야)들은 좀비, 유령, 프랑켄슈타인, 카마이타치 등등 할로윈 때나 입을 코스튬을 갖춰 입고 왔어.


그 아이 같은 유령 아니냐고? 사람들 맞아. 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게다가 유령이라면 발이 바닥에 붙어있지 않아. 이 사람들은 모두 발이 바닥에 붙어있어.


하여튼 그런 코스튬을 입고(분장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어.) 사인회에 온 고스트버스터들을 보고 놀랐어. 내 팬카페에 공지라도 떴던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뭔가 좀 할걸. 팬 분들도 분장하셨고 회장도 호러틱한 데코가 잔뜩 되어있는데 나만 맨몸이잖아.


결국 임시방편으로 망토를 걸치고 나왔는데, 그 망토만으로도 뱀파이어 느낌이 물씬 풍겼어. 그리고 그 아이의 친구들도 만나볼 수 있었고. 사인은 못 해줬지만.


사인회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의 공백이 생겼어. 지금 가도 촬영 셋팅이 안 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니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출발해야 해.



산책로를 다시 걷다가 보니 아까 봤던 꽃들이 조금 시든 것을 봤어. 예쁜 꽃이었는데 아깝네. 근데 다른 꽃들은 안 시들고 이 꽃만 시들었어. 신기하네.


걷다가 중간에 화장실에 들러서 용변을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 나를 붙잡았어.

누군가 보니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낀 괴한이었어. 날 납치하려고 하는 거겠지. 이 화장실이 좀 으슥한 데 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괴한은 계속해서 나를 붙잡고 끌고 가려 했어. 그리고 난 속수무책으로 끌려갔고.

화장실로부터 50m쯤 뒤까지 끌려왔을 때 괴한은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내게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어.

아, 큰일 났어. 이러다 내 인생 끝나. 지금 들어가기 2초 전이라고. 제발 살려줘!


그 순간,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구속이 약간 풀렸어.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이가 괴한에게 조약돌 같은 걸 던졌던 거야.

아무튼 구속이 느슨해진 틈을 타 그 괴한에게서 탈출했어. 그러나 그 괴한은 꽤나 빨리 나를 쫓아왔고 결국 금방 잡히고 말았어.

아, 이제 어쩌지?


“코우메! 녀석의 목을 잡아!”


순간 그 아이가 외쳤어. 안 그래도 지금 괴한이 내 입에 키스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는데 좋은 기회야. 시킨 대로 괴한의 목을 잡았어.


그때, 괴한이 변하기 시작한 거야. 근육이 있었던 몸집은 풍선바람 빠지듯 쪼그라들었고, 피부는 축 늘어졌을 뿐 아니라 머리가 하얗게 셌어. 한마디로 늙어버렸지.

반면 내 몸은, 모든 피로가 회복되다 못해 힘이 넘쳤어.


다 늙어서 쓰러진 괴한을 뒤로 한 뒤, 난 기운 넘치는 몸을 이끌고 다시 산책길로 돌아가면서 그 아이에게 물었어.


“그거...어떻게 된 거야...? 내 몸에 힘이 넘치고...그 괴한은 늙어버렸어...!”

“그것이 바로, 네가 먹은 열매와 능력이야. 수명 뺏기, 어떤 것 같아?”

“괴...굉장해...! 최고인 것 같아...!”

“아직 해가 지지 않아서 그런지 효과가 크지는 않네. 저녁이나 밤 되면 효과가 엄청날 텐데.”

“이...이게 크지 않은 효과라고...? 그럼 저녁엔 어떤데...?”

“단지 늙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죽일 수도 있어.”

“대단해...하지만 죽이는 것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하긴 그렇지? 죽이는 건 좀 그래. 그냥 늙게 해도 충분할 텐데.”

“그러고 보니...이게 다인 거야...? 다른 능력은 없어...?”

“다른 능력? 있긴 한데, 그다지 큰 쓸모는 없는 기술이야.”

“예를 들면...?”

“어둠 속에 숨기, 날아다니기, 어둠 뿌리기, 어둠 변하기 등등.”

“응...큰 쓸모는 없을 것 같아...특히 날아다니는 거...”


그 아이와 대화를 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어느새 Bloody Festa 재킷사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차를 타고 프로덕션 근처의 촬영장으로 향했어.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나온 지 한참 된 곡의 재킷사진을 왜 이제 찍는다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본격적으로 앨범에 팔려고 하는 걸까?



촬영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호러 분위기의 파티장으로 모든 데코가 다 되어있었어. 이제 나만 의상을 입으면 돼.


소매가 길고 단이 조금 넓은 드레스를 입고 작고 붉은 티아라를 썼더니 그야말로 유령파티의 주인공이 따로 없었어. 거기다 그 아이의 등장(이라 쓰고 심령사진이라고 읽어)으로 인해 더욱 훌륭한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어. 그야말로 완벽하단 평가를 받았어.

나중에 한 장 받았는데, 딱 내가 원하는 그런 컷이었어.



Bloody Festa 재킷촬영까지 다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프로듀서님께 아까 산책로에서 있었던 괴한 사건을 말씀드렸어. 중간을 살짝 바꿔서.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 빠져나왔다는 전개로. 사실대로 말하면 프로듀서님이 충격을 엄청 받으셔서 뒷목잡고 정신을 잃어 결국 차가 난간 박고 추락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바꾼 내용마저도 이미 충격인가 봐. 그 얘기를 프로듀서님께 드렸더니 놀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


확실히 놀랄 일인 건 맞지. 내가 프로듀서님이었어도 그랬을 테니까. 다행히 차는 난간을 박지도, 떨어지지도 않고 잘 운행했어.



돌아가는 길이 길고, 또 조금 피곤해서 하품을 했는데, 그게 내겐 실수였어. 왜냐고? 뱀파이어의 송곳니가 보여져버렸으니까.

더욱 난감한 건 그걸 프로듀서님께서 보셨는데, 보시고 보통 놀라신 게 아니었어.


“코우메...너...그 이빨...송곳니...왜 그래?”

“아...이거...아까 Bloody Festa 촬영할 때 낀...인조 이빨이에요...”

"거짓말...우리 아버지가 치과의사이셔서 아는데...인조 이빨은 그런 광택이 안나...너,..어떻게 된 거야...?"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고, 프로듀서님은 내 얘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 계시다가 내 모든 말이 끝나고 2분 후 쯤에야 입을 열어 대답하셨어.


“그 아이가, 제대로 일을 만들어냈네. 알겠어.”


이 한 두 마디에 프로듀서님의 모든 심정이 다 요약되어 있었단 걸 난 알 수 있었어. 그 말투엔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없이,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는 감정을 느꼈어.


그리고 프로듀서님께서,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어 말씀하셨어.


“그래도, 코우메 다운 캐릭터가 되어서 괜찮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신 말씀.


“피만 안 빨아먹으면 돼.”


이 부분에서 좀 웃었어.

안 빨아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내가 뱀파이어로 변했다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봐. 뱀파이어가 된 게 다른 아이돌이면 좀 화제가 됐을 텐데 나라서 그런가? 평소에도 온갖 호러로 중무장한 나라서 그냥 평소의 코우메인 걸까?



그 후로 45분 쯤 더 지나서 프로덕션에 도착해 기숙사에 들어갔어. 계단을 눈 앞에 두자 갑자기 계단을 올라가는 일이 힘든 것 같이 느껴지는 거야. 물론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높은 층에 있어서 기다리기도 귀찮아.

계단은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엘리베이터 기다리긴 귀찮고. 말도 안 되는 패러독스에 빠지고 말았어.


그런 패러독스 속에서 문득 떠올랐던 게 있어. 아까 그 아이가 말해준 능력 중에 날아가는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그걸 한 번 써볼까?

아니야, 그러면 보이잖아. CCTV에 찍히면 곤란하고.

안 보이게 날아가는 방법...아, 그래! 어둠으로 변하는 거야!


어둠으로 변해 본 적은 없지만 의외로 변하는 건 쉬웠어. 내가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나로 변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지. 처음에는 다시 못 돌아가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어렵지 않은 일이어서 다행이야.


어둠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내 방까지 도착했어. 중간에 문이 닫혀있긴 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틈으로 흘러들어갔지. 끄응, 이건 생각보다 어렵네.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고, 그 아이가 내 위를 3바퀴 돌고 나서 말했어.


“어땠어? 뱀파이어로 살아간 하루는.”

“멋있었어...특히 사인회 끝나고 만난...아니지...나를 습격한 괴한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건...정말...짜릿했어...”

“하핫, 그래? 앞으로 더 많은 사람-너를 해치는-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거...왠지 오싹한데...”

“괜찮아 괜찮아~보상이라고 생각해.”


아니, 그래도, 이렇게 오싹한 선물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면서 뱀파이어의 첫 번째 잠에 들었어.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땐, 뭔가 공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평소보다도 들뜬 느낌이고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아. 내가 그 아이를 쳐다봤을 때, 그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난 핸드폰을 켰을 때, 이 이상한 흐름의 이해할 수 있었어.

그래, 어쩌면 아직 꿈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좋아. 난 지금의 그것이 좋아.

그래, 오늘은! 지금 이것은 바로!!!!


주말이야. 토요일이야.

오늘은 다들 하루 종일 오프래,

그러니까 못 본 스플래터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그러면서 놀자.


비디오를 꽂으려고 TV를 켰는데,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어. 내용인즉슨 어제 내가 말려 죽였던 괴한의 시체가 발견됐대. 내 곁에 있던 료 씨가 말했어.


“다 늙은 사람이 뭐하다 저렇게 됐을까, 심장에 발작 온 거 아니야? 그러게 이 더운 날에 무리해서 운동하면 안 된다니까.”


그렇겠지, 료 씨는 저 사람을 내가 말려 죽여서 저렇게 된 거란 사실을 꿈에도 모르겠지. 보통 사람은 못 할 테니까.


하여튼 뉴스 보도가 모두 끝나고 실없는 광고도 나오자 카세트에 보려고 했던 비디오를 넣어 스플래터 영화를 감상했어.


이번 스플래터는 이제껏 봤던 다른 작품과는 완전히 달랐어. 보통은 인간VS좀비의 양상이라면, 이번엔 제 3자-인간과 좀비 모두를 살육하는-로부터 살아남는 스토리야.

이것은 정말 전에 없이 신선한 내용이라서 엄청나게 재미있었어.



그 뒤로 2편 정도의 스플래터 영화를 더 보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12시 15분, 벌써 점심때가 되었네. 


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점심은 거르고 밖으로 나왔어.

밖은 왜 나왔냐고? 걷고 싶어졌으니까. 앉아만 있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니까 움직이는 게 좋아.



기숙사 밖으로 나와서 옥상에 올라갔어. 내가 평소에 이런 곳에 오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의외라는 표정을 많이들 짓더라.


옥상을 걸어다니면서 굳어버린 몸을 푸는데,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다시 기숙사로 내려갔어.

문제는 기숙사 앞에 다다르니 그게 뭐였는지, 뭘 생각했었는지 잊어버렸어. 이런 경우 많잖아. 흔히들 말하는, ‘컴퓨터 끄면 기억난다.’ 하는 거.

지금 딱 그러네. 옥상으로 올라가면 다시 기억나겠지.


하지만 옥상에 올라가서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고 결국 난 뭘 생각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어.


옥상에서 내려와 다시 내 방으로 갔을 땐 3시 반, 3시간 15분 동안 내가 옥상에서 뭘 하고 있었더라? 


료 씨는 뭐 하고 있을까? 빨리 내려가서 료 씨 봐야지.


아무도 안 볼 때 어둠으로 변해서 내 방까지 단숨에 이동했어. 다행히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그 쪽으로 들어가니 시간이 절약되더라.

근데 료 씨는 여기 없네. 어디 나갔나? 나츠키 씨와 기타 연습하러 간 걸까? 그럼 나 혼자 놀아야겠네...조금 외롭지만.



무료한 주말이 지나가고 또 다시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 되었어. 오전엔 스케줄이 없어서 한가해. 


아니, 따지고 보면 한가하진 않지. 학교에 가야 하니까.


해서 교복을 입고 가방을 챙긴 다음...어둠으로 변해서 학교까지 날아갔...아니지, 사실 여기서 효고까지는 먼 거리고 방향도 잘 모르는데...

에이 모르겠다. 어둠이 되어 날아서 가자. 늦진 않겠지.


일단 다행히 늦지는 않게 도착했어. 길을 몰라 헤맸지만 지각은 안 했으니 Ok야.

다음엔 그냥 기차 타고 가야겠어. 이것도 가까운 데서 한 두 번이지 멀리 갈 땐 못 쓸 것 같아.


1교시, 2교시, 3교시, 모두 무료하게 보냈고 4교시까지도 딱히 큰 일 없이 보냈어. 사실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을 기대하는 건 학교 문화제 때나 수학여행 때가 아니면 불가능해.


점심 먹고서는, 매점에 가는데 소소한 해프닝 하나가 생겼어.



어느 학교가 안 그렇겠냐마는 우리 학교에도 소위 말하는 일진, 쎈 애, 불량학생이 있어. 그런 애를 내가 마주하게 됐어.

보통 그런 애들이 하는 레퍼토리 있잖아, 구석진 곳으로 불러서 돈 내놓으라는.

근데 얘는 구석진 곳으로 부르지도 않고 그냥 대놓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더라. 어디서 온 패기일까?


“돈...없는데...”

“Hㅏ? 뒤져서 나오면 10엔 당 한 대다!”

“진짜...없어...”

“너, 요즘 아이돌이라고 보이는 게 없나봐?”


라고 말하며 불량학생이 나에게 다가왔고, 동시에 그 아이가 내게 말했어.


“저 녀석이 다가오면 틈 보이지 말고 생명력을 빨아들여.”


곧이어 불량학생이 내 멱살을 잡고 말했어.


“마지막으로 말한다.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

“줄 건...없지만...받을 건...있어...”

“뭐? 그게 뭔 개소리ㅇ..."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불량학생의 목을 잡고 생명 흡수를 썼어. 그 불량학생의 손이 점점 약해지더니 결국 바싹 말라버렸고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됐어. 그리고 그 기운은 나에게 모두 흘러들어왔고.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대충 어딘가에(아마도 근처 소각장이겠지) 던져두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반으로 돌아갔어.

가면서 그 아이가 내게 묻더라고.


“사람을 두 번이나 죽였는데 양심에 찔리지 않아?”

“...별로...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한 거잖아...아무 문제 없어...”



6교시까지 끝나고 학교가 파할 때, 그 아이에게 물어봤어.


“날아서 갈까...전철 타고 갈까...?”

“코우메가 편한 대로 해. 빨리 돌아가자.”


나는 그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짓고서 말했어.


“잘...따라와야 해...”

“난 항상 잘 따라가고 있잖아.”


하고는 다시 한 번 어둠으로 변해서 시부야까지 날아갔어.


창문으로 들어가서 어둠모드를 푼 뒤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나왔어.

그 곳에 있던 란코가 나를 보더니 놀라며 말했어.


“한순간의 전율! 그대의 마법진은 언제 발현되었는가!”

(깜짝이야! 언제 왔어요?)

“바...방금 왔어...”

“그대의 소환진의 흔적이 내게 느껴지지 않았노라!”

(문 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후히...그냥...란코짱이 못 들은 사이에 온 거겠지 뭐...”


쇼코가 란코에게 말했어.


그러고 보니...소리 없이 다가와서 모습을 보이면 꽤 무서울지도.


거실 TV는 현재 쿄코와 미쿠가 보고 있어서 대신 핸드폰으로 괴담들을 잔뜩 찾아보았어. 웬만한 괴담은 옛날에 다 봐서 더 이상 볼 게 없어. 그림자괴담, 키사라기역, 기타 등등 웬만한 괴담들은 모두 봐서...내가 괴담을 하나 만들어볼까?



그러다가 문득,(솔직히 말해서 뜬금없이) 갑자기 내 안에서 엄청난 욕망이 솟아올랐어.

지금까지는 나를 해치려고 한 사람들에 한해서 방어 차원으로 공격했지만, 이제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나와 관계없는 사람을 공격해보고 싶어진 거야.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그 아이가 말했어.


“안 돼, 그러지 마. 그러라고 코우메한테 그 열매 준 거 아니잖아.”

“한 명만, 딱 한 명만 생명력을 빨아들일게.”

“진짜로 안 돼. 자꾸 그러면 나도 혹한의 조치를 취한다?”


혹한의 조치란 그 아이가 내 몸에 들어가서 나를 지배하는 거야. 즉 빙의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해. 난 나의 이 욕망을 어떻게든 실현하고 싶으니까.”

“너 진짜...!”


이윽고 그 아이가 내 몸에 들어왔고 나는 그 아이와 내적인 사투를 벌였어. 내적인 사투라고 했지만 나도 나름 몸부림치며 대항했다고.


“정신 차려, 코우메!!”

“내게서 나가줘!!”

“네 욕망을 다 죽이기 전까진 안 나가!”

“제발...제발!!”


이 극한의 사투를, 15분 동안, 땀에 젖어가면서 벌였어.


결국 내가 먼저 포기해 버렸고, 그 아이는 내게서 나온 다음 말했어.


“코우메, 너에게 조금 실망했어. 어째서 그런 욕망을 가지는 거야?

내가 코우메에게 그 열매를 준 이유는, 코우메가 불로영생(不老永生)을 바란다고 해서 준 거지 죄 없는 사람의 목숨과 생명력을 뺏으라고 준 게 아니야.

난 네가 생명력 흡수를 써도 방어 목적이라는 이유로 넘어갔어. 하지만 네 욕망은 방어 목적이 아니라 공격 내지는 그냥 네 재미를 채우기 위한 거잖아.

네가 포기했으니까 몸에서 나갔지만, 혹시 아직도 그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 열매 토해내.”

“아니야...내가 잘못했어... 죄 없는 사람...목숨을...함부로 뺏으면 안 되잖아...”


사투에 지쳐버린 나는 이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지쳐서 한참을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저녁을 먹을 때가 되자 일어나서 식사를 하러 갔어. 특별히 먹을 만한 반찬이 있진 않지만, 어쩌겠어, 있는 대로 먹어야지. 내일쯤 되면 반찬이 새로 들어올 테니 오늘까지만, 아니 내일 아침까지만 이렇게 먹자.



저녁을 다 먹고 소화 시킬 겸 5층 트레이닝 룸에 내려가서 운동을 하려고 했어. 밤 10시까지는 열려 있다니까 지금 가도 충분히 운동할 수 있겠지.


트레이닝 룸에는 어른 조, 아이 조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14개의 런닝머신은 다 찼고, 10장짜리 매트도 다들 쓰고 있으며, 할 수 있는 운동은 숨쉬기 운동밖에 없을 정도였어. 다들 저녁운동 많이 하네...


결국 프로덕션 밖의 공원에서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어.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어.



공원에 들어가서 운동기구를 찾는데, 우연찮게도 벤치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료 씨를 발견할 수 있었어.


“어...료 씨...!”

“아, 코우메. 여긴 어쩐 일이야?”

“저녁운동...하러...”

“운동 좋지. 운동이라니까 왠지 아키 생각나네.”

“료 씨도...같이 할래...?”

“아아, 미안. 기타 때문에 못 할 것 같아.”


결국 나 혼자 운동을 해야 했어.

달리기, 자전거, 윗몸 일으키기, 허리케인 등등 공원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가지고 운동을 했고 가끔 


료 씨와 눈이 마주치면(사실 일부러라도 마주치고 싶었어) 료 씨는 내게 윙크해주고, 나는 료 씨에게 웃어줬어.


꽤 긴 시간, 료 씨가 5~6곡의 연주를 더 하고 났을 때, 내 운동도 끝났어. 얼마나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한 것 같아.



운동을 끝내고 료 씨가 있는 벤치에 가서 앉았어.(그때 료 씨는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있었어.)

료 씨의 마지막 연주까지 모두 끝났을 때, 나는 료 씨에게 물었어.


“료 씨.”

“응, 왜?”

“만약에...내가...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면...가령 뱀파이어거나 하면...어떨 것 같아...?”


특별히 프로듀서님의 말이 생각났다거나 한 건 아니었어. 단지 이런 나에 대해 료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을 뿐.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코우메다워서 좋지 않으려나.”


좋아. 이런 료 씨가, 이해심 넓은 료 씨가 난 좋아. 이런 료 씨라면, 평생을 넘어 영원을 같이 살고 싶은걸.


그리고 나, 이제는 그런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료 씨, 만약에...영원한 젊음...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면...살고 싶어?”

“영원한 삶이라~그거 좋지. 왜?”

“살 수 있어. 방법이 있어.”

“그런 게 있어? 뭔데?”

“귀를 가까이 대줘.”


료 씨가 내게 귀를 가까이 댔어.

사실은 귀는 관련이 없어. 다만, 목이야. 목이 필요해.


내게 향한 료 씨의 머리를 잡고 목을 물었어.


'료 씨, 아프지 않을 거야. 잠깐 따끔한 정도.'


이윽고, 료 씨의 피가 내 송곳니를 타고 혀를, 입을 적셨어.


료 씨, 이제 료 씨도 나와 같이 영원한 삶, 영원한 젊음, 누릴 수 있어.


평생을, 아니, 영원을, 함께 노래하자.

-----------------------------------------------------------------------

드디어 4편도 완성했어요.

이번 열매는 [동물계 박쥐박쥐 열매 모델 뱀파이어], 첫 번째 동물계 열매에요.

랄까 딱히 동물적인 요소는 없네요.

다음 작품은 더 좋은 퀄리티로 뵐 수 있다면 좋겠어요.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