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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타루라는 이름의 그릇 - 5(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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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7, 2019 19:08에 작성됨.


"이마 콘치키칭~♩ 콘치키칭~♬ 마츠리바야시가 오코시야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괴물은 멈칫하고 뭐라고 말했다. 집중하고 들었더니, 호타루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듀...서...도...망,쳐요..."

호타루는 내면의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 아이의 노래를 듣고 미약하게나마 각성한 걸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누구로부터 전화가 왔는지 봤다. 도묘지 카린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을까 생각했지만 괴물이 멈추고 호타루가 내면의 괴물과 싸우는 이 때가 기회였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카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듀서! 호타루를 구할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주세요!"

벨소리가 끊기자 괴물은 다시 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여전히 무릎 꿇은 채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항상 못 미더웠던 카린이었지만 이번에야말로 카린을 믿어야 할 때였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달아났다. 괴물이 정신없이 쫓아왔지만 생각보다 느렸다. 나는 달리면서 통화했다.

"카린! 그 방법이란 게 뭐야?"
"잘 들어요! 요시노의 예언에 대해 들었죠?"
"호타루에게서 들었어. 하지만 요시노가 호타루를 정화하기도 전에 죽었더라고. 다 틀렸어."
"아니에요. 정화의 방법은 이미 알려줬을 거에요. 요시노가 했던 말을 잘 떠올려봐요."

나는 요시노가 했던 말을 떠올려봤다. 사랑은 감정 중에서 가장 강하고 진심만이 호타루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알겠다.

"그렇구나. 노래였구나."
"맞아요! 호타루가 괴물로 변했다고 해도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그게 본인과 관련된 추억이라면 더더욱."

나는 호타루의 솔로곡 '골짜기 밑에서 피는 꽃은'을 떠올렸다, 내가 호타루를 위해 손수 프로듀싱한 노래였다. 이 노래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있고 또한 호타루의 마음이 담겨있다. 볕조차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골짜기라도 희망이 있는 한 생명은 잉태한다. 이곳에 핀 꽃은 아무도 없어 외로운 곳에서 구정물을 받아마시고, 벌레에게 뜯기고, 볕을 못 봐 앙상하고, 차가운 칼바람에 울지라도 꺾이지 않고 살아간다. 이것이 호타루의 인생이었고 나의 인생이었으며 소시민의 인생이었다. 우리는 그걸 노래하고 싶었다.

나는 가만히 멈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휴대폰 음악폴더를 뒤져 '골짜기 밑에서 피는 꽃은'을 틀고 볼륨을 최대로 높혔다. 음침하고 어두운 단조 전주가 시작되고 녹음 속 호타루가 담담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괴물은 가만히 멈춰 괴로워했다. 이윽고 노래 분위기가 무르익고 희망찬 하이라이트로 올라가자 괴물은 쪼그려 울기 시작했다. 영력이 없는 내가 봐도 악한 기운이 점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카린과의 전화는 끊지 않은 관계로 카린이 말했다.

"잘 되어가는 거 같네요. 이제 남은 건 호타루의 몫이에요. 호타루가 스스로 각성해 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을 거에요. 우리가 할 일은 이제 호타루 곁에 있어 주는 거죠."

나는 다가갔다. 호타루 내면의 괴물이 나를 보고 적대적으로 공격했다. 나는 묵묵히 맞았다. 호타루의 촉수가 휘두른 공격이 왼쪽 뺨에 맞았고 너무 쎄게 맞은 나머지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호타루가 말했다.

"프...로듀...서... 죄...송...해...요..."

나는 호타루를 안았다. 과거에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던 그 아이를 안았을 때처럼. 호타루는 따뜻했고 강인했다. 촉수가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공격했지만 갈수록 약해졌다. 나는 호타루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네가 얼마나 불행하고 힘든 짐을 짊어졌든 지금 너는 그토록 꿈꿔왔던 아이돌이야. 거기다 곧 있으면 유닛활동 들어갈테니 내일부터 특훈이야. 농땡이 피우면 알아서 해."

호타루는 피식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나는 호타루를 품에 안고 쓰러졌다. 계속 재생되던 '골짜기 밑에서 피는 꽃은'은 이제 마지막 화음을 내면서 끝났다.

-----------

일어나니 낯익은 천장이었다. 딱봐도 병실이었다. 온몸이 몽둥이 찜질을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 맞은 거 맞지. 허리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호타루가 내 옆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호타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 그대~. 너무 자주 뻗는 거 아닌가? 살생부에 적힌 그대의 수명은 아직인데 벌써 죽게 생겼다네."

요리타 요시노였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요시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당연하지! 호타루가 네 큼지막한 머리통을 통채로 뽑았는데!"
"그대는 내가 대두라고 놀리는 겐가? 나는 생각보다 머리가 작은데."
"그럼 아니라고 생각했어?"

요시노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황당해서 도로 누워버렸다. 호타루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만 들려왔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일어나 요시노에게 물어봤다.

"호타루는 이제 괜찮은 거야?"

요시노는 삐졌는지 입을 샐쭉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그래, 요시노 너는 머리도 작고 예쁜데다가 사랑스러워."

요시노의 뺨이 새빨개졌다. 요시노가 팔짱끼고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쯤으로 용서해주겠노라. 나는 솔직히 천 년 살았지만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했네. 원래 악한 기운에 물들여 괴물이 된 인간은 구하기 매우 어렵네만 그대가 호타루를 보란듯이 구하지 않았는가."

나는 가만히 호타루를 보았다.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데다가 이 세상의 악한 기운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니, 이 아이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요시노는 이어서 말했다.

"거기다가 호타루가 지닌 악한 기운들이 소멸해버렸다네. 이 일로 호타루라는 이름의 그릇은 깨져버려 호타루에게 악한 기운이 몰리지도 않는구먼. 앞으로도 운은 조금 나쁘겠지만 호타루가 행복하는 한 좋은 일이 이어질 걸세."
"그렇다면 호타루의 다리는? 내가 상처를 입혀버렸는데."
"내가 영력을 발휘해 치료했나니 예쁘고 매끈한 다리는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온몸에 긴장이 풀려버렸다. 어떻게든 행복한 결말을 쟁취했다. 나는 호타루를 다시 쓰다듬었다. 호타루는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이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은 건 요시노였다.

"그대는 호타루만 바라보면 나는 어느 세월에 톱아이돌로 만들어주겠느냐?"
"나는 호타루 담당 프로듀서고 네 담당 프로듀서에게 가세요."
"그대야말로 나의 프로듀서인 걸 잊었느냐."
"일단 그렇긴 한데, 회사 경영이 악화되어서 네 프로듀서가 실직된 거잖아."
"그대는 그래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건가?"
"난 호타루 하나만 감당하기도 벅차."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도묘지 카린이었다. 카린은 나를 보고 달려오다가 넘어졌다. 카린은 덤벙대고 어리숙하지만 굳센 심지가 돋보이는 아이였다. 그래도 카린은 카린이었다. 카린은 다시 일어나서 나에게 말했다. 

"프로듀서! 무사하셨군요!"
"아, 방금 일어났어."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악한 기운에 데인 상처는 신의 영력으로도 쉽게 낫지 않는데 제 기원이 그래도 통했나봐요."

카린의 말에 나는 온몸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멍자국은 커녕 이전에 감전 때문에 왼손에 생긴 큰 흉터도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카린에게 감탄했다. 

"이열~. 다시 봤어. 나이스 어시스트였어."
"헤헷, 저도 할 땐 한다고요. 아시겠어요."

의기양양하는 카린. 나는 이전에 품었던 궁금증이 문득 떠올랐다. 

"야, 근데 넌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있었지?"
"예, 그래요."
"그런데 내 가짜 장례식에 왜 호타루를 보낸 거야? 예언이 전부 이루어지길래 깜짝 놀랐네."
"아, 그건."

그때 요시노가 카린을 노려봤다. 카린은 압박감을 느꼈는지 식은땀을 흘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신과 무녀는 명백한 상하관계인지라 카린은 요시노의 진노를 거스를 수 없겠지. 나는 요시노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 먹였다.

"아야! 그대는 무슨 일을 한 건지 아시는가?"
"직위를 이용해 애꿎은 카린을 압박한 네가 할 말이냐."
"그대는 간섭하지 마시게."
"그럼 난 프로듀서고 너네는 아이돌이니까 험한 짓을 저질러도 되겠네."

요시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카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요시노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왜 그랬던 거야?"

카린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요시노의 계시를 심층분석했어요. 요시노가 본 미래에는 호타루의 저주로 인해 프로듀서가 죽으면 호타루는 폭주하고 요시노가 호타루를 완전히 정화시키는 거에요. 그럼 이 세상의 악한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겠죠."
"하지만 요시노는 호타루를 내 곁에서 떼어냈잖아."
"호타루의 저주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시공간 가리지 않고 영향을 끼쳐요."
"그런 말도 안되는... 게다가 요시노는 호타루에게 악한 기운을 더 잘 빨아들이는 의식을 했어."
"그건 제가 제안한 거에요. 저는 호타루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거짓으로 죽은 프로듀서 곁으로 호타루를 보냈어요. 이로써 예언은 모두 해소된 셈이죠. 거기다 극약처방이긴 하지만 그 덕에 악한 기운이 호타루에게 과하게 많이 주입되는 바람에 그릇은 깨졌어요. 그래서 지금의 호타루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죠. 제 짧은 지식으로는 이런 방법 말고는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자칫 잘못될 수 있었을텐데."
"프로듀서는 잿투성이 아가씨로 살아갈 우리를 마법을 사용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주님으로 탈바꿈하시잖아요. 저는 프로듀서를 믿었어요."

나는 식은 땀을 흘렸다. 내 시선은 자동으로 호타루에게 향했다. 카린이 최선의 어시스트를 했어도 내가 까딱 잘못했으면 나와 호타루는 물론이고 이 세상 또한 위험했을 것이다. 무모하긴 했지만 솔직히 카린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카린 덕에 나는 호타루를 구할 수 있었으니 나는 카린에게 빚을 지고 말았다. 나중에 변제할 날이 있으리라.

그래도 카린의 말을 들으니 나 말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긴 했구나. 최후의 최후에 나의 진심과 호타루의 마음이 공명한 건 기적이었다. 나 말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마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워졌다. 나는 자고 있는 호타루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었다. 카린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런데 프로듀서가 요시노를 책임지나요?"
"그건 무슨 말이야?"
"저 들어올 때 프로듀서가 요시노를 책임지네 마네 뭐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요시노는 나와 카린을 번갈아가면서 보더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린, 사실 나는 프로듀서와 결혼할지니."
"그건 뭔 소리여."
"그대가 나를 일평생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나는 그대의 신부가 되겠노라."
"아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린은 두 눈이 똥그래져서 놀랐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프로듀서와 요시노는 그렇고 그런 관계였나요?"
"아니라고."
"지금 당장 알려야겠어요!"
"카린, 카린!"

카린은 병실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려나갔다. 나는 카린을 불러 해명하려고 했지만 이미 저 멀리로 사라진 뒤였다. 나는 요시노를 노려봤다. 요시노는 작고 여린 붉은 혀를 내밀었다. 

"그럼 나는 이만 연습하러 가보겠나니, 그대는 푹 쉬시게."
"악질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는데 어떻게 쉬냐."

요시노는 피식 웃으면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휴대폰을 보았다. 메세지함에는 나를 걱정하는 아이돌들의 안부문자가 수 십 통 와 있었다. 나는 사진폴더를 열어 날짜별로 정렬하고 가장 오래된 사진파일을 열었다. 그 아이가 활짝 웃는 사진이었고 내 기억상으로는 영정사진에 쓰인 사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나를 구했구나.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립네."

그 아이의 노래를 벨소리로 한 덕에 벨소리가 울리자 괴물은 멈추고 호타루는 싸웠다. 그래서 나는 호타루를 구할 실마리를 가까스로 얻었다. 그 아이는 죽어서도 나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아이를 위해 잠시 묵념을 했다. 묵념을 깬 건 문자메세지였다.

「프로듀서! 요시노가 정말로 프로듀서와 결혼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프로듀서 공, 요시노 공과 언제부터 사귀었었나요?」
「프로듀서는 요시노의 어떤 면을 보고 결혼을 약속하셨죠? 설마 페도필리아라서?」
「프로듀서! 프로듀서!」

이런 메세지가 짧은 시간 내에 수 십 통 왔었다. 다른 아이돌들이 소문을 듣고 나에게 메세지를 무더기로 보낸 게 틀림없다. 요시노가 복도에서 깔깔 웃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요시노를 불렀다.

"요~! 시~! 노~!"

그러든 말든 시라기쿠 호타루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낼 소중한 꿈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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