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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머리가 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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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5, 2019 22:46에 작성됨.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규정하는 요소. 거기에 타인의 시선은 포함되는가.


 *


 최근 프로듀서는 업무 중 여유시간에 주로 아스카를 바라보곤 하였다.

 중학교 2학년. 요새 잘 나가는 사무소의 잘 나가는 아이돌. 예쁘고 꽤나 신비적인 외모. 살짝 보랏빛이 도는 피부. 자신의 취향을 알고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센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소녀의 매력들이었지만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붙임머리였다.

 목 부분까지 내려온 단발, 그 아래로 이어지는 인조머리. 하얀색, 보라색, 분홍색 등이 있으며 그 날의 기분이나 자기 나름대로 설정한 컨셉에 따라 다른 것을 착용한다. 이것을 착용하는 이유는 본인 말로는 사소한 저항의 의미. 교칙으로 인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할 수 없다 보니 학교 밖에서는 일탈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럼 학교에서는 붙임머리를 떼는 것인지, 졸업해서 교칙이 좀 더 자유로운 학교로 가거나 성인이 되면 머리를 기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프로듀서는 단 한 번도 자기 아이돌이 붙임머리를 떼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 했다.

 붙임머리가 본체다. 요새 프로덕션에서 아스카에 관해 떠도는 소문이었다. 개성 있는 아이돌들의 집합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이 회사에서도 아스카의 붙임머리는 눈에 띄는 개성이었다. 착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착용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애초에 떼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함께 온천에 갔던 아이돌의 증언에 따르면, 목욕 중에도 떼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뭐야. 몰라. 무서워. 이미 모발과 하나가 돼버린 건가. 두피를 잠식당했단 말인가. 대체 어디서 얼마에 파는지도 모르겠는 물건이 뭐라고 저렇게 애지중지 하는 거지.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입에 담을 수는 없다. 프로듀서는 자기 담당 아이돌의 개성을 존중하였으니까.

 둘의 관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스카가 말하는 저항과 반역에 프로듀서는 손을 들어주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눈에 띄고 싶다고, 나는 나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욕구. 거기에 공감하고 그렇다면 이루어주겠노라고 수락한 사람이 프로듀서였다. 처음으로 맞이한 영혼의 파장이 맞는 사람. 아스카가 느낀 프로듀서는 그런 어른이었다.

 때문에 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며칠이나 계속되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진즉에 이유를 캐물었으나 별 일 아니라며 얼버무리기를 며칠. 더 이상은 이쪽도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이봐, 프로듀서.

 “응?”

 “이제 좀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언제까지 미확인 생물체를 발견한 눈으로 나를 관찰할 셈인지, 아니면 관찰하는 이유만이라도.”

 “아, 뭐. 별 이유는…….”

 “자꾸 얼버무릴 거라면 치히로 씨에게 말하겠어.”

 프로듀서가 며칠 째 수상한 눈으로 훑어본다고. 순간 프로듀서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좀, 많이 곤란하다. 항상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치히로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울 게 뻔했다.

 “사실은…….”

 “사실은?”

 “아스카의 붙임머리 말인데.”

 “본체라고?”

 “엇.”

 “뭘 그렇게 놀라는 반응인지. 알기 쉬운 남자로군. 겨우 그걸 말하지 못해서 여태껏 끙끙거린 건가.”

 “그게, 아스카는 이런 소문 싫어하지 않을까 싶어서.”

 “배려는 고맙지만 섬세한 나이를 상대로 어중간한 행위는 역효과야. 이상한 의문을 품은 채 쳐다보는 게 훨씬 기분 안 좋다고.”

 미안. 프로듀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섬세한 건 오히려 저쪽이 아닐까.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럼 말이지. 아스카가 살짝 운을 띄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사실대로 말한다면 용서해 주지.”

 “어…….”

 조금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소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어떤 상상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했을지. 프로듀서의 생각대로 아스카는 그 소문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소문에 의문을 품은 자가 프로듀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 어떤 상상을 하였을까. 흥미로운 일이었다.

 으음. 프로듀서는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하나를 말했다. 머리만 둥둥 떠다닌다던가.

 “요괴라고 생각한 건가.”

 “그것보단 해파리라고 할까.”

 “외계인이군. 잘도 그 따위 망상을.”

 “야, 야. 네가 말해보라고 했잖아.”

 “화를 안 낸다고 약속한 기억은 없어. 얄팍한 수에 걸려들었군. 숨기는 것보다야 솔직한 게 낫지만.” “미안.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한 건데.”

 “생각한 시점에서 아웃이잖아. 그래서, 또 뭐가 있지?”

 “게임의 보스 몬스터처럼 사람을 쓰러뜨려도 머리카락만 따로 움직이는 거야. 다음 숙주를 찾아서.”

 “기생충 같군. 불쾌한데.”

 아스카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살짝,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살짝 표정이 일그러져버렸다. 불쾌한 건 사실이나 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앞에서. 다만 투정은 부리고 싶었다.

 “너에게는 지금 눈앞에 있는 내가 가짜로 보이는 건가. 나의 목소리, 몸짓, 생각 하나하나 전부. 진실이 아니라고.”

 “아니. 그럴 리가. 아스카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쭉 그대로인 걸.”

 움찔했다. 순간 정곡을 찔린 것 같아서. 아스카는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확신이고 뭐고 간에. 내가 보기에 그대로라면 그런 거야. 난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무심코 말한 뒤 프로듀서는 의자에 등을 묻었다. 이어서 흠칫했다. 아, 이건 치히로 씨에겐 비밀.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아스카에게 빌었다. 말 안 할 거지, 아스카? 응? 대답할 여유 따위 아스카에겐 없었다. 이번에는 살짝 올라간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 순간 폰이 울렸다. 프로듀서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등 뒤로도 알 수 있을 만큼 크게 당황했다. 치히로 씨인가. 안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섬세하다니까, 너도 나도. 프로듀서는 급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방금 얘긴 진짜 비밀이야! 라는 말을 남기고. 활짝 열렸던 문이 굳게 닫히고, 자신 외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스카는 비로소 안심하고 기뻐하는 자신을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나는 뭘 그렇게 고민한 건지. 한 마디 한 마디에 휘둘리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그게 곧 ‘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에게 이런 말을 들은 것만으로 기분이 풀리다니. 솔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야.

 줄곧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규정하는 요소. 거기에 타인의 시선은 포함되는지.

 태어난 모습과 살아가고 싶은 모습은 다르다. 둘 다 나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둘 중 하나는 필연적으로 숨기게 되고 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타인의 시선이다. 나로 살아가는 데 있어 타인의 눈치를 봐야만 한다니.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늘 아스카의 콤플렉스이자 스위치였다.

 때문에 ‘나’를 ‘나’로 봐주는 그에게 ‘너’는 내가 아는 ‘너’라고 인정받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는 아스카를 인도해준 길잡이니까.

 그럼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가도 되겠지. 붙임머리를 한 채로. 아스카인 채로. 아니. 그에게 인정받은 ‘내’가 곧 아스카다. 그것은 강하게 확신했다.

 소녀가 처음 붙임머리를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로 사소한 저항의 의미였다. 교칙이 엄격한 학교를 상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녀의 머릿속에 파고든 것은 붙임머리에게 있어 사소한 저항이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자유로운 몸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서서히. 무의식부터 시작하여 점점 의식적인 생활범위까지 그것의 영향력은 퍼져나갔다. 반년이 지났을 때 뇌를 잠식했고 1년이 지났을 땐 내가 곧 아스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주변의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마저도 눈치 채지 못 했으니까. 그러나 이내 불만이 생겼다. 나는 그저 아스카를 따라하고 있을 뿐이라는 불만.

 이래서야 대역으로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아스카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만 한다. 때마침 프로듀서가 나타났고 아이돌이라는 일을 권하였기에 덥석 받아들였다. 선택은 옳았다. 아이돌은 그것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것은 평범한 중학생 소녀로 시작하여 이제는 모두가 아는 아이돌로 살아간다. 예쁘고 꽤나 신비적인 외모. 살짝 보랏빛이 도는 피부. 자신의 취향을 알고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센스.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소녀의 매력들이었지만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붙임머리.

 모두가 ‘나’에게 주목한다. 타인이 시선이 모여 나를 나로, 붙임머리를 아스카로 만든다. 이 몸도 목소리도 사상도 영혼도 삶도. 자신과 타인이 인식하는 모든 것들이 곧 꾸밈없는 진실이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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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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