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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Bohemian Rhaps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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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7, 2019 04:19에 작성됨.

이건 현실일까.
아니, 이게 현실일리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환상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이렇게 담담하게 서 있을 수 없을테니까.
적어도 당사자인 케이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케이트 자신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은, 지금 현실에서 벌어진 일과는 동떨어져 있을테니까.


케이트의 손은 하늘에서 쏟아진 붉은 비에 적셔져 있었다.
케이트의 앞에는 한때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차갑게 누워있었다.
그래, 이게 현실일리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환상일 것이었다.
이건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보여주는 환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눈을 뜨고 더 확실하게 이 환상을 지켜봐야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끔찍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뇌리에 새겨놔야지.
케이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은 자신의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누워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아, 쉽게 왔던 것은 정말로 쉽게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쉽게 왔던 그, 쉽게 가버린 그.
아이돌, 친구들, 프로듀서, 사랑.
잃어버릴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의 중간에서, 케이트는 천천히 무릎을 꿇어 비를 맞이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
그 곳에 있는 것이라곤, 케이트가 처음 느껴보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이었다.
사랑이란건 원래 그런 것이었던걸까, 케이트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대었다.
뜨거웠던 피와 열정,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삶.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었을까, 케이트는 작게 중얼거리며 누워있는 사람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는 어느 순간에라도 미소를 보면 반응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도 미소를 보면 반응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녀는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다시는 하지 못할 것처럼,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하려는 것처럼.


엄마, 전 사람을 죽였어요.
총구를 그의 머리에 가져다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렸어요.
엄마, 전 사람을 죽였어요.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쉽게 사라져버리는거네요.
엄마, 전 사람을 죽였어요.
바람보다도 차가운 슬픔이 저를 감싸네요.
엄마, 전 사람을 죽였어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가야만 하는 거겠죠.
엄마, 우우우우-
전 죽고 싶지 않아요.
엄마, 전 사람을 죽였어요.
엄마, 저는...


처음으로 만난 프로듀서라는 사람은 꽤나 질척거리는 남자였다.
몇 번이고 싫다고 했는데도, 아이돌을 하면 잘 될거라고 말하면서 케이트에게 계속해서 다가오는 남자.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그 고집에 질려버린 것일까.
케이트는 결국 그에게 아이돌을 잠시 해보겠다는 말을 해 버렸고, 그는 그런 케이트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왼쪽 구석에 적힌 프로듀서라는 직함에 쓰인 잉크가 번져 이름이 지워져버려 원래 이름조차도 알 수 없는 남자.
하지만 그 고집만큼은 정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어떤 모종의 감정을 마치 운명처럼 피워내었다.


프로듀서라는 직함은 꽤 무거운 무게였던 모양이었다.
케이트가 레슨을 하고 레슨실로 돌아올 즈음이면, 어째서 좋은 재원을 두고 그렇게밖에 쓰지 못하냐고 상사에게 한 소리를 듣는 프로듀서의 모습이 간간히 보였으니까.
그래도 케이트가 다가가서 뭐라고 한 소리 할라치면 어느샌가 눈치를 채고 흩어졌기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주였던가, 같이 일하던 외국인 아이돌 동료 한 사람의 폭로 사건이 일어나 그 상사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긴 하지만.


감정이란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자꾸만 커져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감정이란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더욱 누구에겐가는 말해야 했다.
하지만 이걸 누구에게 말한단 말이야, 케이트는 작게 중얼거리며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날카로운 소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보이지 않는걸보니 아직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아직 그녀에겐 시간이 조금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저는 가난한 집의 가난한 여자아이였죠.
가난한 여자아이여서일까요, 그 누구도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가끔은 부모님마저도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야 그럴게, 부모님은 항상 늦게까지 일하시느라 저를 돌봐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문학과로 간 것일지도 몰라요.
그 곳에는 저를 사랑해줄 많은 책 속의 사람들이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 곳에서도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어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셰익스피어나 오스카 와일드같이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만 사랑했으니까요.
저는 사랑받고 싶었어요.
그러니 그에게서 듣고 싶었어요.
저를 아이돌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도 보고 있다고 말이예요.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케이트의 감각은 어그러져가고 있었다.
본업인 아이돌에서도, 부업인 사랑에서도 아무런 발전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케이트는, 바쁜 프로듀서를 졸라 잠시 시간을 내줄 수 없겠느냐고 물은 뒤에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자신의 집에 사놓은 페어사이다 몇 병이 있는데, 한 잔 하면서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고.
케이트의 말에 프로듀서는 피로한 표정을 지으며 며칠 후라면 괜찮다고 말하고는 다른 아이돌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프로듀서의 담당 중에서는 꽤 잘 팔리는 아이돌이었고, 그 아이에게 신경이 쏠려있는 것은 케이트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그의 월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았을 뿐이니까.

다만 케이트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프로듀서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케이트의 불만이 그저 사소한 것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너무 바빴고, 그가 지고 있는 많은 책임들 중에 케이트는 그나마 가벼운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며 케이트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케이트에게도 날카로워질 것 같았고, 그 날카로움은 곧 그녀를 다치게 할 것 같았기에.


시간은 흘러 약속한 날.
케이트는 프로듀서의 스케줄이 끝나길 기다려, 프로덕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자신의 맨션으로 프로듀서를 안내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케이트가 쉴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에 초대된 단 한 명의 사람.
단촐한 방,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 있는 낡은 소파로 프로듀서를 인도한 케이트.
프로듀서를 소파에 앉힌 케이트는 냉장고에 넣어둔 페어사이다 두 병을 꺼내 그 중 한 병을 주었고, 그는 어색하고 피로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내민 병을 받아 마셨다.
톡 쏘는, 마치 인생과도 같은 맛.
병을 거의 다 비워갈때쯤, 케이트가 천천히 입을 열어 프로듀서에게 자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자신을 어떤 아이돌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프로듀서의 대답은 너무나도 짧고 간결했다.
피로한 그의 대답은 케이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달아오른 술기운에 힘입어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조금씩 격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 격해진 말다툼은 식을 줄을 몰랐고, 그리고...


사실 케이트는 식히고 싶었다.
케이트는 싸움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식혀졌지만, 이렇게 그를 식히고 싶었던건 아니었다.
그래서 케이트는, 뜨거운 이마에 차가운 손을 대고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는 노래하듯이 입을 열었다.


「Mama, I killed th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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