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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단편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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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9 00:10에 작성됨.

1.
열두 살 때의 일입니다.
전 저희 집 근처 수로에 붉은 수련화가 피어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붉은색은 제가 자연에서 보았던 붉은색들중 그 무엇보다도 깊고 선명했습니다.
너무나도 선명해서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요.
마치 누군가가 실험실에서 이 꽃을 개발하고 나선 모두와 함께 즐기기 위해 그 자리에 놔둔 것 같았습니다.

여름 방학 내내 전 매일 그 붉은 수련화 옆을 지나쳤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점점 그 꽃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 꽃에 눈을 떼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죠.
제 눈에는 마치 수련이 맥박에 맞춰 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꽃잎의 색이 점점 짙어져 까맣게 보이다가, 눈을 깜빡이면 갑자기 붉은색으로 바뀌곤 했습니다.
그 수련만이 수로에서 유일하게 붉은색을 띠고있는 수련화였습니다.
단 하나의.
특별한.
나만의 꽃.

그날 이후, 저는 밤새 원예학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붉은 수련화에 대해선 어떤 정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련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어느 시기에 피는지,
그리고 어떻게 혼자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해 최대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리 집 뒤뜰엔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거든요.
내가 어찌어찌해서 그 수련을 훔쳐 내 연못에 옮겨 심는다면, 그 수련은 전부 내 것이 될 것이었습니다.
영원히 말이죠.

여름방학이 끝나지 이주 전, 전 말 그래도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전 조심스럽게 수련의 뿌리를 따라갔습니다.
꽃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맘을 졸이며 말이죠.
전 뿌리가 수로 바닥에 뭍여있을거라 생각했고, 세심하게 들어낸다면 꽃은 제 것이 될 터였습니다.
수로의 바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손이 바닥에 닿았을 때, 뿌리가 바닥이 아닌 옆으로 묻혀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전 양손으로 뿌리를 움켜쥔 뒤, 벽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 더욱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뿌리는 아주 깊숙이 묻혀있었습니다.
전 흙을 파헤쳤지만, 뿌리는 뽑히긴커녕 손가락이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건 흙이 아니라 무슨 천 종류 같은 거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포대 자루가 수로 벽에 박혀 있었습니다.
전 쥐고 있던 뿌리를 내려놓고, 자루를 손으로 찢었습니다.

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와 입과 폐 속으로 물이 가득 들어찼습니다.
그곳엔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수련의 뿌리는 그의 목 깊숙이 묻혀있었습니다.

그 살인은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전 제 꽃을 가질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그 꽃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밤, 매일 밤 그 꽃에 대한 꿈을 꾸었고 몇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꽃은 점점 절 좀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시체가 없어진 이후, 꽃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 아름다움과 함께 말이죠.

전 그 수련이 어떻게 그렇게 독특한 색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제 평생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어떻게 그 뿌리가 시체 안에 박혀있는지, 어떻게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끌어냈는지 말이죠.
아직 그 과정을 재현해보진 않았지만, 전 계속 노력할 겁니다.
어렸을 적엔 몰랐었던 경찰의 사건 보고서로부터 아주 중요한 정보를 발견했거든요.
이 마지막 한 조각이 제 목표를 지금까지 가로막고 있었던 겁니다.

시신이 수로 벽에 묻혔을 적, 그 시신은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아무도 그녀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할 거야.


2.
세 번이나 세 봤지만, 숫자는 바뀌지 않았어.

시■.

쪽지엔 분명하게 적혀있었다고: 하지메의 안전한 귀환에 천만 원
100만 원이 모자랐어.

난 현금이 잔뜩 들은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덤으로 깔끔한 발차기도 한 방 먹여줬어.

10퍼센트.. 10퍼센트....

가만,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가방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생각이 번쩍하고 떠올랐어.

난 도마 위에 있던 식칼을 집어 들고는 재빨리 계단을 내려왔어.

"나쁜 소식이 있어, 하지메. 아무래도 너희 가족은 너의 90%만 걱정하나 봐.
널 놓아주기 전에 니 손 하나를 가져가야겠다는 말을 해야 돼서 참 유감이네.
왼손이야, 오른손이야? 선택은 네가 할 수 있도록 해줄게."


3.
오후 7시 31분, 난 사무실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다.
하지만 난 떠나는 대신에, 종이 클립 한 상자를 손에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다.

"갈 준비됐어?" 미오가 물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계속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녀의 뒤엔 일 때문에 지친 기색인 우즈키와 린, 그리고 미카가 있었다.

처음 이 일이 일어났을 땐, 난 "응"이라고 대답했지만, 순간 살을 빼려던 결심이 떠올라 난 곧 내 대답을 바꿨다.
그때 난 "고맙지만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라고 말했다.

이번엔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미오는 내가 말한 거처럼 대답했다.

그녀는 문을 놓았고, 난 문이 닫히기 전에 상자를 던져 넣었다.
상자는 모서리에 안착했고, 뚜껑이 벗겨지면서 마치 수류탄처럼 내용물이 이곳저곳 흩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난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걔네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난 이런 조그마한 실험들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보았기에, 난 이제 그들이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것에 놀라지도 않는다.
난 또 종이 클립 박스가 내가 한 번이라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책상 위로 돌아와있는 것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는다.

내 다른 실험들도 다 같은 결과로 끝났다.
난 문도 막아보았고, 소리를 지르며 빌어도 보았고, 미오의 팔을 붙잡아보기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았다.
내 동료들은 절대 응답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다시 엘리베이터가 나타나고 미오가 나에게 갈 준비가 됐는지 물어보기 전까진
난 항상 이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어야 했다.

난 이런 실험에 지쳐갔지만, 딱히 이 주변엔 할수 있는 것이 없다.
전화나 라디오나 화재 경보나 그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컴퓨터는 멎어있었다.
난 우즈키의 아래쪽 서랍에 숨겨진 싸구려 로맨스 소설을 찾아냈지만, 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난 알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겨우 서른 번밖에 안 읽었으니까.

만일 내가 결국 계단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착시현상의 그림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내가 얼마나 올라가든 내려가든 모든 문은 나를 20층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물론 난 언제든지 엘리베이터 안의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난 내가 어렸을 적, 너무 궁금한 나머지 엘리베이터 사고에 대해서 찾아보았고
이러한 사고들은 굉장히 흔치 않다는 것을 기억한다.
엘리베이터는 근본적으로 그냥 땅으로 떨어져 충돌할 수 없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일 것이다.
차라리 계단에서 죽을 확률이 1000배는 더 많을 것이다.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매번 엘리베이터가 떠나가고 문에 귀를 대면 들리는
수직통로를 타고 울려 퍼지는 동료들의 멀어지는 비명소리 또한 알고 있다.

그것이 왜 항상 시간이 오후 7:31분인 이유이다.
왜냐하면 난 그들과 함께 있었어야 하니까.

종이 클립 박스에서 눈을 들어 올리니, 엘리베이터가 다시 돌아온 게 보인다.

"갈 준비됐어?" 미오가 물었다.

난 결국 "응"이라고 대답할 것을 알고 있다.


4. 잠깐, 뭔가 잘못됐는데

소리가 당신을 깨웠다.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자정을 한참 지난 시간, 당신은 소파 위에 누워있었고 티비는 노이즈를 내보내고 있었다.
집안은 어두웠고, 불은 꺼져있었다.
당신 혼자뿐이다.
창밖을 보았다.
보름달의 빛이 유리창을 뚫고 지나며 반짝이고 있었다.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문을 향했다.
문에 달린 구멍을 통해 밖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당신은 문을 열었다.
아무도 찾지 못했다.

당신은 현관을 둘어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마 아이들이 당신에게 장난을 친 것일 거다.
 
짜증이 난 채로 당신은 문을 닫았고, 티비를 껐고, 창문을 닫고, 자기 위해 위층 침실로 향했다.


5.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난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어.
의사는 내 시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질 거라 했고, 실명이 되는 것을 막을수 없다 말했어.
처음엔 사물들이 마치 초점에서 벗어난 것처럼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물들은 점점 어둡거나 혹은 밝은 얼룩으로 변했지.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었어.
난 더 이상 볼 수 없었어.

하지만 나에게는 의지되는 치히로 씨가 있었기에 신에게 감사드릴 수 있었어.
치히로 씨는 내가 눈이 멀었어도 항상 날 이해해주고 보살펴줬어.
처음 몇 개월 동안은 많이 서툴렀어.
항상 유리컵과 도자기를 깨뜨리고, 모르고 밟아서 발을 찔려 다치곤 했거든.
하지만 치히로 씨는 내가 새로운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치히로 씨는 직장에서 휴가를 얻었어.
나와 함께 있어주려고... 나를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 씻겨주려고...
이 새로운 삶이 내 일상처럼 느껴지게 해주려고 말이야..
내 장애도 불구하고 난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걸 알고 정말 위안이 됐어.

어느 날,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젠 익숙해진 짙은 어둠이 아닌, 어둡고 밝은 얼룩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난 기쁨에 차서 소리를 질렀어, 무언가를 다시 보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거든.
난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심스럽게 시력이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희망고문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얼마나 시력이 나아질지 한번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어.
다음 며칠간 어둡고 밝은 얼룩은 점점 초점이 맞지 않는 색깔을 띤 사물로 보이기 시작했어.
만약 이 상태로 가면, 진짜로 내 시력을 다시 되찾을 것 같아!
난 내 시력을 다 되찾았을 때, 이 좋은 소식을 치히로 씨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했어.
아마 알게 된다면, 정말 기뻐하겠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시력이 완전히 돌아와 있었어.
난 끈기 있게 치히로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어.

"프로듀서, 저 왔어요!"
치히로 씨의 목소리가 들렸어.
난 껴안아주려고 일어났는데...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어.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치히로 씨가 아니었어...
물론 치히로 씨의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생판 처음 본 여자였다고.
내 몸에 흐르던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변하고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어.

"일어나진 마세요 프로듀서. 제가 도와줄게요."
이 낯선 사람은 나한테 와서 키스를 해주고 나를 앉혔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제가 먼저 데려다줄게요."
그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서 아이가 우는소리를 재생하는데.. 난 그 광경을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어.
천천히 일어서서 조금씩 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는 나에게로 달려와 막았어.
"프로듀서, 당신은 아직 적응하는 중이에요. 아직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앉으세요 제가 금방 저녁 만들어줄게요."
그 여자는 날 부엌으로 데려갔어.
난 비명을 안 지르려고 내 혀를 깨물었어.
거기엔 진짜 치히로 씨가 피웅덩이안에 누워있었어.
"프로듀서, 오늘 밤은 스테이크에요!"


7월입니다 이제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네요.

하지만 여름이기에 어쩔수없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끝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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