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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의도치 않은 은닉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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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8, 2019 01:34에 작성됨.

1

사쿠마 마유의 '살인'.
사실은 단지 살인 미수에 그쳤을 뿐이지만, 실제로 근처에서 살해당한 시체 한 구가 발견됨으로써 완전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얼버무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 거구의 남자가 마유를 추행하였고, 마유는 당황한 나머지 옆에 '우연히' 있었던 철근으로 거구의 남자를 내리쳤다.....
완전히 납득되는 설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는 않다.
애초에 그 자의 사인은 추락사로 인한 장기 다발 손상이지, 뒤통수 한 대 맞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유가 그 거구를 들어서 던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어서 사건은 자살로 결정되었다.
오히려 추행을 당한 아이돌로 동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수습을 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능력이다.
애초에, 마유가 그 자와 접촉하게 해서는 안 되었지만, 이렇게 훌륭히 뒷처리 하였지 않은가.
마유는 더 이상 살의를 품지 않을 것이고, 고로 이런 사건에 휘말릴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사건 자체로 마유가 정신적 충격을 다소 받은 듯하기에, 잠시 휴가를 주기로 하였다.
그동안은 다른 아이돌에게 좀 더 신경쓰도록 해야겠지.


그렇지만 당분간은 행동을 조심히 해야한다.
그 사건에서 조금의 실수를 한 것이 누군가에게 아마 들킨 모양이다.
분명 증거는 없다. 증거는 없지만....
나에게 묵시적인 협박 메시지를 남긴 것을 보았을 때 적어도 본인은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무소 내의, 누군지도 모르는 적이라.
상당히 난감하고, 그것 자체로 굉장히 큰 약점을 남긴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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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자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의심가는 인물까지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맞다면 상당히 난감해진다.
나는 우리 사무소 '아이돌'에게 약점이 잡힌 셈이니까 말이다.


만약, 그 아이가 나를 협박하거나, 경찰에 신고한다고 한다면?
아니, 그 전에 사실 그 자체를 알아버린다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까지 나는 우리 아이돌들을 위해 방해물을 제거해왔어.
하지만, 나 좋다고 아이돌을 살해해도 되는걸까?
아아, 이런 복잡한 딜레마는 지금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당분간 조용히 지내면 이 이상 의심받을 일도 없으니까.


" 프로듀서 씨! 이제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아요! "


내가 맡는 또다른 아이돌, 이가라시 쿄코가 평소와 다름없이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그런데 시간이라고?
아, 그렇지. 내일 드라마 로케 날을 위해 전날에 먼저 이동하기로 했었지.
그러고보니 이번에 같이 촬영하는 아이돌이 바로 '그 아이'이다.
이런, 쓸데없이 이상한 곳에서 트집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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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길을 따라, 아니 산을 후벼파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험지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첩첩산중에 숙소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첩첩산중에서 촬영을 또 해야한다는 것이 더 놀랍다.
멀미하는 사람이 탔다면 벌써 7번은 구토하고 남을 정도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카렌 쨩이 또 다시 섬뜩한 말을 내뱉는다.


" 사이토 요시테루 프로듀서. 또 이 사이코야. "


'사이코'라는 말에, 운전하고 있던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순간 당황한 기색을 내비추었으나, 이내 원래 침착한 성격답게 운전에 집중하였다.
어째서인지 카렌 쨩은 마유 쨩의 프로듀서, 사이토 씨에게 굉장히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단지 말이 없고 재미가 없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인기가 많을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대할 이유까지는 없다.


" 치에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 으, 으응... "


그렇게 물어봐도 나로써는 잘 모르겠다.
옆을 쳐다보니 리이나 쨩은 벌써부터 질렸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리이나 쨩은 이미 수 차례나 사이토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 분명 뭐가 있어! 내가 그것을 반드시 캐내고야 말거야! "


아무래도 카렌 쨩은 이번 촬영 일정에서 무언가 약점을 잡을 생각인가보다.
리이나는 그 모습을 살짝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마치 '드라마에서는 항상 저런 애들이 살해당하는데'라고 말하는 표정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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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침 손이 남아 숙소까지 데려다 준 타케우치 프로듀서가 돌아갔다.
이런 산 중에 있는 숙소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건물이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저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 예전에 어떤 부자가 살았다가 죽어서 매물로 나온 것을 숙소로 개조한 것일지도 모른다.


쿄코 쨩이 혹시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는지 살펴보려던 찰나에 촬영감독 이시하라 씨가 우리를 알아보고 뛰쳐나왔다.


" 일단 방에 들어가서 짐 놓고 좀 씻자..... 나 벌써부터 지치거든? "


우리는 리이나 쨩의 투정을 받아들여 바로 방으로 안내를 부탁하였다.
우리의 숙소는 2층인 모양이다.
시끌벅적하게 계단을 오르던 중에 어떤 중년 남자와 어깨가 스쳤다.
그 남자는 그대로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순간적으로 오한이 느껴졌지만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 치에리, 왜 그래? "


" 아, 아니야. 카렌 쨩. 빨리 올라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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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슨 산길이 이리 험한지.
멀미약을 미리 붙여두지 않았으면 구토를 한 7번 정도 했을 법한 산길이다.
쿄코는 이미 기절해서 뒷좌석에 누워있다.
일단 도착했으니까 깨워야겠지.


" 쿄코! 쿄코, 다왔어! "


" ...프, 프로... "


인사불성이 되어가지고는 제대로 반응도 못한다.
일단 이 아이를 방으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일 듯하다.
가방을 일단 차 옆에 내려놓고 뒷좌석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 크흠, 자네가 이가라시 쿄코 양의 프로듀서, 사이토 요시테루인가? "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인데 반말부터 먼저 하는 것 때문에 살짝 열받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내고 조용히 뒤돌아보았다.
뒤돌아보니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남자가 서있었다.


" 흐흠, 나는 스폰서인 츠리이라고 하네. 아마 자네도 알 것 같네만. "


그가 나에게 준 명함에는 츠리이 모토노부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346 프로덕션 아이돌부를 직접 지원하는 스폰서인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여기는 드라마 촬영지인데?


" 아, 왜 여기에 있냐고 묻는 표정이구만. 이 드라마도 내가 스폰서라서 말이야. "


그렇다곤 해도 스폰서가 이런 산골짜기까지 일부러 왔다는 것이 이상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건가?


" 그건 그렇고 자네. 오늘 저녁 7시. 내 방으로 찾아와주겠나? 내 방은 저기 별관이네만. 자네에게 깊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런데."


어차피 촬영은 내일부터이다.
전화가 안 터지는 지역은 아니지만, 인터넷까지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오늘 밤으로서는 별다른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승낙하였다.
어차피 별 다른 소리는 아닐 것이다.
일개 프로듀서에게 할 말이라는 것이 중요해봤자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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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 “


나는 처음에 무슨 좀비가 방에 침략한 줄 알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쿄코 쨩이었다.


" 쿄, 쿄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


" 으으으... 저, 멀미가... 우우... "


나는 서둘러 쿄코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에에.... 멀미가 이미 심할 때는 무슨 약을 먹여야 하지? 소화제?


" 아, 실례했습니다, 여러분. 산 길이 너무 험해서요. "


당황으로 달아올랐던 숙소의 열기는 사이토 프로듀서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식어버렸다.
자신을 보고는 공기의 흐름이 어색해진 것을 깨달은 그는 머쓱한 듯이 손수건으로 식은 땀만 닦아내고 있다.
그런 사이토 프로듀서를 카렌 쨩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다.
아까 분명 카렌 쨩은 사이토 씨의 약점을 잡아내겠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약점을 잡아낸다는 것일까?


" 아... 크흠... 그럼 여러분들도 오늘은 푹 쉬세요. 그럼... 쿄코를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카렌 쨩은 애초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걸까?
분명 '위험하다'라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위험하다고? 그 말의 이해가 도무지 되질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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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니나다를까 내가 그 아이들 앞에 서자마자 분위기가 급변한 듯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적어도 그 아이들이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는 거겠지.
내 추측이 옳다면 호죠 카렌이 타다 리이나와 오가타 치에리에게 내가 수상하다느니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 것이 더 안심이다.
카렌이 그렇게 떠벌리고도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은, 카렌 스스로가 자신의 말의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조금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사태를 보아도 될 것이다.


슬슬 오후 7시가 다 되어간다.
츠리이 씨가 묵고 있는 별관으로 가려고 막 준비를 하던 차에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놀랍게도, 문을 열었더니 약속을 잡았던 츠리이 씨가 바로 앞에 서있었다.


" 미안하네. 내가 성미가 좀 급해서 말이야. 먼저 찾아와 버렸네. "


이렇게 약속을 마음대로 변경하여 남이 묵고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은 참 민폐라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갈 고생은 덜었으니 아무 말 않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들으려 가만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으니, 츠리이는 갑자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마치 비밀 이야기 하듯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속닥거림은 내용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정말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 내용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연예계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으며, 그래서 애써 무시해가며 멀리 떨어져있었던 바로 그런 부류의 것이었다.


" 오늘 밤... 쿄코 쨩을 내 방으로 보내주지 않겠는가? "


치밀어오르는 살의, 그리고 끓어넘치는 증오.
이런 말들은 차라리 어린 아이들의 단순한 감정에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감히 형언하기 어려운 나의 심리 변화는, 벌써 10번도 넘게 눈 앞의 츠리이를 살해하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현재 나의 표정을 제대로 감추고 있는지도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츠리이는 이런 나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형적인 변태들이 내는 히죽대는 웃음을 지으면서, 정말 혐오스럽게도 바지 한 가운데는 벌써 오늘 밤에 자신이 할 일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예전부터 이랬다.
스폰서로서 우리 사무실 내를 돌아다닐 때도 그의 눈은 항상 이상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살의가 나의 몸을 조종하려는 것을 겨우 막은 나는 츠리이에게 '잠시 생각해보겠다'라는 비굴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 곳은 방음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산 속의 숙소.
이 사람을 살해하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말다툼 하는 소리라도 나면 나중에 경찰에게 표적 수사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용히 보내고, 천천히 앙갚음을 해주는 수밖에.


그래,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이다.
츠리이 모토노부가 가까운 시일 안에 차갑게 식을 것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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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몸이 지쳐 잠시 침대에서 졸고 있었는데 짤막한 알림 소리가 어디선가로부터 들려왔다.
아마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소리 같은데.... 으음....


" 치에리 쨩, 이거 누구 휴대전화야? "


리이나 쨩이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귀엽게 디자인 된 휴대폰이라면 쿄코 쨩의 것 같다.
카렌 쨩이 이렇게 가지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 아, 쿄코 쨩 거구나. 문자 메시지 온 것 같은데. 깨워야 하나? "


이제 몇 시간 정도 쉬었으니 깨워도 될 것 같다고 대답하자, 리이나 쨩은 가차없이 귀에다 바람을 넣어버렸다.


" 흐익?!!!!! "


소름끼쳐하며 쿄코 쨩이 발딱 일어났다.
아.... 효과 만점이네?


" 쿄코 쨩, 문자 온 것 같은데 받아봐. "


" 아, 으응... "


눈비비며 휴대전화의 화면을 잠시 쳐다보던 쿄코 쨩은, 이내 인상을 쓰더니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건가?


" 저기, 저는 잠시 가볼 곳이 있어서 잠깐만 다녀올게요! "


응? 촬영 관련 스태프로부터의 연락인가?
벌써 밤 9시가 넘었는데, 설마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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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가라시 쿄코를, 그래도 나름 잘 나가는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에게 배개영업을 요청하다니.
전부터 조금 안 좋은 기색이 있긴 했다.
타케우치 녀석도 이러한 일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었지...


아무튼 사람은 돈이 많고 권력이 강하면 행복한 것이라더니, 저 츠리이도 346 프로덕션 아이돌 부의 스폰서라는 직위를 이용해 이딴 요구를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결국 쿄코 건을 어떻게든 얼버무린다고 해도 츠리이는 다른 아이돌을 또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즘 사무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무소가 그런 자들에게서 아이돌을 지켜준다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이다.
츠리이 모토노부를 살해한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두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호죠 카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움직이면 그녀는 더더욱 나를 의심하고 조사할 것이다.
이러한 의심 자체는 절대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나로써는 최대한 나와 관련 없는 상황을 만들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밖에 없다.


두 번째는..... 내가 과연 이 살인을 해도 되는가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아이돌을 위한', 프로듀서의 '희생' 아닌가.
모두의 우상을 더럽히려는 쓰레기 국물을 닦아내야만 한다.
이미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해결하려고 하면, 나의 아이돌은 평생을 원한과 상처를 품고 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잘못일 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죄책감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나의 아이돌을 그런 꼴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그 자를 살해할 수 있는 방법이 금방 떠올랐다.
분명 그 츠리이라는 사람은 자가용, 아니면 운전기사를 대동한 차량으로 이 산을 올라왔겠지.
나와 최대한 관련성이 없게 보이도록 하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교통사고'이다.
마침 이 산길이 매우 험하기도 하니까, 차량 여기저기에 손상을 주면 사고 정도 일으키는 것은 가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저것 계획을 자세히 구체화해야할 것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내일 일어나서 생각하고자 하였다.


오늘은 다만 이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조용한 밤을 보낼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창문 밖에 쿄코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지나간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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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밤중에 어딜 가는가.
당연히 궁금하지만, 여자 아이를 하나하나 간섭하는 것도 할 짓이 못된다 생각하여 잠시 고민하였다.
그런데, 쿄코가 향했던 방향은 분명, 그 곳이었다.
애초에 쿄코는 그 쪽으로 갈 일 자체가 없다!
왜 뜬금없이 츠리이가 묵는 별관을 향해 뛰어가는가.


갑자기 오한이 동반되는 엄청난 불안의 한기가 마음을 휘저었다.
설마.....
설마 츠리이가 쿄코를 직접 호출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대형사고다.
츠리이가 쿄코에게 무슨 말을 할 지, 무슨 짓을 하려할지는 뻔할 뻔자이다.
분명 '배개 영업'을 강요하거나, 적어도 은유적으로 그 의미를 내포하는 말을 할 것이 틀림없다.
쿄코는 과연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는가?
아니, 거부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츠리이라는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가?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된다.
이렇게 된 이상, 츠리이와는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 인간은 이번 촬영이 끝나고 돌아갈 때 죽는다.
내가 교통사고 위장해서 살해할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대놓고 싸우더라도 후탈은 없을 것이다.


나는 급히 벗어놓았던 옷을 다시 입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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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밤이 되니까 조금 졸립다.


" 후암.... 응? 리이나 쨩? 어디 가려는 거야?"


" 방 안이 너무 답답해서 잠시 바람 좀 쐬러. 치에리 쨩, 꽤 졸린 모양인데 내일 촬영을 위해서 지금 자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


리이나 쨩이 나의 하품하는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하였다.
확실히 내일은 새벽 5시부터 촬영이라고 하니 일찍 자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카렌 쨩은 전혀 졸린 기색 없이 멀쩡이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상당히 매서워서,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매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목표물을 놓친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카렌 쨩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카렌 쨩이 경계하고 있는 그 사람이라도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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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츠리이가 묵고 있다는 별관에 거의 도착했다.
출발이 조금 늦은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여기에 도착한 것이 쿄코를 발견하고 8분이 지난 후다.
그렇지만, 쿄코 쨩이 여기 도착하고 츠리이와 접촉한 시간은 기껏해야 2~3분밖에 안될 터.
그 짧은 시간이 별 일이라도 있겠는가.


나는 조심스레 별관 문을 두드렸다.
이상하게도 방 안에는 아무 소리가 없다.
쿄코과 같이 있는 현장을 들키기 싫어 일부러 아무도 없는 척을 하는 것인가?


....아니, 이것은 조용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고요와 정적에 가까운 정도이다.
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문에 귀를 살며시 갖다 댔다.
여전한 고요와 정적. 그러나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건 어떤 소녀의 나즈막한, 그러나 지친듯한 숨소리였다.


드디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끼리릭하고 열리는 소리에 놀란 탓인지 안 쪽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발소리를 쿵쿵 내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머리를 묶은 한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건 틀림없이 이가라시 쿄코였다.


" 쿄코, 여기서 뭐... "


" 프, 프로듀서 씨! 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


놀람보다는 오히려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
아니라고?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지?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그녀의 반응에 나의 사고는 순간 정지되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어떠한 이채에 의해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적에 가까운 조용함. 흥분한듯한 숨소리.
그리고 이가라시 쿄코의 공포에 질린 모습.
그렇다면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 이, 이건 제 잘못이.. 아니예요! 믿어주세요, 프로듀서 씨!"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바라본 눈 앞의 광경은,
주름이 얼굴에 잔뜩 나있는 한 50대 중년이 바닥에 쓰러진 모습.
그리고, 그의 머리로부터 흐르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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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가 적고 댓글이 없네요ㅠㅠㅠ 이, 이거 재연재라서 그런 거겠죠? 그런 거겠죠? 으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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