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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 시리즈-3]시라기쿠 호타루:야미니 노마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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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7, 2019 18:52에 작성됨.

호타루에요, 언제나 불행한 아이돌 시라기쿠 호타루.


어렸을 때부터 불행하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많고 많은 불행들을 겪어왔죠, 여러분이 익히 들어오신 에피소드 외에도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아요. 전(前) 회사 사장님에게 험한 꼴을 당할 뻔한 것도 있고, 길거리에서 낮술한 트럭에 치일 뻔한 적도 있고.

무너지는 거요? 그건 부지기수에요. 지금도 그런 일 많은데요, 뭐. 책장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제 억장도 무너지고.


하여튼 무너지고 망하고 하는 일들은 부지기수지만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니 더 적지는 않을게요. 괜히 더 적었다가는 여백은 둘째 치고 죄책감이 계속 들어요. 저 때문에 망한 것 같으니까.

아니 뭐 실제로 제 불행과 역신 때문에 망한 거 맞아요. 역신은 떼려야 못 뗄 제 운명이고 천직인가 봐요, 아무래도. 그래서 괴로워요. 마음 같아서는 죽고 싶어요.



현재는 초거대 기업 미시로 프로덕션에 다니고 있는데, 그곳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고 또 제 마음도 안정돼요.

이제는 제 역신의 기운이 반쯤 죽은 것 같아요. 주변 분들이 모두 행복해 하시니까 저도 행복하고요.


이렇게 좋은 분들이 계시는 이 프로덕션에 만약 역신의 불행이 닥쳐서 망하게 된다면, 저는 큰 절망감과 망해버린 책임감을 안고서 아오키가하라(青木ヶ原) 수해에서 목매달아 죽어버릴 거예요.

왜 제가 책임을 지냐고요? 제 역신 때문에 망한 거니까요. 아마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예전 사장님과 디렉터님이 그러셨듯이 저 때문에 다 망해버렸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언제나 다름없이 출근 중이에요. 주말에 집으로 갔다가 오는 월요일에 다시 기숙사로 가게 돼요.


그런데 역에 도착한 순간부터 불행의 연속이네요.

끓는 물의 거품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 기차는 연착, 도착한 기차에 탑승하려니까 틈새에 발빠짐, 겨우 탔는데 눈앞에서 자리 뺏김, 서서 가는데 뒤에서 치한(당할 뻔 했어요),하차해서도 엘리베이터 고장, 에스컬레이터 수리 중.


역사에서 나와서도 계속되는 불행.

공사 중이던 근처 건물에서 철근이 저의 바로 옆에 떨어졌어요. 자칫했으면 그 철근이 제 어깨를 때렸을 거예요.

한술 더 떠 도를 아십니까들의 공세, 겨우 떨쳐내니까 가던 길이, 그러니까 프로덕션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공사 중. 그래서 조금 먼 거리를 빙 돌아갔어요.


아까 위에서 역신의 기운이 반쯤 죽었다고 말씀드리긴 했었죠. 한 가지 잊었네요, 기운이 얼마나 죽든 역신은 역신이라는 걸. 그 반쯤 남은 기운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니.



프로덕션에 도착해서 기숙사에서 짐을 푼 뒤 스케줄을 받고 근처 쇼파에 앉았어요.

앉았는데 제가 앉은 자리가 주저앉음과 동시에 꾸엑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동시에 안즈 씨가 얼굴을 내밀더니 하시는 말,


“호타루, 네가 앉은 자리의 깔판이 내 몸을 쳤어. 다시 끼워놔 주었으면 해.”

“앗! 죄송해요....제 불행 때문에 안즈 씨가...”

“괜찮아 괜찮아. 그럼 난 이만...후아암,....”


하고 다시 들어가 버렸네요. 그동안 저는 쇼파 깔판을 다시 끼워두고 난 뒤 서서 기다렸어요.

저의 불행 때문에 앉은 곳이, 설령 바닥이라 해도 주저앉을 것 같으니까 아예 서서 기다리려고요.



기다린 끝에 프로듀서님의 차를 타고 출발해 도착한 곳은 아키타, 이곳에서 토크쇼 프로그램을 촬영하는데 오늘은 그 방송의 500회 특집이라서 특별히 야외에서 촬영한대요.

그렇게 중요한 방송을 저의 불행 때문에 망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음...도착하긴 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나 봐요. 차 안 막힌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일찍 도착한 거였어요. 시작하려면 시간이 30분은 더 넘게 남았어요.

우우...이런 불행이...


아무튼 시간도 있겠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멘이라도 먹을까 해요.

아침을 안 먹고 나왔더니 배가 고프네요.



혼자 편의점에서 가쓰오 우동컵을 사서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또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들어온 사람은 편의점 주인에게(어디서 났는지) 총을 겨누며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어요. 저런 사람을 두고 무장 강도라 하는 거겠죠.


저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싸맸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저 혼자에게 닥치는 불행도 충분히 힘든데, 왜 무고한 저 사람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돈을 내주어야 하는 걸까요.


저에게, 제 주변 사람들에게 닥치는 불행을 보고 또 견디느라 제 마음과 정신은 충분히 너덜너덜해졌어요. 괴로워요, 죽을 것 같아요. 진짜로 괴로워서 더는 못 견디겠어요.


저의 이런 마음이 저를 휘감고 표출되어 그 무장 강도를 쥐어짜듯이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빨아들였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무장 강도는 바닥에 쓰러져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르고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경찰이 와서 무장 강도를 체포해가고 편의점 주인 분은 돈을 되찾았지만 저는 아까의 공포를 잊을 수 없었어요.

단순히 무장 강도가 총을 들고 누군가를 협박해서가 아니라, 쓰러진 무장 강도의 표정이 마치 심연의 공포를 목도했다는 얼굴이었으니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가쓰오 우동을 다 먹고 촬영장에 들어가니 다들 와계셨어요. 3분의 MC분들도, 같이 촬영하는 게스트 분들도 모두 도착해계셨고 이제 준비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촬영을 하는데, 대화를 나누시는 스타일이 다들 좋은 분들 같아요

만약 전(前) 소속사에 저런 분들이 계셨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의 회사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전(前) 회사에서 저렇게 좋은 분들이 계셨다면 그때의 생활이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사무소에 돌아가는 길이 아까랑은 다르게 조금 막히네요. 시간을 보니 저녁 6:30분,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일찍 퇴근하시는 직종 분들이 퇴근할 시간이네요. 보통은 일고여덟시 쯤에 퇴근하시던데.



기숙사로 돌아가는 조금 긴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졸며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저는 또 다른 저를 보았어요.(그를 ‘호타루2’라고 부를게요.)

저와 호타루2는 고향인 돗토리에 있는 고향집 문 앞에 있었고요.


그 문 앞에 쭈그려 앉아있던 호타루2는 저를 힐끗 보더니 말했어요.


“불행뿐인 삶은 싫어. 그렇지, 호타루?”

“으...응. 이제 불행엔 지쳤어.”

“함께 행복하자고 주변에서 말들 하는데, 왜 정작 누군가의 불행엔 동참하려 하지 않는 걸까?”

“그러게, 그런 불행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그러네. 그러면, 똑같이 겪게 해 주자, 너와 내가 뼈저리게 겪었던 그 불행을.”

호타루2가 일어나 그 말을 꺼내자 주위가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자, 호타루. 너만 그 불행을 겪을 수는 없어. 네가 불행을 겪게 만든 못된 사람들 또한 뼈아픈 불행을 겪게 해 주자.”

“....그래. 그렇게 해 보자.”


그러자 호타루2는 미소 지으며 엄청난 속도로 몸이 흩어져 저에게 흡수되었고,

동시에 저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꿈에서 깨어났을 때, 차는 시부야 거리를 향하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요. 거기 있다는 건 거의 다 도착했다는 거겠죠.

옆에 있는 물을 마시는데 프로듀서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좋지 않은 꿈을 꾼 모양이구나, 호타루.”

“딱히 나쁜 꿈은 아니었어요.”


대답하며 저는 꿈의 내용을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프로듀서님은 약간 표정이 흐려지시며 대답하셨죠.


“사실은, 호타루 네가 자는 사이, 네 몸에서 옅게 검은 연기가 났단다. 믿을 수가 없더구나. 연기가 걷힐 즈음에 호타루가 깨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연기가 사라져버리더라고.”


음....그러니까, 프로듀서님의 말씀과 저의 꿈을 합쳐본 결과 나오는 결론은, 그 검은 연기는 호타루2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어째서일까요? 왜 프로듀서님께도 그것이 보인 걸까요?



프로덕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뒤 기숙사로 올라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래요. 할 수 없죠, 조금 힘들어도 계단으로 올라갈 수밖에.


한 5층쯤 올라갔을 때(기숙사는 7충에 있어요.) 불행하게도 그만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져 계단을 굴렀어요.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었죠.



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떠보니 방이었어요. 분명 굴러 떨어졌을 땐 계단이었는데.

주변을 둘러보자 아이돌 몇 분이 보였어요. 쿄코 씨, 미쿠 씨, 카나데 씨. 같은 방을 쓰는 분들이에요.


“괜찮냥, 호타루? 계단에서 굴렀다고 들었다냥.”

“네...발을 헛디뎌서...”

“아무튼, 다친 데는 없어서 다행이네.”


그 말을 듣자마자 제 몸 구석구석을 만져봤어요. 계단에서 굴렀는데 상처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하지만 정말로 피도, 멍도, 상처도 없었어요. 말도 안 돼, 이건!


그래, 이건 꿈이에요. 아까 차에서 꾸던 꿈에서 아직 안 깬 거라고요.

아니면 혼수상태인 걸지도 몰라요. 분명 계단 스테어에서 머리를 부딪친 걸 똑똑히 기억해요. 그래서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서 제 몸은 산소마스크를 낀 채 의식이 없는 채 꿈을 꾸는 중인지도 몰라요.


볼을 꼬집어봤는데 아파요. 몇 번이나 여러 곳을 꼬집어봤지만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

쿄코 씨가 저를 보다 못해 말했어요.


“그만 꼬집어도 돼요. 사실이에요. 정말 상처 하나 없는 채 쓰러져 계셨어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현실이라니, 정말로 다치지 않다니!

그래, 어쩌면 내상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사고에서 내상만 있기도 불가능한데.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저에게 미쿠 씨가


“오늘은 쉬라냥, 내일 되면 나아질 거다냥”


하며 불을 끄셨어요. 저도 잠들었고요.


꿈에서 호타루2를 다시 만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꿈을 꾸었어요. 특별히 행복한 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악몽도 아닌 꿈, 그런 평범한 꿈을 꾸며 그 밤을 보냈어요.



다음날 일어나서 사내 보건실로 갔어요. 보건실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의 시설이 갖춰져 있어요. 보건실보다는 오히려 병원에 가깝죠. 그곳에 간 이유는 어제의 사고의 내상이 혹시 있을까 보러 간 거예요.


어제의 일을 말씀드리고 나서 엑스레이를 찍어도 보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결과를 보니 모두 정상인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요? 그렇게 심하게, 쿠당탕거리며 굴렀는데 아무런 상처도 없다니, 그러고 보니 통증이 어제에 비해 많이 줄긴 한 것 같기도 하고....



오늘은 화요일, 오전엔 오프에요.

학교에 등교하려고 지하철을 타는데 오늘도 사람이 붐비네요. 러시아워라 불리는 출근 시간이니까 어쩔 수 없으려나. 그래도 전보다는 원활하게 갈 수 있었어요.


학교에 도착해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의자에 앉아있던 학우 한 명이 뒤로 넘어갔어요. 아무리 제 역신이 강하다 해도 어떻게 들어가자마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괘...괜찮아? 내 불행 때문에....”

“아아아니 괜찮아. 시라기쿠 왔네, 안녕! 좋은 아침!”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가 되었어요.

그 시간 동안 특별한 것 없이 그저 수업만 했죠. 그럼 수업시간인데 뭐가 있겠냐마는 평소엔 선생님들이 가끔 미우 씨 다쟈레 같은 농담도 치고 그러셨는데 오늘은 안 그러셔요. 이것도 불행일까요?

딱히 불행이라고 느껴지진 않으면서도 조금 무료하네요.



점심을 먹고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아가는데, 제 앞에 웬 코트를 입은 사람이 있네요.

저의 불행한 향년 13세의 촉으로 봤을 때 저 사람은....


“바바리맨이다!!!”

“꺄아아아아악!!!”


.....네, 그러네요. 이 학교에는 어떻게 들어온 걸까요. 아직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왜 저런 쇼크를 선사해주는 걸까요. 저의 불행 때문에 바바리맨 쇼크를 보여주고 말았네요.

이런 건 싫어, 이런 건 싫어, 이런 건 싫어......



그 바바리맨이 제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그 늙은 나체를 가리지 않은 채로 저뿐만 아니라 제 쪽에 있는 모든 학우들에게 안구테러를 선사해주면서.


이런 경우가 있으면 선생님들이 오시지 않나요? 그런데 왜 이리 더디게 오는 걸까요. 게다가 저 늙은 바바리맨은 도망은커녕 이 짓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 술 더 떠 저에게 그 바바리맨이 추파를 던지면서 다가와요. 설상가상으로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은 다 녹았어요. 오호통재로다.


‘저 변태 같은 바바리맨, 진짜로 죽을 만큼 아픈 불행을 겪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저의 몸에서 어둠이 피어났어요. 아마 예전에 무장강도를 미치게 만든 그것과 같은 거겠죠. 다만 이번에는 저도 그 어둠이 피어나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피어난 어둠이 바바리맨을 쥐어짜듯 둘러쌌어요. 이윽고 바바리맨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게 된 지 10초 후, 어둠 속에서 바바리맨의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그 어둠을 걷어내니 바바리맨은 말라비틀어진 채 동태눈이 되어 있더라고요.


주변 학우들은 모두 놀랐고 제압하러 온 선생님들도 적잖이 놀라셨어요.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걸 목격했으니까 당연하겠죠.

사실 저도 잘 안 믿겨져요. 제가 해놓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요. 제 안의 역신이 폭주하기라도 한 걸까요?



그 뒤로 얼마 동안은 바바리맨 사건으로 학교에서 얘기가 많이 오고갔어요.(다만 바바리맨이 침입한 것보다 제압한 저의 어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오고갔어요.)

얼마나 큰 이야깃거리인지 돗토리서 일어난 이 일이 금방 시부야의 프로덕션까지 들어갔어요. SNS가 있으니까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어쨌건 저로서는 해명하기가 조금 곤란해졌어요.


프로덕션까지 퍼졌다는 말은 곧 저의 프로듀서님의 귀에도 들어갔단 의미겠죠.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사무소에 출근했어요. 그때가 목요일 오후였죠, 아마?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그 주제가 나오더라고요.


사실은 프로듀서님께서 어둠에 대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조곤조곤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치,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계셨다는 듯이.


“호타루, 이제 그 어둠을 잘 조절해가면서 쓰도록 해. 아니, 하다못해 사람들 없는 곳에서 쓰도록 해라. 아이돌인데 그런 가십이 돌면 네 이미지에 어떤 타격을 입힐지 모르잖아.”

“....알고 계셨어요? 마치 다 알고 계셨던 듯, 담담하게 말씀하시네요.”

“그때, 네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났을 때,(너는 꿈을 꾸고 있었다고 했지.) 전에 읽은 만화의, 이번 사태와 유사한 스토리가 생각났어. 처음엔 설마 했지만 화요일에 그 일이 있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단다. 지금 놀라지 않을 뿐이지 사실 그때는 엄청나게 소름이 돋았어.”

“저는 아이돌을 그만둬야 하는 걸까요?”

“그 정도는 아니야. 다행히도 너의 어둠에 대해 그렇게 큰 반응이 오가고 있지는 않아.

그것은 즉 호타루, 네가 언급을 하지 않고, 언급되면 부정하고, 대중들에게 다시 보여주지 않으면 되는 수준이라는 거지. 다른 건 몰라도 후자는 가능하지? 그때 네가 보인 어둠은 네 자의로 일으킨 것 같던데.”

“가능해요. 하지만 컨트롤이 될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러면, 여기서 테스트해보자.”

“네?”

“너의 어둠으로 나를 잡아봐.”

“에? 그...그건...”

“괜찮아, 스타드리 마시고 에너지 보강하면 돼.”

“그 정도 수준이 아닌데...!”

“단순히 나를 쥐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요. 그럼....!”


그때 화요일에 했던 대로 프로듀서님께 시험해봤어요. 근데 컨트롤이 잘 안되네요.

사실 그때는 진심을 다해 쥐어짠 거라, 진심 없이 쓰는 기술은 컨트롤이 쉽지 않아요.


결국 어정쩡한 상태로, 프로듀서님을 쥔 것도 아니고 안 쥔 것도 아닌 상태로 시험은 끝났고 저는 할 말이 없었어요. 프로듀서님께서도 말씀하셨어요.


“컨트롤이 능숙하지 않구나. 왜일까?”

“마인드 컨트롤이 안 돼서겠죠. 제가 어둠을 피우는 건 진심일 때만 가능해서...진심이 아닐 땐 쓴 적이 없어요. 그리고 프로듀서님께 진심으로 그럴 수 없고요.”

“알겠어. 아, 그러고 보니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못할 건 없는데.....어째 신나신 것 같네요, 프로듀서님.”

“아하핫, 그래? 나도 모르게 흥분했나보네. 만화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까 조금은 놀라워서 그래. 아무튼, 다른 기술도 가능해?”

“써본 적이 없어요.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있으면 좋을 텐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란코씨네요.


“여의 동포여! 앗, 어둠의 기사여! 성가신 태양이로다! 이곳에 두 고결한 영혼의 화합의 장이 열렸구나!(프로듀서씨, 앗! 호타루짱! 안녕하세요! 여기 두 분이 같이 계시네요!)”

“아...안녕하세요, 란코상.”

“안녕, 란코. 스케줄 끝나고 온 거야?”

“그렇도다! 아테나의 올리브나무가 완성되었다!(네! 잘 된 것 같아요!)”

“잘됐구나. 어둠에 삼켜져라.”

“크크크....여의 동포 또한 어둠에 삼켜지거라!”


란코상과 프로듀서님의 대화가 오고갔어요. 저도 그렇고 란코상도 그렇고, 저희 프로듀서님은 어두운 애들 담당이신가 봐요.


“어둠의 기사여! 그대 또한 어둠에 삼켜져라!(호타루짱도 수고하셨어요!)”

“어...어둠에 삼켜져라~”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제 손에서 블랙홀 같은 게 생겨났고 란코상이 제 손에 끌려 들어왔어요.


“어둠의 기사여! 이건 어떤 마령의 농간인가?(호타루짱! 이건 대체....)”

“호...호타루....!”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이건 대체 뭔가요?!”


설마 이게 저의 두 번째 능력인가요?


손을 놓자 란코상이 다시 자리에 섰고(잠깐 비틀거리긴 했지만) 저는 문득 있을지 없을지 모를 저의 세 번째 능력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능력을 숨기라던 프로듀서님도 이젠 오히려 그 능력 찾기를 도와주시겠대요. 이래서야 이건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초능력자잖아요.



그리고 3번째 능력은 생각보다 빨리 찾았어요.

그날로부터 이틀 후인 토요일에 길을 지나다가 브레이크 고장 난 승용차에 치였거든요.

그랬는데, 신기하게도 다친 데가 한 군데도 없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도 이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네, 계단에서 굴렀을 때, 그때도 분명 다쳐야 할 상황에 상처 하나 없었잖아요.

이번엔 차에 치였는데도 다친 데가 하나도 없어요. 다만, 엄청나게 아플 뿐이에요.

좀 아픈 걸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능력인 것 같아요. 행운일까요?



그로부터 한 달이 약간 안 되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저는 이 어둠의 능력을, 프로듀서님의 말씀을 따라 철저히 숨기고 다녔어요. 학교에서도, 프로덕션에서도, 어디서도 어둠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그동안 동급생들도 저의 그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나 봐요. 아무도 언급하질 않네요. 잊어버린 건지, 아님 그냥 말을 안 하는 건지.



그리고 그날 오후, 저는 새로운 의상을 촬영하는 스케줄이 잡혔어요.

이 의상의 이름은 ‘내 빛깔의 날개로’라고 해요. 디자인이 뭐랄까 ‘스카이 브라이트’랑 비슷한 것 같아요. 검정 버전 스카이브라이트?


촬영기획서를 보니 비가 오는 날 밤에 한 장, 달이 뜨는 밤에 또 한 장을 찍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여름이라 날도 하루 종일 맑고 해가 지려면 최소 7시는 되어야 해요.

지금 시간 5시 40분, 이 촬영 이후로도 7시에 잡지 인터뷰와 9시 라디오의 게스트 참석이 있어요. 의상 촬영을 다른 날로 미루면 안 되겠냐는 프로듀서님의 요청에


“오늘이 아니면 저희도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라며 카메라맨 아저씨는 거절하셨어요. 어떻게 이런 불행이....아우우....



결국 저는 불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바람을 쐰다는 명목으로 밖으로 나왔어요. 밖의 하늘은 아직도 맑고 밝아요. 한숨을 쉬었죠.


“어떻게 하면 좋지...?”


그러자 언제 나오셨는지 프로듀서님이 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씀하셨어요.


“하늘이 널 불행하게 하는구나.”


그 말씀에 저는 옅은 미소를 지었어요. 말씀의 의미를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어요.


“속도 모르고 맑은 저 하늘, 제 마음처럼 어두워졌으면 해요.”


제가 그렇게 말하니까 어둠이 하늘을 덮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태양을 삼켜버려 밤이 되었어요.


“어둠에 삼켜졌어요. 이제 밤이 계속될 거예요.”


“그래, 이제 촬영하러 가자.”


들어간 촬영에서 좋은 컷이 찍혔고 그게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 그거예요.

비 오는 건 어떻게 찍었냐고요? 위에서 샤워기 틀었어요. 제가 비를 내릴 수는 없잖아요? 먹구름까지는 어떻게 만든다고 해도.

어쨌건 퀄리티는 극상으로 나왔고 많은 팬 분들이 그것을 보고 감탄하시며 그 사진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엄청나게 지불하셨어요.


한번은 그걸 근처에서 지켜봤는데, 저의 사진을 구매하시려는 분들이 물밀 듯 들어와 1만 5천장의 사진이 반시간 만에 다 팔렸다니까요. 저도 정작 제 사진을 못 구했어요, 불행하게도.

아니, 그래도 저를 이만큼 사랑해주신다는 걸 알게 됐으니 행운일까요.



촬영을 끝내고 난 뒤, 저의 어둠이 아닌 자연의 어둠이 하늘을 덮기 시작한 7시 30분, 저는 그때 잡지 인터뷰를 하고 있었어요.


질문을 받는데, 그 질문들 중에 한 달 전 바바리맨 사건을 언급하시더라고요. 이에 저는 프로듀서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대로 어둠 이야기는 쏙 빼고 바바리맨에 대한 대답만 했어요.

모른다고 부정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섣불리 어둠 얘기를 했다간 일이 더 커질 지도 모르니까요.



잡지 인터뷰와 라디오 녹음까지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 10시 20분,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잠든 저는 꿈속에서 오랜만에 호타루2를 만났어요.


호타루2가 말했어요.


“사는 건 어때? 요즘은 예전보다 덜 불행해보이네.”

“덜 불행한 건 아니야. 더 행복할 뿐이지.”

“그래, 불행한 건 똑같다는 얘기네.”

“아마도?”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타루2가 말했어요.


“많이 행복해보여. 네가 아까 말한 대로, 덜 불행하지 않아도 더 행복해보여, 정말로.”

“그렇다니 다행이야. 저기, 호타루. 난, 앞으로도 불행하려나?”

“방금까진 행복하다면서 이제 와서 뭔 소리야?”

“지금까지 나는 역신에, 재수 없는 애에, 약해빠진 애로 보였어. 앞으로도 그럴까?”

“이해할 수가 없네. 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한 웃음을 짓게 해줬고, 또 너 스스로도 행복하다고 지금까지 말했어. 난 네가 그 걱정을 이제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또 하는 거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호타루. 여태껏 수많은 불행 속에서도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너니까 앞으로도 꺾이지 않는다면 평생 행복할 거야.”

“네 말이 맞아. 꺾이지 않는다면, 난 행복할 거야.”

“알게 되었나보네. 그럼 이제 잘 가. 목적지에 도착했으니까.”


말하며 호타루2는 저의 손을 잡고 미소 지었어요.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제가 본 것은, 호타루2의 말대로 목적지인 프로덕션 건물이었어요.


“딱 맞춰 깼네.”

“꿈에서 호타루2가 다 도착했다고 말해줬어요. 정말 다 도착했네요.”

“그래? 예지몽인가 보네. 프로덕션에도, 그리고 탑 아이돌에도 다 도착했어, 호타루.”

“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나요?”



차에서 내려 기숙사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어요.

다 올라갔을 때, 저는 프로듀서님께 말씀드렸어요, 제 어둠을 살려서.


“프로듀서님....어둠에 삼켜지세요...!”


그러자 프로듀서님의 손이 제 손으로 끌려 들어왔어요.


“그래, 호타루. 어둠에 삼켜지거라.”


이거 란코상이 들으면 아이덴티티 빼앗지 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어둡고 불행하지만 행복한 아이돌, 저 시라기쿠 호타루,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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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도 완성했어요. 좋은 글을 쓰려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재능이 없나봐요.

이번 열매는 자연계 어둠어둠 열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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