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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무 "P느님에게 프로듀스 당한 지 N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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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5, 2019 12:30에 작성됨.

리아무는 신데렐라 걸 선발 총선거에서 최종 3위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것은 무엇의 결실인가. 유메미 리아무라는 아이돌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할 일이 없으니 오타쿠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그 길이 아이돌 오타쿠였을 뿐이다. 자기 자신이 오타쿠니까, 기분 나쁜 아이돌 오타쿠를 상대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그런 특이한 특징 하나만이 그녀를 살린 것인가. 수많은 미시로의 팬 앞에서 그런 평가 절하를 당하고도 리아무는 신경쓰지 않았다. 순위 발표식 후 사무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리아무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본인의 마음 속에서 그런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위란 건 대체 무엇의 결실일까?

리아무는 운전석에 있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스카우트했는지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바라볼 때의 눈빛은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전혀 달라서, 점점 그를 인간으로서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 같은 말을 해도 이해해주려고 한다. 받아주려고 한다. 무대에서 어설프게 레슨에서 배운대로 춤을 따라하면,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팬? 아니, 그 이상이다. 그의 앞에서 리아무는 인생 낙오자 따위가 아니었다. 노력 같은 건 싫지만, 그래도 그의 앞에선 최대한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이유였다. 


“P느님.”

“응?”

“3위, 기뻤어?”

“응. 너무 기뻐.”

“왜?”

“......왜냐니. 이젠 네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다른 아이돌들은 나보다 못해서 그럴 수 없는거야?”

“.......”

“...난 잘 모르겠어. 이상하잖아? 응? 일확천금 같은걸 꿈꾸긴 했지만, 이런식으로 얼렁뚱땅 3위라니! 리아무쨩 아이돌로서 먹힐 요소 같은거 있기는 했나? 상냥하지도 않고 두부멘탈에다, 노래 같은거 보여줄 계기도 없었고. 납득이 안 가니까, 뻔뻔하게 이런 나라도 좋아해준 오타쿠들 만세~ 라던가 못하겠다구! 오죽하면 내 팬들이 나보고 노답 인생 한탕 패배자라고 하는걸!”

“...뭐?”

“반응 모니터도 안 한거야? 담당 아이돌 신경쓰고 있긴 한거지?”


차가 거칠게 멈추었다. 리아무는 덜컥 겁이 났다. 쏘아붙이는 말투로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반응이 너무 없어서, 조금만 공격적으로 해보려고 했던건데. P느님, 화났어? 미안. 늘 말을 뱉어놓고 후회하는 리아무답게, 잔뜩 흥분했던 말투는 이제 한풀 꺾여있다. 그래도 P는 돌아보지 않았다. 슬슬 리아무도 걱정이 되었다. 


“P, P느님~”

리아무는 낑낑거리며 두 무릎을 콘솔박스에 올렸다. 

“무릎 꿇었다고~ 용서해줘! 응?”

“...미안.”

“...어? P느님이?”

P는 종종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렸다. 리아무는 그럴 때마다 추켜세워지는 기분에 철 없이 기뻐했었다. 그런 리아무도 이번의 사과에는 조금, 아픈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실체한다면 손에 꼭 쥐고 터트릴 듯이 눌러버리고 싶었다.

“전부 내 탓이야.”

“아, 아니…….”

“내가… 내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중간에 꿀꺽, 하는 목넘김 소리만이 차안을 채웠다. 

“네가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안 들어도 됐을텐데…!”


찌릿. 하고, 다시 한번 그 느낌이 왔다. 다만, 불쾌함이 섞였다. 어색하고 찝찝하다. P는 리아무를 끝끝내 마주보지 못했다. 그 눈맞춤의 부재가 리아무의 마음에 걸렸다. 길게 늘어지는 침묵만큼 리아무는 P의 말을 곱씹었다. 왤까?

이제 와서, 라니?

그것은 마치…


“...미안.”

“어라. P느님 울어?”

“아니….”

“우는구만!”

“...있지.”

“무시당했다. 리아무쨩이 한 말, 무시 당했어.”

“......넌 노력했어.”

“....?”

“알고 있어. 그렇게… 노력이란 건 안 믿는다는 듯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처럼 행동했지만… 계속 노력하고 있었잖아. 나는 볼 수 있었어…. ...프로듀스 방침으로 섹시계열 어필같은게 들어왔어도, 묵묵히 해냈고.”

아니, 그건 한번 떠볼려고 그런건데. ...라고 리아무가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고 P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평판 같은 것도… 알고 있었어.”

“P… 느님….”

“그렇지만… 좋을대로 해석했어. 그것도 관심의 일종이야. 어떻게든 총선거 결과를 얻는다면… 그래서, 네가 드디어 노래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럼 좋다고 생각했다고.”

“그건….”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렇지?”

묘한 압박감에 리아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마음 속은 혼란스러웠다. 이러다간 “프로듀서 그만둘래!” 같은 소리 나와버릴 것 같아. 배드 커뮤니케이션 나온다고. 총선 3위 화제의 아이돌 유메미 리아무의 프로듀서, 순위 발표 하루만에 그만둬버리다- 같은 주간 기사가 나올테고. 아니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닌가? 

“저기, P느……”


와락, 하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P는 힘없는 두 팔로 리아무를 끌어안고, 방심한 리아무는 그 맥아리없는 몸짓에 확 끌려갔다. 콘솔박스에서 거의 넘어지다시피 한 리아무를 P가 다시 받친다. 떨리는 손. 그 손은 부드럽게 리아무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 손짓에서 욕정과 같은 흑심은 단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리아무도 어렴풋이 짐작한건지 눈을 감고 조용히 그에게 기대었다. 


힘들었지.

“.......”

“다시는… 다시는 힘들지 않게 해줄게. 정말로… 두번 다시는…!”

“P느님….”

“그러니까 이제는 패배자라느니, 그런 말 같은 건… 신경쓸 필요도, 신경 쓸 기회도 없을거야. 그리고….”

“.......”

“...두번 다시는, 뺏기지 않을거야. 내가 절대로 놓지 않을게.”


P느님, 무엇으로부터?


아니,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P의 품 속은 따뜻해서 괜찮다면 계속 이대로 안겨있고 싶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만나면 기쁘게 끌어안고 반겨줄 사람도, 힘들 때 달려가서 안길 사람도 그동안은 없었다. 아이돌이 되고 나서도 악수회나 셀카회 따위에서 땀에 절은 손에 이끌린 경험이 다였다. 누구도 이렇게 품어주지 않았었기에. 리아무는 위화감을 외면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응!”

P의 품에서 떨어진 리아무는 다소 상기된 얼굴을 하고 과하게 활짝 웃었다. 그런 리아무를 본 P는 쓰게 웃으며 리아무를 다시 보조석에 앉혀주었다. 

“피곤하면 조금 자.”

“...그럴까…?”

“응, 아침부터 순위 발표식이라고 고생했잖아? 지금 시간도 늦었고….”

“그럼…. 조금 잘게. 아, 자장가 불러줘!”

“그 나이에 자장가라니….”

“그것도 못해줘?!”

“후…. 아니다, 알았어 알았어.”

“헤헤.”

"좋은 꿈을 꿔야한다."

"그럼!"



잘자라 우리 아가.

..........

앞뜰과 뒷동산에.



........

................



이상한 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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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편, 리아무 "P느님에게 감금당한 지 N개월..."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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