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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룸 플라타너스-행운과 불운은 생각하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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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1, 2019 21:16에 작성됨.

이상한 날이다.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비도 충분히 이상하지만, 우산이 없어 비를 맞아 푹 젖었다. 

타카후지 카코가. 

폭풍이라도 왔느냐 묻고싶을 만큼 세찬 비였기에 서둘러 피했음에도 이미 더 젖을 곳 없을 만큼 젖어버린 뒤였다. 

심지어는 휴대폰마저 어느샌가 비를 타고 빠져버렸음를 깨달았다. 

석산에 둘러싸인 은방울꽃 아이의 심정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 탄식했을 때였다. 

카코의 뒤에서 문이 열렸다.

아작- 

남자 한 명이 하얀 색 길고 가는 것을 손에 쥐고 아작거리고있었다. 


"비를 피하실 거면 밖보단 안이 나을겁니다." 


손님이 없어 사람소리가 들리지않았는데 다시보니 카페인듯했다. 비가 오는 만큼 훈훈한 온기와 고소한 향이 가득했는데 새삼 열린 문으로 그것을 느끼자 비에 젖은 한기가 느껴졌다. 

운이 좋다는 통념이 아주 틀리진않은 듯하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 테이블에는 핸드폰이 올라온 마른 수건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남자는 카코의 감사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주방쪽으로 돌아가버렸다.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자, 새삼 나무가 가득한 티룸이 눈에 보였다. 


"밀크티입니다." 


비가 오는 만큼 온기 어린 김이 올라오고있었다. 


"주문 안 했는데..." 


"딱히 돈받는 건 아닙니다." 


"아, 그럼 감사합니다.." 


살가운 사람은 아니어도 나름대로의 친절함을 느끼면서 차를 한 모금 삼켰다. 

향이나 맛보다도, 부드러운 온기가 몸을 몽글몽글 데워주는 게 가장 먼저였다. 

입 안에 꽉 들어차는 더운 숨에 깊이 숨을 내쉬었다. 

두번째 마셨을 때는 조금씩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즐기는 쪽은 아니었으나, 별다른 거부감이 느껴지는 맛도 아니었다. 

아이하라의 티타임에서 느껴지던 것보다는 홍차의 향이 옅고 우유의 단 맛이 밴 고소함이 좀 더 진했다. 사실 홍차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손님의 옷차림을 보고 점장이 제멋대로 내놓은 결과물이었지만. 


"괜찮으십니까? 조금 홍차향을 옅게했습니다만..." 


생긋, 찻잔 옆에서 미소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한시름 놓은 것처럼, 점장도 약간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서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옆으로 바싹 다가가... 


"그리고, 잠시만..." 


히터였다. 옷을 벗으라 할 순 없었으니까. 히터를 꺼내어 옆에 두었다. 


"이거라도 쓰시지요." 


의자에 앉은 카코 앞에 쪼그려 히터를 만지작거리다가, 열풍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세웠다. 


"처음 본 사람에게 많이 친절하시네요." 


"손님없는 가게를 혼자 지키다보면, 그렇게되더라구요." 


빈 찻잔을 향해 주전자를 기울이며 덧붙였다. 


"특히 아리따운 여성분한테는 말이죠." 


뜬끔없는 칭찬이 듣기에 그렇게 거북하지는 않았는지, 푸훗하고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느긋하게 있어도 좋다는 말을 끝으로 다시 빙글-몸을 돌렸다. 주방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앞으로 두려는 찰나에, 무언가 생각났다. 


"아, 참."


"이거." 


별 건 아니고 명함. 당장 주소가 적힌게 이거뿐이었으니까. 솔직히 어디라고 말해도 쉽게 찾아올 수 있을 곳은 아니었으니 주소가 가장 좋았다. 

전화기를 잡고서, 손님이 통화에 집중하자 다시 주방으로 몸을 옮겼다. 

도마 위에서 하얗게 썰린 감자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옆, 칼을 잡기 전에 그는 생각해보았다. 


'이제 끝났나?' 


등 돌려 주방에 서면 그제서야 해줘야할 게 남았다고 생각나버리니 피곤하기 그지없다. 

비를 피하던 손님보단 자신을 탓하면서 잡념을 지우고 칼을 집었다.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하니까. 조리가 본 궤도에 오른 참이 아니라 다행이네라고 한 번 생각했다. 

하얗게 껍질 벗긴 감자를 채썰고, 마늘을 다진다. 넓은 냄비에 버터를 크게 한 스푼 넣고 녹인다. 치익 소리가 한 번 들리면서 노란색 거품이 냄비 바닥에서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약한 불에서 채소를 넣고 볶는다. 마늘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마늘의 향이 올라오면, 생크림을 넣는다. 우유도 나쁘지않다지만, 생크림 넣는 걸 따라올 순 없지.

눌러붙지않게 주걱을 넣어 저어주다보면, 자박자박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불을 끄고 냄비를 내린다. 

이대로 둬도 씹는 맛이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갈기로 했다. 

블렌더를 넣고 가는 동안, 루를 볶아야할 차례인가 하는데 뭔가 가물가물 기억이 날 듯 말 듯. 

손님한테 챙겨줘야하는데 안 챙겨준게 있는 거 같진않고 

뭔가 안 넣었던가?


"아, 닭육수..." 


어쩐지 너무 쉽게 끝나더라니, 중요한 걸 놓쳤어. 너무 쉬워진 세상탓인가. 

치킨스톡을 하나 까넣으면서 아직 치킨스톡이란걸 잘 쓰지않던 때를 생각했다. 


'큰 냄비에 손질한 닭을 통째로 넣고 하루를 꼬박 끓였지 날이 덥기라도 하면, 열기는 그렇다치더라도 육수가 저녁에 죽진않을지 걱정. 모자라면 안 되는데도, 하루면 또 쉬어버리니까. 양 조절이 어려웠어.' 


이젠 걱정도 없이 국물 속으로 꼴깍 잠겨버린 치킨 스톡을 보았다. 주걱으로 속을 휘저어 살살 풀어주었다. 

크림도 넣어 끓이니 나름대로 걸쭉하긴한데, 성에 차지는 않았다. 

냄비는 불을 끄고 팬을 꺼내어 옆에 올렸다.  버터를 먼저 녹이고, 충분히 녹았을 때 밀가루를 넣고 볶는다. 

약불에 오래간 볶다보면 밀가루가 고운 갈색이 되면서 


"와~ 맛있겠다!" 


지금 요리하는 사람 목소리는 아닌데 이거


"...깜짝이야" 


아무래도 루를 볶는 향에 이끌려 온 것 같다. 좀 더 직접적으로 고소한 냄새가 나니까말이지. 

그건 그렇고, 깜박잊고있었다. 손님. 


"연락받은 쪽은 조금 늦으시는겁니까?" 


"네, 조금 바쁜 것 같네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자, 으실으실거리는 느낌의 빗방울이 많이도 내리고있었다. 아무래도, 어려울려나. 


"으음..." 


"그것보다도, 지금 하고있는건...?" 


"아, 마늘스프입니다. 감자를 좀 넣은." 


"마늘스프?"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다면, 한 접시 드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거절의 이유가 단지 취향에 안 맞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몇 번이나 계속되는 호의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점장도 관심없었다. 중요한 건 거절 당했다는 거고 그는 깔끔하게 거절을 접수했다. 


'쩝. 만든 직후에 먹어야 좋은데.' 


아쉬운 점이라면 단지, 자기도 먹기 곤란해진다는 거지. 

단지, 사람을 앞에두고 혼자 먹는 예의같은 건 배운적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르진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제 맛을 잃어갈 바게트도 생각났다. 하지만 어쩌랴, 제 아무리 배고파도 비에 젖어 원치않은 곳까지 온 분 앞에서 먹을 순 없는 일이지. 


'일단 마저 만들까.' 


남은 건 브라운 루를 넣어서 한 번더 끓이면 될 뿐이었으니까. 

거품이 올라와 터지는 것도 느려지고 소리도 훨씬 둔탁해졌다. 


'빵 찍어먹으면 맛있겠다.' 


한 주걱 퍼올려서 기울였다. 뚝 뚝 크게 응어리져서 무겁게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맛있어보였다. 

진하게 올라오는 크리미한 마늘향이 식욕을 강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역시 먹지않기로 했다. 

어린 마음에 스프를 못 먹게되었다며 잉잉거리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늘 밀크티가 먹기 좋은 날이라며 달래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은 쌀쌀하게 비가 오는 날이니까' 


스프는 김이 빠지게 뚜껑을 그대로 열어두고, 우유와 홍차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 광경, 걸쭉하게 끓어올라 갈수록 진해지는 스프를 카코는 쭉 보고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먹고싶다.'


체면 때문에 라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스프의 권유를 거절한 더 큰 이유는 단연컨대 '몸매'탓이었다. 

타카후지 카코는 아이돌이었고, 당연 그 몸매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듣자하니 급이 낮은 신참 중에 먹어도 살이 찌지않는다는 어린애가 있다고하나, 대부분은 회사 안의 한결같은 뜬소문으로 취급했다. 

카코 개인으로서도 썩 믿고싶은 건 아니었다. 

흔히 스프는 평가절하되는 음식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당한 양의 버터가 들어가는 음식이다. 버터가 아니더라도 생크림과 닭육수만 해도 충분한 압박이었다. 밀크티야 어찌어찌하다보니 먹었다하더라도, 스프는 말이 다르다. 더욱이 그 조리과정을 지켜본 입장서 저것을 입에 넣을 순 없었다. 


'먹고싶다.' 


그러나 먹고싶다는 욕망은 별개인법. 다른 곳도 아닌 손님으로서 주방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음미했으니 오죽하랴. 

비를 흠뻑 맞아 몸은 으실으실 축축하고 마디가 쑤시는 것처럼 피곤하여 정신도 못차리던 찰나 이게 웬걸? 

예고도 없이 불쑥 반겨주는 따땃한 히터와 밀크티. 거기에 몸을 뉘이니 팬위에 떨어진 버터처럼 녹아내리고 말았다. 온 몸이 편안해지니 이제는 주린 배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닌가. 

피곤에 푹 쩔어있다가 갑자기 녹듯이 편안해진 몸이 하고자하는 말은 알겠지만은 지금은 때가 아닌데... 

냉수를 한 잔 받아 냄비에게서 신경을 못 돌리고 홀짝거리기를 석 잔 째, 

왠지 이젠 뚜껑을 덮어놓질않는 가게 주인이 원망스러워지려한다. 

하이고...

승패는 커녕 경쟁도 제대로 성립하지못하는 침묵. 

물을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가게를 구경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결국 신경은 한 곳으로 몰린채 떨어지질않는다.

몇 분이나 지난 것 같아도 시계는 전혀 그렇지않다고 일러준다. 

쏴아아아하고 쏟아지는 빗소리만 티룸을 아득히 삼키는 도중이었다. 

무언가 쪼그라드는 듯한 소리가 났다. 배에서 말이지. 냉장고에 있던 배가 그랬다는 것도 아니고 장난감 배같은 것도 아니다. 


"...." 

"...."


어느쪽에서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둘 다 일 수도 있다. 

잠깐 정적이 돌았다. 카코는 빨갛게 올라온 홍조를 감추려고 애써 고개를 숙였고, 점장도 고개를 반대로 돌렸더. 그 나름대로 멋쩍음을 감춤과 동시에 여성의 체면을 애써 지켜주려 한 일이었다. 

결국 둘 다 무슨 소리인지는 잘 알고있었으나, 

어느 쪽도 먼저 말할 용기가 없었다. 우습게도 어느 쪽도 제안만 들어온다면 예스라고 할 용의는 있었지만 말이지. 

특히나 점장은 카코가 아이돌인지 몰랐던지라, 부담감이나 체면 탓까지만 생각했다. 

그런 부분은 건드리지않고, 점잖게 권유할 방법이 좀체 떠오르지않았으니까. 쉽게 말하지못했다. 

카코는 카코대로, 이미 거절한 호의를 도로 달라고 제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버릴 거면 그냥 줄 때 받을 걸이라는 후회가 팍 몰려왔다. 


"크흠..." 


결국 먼저 몸을 일으킨건 점장이었다. 


"아직 식사를 못 했더니....실례했습니다" 


배를 매만지고 기운찬 헛기침을 일부러 크게 내어, 방금 소리가 자신이 낸 소리라 지워버리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제가 괜히 들어와서..." 


점장은 손사래를 치면서 카코의 말을 애써 부정했다. 그러서면서도 점장이 식사하기를 조금 망설이자 카코는 약간 아슬아슬한 마음을 감추며 식사를 권했다. 


"음, 그래도 저 혼자 먹기에는 조금..." 


가볍게 쥔 주먹을 턱아래 두고 찬찬히 고민하던 점장이 살짝 눈동자만 카코를 향해 돌렸다. 

그리고, 그 말이 나왔다. 


"역시, 조금이라도 같이 드시는 편이 어떠신지..." 


자기도 모르게 카운터 아래서 예스!의 주먹을 말아주었다. 역시 행운의 아이돌! 


하지만...! 여기서 바로 덥썩 쥐어서는 안 된다. 


"어머, 그렇게까지 신경써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못 이기는 척, 못 이기는 척, 어쩔 수 없는 척...!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도 있거든요. 게다가, 조금이라도 다른 분한테 평가라도 받아보고싶달까..." 


멋진 핑ㄱ-아니 이유네요 그거. 


"그렇다면야 조금, 맛만...실례하겠습니다." 


마음 속 어딘가에 있던 잔소리 트레이너와 걱정많은 프로듀서는 잠시 휴가입니다.

옛 버릇이 진하게 남아있던지라, 어차피 만들어진 분량도 딱 2인분이었다. 

밝은 노란색의 스프에 약간 우유를 다시 넣고 살살 끓인다음, 트러플 소금과 후추로 간을 잡았다. 

그릇에 담아내고서 파슬리를 약간 고명삼아 올렸다. 

밖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대조적으로 김이 위로위로 솟아나는 그릇이 각자 앞에 하나씩 놓였다. 


"감사합니다" 


숟가락을 채 넣기도 전에 한가득 올라오는 마늘향이 빈 속을 강하게 자극했다. 

반 스푼이 조금 안 되게 약간 떠올려서 입에 넣었다. 

입안에 처음 넣을 때는 푹 푹 빠지는 감각의 온기가 입 안을 꽉 채운다. 부드러운 식감에 슬며시 풀어지는 볼살을 참을 수가 없다. 

꿀꺽- 삼키자 깊은 마늘향이 가슴속에서부터 뜨거운 숨으로 올라와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마늘이라고하면 자극적인 것 같은데도, 마늘의 그 향을 한 치도 숨기고있지않음에도 자극적이라는 생각은 커년 마늘크림을 먹는 듯한 크리미함. 

빈 속에서 먹는 한 그릇으로서 외려 만족스럽다. 

반 스푼이 조금 안 되었지... 

적은 양만큼이 빠르게 사라진 맛을 상기하면서 카코는 숟가락을 다시 그릇에 담았다. 

숟가락의 머리가 스프에 완전히 담겨서 보이지않았다. 들어올리자, 그 위에는 스프가 한 가득 담겨있었다. 주체하지 못하고 도로 그릇 속으로 떨어지고야만다. 

머리가 아찔해진다. 알고있다. 이게 얼마나 많은 칼로리가 들었을지. 위험해. 

마지막 저항으로서 천천히 숟가락이 떨렸지만은 입으로 향하는게 멈추거나 하지않았다. 

외려, 그릇에서 벗어나자 스프가 떨어져 먹지못하게 될까하는 맘에 빨라졌다. 

입으로 한가득 깨물었을 때, 노란색을 품은 하얀색 스프를 입으로 받았을 때, 

푹 퍼져서 몸에 스며드는 스프만큼이나 카코의 심신도 그리하였다. 

칼로리를 몸에 받아들이고말았다는 배덕감과 칼로리로부터오는 쾌감이 온 몸을 감싸쥐었다. 후끈후끈한 스프가 끈적하게 볼살과 혀에 엉켜서 놓아주지 않겠노라고, 가장 연하고 붉은 살까지 간지럽히고있었다. 

물기가 어린 홍조가 목덜미와 뺨을 핥았다. 입이 제대로 다물어질 생각을 못하고, 의미없는 감탄의 신음만 간간히 흘렀다. 

얼굴뿐이 아니라, 그 스프를 품은 몸도 주체할수가 없었다. 

진한 버터의 고소함과 마늘의 향이 등허리를 시작으로 위로 뻗어가며 차디찬 비에 젖어 이 몸 이곳저곳을 한껏 찌르고 다녔다. 

환희로 몇 번씩 몸이 비틀어졌다. 무릎과 허벅지가 완전히 꼬일듯말듯 서로 열오르는 양쪽이 부비적거렸고, 허리는 그 몸의 유려한 곡선을 한껏 자랑했다. 

카코는 버틸 수 없었다. 

버틸 수 없어...겨우 몇 숟가락만 먹고 내려놓는다거나 할 수 없어.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부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스프만 남았다.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스프를 갈구했다. 

점장은 스프 다음에 다른 것을 접시에 담아 내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바게트랑 같이 드셔도 괜찮아요." 


아무런 악의 없는 쐐기였다.

본디 스프란 딱딱해진 빵을 먹기 위해 만든 것이라지만... 

마늘바게트가 생각나지만, 전혀 다른 독특한 식감. 스프를 올려 먹는 빵은 빵과 스프 어느쪽도 아닌 완벽히 고유한 음식이었다. 

한 손에는 빵을 쥐고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쥐고 스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카코를 보고있자니, 구태여 맛은 안 물어도 되겠군 싶었다. 

점장도 한 스푼 떠 먹었다. 크리미하게 시작했다가 마늘향으로 깔끔하게 끊어지는 것이 개운했다. 


"실례했습니다." 


"잘 드시니 보기 좋던데요 뭐." 


카코가 티슈로 입가를 닦아내는 동안 점장은 설거지하지말까 라는 생각도 잠깐 들게 만드는 스프그릇을 만족스럽게 치웠다. 

카코가 새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부끄러워하기도 전에,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양복 쓴 남자가 들이 닥쳤으니까. '여기 외계인은 없는데'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고있으려니 카코 쪽이 작별인사를 올렸다. 

아마 데리러 온 지인인가 싶다. 양복남을 보고 카코의 거동이 심상치 않았는데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눈은 제대로 마주치지못하고 거리는 완전히 가깝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못하는 곳에서 발이 주춤거렸다. 고개도 남자쪽으로 하지못하고 손으로 입까지 가리고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곳저곳 붉게 상기된 몸 위로 흐트러진 옷들을 손으로 잡아올렸다. 양복남 쪽에서 걱정해왔지만, 수줍은 사과만할 뿐 제대로 답하지못했겠기에 점장에게로 몇가지 질문이 튀었다. 

점장만이 볼 수 있게 카코가 안타까운 제스처를 보냈기에 별 탈 없었다는(실제로도 별탈은 없었다)대답을 했다. 


"비에 오래 젖어있었으니 컨디션부터 생각하는 게 나을겁니다." 


다시 연락하란 의미로 명함 하나 건냈다. 약간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는지 카코를 차에 태웠다. 

다시 적막해져서 빗소리만이 아득해진 티룸에 앉아 설거지하기 귀찮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방금 전의 여성에 대해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카코라...카코...." 


그러고보니 왜 그생각을 못했지란 깨달음이었다. 







"그 여자, 이름이 가지인건가 그럼?" 


epsode 2.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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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먹고 프로듀서를 만나는 부분은 마치 불륜을 저지르는 감각으로 써봤습니다.
행운아라서 혼나진 않았다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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