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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룸 플라타너스-첫 글자가 F인 플라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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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9, 2019 22:05에 작성됨.

여기, 미인이 있다.
보통 서점이란 다른 곳보다도 정숙한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오늘은 그렇지않았다.
책으로 숙여지는 고개들도 대부분은 옆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그런 이상한 기류 속에서 그 원인이 되는 여성 분에게는 몇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일단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외국인이었다는 점. 도도한 백인미녀라는 점은 언어에 대한 부담감과 동경심이 엉킨 거리감을 느껴버리게 만든다.
세 번째로는 그녀의 미간이 좁혀져있다는 점. 그녀는 양 손에 쥔 책들을 번갈아보면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이 딱히 그녀의 미모를 갉아먹고있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방해할 순 없겠다' 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여기 남자가 있다.
물론, 남자는 많지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그것은 그가 위에 쓰여있는 '몇가지 다행인 점'을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는 것.
남자는 여자가 이미 미간을 충분히 찌푸리고 있을 때 서점에 들어섰다.
올리브색 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바로 걸어간 서가가 여자가 있는 곳이었다.
지갑에서 명함만한 메모지를 꺼내어 보고서는 숫자를 되뇌이며 검지손가락으로 서가의 책을 톡톡 두드렸다.
책을 타고 흐르던 손가락이 어딘가에서 뚝-멈추더니 잠깐 다시 뒤로 돌아왔다.
토르르르르....책을 두드리는 소리가 급박해졌다. 결국 남자는 손가락을 책에서 떼고 입가를 감싸쥐었다.
찾는 책이 없다.

재고는 있다고 했는데.
직원에게 물어볼까 싶던 찰나에 찾았다.
남의 손에 들린 책을.
짧은 탄식이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사이로 새어버렸다. 다행인지 아닌지, 책을 들고있는 사람은 듣질못한 것 같다.
미간을 좁히고 다른 책들과 같이 들고있는 것을 보면 좀 더 중요한 선택에 집중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책을 좋아하는 성인이라면 이해할 수 밖에 없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얹어 진지하게 고민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쪽 책을 사지는 않을까.
조금은 이기적이겠지만은, 다른 쪽을 고르면 좋겠다. 그렇다하더라도 멋대로 끼어들어 고민을 방해할 순 없으니 일단 한 발 짝 물러났다.
양 손을 지팡이 손잡이 위에 포개어 올려두었다.
점 내의 카페에서 산 홍차를 오물거리며 음미하고 있었다.
여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남자가 지독한 헌팅남이라고 주위사람들의 의심을 살 무렵이었다.
땀방울이 사륵, 약간 불그스름한 뺨을 핥으며 떨어졌다. 그리고 여자가 긴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틀어버렸다. 두 개의 책을 모두 서가에 내려놓는 것을 보고서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음을 남자는 알아차렸다.
그 순간, 남자는 이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나 이상한 사람의 제안이겠지만은


"익스큐즈 미."


일단은 서툰 영어로 저 외국 여성을 관심을 돌리자.

다행히 영어를 쓰는 쪽이었나보다.

청록색의 눈을 크게 연 그녀는 남자의 방향을 되돌아보며 영어로 화답했다.

처음엔 자신이 서가를 혼자 독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책 무더기를 양 손으로 들고 자리를 옮기려고했으니까.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그게 아니라..."

솔직히 잘 될지는 모르겠네.

"당신이 어떤 책을 사야할지 결정할 수 없다면 제가 이쪽을 사도 될 까요?"

처음에는 경계심이 옅게 흐르는 호기심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좋지않은걸.

와, 이거 좋지 않은데

그런 기분이 들었다. 팔짱을 끼고서 가늘게 뜬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다니, 남자의 말이 생각이상으로 이상하게 들린 것 같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줍잖은 헌팅을 하려다 조인트까이는 중이라고 비웃을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혹시 상대여자의 키가 높아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면 아마도 그는 정말로 도망쳐버렸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당하니 더 아프네. 솔직하게 밝힐 걸 그랬나.

일단 한발짝 물러나서 주머니에서 명함을 건냈다. 지금은 이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명함을 받아들더니 그 위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이름을 읽는 입술이 달싹임은 봄바람에 벚꽃이 살랑거리는 것만 같았다.


"플라타너스...못 들어본 name..."


즉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아픈 구석을 찔렀다.


"다들 그러니시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유명할리가 없는 이름인지라, 경계를 완전히 풀어버리지는 못했나보다.

그녀는 명함에서 남자로, 눈동자만 위로 흘낏 올렸다. 그 청록생은 색을 입힌 유리가 물에 젖어 비치는 것 같았다.


"By the way... 그건 무슨 말임뉘카? 방금전, 그 말."


영어로만 응답하던 것이 일본어로 바뀌었다. 조금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받아들여도 좋겠지. 남자는 긴장으로 오그라든 가슴을 가다듬고 찬찬히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그 책을 살 수 있게해주시면 그 책을 내키는 만큼 볼 수 있게 도와드리겠다는 겁니다."


"Hmm?"


슬쩍 꼬리가 위로 오르는 소리. 살포시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언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음...아시다시피 티룸엔 으레 책이 꽂혀있곤하니까. 저희 가게도 방문하실 분들을 위해 책을 비치해두고있거든요."


만약 책을 살 수 있게 해준다면, 굳이 자신의 티룸에서 무언가를 사지않아도 책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었다.


"Ah, 하- "


조금 상황을 본다면 빌려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았지만, 그렇게 알게된만큼 궁금해지는 것이 생겼다.


"Well, 그럼 이 쪽은 어떻슴뉘카?"


여자는 짐짓 다른 책을 짚어 건내보았다. 검지가 책의 등을 들고 나머자 손가락이 앞뒤의 표지를 잡고있는 모양새였다. 빙긋 미소까지 얹어보내준 그 책을 하마터면 잡을 뻔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이건 그 책이 아니니까.


"당신, 정말 이 책이 가지고싶은가보네요우."


본인도 모르게 앞으로 나선 손을 도로 말아주고 아쉬움을 금치못한 채 남자는 끄덕, 고개를 끄덕여버리고말았다.


"But, 저도 정말 이 책이 갖고슴뉘다."


귀부인이 부채를 다루는 것처럼, 그녀가 자신의 입가로 책을 가져다당겼다.


"그리고, 결국 제가 책을 가지는 건 아닌거고오..."


"그으...렇긴 하죠."


몇가지 제안을 두긴했지만 결국엔 그녀의 배려를 구하는 일이기에 부정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손때가 아니라, 다른 자국이 진하게 묻은 책은 조금 꺼려짐뉘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도서관이 아니라 서점에 온 독서가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밖에 없다.


"그건...어느정도 괜찮을거에요."


그래도 이건 조금 안심시킬 수 있을거 같다.


"저희 가게..."


소년이 약간 부끄러운 사실을 수녀님에게 말해주는 것처럼 뒷목을 쓰다듬었다.


"손님의 별로,...음 거의이...없거든요."


그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그녀는-웃었다.

단지 미소만 지은 게 아니라 웃었다. 여태까진 모나리자보다도 루브르 박물관에 어울릴 것 같은 미소였는데

이번에는 좀 더...뭐랄까
서점에는 어울리지않는 유쾌한 웃음이었다.

웃는 쪽보다 보는 쪽이 아슬아슬해지는 기분.


"Ha, Haa... 진짜 정말로 가지고싶나보네요우"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녀는 그런 소리하면 티룸에 손님이 오겠느냐며 짖궃은 말을 던졌다.


"어....그건....그렇...건가요...?"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생각해두고한 말은 아니었기에 무어라 피하지도 못했다.


"Lier인줄 알았는데 strange한 사람이었슴뉘카?"


그녀는  그제서야 이름을 소개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제 이름은 Kate, 임뉘다."


남자가 내민 손을 잡으려 손을 내밀자, 생각보다도 딱딱한 느낌이 손에 잡혔다.


"And, 이건 당신 것."


애타게 사고싶어 했던 책이었다. 악수인줄 알고 잡으려했는데, 약간 멋쩍어졌다.


"음...감사합니다."


이 다음, 이 답례를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 중이었으나 곧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이 책 양보한 답례 하나 정도는 받고싶슴뉘다."


어울려줄거지요?


보통은, 무슨 소리인지 듣고서 하는게 좋겠지만 이미 고개는 위아래로 움직이고있었다.


"차 한 잔 마시고싶은데요우."


티룸이라 쓰여진 명함을 들고있었다.


"아...얼마든지요"


마음 한 켠에선 만족스러운 차를 대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거절할 만한 건 아니었으니


"그럼...지금 바로 가시나요?"


"Well...저는 다 골랐지만, 그쪽이야말로 괜찮슴뉘카?"


여자는 책방에서 준 봉투가 꽉 차있었지만, 남자는 애타게 협상했던 한 권만을 손에 들었다.


"지금 사려는 건 이거 한 권 뿐이에요."


"흠..."


뭔가 알수없는 표정. 한껏 고양되어있는 미소라는 것은 알았지만 뭔가 더 복잡한 감정들이 엿보였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왠지 나, 당신을 좋아할 수 있을 거 같슴뉘다"


역시 모르겠네

서점의 문을 뒤로하고 햇빛을 쬐기시작한지 얼마 지나지않았을 때였다.

가게는 당장 눈에 띌 정도로 가깝지는 않지만, 충분히 걸어갈만한 곳이라 둘이 걸어가는 시간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뭡뉘카?"


"네?"


"그 책을 산 이유요."


방금전에는 잘 알수없어서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잠깐 당황했다. 그래도,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이미 부끄러운 대답은 어느 정도 다 해버렸으니까 대답해줘도 좋겠지.


"티룸의 서가에, 이 전집 시리즈가 있는데 딱 이 61번째가 비었더라구요. 뭐... 별로 장편소설도 아니고 그냥 넘버링일 뿐이지만...그것보다도! 좋은 장식이잖아요!"


"음...멋지다..?라고 하나요?"


"네?"


별로 그런 말을 들을만한 대답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리숙한 얼버무림일 뿐이잖아?


"대단해? 음...."


마땅한 말을 생각해내지못했는지 그녀는 영어로 말해주었다.


"I think you are a nice guy."


'케이트는 생각보다 여러모로 관심이 많은 사람같다. 친절한 사람이라고 해도, 잘 들어오지않는 영역이 있다. 친구냐 타인이냐를 구분짓는 그런 선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도 케이트는 그 영역이 적어도, 남들보단 좁은 것 같다.  금방 들어온다. 예상치 못한 곳까지.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모르겠다. 모르겠어. 무슨 뜻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그냥 의례한 말에 너무 신경 쓰는것 아닐까.'

도시의 인파가 옆을 흘러가는 안개처럼 느껴진다.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와도 들리지않고 흩어져버린다.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발이 움직이고있었으니까 마냥 걷고있었을 때


"Hey!"


무언가 팍하고 깨지는 느낌이 등을 타고 머리를 흔들었다.


'어라...'


"키작은 Lady를 배려해줬으면 좋겠눼요우!"


덜컥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지팡이가 비로소 제 주인의 몸을 지탱해본 첫 경험이기도했다. 추억을 만지작거리는 것말고 쓸모를 생각해둔 적 없었는데 말이지!


"죄송합니다..!"


답례를 하러 길을 모시던 중인데 이런 결례를 할 줄이야. 끔찍했다. 게다가 그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다행히도 케이트는 그런 것을 결례로 품는 사람이 아니었다.


"후후후, 괜찮슴뉘다. 따라잡았는걸요."


뒤이어, 하얀 손가락이 위로 솟구쳤다. 말 위의 기사를 탄 랜스처럼 기세좋게 남자의 코끝을 톡하고 살짝 건드렸다.


"그.래.도! 다음은 용서하지않을검뉘다!"


물론, 그 다짐을 하려고했다. 그러나, 케이트는 아무래도 말로서는 안심하지못하는 여자인 것 같다.

지팡이를 짚지않은 남자의 팔을 반바퀴 감고서, 손을 맞잡았다. 깍지까지 끼우고서 기대에 찬 미소로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Escort' 부탁드릴게요우?"


에스코트라는 것을 부탁받고나서 얼마지나지않았을 때였다. 한 가지 지적받았다.


"방금 전보다, stiff 뻣뻣해졌슴뉘다?"


"네에..."


굳이 미녀와 손깍지를 끼고있다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유는 많았다. 에스코트해주어야한다는 부담감부터 시작해서 보폭이 좁은 케이트에게 맞춰주려니 여러모로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굳은 결심으로 말했다.


"사실 이렇게 걷는 건 처음이거든요"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히 눈치채겠지.
멋쩍거나 쑥스러워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때문에, 밝히기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에스코트까지 부탁한 사람에게 캥기는 좀도둑처럼 숨기는 것도 마냥 내키지는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걷는 것 말임뉘카?"


"....네."


역시 금방 아는 구나.

그 말 그대로 그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혼자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맞추어 걷는다는 경험이. 정확히는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손을 놓으려하지는않았다.


"그렇다고해도 별로, 저만 그런 것도 아닌걸요. 이상하긴하지만."


왜인지 이제와서 시나브로 빠져나가려는 케이트의 손을 거꾸로 그가 잡았다.


"괜찮겠슴뉘카?"


기대감이나 호기심으로 상기된 말이 아니라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제가 해야할 말같은데...경험없는 에스코트를 믿을 수는 있으신지요."


"경험많은 에스코트라고 해서 믿음직한 건 아니더라구요."


"그런가요?"


"그냥, 에스코트 받고싶은 사람은 있는 것 같슴뉘다."


그 말 뒤에 붙은 건 좀 더 떨리는 소리였다.


"But...사실..."


"케이트 양이 그렇다면, 저는 괜찮은걸요. 어차피 거의 다 왔고.
처음부터 해드리진 못했으니까, 마지막까진 해드리고싶은데요."


케이트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물어볼 용기도 없지만 그래도, 아니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최선을 다해주고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끄는 손을 케이트는 놓진않았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플라타너스라고 하는 곳은 번화가라고 일컫는 곳에 있지않다. 그런 곳으로부터 한 길 들어가 골목을 하나 돌면 나오는 곳. 아이러니하게도 번화가와는 지독히도 가까운 곳이나 그로부터 등돌리고 뒤로 들어간 곳이기에 만날일이 없는 곳에 있었다.


  한 줄 요약하자면, 

"손님이 없단 뜻이지." 

문을 안 잠그고갔는데 이리도 안전할 수가 없는 현실에 이제는 허허...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어서오세요, 첫 손님. 플라타너스에." 

"Thank you." 

손님이 없다는 비루한 현실과 별개로, 그 티룸은 케이트가 감탄을 흘릴 만큼 아름다웠다. 

"뭘로 드릴까요?" 

"음...밀크티로 아무거나요." 

컵을 꺼내는 소리가 카운터 너머로 들리는 동안 케이트는 한 쪽 벽을 물끄러미 감상했다.

책이 가득 꽂힌 책장에는 방금 사온 시리즈들이 즐비해있었다. 패션잡지나 시사지와는 거리가 먼 고전적 취향의 것들이었는데 여러번 접힌 책의 등이나 모서리의 흔적으로 보아 그 취향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역시..."


밀크티가 나왔음을 알리는 소리에 자리로 돌아갔지만 시선은 한동안 밀크티보다 서가에 머물러있었다.


"책을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보통 장식용이라면 관리가 깨끗하고 꽂힌 책의 주제가 중구난방이거나 대중적인 편인데
이 서가는 완전히 반대였다.손때가 타서 모서리 등이 조금씩 접혀있었고 취향은 그것만 있다고할순없었으나 많이 치우쳐져있었다.

사람이 많이 오지않음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깊게 배어있는 풍경이 제법 맘에 들었다.

호록-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네.

손님의 평가를 기다리고있는 주인을 향해서


"점점 더 맘에 들고있슴뉘다, 당신."


약간의 반문 후에 감사를 표하는 점장.


그런 점장보다도 오히려 오늘 처음 온 손님이 강하게 호감을 표했다.


"Yes! 이 가게도, 점장인 당신을 똑닮았거든요. 그래서 방금전보다 더 좋아지고있슴뉘다!"


이 가게야 점장이 가꾸는 곳이 닮았겠지만은 그래서 좋은 점이 있는지, 점장은 확신할 수 없었다. 모른다.

눈 앞의 이 여인이 좋다하는 것에 가슴은 심히 반응한다. 쉽사리 익숙해지질 않는다.

허나 그렇게 마냥 좋아할 수가 없다. 가깝지않은 친절에 내가 유달리 떠는 것인지 알수없었으니까. 확신할만한 시간도 채 흐르지않았으니까. 오직 모를 뿐이었다.

모른다.

오래간 들어왔던 생각이다. 물어볼 용기는 여태 없었다. 허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또는 무슨 일이었는지. 여까지 그녀를, 비록 결례가 있었다고는 해도 여기까지 모셔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손을 잡았기 때문인가. 잠깐 서로 엿보아버린 그 동병상련에 친해졌다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남자는 케이트에게 이윽고 물었다.

그녀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고 맛있다 했다. 그리고, 흰 우유위에서 배어나와서 퍼지는 홍차의 색처럼 미소를 띄웠다. 천천히 서점에서부터 있던 작은 제안과 에스코트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정말로 이상하고, 솔직하잖아요."


"더 알고싶은 사람이에요, 당신은."


때는 서점에서 책 하나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을 때였다. 케이트도 어느정도는 일반인에서 벗어나질 않아서 충분히 의심했다. 헌팅 다음에는 가게 홍보로.


"그런데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슴뉘다"


'저희 가게에는 손님이 없거든요'


별로 타이밍이 맞진않았다. 가게로 사람을 끌기에 좋을리가 없는 말이기에, 더욱이 말하는 사람의 모습까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But"


그래도 참 솔직한 말이었다. 책에 몰두해서 다른 건 채 신경 쓰지도 못한 말이었다.


"Strange, honest."


호록, 밀크티를 한 모금 삼켰다.


"그래서, 좀 더 알고싶은 사람이고 더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인 거 같달카... 솔직한 사람은 좋거든요."


책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점장이 산 책이 아니다.


"제 생각보다도 책을 좋아하는 것 같고."


책을 주었기에 조금은 불안했고 이상한 사람이라 조금 더 알아보고싶었다. 따라가며 천천히 보았다. 그 에스코트에서, 케이트는 아쉬움 없이 느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넘겨주어도 아쉬움이 없을만큼 몇 번이고 느꼈다. 오히려 조금 더 주고싶을 만큼.
무어라 말하기 전에 살포시 한 쪽 눈을 감아 윙크를 보냈다.


"Oh, 거절할 생각은 말아요. 어차피 그만큼 Milk tea 마시러 올테뉘카."


빈 잔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Tea 맛있으뉘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나요?"


"음... 이런 티타임을 갖게될 걸 생각하진않아서. 오늘은...시간이 다 되었네요. 책은 다음에 보겠슴뉘다."


점장은 빈 잔을 손에 들고 나가려는 케이트를 보고있었다.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 잡혀있었다.


'Strange, honest.'

'솔직한 사람 좋아하뉘카.'


그 말에 가슴이 꽉 잡혀있었다.


"케이트 양, 솔직한 사람이 좋다고하셨죠?"


여태껏 감추고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라서, 나지막히 물었다.

그녀는 문 고리에 손을 올리고 약간 민 채, 고개를 돌려 점장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했다.


"그럼, 한 가지 솔직하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늘의 그 책을 양 손을 공손히 잡고, 점장은 부탁했다.


"팬으로서, 싸인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둘의 첫 만남에서, 또는 아이돌로서 케이트가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아찔한 당혹감을 그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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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의 점장은 엄청 뻣뻣하고 긴장되어있는데 팬이 아이돌을 만나서 그랬다는 시각으로 보시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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