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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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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6, 2019 12:30에 작성됨.

『はつこい』 - 2017/10/7

『MISS YOU』 - 2018/03/01

『Miss You Allargando』 - 2018/10/25


미나미의 품 안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나는 정신을 차리고 미나미를 쳐다보았다. 나보다 키가 한 뼘은 작은 미나미는, 조금 힘들텐데도 까치발을 해 나의 얼굴이 그녀의 가슴팍에 닿게 해주었다. 그래서 따스함이 느껴졌나봐. 금방이라도 다시 울 것만 같은 나의 눈가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슥슥 닦아내고, 고개를 조금 숙이며 미나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넨다.


「고마워, 미나미.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올라서...」


「아, 네. 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오랜만의 경기인걸요. 그렇죠?」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란 말인가. 밀물처럼 밀려와 나의 가슴을 적시는 미나미의 말에 나는 다시 감동해버린다. 하지만 내가 감동한건 그것때문만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때문이 아니다. 내가 감동한 것은, 그것은...


「미나미, 혹시 오늘 저녁에 예정없으면 나와 같이 식사해주지 않을래?」


「저녁... 말인가요?」


「응. 시간이 된다면이지만.」


말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 말도 있다. 미나미가 내 앞에 있기에 말할 수 있는, 그리고 말해야만 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분위기가 도는 레스토랑이라면 더더욱 좋겠지. 처음 미나미를 보았을 때부터 꾹꾹 마음 속에서 억눌러왔던 말을 천천히 풀어 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 지금은 시간이 필요해. 영원과도 같은 행복을 갖기 위해서 먼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으음.... 괜찮아요. 저녁 레슨이 있긴 하지만, 프로듀서 씨께 하루 정도 허락은 받을 수 있겠죠. 네, 갈께요.」


나의 표정을 보던 미나미가 잠시 고민하든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흔쾌히 수락한다. 다행이야. 혹시라도 바쁘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는데.


「고마워, 미나미! 혹시 좋아하는 메뉴라던가 있어?」


「선배가 좋아하시는 걸로 괜찮아요. 참, 돈카츠 좋아하시지 않나요? 어떠세요?」


「아, 돈카츠도 좋아하지만 다른것도 먹어보고 싶은걸. 특히나 오늘은 더더욱 미나미 쨩이 먹고 싶은 걸로 고르고 싶은 기분이야.」


「뭔가요, 그게.」


나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미나미. 이 미소를 더 보기 위해서,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더 움직여야한다. 그래, 미나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치 운명같이.


「그럼 조금 있다가 문자를 보낼테니까 그 곳에서 다시 만나자. 나도 아직 덜 씻었고, 미나미 쨩도 프로듀서에게 말해둬야 하잖아.」


「아, 그러는게 좋겠네요. 네, 그래요. 언제 다시 뵈면 될까요?」


「2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보강운동도 해야 하니까.」


「네, 선배. 그럼 2시간 뒤에 뵈요.」


「응, 미나미.」


대화가 끝나자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려 라커룸을 빠져나가는 미나미. 조금 성급한 감이 없을 수는 없을테지. 하지만 너무 기다릴수만도 없다. 미나미에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히 영원토록 후회할테니까. 그렇게 되면 미나미는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고 말테니까. 그 돔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그렇게 천천히 빠져나가는 감정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바닷물을 잡아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밀려드는 바다를 보며 기쁜 감정을 느낄 수는 있잖아.


「선배, 뭐해요?」


누군가가 나를 툭 치며 묻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땀흘린 유니폼을 벗고, 목욕을 끝낸 축구부원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보아하니 갑작스런 미나미의 방문에 다들 놀란 눈치다. 아, 이 녀석들도 보내줘야지. 일단 나는 부부장이니까, 부원들을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 음.... 뭐, 오늘 다들 수고했어. 덕분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어. 특히 어시스트한 녀석, 고맙다.」


「별 일 아니예요, 선배.」


나의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또렷한 눈썹의 후배. 언젠가 부장이 되면 부부장 직책을 넘겨줘야겠다고 생각한 녀석이다. 그러고보니, 다른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캠퍼스에서 꽤 잘 나가는 여학생과 연애중이랬나. 뭐, 그건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일로도 바쁜데, 뭐.


「으음, 그리고... 뭐, 이정도면 됐겠지! 다들 보강운동하고 해산한다! 끝!」


「수고하셨습니다!」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락커룸을 빠져나가는 후배들. 그 바람에 엉성하게 라커룸 안에 놓여져있는 유니폼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정리 좀 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나는 살짝 뒷머리를 긁적여본다. 오늘 정도는 괜찮겠지. 깐깐한 부부장이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보강운동을 하고 샤워까지 끝마친 나는, 오늘을 위해 라커룸에 늘 놓아두었던 옷가지들을 차려입고 미나미에게 문자를 보낸다. 만날 곳은 바닷가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만날 시각은 한 시간 뒤.


「좋아해줄까...」


여자아이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것이기에, 나는 그저 미나미가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을 좋아해주기를 바라며 택시를 잡는다. 일단은 여러 추천을 받아 선정하긴 했지만, 미나미가 좋아할만한 곳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저 잘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지. 레스토랑에 가는 시간이 영원과도 같게 느껴진다. 문득 손을 보니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큰일이다, 땀냄새를 풍기면서 미나미를 만날 수는 없는데.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각은 미나미와 약속한 시간 20분 전. 미리 테이블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정문 쪽을 쳐다보자, 이런 곳은 처음인지 조금은 불안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보고 있는 미나미의 모습이 보인다. 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리 밖에 나가 에스코트를 했어야 했는데. 시험이 끝난 직후에 한 문제를 틀려버린 것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싸맨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파트니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미나미에게 다가간다면 어느 정도 만회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선배. 미리 와 계셨네요. 저, 늦지 않았나요?」


「아, 응. 전혀 늦지 않았어. 그보다 오늘의 미나미.... 엄청나게 아름답네.」


「아하하, 선배는 또 그렇게 말씀하시고... 저같은 여자애는 캠퍼스에도 많은데요.」


겸손이라고는 해도 너무 자신을 낮추고 있는 미나미다. 나는 캠퍼스에서 그녀만큼 아름다운 소녀를 본 적이 없다. 아니, 있다고 해도 미나미의 내면보다 아름답지는 않을테지. 그녀는 겸손하고 다정다감하며 순수하다. 캠퍼스에 존재하는, 외면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여자들과는 달라. 그녀는...


「...선배?」


「아, 미안해. 자, 그럼 앉을까? 미리 예약해 둔 자리가 있어.」


「아, 네!」


빙긋 미소를 지으며 내가 안내하는 자리로 향하는 미나미. 그보다 오늘 미나미의 의상, 꽤 힘을 준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내가 패션은 잘 알지 못하지만, 저런 의상을 항상 입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뭐, 됐어. 무슨 옷을 입더라도 미나미는 미나미다. 그보다 내가 해야할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돼. 잊어버렸던 기저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추억처럼 말해야만 한다. 오늘에야말로, 오늘에야말로...


「선배, 술은 좀 드시나요? 와인, 어떠세요?」


「와인이라... 나쁘지 않지. 그보다 미나미는 술을 좀 하는 편이니? 나는 잘 못하는데...」


「저도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예요. 하지만 오늘은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요.... 안될까요?」


「안될 이유는 없지. 그래, 그럼 한 잔씩 주문할까?」


「앗, 네...」


나의 물음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 미나미. 부끄러워할 일이 있던가. 아니, 내가 아는 한 그럴 일은 없을텐데. 그럼 대체 왜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걸까. 그런 표정을 지으면, 네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나는 정말로 오해해 버릴텐데.


레스토랑의 메인 메뉴는 꽤 좋은 맛이었다. 달달하고 새콤한 딸기와 오렌지로 마리네이드한 스테이크와 와인은 궁합이 잘 맞았지. 미나미도 나의 선택에 만족한 눈치고 말이야. 자, 이제 조금씩 입을 열어 말하면 된다. 어차피 후식이 나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선배.」


「응? 왜 그래, 미나미?」


「...어째서 말씀해주시지 않는건가요?」


...어?


「아직까지 기다리고 계신가요?」


어떻게 알고 있었던거야. 미나미, 너는 모르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눈치채 버린다구요, 선배. 이렇게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둘만의 식사라니... 고백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


어째서, 어떻게 이렇게 쉽게...? 아니, 잠깐만. 그렇다는 이야기는, 설마...?


「저, 선배가 축구부 매니저 일을 힘내서 권유해주셨을 때부터 선배를...」


안 돼. 그 고백은 나의 거였어. 미나미가 힘내지 않아도, 내가 언젠가는 말할 것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떻게...」


「그야 선배는 겁쟁이니까요... 제 첫 돔 공연에 오신 것도 알고 있다고요? 그 때도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셔서...」


얼굴을 조금 붉히며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기 시작하는 미나미. 아아, 너는 처음부터 나에게 밀물이었던거야. 몇 번이고 나에게 돌아와, 행복이란 감정을 알려주려 다가오는 밀물. 어쩌면 나는, 그저 나만의 사정을 생각하며 너를 밀어냈는지도 몰라. 그래, 나는...


「그렇구나. 그래, 그랬구나...」


「...하실 말씀은 그것으로 끝인가요?」


그럴리가 없다. 영원이 바로 근처에 있다. 손만 뻗으면 된다. 그렇다면 손을 뻗어 영원한 행복을 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단 한 마디만 하면 돼.


「그럴리가 없잖아, 미나미. 사실 나, 처음부터 미나미를 좋아하고 있었어.」


기저에 깔려있는 나의 감정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그로 인해 반짝거리는 서쪽의 대양처럼. 그리고 이내 붉게 환해지는 세상처럼, 미나미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아, 빛나는 물결이여. 나는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입을 맞췄다. 그녀가 선사해준 영원을 위해서, 그녀가 보내준 사랑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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