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제 이름은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댓글: 16 / 조회: 2363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2-24, 2013 23:59에 작성됨.



0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맡기로 한 아이다. 사이좋게 지내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이 꼬맹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
 “에···?”
 “이름이 뭐야?”
 “에···! 그, 그러니까···!!”

짜증나.
우물쭈물하고 더듬거리고··· 무엇보다 겁쟁이다.
나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제일 싫다.

 “하,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1


내 이름은 하기와라 하나비.
불꽃처럼 살라는 뜻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남자애가 태어날 거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이
지만··· 태어난 건 여자애라서 조금은 놀라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딱히 아버지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여자애라도 얼마든지 불꽃처럼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 집안은 소위 야쿠자 집안이다.
100년이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하기와라 일가.
전국구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로 강대하다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어린 시절에 엿들었다.

야쿠자라는 것은 절대 침대에서 편히 죽기 힘든 직업이다.
그 실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결코 야쿠자에 대해서 환상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야쿠자라 해서 아버지를 경멸한 적이 없다. 
오히려 동경했다.
비록 나는 연약한 여자아이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그 용맹한 모습이 좋았다.
실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전형적인 야마토 나데시코에 부합하는 여성상
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난 아버지를 더욱더 존경했을 뿐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다.
야쿠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아버지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고 싶었
으니까.

아버지에게서 무술을 배웠다.
머리 손질이나 네일 아트 대신 아버지처럼 카리스마를 연마했다.
아이들과 사이좋게 수다 떠는 방법보다 남을 제압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이대로 주욱 이어지는 내 인생은 실로 불꽃같은 인생.
나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한 여자애를 데리고 왔다.

 “하,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아버지의 형님, 그러니까 큰아버지의 딸.
얼마 전에 도쿄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었고, 아버지가 
이 녀석을 맡기로 한 모양이다. 
야쿠자가 아닌 교사라는 멀쩡한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그 녀석은, 한 마디
로 표현하자면 나랑 정반대인 인간이었다.

소심하고 유약하다.
내성적이고 울보다.
자기비하가 심하다.
그리고 겁쟁이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싫었다.
단순히 성격 문제였다면 싫다고 하기 보다 그냥 흥미 없다는 선에서 그쳤겠지.

문제는 외관이다.
이 녀석과 나는 빌어먹을 정도로 쏙 빼닮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꽤 놀랐던 모양이다.
쌍둥이라 해도 믿을 거라고. 불쾌하지만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부모님의 부탁이 있었지만 나는 그 녀석을 거의 없는 사람
취급했다.
하는 행동은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한심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부모님도 나와 이 녀석을 공평하게 대해주었고, 녀석도 나름 우리 집안 분위기
에 차차 적응해나갔다.

가족흉내.
이 녀석을 향하는 내 시선은 딱 그거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내가 이 녀석을 진짜진짜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아? 넌 하기와라 하나비? 미안미안. 네가 아니야. 나는 유키호짱을 부르려고
했었던 건데.”


중학생인 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다.
같은 반의 남학생.
적당히 잘생기고 다른 여자들에게 적당히 친절한··· 뭐, 적당히 괜찮은 남자.
지금에 와서는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는 그 남자애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 남자에게 러브레터를 받았다.
갑자기 복도에서 하트 스티커가 붙은 편지를 건네주더니 냅다 달아나버렸다.

솔직히 기뻤다.
나 역시 소녀였기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두근거렸고, 
얼굴이 붉게 칠해졌다.

그러나··· 그 기대는 약속장소로 나가자마자 박살이 났다.

녀석이 찾던 사람은 내가 아닌 하기와라 유키호였으니까.

 “미안해. 둘이 얼굴이 쏙 닮았으니까. 그래서 착각하고 너한테 줘버렸어.”

그랬구나.
확실히 그 녀석은 예쁘지.
성격도 나처럼 개차반이 아니고,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오히려 그게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남자들의 연심을 자극하고, 나처럼 거칠지도 난폭하지도 않은 전형적
인 그 나이대의 여성상.

나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렸을 때 팔이 부러진 이후로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생각해보면 나는 뭐하나 유키호보다 잘난 게 없었다.

공부도 난 밑바닥 수준이었지만 유키호는 전교 5등 안에 드는 모범생.
나는 툭하면 남자애들과 치고 박는 불량아지만 유키호는 요조숙녀.
단순히 여자로서 놓고 본다면 나는 유키호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유키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대했던 예전과는 달리··· 눈앞에서 유키호를 무시했다.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싫었다.

유키호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저히 마주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키호가 없어졌다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벚꽃이 아슬아슬하게 남아있을 4월 중반 무렵.
어느 날 유키호가 갑자기 사라졌다.
집안의 똘마니들의 말을 듣자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한다.

 “항상 유키호를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더냐!!”

찰싹!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는 날 때렸다.
아버지는 유키호는 연약하고 소심하니까 늘 곁에서 지켜봐달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내게 당부했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긴 셈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그 유키호에 대한 짜증만 깊어졌을 뿐이지.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유키호만 없었으면.
그 녀석만 없었으면 이 구역질나는 열등감도, 뺨이 시큰거리는 이 비참함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녀석 따위 차라리 사라져버리라지.

유키호를 찾은 건 이틀 후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버지는 가르쳐주지 않았고, 단순히 유키호가 입원
했다는 사실만 짧게 말해줬을 뿐이다.
나 역시 형식상 아버지에게 물어봤을 뿐이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나는 듣고 말았다.
집안의 남자들이 얘기하는 걸 우연찮게 엿들어버린 것이다.


ㅡ유키호 아가씨는 하나비 아가씨 대신 납치된 거다.


유키호는 적대조직의 강경파에게 납치되었었다.

원래 그들의 목적은 유키호가 아니었다.
사실 아무리 하기와라 일가의 두목이 맡고 있는 아이라 해도 유키호에게는 
일부러 납치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

어째서 유키호가 납치되었을까?

그들의 목적은 나였다.
그런데··· 유키호는 내 얼굴과 자신의 얼굴이 똑같다는 점을 이용해서 상대를
속이고 대신 납치되었던 거다.

그 겁쟁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총과 칼을 든 야쿠자들에게 대신 끌려갔다.

 “너 바보야?!! 내가 언제 너 따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어?!! 너 따위의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어!!”
 “······.”
 “아니면 뭐야?!! 나에게 은혜라도 베풀고 싶었냐?! 왜 그런 거야?! 어째서
나를 도운 거냐고?!”

그 사실을 알자마자 나는 유키호가 입원한 병실로 쳐들어가 따졌다.
그때··· 유키호는 처음 보는 슬픈 눈으로 내게 말했다.


 “하나비는···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니까···.”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이 녀석을 싫어하고 피하고 무시하는 동안, 이 녀석은 나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어째서?

 “나··· 언제나··· 혼자였어. 엄마도 아빠도 돌아가시고··· 세상에 홀로 남은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어···. 그런데··· 하나비는 나랑 같이 있어줬어.”
 “그건··· 그건 아버지가 시켰기 때문이야! 네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알고 있어···.”
 “뭐···?!”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뻤어. 이렇게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있어준 
사람은··· 하나비뿐이니까···.”

유키호는 단지 내가 있어줘서 기뻐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나를 친구라고 여겼고, 위험을 무릎 쓰고 나를 보호했다.

순간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졌다.
그리고 나는 인정했다.
하기와라 유키호는 분명 나보다 더 굉장한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라는 것을.


2


그날 이후로 나는 유키호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맞춰 대충 어울려주는 연기가 아닌, 정말로 이 녀석을 좋아
하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기로.

나 역시 유키호가 처음 사귄 친구였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깊게 빠져들었다.

우리의 겉모습은 거울을 비춘 것처럼 똑같았지만 내면은 너무 달랐다.
그래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유키호가 남자애들에게 장난을 당할 때면 내가 그 녀석들을 작살내버렸다.
유키호는 옷 따위 대충대충 입고 다니는 나를 주말마다 끌고 다니며 일일이 
복장을 코디해주었다. 
유키호에게 차를 끓이는 방법을 배우기도 했고,
같이 공부를 하며 성적도 올렸고,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둘 만이서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

우리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사랑했다는 건 아니다.
단순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반쪽처럼 느껴졌다.

 “아이돌 콘서트?”
 “응.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돌 히다카 마이의 은퇴 공연이 있어. 
마침 티켓도 두 장 얻어왔으니까··· 같이 보러가자, 응?”

아이돌 콘서트라니.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다고 거기까지 가야하는 거냐?
이번만큼은 유키호에게 어울려주기가 좀 힘들었다.

 “난 됐어. 아이돌이라니. 그런 건 시시하다고.”
 “시시하다고···?”
 “뭐랄까~ 아이돌이라는 거 코스프레 같은 이상한 옷 입고 사람들한테 아양
떠는 거잖아. 별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ㅡ”

 “ㅡ그, 그렇지 않아!!!”

깜짝 놀랐다.
유키호가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하는 건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하나비! 크리스마스 이브는 내 생일이야! 알고 있지···?!”
 “무, 물론.”
 “그럼··· 생일선물 대신으로··· 나랑 콘서트 같이 가자···!!”

안 그래도 유키호에게 줄 선물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던 차라 나는 고민했다.
그냥 몇 시간 정도 어울려주면 골치 아프게 선물을 골라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리고 비록 관심은 없었지만 아이돌 콘서트,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는 
공연이라면 그 티켓 값은 장난 아니게 비쌀 터.
그런 공연을 내 돈 안들이고 공짜로 볼 수 있다는데··· 어떻게 보면 나한테는 
이득인 제안이었다.

나는 유키호의 제안에 수락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가온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유키호와 함께 히다카 마이라는 아이돌의 은퇴 공연이 열리는 콘서트 
장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히다카 마이는 전설적인 아이돌이라고 한다.
이제까지를 통틀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만한 아이돌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사람들이 엄청나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잔뜩 있어.”
 “그, 그러게···.”

유키호 녀석, 남자를 무서워하면서 꽤나 무리하고 있다.
나야 남자든 여자든 까불면 그 자리에서 밟아버렸으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공연 시작 시간이 되고, 무대 위로 그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냥 일반인보다 조금 예쁜 여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공연 시작 1분도 채 되지 않아 송두리째 뒤집어졌다.

그녀의 노래와 춤.
목소리 음정 하나하나와, 손가락이 움직이는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도 
전율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실로 그것은 불꽃.
아름답게 피어오르다 아름답게 꺼져가며 모두의 감탄을 자아낸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던 불꽃같은 인생.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여자가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10미터가 멀게 느껴졌다.
닿을 듯 말듯하면서 희롱하듯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그녀는 손에 닿지 않은 먼 곳에서 계속 불타오른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불꽃 그 자체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게··· 아이돌···.”


3


 “굉장했지···?”
 “아아, 인정할게. 아이돌이라는 건··· 정말 굉장한 거였네.”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유키호는 활짝 웃었다.
마침 눈도 내리고 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정말이지 내 친구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날이다.

 “사실··· 하나비한테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이, 이거야···.”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건 한 장의 종이.
그리고 그것은 머리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1차 오디션 합격? 너 설마···?!”
 “에헤헤··· 이번에 765프로덕션이란 곳에서··· 오디션을 봤어···.”
 “축하···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알면 난리가 날 텐데. 그리고 뭣보다 유키호
는 분명 남성공포증이 있잖아. 그래도 괜찮아?”
 “그, 그건 어떻게든 해볼 거야. 아이돌이 되려는 건··· 그 공포증을 이겨내고
싶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내 꿈이니까···.”
 “뭐, 그렇다면 나는 응원해주지. 아버지한테 설명하는 건 네가 알아서해.”
 “너, 너무해···!! 혼자서는 무리야···!!”
 “내 알 바 아냐.”

나는 유키호를 놀리면서 도망쳤다.
친구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유키호는 솔직히 놀리면 재미있다.
하지만 남들이 유키호를 놀리는 꼴은 못 본다.
유키호를 놀려도 되는 건 이 세상에 나뿐이라고.


 “기, 기다려줘, 하나비. 혼자는 무리ㅡ


콰아아아앙!!!
고막을 때리는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또 참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다.
보면 안 돼. 보면 안 돼. 보면 안 돼!!

 “유키호···?”
 “하, 하··· 하나··· 비···.”

트럭, 찌그러진 철판, 브레이크 자국, 피, 날아간 유키호, 피, 새하얀 서리, 눈,
거친 호흡, 웅성거림, 피, 유키호, 피, 흐릿한 초점, 피, 유키호, 유키호, 피,
유키호, 유키호, 유키호, 유키호!!

 “아, 아아··· 아아아··· 아, 아아아아아아!!! 유키호!!! 유키호!!!”
 “하, 나비··· 아, 파··· 나··· 아파···.”

어째서? 어째서 유키호한테 이런 일이?!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유키호를 끌어안았다. 어디선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 열심히 손을 움직였지만 헛수고였다.
너무 차가웠다.
유키호의 몸이 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 아냐···!! 유키호!! 이럴 수는 없어!! 유키호!!”
 “나··· 나··· 하, 하나··· 비··· 나··· 나는···”
 “죽지 마···!! 부탁이야···!! 제발 죽지 마!! 누가!! 누가 구급차 불러줘!!
왜 다들 가만히 있는 거야?! 누, 누구라도 좋아!! 제발 유키호를 살려줘!!”
 “하나··· 하나, 비··· 하나비··· 나는···”
 “죽지 마, 젠장!! 제발 죽지 마··· 부탁이야··· 제발··· 제발··· 죽지 마···.”

유키호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푸른 멍이 들 정도로 내 손을 세게 붙잡았다.


 “나··· 아, 아이돌이··· 꼭··· 되고 싶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유키호에게 깃들어 있던 생명의 불꽃이··· 너무나 허무하게 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져 녹아버리는 눈송이 같은··· 그런 마지막이었다.


유키호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유키호의 유품들을 정리했다.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작게 웃어버렸다.

나와 유키호의 스티커 사진.
나와 유키호의 여행 기념품.
나와 유키호의 페어 귀걸이.
나와 유키호의··· 나와 유키호의··· 나와 유키호의···.

유키호는 새하얀 눈 같은 아이였다.
아름답게 내리다 소리 없이 녹아 사라지는··· 그 순간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반짝 
빛나다 사라지는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유키호는 나처럼 불꽃같은 인생을 동경하고 있었다.
확신할 수 있다.
친구니까.

그렇지만 유키호는 그 꿈에 도전해보기도 전에 져버렸다.

 “그런 거··· 그런 거···!!”

ㅡ인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곧바로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들어온 아버지가 나에게 뭐라 말하기 전에, 나는
다다미 바닥에 엎드리며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하나비···?”
 “아버지, 부탁이 있어요. 제 일생일대의 부탁입니다.”

인정할 수 없다.
내 친구가 이대로 죽어버리는 걸 나는 인정할 수 없어!

 “딸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입니다. 제발···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내 인생은 그때를 전환점으로 뒤바뀌었다.

우선 내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싸움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옷 고르는 법과 코디하는 법도 자력으로 터득했다.
가끔씩 몰래 피우던 담배도 완전히 끊어버렸다.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전부 외워버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춤도 연습했다.
연기력도 틈틈이 갈고 닦았다. 
말투도 난폭한 어조에서 부드럽게 바꿔버렸고,
행동가지도 좀 더 여성스럽고 조신하게 보이도록 연마했다.

그 기한은 2주일.
765프로덕션의 2차 오디션 날.

 “안녕. 나는 765프로덕션의 아카바네라고 한다. 이 오디션의 심사를 맡고
있고, 만약 네가 합격한다면 너의 전담 프로듀서가 될 거야.”
 “저는···.”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제 이름은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4


 “생일 축하합니다!!”

765프로덕션의 사무소에 들어가자마자 터지는 폭죽 소리에 나는 귀를 막았다.
정말이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들떠가지고.
잠깐만, 생일?

 “새, 생일이라니···?”
 “후에? 아미 대원! 여기 자신의 생일도 잊어버린 불쌍한 사람이 있군요~!!”
 “우와! 불쌍해라, 불쌍해라. 우리가 도와줘야겠죠, 마미 대원?”

장난꾸러기 후타미 쌍둥이들한테 끌려가서 소파에 강제로 앉혀졌다.
눈앞에 있는 건··· 5천 엔은 거뜬히 될법한 거대한 케이크.

 “유키호!! 생일 파티에요, 생일 파티!!”

 “생일 축하해, 하기와라 씨.”

 “해피 버스데이, 유키호!!”

 “아라아라? 우선 촛불부터 꺼야겠죠?”

 “”생일 축하한DAZE!!””

 “진심으로 축하드리옵니다, 유키호 양.”

 “축하해!! 참고로 이 케이크는 마빡이가 사온 거야~!”

 “마빡이라고 부르지 마!! 어, 어쨌든 감사하게 여기라고!!”

 “웃우! 축하드려요!!”

 “축하해, 유키호.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생일이라니!! 자신 너무 부러운 거라구!!”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 아니, 유키호의 생일이었구나.
1년 밖에 안됐는데 벌써 헷갈리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해, 유키호.”
 “가,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모두 전부··· 고마워···!!”

ㅡ그리고 미안해.
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너희들을 속이고 있다.

나는 하기와라 유키호가 아니다.
진짜 유키호는 이미 없어.
나는 유키호라는 이름을 빌려 쓰고, 그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고 있는,
그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하기와라 하나비.

남자를 무서워하고, 개를 무서워하고, 울보에 소심하고, 툭하면 삽으로 땅을
파려하고, 자기비하가 심하고,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당찬 그런 소녀를 연기하고 있다. 

난 쌍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키호와 닮았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아슬아슬했지.
몇 번이나 옛날 말투와 성격이 나올 뻔해서 심장이 철렁했다.
그래도 여차여차 여기까지 왔고,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실수하는 일은 없다.

 “저기··· 자,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놀자판에 들어간 사무실의 동료들 사이를 슬쩍 빠져나와, 함박눈이 조용하게
내리고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인가.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 녀석이 죽은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정말 좋은 녀석들이야, 유키호. 네가 살아있었다면··· 정말 너의 좋은 친구
들이 되어주었을 텐데···.”

특히 프로듀서.
그 사람은 개인적으로 멋진 남자다.
만약 유키호였다면··· 정말 반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확신할 수 있다. 나는 그 녀석의 하나뿐인 친구였으니까.

 “저기, 유키호. 네가 기다리던··· 그리고 내가 찾아 헤매던 불꽃같은 삶이
과연 이곳에 있을까?”

확실한 건 어디에도 없다.
전에도 없었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적어도 유키호, 너는 내게 있어서 불꽃같은 사람이었어.”

만약 내가 너를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화내겠지.
나에게는 나만의 인생이 있다고.
그러니까 자신에게 붙잡히지 말라고 나를 엄청 혼냈을 것이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
나는 유키호가 가려는 길에 매료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에게 붙잡혀서
살아있다.

 “그래도··· 내가 되고 싶은 건 바로 너야, 유키호.”

새하얗고 아름다운 눈송이 같은 그 외관 속에··· 너는 불꽃같은 열정을 품은 
사람이었다.

나도 너처럼 되고 싶다.
내가 너처럼 되면··· 그때 너를 떠나보낼게.

네가 선택한 길이 무엇이든,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새하얗고 아름다운 눈송이··· 아름답게 타오르다 
미련 없이 사라지는 불꽃같은 삶이겠지.

네가 목표로 했던 톱 아이돌.
네가 이루고 싶었던 그 불꽃같은 삶을 완성한 후에, 나 자신만의 불꽃같은
인생을 찾아 떠나겠어.

붙잡혀 있다고 해도, 단순히 너를 빌리고 있다고 해도 좋아.
나는 네가 좋으니까.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널 좋아했던 친구였으니까.

나는 하기와라 하나비··· 아니,


제 이름은 하기와라 유키호입니다.


 “눈이 예쁘네···.”

정말 예쁜 눈송이다.
오늘밤은 정말··· 기쁘고도 슬픈 밤이구나.


 “해피 버스데이··· 유키호.”


축하해.
사랑하는 내 친구.











------------------------------------------------------------------------


이 소재 마음에 드는데... 판 키워볼까나...


뭐, 어쨌든 오랜만에 얀도 다크도 아닌 훈훈한 걸 써내렸군요.

역시 크리스마에는 훈훈한 게 좋죠!!

생일 축하해, 유키호~!!

사쿠마 마유와 함께 아이마스 최애캐~!!

0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