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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오리 허밍(歌織 Humming)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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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0, 2019 21:21에 작성됨.



전작 : 토모카 트랩 (朋花 Trap)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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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듀서의 아침은 빠르다.


 765 프로덕션은 분명 대형 프로덕션이지만, 소속 프로듀서의 수는 아키즈키 리츠코를 포함하여 두 명. 그러나 리츠코는 아이돌 겸임이기에, 실질적인 프로듀서는 한 명이다.


 52명의 아이돌을 프로듀스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시간과, 노력과, 열정과, 그리고 급료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에 성공한 프로듀서는 765 프로덕션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권력자이다.


 권력자여야만 했다.


 언제나처럼 여덟 시 반, 아침 일찍 출근하여 텐쿠바시 토모카의 인사를 받고 하루 스케줄을 정리하며 업무를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보통 자정 넘어서임을 감안한다면, 사람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체력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일상 속에서, 프로듀서가 어찌어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담당 아이돌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그리고 급료 때문이다.


 조만간 있을 인사고과 및 연봉협상을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이를 바드득바드득 갈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연봉을 제시하고, 안 받아주면 961로 가면 그만이다. 쿠로이 타카오 사장이 제시한 금액은 가히 961 프로덕션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타카기 사장도 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번 연봉협상에서는 자신이 갑이다. 프로듀서는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모니터를 보았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그러나 그의 귀에 들려오는 낮익은 목소리에, 황급히 미소를 숨기고 그녀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쿠라모리 씨.“


 아침에 약하다고 하던 사람이, 어쩐 일로 아침 일찍 나왔을까. 프로듀서는 인사를 하면서 슬쩍,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는 스케줄표를 보았다.


 사쿠라모리 카오리, 10시 30분, 토크 쇼 프로그램 게스트.


 모모세 리오가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토크 쇼이기 때문에, 부담이 적을 것으로 생각하여 넣어 둔 스케줄이었다.


 "아침부터 표정이 좋으시네요, 뭔가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그와 별개로, 돈 생각을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나보다. 그는 아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요, 별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궁금한데, 가르쳐 주실 순 없으신가요?“


 호기심 많은 아가씨다. 그는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보다 월등하게 적은 월급을 받는 사쿠라모리 카오리에게 연봉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생각했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댈 거리를 생각했다.


 "그게, 오랜만에 점심 이후에 근처 카페에서 디저트라도 하나 먹을까 싶어서요.“


 그의 말에,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던 토모카가 카오리보다 먼저 반응했다.


 "프로듀서 씨~? 혼자 가실 생각이신가요~?“


 같이 가자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모카, 너 오늘은 하루 종일 레슨이 있잖아.“


 "레슨은 상관없잖아요~?“


 "카페까지 나갔다 오면 늦어. 그리고 최근에 체중이 조금 늘었지? 안 돼.“


 프로듀서의 정확한 지적에, 토모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노려보았다.


 "프로듀서 씨~?!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모든 아이돌들의 상태는 언제나 확인하고 있으니까.“


 그의 말에 토모카는 뭐라 말을 하려했지만, 이번에는 카오리가 한 발 빨랐다. 뺨이 살짝 붉어진 채로, 카오리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 그 말씀은, 제 상태도......“


 "물론 사쿠라모리 씨의 상태도 항상 파악하고 있습니......헉?!“


 무언가, 자신이 말을 잘못 한 것만 같았다. 미성년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성인인 사쿠라모리 카오리에게까지 그녀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투의 말은 자제했어야 했다.


 마치, 프로듀서가 담당 아이돌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설령, 정말로 그러하다 하더라도 이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스스로 컨디션 관리, 프로필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사쿠라모리 씨. 제가 실언을 했네요.“


 "아, 아니에요! 그, 프로듀서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아니, 아닙니다. 사쿠라모리 씨는 어른이시니 스스로 관리를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만, 성격이 성격인지라 그만.“


 "......“


 "......“


 그러나 그가 말을 내뱉은 직후, 사무소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했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당연하게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두 사람은 똑같이 팔짱을 낀 자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이 여전히 상기된 것이 어울리진 않았지만, 사소한 문제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토모카였다. 들고 있던 부채로 그녀의 허리를 툭툭, 두어 번 치더니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프로듀서 씨~? 사쿠라모리 씨는 믿으시면서, 성모는 믿지 못하실 만큼 어린 아이로 보이시나요~?“


 "딱히 그런 건...“


 "그렇다면 사쿠라모리 씨와의 온도차는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최근 들어 부쩍 귀찮게 하는 횟수가 늘었다고 생각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더 직접적으로 견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의 업보이기 때문에, 그는 토모카의 말에 특별히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괴롭혀 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는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이제부터는 토모카의 상태는 내가 신경 쓰지 않도록 주의할게.“


 "윽ㅡ.“


 일순간 허를 찔린 표정으로 토모카는 프로듀서를 노려보았다. 토모카 역시 저 말이 자신을 놀리기 위한 말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섭섭함과, 토라졌다는 티를 물씬 풍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런 토모카의 반응이 나름 재미있었는지, 그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래도 대놓고 웃으면 안 그래도 화난 토모카의 기분이 풀어지기는커녕 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놀리는 것도 재미있지만, 적당히 달래주는 것도 중요하다.


 “농담이야. 각별히 신경 쓰도록 노력할 테니까.”


 “......”


 그가 웃음을 참으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토모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프로듀서에게라도 뭐라고 한바탕 쏟아내고 싶었으나, 그에게 너무 화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뇌를 스쳐 지나가자, 토모카는 흠흠, 목을 가다듬고 프로듀서를 보았다.


 “저의 기분을 나쁘게 한 건 분명 용서할 수 없지만, 성모의 넓은 아량으로 이번만은 용서해 드리도록 하겠어요~.”


 “고마워. 토모카는 정말로 마음이 넓구나.”


 “앗, 아니, 그...아시면 됐답니다...!”


 갑작스러운 프로듀서의 기습 공격에 토모카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부채를 폈고, 고개를 홱 돌려 프로듀서에게서 시선을 뗐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카오리가 무심코 귀엽다,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는 한숨 돌리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을 뿐이다.


 “프로듀서 씨.”


 “아, 사쿠라모리 씨.”


 그제야 프로듀서는 한 명이 더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른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담당 아이돌의 앞이다. 웃으려 노력하며 카오리를 보았다.


 “그동안 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토모카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투정이다. 그래도 토모카와 달리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어엿한 성인이기 때문에, 적당히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이해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입을 열었다.


 “물론 사쿠라모리 씨는 어른이시기 때문에 그만큼 더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신 거군요.”


 말로는 납득했지만 카오리의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프로듀서라지만, 저렇게 대놓고 볼을 부풀리고 있으면 여전히 토라져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성인이다. 토모카나 다른 아이들처럼 프로듀서가 투정을 받아 줄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랬다가 곤란해지는 것은 프로듀서 자신이나, 사쿠라모리 카오리 본인일 뿐이다.


 “그래도, 역시 프로듀서 씨가 조금 더 보아 주셨으면 해요.”


 프로듀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 맹한 아가씨는, 자신이 말하는 바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냥 섭섭하다는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리라. 틀림없을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해야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사쿠라모리 씨~?”


 그러나, 프로듀서 옆에서 웃고만 있던 토모카가 한 발 먼저 카오리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명할 정도의 적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카오리는 토모카의 이 적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 텐쿠바시 양,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


 토모카도 카오리에게 어떠한 의도도 없었음을 알아차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곤란한 표정으로 슬며시 프로듀서를 보았다.


 이제 막 문을 열며 그 광경을 마주한 아오바 미사키가 쓴웃음을 지었고, 다른 사무원인 오토나시 코토리는 역시나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손을 흔들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바쁜 구세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오바 씨. 오토나시 씨는 오늘도 지각인가요?”


 “아하하...아직 안 오셨네요.”


 “인사고과를 목전에 두고 끝내주게 용감한 사람이네요, 오토나시 씨는.”


 “아하하하......”


 미사키의 멋쩍은 웃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는 다시 토모카와 카오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화제를 바꾸려면 지금뿐이다.


 “그러고 보니, 두 분께 좋은 소식이 하나씩 있어요.”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그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검은 색 가죽 표지를 넘기고, 그가 접어놓은 장을 펼쳤다.


 무슨 소식일까. 카오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프로듀서를 보았고, 토모카 역시 궁금한 눈치인지, 슬그머니 새초롬한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


 “K 스튜디오에서 제의가 들어왔어. 다음 달 초부터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주연 자리인데, 토모카, 네 일이야.”


 “어머~프로듀서 씨, 꽤나 분발하셨네요~.”


 “조금 미안한 점이 있다면,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점일까. 아직 공중파에 데뷔시켜주지는 못해서 미안해.”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토모카는 알고 있었다. 그 정도 되는 프로듀서가 황금 시간대는 아닐지언정 공중파 방송을 따내지 못 할 리가 없다.


 게다가 토모카는 라디오 방송이나 라이브의 경험은 많은 편이지만, 연기 경험은 적은 편이다. 때문에 그가 토모카에게 케이블 채널에서의 일을 가져다주었다면, 현재의 토모카에게는 그 일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이 일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프로듀서가 어떤 일을 가져다 줄 지도 결정이 날 것이다. 토모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는 토모카의 애정과는 별개인, 공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팬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런 건 성모에게 관계없답니다~♪”


 그래도 토모카에게 있어서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살며시 부채를 내리며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 제법 화가 풀린 모양새였다.


 “그러면, 수락한 것으로 알고 진행할게.”


 “물론이에요~.”


 프로듀서는 수첩에 작게 동그라미를 친 뒤, 카오리를 보려다가 무언가 깜박한 듯, 아, 하고 작은 탄성과 함께 토모카에게 말했다.


 “하나 말 하는걸 잊었는데, 마츠리랑 공동 출연이야. 둘 다 주연으로.”


 “......네?”


 765 프로덕션 시어터 조 세기의 라이벌, 텐쿠바시 토모카와 도쿠가와 마츠리. 서로가 절친한 사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 안 쓰일 수는 없다. 되도록이면 협업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토모카의 눈동자에 약간의 당혹감이 묻어나왔고, 프로듀서는 이를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카오리를 보았다.


 “자, 잠깐만요 프로듀서 씨~?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지요~?”


 “마츠리는 하겠다고 어제 말했어. 그래서 안 할 거야?”


 “큭......”


 이런 식의 협박은 비겁하다. 라이벌 의식을 인질로 붙잡힌 토모카는, 그녀가 좋던 싫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나중에 벌충해 주셔야 해요~.”


 “어? 아니, 무슨 벌충을ㅡㅡ”


 “하실 거지요~?”


 “......알겠어.”


 토모카의 표정에서 단호함이 묻어나오자, 프로듀서는 순순히 대답했다. 토모카가 토라지면 오래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부러워라, 카오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쿠라모리 씨.”


 카오리의 그런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듯, 프로듀서는 수첩을 한 장 넘기며 카오리를 보았다. 토모카와는 조금 다른, 미묘하게 느껴지는 거리감에 그녀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지만, 프로듀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4 Luxury 유닛으로 제법 활동하셨잖아요? 슬슬 솔로로 데뷔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떠신가요?”


 “아......”


 갑작스러운 프로듀서의 제안에 카오리는 멍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유닛 활동이 그녀의 생각보다 즐거웠기 때문에 솔로 데뷔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눈앞에 다가오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아이돌 활동이 고작 3개월 정도 뿐이지만 그녀는 프로다. 재빨리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께서 신경 써 주셔서 저야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 뒤입니다.”


 “......네에?”


 카오리의 생각보다 빠른 시일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프로듀서를 보며,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느냐는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사쿠라모리 씨께 부담이 될 만한 무대는 아닙니다. 이미 기획 단계는 끝났고, 프로덕션 내부 아이돌만으로 진행할거라 섭외도 문제없습니다. 4-Luxury도 유닛으로 참여 할 거고요. 사쿠라모리 씨를 위한 곡도 완성이 됐고, 작사도 거의 끝났으니 조만간 완성된 곡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니까,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시간을 들여 고민하지 않고 승낙할 것임을 상정하고 기획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프로듀서는 어디까지 아이돌들을 파악하고 있을까, 카오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작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신경 써서 만들다 보니,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카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서 작업해 준다면 아무래도 카오리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직 음악 교사로서의 욕심도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작곡도 작사도, 모두 받기만 해서야 나름 음악 쪽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어떠신가요, 사쿠라모리 씨?”


 “뭐가 말씀이신가요?”


 갑작스러운 프로듀서의 물음에 카오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듀서의 실실 웃는 표정이 뭔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남은 부분의 작사, 한번 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네?”


 잘못 들은 것일까, 카오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발적으로 생각해서 물어본 말이 아니다. 조금 솔직히 말하자면 작사가 미완성인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그녀에게 맡기기 위해 남겨두었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스카우트 당시부터, 그리고 그리 길지 않지만 아이돌로서 활동한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프로듀서는 사쿠라모리 카오리의 재능을 보았다.


 단아하지만 감성적이고, 절제되어 있지만 또한 흥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은 아직 경직되어 있지만, 조만간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닐 것이다.


 그렇다면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이다. 그렇게 결론지었기 때문에, 약간의 도박성임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인 카오리에게 작사를 맡길 결심을 했다.


 물론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맡길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프로듀서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녀의 능력을 꺼내어 보자, 프로듀서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눈앞에 프로듀서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765 프로덕션 내에서 작곡 또는 작사를 직접 하는 아이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사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듀서에게 이를 직접 요구한 사람은 치하야나 아즈사, 그리고 줄리아 정도뿐이다.


 물론 프로듀서에게는 좋은 일이다. 실력만 검증이 된다면 작사를 맡기는 것도 예산을 적게 들일 수 있을뿐더러 무대 위에서 가장 감정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가사일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사라기 치하야같은 베테랑과는 달리,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아마추어다.


 물론 음악 교사였을 시절, 간단한 작사 및 작곡 정도야 해 보았지만, 프로듀서가 요구하는 작사는 그녀가 무대 위에서 불러야 할 노래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못 해서는 안 되며, 작사가 엉망이어서도 안 된다.


 여기는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무가(武家)의 딸이다. 강직하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돌로서 가장 반짝이는 곳에 도달하고 싶어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그녀에게 도전은 족쇄가 아닌 자유였다. 카오리는 각오를 굳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번 해 보겠어요.”


 수 분 가량 흐른 침묵의 끝에 나온 카오리의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프로듀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카오리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려요, 프로듀서 씨.”


 어찌 되었건 그녀를 생각해서 맡겼을 것이다. 카오리는 프로듀서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야 감사한 일이지요. 뭐, 앞으로 유닛 활동이 조금은 줄어들겠지만, 사쿠라모리 씨는 아이돌로서 한 걸음 더 위로 올라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시 수첩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갈 길이 먼걸요, 후후후.”


 손사래를 치다 문득, 프로듀서의 뒤에서 사무원, 아오바 미사키가 황급히 시계를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열 시 반. 오전에 있는 자신의 스케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프, 프로듀서 씨! 저희 스케줄!”


 “아차.”


 그제야 프로듀서도 카오리의 오전 스케줄이 생각났는지 타자를 대충 두드려 마무리를 한 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모카는 10시부터 하루카, 시즈카, 세리카, 그리고 유리코와 오전에 합동 레슨. 카오리는 10시 30분부터 T방송국에서 모모세 리오와 함께하는 토크 쇼의 게스트.


 어느 새 아홉 시가 조금 넘었기 때문에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저희는 출발하지요, 사쿠라모리 씨.”


 “네. 빨리 준비할게요, 프로듀서 씨.”


 “토모카는 오전에 레슨이지? 다른 아이들은 아직 안 온 거니?”


 “아직 아무도 안 왔지만, 슬슬 올 시간이네요~♪”


 되도록이면 출근을 확인하고 가려 했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외투를 입고 가방을 든 뒤, 사무소 문을 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토모카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손을 살살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얇은 외투를 입은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그의 뒤를 후다닥 따라갔다.


 그런 두 명을 보며, 텐쿠바시 토모카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 역시 작사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프로듀서가 어떤 결과를 원하던,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어려울 것이다. 프로듀서에게도, 그리고 사쿠라모리 카오리에게도.




2.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고민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일주일 정도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한 달 치는 족히 된 것만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악보를 보았다.


 신인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교사라는 직종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악보를 보고 맬로디를 파악해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작사 자체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음악 교사라면 모름지기 교가 정도는 작사, 작곡할 능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로서의 작사는 그녀의 생각보다 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창작의 고통이 이렇게나 잔혹했던가, 카오리는 한숨을 살짝 내쉰 뒤,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프로듀서에게 상담을 해 볼까, 잠시 고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프로듀서의 기대감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에 진척이 안 됩니다, 하고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럴 때 든든한 아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군과 곧 함께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다.


 문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카오리는 재빠르게 악보를 가방에 넣고, 사무소 한 구석에 있는 옷걸이에서 감색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으며 옷의 구김을 확인한 뒤, 다소곳하게 소파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아오바 미사키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고, 오토나시 코토리는 히죽거리며 그녀의 옆에서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있는 마츠다 아리사와 함께 영상을 녹화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양복 상의를 팔에 걸친 채로 프로듀서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살짝 헝클어져 있는 것이, 극장에서 후타미 자매에게 장난이라도 당했으리라.


 “사쿠라모리 씨,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어요.”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말하다가, 카오리의 가방 틈새로 종이 몇 장이 삐져나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연필로 여러 번 휘갈겨 쓴 흔적이 그의 눈에 보였고, 자신이 카오리에게 준 부탁이자 숙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악보 아래에는 아직 아무런 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큰 진전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진전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쿠라모리 카오리의 고민은 그의 생각보다 조금 깊었던 것 같았다.


 “사쿠라모리 씨.”


 “네?”


 여기에서 작사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행위다. 프로듀서답게, 카오리가 어느 정도 눈치는 챌 수 있게, 그러면서도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이 많으신 것 같은데, 치하야와 라디오 수록이 끝나면 방송국 내 카페에서 같이 디저트라도 어떠신가요.”


 “아, 무, 물론이에요, 프로듀서 씨.”


 생각이 많고 머리가 지끈거릴 때는 당분 섭취가 최고다. 카오리 역시 프로듀서가 어떤 의도로 말을 했는지 알아차리고,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하야는 라디오 수록 이후, 곧이어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전문가 패널로 녹화 출연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프로듀서와 두 명이서 카페를 간다는 것이다.


 프로듀서와 단 둘이서,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는다. 다른 아이돌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부러움에 눈이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프로듀서 씨, 아시겠지만ㅡ”


 뒤에서 아오바 미사키의 걱정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그는 알고 있었다. 오토나시 코토리에게서부터 아키즈키 리츠코, 그리고 아오바 미사키에게까지 수십 번은 들었던 말이다.


 “스캔들은 조심하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톱 프로듀서의 권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방송국 내에 있는 카페라면 손님의 대다수가 업계 종사자이고, 그가 765 프로덕션 소속의 톱 프로듀서라는 사실은 거진 다 알 것이다.


 그들은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고, 영상 또한 찍지 않을 것이며, 구설수에 오르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아오바 미사키의 조언은 고맙지만, 기우다.


 “그러면 사쿠라모리 씨, 가시지요.”


 “네, 프로듀서 씨.”


 카오리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프로듀서는 그의 양복 상의를 한번 탁탁 턴 뒤 대충 걸쳐 입고, 그의 책상 옆에 놓여 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오늘 스케줄이 많아서,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너무 늦으면 바로 퇴근할 테니, 문 잠그고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프로듀서 씨.”


 “......”


 “그리고 오토나시 씨, 마츠다 양. 캠코더는 압수입니다.”


 프로듀서가 아리사의 캠코더를 확, 낚아채는 것을 보고 카오리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실소를 머금었다.


 언제부터 찍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개만 한번 돌려보았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정말로 작사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현상이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정리를 한 뒤, 캠코더의 데이터 칩을 가방에 넣는 프로듀서에게 먼저 내려간다고 손짓을 했다.


 뒤따라 내려오는 프로듀서의 발자국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3.

 바바 코노미는 765 프로덕션 아이돌 중 최연장자다.


 세간의 나이로는 이십 대 중반에 살짝 걸친, 젊은 축에 속하지만, 매년 파릇파릇한 신인이 수십, 수백 명씩 쏟아지는 이 아이돌 업계에서는 안타깝게도 연장자 축에 속한다.


 본래 765 프로덕션에 지원할 때 사무원으로 지원했건만, 웬걸, 작은 새라고 불리는 사무원이 아이돌 지망으로 서류를 바꿔버렸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다시 사무원 지망 서류로 되돌리지 않고, 바바 코노미라는 아이돌을 뽑은 저 프로듀서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번에는 카오리쨩이라니, 별일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빙긋 웃는 얼굴로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상담 요청을 해 오자, 바바 코노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연장자라는 사실은 얼핏 들으면 사내 아이돌들의 위에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여기는 연예계. 데뷔가 빠른 사람이 선배다.


 자기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스오우 모모코가 선배가 되는 기이한 상황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다만, 765 프로덕션이 그런 문화에는 특별히 깐깐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최연장자는 지혜의 보고가 되었고,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고민 상담센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담당 프로듀서에게 상담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저 둔감듀서일 것이다. 765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들은 전원 여성이기 때문에, 프로듀서에게는 말 못할 고민거리들이 제법 있다.


 그런 그녀들에게, 사회생활 경험이 있고, 현재 그녀들과 같은 아이돌이면서, 이미 솔로로 데뷔했고, 무섭지 않으며, 입이 무거운 데다가 결정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바바 코노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출연자 대기실의 문을 닫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


 대단한 일이 아니면 혼자서 해결했을 것이다.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그런 사람이다. 코노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끄럼쟁이를 보았다.


 “그게, 조만간 솔로로 데뷔를 하게 되었어요.”


 “오오? 정말로? 축하해, 카오리쨩!”


 그러나 카오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뛰며 담담한 표정의 카오리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보였다.


 그 소리에 가방을 뒤적거리던 토요카와 후카도, 화장을 마무리하던 키타카미 레이카도 무슨 일인가 싶어 코노미를 보았다.


 “무슨 일 있나요, 코노미 언니?”


 “아...아하하,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코노미의 고성을 못 들었을 리 없지만, 카오리의 내키지 않아하는 표정을 보자, 두 명은 눈치 빠르게 알겠다고 말하며 다시 그들의 일로 돌아갔다.


 “미안.”


 “아니에요. 축하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서, 나한테는 무슨 일이야?”


 “으음, 사실은 프로듀서 씨께 곡 뒷부분의 작사를 부탁받았는데요...”


 말끝을 흐리면서 카오리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코노미는 다시 제자리에 앉은 뒤, 카오리의 뒷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가사가 잘 떠오르지 않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난들 아냐, 코노미의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장자는 어려운 것이다. 제아무리 어려운 상담이라도 훌륭하게 마무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도 몰라, 같은 답변은 가장 질이 떨어지는 답변이다.


 성심성의껏. 코노미의 미간에 주름이 한 줄 잡히고, 이내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


 “아......”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도 작사의 경험이 있는 건 아니니까. 아쉽지만 이 언니보다는, 그래, 치하야쨩한테 상담해보는 편이 어떨까?”


 사쿠라모리 카오리도 잘 아는 사실이겠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는 그녀의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 작곡한다. 프로듀서 역시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 치하야를 신뢰하기 때문에, 마치 타카기 사장이 그에게 프로덕션의 일 대부분을 위임했듯, 음악에 관한 일은 치하야에게 대부분 위임했다.


 코노미의 말이 일리가 있었는지, 카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키사라기 씨라면 경험이 풍부할 테니까요.”


 응응, 코노미 역시 고개를 끄덕여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카오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카오리쨩. 데뷔 날짜는 정해진 거야?”


 “그러네요, 이제 3주 남았다는데, 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곡이 미완성일 수도 있겠구나, 코노미는 납득한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의 성격상 곡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공개를 꺼릴 텐데, 카오리에게는 미완성된 곡을 들려주는 것도 모자라 작사를 맡겼다는 것이 코노미에게 있어서는 의외였다.


 뭐, 경위는 상상이 가지만.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고 계산적인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대책을 가지고 카오리에게 작사를 맡겼을 것이다.


 만에 하나,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대책은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코노미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카오리 언니, 데뷔하나요?”


 “앗.”


 어느새 근접해온 레이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오리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듣게 된다면, 모르는 척하기가 더 힘들다. 그렇다면 그냥 모른 척 대놓고 물어보는 것이 키타카미 레이카다.


 후카 역시 레이카의 뒤에서 후후 웃으며 카오리를 보고 있었다. 카오리는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이동했다.


 충분히 길어질 수 있는 대화 주제다. 곧 프로듀서가 토크쇼가 끝난 그녀들을 데리러 올 것일진대, 귀찮은 주제는 피하고 싶다는 것이 카오리의 속마음이다.


 하지만 키타카미 레이카에게 자비란 없다. 헤실헤실 웃는 표정 그대로 빠르게 카오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손을 맞잡으며, 얼굴을 슥 들이댔다.


 “섭섭하게, 저희에겐 왜 말을 안 하시려고 해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기 때문에...나, 나중에 차분히 이야기할까 해서.”


 “요는, 이야기할만한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말이지요?”


 “그런 의미는......”


 하지만 이때를 놓칠 새라 레이카의 눈에 빛이 일순간 반짝였다.


 “코노미 언니! 그거 하죠, 그거.”


 “그거? ...아하! 좋은 생각인데?”


 “후카 언니도 오랜만에 어떠세요?”


 “엣, 나? 나는 그......”


 토요카와 후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똑똑, 하고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다들 짐작했기 때문에, 쳇, 하고 혀를 차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문밖에서 형식적으로 양해를 구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더니 프로듀서가 양복 상의를 한 손에 든 채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에서 음주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만.”


 “아-니, 착각이야 착각.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프로듀서?”


 “정말로요?”


 귀를 살살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프로듀서는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어서 왔습니다. 준비는 다 되셨는지요.”


 “그러-엄. 나와 레이카쨩은 극장으로, 후카쨩은 화보 촬영이던가?”


 코노미의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의류 브랜드 광고모델입니다. 그리고 사쿠라모리 씨. 라디오 수록이 남으신 거, 기억하고 계시지요?”


 프로듀서의 말에 카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아침부터 토크 쇼에 출연하느라 4 Luxury 멤버 모두가 피곤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스케줄이 없는 코노미와 레이카와는 달리, 토요카와 후카와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잔여 스케줄이 남아 있었다.


 토요카와 후카의 스케줄은 765 프로덕션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쿠라모리 카오리를 제외한 세 명은 프로듀서의 차를 타고 돌아갈 것이다.


 공교롭게도 카오리만이 같은 방송국에서 라디오 수록의 스케줄이 있고, 한 시간 정도 후부터 수록이 시작될 것이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카오리가 게스트로 참가하는 라디오의 메인 MC가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점이다.


 분명 프로듀서는 카오리의 스케줄을 배려하여 치하야가 메인 MC를 맡고 있는 라디오 방송으로 일을 잡은 것이다. 조금 몸이 힘들지언정 카오리가 불평할 이유는 전혀 없다.


 게다가, 키사라기 치하야와 조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카오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한 시간이었다.


 “끝나실 때쯤 해서 다시 데리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명과 함께 방송국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응시하던 카오리는, 뺨을 두어 번 톡톡 치고서 라디오 스튜디오 바로 옆, 출연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치하야의 자취방이 이 방송국과 가깝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그녀는 프로듀서의 픽업 없는 스케줄을 보내게 되었다.


 제법 부지런한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그녀의 성격상 이 시간에는 이미 대기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전에 하루카에게서 이런 사실을 들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에, 카오리는 대기실 앞에서 똑똑, 노크를 한 뒤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갔다.


 생각했던 대로, 소파 위에서 이어폰을 낀 키사라기 치하야가 손에는 악보를 든 채로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괜히 건드리기 미안하다.


 카오리는 치하야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외투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두려면 치하야가 보이는 쪽을 지나가야만 했기에, 카오리는 코트를 입은 채로 벽에 기대어 치하야를 기다렸다.


 5분여 정도가 지나 치하야는 귀에서 이어폰을 뗐고, 이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카오리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 사쿠라모리 씨.”


 “안녕하세요, 키사라기 씨.”


 “기다리고 계셨나요. 모르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방금 도착한걸요.”


 그런 것보다 치하야에게 묻고 싶은 내용이 있다. 바바 코노미의 조언대로 키사라기 치하야라면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카오리는 외투를 벗고 가방을 뒤적거려 가사가 채 다 적히지 않은 악보를 꺼냈다.


 키사라기 치하야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다른 물건이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카오리가 꺼낸 것은 악보다. 아무리 치하야가 메인 MC인 라디오 방송이고, 음악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 코너는 아니다.


 불러도 치하야가 부른다. 이번 게스트가 노래한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그래서 치하야는 다시 귀에 꽂으려던 이어폰을 내려놓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오리의 손에 들린 종이를 보았다.


 “손에 그건, 악보인가요?”


 “아, 맞아요. 안그래도 키사라기 씨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에요.”


 “저한테...말인가요?”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가득 차다 못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건 아닐까, 카오리는 치하야의 순수함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후광이 나는 것만 같았기 떄문이다.


 “네에. 사실은......”


 치하야의 맞은편에 앉아, 손에 들고 있던 악보를 치하야 앞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며칠 전에 프로듀서에게 들었던 데뷔 사실과, 작사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명료하게 한 뒤, 어떤 가사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까지, 전직 교사다운 포맷으로 정리하여 이야기했다.


 이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치하야는 잠시 눈을 감으며 음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이돌의 데뷔곡이 그 아이돌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레스토랑의 시그니쳐 메뉴 같은 것이다.


 키사라기 치하야의 경우는 [파랑새]가 그것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도, 작사가도, 그리고 프로듀서도 첫 곡에는 정말로 많은 신경을 쓴다. 프로듀서가 무책임하게 완성되지 않은 악곡을 카오리에게 던져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가 그녀에게 작사를 맡겼고, 길지는 않더라도 시간을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쿠라모리 카오리라는 아이돌의 재능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키사라기 치하야라 해도 세세한 부분을 조언해 주는 것은 어렵다. 그 사실을 빠르게 파악한 치하야는 제법 긴 고심의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쿠라모리 씨는,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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