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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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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1, 2019 00:37에 작성됨.

 꺼져있는 대기실의 불을 밝혔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쉬자 속도 차게 식었다. 데운 숨을 다시 내쉬었다. 공허의 향을 맡은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러 사람의 온기로 붐볐을 공간이라 생각하니 솜털 하나하나가 그 공허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타카네.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프로듀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타카네는 뒤돌아서 프로듀서를 응시했다. 못지않게 종일 고생한 사람이었다. 타카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현장의 일은 저도, 프로듀서도 어찌할 수 없지 않은지요. 프로듀서의 탓이 아닙니다."

 "그래도..."

 타카네는 대기실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축하의 메시지가 만연한 하얀색 보드. 뒤이어 프로듀서도 그를 마주했다. 타카네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축하해주시는군요."

 "원래는 파티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파-티군요."

 탁상 위에 미처 치우지 못한 폭죽 하나를 스윽 집어 었다. 오늘의 스케줄은 원래 저녁 전에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현장의 말썽이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장비의 고장으로 시간이 틀어졌다. 현장의 모든 이들이 이 스케줄만을 밥줄로 사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 반드시 마무리해야 했고 그 여파는 한밤중 마무리라는 결과를 낳았다. 새벽을 넘기지 않는 게 다행이라지만, 만일 원래대로 스케줄이 마무리 되었으면 이 폭죽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힘껏 당겨져 파티의 시작을 끊었을 것이다. 그 종이 파편들에 뒤덮였을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분명 볼만 했을 모습을 했을 것이다. 상상해보니, 살짝 아쉽긴 했다. 뒤덮였을 모습이 아쉬웠다기보단 열심히 준비했을 그 파티를 성심성의껏 즐길 마음속 만연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었다.

 지잉-.

 프로듀서의 폰이 낮게 울렸다. 프로듀서는 손을 살짝 들며 타카네에게 양해를 구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며 나가는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문마저 조심스럽게 닫혔다. 타카네는 폭죽의 끈에 살짝 힘을 주었다. 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스스로 폭죽을 당기자니 여러모로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축하해주는 이는 순간의 무서움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의 놀람을 삼키는 거로구나. 폭죽을 주머니에 넣었다. 간직의 의미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위해 준비했을 축제의 흔적을 그냥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타카네."

 문이 열림과 동시에 프로듀서는 입을 열었다.

 "히비키를 데리러 가야 하거든."

 "히비키를 말인가요?"

 "응. 원래 리츠코가 픽업해주기로 했었는데 그쪽도 타이밍이 좀 어긋난 모양이야."

 "그렇군요."

 "히비키가 극장에 잠깐 들렀다가 집에 간다고 하더라고. 타카네, 어떻게 할래?"

 "무엇을 말인가요?"

 "혼자 있어도 되겠어? 미사키씨도 퇴근했고 아무래도 극장에 혼자 있기는 좀..."

 잠시 고민했다. 히비키가 바로 퇴근한다면 동참하여 아예 집으로 가는 길을 택하겠지만 재차 극장에 들러야 하는 길이라면 굳이 함께 갈 필요까진 없었다. 

 "아닙니다. 여기에 있겠습니다."

 "그래.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시지요."

 프로듀서의 발걸음을 따라 대기실 밖까지 나갔다. 프로듀서는 한 번 뒤돌아 손을 들어 올린 후 갈 길을 떠났다. 쿵쿵쿵. 빈 공간에 울리던 걸음의 소음이 이윽고 사라졌다.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화이트 보드의 그림과 메시지들을 복사하는 것 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눈에 담았다. 그 옆으로 히나타가 열심히 물을 주고 있는 화초를 살폈다. 오늘도 화초는 히나타의 일과 속에 함께 했는지 화초의 흙은 젖어있었다. 문득, 창문 쪽 밝은 빛에 고개를 돌렸다. 프로듀서의 차가 강한 불빛을 일며 출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빛에 눈이 잠깐 아득해졌는지 차가 떠난 자리가 온통 새카맣게 보였다. 시야가 제자리를 찾았음에도 풍경의 아래에는 즐길만한 거리가 없었다. 타카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래와는 다르게 어둑한 밤 풍경의 위는 반짝, 볼 법한 것들이 시야를 반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달은. 어떤 달이더라. 창문의 틀 안에서의 한정적인 바깥의 모습으론 하늘 전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옥상. 두 글자가 떠올랐다. 바로, 지체하지 않았다.

.

.

.

 옥상의 용도를 여러 극장의 멤버들을 통해 들었었다. 바베큐 파티를 벌였단 얘기도 들었고, 여기서 캐-치볼이란 것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처음 올라와 본 옥상은 아니었지만, 아직 이 드넓은 옥상이 익숙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탓은 자주 애용했던 옥상의 크기는 이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극장의 정기 공연을 마친 친구들이 여기에 깃발을 꽂아놨다고 했는데 그 깃발 또한 단숨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태의 위엄은 마치 달에 꽂은 바다 건너편 나라의 국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찬기를 머금은 바람에 조금씩 펄럭였다. 마음이 펑 뚫리는 기분이었다. 펑이라고 표현할 만큼 막혀있진 않았지만, 어쨌든.

 "달....인가요."

 굳이 찾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절로 눈에 들어왔다. 타카네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하늘의 달과 시야를 맞췄다. 딱. 들어맞았다. 

 "보름달이군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존재 자체에 홀린 것처럼. 마주하자마자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쾌청해졌다. 이따금씩 찬바람이 휘감는 까닭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밤의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이 없었다. 건물의 옥상에서라면 더더욱. 무심결에 올려다본 하늘의 달이 보름달이고, 보름달이 뜬 오늘이 태어난 날이라는 것. 그 우연을 마주하기 위해 오늘의 하루가 그랬던 것일까. 조금만 틀어졌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경치였기에. 

 끼이익-.

 둔탁한 문의 소리가 적요한 풍치를 깼다. 한동안 올려다본 목의 피로함이 그제야 느껴졌다. 한 번 목을 깊게 숙였다가 들었다. 다가오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타카네. 여기 있었구나."

 "히비키 아닌지요."

 프로듀서라 생각했지만 나타난 인물은 히비키였다. 뒤돌아서 문 쪽을 살펴보자 프로듀서는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았다.

 "프로듀서는 사무실에 서류 챙겨야 한다고 해서. 그동안 자신이 타카네를 데리러 오기로 했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히비키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눈을 몇 번 끔뻑이며 그 시선을 감당하던 히비키는 생각보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풀어지는 미소와 함께 옆얼굴을 두어 번 긁었다.

 "자신 얼굴에 뭐 묻었어?"

 "제가 여기에 있으리란 걸 아신 건가요?"

 "아 그거였던 거야? 응. 여기에 있을 거 같았다구."

 진심으로 물어오는 타카네에게 히비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확답했다.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거야... 사무소에서도 타카네가 달을 바라보는 걸 자주 보기도 했고.....아, 달. 보름달이네."

  히비키가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답을 피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보름달을 보고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타카네는 히비키의 손끝에서부터 다시 시선을 옮겼다. 보이지 않는 연결선의 끝이 도달한 그곳. 달.

 "오늘 달이 참 밝습니다." 

 "달이 동그랗기도 하네."

 "크기도 하지요."

 "노랗기도 하구..."

 "유독 선명한 것 같기도 합니다."

 "......달 같기도 하네."

 "......그렇죠. 달이니까요."

 잠깐의 정적. 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타카네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히비키는 푸풋.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아하하-. 옥상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달 같기도 하다는 말은 자신이 생각해도 좀 바보 같았어."  

 "그래도 재밌는 답이었습니다."

 "뭐, 그리고 아름답기도 하다구."

 "그렇죠. 달은 모름지기 아름다운 법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동그랗게 빛날 뿐인데 말이야."

 "그런가요?"

 다시 정적. 조금 전의 정적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말꼬리를 올려 물음의 문장처럼 들리긴 했지만 타카네도 물음의 답을 딱히 들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저기, 타카네."

 "네. 히비키."

 "있지, 자신이 오늘 새벽에 한 다섯 시 쯤 일어났거든. 이누미 애들 밥 챙겨주고 자신도 대충 아침 챙겨 먹고 나오니까 여섯 시 반쯤 되더라구."

 "그랬군요."

 "현장에 도착하니까 한 일곱 시 반쯤 됐나? 그리고 하루 종일 녹화했어. 2주분을 한꺼번에."

 "2주분을 한꺼번에."

 "응. 그리고 오려는데 리츠코한테 다른 일 때문에 못 온다는 연락을 받아서 프로듀서한테 연락했거든."

 "아 그래서 프로듀서가 연락을 받았던 거군요."

 "타카네가 극장에 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극장으로 가겠다고 했어."

 "......저 때문에 구태여 극장으로 오셨던 건가요?"

 히비키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쭈뼛거렸다. 뭔가 말하기 굉장히 미안하다는 눈치였다. 

 "그렇게까지 수고를 하시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선물은 미처 준비를 못 했지만 말야. 그래도 있지. 스케줄도 갑자기 길어지고 그래서 뭐 파티...같은 것도 못했다고 얘기를 들어서 말야. 그니까." 

 생일 축하해, 타카네.

 밝게 웃으며 건넨 축하의 인사. 히비키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종국의 말을 꺼내기 위해 쭈뼛거렸던 것도, 장황하게 오늘의 일과를 읊은 것도, 결국엔 손에 쥘 수 있는 무언가를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온 탓이었으리라. 타카네는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깊게 찔러 넣지 않아 바로 짚이는 것을 꺼낸 후 히비키의 앞으로 손바닥을 폈다. 히비키는 타카네의 손바닥 위의 물건을 갸웃하며 살펴보았다.

 "생일 폭죽?"

 "제게 축하의 인사를 해 주기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하신 히비키에게, 한 가지 더 수고로움을 부탁하고 싶습니다만."

 "부탁?"

 "부디 이것을 제게 터트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손바닥의 크기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폭죽이었지만, 이상하게 부탁에 무게가 느껴졌다. 히비키는 타카네의 손바닥 위, 폭죽을 집어 들었다.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나와 있는 끈을 살짝 잡아당겨보았다. 순간 움찔하는 타카네를 발견했다. 무서워하는 걸까? 그렇다면 터트리지 않아도 좋을텐데. 왜 굳이 폭죽일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직도 몸은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기다리고 있다. 터트릴까, 말까. 무게의 추가 그 짧은 시간에 양쪽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다시 한 번 타카네를 살폈다.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별 수 없지. 히비키는 타카네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 자신의 머리보다도 조금 높은 위치로 조준했다. 끈을 손가락을 한번 말아 쥐었다. 

 타카네!

 네, 부디!

 생일 축하해!!!


 펑!!!!!!


 폭죽의 잔해들이 나폴나폴 바람을 타고 떨어졌다. 기다란 종이 꼬리같은 잔해들이 타카네의 머리 위로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폭죽이 터짐과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던 타카네는 이마를 타고 앞머리의 꼬랑지처럼 걸쳐있는 종이 잔해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며 긴장을 풀었다. 고요를 깬 굉음이 개운하다고 느껴졌다.

 "만족하는 거야?"

 빙긋 웃으며 히비키가 다가왔다. 타카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게 뭐 어려운 부탁이라구."

 히비키가 뿌듯함 가득 팔짱을 끼며 으쓱댔다.

 "하지만 히비키. 폭죽을 터트릴 때 눈을 질끈 감지 않았는지요?"

 "아, 아니? 자신. 눈 똑바로 뜨고 터트렸다구." 

 "정말인가요?"

 타카네는 히비키에게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히비키는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 지, 진짜라구."

 "그렇군요."

 타카네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맹하게 보이는 표정에 무슨 의중들이 담겨있는지 히비키는 파악할 수 없었다. 괜히 괘씸한 마음에 히비키의 타카네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잔해들을 쓰다듬듯 털어버렸다. 그 손길을 타카네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이누미같은 대형견을 쓰다듬는 느낌에 정신이 들어 팟, 손을 뗐다.  

 "어서 가자구. 프로듀서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히비키. 고맙습니다."

 홱 몸을 돌리자마자 들리는 타카네의 목소리. 졸지에 뒷모습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받아버렸다. 

 "빠, 빨리 오라구. 늦겠다. 이미 늦었지만."

 기다리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고 출입구로 향하는 히비키의 뒷모습을 타카네는 아까 전, 달을 관망하던 것처럼 지켜보았다. 무심결에 발견하게 된 생일날의 보름달처럼, 이 또한 조금만 시간이 틀어졌다면 받지 못했을 축하이기에. 

ㅡ ㅡ ㅡ

 마침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더라구요. 이런 우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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