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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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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8, 2019 21:57에 작성됨.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은 유별나게 추웠고 늦게 떠진 눈은 아침도 차마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나오게 하는 여파를 만들어버렸다. 정신없이 엄마와 동생을 배웅하고 극장으로 출근하는 때에 시선을 사로잡은 큼지막한 찐빵 팜플렛. 홀린 듯 들어간 것도 모자라 손에 쥔 지폐를 다 찐빵을 사는데 지출해버렸다. 한껏 받아들고 나서야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정신차릴 수 있었다. 시호는 편의점 입구 앞에서 슬쩍 봉투 안을 살펴보았다. 개수는 다섯 개였다. 혼자 먹을 용으로 샀다기엔 양이 많았다. 모락모락 나오는 김이 시호의 얼굴을 살짝 적셨다. 각양각색의 냄새들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시어터에 들고 가면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입이야 많을 것이다. 오히려 모자랄지도. 처리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걱정이 되진 않는데 시어터 멤버들의 반응들이 걱정되었다. 분명 귀찮은 질문들이 날아올 텐데. 아아. 이건 일단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다. 시호는 봉투 입구를 꽉 아물어 쥐었다. 이러나저러나 극장에 가는 사이에 최대한 식으면 안 되니까. 시호는 걸음에 모터를 달았다.

 타박타박타박. 잰걸음은 꽤 빠른 속력을 내고 있었다. 느끼기에 이 걸음은 꼭 경보하는 것 같았다. 살짝 다리에 힘을 풀었다. 배가 고파 왔지만 짐짝 같은 봉지 안에서 주섬주섬 빵을 꺼내 먹으며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편의점에서 우유 하나 사서 먹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있었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찐빵을 구매하지 않았을 거란 결론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답은 결국 하나. 얼른 극장으로 가야 한다. 다시 다리에 속력을 내었다. 

 "으아앗, 조심!"

 앞에서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쌩하니 사람이 지나쳐갔다. 그 바람에 찐빵들을 바닥에 낙하시킬 뻔했다. 얼떨결에 꽉 껴안아 그 참사를 막을 수 있었지만 이 정도 힘이면 분명 찌그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시호는 우사인볼트 뺨 치는 러너의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으햣!!"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건 큼지막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익숙한. 

 "우미씨?"

 "시호링?!"

 "놀랐잖아요!"

 답지 않게 큰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그만큼 깜짝 놀란 탓이었다.

 "어디 가는 거야? 시어터? 사무소?"

 "시어터... 가는 중인데 우미씨는요?"

 "나? 출근했다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해서 주변 한 바퀴 돌고 있었어!"

 "주변이요? 여기는 극장 주변 한 바퀴랑은 조금 거리가 있지 않아요?"

 시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여긴 시내라 말해도 될 법한 거리였으니까. 

 "그런가? 막 뛰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거든."

 "길은 아시는 거죠?"

 "물론!"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같이 극장으로 들어갈까요? 라는 물음을 던질까 말까 고민되었다. 딱 보기에 우미는 더 질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날이 추운데 우미씨. 더 뛰실 건가요?"

 시호는 에둘러 물었다.

 "응! 방해된다면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니까!!"

 "아... 그럼 혹시... 밥 드셨나요?"

 "밥?"

 되묻는 우미에게 시호는 포장된 찐빵 하나를 꺼냈다.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티커로 표시해 주셨다는데 지금은 그걸 확인할 겨를이 되지 않았다.

 "추우니까요. 그 뛰면서 드시기 좀 그러면..."

 "아니야!! 안 그래도 마침 배고팠거든!!" 

 찐빵을 받아 든 우미는 양손으로 찐빵을 꽉 쥐었다. 핫팩의 용도로 사용하는 모양새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럼 이따가 뵐게요."

 살짝 묵례하듯 인사한 후 다시 제 갈 길 가려는데 어어어! 하면서 우미가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혹시 찐빵이 하나 더 필요하신 걸까? 

 "시호링! 이따가 혹시 타이밍이 안 맞을 수 있으니까!!"

 "타이밍이요?"

 "생일 축하해!!!!!!"

 우미는 특유의 몸짓과 함께 동네 떠나가라 외쳤다. 폭죽보다 우렁찼다. 폭죽이 뭐야, 폭탄에 비유해도 전혀 지지 않을 데시벨이었다. 그 엄청난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일...."

 "응!! 1월 18일!! 시호링 생일이잖아!!"

 "아... 그러네요. 생일. 그... 고마워요. 우미씨."

 "응응 아니야! 오히려 뭘 주지 못하고 받았는걸! 그럼 이따 봐. 아니 내일 볼지도!"

 손을 흔들며 삽시간에 멀어져가는 우미의 잔상을 시호는 조금 넋 놓으며 지켜보았다. 생일이었구나. 맞아. 그러네. 동생이 등원 길에 뭐라 말을 했던 거 같은데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생일이란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잊고 있었던 건 아닌데. 당장 어제도 달력을 보며 내일이 생일이구나 하고 한 번 인지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극장에서 배부해 준 달력엔 도저히 모를 수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표식으로 생일날을 휘감았으니까. 그렇다면 꼴이 더 웃기게 되는 거잖아. 자신의 생일날 뜻 모를 찐빵을 가득 안고 출근하는 모양새라니. 분명 누군가 보면 이 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시즈카라던가. 시즈카라던가. 시호는 봉지를 열어 안을 재차 확인했다. 하나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따뜻한 김이 새어나왔다. 순간 따뜻하다고 느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가자.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

.

 극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파묻힌 듯 보이는 극장은 고요해 보였다. 목적지가 보이자 다시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느낌이 꼭 배가, 고파졌다. 하면서 카메라 화면이 세 번에 걸쳐 뚝뚝 끊기며 멀어져야 할 것 같았다. 무슨 카메라 화면이래. 이래서 직업병이 무섭다니까. 혼자 걷다 보니 별 쓸데없는 생각들이 짧게 짧게 원투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였다. 이걸 이제야 눈치챘다. 아무렴 어때. 거의 도착했는데. 손에 쥔 봉투를 재차 꽉 쥐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을 배경처럼 지나치며 목적지를 향해 순항하는 그 때.

 어머어머. 여기서 기다리는 게 아니었나 보네.

 무심히 지나치는 한 사람에게서, 익숙한 트러블이 그려졌다. 지문이나 다름이 없는 감탄사와 처한 상황. 시호는 걸음에 제동을 걸곤 뒤로 몇 발자국 걸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난처해하는 인물의 어깨를 노크하듯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똑똑.

 "누구... 어머, 시호쨩 아니니?"

 "안녕하세요. 아즈사씨."

 "극장에 가는 길이구나?"

 "네... 아즈사씨는 스케줄 가시는 건가요?"

 "아... 응. 프로듀서가 다른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다고 해서 현장에 가는 건 혼자 가기로 했거든."

 "택시 안 부르셨어요?"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서 버스를 타고 갈까 했더니... 글쎄 여기가 어디더라...?"

 극장에서 일하며 아즈사와는 오랫동안 함께 있는 일이 드물었기에 길치라는 점은 알았어도 그 심각성에 대해선 제대로 느낄 일이 없었다. 들려오는 엄청난 에피소드들에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오늘, 시호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는 날이 되었다. 

 "여긴... 애초에 버스 정류장이 아니에요."

 "어머, 그러니?"

 "차라리 전철을 타시죠. 어느 현장으로 가시나요?"

 시호는 아즈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즈사는 프로듀서에게 받은 문자를 시호에게 보여주었다. 방송사. 여기는 스케줄 때문에 가끔 혼자서도 가 본 곳이었다. 극장에서 이곳까지 버스보다는 전철이 훨씬 빠르고 편한 루트였다. 전철이야 많이 이용하실테니까. 시호는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아즈사에게 루트를 설명해주었다. 역에서 요 쪽 방향으로 전철을 타셔서 이 역에서 내리시면 돼요. 아즈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가... 조금 불안하다는 게 문제였다.

 "시호쨩. 고마워. 그리고 갈 길 방해해서 미안해."

 "딱히 그렇게 바쁜 상태도 아니니까요. 그럼."

 가벼이 인사하고 몇 걸음 떼다가 멈춰 섰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아즈사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잠시 그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시호는 일단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아주 넉넉했다. 넉넉한 시간을 괜히 불편한 마음으로 보내는 것보다 이 시간을 활용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시호는 아즈사의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방향은 시호가 알려준 역으로 향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한 정거장 더 앞으로 가서 타겠다는 의지가 아닌 이상.

 "아즈사씨!"

 "시호쨩?"

 "저기... 그러니까..."

 이제와서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핑계라도 없을까.

 "그니까... 저도 거기서 대본을 하나 받아와야 하는걸... 잊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대본을?"

 "아... 네. 마침 아즈사씨가 그 방송국 가시니까요."

 의문을 띄우던 아즈사의 표정이 잠깐 꿈틀거렸다. 그리곤 언제나의 미소. 그 표정변화를 마주하며 혹시 속내를 들킨 게 아닐까 싶어 시호는 서둘렀다.

 "어, 얼른 가죠. 아즈사씨는 시간 맞춰야 하잖아요."

 터벅 터벅. 앞장서 나아갔다. 어머어머, 어쩔 수 없네. 멀어져 가는 와중에도 아즈사의 목소리는 시호에게 제대로 꽂혀 들어왔다. 어쩔 수 없다. 라 한다면, 이미 꿰뚫린  것이다. 그래도 시호는 모른 척 역을 향해 나아갔다.


*


 "고마워. 시호쨩. 덕분에 잘 도착했어."

 "아뇨. 저도 볼일을 봐야 하니까요."

 결국 방송사 입구 초입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일을 봐야 한다는 시호의 말에 아즈사는 활짝 웃어보였다. 문득 손에 쥔 찐빵 더미가 생각났다. 봉투의 입구가 있는 대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급하게 만져보니, 아직 찐빵의 열기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저기, 아즈사씨. 혹시... 밥 드셨어요?"

 "밥?"

 "그게..."

 주섬주섬. 미열을 가진 찐빵 하나를 꺼내 아즈사에게 건넸다. 여전히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다. 아즈사는 시호가 건네주는 찐빵을 기꺼이 받았다.

 "고마워 시호쨩. 다이어트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괜찮겠지?"

 "일을 하셔야 하니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럼..."

 "잠깐, 시호쨩."

 잡힌 팔에 놀란 틈이 없이 시호는 따뜻한 온기에 푹 파묻혔다. 

 "아, 아즈사씨."

 "이건 고마움의 선-물."

 방송국 입구 한복판에서 두 아이돌의 뜬금없는 포옹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떼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즈사의 등을 껴안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시호는 안절부절못했다. 

 "저기. 아즈..."

 "그리고, 생일 축하해."

  "알고 계셨나요?"

 품에서 시호를 떼어낸 아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탄식과 함께 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마워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렴."

 돌아서는 뒷모습을 향해 시호는 고개를 숙였다. 같이 들어가자는 말 없이 혼자 들어가는 아즈사를 보곤 시호는 확신했다. 대본을 찾으러 간다는 거짓말을 간파하고 있었구나. 차라리 그냥 방송국에 데려다 드리겠다 말을 했으면 좋았을까 생각하며 시호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역을 향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라 그런지 시간 불문하고 사람이 많았다. 

 "어? 시호..."

 알아보는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도, 안경도, 모자도 쓰지 않았다. 많이 팔리는 아이돌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전국 방송에도 나가면서 사람들이 드문드문 알아보는 중이었다. 이런 곳에 나올거라 생각했음 이렇게 무방비하게 나오지 않았을 텐데. 발걸음을 빨리하며 역을 찾아 가려는 와중에도 시호를 알아본 그 목소리는 뒤에 붙어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되는대로 찐빵 봉지로 얼굴을 가릴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너무 튀는 행동이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에 걸음이 막혔다. 뒤쫓아 오던 이도 바로 따라붙어 시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저기저기. 시호쨩 맞지?"

 "사람 잘못 보셨..... 츠바사?"

 뒤에서 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파들을 보곤 시호는 츠바사의 손목을 잡고 옆으로 살짝 빠져나왔다. 시호와는 다르게 안경에 모자까지 오프를 위한 변장을 단단히 한 상태였다.

 "여긴 무슨 일이야? 스케줄?"

 "아니... 어쩌다보니. 츠바사는?"

 "오늘 오프라서 쇼핑 나왔지. 으음... 마침 잘 됐다!"

 손뼉를 짝 치며 츠바사는 시호의 한쪽 팔에 팔짱을 꼈다. 

 "뭐, 뭐야?"

 "생일이잖아? 안 그래도 선물로 뭘 골라야 할지 고민 중이거든. 이렇게 주인공을 만났으니까 같이 쇼핑이야!"

 "딱히 선물 같은 건 안 해줘도 좋아."

 "에에. 뭐야. 재미없게. 으음... 그래도 나는 선물을 주고 싶으니까 잠깐만 어울려주는거야."

 답을 할 조금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츠바사는 시호를 끌고 갔다. 시호는 종잇장처럼 나폴나폴 이끄는대로 따라갔다. 우연히 거리에서 동료를 만나는 게 세 번째다. 우연도 반복되면 필연이랬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런 날이려나 보다. 분명 손에 든 찐빵도 다 식어버렸을거야. 찐빵을 사지 말 걸 그랬나.

 "아, 시호쨩. 그건 뭐야? 벌써 선물 받은 거야?"

 "아니 이건 내가 산 건데..."

 "응? 그게 뭐야. 나도 볼래."

 뻗는 손 위에 시호는 찐빵 하나를 꺼내 토스하듯 건넸다. 이번엔 맛이 제대로 보인다. 고구마 맛 찐빵. 

 "에에. 다 식었잖아."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도 따뜻하게 먹고 싶었거든."

 "아핫. 그럼 편의점에서 따뜻한 음료수라도 살까? 거기서 데울 수도 있지 않을까?"

 말 꺼내기가 무섭게 츠바사는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따뜻한 우유를 두 병 사서 카운터에 가 계산하는 것도 모자라 시호가 들고 있는 찐빵들까지 가져가 '이것 좀 데워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옆에서 일일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구매한 게 아니라 어렵다는 답이 나왔으나 '안 돼요?'하고 물어오는 츠바사에게 결국 점원은 전자렌지 서비스를 해 주어야만 했다. 뿌듯한 얼굴로 다 데워진 찐빵 중 하나를 오픈해 한 입씩 오물거리며 밖으로 나서는 츠바사를 보며 시호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덕분에 찐빵이 다시 후끈후끈해졌다.

 "이야. 맛있는데? 시호쨩은 안 먹어?"

 "극장 가서 먹으려고."

 "그래? 그럼 우유라도 먹어. 이건 내가 사는 거야."

 "이게 선물인 건 아니지?"

 잠깐의 정적. 정색까진 아니지만 입은 우물우물거리며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츠바사의 눈을 몇 번 마주쳤다가 후훗. 웃어버렸다.

 "시호쨩. 농담 재미없었어."

 "딱히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맞는 거 같은데? 결국 웃어버렸잖아."

 "아무튼 아니야. 그보다, 어디 갈 거야?"

 어디 갈 거냐는 말에 금방 화색이 되어 시호에게 달라붙었다.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어울려주는 것도 좋을 테니. 


*


 일단은 그래도 아이돌인데 분장 하나 안 해서 되겠냐 해서 안경 하나, 모자 하나를 선물 받았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선물'을 고르는 쇼핑이 아니라 선물을 고르는 '쇼핑'에 초점이 맞춰진 츠바사의 욕구는 결국 거리의 샵을 다 둘러보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것도 어울린다, 저것도 어울리네! 하며 돌아다닌 시간만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축하의 선물은 안경과 모자로 퉁치기로 했다. 츠바사가 원하는 리액션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점이 걸리긴 했지만 츠바사와 헤어질 때 '즐거웠어'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으니 나쁘지 않았던 거겠지. 덕분에 아이돌다운 변장을 하게 되었다. 그 변장의 힘입어 극장까지 빠르게,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아아. 얼마나 지난 걸까. 결국 극장에서 자주 연습은 못하게 됐네. 그래도 정기 레슨엔 빠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극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찐빵은 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나야 대충 먹는다지만 더 이상 누구에게 줄 수는 없겠는걸 생각하며 똑똑-.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포근한 실내의 공기가 시호를 맞이했다. 아무도 없나. 두리번거리던 시호의 시선에 새근거리는 숨결이 서걱거렸다.

 "배...고...파...... 슈..크림...빵...."

 소파에 앉아 노곤하게 풀린 채 잠들어버린 카나. 선명한 잠꼬대에 시호는 픽 웃어버렸다. 짐을 탁상 위에 놓고 대기실을 둘러보았다. 화이트보드. 누가 그렸을지 모를 자신의 그림과 함께 보이는 화이트보드의 메시지들. 각양각색 메시지들에 시호는 픽 웃어버렸다.

 "슈...크림...빵..."

 여전히 잠결에 슈크림 빵을 찾는 카나의 모습에도 재차 웃어버렸다. 여하튼 어쩔 수 없는 애라니까. 손에 쥔 찐빵을 바라봤다. 으음. 슈크림은 아니지만 이것도 충분히 달겠지. 카나라면 이것도 맛있게 먹어주지 않을까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시호는 탕비실로 향했다. 우유 두 잔을 데웠다. 빵을 어쩌나 싶었지만 어쨌든 다시 데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찬장을 열어보니 몇 가지 과자가 있었다. 그 과자들도 이용해 대충 다과상의 기분을 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단잠에 빠져있는 카나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냥 더 자게 놔둘까. 하지만 그 잠꼬대는 분명 본능이었을 거야. 오히려 피곤하면 이따가 집에서 더 달게 잘 수 있을테니까 깨우자. 멋대로 내린 판단이 부디 정확하길 바라며 시호는 카나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 카나. 빵 먹자."

 "으음.... 시호쨩..... 시호쨩?!"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다. 

 "시호쨩. 왜 이렇게 늦었어?!"

 "느, 늦다니?"

 "내가 라인 보냈는데!"

 라인이라니? 시호는 자신의 폰을 확인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들이 쌓여있었지만, 그 메시지들 중에서 카나의 메시지는 없었다.

 "없는데."

 "에?"

 급하게 자기 폰을 뒤적거리다니 아아앗!!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소리를 질렀다.

 "왜?"

 "아이. 데이터가 이상했나? 안 보내졌네!"

 "무슨 일인데 그래."

 "그게... 이따가... 오. 30분 뒤네! 모모코쨩이 유리코씨가 발견한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단 말야! 내가 자신있게 시호쨩을 데려오겠다고 했는데!!"

 카나의 말에 시호는 화이트보드를 다시 쳐다보았다. 저 메시지들이 그것과 연관이 되어 있었던 거구나. 

 "그래서 메시지는 제대로 안 보내고, 여기서 졸고 있었던 거야?"

 "아우우... 미안해. 시호쨩."

 진심으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카나에게 타박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극장에 도착하려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했는걸.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는데?"

 "응? 아. 레슨실이야!"

 바로 레슨실로 튀어가려는 카나의 옷깃을 잡았다. 

 "아직 30분 남은 거잖아?"

 "응!"

 "저기... 우유라도 한 잔 먹고갈래?"

 시호는 탁상 위에 올린 우유와 빵, 과자들을 손짓했다. 이제껏 아무것도 먹지 못한 허기가 마구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가서 유리코, 모모코, 미라이, 아리사 등에게 메시지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것도 좋았지만 허기를 해결하고 싶었다. 

 "뭐해? 시호쨩?"

 "응?"

 잠깐 생각에 잠기고 있는 사이에 벌써 카나는 자리에 앉아 우유와 함께 빵을 먹고 있었다. 하여튼 이런 건 빠르다니까. 시호도 옆에 앉아 우유 한잔을 입에 머금었다. 따뜻해. 빵도 하나 들어 입에 넣었다. 오늘의 많은사건들과 함께한 것 치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너무 많이 먹음 안 돼. 그 방에 케이크같은 거 다 해 놨거든."

 "그래?"

 "아무튼 시호쨩. 조금만 먹어."

 조금만 먹으라는 애치곤 정작 자기 자신은 아구아구 먹고 있었다. 풋. 그게 뭐야. 절로 웃음이 나왔다.

 "히이이이익!!! 시호쨩!!!!!! 카나쨩과의 티타임!!!!!! 아리사! 저장하는거예요!!!!!"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급작스런 플레시 세례. 꺄아악!! 시호보다도 카나가 더 야단법석으로 놀란 모양이었다.

 "카나씨. 시호씨를 데려오라니까 같이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하란거야."

 "모모코쨩센빠이!! 그래도!! 귀중한 사진을 겟했으니까요!!!"

 "아리사씨는 좀 조용히 해줬음 좋겠는 거야."

 "아아... 이건 내가 배고파서 먹자고 한 거라... 카나는 잘못이 없어."

 모모코와 아리사의 등장이 의아하지 않는 건 화이트보드의 메시지와 카나의 전달로 정황을 다 파악한 탓이었다. 시호의 말에 소란이 사그라들었다. 

 "아무튼 얼른 와야 해."

 "30분 후라고 했잖아, 모모코쨩?"

 "카나씨도. 시호씨가 오자마자 데려왔어야지."

 "아우....."

 모모코는 시호의 손을 잡았다. 그 작은 손을 감싸 잡으며 시호는 모모코가 이끄는대로 향했다. 극장의 레슨실 중에서도 가장 큰 레슨실. 그 앞에서 모모코는 한 번 뒤돌아 시호를 살폈다. 시호는 모모코를 향해 고개를 한 번 까딱였다. 

 "시호씨. 놀라지나 말라구."

 한 마디 말과 함께 레슨실의 문이 열렸다. 펑펑. 터지는 팡파레와 함께 시호의 앞에 다가온 케이크. 1과 4 모양의 촛불이 아른아른 타오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불을 끄는 거야! 누가 외치는지 모를 말에 다 함께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시호,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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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그냥 하루의 흐름 같은 느낌이었음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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