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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조율 (전편)

댓글: 6 / 조회: 705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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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8, 2019 00:56에 작성됨.

01

사랑과 우정과 분노의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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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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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의도치 않은 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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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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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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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마 마유의 프로듀서, 사이토 요시테루는 3월의, 왜인지 누렇게 물든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쉰다.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이미 익숙해졌을 터이다.
이제 피를 보아도, 시체를 보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살인에 몸이 적응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그것이 드러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사이토는 이제는 자신이 살인을 몇 건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의 고등학교에서 5명... 그리고...
이렇게 세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땅에 묻었다.


물론 그는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들은 마땅히 죽을 죄를 저지른 것이다!
자신의 '아이'들을 괴롭혀 고통받게 한 죄는 마땅히 그들의 피로 씻어야만 한다.
단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잠시라도 한 눈 파는 사이에 자신의 '아이'들이 이 세상을 뜨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흉들은 그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사이토는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쿠마 마유에게 변태 짓을 한 그 남자를 살해한 이후부터,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쿄코를 범하려고 한 스폰서를 살해했을 때는 그 사람의 정체마저 확실시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사무소의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 .......어라, 당신. 요즘 여유 좀 있는지 안녕한가보네? "


아이돌 호죠 카렌은 여전히 다소 비꼬는 말투로 사이토에게 인사한다.
사이토는, 아니 다른 어떤 누구라도 그녀의 태도에서 사이토에 대한 적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렌의 유닛 동료인 카미야 나오도 옆에서 이를 느꼈는지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적의에서 사이토는 무언가 안 좋은 조짐을 느꼈던 것이다.
분명 그는 호죠 카렌에게 실수한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아이가 자신에 대해서 무언가 눈치챈 것이 있는가?
아니,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살인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이토는 그 의심을 점점 키워왔으나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담당 아이돌 주 한 명인 이가라시 쿄코의 사건에서 마침내 그는 확신하였다.


사이토는 당시를 회상한다.
쿄코에게 함부로 손을 댄 츠리이라는 인간의 숙소를 불태웠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사라졌던 타다 리이나의 휴대폰.....
그리고, 그녀가 말한 '갑자기 사라진 영상'....


혹시 그 영상에 무언가가 찍혀있고, 그 영상을 호죠 카렌이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살인의 결정적 증거가 된다면?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호죠 카렌은 과연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만약 가지고 있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사이토는 여러 고민들로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최악의 경우라면, 아무리 사무소의 아이돌이라고 해도 가차없이 제거해야한다.
여고생 한 명 자살로 위장하는 것쯤은 사이토에게 일도 아니다.
사이토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녀의 행동에 따라 이후의 선택지를 생각하기로 하였다.


" ..........사람이 인사를 하면 좀 듣지 그래? "


" 아, 죄, 죄송합니다... "


호죠 카렌은 특유의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쓴다.


" 당신이 행실을 제대로 해야 당신 아이돌이 어깨 피고 다닐거 아니야. 그렇게 평소에 어리버리하고 있어서 되겠어?"


여전히 적의가 어려있으면서도 비꼬는 어조로 사이토를 꾸짖는다.
나오는 그런 카렌을 약하게나마 말려본다.


" 카, 카렌... 지금 사이토 씨도 한참 힘드실 때니까... "


" 힘들어? 힘들긴 무슨. 담당 아이돌 3명 중 2명이 휴가낸 상황에서 오히려 요즘 더 한가롭지 않아?"


" 카, 카렌... "


확실히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사이토 요시테루의 담당 아이돌은 사쿠마 마유, 이가라시 쿄코, 코시미즈 사치코로 3명.
그러나 연속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고, 마유와 쿄코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잠시동안 아이돌 활동을 쉬기로 하였다.
길어야 2~3주밖에 안 될 휴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휴가는 휴가인지라 마유와 쿄코는 그동안 일을 전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는 사이토가 신경써야 할 아이돌이 사치코 단 한 명인 상황인 것이다.


사이토는 그 말을 듣고 다시금 결심한다.
자신의 불찰로 인해 마유와 쿄코과 단기 휴가까지 내는 상황이 되었다.
사이토는 마지막 남은 사치코라도 잘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사이토는 스케쥴 시간이 되지 않았는지 시계를 확인한다.
오후 2시 30분. 슬슬 사치코를 데리고 출발할 때이다.
자신을 노려보는 카렌을 뒤로 한 채 사치코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


어느 눈 오는 도로 위의 고급 차량 뒷좌석에서 인상이 반듯한 남성 한 명이 담배를 피며 앉아있다.
그는 인상을 쓴 심각한 표정으로 한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그의 딸, 토모에의 사진이었다.


히로시마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갖추고 있는 무라카미 파의 후계자, 무라카미 신타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바람이 나있었다.
아이돌인 딸의 지명도는 눈부시게 상승하고 있었고, 조직의 사업도 날이 갈수록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전에 있었던 그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수치감을 남겨주었다.


분명 그가 좋은 의도로 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주어 토모에가 C랭크까지 넘볼 수 있을 정도로 토모에를 성장시켜준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무라카미는 무척 고맙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무라카미는 그를 토모에와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함께 저녁을 대접할 생각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라카미는 그에게 여러가지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것을 부탁하고, 토모에를 성장시켜준 것에 대한 보답을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무라카미의 선의는 무참한 사건으로 결말을 맺고 말았다.


무라카미는 차에서 내린 토모에를 레스토랑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녀의 프로듀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했었다.
아버지로서 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과,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토모에가 없는 자리에서 일러두려고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다.
차량에 놔두고 온 휴대전화를 꺼내기 위해 차문을 열었던 그녀의 프로듀서는,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눈 앞에서 사려져버렸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기에, 무라카미는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겨우 정신을 놓지 않고 차렸을 때, 눈 앞에는 원래 있었던 검은색 세단이 아니라, 전면부가 굉장히 찌그러져있는 회색 승합차가 있었다.
그리고 원래 있었던 검은 세단은 뒷부분이 완전히 부스러진 채 골목 구석을 향하여 날아가있었다.


교통사고인가?
처음에 무라카미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 도로에서 이 정도의 과속을 한다는 것도 의문점이기는 하나, 무엇보다 세단을 날려보낸 회색 승합차의 보닛이 인도 쪽으로 향해있었다.
이건 혹시 사람을 일부러 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그는 멈추어있는 승합차를 향해 다가갔고, 썬팅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차량 내를 들여다보았다.


어떤 젊은 남성, 그것도 10대 후반에서 기껏해야 20대 중반이 될까말까한 젊은 남성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기절해있었다.

무라카미 신타로는 곧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이 자의 목표는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검은색 세단 옆에 자신이 서있는 것을 본 이 어린 남성이 액셀을 밟아 일부러 충돌했다는 것을.


" 어.... 어.... "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토모에가 어느새 레스토랑의 입구로 나와있었다.
아니, 토모에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굉음을 들은 식당 내부의 사람들이 문 밖으로,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모두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토모에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현장을 바라보았다.
무라카미는 토모에가 당황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려 그녀에게 다가갔으나, 그 순간 그는 토모에의 눈이 날아간 차량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 시선의 끝은 바닥에 쓰러져있는 한 남성이었다.
말 그대로 '피에 떡져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는, 조금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라카미 신타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바로 그 남자였다.


" 어, 어이! 정신차려라! 어이! "


토모에는 자신의 프로듀서에게 달려가 거리낌없이 쓰러져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손에 피가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았다.
이미 초점이 나간 눈으로 그를 깨우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 토. 토모에... 그렇게 함부로 흔들면 오히려 위험해! 일단 구급차를 부르고... "


" 대체.. 뭔 일이 일어난긴데? 이 무신........ "


토모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무라카미 신타로는 이런 토모에와 다르게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사실을 토모에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습격해온 사람 때문에,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이 꼴이 되다니.
적어도, 마음 속 한 켠의 죄의식으로 인하여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 아부지! 아부지! 왜 말이 없노! "


" 그... 그게.... 가, 갑자기 저 차가 돌진해와서... "


그렇게 사실을 감추려다 보니, 달변가가 아닌 무라카미는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창 사춘기 나이대가 되어 눈치가 여간 빨리진 것이 아닌 여중생 무라카미 토모에가, 이런 무라카미의 반응을 놓칠 리가 없었다.


" ........아부지... 이거 아부지를 노린기가? "


" 토, 토모에... 그게 아니라.. ."


" 아부지 제끼려고 친 거 아니가? 맞제? "


무라카미 신타로는 능력 껏 거짓말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눈 앞에서 눈물을 억지로 참은 채 자신을 노려보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라카미는 입을 다물었다.


"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아부지 그 일 계속하면 언젠가 이 꼬라지 난다고! 이 어쩔긴데?! "


" .... 토, 토모에... "


" 야, 일어나봐라!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놔두고 죽으면 안 되잖나! 일어나, 일어나라고!!! "


토모에는 계속 자신의 프로듀서를 불러보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토모에는 대답 없는 그의 옆에서, 평소의 그녀의 강인한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울먹이는 얼굴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응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은 그를 응급차에 실었다.
토모에의 프로듀서를 날려보낸 차의 운전자도 역시 응급차에 실어졌다.
그리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떠나니, 현장에는 이제 부서진 차량 두 대와, 하나의 피웅덩이, 그리고 엎드린 채 울고 있는 토모에, 그런 딸의 모습을 망연히 쳐다보는 무라카미만이 남게 되었다.


" 젠장.... 젠장...! "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린 무라카미는 괴로움에 몇 번이고 차량 유리창의 주먹으로 부딪쳤다.
응급차로 실려간 그가 목숨만은 건졌다는 말을 얼마가지 않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중태이며, 입원을 적어도 1년은 해야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토모에는 마음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프로듀서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착한 딸 토모에는 그것이 곧 자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사건을 빌미로 무라카미는 자신을 노린 조직에 대해서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그런 사태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둘째치고, 딸을 더 이상 이 수라장 속으로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던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알면서도 진실을 모르는 척하여 그 사건은 단순 교통 사고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 작은 어르신, 저, 저기... "


무라카미 신타로의 측근 사카이 이에츠구가 조심히 무라카미가 앉아있는 뒷좌석의 창문을 바깥에서 두드린다.
그 뒤에는 여전히 화나있지만 풀이 죽어있는 토모에가 서있다.


" ....... 어떻게 됐어? "


공식적으로는 일반 교통사고로 처리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346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벌써 퍼져있는 모양이다.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무라카미 파의 싸움에 말려들어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답니다..."


" ....... "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응급차로 실려가 병원에 있어 중태이니, 지금 토모에는 프로듀서가 없다.
그래서 원래라면 다른 프로듀서가 대신하여 토모에를 맡아주어야 하지만...
어쩌면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는데 토모에를 맡겠다는 프로듀서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만약 이대로 계속 프로듀서를 계속 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지, 무라카미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 저... 토모에 아가씨에게는 유감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대로라면 토모에 아가씨는 아이돌을 그만두시거나... 아니면 다른 사무소로 옮겨야 합니다만... "


그러나 절망적인 사실을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니... 니 지금 뭐라 했나? 그만두라고? 아니면 사무소를 옮기라고? "


토모에는 현실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사카이의 말에 경악하였다.
아이돌을 그만두라고? 사무소를 옮기라고?
1년 동안 몸담고, 친구들과 만나 함께 생활하면소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던, 자신의 아이돌로서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이 성을 떠나야 한다니.
토모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도를 떠나서, 그러한 말이 나왔다는 상황 자체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 토, 토모에.... "


" 내는... 내는... 꿈마저 마음대로 꿀 수 없는기가? 그런기가? 아부지! "


" ............ "


" 안 하겠다던 아이돌... 아부지가 하래서 하지 않았나... 아부지가 내한테 꿈을 꾸게 하지 않았나... "


무라카미는 토모에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토모에에게 아이돌하기를 권한 것은 다름 아닌 무라카미 자신이었다.
사납고 강인한 토모에를 다른 여자 아이들과 친구로서 같이 어울릴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러면서 토모에 본인도 어두컴컴한 야쿠자 집안에서 밝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처음의 의도는 그것이었다. 그야말로 선의였다.


" 이제 내는... 친구도 많이 생겼고.... 이제 아이돌이 즐거워지려 카는데... 이제... 이제.... "


토모에는 결국 억지로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리 기가 세다지만 결국 토모에도 이제 겨우 14살.
그런 어린 딸의 눈물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보게 되는 아버지의 심정은 참으로 참담하였다.


" 아부지 같은 거... 이제 모른다... 내 일에 상관하지 말그라.. "


토모에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옷깃으로 닦고, 무라카미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리고 토모에는 346 프로덕션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 토모에! "


" 작은 어르신,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지금은 아가씨와 작은어르신이 같이 있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무라카미는 측근 사카이의 말이 가슴 아팠으나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사카이에게 토모에를 따라가도록 지시하였다.
무라카미는 건널목 너머로 달아나는 토모에의 뒷모습이 무척 아련하게 느껴졌다.


" 딸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아버지라니, 참으로 무능한 아버지로군... ."


무라카미가 생각하기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아버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되어달라고 이 회사 사람들에게 비는 것밖에 없다.
분명 그는 자신의 아버지, 즉 현 무라카미 파의 수장에게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고 혼이 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혼이 나서 딸의 꿈을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을 수 있었다.


" 저기... "


나름대로의 각오와 결심을 하고 있던 사이에 희미하게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여성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밖에서 차량의 유리창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이에 창문을 내린다.


창문을 내리고 바라보았던 여성의 모습은 무척 아리따웠다.
마치 모델과 같은 큰 키에 다소곳한 자세, 눈가에 눈에 띄는 매력적인 점이 그녀의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듯하였다.
아무리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중년의 무라카미더라도 이 여성이 누군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무렴 그것도 토모에 소속사의 대표격 아이돌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는 이러한 미인의 모습에도, 그리고 그 미인의 정체에도 놀랐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그 뒤에 그녀가 상당히 뜬금없이 내뱉은 말이 무라카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혹시 지금 토모에 쨩의 프로듀서 되실 분을 찾고 계신가요? "


==============================================================


사치코의 일을 마치고 사무소에 돌아온 사이토는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이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교섭을 할 만큼 자신이 그렇게 높은 직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지인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이러한 상황은 익숙지 않았다.
원래라면 사치코가 짐을 다 챙긴 후 집까지 운전해서 데려다 줄 생각이었지만, 사치코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단은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기로 하였다.


회사 응접실의 문을 열자, 사이토는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3, 40대 정도 되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예의바르게 일어나서 악수를 청하고, 이어 명함을 사이토에게 주었다.
명함에는 '무라카미 신타로' 이름과 '무라카미 건설 부회장'이라는 직함도 같이 써있었다.


사이토는 조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얼마 전에 동료 프로듀서로부터 아이돌 무라카미 토모에의 프로듀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혹시 무라카미 파의 싸움에 애꿎은 한 사람만 다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무라카미 토모에의 아버지가 굳이 한 사람을 지목하여 회사까지 찾아왔다.
그렇다면 그 뒤의 답은 매우 간단했다.


" 바쁘신데 이렇게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


" 저기 죄송합니다만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왠지 무라카미 씨가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서... "


무라카미는 이에 곧바로 수긍하고, 바로 용건을 꺼냈다.


" ...... 우리 딸... 토모에의 프로듀서를 맡아주시지 않겠습니까? "


무라카미 파의 싸움에 휘말려드는 것은, 아무리 사이토라도 사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신경쓰이고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 많고 많은 프로듀서 중에서 어째서 자신을 특정하여 이렇게 찾아온 것일까.
회사 차원에서 프로듀서를 설득하려고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토모에의 아버지가 직접 찾아왔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을 목표로 삼게 된 어떠한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 .....혹시, 누구의 소개를 받으셨나요? 저, 사이토 요시테루를 설득하라고 누군가가 조언해주었나요? "


그러자 무라카미는 품 속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


" 당신을 소개해주신 분이 이 편지를 당신에게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


어쩐지 일부러 신경써서 고른 듯한 분홍색 무늬 봉투를 받아든 사이토는 지체없이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보았다.
내용은 무라카미가 말한 대로 편지였다.
사이토는 편지의 내용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바로 편지에 맨 아랫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보낸 이의 이름을 보았다.


" 부탁드립니다. 사이토 씨, 당신이 아니라면... 우리 딸은... 토모에는.. ."


" 알겠습니다. 제가 무라카미 토모에 양의 프로듀서를 맡도록 하죠. "


" ...네?"


무라카미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한 사이토에 오히려 당황하였다.
그 사람이 소개장을 주었다고 이렇게 흔쾌히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혹시 그 아이돌과 사이토 프로듀서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괜한 추측은 자제하기로 하였다.
지금은 무엇보다 자신의 딸이 다시 아이돌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만 하였다.
이것으로 무라카미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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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입니다. 작년 10월에 글쓰고 한 편도 안썼는데 대학 시험 및 과제가 어째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엄청나서 도무지 시간이 안났네요.

토모에의 사투리는 정말 쓰기 힘드네요... 애초에 경상도 쪽 사람이 아니라서..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이번 글은 3편으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괜찮게 보셨다면 댓글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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