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내 차고 안의 용

댓글: 4 / 조회: 903 / 추천: 6


관련링크


본문 - 01-11, 2019 03:50에 작성됨.

[내 차고 안의 용(dragon in my garage)
: 칼 세이건이 회의론을 주장, 설명하면서 만든 이야기의 소재. 여기서 내 차고 안의 용이란 인간이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명백히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존재이다. 이때 그는 누군가가 차고 안에 이러한 용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이 용의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의 차이란 없고 결과적으로 증거도 없이 개인의 독단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유를 떠나 이러한 존재를 많은 이들이 확신하고 영향 받는 경우에 용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발자국, 탄 자국 등, 직접적일 수 없는 증거를 용의 존재 증거로 삼지 말 것을 조언한다. 그는 용이라는 가설 자체를 치우고 미래의 물리적 자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 정신이상자가 아닌 이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망상을 공유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어두워”



그야 겨울밤이니까…라고하기엔 여긴 불도 안 켜져있어. 더욱이 여긴 제 집도 아닌 곳이라 함부로 움직이기도 뭐해.
머리를 긁고서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됐더라?”



날이 좀 추워지는 것만 뺀다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는 날이었다. 카페의 주인이 카카오 함량이 좀 높아서 씁쓸해보이는 짙은 초콜릿색의 머리칼을 말끔하게 정돈하고서 모닥불 옆에서 귤을 우물거리는 동안, 카페 플라타너스는 여전히 손님이 많지않아서 빈 테이블이 있었다. 다만, 언제나 자리 하나 정도는 누군가 차지하고있었다. 오늘은 케이트였지.
단골과 단골로만 운영되는 이 카페에서, 그 단골들 중에, 오너가 이름대신 vip 고객님이라는 존칭을 붙여둘 정도의 단골이었으니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시킨 건 대단한 것도 아니라 크림티였거든. 별로 추워서 시킨 것도 아니다. 따뜻한 밀크티야, 영국인이라면 늘 먹는거니까. 일본인은 때를 안 기리고 녹차를 찾는 거랑 같은 이치
크리스마스에 목숨을 걸고 장식해둔 장식품은 어차피 연말이니까 귀찮아서 떼지도 않았다.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오는구나라는 감상에 젖은 낭만 같은 것보다도, ‘내일은 뭐 먹지, 일하기 싫구만’ 싶을 뿐. 그래도 당장 먹고있는 귤이 맛있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오너의 눈에 비친 케이트는 예뻤다.
케이트가 찻잔을 기울이다가, 이쯤이면 다 마셨겠지 싶을 때였다. 무릎 위의 귤껍질을 불속에 던져넣었다. 그때, 케이트가 물었지. 연말에 무슨 일있냐고. 딱히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간다든가 누구랑 약속이 있다든가는 없었어.
케이트가 그러더니 그랬지. ‘저도 없슴뉘다..’
팬으로서 조금 슬픈일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그 다음 말이 날 더 궁금하게했다. 나한테 한 가지 비밀을 보여주고싶다니.
케이프를 둘러매고서 나갈 준비를 한 케이트가 바짝 붙었다. 케이트는 키가 작아서 까치발을 세웠다. 오너의 귀로 케이트의 입술이 다가오면서 홍차향이 느껴졌다. 얼마나 가까웠는지 미처 놀라기도 전에 속삭였다



“A fire-breathing dragon lives in my garage”



코끝에서 쫓던 홍차 향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문의 벨소리를 따라 홍차의 향이 잦아들 무렵 주머니 속에는 쪽지가 있었다. 영어였다.
그래서 그 쪽지를 따라 온건데 말이야….



“그래서 어딨냐고…”



발에 뭔가 채였다.



“워”



둥그렇고 속이 빈 게 발에 닿더니 길다랗게 옆으로 눕길래 잡고보니 기타였다.



“Oh,”



기타네라는 생각에 온점을 찍기도 전에 등뒤에서 놀라는 소리를 듣고서 눈이 부셨다. 차고에 불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눼요우?”



확실히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긴했지만은, 충분히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딱히 시간을 써둔 것도 아니잖습니까.”



케이트는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고서 약간 당황했다. 그래도 물이 끓기 전도 아니고 홍차가 식기 전도 아니니까. 오너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아래 다리가 붙은 평대를 3개 가져다 놓고, 큰 것 하나엔 컵을 두고 나머지 둘에는 각각 앉았다. 캠핑에서 쓸 법한 스댕 컵에서 흰 김을 넉넉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밀크티였다.



“오늘은 제가 드리는 검뉘다.”



“잘 마실게요.”



홍차가 따뜻해서 좋았다. 따뜻한 컵의 온기가 뻣뻣해졌던 손에서 느껴졌다. 손이 풀어지려니 약간의 찌릿함도 느껴졌다.


코 가까이 컵을 두고 적색 섞인 연갈색 살살 흔들어보았다. 홍차는 역시 홍차향이란 말이지. 몇 번을 마시고 표현해보려고 했지만, 홍차향은 홍차향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말은 없었다. 한 모금 마셨다. 우유의 고소함이 덜 느껴졌다.



“얼 그레이네요.”



차에서 입술을 떼고서 가슴에 꽉 들어차는 뜨거운 숨이 콧속으로 올라왔다. 산뜻한 향이 느껴졌다.



“Yes, 밤이니까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준비해보았슴뉘다.”



결국은 밀크티에서 못 벗어나지만 말이지. 케이트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밀크티의 맛을 물어보았다.



“괜찮네요, 감사함뉘다.”



“뭠뉘카, 그거!”



케이트가 오너의 팔 한쪽을 살짝 꼬집음과 동시에 따라하지말라는 말이 붙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몇 번 더 흉내내도 좋을 것 같은데요?”



홀짝, 또 한 모금.


얼그레이의 맛을 내는 베르가못의 향이였다. 덕분에 목 언저리에서는 과일껍질을 살짝 씹었을 때나 느낄 법한 상큼한 씁쓸함이 맴돌았다. 몸에 온기가 돌고나니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생긴 건 차고인데 차는 없었다. 잘 묻는 성격은 아니지만,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묻고싶었다.



“제 memory, 추억이 깃든 곳임뉘다.”



‘여기가? 여긴 일본인데’



오너의 제스처에 물론 케이트는 본인은 영국에서 나고자랐다고 다시금 소개했다. 지금있는 차고는 그걸 똑같이 옮긴거라고.



“똑같이요?”



“yep, 제 home의 이 차고에서 papa가 이것저것 다루는 일을 하셨슴뉘다. 그래서 이것저것…어린 저에게는 재밌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잡지가 빽빽한 책장이나, 용도를 쉽게 알아맞히긴 어려운 몇몇 부품에 간이침구,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확실히 꽤나 언밸런스하게 정리된 모양새지만, 주인의 취향이 직접적으로 반영되었음은 알 수 있었다. 팅- 전자레인지의 타이머가 다 돌아갔다. 무언가 개울가 조약돌만한 것을 꺼내왔다.



“음?”



“Tea뿐인 Tea-time보다는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으뉘카요, 자 chocolate lava cake임뉘다.”



“음…..무슨 쇼콜라였죠, 이게?”



“What did you say? Say once again.”



미국식 이름이 아닌, 프랑스의 이름으로 부르려다가 쎄한 눈초리를 맞았다. 역시 영국인이라는 건가, 반응이 여타 장난과는 다르네.



“초콜릿 라바 케이크, 잘 먹겠습니다.”



이름을 고쳐 부르며 양 손바닥을 마주 붙였다. 홀짝-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를 짚었다. 엎어진 푸딩처럼 생긴 케이크를 포크로 찔러보니 찐득-한 소리가 났다. 그대로 포크를 비틀어 벌리자 가운데에서 검은 초콜릿이 끈적하게 녹아 흘러나왔다. 차고의 등불을 탓인지, 그 매끈한 표면에는 광택이 흐르는 것도 엿볼 수 있었다.



이쯤에서 진한 카카오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흔한 초콜릿과 확실히 다르다. 달콤한 향보다, 카카오의 떪음과 씁쓸함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전자레인지에 40초 돌린 것 치고는 맛있을지도. 초콜릿 향을 두고 오너가 기대감 섞인 흥미를 표하자, 케이트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동의를 표했다.



검은 초콜릿 시트 안에 갇혀있던 액체 초콜릿 크림이라…. 강가의 조약돌보다 약간 큰 케이크였지만, 딱 봐도 그 맛이 참…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서 조금만 떼어먹었다..



음 달아.



케이크는 단단하거나 폭신하다기보다도 물렁했다. 입 안에서 푹 퍼지면서 갖은 곳으로 엉켜붙어 단 맛이 가미된 씁쓰름함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넘길 때도, 목을 꾹 잡고 걸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했다. 물론 부담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 입 먹고 그만둘 맛은 아니네. 달다고 생각은 드는데, 무작정 달다기보단 약간 카카오 특유의 텁텁함도 느껴지는 맛이었다. 말 그대로 이게 초콜릿이구나 싶은 맛. 단 맛이라는 개념에 늘 까칠한 카페 오너의 얼굴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큰 맘 먹고 산 보람이 있눼요우..”



“큰 맘?”



편의점에서 조약돌만한 케이크를 2개에 700엔 주고 샀다는 말에 확실히 좀 비싸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맛은 만족스러웠지만.



“아, 그래서 이 차고가 영국에 있는 집이랑 완전히 같은거에요?”



“음….technically, no.”



케이트는 한 쪽 벽에 표구되어 걸린 종이를 가리켰다. 딱히 상장이나 증명서 같아 보이진 않았다. 종이엔 여러 번 접힌 자국이 선명했고, 빼곡한 글자는 직접 손으로 씌여있었다. 맨 아래쪽에는 발신인을 나타내고 있는 글자가 보였다. ‘-P-‘



“저거….”



내용이 자리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둘 다 알고있었다. 정확히는, 둘만 알고있는거지.



“저건, 영국에도 없는 제 treasure입니다.”



꽤나 오래 전 일인데도, 회상하는 순간 촉촉히 젖은 감동이 선명하게 케이트의 얼굴에 떠올랐다.



“……”



하지만, 오너도 다를 것은 없어서 벽에 걸린 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솔직히 저걸 누가 받아서 읽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까지 오다니 기분 묘하네.

이것저것 격세지감을 느끼고있는 중에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불러서 답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소리가 나길래 돌아봤다.



“아~앙 임뉘다~”



그랬더니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옆에서 일어났다. 그러니까, 흔하게 생각하는 일인데 실제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거… 한 쪽 손으로는 케이크를 조금 얹은 포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포크의 밑을 받친 모습. 게다가 그 포크의 방향은 포크를 잡은 케이트가 아니라 맞은 편의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몇 초간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굳었다.



“뭡니까 이건….”



그 다음에는 상체를 뒤로 뺐다.



“자아,”



보면 모르냐는 식으로 케이트는 물러난만큼, 아니 물러난 것보다 한 걸음 더 가까이 붙었다. 말은 하지 않고 권유할 뿐이었다.

이윽고, 남자의 코 끝에서 여자의 홍차향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가까워. 더 이상 뒤로 빠질 여유도 없다.

결국 눈을 감았다.

케이트의 리드를 따라, 아이가 어른의 말을 흉내내는 것처럼 더듬어가는 소리로 아- 입을 벌렸다.

입을 다무니 입 안에서 뭔가 느껴지긴 느껴졌다.



‘단 맛이 느껴지는데 전혀 초콜릿 맛이 아니야 이거.’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맛있슴뉘카?”



서툴지만, 분명 진심이 분명한 목소리가 옆에서 걱정을 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머리보다 몸이 그랬다.

말그대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어버렸지만, 귓볼까진 닿지않아서 케이트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지금 엄청 복잡한 기분이니 자꾸 물어보지 마세, 말아주세, 주시겠습니까아…”



자기자신만큼이나 흐물흐물해진 케이크를 간신히 삼키고서야, 손바닥 사이로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분명 어마어마한 표정이겠지 응


온 몸을 간지럽게 만드는 행복감에 얼굴의 근육이 위로 솟구치긴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왜 일까 해선 안 될 어떤 ‘선’을 훌쩍 넘어버린 듯한 기분은. 행복한데, 맘 놓고 행복할 수 없을 거 같은 이 기분은…



“이러면, 행복하다고 알고있었는데…”



“음…”



뭔가 말하려다가, 손조차 제대로 쥐지도 펴지도 못하고 그저 아무한테나 예고없이 하지말라는 말만 했다. 그거 말하고 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도 않았으니까 가 좀 더 정확한 말이지만말이다.



“음….아무한테나 할 일이 아니란 건 알고있어요우?”



일단 무슨 소리보다도 뭐든지 간에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오너는 케이트가 참으로 신기해진 그의 귓볼을 만지는 것조차 저항하지 못한다. 솔직히, 지금 여기서 이 이야기로 뭔갈 해보아도 여유로운 미소는 케이트의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홍조는 누구 것인지도 자명하다.



“아…저건 뭐에요?”



원래 이럴 때 딱 쓰이는 게 속보이는 딴청피우기다.



“Hm? Oh….”



산을 타고 올라가서 막 잘라낸 소나무처럼 제멋대로, 하나도 계산 안 된 선들이 인상적인 ‘기타’였다. 말해두는데 ‘기타’다.
귓볼에서 손을 떼고, 케이트는 기타로 다가갔다. 아까까지는 케이트가 만지던 귓볼을 펴내리듯 매만지다가, 케이트의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궁금함뉘카?”



“….”



…궁금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깊은 이야기가 있을 거 같네.



“음….이건, 제 Papa가 만들어주신검뉘다.”



기타를? 흔한 이야기는 아닌데 누가 떠오르는 유명한 이야기네.



“Papa는 여기에서 많은 것들을 고치는 일을 하셨고, 때론 뭔가 만들기도 하셨슴뉘다. 이건 제 생일선물로 받은검뉘다. 보세요, My name”



아이가 소중한 보물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준 기타에는 kate라고 새겨져있었다.



“그래서 모양이…”



약간 달관한 미소로 케이트도 동의를 표했다.



“네, 좀 strange. 그래서 한동안 조금 힘들었슴뉘다. 기타 같은 걸 돈 주고 살 순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 guitar에서는 papa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우.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이 소리를 들으면, 외롭지않슴뉘다.”



가끔, 일본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어떻게 이겨낼지 속으로 궁금해하던 적이 있다. 잘난 척 같지만, 케이트는 플라타너스의 밀크티에서 제법 적잖은 안정감을 느껴왔다. 가끔 밀크티에 대해 케이트가 늘어놓는 갖은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면, 도대체 여기 오기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지내왔나.

그녀가 기타의 줄을 튕기니 소리가 참으로 기묘했다. 모양만큼이 개성넘치는 소리를 듣고있자니 또 잠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깨달음이라고 해야하나



“VIP 고객님 악기 다루는 실력이 기묘한 게 그 탓이군요.”



표정보니 맞는 것 같다. 악기 지식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약간의 단서에 저런 기타라면 평범하게 다루긴 어럽겠네, 라는 추측뿐이었는데.



“….Yes, 그래도, but….It’s my precious guitar.”



양보할 수 없는 거라는 것이구나. 살짝 얼굴의 색까지 바꾸고서, 기타를 꽉 붙잡았다. 약간 부끄러운 사실을 찔린 듯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억지를 써서라도 내주지 않겠다는 것 같은…



“멋지네요.”



홀짝- 홍차를 한 모금.



담담하게 동요 없이 생각을 직구로 내뱉은 발화자와 정반대로, 케이트는 오히려 기타를 꽉 쥐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이어주는 추억의 악기라…, 멋진 거 같아요. 특히 제멋대로 생겨서 더욱.”



오너는 무언가 좀 더 말하려다가 그냥 차를 마셨다. 솔직히 잘 설명할 순 없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처음 케이트를 보고서 팬이 된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팬이 되었다…서로 얼굴도 마주보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지. 그 말을 들으니 방금 전까지 둘이서 집중하던 것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플라타너스의 오너는 케이트에게 있어서는 카페의 오너이기 전에 최초로 자신의 팬이 된 사람.

이 사실을 다시 새기고, 케이트는 오너에게 한 발짝 더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 여기로 불러내기로 했을 때와 같이.



“Well…혹시, 듣고싶은 Song 있슴뉘카? 모처럼 이뉘카요!”



마침 찻잔을 입술 떼어낸 참이었다. 흰 티슈를 입가에 가져다대어 젹시고서, 턱을 오른손으로 짚었다. 고민하는구나.



“글쎄요…”



지금은 오너에게 있어 두고두고 입에 담을 행운이었다. 케이트가 신청곡을 받아준다니, 멋진 일이다. 문제라면 오너가 노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 그래서 고민하고 말았다. 혹시라도 취소되기 전에 빨리 말하고 싶은데.

결국 제일 무난해보이는 답을 고르고 말았다. 단지, 무슨 곡보다도 케이트가 그 기타를 연주하는 게 보고싶을 뿐이다. 좋은 건 그 쪽이니까.



“고객님이 제일 잘하시는 곡으로 부탁드릴게요.”



“흠…정말 hard한 request네요우.”



케이트는 한 쪽 눈을 지그시 감고, 턱을 짚었다. 딱 그 자세가 홍차를 제법 잘 만드는 누굴 따라하는 모양새였다.



“…..So, do you mean ‘whatever’?”



아무거나,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네. 끄덕- 턱을 아래로 끌어당겼다. 케이트가 짐짓 눈을 감고,  잠깐 기타 위에서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노래를 생각해냈다.



후-, 바람을 한 번 빼냈다. 기타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푸른 잔디밭 위에서 언덕을 타고 넘어오는 5월의 바람처럼 소리가 들렸다. 상큼한 베르가못의 향에 잘 어울리는 개운한 노래다.


처음 이 기타를 받은 후로, 몇 번이고 이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연습했다. 그 결과가 남들에게 놀림 받는 것일지라도. 케이트의 연주법이 진짜 기타라는 것과는 동떨어져버리는 것일지라도. 이것을 놓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고집이다. 그래도 케이트는 연주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서, 누구보다 즐겁게. 남들은 괴상하다 하는 기타를 연주해왔다. 악을 쓰며 고집을 피운 일이 몇 번 있을 정도로 양보한 적 없는 기타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족도 아닌 누구 앞에서 들려준 적은 없다. 이 기타, 소리, 연주하는 자신까지 환영받은 적은 없으니까. 악을 써가며 고집 피우고, 연주해온 기타지만 남들에겐 제대로 들린 적 이 없다.


아이돌이 되어서도 이것에 자신감을 가지긴 어려웠다. 아니, 솔직히 그냥 아이돌로서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이지.

그래도? 하지만? 뭐라고 해야 자연스러울까, 이 사람은 그래도 한 번쯤 들려줘 보고 싶었다는 걸? 처음 기타를 선물 받을 때조차 잊어버리고, 기타를 쳐도 눈물만 흐를 뿐인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해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이 사람이 왔다. 인사도 소리도 없이 내게 들어와서 팬이라고 소개했다.

길진않은 그 인사와 몇 가지 문장들은, 그녀가 끝내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을 고쳐놓았다. 그렇게 지금 아직 케이트가 여기 있게해주었다.

단적으로, 케이트가 지금 여기까지 다다르게 도와준 가장 큰 사람 중 한 명. 케이트에게는 단지 홍차를 잘 끓일 뿐인 카페 사장은 아닌 사람이, 플라타너스의 오너.


약간은…칭찬도 인색하고 선은 확실히 그어서 친절한 만큼 냉담해보이는 사람이지만….


왠지, 이 사람은 이 기타를 비웃을 것 같진 않아. 제대로 알아줄 수 있을 것 같아. 처음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한 연주였다.



기타의 여운이 가시고, 홍차의 온기가 잦아들었다. 오너는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 말, 진짜였네요.”


[A fire-breathing dragon lives in my garage]


입가에서만 도는 미소가 아니라, 말 그래도 환하게 번진 웃음이었다.


그녀의 차고엔 용이 있다.

===

난해하고 정확히 언급되지않는게 적잖이 있어서 불친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느정도 의도한 부분은 있습니다. 단지 읽고 그랬구나 보다는 한발짝 생각해보는 기회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