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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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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1, 2019 19:40에 작성됨.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쓴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필로그

모리스 마테를링크 『파랑새』・3


10월도 중순을 지나, 선선한 날씨가 계속 되고 있었다. 오늘은 최저기온 15도 최고 기온 22도의 맑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들이 가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가게 문에 붙여놓은 ‘10월 20일 오전 영업만 합니다’라고 써놓은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가게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손님 한 명만이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서서히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아마 오늘은 저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 될 것이다.


계산대는 시오리코 씨가 지키고 있으니, 남은 시간 동안 책장을 정리하고 가격표를 새로 붙인 책들을 꽂아놓기로 했다. 상자 안을 확인해보니, 아동문학 완역본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아동문학이 그렇게까지 인기있는 편은 아닌데, 지난달부터 아동문학 완역본 붐이 일기 시작하더니 거래량이 꽤 늘었다. 아마도 얼마 전 새로 시작했다는 책 소개 프로그램 덕일 것이다.


신문 광고면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인기 독서 아이돌 사기사와 후미카를 메인 MC로, 각 주의 게스트를 섭외하여 그 사람의 서재에서 추천 도서를 찾아 소개하는’ 컨셉이었다. 컨셉만 놓고 보면 책벌레들이나 좋아할 것처럼 보이지만, 메인 MC인 후미카의 인기도 있고, 보조 MC 혹은 반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같은 유닛 아이돌들의 빛나는 진행능력 덕분에 꽤 인기가 좋다고 한다. 첫 화부터 다짜고짜 아타미에 있는 아스카의 친가로 쳐들어가서는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서고의 간이침대에서 굴러다니던 슈코의 모습은 훌륭한 농담거리가 되어있었다.


그 첫 화에서 서고를 습격당한 아스카가 소개했던 책들이 아동문학 컬렉션, 정확하게는 쿠스야마 마사오 컬렉션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 권이 빠져있었지만, 그 부분은 방송에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아스카~ 이거 컬렉션이라고 하지 않았어? 한 권 부족한데? 그치, 카나데?”

“어머, 그러네. 왠지 허전해보여.”

“내가 수집한 책이 아니니 나한테 이의를 제기해도 얻을 건 없는데 말이지. 서고가 허전한 거야 얼마 전에 책을 대량으로 매각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공간을 다시 메워 나가는 과정이 수집의 묘미라 생각해.”

“그렇네요… 쿠스야마 마사오가 저술, 번역한 책이 꼼꼼히 수집되어 있는 컬렉션이지만, 한 권이 모자라요. 이번 주 시청자 퀴즈입니다. 이 컬렉션에서 사라진, 1906년 완성되어 1908년 초연, 1909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극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정답을 아시는 분은…”

“아~ 그럼 다음 주엔 치하야 씨네 찾아가볼까? 왠지 거기엔 있을 거 같아~”

“오늘처럼 다짜고짜 쳐들어가면 분명 쫓겨날 거예요, 슈코 언니.”

“앗! 아리스가 좋아할 것 같은 책 발견~ 어디 보자 어디 보자~ 『딸기 나라의 앨리스』?”

“그런 책 없어요! 왜 『딸기 나라』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뒤섞이는 건데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가.


그 프로그램 덕분에, 비블리아 고서당도 어느 정도 홍보효과를 보았다. 첫 화의 고서 자문 협조로 가게 이름이 올라갔던 것을 계기로, 프로그램에서 고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방송국에서 자문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덕분에 전에 비해 손님도 조금 늘어난 느낌이다. 오늘 오전 영업만 하게 된 이유도, 오후에는 방송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예 시오리코 씨를 데리고 고서 특집을 한다고 했던가. 나는 도움이 안 될 게 뻔한데 왜 같이 나오라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촬영 장비 나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어찌되든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책을 정리하다 보니 눈에 익은 제목이 보였다.


『파랑새』青い鳥

마테를링크マーテルリンク

호리구치 다이가쿠 번역堀口大学 訳

신초문고新潮文庫


1960년, 프랑스어학자 호리구치 다이가쿠가 번역한 『파랑새』이다. 이 판본을 보니, 두 달 전 있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이 번역본이 사건에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진상을 파악하고 서고에서 나올 때 아스카의 손에 들려있던 것이 호리구치 다이가쿠가 번역한 『파랑새』였다.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 안고 계셨던 판본이 이 책이라고 했다.


물론 이 책은 그 책이 아니다. 단지 같은 번역본일 뿐. 할아버님의 유품이 된 그 책은 지금도 아스카가 소장하고 있다. 그 일로부터 얼마 뒤 서고에 있던 책 중 많은 수를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매입했고, 그 때문에 방송에 나온 아스카의 서고는 꽤 휑한 편이었지만, 한 권이 빠진 쿠스야마 마사오 컬렉션과, 역시 같은 책이 빠진 『파랑새』 컬렉션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서고를 나오던 날, 아스카는 시오리코 씨에게 말했다. 서고에 있는 책을 전부 비블리아 고서당에 매각하겠노라고.



“가격은 적당히 평가해줬으면 해. 어차피 나는 봐도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를 테니. 미성년자의 법률행위에 대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면, 양친에게 그렇게 말해두겠어. 그러니, 전부 매입해줘.”


그 말에 놀란 것은 되려 시오리코 씨였다.


“네? 하지만 아스카 양은 책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고…”

“맞아. 분명 지에코 씨에게 그렇게 말했지.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내 명이 다하기 전까지 이 서고에서 책이 나갈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말이야… 이미 그 전제가 무너졌잖아.”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아스카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책이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스카의 할아버님은 책을 나누기도 하셨음이 막 확인된 참이었다.


“시오리코 씨가 그랬었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런데 난 멋대로 그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했어.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언은 ‘갖고 싶은 책은 갖고, 그렇지 않은 책은 고서점에 넘기라는’ 것이었는데도 말이야.


하지만 이번 『이상한 나라』와 『파랑새』는… 한 권이 이곳에 있고 다른 한 권은 이곳에 없음으로써 이야기가 완성됐어. 책을 손에서 놓음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도 있었던 거야.


할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에게, 저 유산을 온전히 받을 권리 따위는 없어. 매입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책이 아니라면, 전부 매입해줬으면 해.”


아직까지도 고서를 잘 아는 것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저 서고에 있는 책 중에는 값이 많이 나갈만한 것도 꽤 있어보였다. 그걸 전부 매입할 수 있다면 분명 가게에는 큰 도움이 되리라. 귀한 책들을 매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오리코 씨도 좋아하겠지. 아마 몇 권은 비매품 상자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제안을 받았음에도 왠지 썩 내키지 않았다. 뒤늦게 진실을 알았다는 것보다도,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님의 유언을 멋대로 곡해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이 아스카에겐 적잖은 충격이 된 모양이었다. 아무리 보호자의 동의가 있다한들, 그런 아이에게서 할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매입하도 되는 걸까.


거절할 이유가 있는 거래는 아니었다. 가게에 큰 이익이 될 것은 분명하다. 시노카와 지에코였다면, 옳다꾸나 하고 이 제안을 받아들였겠지. 시오리코 씨도 양심의 가책은 느낄지언정, 상대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이상 거래를 받아들이긴 했을 것이다. 이미 시효가 지난 진실을 숨긴 채 책을 매입하고 ‘어머니와 저는 닮은 꼴이에요’라며 자책하던 시오리코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의 시오리코 씨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오리코 씨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미안해요, 아스카 양. 그런 거래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어째서지? 값이 나가는 책이 별로 없는 건가?”


시오리코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저 서고에는 귀한 책들도 많이 있어요. 저런 서고에 있는 책을 통째로 매입해달라고 하면, 그걸 마다할 고서점주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왜…”

“할아버님의 유언이 그게 아니잖아요.”


그 말에 아스카의 발이 멈춰섰다.


“방금 아스카 양은 이렇게 말했죠? 할아버님의 유언은 ‘갖고 싶은 책은 갖고, 그렇지 않은 책은 고서점에 넘기라는’ 것이었다고요. 그러면 아스카 양이 갖고 싶은 책은 계속 갖고 있어야죠.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책, 아스카 양은 저한테 팔고 싶은가요?”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 안고 계셨다는 호리구치 다이가쿠의 『파랑새』였다. 생각하건대, 가격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시오리코 씨가 말했듯, 가격과 가치가 꼭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다. 아스카가 할아버지에 대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한다면, 결코 팔고 싶을 리 없겠지.


“아스카 양에게 필요가 없는 책이라면, 우리 가게에서 매입할게요. 거리가 좀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매입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 저 서고에는 많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그런 죄책감이 든다는 이유로 책을 전부 팔겠다는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분명 아스카 양은 후회하고, 더 큰 죄책감을 떠안게 될 거예요. 그걸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어요.”


자리에 선 채로, 아스카는 말없이 시오리코 씨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렇게 서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고요를 깬 아스카의 말은 이랬다.


“…외모는 분명 비슷한데 말이야.”

“네?”

“시오리코 씨는,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군.”


아스카의 말에 시오리코 씨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버지께서 그러셨거든요. 오래된 책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니, 사람과 책의 인연을 지키는 것이 당신의 신념이시라고. 저도 그 뜻을 이어가려고요.”


시오리코 씨의 말을 듣고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러면 내게 필요 없는 책의 목록을 다 정리하고 나면 연락하지. 책이 많으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그건 괜찮겠지?”

“천천히 살펴보세요.”


슬슬 대문에 가까워질 때 즈음, 아스카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시오리코 씨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대체 지에코 씨는 어떻게 알았던 거지?”

“어떤 걸 말인가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품에 『파랑새』를 안고 계셨다는 사실 말이야. 그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고,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어. 연예잡지에도 나지 않은 사실인데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그거 말인데요…”


시오리코 씨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마 몰랐을 거예요. 아스카 양이 말해줘서 알아낸 거죠.”

“그럴 리가. 지에코 씨는 처음부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품에 안으셨던 파랑새가 여기에 있었다며 날 도발했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네. 그렇게 말했다고 하셨죠. 그러니 그 때 말한 ‘파랑새’는 도서 『파랑새』를 말한 게 아니었던 거예요. 아스카 양이 어머니에게 누구길래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 안고 계셨던 책을 아는 거냐고 물었을 때, ‘오해를 했나보네’라고 말했다고 했죠?”

“그랬지.”

“어머니가 처음에 말했던 파랑새는, 아스카 양을 말한 거예요. 할아버님께서 떠나시는 그 순간까지 마음에 품으셨던, 하늘을 나는 파랑새. 나는 새飛ぶ鳥, 아스카飛鳥를요. 그런데 아스카 양이 어떻게 그 책을 알았냐고 물으니까 할아버님께서 『파랑새』를 품에 안으시고 떠나셨다는 걸 안 거죠. 그 뒤엔 마치 처음부터 알았던 것처럼 연기를 한 거고요.”

“…감쪽같이 속았군.”


아스카가 분한 듯 중얼거렸다.


“그러면 내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건?”

“할아버님께서 서고를 아직 중학생인 아스카 양에게 물려주셨다는 사실로도 예측할 수 있긴 하지만, 쿠스야마 마사오의 책이 한 자리에 몰려있었다는 사실로 더 확실하게 추론했을 거예요. 다른 책들은 전부 지역별로 모아놓으셨는데 유독 쿠스야마 마사오의 책만 한 곳에, 그것도 간이침대 옆 낮은 곳에 꽂아두셨으니까요.”

“간이침대 옆 낮은 곳… 설마…”

“쿠스야마 마사오는 일본 아동문학의 신기원을 연 아동문학가예요. 책을 전부 모으신 걸 보면 할아버님께서 쿠스야마 마사오를 좋아하셨던 것도 분명해보여요. 하지만 그걸 할아버님의 눈높이가 아닌 낮은 자리에 모아두셨단 건, 어린 아스카 양이 쉽게 꺼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였을 거예요.”

“그랬었던 거로군. 할아버지께서… 날 위해…”


이야기가 끝날 무렵, 우리는 대문에 도착했다.


“아. 그리고 의뢰의 보답에 관해서 말인데, 말을 하지 않았던 게 한 가지 있어, 그 때 지에코 씨가…”


나는 두 사람을 대문에 남겨두고, 나는 차를 가지러 주차장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아리스 가족은 아스카의 집을 떠난 뒤였다. 차를 몰고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어째선지 시오리코 씨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냐고 시오리코 씨에게 물었지만 시오리코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스카도 시오리코 씨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이야기 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기타가마쿠라로 돌아왔다.



책 정리를 마치고 영업 종료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책을 보던 손님이 아동 문학 한 권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계산대로 향했다. 방금 전 내가 봤던 호리구치 다이가쿠의 『파랑새』였다.


“계산, 부탁드립니다. 저… 동생에게 선물할 건데, 혹시 포장도 해주시나요?””

“본격적인 선물 포장은 못하지만… 파라핀지 포장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부탁드립니다.”


시오리코 씨는 능숙하게 파라핀지를 잘라 책을 감싸고 리본을 묶었다. 저렇게 해놓으니 그래도 꽤 선물 같아보인다. 하얀 종이를 옆에 내려놓으며 시오리코 씨는 손님에게 물었다.


“받으시는 분 성함도 써드릴까요?”


손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키사라기 유우如月優.”

“네?”


손님의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시오리코 씨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같을 여, 달 월, 넉넉할 우 자를 써서 키사라기 유우, 라고 합니다.”

“아, 네. 키사라기… 유우… 님.”


시오리코 씨가 종이를 리본과 책 사이에 끼워서 손님에게 내밀었다.


“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은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다. 시계를 보니 딱 영업 종료 시간이었다.


뒷정리를 하고 있으려니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고우라 오빠!”


아야카의 목소리였다.


“아야카구나. 왔어?”

“왔어?가 아니잖아요! 아직도 준비 안 한 거예요? 메이크업도 해야 하고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연예인도 아니고 일개 고서점 직원이 무슨 메이크업 씩이나.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괜찮잖아. 뒷정리는 해야지.”

“우와… 진짜 태평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언니도 얼른 준비해야지!”

“난 준비 다한 건데?”

“그 차림으로?!”


나는 시오리코 씨 쪽을 돌아보았다. 가을용 셔츠에 롱스커트 차림이다. 옆에는 가지런히 접힌 트렌치코트가 놓여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어머. 당사자들보다 아야카가 더 불안해하는 거 같네?”


아야카와는 상반되는 언제나 여유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나데로군.


“마치 강가에 어린 아이를 내놓는 부모 같은 모습이네.”


뒤이어 아스카도 가게에 들어왔다.


“그야 그렇지! 그런 초특급 게스트를 모시는데 이렇게 긴장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거라고!”


메인MC 후미카에 사실상의 보조MC로 아스카, 아리스, 카나데, 슈코인데 뭘 저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게스트로 누가 나온다고 해도 준비를 달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흐응~ 우리는 ‘초특급’이 아니란 소리? 슈코 님 상처받는다?”


여우처럼 능글능글한 이 목소리의 주인은 슈코.


“그, 그런 뜻은 아니지만… 치하야 씨라고! 그 파랑새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如月千早 씨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아야카가 저러는 걸 보면 유명한 사람인가보다. 라디오에서 들은 적 있던가?


“게스트가 누구든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아요. 촬영에 최선을 다한다, 그뿐입니다.”

“오! 우리 방송의 FM 담당, 타치바나 조교님 등장!”

“슈코 언니가 촬영을 너무 쉬엄쉬엄 하시는 거라구요! 그리고 아리스라니까요! 청개구리인가요? 청개구리 맞죠? 슈코 언니는 전생에 청개구리였던 게 분명해요!”

“아닌데? 슈코 언니는 사실 아리스 잡아먹는 여우 귀신이었습니다~”


오늘도 두 사람의 대화는 평소와 같군. 아리스도 참 고생이 많다.


“저기…”


그리고 문밖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숄을 두른 후미카였다.


“어서 준비를 마치고 나오라고… 프로듀서님이…”

“아, 네! 금방 끝납니다!”


남은 책을 마저 정리하고, 우리는 다 같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시오리코 씨가 가게 문을 잠그는 걸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후미카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저기… 고우라 씨…”

“네?”

“그… 아스카 양의… 의뢰…말인데요.”


두 달 전 일의 이야기인가.


“보답은… 언제쯤…?”


보답이라니. 아마 의뢰 대금 이야기 같은데, 고서 거래라면 끝이 났고, 대금이라면 시오리코 씨가 받지 않기로 했을 것이다.


“시오리코 씨가 받지 않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네?”


그런데 이번엔 후미카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아스카 양이…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기로 했다고… 그래서… 다 같이… 선곡을…”

“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축가라니?! 시오리코 씨와 날짜를 상의하고는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다.


“시오리코 씨, 축가라뇨? 이게 무슨 이야기…”


하지만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가게 문이 잠긴 걸 확인한 시오리코 씨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저 앞으로 뛰어가 버렸다. 저 반응을 보니 축가 얘기가 나왔던 건 분명해보였다.


하지만, 언제 그런 얘기가 오갔던 거지?


시오리코 씨 성격상 그런 걸 먼저 부탁할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아스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단 얘긴데…


아, 생각났다. 두 달 전, 시오리코 씨가 얼굴이 빨개져서 차에 탔던 그 날.



“아. 그리고 의뢰의 보답에 관해서 말인데…”



그래서 시오리코 씨가 그렇게까지 새빨개졌던 거로군. 그런데 그 말대로라면, 결혼식 축가라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스카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그 때 지에코 씨가…”



시노카와 지에코. 아스카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아스카 앞에 홀연히 나타나 책에 얽힌 비밀에 대해 귀띔을 해주고 사라진, 의뢰의 배후자.


그 날 마지막 순간까지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은, 대체 우리에게 그 의뢰를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시노카와 지에코가 무슨 득을 보는가하는 것이었다. 빗나갔던 첫 번째 추론에서 시오리코 씨는 그게 ‘시련’일 거라고 말했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설마 시노카와 지에코가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시련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주는 결혼 선물이라니. 취향 한 번 독특하지? 동감이야.”


머리 하나 정도 아래 높이에서 들린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 봤다. 아스카였다.


“어느 틈에…”

“고우라 씨의 목소리에 반응해서 온 것뿐이야. 데시벨 한 번 크던데.”


방금 후미카한테 놀라서 되물었던 소리에 눈치를 채고 온 모양이다.


“시오리코 씨도 그것까지 거절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아. 열두 살이나 어린 나한테까지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티를 낼 건 뭔가 싶지만 말이지. 정말이지, 선물을 받을 당사자는 이야기를 하면 도망가기 바쁘고, 또 선물을 준 본인은 식장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미지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것보단 평범한 선물을 받을 거야.”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노카와 지에코가 나타난 그날의 그런 분위기에서 딸의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는 걸 대가로 제안 받았다는 이야긴데, 듣는 아스카도 얼마나 황당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아무튼, 날 잡히면 연락을 줘. 언제가 됐든 그 날은 프로듀서에게 말해서 반드시 시간을 비워둘 테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그 때 가서 하는 걸로 하고, 이거 너무 뒤처졌군.”


앞을 바라보니, 정말로 나와 아스카, 후미카를 뒤에 두고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자, 갈까.”

“자, 잠깐, 아스카 양…!”


아스카가 후미카의 팔을 끌고 앞으로 달려갔다. 나도 발걸음을 빨리해 시오리코 씨의 옆에 섰다. 오늘 방송에 나올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살며시 손을 가까이 대자, 시오리코 씨가 얼굴을 붉히며 깍지를 껴왔다. 그러면서도 시오리코 씨는 올곧은 눈동자로,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유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년』은 1936년에 간행된 다자이 오사무의 첫 작품이에요. 초판은 겨우 오백 부만 찍었고요. 다자이는 이십 대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 책을 위해 십 년에 걸쳐 오만 장의 원고를 썼다고 해요. 이 책에 실린 작품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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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야기 게시판에 후기를 남겨두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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