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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제3장 - 3, 4.

댓글: 2 / 조회: 689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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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30, 2018 13:54에 작성됨.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쓴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참담한 결과를 뒤로 하고, 우리는 서고를 나왔다. 그런 결과가 나왔음에도, 아스카를 비롯한 모두가 주차장으로 우리의 마중을 나와주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미안했어, 시오리코 씨. 의뢰대금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연락을 하도록 하지.”


차에 오르려는 시오리코 씨에게 아스카가 인사를 건네며 대금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시오리코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이번 의뢰의 대금은 받지 않을게요.”


시오리코 씨의 말에 아스카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오늘은 가게도 쉬었고… 직접 집에 들러주기까지 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지금은 손님이 그리 많을 때도 아닌 걸요. 그리고…”


시오리코 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말을 해도 될지 아닐지 망설인 모양이다.


“…제 나름의 사과라고, 생각해주세요.”


그 말에 아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반응하든 분위기가 어색해질 뿐이라 생각한 것일까. 아스카의 대답이 없자, 시오리코 씨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 창문을 열었다.


“아야카는… 더 쉬다 올 거지? 바닷가에선 늘 조심하고.”

“응!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가게나 잘 지켜, 언니!”

“누가 뭐 사준다 그래도 따라가지 말고. 혹시 길을 잃으면 주변 사람에게…”

“에~이, 너무 아야카를 어린에 취급한다, 시오리코 언니도!”


슈코가 아야카의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며 시오리코 씨의 말을 끊었다.


“이래봬도 대학생이거든요! 그래도 불안하면, 후미카랑 내가 잘 돌봐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 그렇지, 카나데?”

“슈코랑 아야카를 붙여놓으면 내가 불안하지만 말야. 둘은 내가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돌아가.”


카나데가 아야카보다 한 살 어리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넨 건 후미카와 아리스였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시오리코 씨. 고우라 씨도요.”

“고마워요, 후미카 양. 아리스 양은, 부모님께서 오신다고 했죠?”

“네. 곧 도착하실 거예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그럼, 먼저 갈게요.”


손을 흔드는 여섯 사람을 돌아본 뒤,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타미 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오리코 씨는 많이 피곤했는지, 좌석을 뒤로 눕히고 눈을 감았다. 하늘을 반사한 별바다는 아름다운데, 우리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 모든 사건의 뒤에 시노카와 지에코가 있었고, 그 손에서 놀아났다. 마음이 가벼울 수 있을리 없다.


“전부 지에코 씨가 계획한 일이었다니… 충격이네요.”


쭉 조용히 있기도 뭐했기 때문에, 나는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돌아온 시오리코 씨의 대답은 내겐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요.”

“예?!”


시오리코 씨는 누워서 눈을 감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스카 양이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오도록 한 게 어머니일 거라고, 어렴풋이 감은 잡고 있었어요. 그 결과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오기 전까진 몰랐지만요.”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아스카 양이 처음 우리 가게에 왔던 날부터요.”


그러면 의뢰를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아스카의 의뢰를 받아들였다는 건가?


“『안데르센 동화전집』 사이에서 아버지의 명함을 꺼냈을 때, 아스카 양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스카 양이 우리 가게에 찾아오면서 명함을 꺼내봤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죠. 그건 아스카 양이 명함을 꺼내보지 않고도 비블리아 고서당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돼요.”

“그냥 아스카 양이 책을 읽다가 명함을 먼저 봤던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필 우리 가게에 올 때 그 책을 꺼냈던 것도 우연이고요.”

“그런 기가막힌 우연도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또 다른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그게 뭡니까?”

“책에 가격표가 없었어요.”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감정했던 때를 돌이켜보니, 정말 그랬다. 서고에서 봤던 다른 책들에는 가격표가 있었는데, 『안데르센 동화전집』만은 가격표가 없었다.


“누가 아스카 양에게 비블리아 고서당에 대해 귀띔하고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건네주면서, 그 사이에서 가격표를 뺀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은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이 우리 가게에서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샀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리고 제가 책에 관한 의뢰를 받는 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에요.”


그게 바로 시노카와 지에코인가.


“물론 아스카 양이나 할아버님이 가격표를 보관하시지 않는 성격일 수 있으니까, 그 때는 그저 가능성의 하나로만 생각하고, 말로 꺼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서고에 있는 다른 책들에 가격표가 있는 걸 보고, 어머니가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했어요.”


즉, 시오리코 씨는 아스카의 뒤에 어머니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도 묵묵히 아스카의 의뢰를 받아준 것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사이가 조금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사람이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라니, 충격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다면, 이대로 기타가마쿠라에 도착할 때까지 시오리코 씨가 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나조차도 이상하게 여기는 걸 시오리코 씨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데도, 이상하게 시오리코 씨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시오리코 씨.”

“네?”대답을 하는 시오리코 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역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어머님… 지에코 씨 말입니다만, 지진이 나자마자 고베로 가신 건 아니시죠?”

“네.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 열흘 정도는 지나서 출발했을 거예요. 일단 상황이 진정되어야 그 안으로 들어가서 거래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은, 왜 그동안 고베를 떠나시지 않으신 걸까요?”

“아마 크게 다치셨던 거겠죠. 그래서 근처 병원에 계시다가, 어머니를 만난 거겠고요. 책을 넘기게 된 것도 병원비나 각종 돈 문제 때문일 거예요.”

“할아버님께서 가지신 『파랑새』의 가격이 그 정도가 된다고 치고, 왜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죠?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현금을 마련하실 방법이 없으셨을 것 같지도 않고요. 서고를 보면 돈이 부족하신 분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아끼시던 책을 넘기느니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가지신 계좌에서 돈을 찾는 편이 나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나 책을 소중히 하시는 분께서 왜 쉽게 책을 넘기셨을까요?”

“…….”


시오리코 씨는 말이 없었다. 대답이 돌아온 것은 몇 분 정도 지난 뒤였다.


“……솔직히,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대체 어떻게 할아버님에게서 책을 빼앗은 건지를요. 쭉 생각해봤지만 그 방법만은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역시, 지에코 씨의 능력이었을까요?”

“……그렇겠죠. 다이스케 군도 우리 어머니 알잖아요. 그 사람이 손에 넣겠다고 생각한 이상, 손에 넣지 못할 책은 없어요.”


내가 봤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아는 고서 애호가가 시노카와 지에코 뿐이었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사람의 약점을 잡아 소장품을 갈취하는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그렇게 쉽게 풀립니까?”


그렇지만 거래, 혹은 협박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상대방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거래를 제안하거나 협박을 하는 쪽이 공격 측이라고 하자. 그러면 상대방은 자신의 소장품을 지키려는 방어 측이 된다. 공격 측이 칼을 겨눈다고 해서 방어 측도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파랑새』를 안고 계셨다고 했잖아요. 쿠스야마 마사오의 책도 따로 모아두셨고요. 그런데 그런 분께서 지에코 씨가 돈을 줄 테니 책을 내놓으라고 했다고 그렇게 쉽게 책을 주셨을까요?”

“…어머니 이야기는 하기 싫어요.”

“지에코 씨가 그렇게까지 전능한 사람이었나요?”

“어머니 이야긴 하기 싫다고 했잖아요!!”


시오리코 씨의 외침이 조용한 차 안에 울려퍼졌다. 어머니에 대해 처음 이야기 했을 때와 같은 반응이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보다 시오리코 씨 스스로가 더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예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고작 책 한 권 때문에 그 고생을 하겠다고?’라고 말했던 저였다면, 지에코 씨라면 정말 손에 넣을 수 없는 책이 없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외도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을 지키려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소중한 책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 두 사람이 맞붙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결과가 항상 같지는 않겠지만, 같은 상황을 나는 한 번 본 적이 있다.


2년 전, 시오리코 씨에게서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빼앗으려 한 남자가 있었다. 우리와 질긴 연을 이어갔던, 다나카 도시오田中敏雄. 사람을 해치더라도 그 책을 가지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그에겐 있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책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시오리코 씨에겐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의지가 교차한 순간을, 나는 오후나 병원의 옥상에서 똑똑히 보았다. 그 결과는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다.


지금도 시오리코 씨는, 그 『만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시오리코 씨처럼요.”


그 말에 시오리코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중한 책을 곁에 두려는 마음을, 시오리코 씨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시오리코 씨도 이제 알았겠지. 어디까지나 내가 세운 가설이 맞다면의 이야기이지만.


“다이스케 군 말이 맞아요. 어머니니까 어떻게든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소중한 책이었다면, 할아버님께서 돈 몇 푼에 넘기셨을 리가…”


아스카의 할아버지가, 시노카와 지에코에게 돈을 받고 책을 넘겼을 가능성은 낮다.


아스카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처음 왔던 그 날부터 시오리코 씨는 배후에 있을 어머니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 뒤에 니노미야 서방의 명함 뒤에서 발견됐던 이름, ‘시노카와’. 나도 그 이름을 본 순간 시노카와 지에코를 떠올렸으니, 시오리코 씨도 이 일에 어머니가 연결됐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재에서 책을 내놓지 않으셨다는 할아버님의 서재에서 사라진 책이 있단 걸 알았을 때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겠지.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시노카와 지에코 뿐이다.’



처음부터 시오리코 씨는 마음속에서 사건의 범인을 시노카와 지에코로 단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정황을 퍼즐처럼 끼워 맞췄다. 시오리코 씨의 추리이니, 많은 정황은 거기에 알맞게 맞춰졌다.


하지만 자연히 몇 가지 허점이 남았다. 시노카와 지에코가 범인이라면 결코 맞아떨어질 수 없는 퍼즐 조각들이 남아있었다. 그게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조각 중 하나는 나조차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를 할아버님의 『파랑새』를 빼앗은 범인으로 생각한 시오리코 씨는, 그 조각들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오답이 유도되는 것까지도, 시노카와 지에코가 그렸던 그림인걸까.


“그러면 대체 그 책이 어디로 간 거지?”


추측의 대전제가 깨졌다. 그러니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정도지만, 시오리코 씨가 빠졌던 함정에서 올라오는 걸 도와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2년 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성장했구나, 고우라 다이스케.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보죠. 정 떠오르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아타미로 돌아와도 되고요. 도쿄에서도 두 번이나 내려오시는데 기타가마쿠라에서 두 번 내려오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죠.”

“네? 도쿄에서요?”


시오리코 씨가 물었다. 아, 그러고보니 아까 아야카, 슈코, 카나데와 넷이서 했던 이야기는 시오리코 씨는 못 들었었군. 나는 그 때의 이야기를 시오리코 씨에게 전했다. 별 의미는 없겠지만, 잠시 머리를 식힐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랬었군요. 아스카 양이 아리스 양을… 그런데 ‘또’ 은혜를 입었다고 하셨다고요?”

“그렇다나봐요. 카나데도 자세히는 모르겠다는데…”

“으음…”


그 말을 끝으로 시오리코 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사이 차는 135번 국도를 지나 세이쇼 바이패스로 들어서기 위해 이시바시 요금소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 때 갑자기 시오리코 씨가 내 이름을 외쳤다.


“다이스케 군!”

“예?!”

“빨리 돌아가요. 어서요.”

“어디로 말입니까?”

“아스카 양의 집으로요! 서둘러야 해요! 아리스 양의 부모님이 출발하시기 전에!”

“갑자기 왜…”

“가면서 말할게요! 일단 돌아가요!”



요금소 측의 양해를 얻어 어찌어찌 차를 아타미 쪽으로 돌렸다. 다시 아스카의 집으로 향하며, 시오리코 씨는 눕혀져있던 좌석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고 말했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이번 일에 얽힌 책이 두 권인데, 그 책에서 이름을 따온 사람이 두 명이라니.”

“두 명이요?”

“한 명은 당연히 아리스 양이에요. 세례명도 아닌데 일본인의 이름을 ‘아리스’로 지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와서 지었을 가능성이 높겠죠. 추리 소설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有栖川有栖 같은 경우는 거기서 오는 오해를 스스로 즐기고 있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나도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여류 작가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리스’라는 예명을 쓰는 작가가 남성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본인도 그걸 즐기는지, 지금까지도 책의 후기나 자신의 명함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 그림을 인쇄해서 다닌다고 들었다.


“다른 한 명은 아스카 양이에요. 할아버님께서 『파랑새』를 좋아하셨는데 손녀의 이름이 ‘나는 새飛鳥’라면, 그 이름은 『파랑새』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파랑새를 의미한다고 봐야죠.”


세상에 손녀의 이름을 그렇게 짓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이유는 없었다. 바로 내 이름이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셨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의 주인공 ‘나가이 다이스케長井代助’에게서 따와서 지은 이름이니까.


“시오리코 씨 말씀은, 그러면 이게 우연이 아니란 겁니까?”

“다이스케 군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봤어요. 이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야기가 기이하게 맞아떨어져요.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어머니 생각에 갇히는 바람에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왜 그걸 잊어버렸지?”

“뭘 말입니까?”

“우리가 찾는 『파랑새』요.”

“그걸 찾으셨다고요? 전 『파랑새』에 대해선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아리스 양이 우리 가게에 처음 왔던 날, 생각나세요? 그 때 아리스 양이 저한테 질문을 했었죠?”

“그랬었죠.”


시오리코 씨에게 고서의 가치에 대해서 물었었지. 결국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 때 아리스 양이 집에 있는 고서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거 기억하세요?”

“아리스 양이 말입니까? 그 때 분명…”



‘저희 집에도 어머니가 갖고 계신 오래된 책이 하나 있긴 하지만…’

‘아니거든요! 노벨상을 탄 작품이에요! 90년 된 『파랑새』를 아끼면서 늘 들고 다니시는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집에 있는 책 중에 오래된 건 그것뿐이니까… 상처도 나고 얼룩도 진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 해주시고…’



“…설마 그게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께서 갖고 계시던 『파랑새』란 말입니까?”

“아리스 양은 어릴 때 니노미야 초에서 살았다고 했어요. 부모님도 지진을 겪으셨다고 했으니까 니노미야 초, 아니면 최소한 그 근처에서 사셨겠죠.”


그러고보니 시오리코 씨가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야기를 했을 때, 아리스는 이렇게 말했었다.



‘저희 부모님도… 그때 이야기는 제게 안 하시려고 하세요.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해주시겠다고만 하시고…’



“아리스 양은 분명히 ‘90년 된 『파랑새』’라고 했어요. 그래서 대략적으로 1920년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대략적인 연도가 아니라면, 올해가 2012년이니 그 책은 1922년에 출판됐다는 이야기가 돼요.”

“1922년이란 게 중요합니까?”

“1922년 책이라는 건 일단은 추측일 뿐이에요. 아니, 희망사항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죠. 하지만 정말 그 책이 1922년 책이라고 한다면, 그 책은 분명히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께서 가지셨던 『파랑새』일 거예요.”

“어떻게 확신합니까? 그리고 쿠스야마 마사오가 『파랑새』를 처음 번역한 건 1920년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요.”

“만약 1920년 책이었다면, 아리스 양은 『파랑새』가 아니라 『근대극선집』이라고 했을 거예요. 『근대극선집』 제1권에는 『파랑새』 외에도 『침종』, 『염원의 나라』, 『월출』을 포함한 다양한 극이 담겨있거든요. 쿠스야마 마사오가 번역한 『파랑새』가 단독 단행본으로 출간된 건, 1922년이 최초예요. 말했지만, 고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아니죠.”


하지만 아리스의 집에 있는 고서는 그 하나뿐이라고 했다.


“고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유독 이 책만 소중하게 들고 다니는데, 하필이면 17년 전 대지진 때 같은 동네에서 이 책의 소유권을 잃었을 걸로 추측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손녀와 딸이 그 일에 얽힌 두 권의 책에서 따온 이름을 가졌어요.”


그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으로 한 번에 겹칠 가능성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높지는 않다.


“여기서부턴 앞의 일이 우연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 다이스케 군이 해줬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보는 억측이에요. 아리스 양의 부모님은 아스카 양이 아리스 양을 구해줬을 때 ‘또’ 은혜를 입었다고 하셨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리스 양과는 따로 조문까지 오셨다고 했죠.”


즉 시오리코 씨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니노미야 가문과 타치바나 가문의 만남이, 아스카와 아리스 때 처음 이뤄진 게 아니라고.


“만약 아리스 양의 부모님이 조문을 오셨던 것이 아스카 양과의 인연 때문만이 아니었다면? 두 분께서 은혜를 입었다는 사람이 아스카 양의 할아버님이라면?”


나에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인지 모를 질문을, 시오리코 씨는 허공을 향해 던졌다.



“이건 과연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4


아스카네 집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못 보던 차 한 대가 도쿄 시나가와(品川)의 번호판을 달고 서있었다. 다행히 제때 맞춘 모양이었다. 시동을 끄자 시오리코 씨가 안전벨트를 풀며 나를 불렀다.


“다이스케 군.”

“네, 시오리코 씨.”

“제가 오는 길에 했던 말, 아리스 양이 있는 자리에서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뭔가 사연이 있는 겁니까?”

“제 추측이 맞다면, 그럴 거예요. 그분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맞는데도 아스카 양과 아리스 양 모두 이 책들에 얽힌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면, 아스카양의 할아버님도, 아리스 양의 부모님도 계속 비밀로 하셨다는 거니까요. 아스카 양은 제게 의뢰를 했으니 제가 알아낸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지만, 아리스 양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아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조심하죠.”


차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걸어가자, 여덟 명의 사람이 집 앞에 서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중 여섯 명은 CAERULA의 아이돌들과 아야카였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정황상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리스의 부모님이었다.


“어! 언니!”


이 집에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야카가 우리를 가장 먼저 알아봤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일찍 돌아온 거 아니야?”

“앗, 카나데 방금 엄청 아스카 같았어!”

“어머, 그래?”


카나데와 슈코가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후미카가 먼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다시 인사를 했다.


“돌아오실 것 같았는데… 역시…였네요. 아리스가 일찍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둬야 하나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에요.”

“후미카 양도 뭔가 알아냈나요?”

“자세히는 잘… 아리스가 했던 말이 뒤늦게 생각이 나서요. 혹시나… 아리스의 어머님께서 가지신 책이, 저희가 찾던 그 책이 아닐까…해서.”


시오리코 씨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발 짝 더 다가서서, 시오리코 씨는 아스카의 부모님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따라서 인사를 드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시노카와 시오리코라고 합니다.”

“고우라 다이스케입니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긴 검은 장발에 정장을 입고서 가방을 손에 든 아리스의 어머니가 우리의 인사를 받았다.


“아, 이분들이시구나? 반가워요. 아리스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아스카 양을 도와주고 있다면서요? 점장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젊으시네. 그런데 먼저 출발하셨다더니, 놓고 가신 거라도 있나 봐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 어머님과 말씀을 나눌수 있을까 해서 돌아왔습니다.”

“나랑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두의 눈이 아리스의 어머니에게 꽂혔다.


“아리스 양에게 듣기로, 어머님께서 출판한지 90년이 된 『파랑새』를 소장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리스 양의 말대로 90년이 됐다면, 1922년 쿠스야마 마사오의 번역본이겠죠. 저는 가게를 물려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아 경험이 일천해서, 그 책을 본 적도 없고 모르는 점이 많습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분명 기억에 있는 말이다.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30년 전에 지에코가 했던 말이다.



‘『최후의 세계대전』에 대해 모르는 점이 있는데,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 절도범의 집을 찾아내고, 그 아들을 통해 그의 범행사실을 확신한 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시노카와 지에코가 던졌던 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순순히 실토하라는 협박.


어머니가 썼던 화법을, 시오리코 씨가 똑같이 쓰고 있다.


아마 시오리코 씨의 뜻은, 어머니가 했던 말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러니 아리스를 따로 떼어놓아 달라, 정도의 표현이겠지.


갑작스러운 시오리코 씨의 말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시오리코 씨만큼이나 박식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후미카와, 눈치가 빠른 카나데는 이미 그 뜻을 알아챈 것처럼 보였다. 아스카와 슈코, 아야카도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단 한 사람, 아리스만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 『파랑새』에 대해 설명을 줄줄이 늘어놓았던 시오리코 씨가 갑자기 ‘모르는 점이 많다’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겠지.


그렇지만 아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특히 아리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말을 이해한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그러네. 쉽게 보긴 힘든 책이니, 경력이 짧으신 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리스의 어머니가 시계를 흘끗 보며 대답했다.


“시간도 늦었으니까, 길게는 이야기 못해요. 아리스도 자야 할 시간이고.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오리코 씨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를 하기엔 역시 서재가 좋겠군. 그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마담(Madame) 타치바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아스카가 존댓말을 쓴 건가? 시노카와 지에코한테도 말을 놓았다던 아스카가?


“그게 좋겠네. 여보, 당신은 먼저 아리스랑 차에 가 있어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니까. 그래도 괜찮지, 아리스?”

“하…하지만…”

“아리스…”


후미카가 나지막이 아리스를 불렀다.


“생장호르몬의 분비는… 수면 패턴과 시간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아리스는 아직 자랄 때니까… 건강하게 자라려면 평소와 같은 시간에 잠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후미카의 말이라서 아리스에게는 꽤 효과가 있어보였다.


“후미카 언니까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먼저 가 있을게요. 가요, 아버지.”


아리스는 아버지와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미카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서고로 발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이 잘못은… 다음에 특대 딸기 파르페로 속죄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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