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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단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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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7, 2018 13:03에 작성됨.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쓴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장 2


도로시 L. 세이어스 『맹독』


서고로 들어서던 니노미야 아스카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어찌나 놀랐던지 하마터면 손에 든 바구니를 떨어트릴 뻔 했다.


분명 떠났어야 할 여인이, 왜 서고의 탁자 앞에 앉아있는 것인가.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든 뒤, 아스카는 다시 탁자 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땅에 닿을 것 같은 긴 검은 머리와 가냘픈 콧날까지는 분명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콧날 위에 얹힌 굵은 테 안경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또한 전체적으로 그녀보다 둥글둥글한 인상 역시 서고에 앉아있는 여인이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놀랐군. 이래서야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산 중달이 죽은 공명에게 쫓기는 꼴이잖아. 정말 떠나서까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여자라니까. 그것도 두 번씩이나.’


아스카가 오늘 그녀 때문에 놀란 것은 두 번이었다. 방금 시노카와 시오리코를 멀리서 보고 놀란 것이 두 번째였고, 낮에 카나데가 찾은 명함을 뒤집었을 때가 첫 번째였다.



기타가마쿠라 역

비블리아 고서당

시노카와



시오리코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그 이름에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놀란 것은 아스카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녀의 이름이 거기서 나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스카가 아는 ‘시노카와’는 넷이었다. 우선 지금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시노카와 아야카와 서고에 앉아있는 시노카와 시오리코. 이 두 사람이 저 명함 뒤에 글을 썼을 가능성은 당연히 배제했다. 그리고 시오리코의 아버지이자 『안데르센 동화전집』에 끼어있던 명함의 주인, 시노카와 노보루. 하지만 할아버지가 그 남자의 이름을 적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기 힘들었고, 할아버지가 시노카와 노보루라는 사람과 얼마나 알고 지냈는지도 미지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


시노카와 지에코.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50대의 여인이 찾아온 것은, 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난데없이 서고에 나타나, 『파랑새』를 읽고 있던 아스카를 향해 시노카와 지에코가 처음 던진 한마디는 가까스로 평온을 찾았던 아스카의 세계를 깨부숴버렸다.



“니노미야 씨가 돌아가실 때까지 품에 안으셨던 파랑새가 여기에 있었네.”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당신 누구야?”라는 말이 아스카의 입에서 튀어나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 품에 『파랑새』를 안고 계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발견한 아스카의 양친, 그 소식을 전해듣고 아스카에게 전한 프로듀서, 아스카와 함께 부고를 전해들은 CAERULA의 동료들. 아는 사람도 적은데다 타인이 보기에 그다지 특이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아스카가 조부의 상을 치렀다는 기사를 내보낸 연예신문들도 그 사실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다. 세상 어느 누가 아이돌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품에 안고 있던 책의 제목을 알고 싶어 할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아스카의 본능이 이 사람을 경계하라고 외쳤다. 할아버지와 자신의 추억 사이에 전혀 상관없는 제3자가 끼어든 느낌에 불쾌감이 몸을 감싸기도 했다.


“이 서고, 전에 봤을 때는 내진 책장은 설치하지 않으셨었는데 어느새 설치하셨네. 소장된 책도 예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이 늘었고. 하긴, 17년은 지났으니 책이 이만큼이나 늘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손에 들어온 책은 웬만해서는 내놓지 않으신 분이니.”

“누구냐고 물었을 텐데?”

“사람의 이름을 묻기 전에는 자기소개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주인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 손님에겐 아니지.”

“글쎄, 여기는 이미 주인을 잃은 서고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니노미야 씨가 돌아가셨으니…”


까득, 하고 아스카가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당신 눈앞에 있는 니노미야, 니노미야 아스카가 이제 이 서고의 주인이야. 다시 묻겠어. 당신은 누구지? 누구길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안고 계셨던 책을 아는 거지?”

“이런, 오해를 했나보네.”


아스카의 계속된 추궁에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자세로 서고를 훑어보던 지에코가 그 말에 아스카를 돌아보며 답했다.


“시노카와 지에코라고 해.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 니노미야 아스카 양? 난 너희 할아버지께 신세를 졌던 사람이야.”


‘신세를 졌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은혜를 입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눈앞의 여인이 풍기는 느낌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원한이 있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돌려서 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할아버지께서 어디서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하시는 분은 아닐 텐데.”

“이거 첫인상이 꽤 안 좋은 거 같은데? 걱정 하지 마. 너희 할아버지께선 어디 가서 책잡힐만한 일을 하신 적은 없으시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야. 신세를 졌다는 것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고.”


지에코는 아스카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서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음… 좋은 책을 많이 모으셨네. 일관성이 없는 건 아쉽지만, 감정을 한다면 가격이 꽤 나오겠어.”


그 말을 듣고 아스카는 이 여자의 직업과 의도를 추론해보았다. 근처의 고서점 주인이겠군. 책을 수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생전에 모았던 책은 이후 처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많은 경우는 최소한의 합당한 가격이 매겨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책의 가치를 잘 모르는 가족들을 속여 등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 여자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아스카에게 책을 팔 마음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는 몰라도, 처분할 생각 없으니까 그런 용건으로 온 거라면 사라져. 내 명이 다하기 전까지 이 서고에서 책이 나갈 일은 없을 거야.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그러면 그런 용건으로 온 게 아니니 사라질 필요는 없지? 지금은 나 혼자라서 이런 대량 매입은 하기 힘들거든. 우리 딸이랑 예비 사위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스카의 추론을 단칼에 부정하고 서고를 빙 돌아보던 지에코의 발이 문득 멈춰섰다.


“이 자리엔 전에 없었던 책들도 많네? 어머, 쿠스야마 마사오의 『안데르센 동화전집』이잖아. 오랜만이네.”


지에코는 멈춰선 자리 근처의 책들을 쭉 둘러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이 서고의 새 주인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구나. 할아버지를 닮아서 책을 꽤 좋아했던 모양이야.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책도 아주 깨끗하게 읽었고… 할아버지가 예뻐하실 만하네. 그렇게나 취미를 공유할 가족을 원하시더니 소원을 이루고 가셨어.”


아스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자꾸만 할아버지와의 추억에 이 사람이 간섭하려 하는 것에 불쾌감을 넘어 분노까지 치밀어올랐다.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궁금하진 않니? 15년 평생에 처음 본 사람이 어떻게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안고 있던 책을 알고 있는지, 네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이번에도 아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것 같으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네. 그럼… 이건 어떨까?”


지에코가 책장에 손을 가까이하자 아스카는 움찔했다. 혹시나 책에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에코는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책 한 권을 꺼내 아스카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에코가 탁자 위에 내려놓은 책은 『이상한 나라』였다.


“이 책,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이상한 나라』의 표지와 페이지에 얼룩이 가득하다는 것 정도는 아스카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헌책에 그정도가 무슨 대수인가. 저것보다도 상태가 안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원래 샀을 때부터 그랬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지에코는 책을 펼쳐 그 사이에서 가격표를 꺼냈다.


“단권, 낙서 있음, 표지 얼룩 있음, 3,000 엔. 과연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책을 ‘낙서 있음, 표지 얼룩 있음’이라고만 써놓고 3천 엔에 팔았을까?”


휘말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에 아스카의 귀가 쏠렸다. 지금까지 책을 보면서 가격표에 신경을 쓰진 않았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슨 말이지?”

“가지고 있는 책을 보면 책 주인에 대해 대충 알 수 있지. 이 책에 이런 피얼룩이 생긴 건 할아버님께서 책을 사신 뒤의 이야기란 건데, 어때? 흥미가 좀 생기니?”


그 말에 아스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책에 묻은 피의 양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할아버지가 산 뒤에 묻은 것이라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스카는 자신의 기억속 할아버지의 모습과 그 핏자국을 겹쳐보았지만,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다.


“…자세히 얘기해봐.”


하지만 지에코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난 이런 게 일이라서 말이야. 이 이상은 정식으로 의뢰를 받았을 때만 이야기해주거든.”


말하자면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술수에 휘말리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스카는 그 말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뭘 원하지?”

“고서점 주인이 원하는 게 따로 있겠니? 그야 책이지. 그런데 너랑은 거래를 할 수 없겠네. 네 명이 다하기 전까지 이 서고에서 책이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애를 태우려는 심산인지, 지에코는 『이상한 나라』를 덮어버리고는 원래 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아스카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차라리 스스로 생각을 하면 했지, 이야기를 듣는 대가로 할아버지의 책을 요구하려는 것이라면 교섭은 결렬이었다.


지에코는 『이상한 나라』를 꽂은 옆자리에서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펼쳐 그 안에서 종잇조각을 꺼내며 아스카에게 돌아왔다.


“아니면, 나만큼 책에 대해 자세히 알지만 꼭 이 책을 요구하지는 않을만한 사람이 있는데. 소개시켜줄까?”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아스카의 마음 속에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에코가 『안데르센 동화전집』에서 꺼낸 것은 명함 한 장이었다. 명함을 건네받은 아스카는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비블리아 고서당… 점장… 시노카와 노보루…?”

“내 남편이야.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은 딸이 가게를 이어받았어.”


아스카는 주소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기타가마쿠라라고 쓰여있었다. 전철로 가면 아타미에서 1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다. 아주 먼 곳은 아니지만 아주 가깝지도 않다.


“그 책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면 가서 물어봐. 뭐, 그 아이라면 이 정도의 일엔 대가를 안 받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네.”

“…….”


아스카는 잠시 갈등했다. 대체 무슨 속셈인걸까. 분명 책을 노리고 온 것처럼 보이는데, 노골적으로 책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으면서도 또 거기에 집착하지는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거기에 또 다른 의문도 있었다. 자신이 고서점의 주인인데, 명함에 점주라고 쓰여있던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딸이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니 아직 의심이 남은 것 같은데, 남편의 가게를 물려받은 건 딸이야. 난 10년 정도 연을 끊었었거든. 그 이상은 가정사라서 말하기 힘들지만, 나랑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니까 내가 딸을 통해서 어떻게 해볼 생각 아닌가 하는 의심은 넣어둬.”


그 말에 또 불쾌감이 들었다. 마치 속을 훤히 들여다보인 기분이었다. 그다지 오래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레이디 피터 윔지가 따로 없군.”

“비꼬는 거구나? 완전히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알면 됐어.”


레이디 피터 윔지(Lady Peter Wimsey), 결혼 전 이름인 ‘해리엇 베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도로시 L. 세이어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의 미스테리 작가로, 다섯 번째 작품 『맹독』에서 피고인으로 첫 등장한 이후 여러 작품에서 단독으로 탐정역을 맡으며 빼어난 추리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피터 윔지 경을 만나기 전까지, 그 연애사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당장 『맹독』에서 그녀가 피고인으로 서게 된 것도 전 남자친구를 독살했다는 죄목 때문이었으니. 아스카는 그 점을 노려 이야기한 것이었다. 지에코의 손에 있던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탁자 위에 내려졌다.


“그럼, 그다지 환영받지도 못하는 것 같으니 나는 이만 가볼게. 우리 딸들이랑 예비 사위에게 안부나 전해주렴.”

“잠깐.”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가려는 지에코를 아스카가 붙잡았다.


“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니? 날 반기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내 쪽에서 묻고 싶은 게 두 가지 남았어. 하나. 왜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 걸 알려주는 거지?”


순순히 이야기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따로 그 답을 유도할만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싸움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질 것이 너무 뻔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공법을 택하기로, 아스카는 결정했다. 지에코는 그런 아스카를 재미있는 듯 바라보며 대답을 해주었다.


“말했잖아? 할아버님께는 신세를 졌다고. 그런데 신문의 연예란에서 아는 이름이 보여서 찾아온 것뿐이야.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이것도 딸에게 물어보든지.”

“둘. 소개료는 받지 않는 건가?”


두 번째 질문에 지에코는 피식 웃었다.


“뭐야? 받았으면 좋겠어?”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은 나쁘지 않거든. 당신이 말하는 걸 보면 결코 이런 걸 대가 없이 그냥 넘어갈 사람은 아니야. 나에게 당신 딸을 소개함으로써 당신이 얻는 이득이 없는 한은 말이지. 내가 책을 팔 생각이 없는 것을 알면서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상하지. 책에는 욕심을 내면서 거래는 하지 않아. 처음부터 날 당신 딸에게 보내려는 생각이었던 게 아닌가? 그리고 그걸 내가 눈치챌 정도로 뻔히 드러나도록 행동한 것에도 필시 이유가 있겠지. 차라리 당신이 소개료를 받았다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의심이 가는 거지. 내 말에 오류가 있나?”

“흐음… 아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는 아니네, 아야카도 그렇고, 요즘 애들은 성숙이 빠르다니까.”


지에코는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액자 두 개로 눈을 돌렸다. 하나는 아스카와 할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넣어져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아스카가 아이돌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 넣어져있었다. 얼마 뒤 CAERULA라는 이름으로 유닛 데뷔를 하게 되는 다섯 명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이 소개로 내가 얻는 이익은 없어. 그렇다고 시오리코…내 딸이 네게 합당한 대가를 받으리란 보장도 없지. 그러면 이렇게 할까? 만약 네가 내 딸을 통해 『이상한 나라』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면, 그리고 내 딸이 네게 그 대가를 받지 않는다면…”


지에코가 내놓은 제안을 들은 아스카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게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되지?”

“꼭 물질적인 이득만 이득이 아니잖아? 너도 잃을 건 없고, 이만하면 윈윈인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께름칙했지만, 아스카의 생각도 같았다. 지에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했고, 아스카로서도 특별히 손해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더 캐물어봤자 아스카 스스로가 더 손해를 보게 될 것 같을 정도의 제안이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그럼 난 용건이 끝났으니 갈게. 금방 만날 일이 있길 바랄게, 니노미야 아스카 양.”


지에코가 서고를 떠난 뒤, 문을 바라보던 아스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로선 그다지 바라지 않지만 말이야.”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전집』은 다시 명함과 함께 책장에 꽂혔다. 그다지 유쾌한 기억도 아니었고 곧 유닛 데뷔를 위한 연습이 재개되었기에 아스카는 한동안 그 일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신 마당에 새삼 과거의 일을 파헤치는 것도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운명이 아스카를 그 자리로 끌어당기기라도 한 듯, 아스카는 강제로 다시 그때의 기억과 마주하게 됐다. 새 프로그램 촬영지가 기타가마쿠라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스카의 머릿속에는 명함에서 보았던 고서점의 이름이 떠올랐다.


‘비블리아 고서당…이라고 했었지.’


그 때부터 아스카는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꺼내 처음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 서점과 관련된 다른 힌트를 얻을만한 것이 없을까 해서였다. 『이상한 나라』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훑어보고도 별달리 짚이는 부분이 없었기에 일단은 미뤄두기로 했다. 중간에 보였던 명함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넘겼던 것이 실수였다는 걸 깨달은 건 나중의 일이었다.


바로 『이상한 나라』를 맡기기에는 마음속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에, 아스카는 『안데르센 동화전집』으로 상대를 먼저 시험해보기로 했다. 혹여 지에코가 보여준 것과 같은 능력이 있더라도, 심성이 지에코와 같아서는 할아버지의 책을 맡기기 곤란하기도 했다. 후미카가 그 고서점에서 발이 묶인 것은 예상 외였지만, 오히려 덕분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기가 쉬워졌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시노카와 지에코의 첫째 딸,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자신에게 『이상한 나라』에 얽힌 수수꼐끼를 풀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둘째 딸 시노카와 아야카는 언니와 같은 능력은 없어보였지만 다른 방면으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불쾌감을 주며 접근했던 여자의 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지에코의 말대로 10년간이나 절연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사람들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라고 아스카는 확신했다. 그래서 아스카는 시노카와 시오리코에게 『이상한 나라』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을 맡겨보기로 했다.


지에코가 보인 태도처럼 여유롭게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실마리가 하나 둘 나타났다. 시오리코에 후미카까지 협력해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 언젠가 이 수수께끼는 반드시 풀릴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슈코, 카나데, 아야카를 집에 남겨두고 서재로 걸음을 옮길 정도로. 그것이 시오리코와 지에코의 차이였다.


수수께끼를 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책을 전부 펼쳐보고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수수께끼 풀이를, 지에코는 어떻게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해냈던 것일까. 애당초, 정말 풀기는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 대답을 구하는 것은 처음에 『이상한 나라』를 뒤로 미뤘듯, 다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또 새로운 실마리가 잡힌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아스카는 탁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야카에게 물어봐서 확인해둔, 눈 앞의 해리엇 베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맥주를 가볍게 들어보이면서.



“책도 좋지만, 잠시 목이라도 축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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