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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제2장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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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5, 2018 14:51에 작성됨.

2


아타미에 들어서자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온천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온천 명소라는 느낌이었다.


“대단하네요…”


시오리코 씨가 운전석 쪽 창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동감이다. 이 많은 객실을 다 채운다면 성수기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거지?


“8세기 이래 온천 휴양지로서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곳이니까요… 버블 붕괴 이후 쇠락했다고 하지만 최근에는 도심에 가까운 온천 휴양지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고… 예전엔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은 도시였다고 하죠.”


후미카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는 오늘 출근하기 전 어머니에게 들었다. 아타미에 간다고 하니 결혼도 하기 전에 신혼여행부터 가냐고 놀리시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시…신혼!”


또 시오리코 씨의 얼굴이 빨개졌다. 사귄지도 1년이 넘어서 부끄러움이 좀 덜해졌나 싶었는데, 새로 사귄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새삼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정작 후미카는 별 뜻 없이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꺼낸 것 같은데 말이다.


아스카의 집은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산을 따라 올라간 자리에 있었다. 바다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2층 가옥이었다. 먼저 도착해있다가 우리 차를 알아본 아야카가 가장 먼저 뛰어나왔다.


“언니! 고우라 오빠! 여기여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대문으로 들어가자, 정원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네 사람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바쁜가 했더니, 가방과 아이스박스에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꺼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먹을 것과 음료수를 비롯해, 텐트를 제외한 각종 캠핑용구가 늘어져있었다. 게다가 불꽃놀이까지 있는 걸 보니 상당히 본격적으로 준비한 모양이다.


“아스카, 고기는 어디에 두면 될까?”

“저녁에 먹을 거라면 1층 냉장실에 두면 되지 않을까. 아이스박스에 넣어두면 분명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겠지.”


술만 없다뿐이지 완전히 여행 온 대학생들 분위기다. 저 중에 대학생은 둘 뿐이고,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는 하지만.


“아, 드디어 주인공이 왔군.”


아야카가 우리를 데려온 걸 가장 처음 눈치챈 건 아스카였다. ‘주인공’이라니. 가장 먼저 돌아가 봐야 하는데 주인공이라니, 얼마나 이 원정의 의미가 변질됐는지 알만했다. 분명 주 용건은 책 감정 의뢰였을 텐데 말이다.


“후미카 언니이!!!”


그 다음에는 아리스가 달려왔다. 어째선지 반쯤 울먹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머, 보호자들이 오셨네.”


분위기만 봐서는 카나데가 가장 보호자 같은데 말이지. 심지어 카나데는 저 중에 맏언니도 아니다.


“아! 후미카, 시오리코 언니, 고우라 오빠! 안녕~”


아야카와 함께 이 도쿄 출발조의 맏언니인 슈코가 현관 안쪽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팔에 물방울이 묻은 걸 보니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고 온 모양이다.


“꽤 분주해보이네요…”


시오리코 씨가 아스카의 집에 들어와서 뱉은 첫 감상이었다. 시오리코 씨는 이런 분위기의 여행이랑은 그다지 연이 없는 편이긴 하다.


“휴식기도 막바지니까요… 다들 그만큼 더 철저하게 즐겨두고 싶은 거겠죠.”


후미카가 자기 품에 안긴 아리스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아리스는 우리가 없는 사이에 꽤 마음고생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차마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먼저 준비를 마쳐놨어야 하는데, 이렇게 부산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면목이 없군. 먼저 서고부터 보겠어?”


아스카가 손을 털며 다가와 물었다. 시오리코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먼저… 할아버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께…?”


아스카는 잠시 집 쪽을 돌아보고는 대답했다.


“어려울 것도 없지. 들어와.”


현관을 지나며 보니, 신발이 한 쌍도 없었다. 그걸 본 시오리코 씨가 물었다.


“저… 부모님은…?”

“아.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말이야. 아마 이틀 정도는 집을 비우실 거야. 그래서 나도 미리 도쿄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었지만, 슈코 씨가 도와준 덕분에 살았어.”

“슈코 양이요?”

“밖에서 준비 중인 파티, 슈코 씨가 먼저 제안한 거거든. 파티를 하면서 하룻밤 같이 자면 괜찮지 않겠냐고. 그걸 2박 3일로 늘린 건 아야카 씨지만.”


휴식기에 방학이라고는 해도, 중학교 3학년 딸을 며칠씩 혼자 집에 두고 싶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미리 도쿄로 돌려보내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친구들, 그것도 스무 살 한 명과 열아홉 살 두 명이 포함된 친구 넷이 집에 같이 있겠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마당에서 준비가 한창인 2박 3일의 파티는 단순히 놀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스카를 아타미에 남겨두기 위해서 계획한 거란 얘기도 되는 셈이었다. 준비해온 걸 보면 내친 김에 신나게 놀 생각도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일단 의도는 그렇다. 그러면 우리에게 의뢰를 맡겼다는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퍼트린 것도 아스카라는 이야기가 되겠군. 수수께끼가 하나 풀렸다.


“미안해요… 아야카가 폐를 끼치네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오리코 씨가 마음을 쓰고 있는 건 아야카 쪽인 모양이었다. 그야 만난 지 보름도 안 됐는데 아이돌 멤버들끼리 노는 사이에 끼어서 일정도 이틀로 늘려버렸다고 하면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니, 괜찮아. 오히려 재미있는 친구가 한 명 생긴 느낌이라 다들 좋아하더군.”


아스카가 거실의 문을 열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돌이 된 뒤로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나를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존재 그 자체로 인식하는 사람은 오히려 줄었어.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씌워졌으니 이해를 못할 것도 없지만, 한편으로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대중 속의 고독이라고나 할까.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됐는데 나라는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히려 적어졌다니, 아이러니지.”


쉽게 말하면 다들 자신을 ‘아이돌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특별한 사람으로만 바라본다는 걸까.


“그런데 아야카 씨는 그렇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마치 아주 어려서부터 알았던 친구처럼 편안해. 그래서 여기에 부른 거기도 하고. 그러니, 폐를 끼친다든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오히려 내가 신세를 지고 있지.”


거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작게 마련된 제단이 보였다.


“할아버지, 손님이 오셨어.”


마치 살아계신 할아버님께 말을 걸 듯, 아스카는 자연스럽게 제단 쪽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할아버지의 책은 내가 물려받았으니… 그래도 괜찮겠지?”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시오리코 씨와 나는 조용히 인사를 올렸다. 고개를 숙였다 들며 영정을 보니, 꽤 사람 좋아보이는 노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혹시, 예전에 뵌 적이 있나?”


아스카의 질문에 시오리코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늘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역시 그런가… 혹시나 최근에 다른 책을 사러 방문하신 적이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그러진 않으셨나보군. 하긴, 요 몇 년 사이엔 여행을 다니시는 일도 줄어드셨으니…”


긍정의 답을 기대했던 것인지, 아스카의 대답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생전에 일본 각지에서 책을 수집하셨다고 하셨죠…”

“그래. 일 때문에 멀리 다니실 일이 많으셨다는군. 역마살을 타고나신 건지, 은퇴를 하신 뒤에도 자주 여행을 다니셨고. 그때마다 책을 몇 권씩 모으신 게 서고 하나 크기가 된 거지. 그러다보니 책은 많은데 의외로 단골 고서점은 없으셨고 말이야.”

“책을 팔지는 않으신 건가요?”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한으로는, 책이 들어온 적은 있어도 나간 적은 없었어. 하나하나가 기념이고 추억이라시면서, 같은 책이 여러 권이 되더라도 팔지 않으시더군. 그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 그러신 거겠지.”


처음 만났던 날 시오리코 씨가 아리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했다. 표현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네…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이쪽이야 직업이 고서 매매상이니 책을 들이고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책을 매입할 때마다 시오리코 씨의 취향에 맞아서 판매하지 않는 부류로 묶이는 것도 여러 권이다. 책벌레의 마음은 책벌레가 아는 법이리라. 시오리코 씨의 답에 아스카가 웃으며 제단 쪽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고 하네, 할아버지. 이만하면 마음에 드는 손님이지?”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거실을 나왔다. 시오리코 씨가 먼저 현관으로 향하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신발을 신으며 돌아보니 마지막으로 거실을 나오던 아스카가 장지문을 붙든 채 거실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보다도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보였다. 시오리코 씨가 아스카를 불렀다.


“저… 아스카 양…?”

“아, 미안. 나설 때마다 이러게 되는군. 금방 가지.”


반년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아직까지 제단에서 발을 돌리지 못하는 걸 보니, 할아버지와 정이 꽤 두터웠던 것 같다.


현관에서 몇 발짝 지나지 않아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카나데였다.


“어머, 셋이서 사이좋게 어디로 가는 걸까나?”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아이를 어르는 투다.


“원래 용건대로, 서재로 가는 참이야. 파티 준비는 끝난 건가?”

“급한 것들은 다 준비해놨어. 날씨도 덥고 아리스가 지친 것 같아서, 나머지는 이 뒤에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나.”

“슈코 씨가 그래?”

“응, 슈코가.”

“그러면 다 같이 메인이벤트를 볼 수 있겠군. 다들 서고로 오라고 전해주겠어?”

“알았어. 아까 거기 말이지?”


카나데의 눈이 아스카의 뒤에 있는 시오리코 씨에게 향했다.


“우리 아스카의 고민, 잘 부탁할게.”


카나데는 눈을 찡긋하며 시오리코 씨에게 말하고는, 이내 다른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카나데 씨도, 쓸데없는 말을…”


아스카는 카나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짓고는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분명히 아리스가 지쳤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어쩐지 카나데도 아스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필시 아리스가 지쳐서 팀이 같이 휴식을 취하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서고로 안내하지. 이쪽이야.”


우리를 서고로 안내하는 아스카의 얼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운 빛이 사라져있었다. 아이돌 특유의 표정 관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잠깐 마음이 어두워졌던 것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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