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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제2장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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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5, 2018 14:29에 작성됨.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쓴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처서가 지난 지도 일주일이 됐지만, 여전히 더위는 꺾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이면 열대야라는 기상청의 기준을 따르자면, 열이레째 연속으로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뉴스에서도 당분간 작년 이상의 폭염이 계속 될 거라는 예보를 내보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올해는 덥지 않을 거라더니, 그 때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주차장에서 봉고차를 꺼내와 가게 앞에 세운 후, 나는 가게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시오리코 씨를 불렀다.


“시오리코 씨, 준비 다 됐어요.”

“네! 나갈게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얀 민소매 블라우스에 검은 롱스커트 차림을 한 시오리코 씨가 가게에서 나왔다. 평소라면 이렇게 둘이서 목적지로 향했겠지만, 오늘은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사기사와 후미카가 시오리코 씨를 따라 가게에서 나왔다. 지난 주에 처음 만난 뒤로 시오리코 씨와 꽤 친해졌는지 연락을 계속 주고 받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가게에 와서 시오리코 씨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연락도 용건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겨우 이틀 사이에 우리가 오늘 아스카의 집에 간다는 것이 CAERULA 멤버 전원에게 알려진 모양이었다. 그것도 책에 관한 의뢰를 받고 가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전부. 그런데 난데없이 슈코의 제안으로 다 같이 아스카의 집에 모여 파티를 하자는 것으로 결정이 되어버렸고, 후미카는 마침 구하고 싶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겸 미리 비블리아 고서당에 들렀다가 우리와 함께 가기로 했다…라는 것이 지금 도쿄에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신칸센을 타고 있을 아야카의 이야기였다.


나와 시오리코 씨는 내일도 가게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보고 바로 돌아와야 하고, 마침 부모님이 근처에서 출장을 마치신다는 아리스도 밤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스카의 집에서 사흘 정도 머물 생각인 모양이었다. 모처럼 찾아가는 곳이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아타미니까 그럴 만도 하다.


가게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시오리코 씨와 후미카가 차에 올랐다. 앞좌석은 둘 밖에 앉을 수 없으니 후미카가 먼저 뒷좌석에 앉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시오리코 씨가 차에 오를 차례였는데, 시오리코 씨는 잠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후미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조수석 문을 열었다.


“출발하죠, 다이스케 군.”


몇 초 정도였지만, 시오리코 씨가 조수석 문을 잡기 전까지 잠깐 망설였다는 건 분명히 보였다. 혹시 누구와 같이 앉아서 갈지 고민한 건가?


머릿속에서 시오리코 씨가 나와 후미카를 열심히 저울질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분명 시오리코 씨 나름대로는 진지한 장면일 텐데, 생각하고 있노라니 웃음이 나왔다. 후미카가 연적이었다면 꽤 진지하게 질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는 시오리코 씨가 새로 사귄 책벌레 친구다. 이렇게 저울질 당하는 것도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왜, 왜 웃어요? 어서 가자니까요!”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알았는지, 시오리코 씨는 얼굴은 물론 귓불까지 빨개져서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네, 네. 출발하겠습니다.”


기타가마쿠라를 출발해 얼마나 달렸을까, 134번 국도로 들어서자 왼편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와…!”


시오리코 씨가 창가를 보며 탄성 소리를 냈다. 꼭 소풍 나온 어린아이 같다. 뒤이어 후미카의 목소리도 들렸다.


“사가미 만相模湾이네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에요.”


나가노 출신이라고 했으니 이쪽으로 왔던 적은 별로 없었던 걸까. 이대로 계속 바닷가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아타미에 도착할 것이다. 북쪽으로 달리면 도쿄까지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달리 말하면 아야카는 아스카와 후미카를 제외한 세 명과 신칸센을 타기 위해 정반대 방향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학기 중에는 매일 등교하는 길이니 그다지 멀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시오리코 씨도 아타미는 처음이신가요?”

“네. 책에서는 많이 봤지만, 직접 가는 건 처음이에요.”


시오리코 씨다운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으니 나도 시오리코 씨에게서 아타미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아타미… ‘기다리는 이가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이가 괴로울까.’였던가요?”

“맞아요! 다자이 오사무가 「달려라 메로스」를 창작하게 된 게 아타미의 무라카미 여관村上旅館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라는 이야기요.”

“단 가즈오檀一雄가 남긴 이야기네요. 결말은 「달려라 메로스」와 정반대가 되지만, 되짚어보면 다자이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죠.”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오사무의 중기 단편으로, 메로스가 잔혹한 디오니스 왕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사형 선고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메로스는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친구 세리눈티우스를 인질로 잡히고 사흘간의 유예를 얻게 된다. 결국 메로스는 무수한 고난을 뚫고 세리눈티우스가 처형되기 직전에 형장으로 돌아오고, 두 사람의 신뢰에 감탄한 왕이 두 사람을 모두 풀어주게 된다는 내용이다.


시오리코 씨는 내게 이 유명한 단편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줬었다. 아마 작년 6월 즈음,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아타미의 여관에서 유흥을 즐기던 다자이와 단은 숙박비와 식대를 내지 못하게 됐다. 다자이는 단을 여관에 인질로 두고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도쿄로 상경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다자이가 소식이 없어, 단은 하는 수 없이 여관 주인의 감시를 받으며 다자이를 찾아 상경했다. 결국 단은 이부세의 집에서 다자이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다자이는 이부세와 매일 장기만 두고 있었다고 한다. 막상 돈을 빌려달라고 하려니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려워서 며칠이나 말을 못하고 있었다나. 당연히 격분한 단이 다자이를 몰아붙였고, 다자이는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기다리는 이가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이가 괴로울까.’


후미카의 말대로 그 마음만 헤아려보자면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돌이켜보자면 다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 결과로 나온 이야기가 국민소설 「달려라 메로스」라니.


“다자이 말고도 오자키 고요가 『황금야차』를 쓴 곳도 아타미예요.”

“별장 기운가쿠…에서였죠. 시가 나오야志賀直哉나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도 아타미에서 머물렀었다고 하고요.”


한참 달리다보니 어느새 1번 국도를 지나 세이쇼 바이패스와 연결되는 나카 군中郡 니노미야 마치二宮町를 지나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기신 유언이 떠올랐다.


‘할미는 네가 책을 좋아하는 아가씨와 결혼하면 좋을 것 같다. 네가 읽지 못해도 이것저것 책 이야기를 해줄 테니 말이야. 하기야 책 좋아하는 책벌레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만.’


어렸을 때, 나는 책장에 꽂힌 할머니의 책을 건드렸다가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아마 몸이 책을 거부하게 된 것은 그 뒤부터였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내게 손찌검을 하신 것은 평생 그 한 번뿐이었지만,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셨던 것인지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내게 그런 말을 남기셨다.


할머니가 왜 그러셨는지를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같은 병원에 입원해있던 시오리코 씨에게 할머니의 유품인 『소세키 전집』을 감정 받으면서였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게 됐고, 시오리코 씨와 연인이 되었다.


할머니께선 반쯤은 농담으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걸 털어놓으신 것뿐이었다. 아마 스스로도 그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 ‘책벌레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


저렇게 즐거워하며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보면, 분명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할머니가 남기신 유품 덕분에, 나는 할머니가 바라시던 대로 책벌레와 결혼하게 됐다. 시오리코 씨의 표현을 빌리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이 가진 그 자체의 이야기’에 우리의 이야기가 한 페이지 더해진 셈이다.


아스카가 묻고 싶은 책도 할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책도, 내게 할머니의 책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아스카의 인생을 바꾸게 될까.


요금소가 눈에 들어와 차의 속도를 조금 줄였다. 타치바나 요금소, 세이쇼 바이패스에서 나가는 길이다.


아직 아타미까지는 30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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