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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X 데레마스] 아이돌 CAERULA 사건수첩 : 제1장 - 3, 4.

댓글: 2 / 조회: 701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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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3, 2018 14:57에 작성됨.

[오리지널 주의]

본 소설에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권 이후 내용 및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대한 글쓴이의 독자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더 먹고 싶으면 말해. 아직 많이 있으니까!”

“이예이! 슈코는 미리 한 그릇 추가!”

“제발 슈코 언니는 사양이란 걸 좀 할 줄 아셨으면 하는데요.”

“아리스 얘 뭐래니? 후미카네 친구가 우리를 생각해서 준비해준다는데 깨끗이 비우는 게 예의지!”

“교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도 말이죠…”

“응? 나 교토 살 때도 식사 대접 거절한 적은 없었는데? 혹시 고베 출신인 아리스는, 교토에서 오차즈케를 권하는 건 그만 돌아가라는 뜻이라든지 하는 뜬소문을 믿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 말을 말죠.”

“후훗. 아리스, 완전히 압도당해버렸네.”


부엌이 평소에 비해 굉장히 시끌시끌해졌다. 시오리코 씨와 후미카는 내 옆에서 책 이야기를 하고 있고, 슈코와 아리스는 식사 제안을 사양하는 게 맞는지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를 두고 투닥이고 있다. 카나데의 말대로 투닥인다기보다는 슈코가 일방적으로 아리스를 놀리는 걸로 보이기는 하지만.


어째서 갑자기 유명 아이돌 다섯 명이 가게 부엌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느냐 하면, 때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아야카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5명의 출현에 당황한 것도 잠시, 특유의 말주변으로 후미카를 제외한 넷을 휘어잡더니 순식간에 점심식사에 끌어들여버렸다. 마침 준비해뒀던 요리가 카레라서 사람이 늘어나도 괜찮다나.


아리스는 갑자기 폐를 끼칠 수는 없다며 물러나려 했지만, 슈코가 흔쾌히 긍정의 답을 내면서 아스카와 카나데의 동의까지 얻어내 이런 상황이 되었다. 후미카의 동의를 따로 얻지는 않았지만, 후미카도 시오리코 씨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으니 답을 얻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과반수 찬성을 얻은 뒤이기도 했고.


식사 준비를 도우며 보니 대략적으로나마 다섯 명의 면면을 알 것 같았다. 우선 시오미 슈코는 초면인데도 ‘아이돌이니 딱딱하게 성으로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라고 할 정도로 능청스러운 성격. 아야카의 말에 따르면 백금발 머리에 흰 피부, 그리고 그 성격을 아울러 팬들이 ‘백여우’라고 부른다는 모양이다.


틀림없이 성인이라고 생각했던 검은 단발의 하야미 카나데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아야카보다도 연하였는데, 내가 한 것과 비슷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듯 했다. 데뷔곡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성숙한 이미지가 강하다고 하니, 회사에서 그런 이미지를 일부러 강조하는 모양이다.


금색에 보라색이라는 언밸런스한 머리색을 자랑하는 아이돌의 이름은 니노미야 아스카. 염색을 독특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짙은 금색인 단발만 원래 머리카락이고 보라색 장발은 헤어 익스텐션, 그러니까 붙임머리라고 한다. 아야카의 말로는 중2병 캐릭터라고 하는데, 평소에도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습관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아리스는 한눈에도 막내라는 티가 나는데도 되도록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여 안쓰러운 유형이었다. 내가 예명이라고 생각했던 타치바나 아리스라는 이름도 본명이라고 한다. 가톨릭 세례명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성녀 엘레이다Aleydis를 앨리스Alice라고도 부르죠… 알리시아Alicia라고도 불리며, 브뤼셀 교외의 스하르베크에서 태어나…”

“으아아…! 그, 그만 해 주세요, 후미카 언니…!”


일본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이름인데다 슈코가 아까처럼 놀려대기까지 하면, 이름에 저렇게 콤플렉스가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미카는 다른 아이돌들이 오기 전에 얘기하면서 느꼈던 대로, 시오리코 씨에 버금가는 수준의 책벌레였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을 찾자면 시오리코 씨는 책, 특히 고서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자랑한다면, 후미카는 시오리코 씨만큼 고서에 해박하지는 않은 대신 넓은 방면의 지식을 꿰고 있다는 정도일까. 어느 쪽이든 체질 문제로 책을 읽지 못하는 나에게 대단해 보이는 건 같다.


“그러면 시오리코 씨와 후미카 씨, 두 사람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는 건가?”


조용히 있던 아스카가 두 사람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후미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확히는, 시오리코 씨의 아버님과 저희 작은아버지가…”

“아무래도 두 분 모두 책을 다루시다 보니, 건너건너 알게 되신 모양이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조문을 와주셨었고… 저도 여러모로 사기사와 아저씨께는 신세를 졌어요. 어쩌면 어렸을 때는 후미카 양을 만났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억에는 없네요.”

“작은아버지는 제가 갓난아이일 때 나가노에서 마츠야마로 댁을 옮기셨다고 하니까요… ”


시오리코 씨가 27살, 후미카가 20살이니 7살 차이다. 기타가마쿠라에서 마츠야마까지 가는 거리도 있을뿐더러, 후미카가 살던 곳과 작은아버지가 살던 곳이 다르다면 기억을 하지 못한대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러면 사실상 초면에 이런 실례를 하고 있단 건가. 송구한데.”

“어머, 이제 와서?”


카나데가 옆에서 딴죽을 걸었다.


“아야카 씨가 워낙 오랜 벗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줘서, 미처 생각지 못했어.”

“그래서 제가 폐가 될 거라고 했잖아요… 다들 초행인 곳에서 이게 무슨…”

“에이, 괜찮다니까! 친구의 친구는 친구인 걸!”


슈코의 옆자리에서 카레를 입에 떠넣던 아야카가 막 다시 지펴지려던 언쟁의 불씨를 꺼버렸다. 방금 후미카가 초면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마츠야마의 사기사와 아저씨’도 친구에 포함되는 걸까. 아야카라면 그럴 법하긴 하다. 그렇게 되면 친구의 조카의 친구가 되는 셈이지만.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화제는 시오리코 씨의 일로 옮겨갔다. 가장 먼저 화제를 돌린 건 슈코였다.


“시오리코 언니는 매일 여기 앉아서 책만 보는 거야?”

“매일 앉아있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출장매입을 나갈 때도 종종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책을 감정한 뒤에 매입하고, 돌아와서 진열하죠.”

“오, 그럼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보자마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얘기?”

“그 자리에서 매입가를 정하지 못하면 출장매입을 나가는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슈코가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고, 아스카도 놀란 듯 반응을 보였다.


“정해진 가격의 기성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책이 가진 각자의 개성에 가치를 매긴다라… 어떤 의미로는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군. 대단한 일이야.”

“아니요, 그 정도까진… 제가 매기는 가격은 책의 발간 연대와 상태, 희소성을 보는 것 뿐이라…”


시오리코 씨는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속으로 아스카의 말에 동의했다. 적게 잡아도 수천에서 수만 권에 달하는 책이다. 그걸 하나하나 평가하고, 가격표를 붙인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오리코 씨가 가진 재주는, 단지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 뿐이 아니기도 하다.


“저어…”


식탁 반대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리스였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질문이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서…”

“뭐가 말인가요?”

“옛날 책에는 어떤 가치가 있길래 그렇게까지 좋아하시는 건가요…?”


일순, 식탁이 고요해졌다. 갑작스러운 적막에 말을 꺼낸 아리스 스스로도 놀랐는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을 고쳤다.


“아…아뇨! 나쁜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그… 꼭 책이 아니라도… 물건이 오래된다는 건, 곧 낡는다는 뜻이죠…? 그런데 값이 오르고…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저는 잘 이해가 안 돼서…”


아아, 그런 뜻인가.


후미카와 가까워 보이긴 했지만, 아리스는 후미카와는 정반대 느낌의 아이였다. 후미카는 책을 찾아 여기까지 뛰어왔지만, 아리스는 후미카를 찾아오면서도 손에서 태블릿을 놓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얼리 어답터’라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아이라면 책보다는 전자기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할 것이다. 아니, 아예 책도 종이가 아니라 태블릿으로 읽는 세대겠지.


전자기기라고 가격이 떨어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리스가 봐 온 것은 감가상각을 거쳐 ‘중고’라는 이름을 붙이고 싼값에 팔려나가는 전자기기들뿐이었을 것이다. 고서나 골동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오리코 씨도 같은 생각인지 온화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타치바나 양이 묻고 싶은 건 책의 가치인가요, 아니면 가격인가요?”

“다른 건가요…?”


아리스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오리코 씨의 질문에 답했다. 시오리코 씨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타치바나 양의 말이 맞아요. 오래 된다는 건 곧 낡는다는 것이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죠. 저희 가게에 있는 책들도 출간 당시와 비슷하거나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사실이 그렇다. 지금 비블리아 고서당에 있는 책만 수천 권은 될 텐데, 그게 전부 희귀도서라면 고서점이 아니라 보물창고겠지. 아니면 국회도서관이거나.


“오래된 책의 가격이 비싸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어요. 희귀성, 보존 상태, 작가의 사인sign이나 메시지… 책이 견뎌온 세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되어서, 고서를 찾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중시하는 가치에 합치한다면 가격이 오르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다자이 오사무가 친필로 글귀를 남긴 『만년』 초판본이 언컷본인 채로 보존되어있다면 최소한 300만 엔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고서점에서 붙인 가격이 꼭 그 책의 가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가치라는 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이 말에 아리스는 고개를 갸웃 했고, 후미카와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코와 카나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기울이는 아리스를 보며 슬며시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낡고 헤진 책이라도 나에겐 생명보다 소중한 것일 수도 있고, 천금의 가치를 가진 책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는 초개처럼 버릴 수도 있겠죠. 그러니 아까 말했듯이, 제가 붙이는 가격은 책의 발간 연대와 상태, 희소성 같이 보편적으로 높게 치는 가치를 중요시해서 붙인 것뿐이라는 거예요.”


그 300만 엔이나 하는 책을 시오리코 씨는 남에게 팔기는커녕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 하고, 나는 시오리코 씨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버릴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저는 고서를 좋아해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책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가지고 있거든요. 꼭 안에 담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답이 되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해를 한 것 같지만, 아리스는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다. 중학교 1학년에게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으려나.


“과거에 미래가 담겨있다는 이야기야, 아리스.”


중학교 3학년이라는 아스카가 저렇게 한 마디로 정리하는 걸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스카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 더 모르겠어요. 저희 집에도 어머니가 갖고 계신 오래된 책이 하나 있긴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거?”


분위기를 바꾸려는지 슈코가 또 슬쩍 아리스를 놀렸다. 이젠 이 패턴에도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거든요! 노벨상을 탄 작품이에요! 90년 된 『파랑새』를 아끼면서 늘 들고 다니시는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90년 정도 됐다면 1920년대니까, 『파랑새』가 일본에 막 소개됐을 무렵이네요. 고서점에서 아주 찾기 힘든 건 아니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일부러 찾기는 힘든데, 어머님께서 고서를 좋아하시나 봐요.”

“집에 있는 책 중에 오래된 건 그것뿐이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상처도 나고 얼룩도 진 책을 왜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 해주시고…”

“그렇게 소중히 하시는 책이라면, 선물 받으신 책이거나, 어떤 사연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어머님께는 그런 가치가 있는 거죠.”

“나로선, 『파랑새』라면 책의 내용만으로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아리스에겐 노벨상을 탔다는 게 중요한 것 같고. 그렇기에 사람마다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거야.”

“1911년 노벨 문학상…이었죠. 같은 해에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였던 마리 퀴리가 라듐 연구의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가 됐고요.”


시오리코 씨의 설명에 아스카와 후미카가 덧붙였다. 이야기를 듣던 슈코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노벨상 못 탔나?”

“노벨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고, 수여가 시작된 것도 알프레드 노벨이 세상을 떠나고 5년 뒤인 1901년부터니까요. 루이스 캐럴은 1898년 세상을 떠나서… 생존자에게만 수여한다는 노벨상의 원칙상 후보에 오를 수 없었어요.”

“헤에… 엄격하구나, 의외로.”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상의 수상 기준이 엄격하지 않을 리 없잖아요.”

“아리스, 나이스 태클!”


후미카의 대답에 대한 슈코의 반응에, 아리스가 질세라 반격을 넣었다. 사이가 나쁜 줄 알았는데, 꽤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아야카는 아까부터 둘이 티격태격할 때마다 눈을 빛내며 보고 있는데, 그렇게 좋은 걸까?


“그러면 아스카가 들고 다니는 까만 책 같은 거에도 시오리코 씨가 말한 것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걸까나?”


카나데가 갑자기 꺼낸 ‘까만 책’이라는 말에 시오리코 씨의 눈이 반짝였다. 의도하고 꺼낸 말은 아니겠지만, ‘까만 책’은 이 업계에서 출간된 뒤 시간이 오래 지난 고서들을 말한다. 고서를 좋아하는 시오리코 씨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반면 아스카는 그리 달갑지는 않다는 눈치였다.


“내가 감춘 이야기를 수정구로 들여다보는 건 그다지 상관하지 않지만… 글쎄, 대가 없는 권리를 더 이상 누리기엔 우린 이미 너무 많은 걸 받은 것 아닐까, 카나데 씨?”

“말하자면, 식사 대접까지 받았는데 팔 생각도 없는 책을 공짜로 감정까지 받는 건 너무 염치없지 않냐는 얘기?”

“그래. 그런 거야.”


두 사람의 이야기에 괜히 옛날 생각이 났다. 생각해보면 내가 시오리코 씨를 처음 만났던 것도 책 감정을 받으러 시오리코 씨가 입원해있던 병원을 찾았을 때였다. 무전취식보다 더 악질이라고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이 났었지.


“아,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그에 대한 시오리코 씨의 반응도, 그때와 똑같다.


“맞아맞아. 우리 언니는 책을 볼 수만 있다면 다 좋아하니까,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돼.”

“그렇다는데, 아스카?”

“저도… 궁금하네요. 오래된 책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지…”


아야카와 슈코에 이어서 후미카까지 이렇게 말하자 아스카도 별 수 없다는 듯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겠지… 꽤 메르헨Märchen, 어린이를 위하여 만든, 공상적이고 신비로운 옛이야기나 동화한 책인데 말이야.”


잠시 가방을 뒤적이던 아스카의 손에 들린 것은 꽤 두꺼운 책이었다. 표지는 검은빛의 펠트 커버로 싸여있었는데, 책입책등의 반대쪽 면의 색이 바랜 걸 보면 꽤 오래된 책인 건 분명해보였다. ‘까만 책’이란 건 저 펠트 커버의 색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이거, 드라마에 나오는 감정사처럼 막 펼쳐보지도 않고 알아맞히고 그러는 거 아냐?”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슈코 언니는 대체 무슨 드라마를 보신 거예요?”

“음… 600만불의 사나이?”

“완전 옛날 드라마잖아요! 감정사랑은 상관도 없고!”


슈코는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시오리코 씨는 할 수 있다. 작년에 시오리코 씨가 커버로 싸인 책의 제목을 알아맞히는 걸 눈앞에서 봤으니 확언할 수 있다.


또 슈코와 아리스 사이에 만담이 오가는 사이, 시오리코 씨는 아스카에게서 조심스레 책을 건네받았다. 아야카는 혹시나 책에 카레가 묻을까 잽싸게 접시를 치우고 행주로 식탁을 닦아냈다. 시오리코 씨가 손을 닦을 수 있도록 물티슈를 건넨 건 물론이다. 이렇게 보니 꼭 숙달된 조수 같군.


시오리코 씨는 가까이 책을 내려놓고, 손으로 책을 쓰다듬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시오리코 씨는 이내 답을 꺼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이네요. 쿠스야마 마사오楠山正雄가 번역해서 다이쇼 13년1924년, 신초문고에서 발간한 책이에요.”


아리스는 물론 책의 주인인 아스카까지 표정이 변했다. 정확히 짚은 모양이다.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해두고 싶은 건데,”


하지만 시오리코 씨의 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섯 분은 모두 기타가마쿠라에는 처음 오시는 거죠?”


아이돌 다섯 명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분명히 아스카 양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저희 비블리아 고서당을 거쳐 갔겠네요. 책 사이에 가격표나 명함이 끼워져 있겠죠. 제 기억에는 없는 책이니, 저희 할아버지나 아버지 대에서 지나갔을 테고요. 자연히, 아스카 양이 직접 구한 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받은 책이라는 얘기가 되겠죠.”


아까 아리스가 질문을 던졌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적막이 식탁에 내려앉았다. 시오리코 씨와 아스카를 번갈아 살피던 카나데가 그 적막을 깼다.


“그래서, 정답은 뭔데, 아스카?”


심판을 기다리듯, 모두의 눈이 아스카에게 쏠렸다. 아스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부… 정답이야.”

“오! 봐. 가능하잖아, 아리스!”

“대… 대체 어떻게…”


슈코가 탄성을 질렀고, 아리스는 넋이 나간 듯 시오리코 씨와 책을 번갈아 쳐다봤다. 정말 반응 하나는 확실한 두 사람이다.


답을 들은 시오리코 씨는 펠트 커버가 씌워진 책의 표지를 넘겼다. 어릴 때 종종 봤던 안데르센의 초상화와 함께 고풍스러운 서체로 적힌 ‘안데르센 동화전집 / 쿠스야마 마사오 역’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후미카도 눈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단하네요…”

“그러게요. 저도 이 책이 이렇게까지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대단해요!”


시오리코 씨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후미카는 시오리코 씨가 책의 제목과 번역자를 정확히 알아맞힌 게 대단하다고 한 것 같지만, 시오리코 씨에겐 그런 자각이 없겠지.


“꼭 마술을 보는 것 같군. 어떻게 맞힌 거지?”


아스카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물었다. 시오리코 씨는 흥미롭다는 듯 책을 넘기며 대답했다.


“아스카 양이 메르헨한 책이라고 해서 판타지 서적이 아니면 동화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색이 이렇게 바랬으니 아마 전쟁 이전의 책일 거고, 크기는 지금의 컴팩트판 정도에 두께는 350장, 700페이지 정도였고요. 그 외에 이 책의 외양을 고려하면, 동화나 판타지 중에서는 이 쿠스야마 마사오가 번역한 『안데르센 동화전집』밖에 남지 않아요. 안데르센의 첫 번째 동화인 「부싯깃 통」부터 서른여덟 번째 동화인 「홀거 단스케」까지 총 서른여덟 편을 번역해서 실었어요.”

“안데르센의 초기 서른여덟 편이라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많은 시기네요.”


후미카가 옆에서 거들었다. 이젠 저 두 사람이 안데르센의 동화가 나온 순서까지 외우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것 같지 않았다.


“네. 「엄지공주」,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 「빨간 구두」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이때에 몰려있어요. 특히 쿠스야마 마사오의 번역판이 가치 있는 이유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을 거치지 않고 연대순으로 그대로 번역했다는 데에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동화는 번역 과정에서 재창작을 거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쿠스야마 마사오의 번역본에는 원문이 거의 그대로 살아있죠. 「빨간 구두」는 물론, 첫 두 작품인 「부싯깃 통」과 「장다리 클라우스와 꺽다리 클라우스」도 교육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번역 중 생략되곤 하는데 쿠스야마 마사오는 그걸 전부 번역해서 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두꺼워진 거군요.”

“지금의 안데르센 전집들과 두께를 비교해보면, 쿠스야마 마사오가 168편의 안데르센 동화를 전부 번역했다면 2,500페이지 정도는 됐을 거예요.”

“이천…!”


비명이 절로 나왔다. 종이로만 따져도 천 장이 넘는데, 그쯤 되면 동화집이 아니라 논문집이다. 저 700페이지짜리 동화전집도 충분히 두껍지만. 시오리코 씨는 그 두꺼운 동화집의 책장을 쉬지 않고 넘기면서 평가를 계속해나갔다.


“이건 정말… 정말 대단해요. 전쟁 전의 동화가 이렇게 깨끗하게 남아있을 줄이야.”

“희귀한 책입니까?”

“책 자체가 희귀하다고 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전쟁 전의 서적은 전쟁 중에 불타버린 게 많고, 또 두껍다고는 해도 이건 동화집이에요. 어린이들은 실수로든 일부러든 책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동서가 깨끗하게 남아있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여러 가지 이유로 파손될 일이 많았던 책인데도 흠집 없이 깨끗하다는 건가.


“그럼 가격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야?”


아야카가 어느새 시오리코 씨 뒤로 돌아와 책을 쳐다보며 물었다.


“번역서다보니 가격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그래도 보존상태를 감안하면… 최소로 잡아도 5만 엔 정도.”


책 한 권에 5만 엔이라. 지금까지 봐왔던 희귀판본들에는 미치지 못해도, 결코 적지 않은 가격이다. 얼마 전 내가 진열한 고단샤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50권이 모두 합해 4만 엔 정도였으니.


책장을 넘기던 시오리코 씨의 손이 멈췄다. 「전나무」가 끝나고 「눈의 여왕」이 시작되는 페이지에 종이 한 장이 끼어있었다. 익숙한 글귀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비블리아 고서당ビブリア古書堂

점장店長 시노카와 노보루篠川登


3년 전 세상을 떠난, 전대 점장의 명함이었다. 이름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비블리아 고서당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어! 우리 아빠 명함이다!”


아야카가 귓전에서 꽤 큰 소리로 외쳤지만 시오리코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함을 손끝으로 잡아들었다.


“역시…”


시오리코 씨가 책장을 넘기는 걸 지켜보던 다섯 명 중 아스카를 제외한 네 명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졌다.


“그 명함의 존재는… 어떻게 안 거지?”

“아까 네 분이 후미카 양을 찾아 가게에 들어왔을 때, 슈코 양이 그랬었죠. 아스카 양이 이쯤에 책방이 있을 거라고 했다고요. 그런데 타치바나 양은 다섯 분이 모두 이곳에 처음 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섯 분 모두 기타가마쿠라가 초행이신지 확인한 거예요. 초행인 마을인데 이런 고서점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지도를 찾아봤거나 주소가 적힌 명함을 가지고 있었단 얘기가 되겠죠. 그런데 이쯤에 서점이 있을 거라고 말한 건 아스카 양인데도, 길을 찾아온 건 타치바나 양이라고 했어요. 타치바나 양은 태블릿을 들고 있으니 그걸로 인터넷 지도를 켜서 찾아온 거죠?”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아스카 양이 지도를 찾아본 건 아닐 테고, 상호와 주소까지만 알고 있거나, 그게 적힌 뭔가를 갖고 있었겠죠. 예를 들면 이 명함 같은 거요.”

“좀 비약이 있지 않나? 내가 촬영 전에 지나가면서 간판을 기억해뒀다는 가능성도 있을 텐데.”

“네. 아스카 양이 지도 없이 직접 찾아왔다면 저도 확신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타치바나 양이 인터넷 지도를 찾았다는 건 아스카 양이 저희 가게를 보고도 상호만 기억하고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건데, 그럴 수는 없어요. 저희 가게는 역 바로 앞에 있으니까. 즉, 아스카 양은 저희 가게 근처를 지나간 적이 없다는 말이 되죠. 자동차를 타고 지나갔다면 상호를 볼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을 테고요. 따라서 남는 건 명함밖에 없었어요. 고서점의 명함이 끼어있을 자리라면, 그 고서점에서 산 책 사이가 제일 가능성이 높겠죠. 아스카 양이 초행이니 원래 책을 산 사람은 따로 있을 테고요.”

“대단하군…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시오리코 씨가 다시 명함을 제자리에 꽂고 책을 아스카에게 돌려주었다. 아스카는 책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맞아. 이 책은 반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거야.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책을 수집하셨는데, 여기도 다녀가셨군. 기연이네.”

“네. 좋은 책이니 소중히 하시고, 나중에도 다시 읽어 보세요. 안데르센은 창작동화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만큼 그 작품도 훌륭해서, 하나하나가 후대에도 재창작이 계속 되는 명작들이니까요.”


그 말대로,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에서도 안데르센은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지 못하게 된 지금도 안데르센 정도는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데자키 오사무出﨑統의 『눈의 여왕』 이 떠오르는군. 「눈의 여왕」의 틀 안에 다른 안데르센 동화들을 녹여내서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었어.”

“「눈의 여왕」…은 여러 번 영상화가 되었죠. 1957년 소련에서 최초로 영상화된 뒤로 1986년 핀란드, 1995년 영국, 2002년 미국, 2005년 영국, 같은 해 NHK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각색되어 전파를 탔고… 지금도 러시아에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고, 위자트 애니메이션과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도 「눈의 여왕」의 영상화를 진행 중일 정도로… 길이 남는 작품이 되었죠.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안데르센 작품을 각색해서 다뤄본 경험이 있으니, 기대를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스카가 「눈의 여왕」 이야기를 꺼내자 후미카에게서 관련 작품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눈의 여왕」은 분위기가 꽤 어두웠던 것 같은데, 의외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 디즈니와 「눈의 여왕」이라니 내 안에서는 그다지 인상이 맞아떨어지지 않기는 하지만.


“맞아맞아. 『인어공주』는 재밌었지~ 엔딩도 해피엔딩이고! 왕자가 나쁜 마녀를 배로 뺑소니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나네!”

“뺑소니라니, 표현이 이상하잖아요, 슈코 언니!”


그리고 슈코와 아리스는, 식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투닥였다.



4


식사를 마치고, 나는 계산대로 돌아왔다.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평소보다 식사시간이 길어졌는데, 중간에 손님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원래 손님이 뜸해지는 계절이긴 하지만.


오지도 않는 손님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게 안쪽에서 드문드문 들리던 아야카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슈코가 설거지를 잘 하는 건 처음 알았어!”

“화과자집 딸 19년이면 전문가 다 된다니까. 끈적이는 것들이 얼마나 안 떨어지는데.”


뒷정리는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면서 나는 계산대나 보라고 떠밀더니, 아이돌들이랑 뒷정리를 같이 한 모양이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정말 대단한 친화력이다.


“아, 고우라 오빠! 미안한데, 우리 잠깐 놀러 나갔다 올 테니까 그동안 가게 좀 봐줘요! 혼자라도 괜찮죠?”


그새 같이 놀러 나가는 사이가 된 건가. 어차피 내 일이야 가게를 지키는 거니까 상관없고, 시오리코 씨도 같이 있으니까 혼자도 아닐 터다.


잠깐만. ‘우리’?


“있지, 아야카. 그 ‘우리’에는 시오리코 씨도 포함한 거야?”

“그야 당연하죠!”


내가 아는 시오리코 씨는 이 날씨에 아야카를 따라서 같이 놀러다닐 사람은 아닌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걸까.


“다…다이스케 군…”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방금 아야카가 나온 쪽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안해요… 저는 후미카 양이랑 가게에 있겠다고 했는데…”


당혹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시오리코 씨의 옆에는 역시 비슷한 표정의 후미카와 잔뜩 골이 난 아리스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른 세 명이 아야카와 함께 놀러나가겠다고 했을 때, 후미카는 가게에서 시오리코 씨와 좀 더 책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거다. 아리스야 후미카와 함께 남아있겠다고 했겠지. 이 뒤로는 하루종일 일정이 없다고 했고, 이 동네를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그런 세 사람을 슈코와 아야카가 반협박으로 구슬러서 데리고 나가는 상황일 것이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래도 시오리코 씨가 오랜만에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나들이를 나가는 데 마음이 무거운 건 싫다.


“저는 괜찮으니 나갔다 오시죠. 시오리코 씨도 바깥 공기는 좀 쐬셔야죠.”

“그래도, 다이스케 군 혼자 남겨두는 건… 아! 가게 문 일찍 닫고 같이 갈래요?”


혹시 시오리코 씨에겐 내가 혼자 남겨두면 고독사하는 알파카로 보이는 걸까?


시계를 보니 이제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직 영업시간은 꽤 남았다. 아무리 손님이 잘 오지 않는 철이라지만, 지금부터 폐점시간까지 한 명도 오지 않을 리는 없다. 그리고 내게도 저 가운데에 갑자기 끼어들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있다.


“모처럼 생긴 말이 통하는 친구잖아요.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마음껏 이야기하고 오세요.”

“정말… 괜찮겠어요?”

“저야 매일 가게에 있지만, 후미카 양은 아니잖아요.”


시오리코 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오리코 씨가 즐거워지는 걸 보니, 나도 즐거워진다.


“좋아! 그럼 고우라 오빠도 찬성했고! 기타가마쿠라 원정대 출발!”

“이예이!”


아야카와 슈코가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나갔고, 카나데가 그 뒤를 따랐다. 아리스도 한숨을 푹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가게를 나섰다.


“그럼, 다녀올게요.”


시오리코 씨도 내게 인사를 해주고 후미카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남은 한 명…


“꽤나 즐거워보이네.”


…니노미야 아스카만은 일행을 따라나서지 않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있잖아, 고우라 씨.”

“응?”

“시오리코 씨 말인데, 사라진 책을 찾거나, 책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에도 관심이 있는 건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종종 받기는 한다. 그것도 초대 점주인 시오리코 씨의 할아버지, 시노카와 세이지篠川聖司 대부터 계속 해온 일이다.


“아까 점장… 시노카와 씨가 내 책을 감정하는 걸 봤더니 해리엇 베인이 떠올라서 말이지.”


해리엇 베인Harriet Vane이 누군지 한참 생각을 하고야 떠올릴 수 있었다. 시오리코 씨에게서 추리소설 이야기를 들을 때 나왔던 이름이다. 도로시 L. 세이어스Dorothy L. Sayers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미스테리 작가로, 피터 윔지 경Lord Peter Wimsey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맹독』에서 처음 등장해 피터 윔지와 결혼하고, 그 뒤 시리즈에서는 단독으로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피터 윔지도 고서 모으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그런 면에선 시오리코 씨는 해리엇 베인과 피터 윔지를 반씩 섞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연인을 독살한다는 말은 아냐.”


내 표정이 미묘해진 게 『맹독』의 줄거리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아스카가 덧붙였다. 그야 해리엇 베인도 연인을 독살한 적은 없다. 그런 누명을 썼을 뿐이지.


“의뢰를 받고는 있어. 해결에 얼마나 걸릴지는 보장할 수 없지만.”

“그런가…”


아스카는 내 대답에 잠시 턱을 쓸더니 고개를 돌려 책장들을 슥 훑어보고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것 같군.”


뭔가 궁금한 게 있는 걸까 싶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유명 아이돌이 없는 시간을 쪼개서 돌아오는 것보다 지금 물어보거나 시오리코 씨에게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금 이야기 하지 않는 것에도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동안 여러 사건을 마주하면서 생긴 감이다.


“그러면, 나도 출발해볼까. 오늘은 신세를 졌어.”


그렇게 영문 모를 말만 몇 마디 남긴 채, 아스카는 비블리아 고서당을 나섰다.



아스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 주 토요일 저녁이었다. 전화를 받은 시오리코 씨에게 아스카는, 전화 너머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책 중 이상한 게 한 권 있어서 말이야. 이 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인해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


아스카의 집이 있다는 아타미까지 한참을 가야하는 의뢰였지만, 시오리코 씨는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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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와 눈의 여왕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작중배경 : 2012년. 겨울왕국 일본 개봉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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