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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14장 - 묘역(墓域) 下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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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9, 2018 19:59에 작성됨.

묘역.
죽은 섬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리우는, 말 그대로 땅 전체가 묘지라는 뜻의 섬.
제국군의 군함들이, 그러한 이름이 붙은 섬에 정박한것은 고작 한시간도 채 되지 않을 무렵. 비록 오는길에 예기치 못한 크라켄의 무리, 그리고 별의 사도 등과 맞서는 과정에서 몇몇 함대가 통째로 박살나 심해로 가라앉았지만, 그럼에도 흑철나무로 만들어진 시커먼 군함 수십척이 정박한다는 것은 충분히 웨이그리아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수백명이 동시에 서도 결코 부러지지 않게 설계된 묘역의 제국군 정박기지에서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점차점차 선박에서 내려온다.

" 에리치카님. 함대의 손실보고는.. "

" 아, 3함대장. 신경쓰지마~ 노조미한테는 내가 잘 말할테니. "

" 알겠습니다. 그러면 즉시, 부대를 정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그래. "


그녀, 아야세 에리의 시선은 상륙하여 땅을 밟은 직후부터 고사목숲 너머의 언덕쪽을 향하고 있었다.



[신데렐라 판타지] 제 14장
묘역(墓域) 下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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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묘역... "
" 황량하기 짝이없네요. 전혀 기운나지 않는 곳임다.."
" 어떻게든 도착했네요. "

우즈키는 자기가 딛고 선 거무칙칙한 땅이 목적지라는 것에 안도하며 긴 숨을 내쉰다. 오는 도중에 있었던 크라켄의 습격과 그 와중에 야야세 에리와 눈이 마주쳤던 상황도 어찌저찌 무마되어 넘어갔다.. 라는 지극히 행운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이제 촉을 날카롭게 세운다. 뭔가, 느껴진다.

" 혹시, 두 사람도 느끼고 있나요? "

우즈키의 물음에 나머지 둘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한다.

" 우즈키짱도 똑같은겁니까? 뭔가 으스스한 것이.. "
" 응. 배에서 내려 땅을 밟았을 때 부터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질 않아. "

등골을 뭔가 타고 오르는 것 처럼 슬금슬금 기어올라오는 오싹함. 괜히 5대 사경으로 선정된 절대 출입금지의 마경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불길함이 끝없이 샘솟았다. 그치면 그런 한 편으로 별개의 뭔가가 태양으로서의 감각 속에서 스쳐지나감을 놓치지 않는다.
왕도에서 지겹도록 감지해온 기분나쁜 무언가.

" 이상한 빛.. 이건... "

" 저도 느껴집니다. 오니기리교..! 역시 녀석들이 있는건가요? 그러면 역시 미오짱이...! "

" 쉿...! 목소리가 너무 커. "

미호가 우즈키와 아카네에게 경고한다. 목소리가 더 이상 커져서 관심을 끌게되면, 안그래도 에리와 눈을 마주쳤던 것도 있는데 더더욱 들킬 우려가 커지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대륙에서 한참 떨어진 이런 황량한 섬에서라면 더더욱.

" 오니기리교랑 제국군이 만약에 조우해서 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에겐 기회가 될지도 몰라. 그 정황 속에서는 더 틀길 염려가 사라지니깐. "

미호는 목청이 가라앉은 둘을 향해 첨언한다.
제국과 맞닿은 바다의 태반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휘몰아치는 남해함대 전 병력을 상대로, 고작 셋이서 맞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우선은 그런식으로라도 더욱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미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우즈키는 기분나쁜 기운 속에서도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 미오짱을 반드시.. "

" 아, 이동하는 것 같아. 우즈키, 아카네. "

"네." "알겠슴다."

상륙 후 정비가 완료되어 열을 맞춰가는 함대병력 속으로, 셋의 걸음은 자연스레 섞여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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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독 된 몸으로서 의견은 어때? "

아야세 에리가 살짝 아래를 내리다보며 물었다. 시선의 끝에는 제국군 제독의 제모가 씌워진 작은 몸집이 전방에 집결한 병력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 간단하게 부대를 나눠서 움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그 전쟁광 웨이그리아니, 우리 함대를 향해 언제 공격해와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

" 음~ 역시 그렇지? " 에리치카는 또박또박하고 명료한 답변에 스스로 질문한것을 되세기며 끄덕인다.

배를 마냥 정박해두다가는 웨이그리아던.. 도중에 조우했던 크라켄을 이끄는 광신자 나부랭이 같은것들이 더 엮일지도 모른다. 제독의 판단은 지극히 옳다. 그리 생각한 뮤즈의 결정은 빨랐다.

" 지금부터 우리 측 묘역 주둔지에 동행하는 병력은 1함대 3함대로 한정한다. 나머지 함대 소속 병력은 이곳에 남아 선박을 지켜라. "


" 알겠습니다! " 


통보를 마친 아야세 에리는 열을 맞춰 서서히 진군해나가는 병사들의 행렬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추월하여 당당히 행렬의 최선두에 선다.

웨이그리아 와의 마찰도 마찰이지만, 그녀가 그고에 온 이유.. 그것은 지극히 명확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온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일일지도 모르기에 그녀는 이외의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온 것이다.

별은 이미 왕도에서 벗어나 불온함을 풍기며 모습을 감췄고, 그것을 막을 -적어도 뮤즈들이 생각하기엔- 유일한 희망이었던 호노카마저 전쟁에서 불운하게도 최악의 대진운을 맞이해 오늘 내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빠른 발걸음 속에서 호흡들의 리듬이 점차 가파라진다.

에리는 죽은 나무들이 즐비한 숲을 지나 너머로 보이는 연기를 보고, 뒤돌아 헥헥거리는 병사들을 내리보며 재촉한다.

" 너희도 여기에 묘비 세우고 묻혀볼래? 서둘러! "

""" 제국을 위해-!! """


그리고 사명을 띈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에리치카를 따른 병졸의 행렬 중에서 가장 뒤편에서 눈치보며 따라붙는 세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나는 피그테일로 묶었고, 한명은 흑색 단발, 또 한명은 갈색에 가까운 블론드 장발이었다.


" 거의 다왔어요.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

"거기! 행군중에 누가 잡담떠나 !! "

장교 하나가 세 소녀가 소근거리는 소리를 귀신같이 듣고서 떠나가라 호통친다.

" 죄, 죄송함미다! "

구태여 정체를 들기키 않기위해 우즈키는 어눌한 말투로 그리 답하고 난 뒤, 장교의 시선이 도로 전방을 향한걸 확인하고 한숨을 내쉰다. 미호와 아카네가 걱정스런 눈으로 우즈키를 바라본다. 그녀의 안에 있는 짐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거우리라고 여겨진다. 왕국에 있는 그녀의 빛과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백성들.. 신실한 빛의 충복으로서 진심으로 그녀를 떠받들던 성기사들.
그리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그녀가 확인하러 가는 진실 또한, 그 '친구' 중 하나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 좀 칙칙하긴 해도.. 분명 그 때 들었슴다. 미오짱과 묘역에 대해서 얘기했었으니.. "
" 네, 저는 아카네짱을 믿고있어요. 그리고 반드시 미오짱을 찾아서.. 미안하다고 말할거에요. "

" ...그 때 그건 우즈키 탓이 아님다. 미오짱이 스스로 결단을 내렸던 검다. "

" 그래도.. "

" 조금만 더 조용히 하자. 또 한소리 듣겠어. "

옆에서 대화에 귀기울이던 미호가 그리 말하며 이야기를 뚝 끊는다. 눈에 띄는 행동을 계속하다가 만약에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결코 무사할 수 없으니 과하더라도 필요한 조치이다.

" 네, 미호짱. "

" 일단은 순순히 따라가죠. "

그리하야 세 소녀는, 까마득히 너머의 선두에 선 에리치칵의 발걸음이 빨라짐에 따라 그 페이스에 맞춰 서서히 속도를 맞춰가는 것이었다.
.
.
.


약 30분 후.

묘역의 동쪽 (일명 동 모역).
제국군 탐사캠프.

너덜너덜한 짙은 갈색 망토를 두른 남자가 제국군 문양이 세겨진 천막에서 느즈막하게 걸어나온다. 병력들을 이끌고 천막 코앞까지 다다른 에리에게 그는 선뜻 고개를 숙인다.

" 환영합니다, 지혜롭고 어여쁜 에리치카시여. "
" ... 그 호칭 그만둬주지 않을래? "

미간과 입가에 가득한 주름과, 그 주름을 덮는 덥수룩한 수염. 중년.. 아니, 노년에 가까운 남자의 앞에 선 에리의 눈매가 한층 날카로워진다. 
허나 남자는 그런 에리의 모습을 보곤 오히려 조금 입고리를 올리는 것만 같았다.


" 하하, 이거 참.. 뮤즈께 결례를 또 범하고 말았군요. 그러면, '벌'을 주시는거겠죠? " 

남자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느끼하게 눈썹을 씰룩였다. 에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으 - '하고 의성어가 튀어나올 뻔 하다가 입모양만 그러는 것에서 그친다. 하얀 피부 위로 힘줄이 하나 돋았고, 긴 숨을 한번 내쉰다.

" 그래...얼음 박제형은 어때? "

제안하는 상대로부터 발끝과 손끝에서 성애와 얼음피편이 뿌득뿌득 돋아나는 소릴 듣고서야, 남자는 식은땀을 한방울 훔치며 고개를 크게 가로젓는다.

" 아하하.. 그건 별로 즐겁지 않은지라, 죄송합니다. "

" 됬고. 웨이그리아 녀석들은 어때? "

그녀의 시선은 이윽고 저 너머 고사목들의 너머로 넘어간다. 거리가 멀어 희미하지만 쇠와 나무가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 예상하셨던 대로 경계태세 만반인 상태입니다. 함대를 끌고오신게 위협이 안될수가 없지만 말이죠. "

" 역시 그렇게 나와야지. 입만열면 전쟁이랑 전쟁이랑 전쟁얘기밖에 없는 쌈박질 바보들에겐 이이제이. 힘으로위협하는게 제일이야. "

" 혹여.. 저녀석들을 잔뜩 경계하게 만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



" 들어가려고. "



망설임 없는 에리의 대답에,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 네? "

" 들어갈거야. '저 곳' 으로. "

두꺼운 가죽장갑에 감싸인 손가락 끝이 쇳소리가 나는 방향이 아닌, 고사목들 숲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구조물 같은 것을 가리킨다. 한눈에 봐도 곳곳이 삐뚤빠둘 치솟고 케케묵은 잿빛으로 눌러앉아 버려진 신전이나 고성의 터가 연상되는 모양새였다.
남자는 그녀의 대답을 재차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새파래진다. 아까 전에 얼음으로 위협받을 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함이 서린 떨림이 남자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 지..진심, 입니까? "

" 진심이고 자시고 이제 방법이 없어. 망할 광신교도 잡것들도 우리가 이곳에 온것을 알아. "



남자.. 캠프 파견대의 대장은 진중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면서 응시하다가.. 이어지는 침묵을 삼킨다.

" 어제 조사를 나갔던 탐사대가 아직 안돌아왔니다. 혹시라도.. "

" 그래그래. 장장 4천 하고도 223년을 살면서 그런 고비 얼마나 많이 겪었을 것 같아? "

뭔가 한단계 해탈한 태도로 남자에게 읊조리는 모습이 마치 살날 다된 노인같다는 인상을 적잖아 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제국 안에서, 뮤즈 안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추같은 역할이라는 걸 제국신하들이 다 알고있는 사실이기에, 남자는 쉽사리 그려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 듯 비친다.


" 너도 알잖아? 나는 사실 몇개월 전에 죽었던 목숨이란걸. "

" 그게 그거였죠.. 노브렌드 열차에서 왕국의 기사한테.. "

" 맞아. 언젠가 황제도 넘고 패도의 극으로 달려나가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아야세 에리는 그 때의 싸움으로 이미 죽은거야. 지금의 내게는 그런 욕망같은.. 삶을 지속하기 위한 촉진제 같은건 없어. 다만... "

" ... ? "

" ... 그걸 내가 왜 너한테 다 말해야 하는데 ! "

  
어느센가 생겨난 남자의 몸집만한 얼음 송곳이 이야기를 경청하던 발 바로 옆에 처박힌다. 탐사대 파견대장이 날렵하게 다리 한쪽을 치우지 않았다면 지금즈음 그 얼음송곳엔 다리뼈가 주렁주렁 메달려 피를 흘리고 있었을 터이다.

" 으아아 - 다리 한짝 날아갈 뻔했습니다! "

" 시끄러. 40년 지기 전우니까 이정도로 넘어가준거야. "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지니, 그녀는 얼음조각을 만들어 손바닥에 굴리며 거리며 신호를 준다. 조용히 히라는 신호.
남자는 그렇기에 반박하려던 입을 스스로 때려 틀어막는다.
손아귀의 얼음을 말끔히 지워버린 뒤,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건물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나선다.

" 말은 다 한거지? 그러면 난 간다. "


" 뮤즈께 무운이 함께하길..! " 남자는 정중하게 고갤 숙인다. 에리치카는 슬쩍 고갤 옆면으로 향하며 시선을 그에게 맞추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아까 말한대로. 알았지? ' 라며 말로서 신호하자, 함대 병력들을 인솔하던 장교들이 일제히 병사들을 향해 돌아보며 외친다.


" 여기서부터는 세 함대의 인원들 중에서 오롯 일부만 뮤즈의 길을 함께 갈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수수 올라오는 손들의 창살 사이로, 시마무와 두 소녀도 조심스레 들어보인다. 장교들은 올라오는 손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지는 말을 덧붙인다.

" 뮤즈께서 말씀하시길, 이후 갈곳은 특히나 더 위험한 곳이다! 더군다나 경계지역! 우리가 함선을 끌고 온 덕에 웨이그리아 녀석들이 언제 포격을 해와도 이상하지 않을  박진감 넘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가고싶은거냐 ! "


""" 네 - !! """"


" 정녕 그렇게 가고싶나! 그럼 무작위로 선정해주마 이자식들! 너! 너! 너! 너 ! 그리고 너랑 너랑... "


병사들의 짧고도 기운찬 대답소리의 릴레이가 고사묵 숲 사이로 묵직하게 울린다.

 


잠시 후.
언덕 위 폐허 부근.

사람소리는 없이, 그저 쇠와 가죽들의 발걸음과 고요한 바람만이 불어온다.
죽은 나무들 사이로 혹시라도 작은 벌레의 날개짓이라던가 들릴 법 할것 같았지만, 이곳은 신기하게도 그 어떤 토착생명의 태동도 존재치 않았다. 괜시리 이름이 묘역이 아니라는 듯.. 모든것이 죽어있는 것 처럼 고요할 따름이다.


그렇게.. 소름돋는 정적 속을 나아가던 병력의 앞에 선 발걸음.

에리치카의 철그럭이던 발소리가 어느순간 멈추고, 그 자리에 수신호가 올라간다. 장교들 역시 아무 말 없이 일제히 그녀를 따라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곧 모든 발걸음이 사라져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됬다.

선두에 선 발걸음이 수신호를 든 채로 홀로 조심스레 걸음을 뗀다. 어누세 폐허의 입구에 다다라 있었고, 반파되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위태한 아치 장식물들 아래를 지나 어두컴컴한 통로 안으로 향한다. 그녀가 어느정도 나아가 작게 보이게 되서야, 장교들의 인솔에 따라 병력이 다시 움직인다.

통로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익숙한 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온다. 밟는 바닥도 물과는 다른 끈적한 감각이 들었다. 이윽고, 냄새의 구린 정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에리치카의 발걸음은 멈췄다.

침을 삼킨다. 그리고 시선을 똑바로 정면으로 향했다.

뭔가가.. 어둠 속에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여러개가 흩어져 들러붙어 부패한 냄새를 풍겨왔다. 말라붙은 갈색 얼룩이 천장과 벽 바닥을 가릴 것 없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풍경 안에서 그녀는 제국군 인장을 발견한다.

탐사캠프의 파견대장이 말했던 예의 '돌아오지 않은 탐사팀' 일 것이라 추정된다.

'귀환이 늦어지는 이유가 있었네. ' 에리는 속삭이듯이 혼잣말로 중얼였다.


허나 집중해야 할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강렬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수천년의 경험사이를 스쳐지나간다.

방금의 감상.. 원정대가 돌아오지 못한 것 '따위' 는 안중에도 들지 못할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 썩어가고 말라가는 것들 도중에..... 





....다른 무언가가 서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있었기에 무심코 기둥인가 뭔가 하는것으로 착각했었을 정도로. 그것은 멈춰있었다.

그저 그렇게 멈춰있었지만, 아야세 에리의 수천년 동안 살아오며 체험해온 감각이 그것에게 포커싱을 맞춘 순간 요동친다. 메마른 땀이 콧잔등과 뺨을 타고 흘러 턱에서 맺혀 떨어진다.

작지만 분명하게 떨고있는 그녀의 뒤편으로, 한발 늦게 거리를 두고 따라왓던 병사들의 행렬이 멈춰선다. 에리치카의 어깨와 망토 너머로 보이는 어둠 속에 딱지진 핏자국들을 본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내고 그저 침을 삼킨다.

보기 드물게 그녀의 숨이 점차 거칠어진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동공이 작아지며 애써 그것을 응시하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일그러진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기운. 그것은 [섬 전체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을 수천, 수만배 불려놓은 것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우라 같았다.



아니.. 아니었다. 



판단을 철회한다.. 



에리치카는 즉시 생각을 고쳤다. 




[저것]의 기운이 [묘역 전체를 덮고있었다] 라는게 맞았다.





저것의 아우라가 묘역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라는 말 이외에는 지금 그녀의 등골을 능욕하고 있는 가공할 오싹함이 설명되지 않는다. 
일개 개체가.. 어지간한 나라의 면적만한 땅 전체를 덮을 규모의 아우라를 뿜고있다. 호노카를 괘씸히 여겨 스스로 심판이라 칭하며 나타나던 신들로부터 뿜어지던 기세를 '겨우' 취급할 수준의... 깊고 막대한 격류.

일찍이 신화의 시대에나 존재할법한 것을 그녀는 몸으로 느낌에 치를 떤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런 무겁기 짝이없는 농도의 아우라가 방금 폐허 입구에 들어서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희미했다는 것이었다. 


" ─괴물...인건가...? "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에 그것은 우두커니 선 몸을 서서이 틀어간다. 목소리에 반응하듯.


동시에, 아마도 전성기 시절의 호노카 대제를 적대했을 때 같은 무거운 중압감이 엄습한다. 팔다리가 몇 배 이상은 무거워져 힘을 푸는 순간 주저앉게 될 것만 같다. 
생물로써의 원초적인 본능이 뒤로 물러나라고, 돌아보지도 말고 달아나라고 생존을 위해 소리쳤지만 이성의 추로 애써 억누르며 그녀는 끝까지 목도한다. 자기가 앞장서 나서지 않는다면 제국 그 누구도.. 어느것도 지금 눈앞에 있는것에 맞서리란 불가능 하다...그렇게 자신을 몰아부치면서 까지 결코 뒷걸음 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버티고 선 것에 대한 값을 해주듯. 그것이 고개를 기이하게 꺾듯이 돌려.. 텅 빈 눈이 에리의 수정같은 하늘색 눈동자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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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메마르다 못해.. 창백한 입술을 움직이며 그것은 고했다.


『 돌아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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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후기 코멘트라 한만한게 없군요. 스포를 해버릴까봐...

떡밥은 다음편에 즉시 풀어집니다! 아마도(...)

그럼 다음편에서 뵙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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