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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13장 - 죠가사키 저지먼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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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6, 2018 14:18에 작성됨.

" 뭐... 조무레기? 다시한번 말해봐. "


오오츠키 유이의 얼굴이 일순간 찡그려졌다. 졸개, 조무레기. 그녀가 용병생활을 할 시절부터 가장 듣기싫어했던 어워드 탑 3안에 드는 단어였다.

만일 죠가사키 리카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단어를 자기 앞에서 입에 담았다면, 이렇게 괴롭힐 것도 없이 첫 합에 터뜨려버렸음이 틀림없었을 정도다.

자신의 막대한 힘. 별의 은총으로부터 말미암아 폭발하듯 막강해진 자신의 힘 앞에, 맞선 자들이 감히 그런 단어를 담을 엄두를 못냈음을 자명했었다.


눈앞에 푸른 눈동자가 입으로 내뱉기 전까지는 말이다.



" 죠가사키 용병단의 졸개... 그래, 지금은 별의 졸개네. 맞지? "


" 뭣..! 너 이...! "


기사의, 시부야 린의 발언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한 마디 더 이어졌으며, 동시에 걸음은 진행되어 자연스레 리카와 유이의 사이를 가로막는 포지션이 되었다.


" ...이익..! "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소리가 맞서는 두명에게도 들릴정도로 강렬하다. 자기 이빨을 모조리 씹어먹고있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명하고 귀에 안좋은 소리였다.




그러다가 욱 하고.. 목구멍으로부터 오오츠키 유이의 악이 쏟아졌다.






" ....이 새끼가아아아 - !!!!! "





욱함을 참지 못하고 굴린 발길질에 파동이 실려, 주변 일대 바닥이 갈갈이 쪼개져 터져나가고, 뒤이에 린에게 다가가기 위해 내딛은 다음 발걸음에 실려온 충격에 지면이 또다시 부서진다.

온 세상을 무너뜨려버릴 것 같이 발산되는 파동에 리카는 저도 모르게 움찔한다.

하지만 그 위협적인 파동은 둘에게 닿을 일 없이 시부야 린의 앞에서 모두 멎어 없어졌다. 

그녀의 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푸른 불길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유이로부터 터져나오는 파동은 그녀는 물론 그녀 인근의 땅덩어리에조차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 흠! "


" 헙! "



내지르는 주먹과 낚아채는 손아귀, 거의 동시에 뻗어져 서로 맞닿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뭐야...? 에? "



" 하압! " 유이의 얼빠진 표정을 기다려줄 수 없다는 듯, 주먹을 잡아챈 그녀는 재빠르게 그것을 내팽게치고, 비어있는 안면을 향해 주먹을 메다꽃았다.



" 푸걱...! " 코피가 불꽃놀이 폭죽처럼 터지며 방금 전까지 대지를 처부술듯이 내딛던 두 다리를 휘청이게 만든다.

줄줄이 흘러나오는 코피를 훔치고, 허리춤의 검을 경계하며 물러서는 모습에서는 아까까지의 거만하고 여유넘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태세전환의 주된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주먹에 접촉하고서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몹시 컸다. 마주서있는 당당한 모습을 보며 유이가 혀를 찼다.


" 말도안돼..! 엄마가 분명 네녀석 따위의 불은 내 능력을 막을 수 없다 했는데.. "

" 아 그래. " 즉답이 날아왔다. 마치 학생시절 상대하기 싫은녀석의 말을 억지로 답해주는 듯, 듣기만 해도 불쾌하기 그지 없는 어투였다. 

거기에 한마디 더해지는 말은 더욱이..


" 네 엄마가 너를 과대평가했나보네. "



-빠직.


유이의 안에서 뭔가 끊어졌다.

그녀는 다짐한다.

' 전력을 낸다. '


주인이자 어머니인 빛의 은총을 받은 이후로, 그녀는 단 한순간도 전력을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들었다. 눈앞의 오만한 검사의 도발이 그러한 결심에 불을 지폈다.

결코 편하게 죽여주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 일격을 꽃아넣으면 고통도 모른 채 피보라가 될 것이리라.


다시한번, 한걸음.

지면 사방 팔방에 균열이 벌어진다.

온 천지를 뒤흔들고 찢어발길 것 같은 굉음과 진동이 울려퍼진다.


두걸음


갈라진 땅은 뿌리를 펼치는것처럼 더욱 넓게 갈라져간다.


그리고 세번째 걸음과 함께, 뻗치는 주먹과 일렁이는 파동.



시부야 린은, 온 세상이 뒤짚어질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그저 살짝 입술을 물고 주먹에 불길을 감은채로 이에는 이로서 맞받아친다.



두 주먹이 맞부딪히고 잠시.... 


곧이어 검은 건틀릿이 감싸고있던 주먹 관절과 함께 이리저리 찌그러지며 튕겨나갔다.



" 그그그윽...!! " 분노와 당혹감, 두 감정이 뒤섞여 결코 보기좋은 얼굴은 아녔다. 더군다나 파동의 '파' 자도 나오지 않았다.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순간, 푸른 불꽃에 일순 자신의 주먹이 삼켜지면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는걸, 조금 늦게나마 깨닫는다.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자처하는 짐승의 아가리가,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용지물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자신의 힘을 부정하는 것만 같은 눈앞의 존재를 용서 할 수 없다. 그렇게 여겼다.


건틀릿 철판과 함께 찌그러져버린 자신의 주먹과, 눈앞에 변함없이 있는 기사의 눈동자를 번갈아본다.

이상한 것은 파동이 나가지 않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재생 또한, 눈에 띄게 더뎠다.

우그러진 팔 뿐만 아니라, 아까 전에 타격받은 안면에서 흘러나오던 코피가 아직까지도 입술과 턱 부근을 흐르고 있었다.


" 다시 덤벼. " 용서는 없다는 진중한 얼굴로, 푸른 기사가 도로 자세를 바로잡는다.


" 크그그극....크그그그그그그....!! " 이가 갈린다. 

말 그대로 이빨끼리 가공할 치악력에 부딪혀 부서지며 끔찍한 소음을 내고 부러졌다가 도로 돋아나길 반복하고 있다.

그 사이에 찌그러진 주먹은 느리지만 서서이 도로 재생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십수초의 긴장속에서, 주먹에서 더 이상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되자, 막대한 파동이 유이의 다리밑으로부터 터져나오며, 그녀를 쏘아올렸다.


" 이.. 새새끼가아아아아 - !!! "


주먹이 부서지고 도로 재생되고, 또다시 부서지고.. 시부야 린과 부딪힐 때 마다 데미지를 받는것은 오로지 한쪽 뿐이었다. 부서지도 붙기를 반복하면서 부글거리는 악이 완전히 폭발한다.

화려한 몸놀림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사방으로 파동을 터뜨리며 파괴와 날뜀을 병행함과 동시에 시부야 린에게의 맹공을 끊임없이 퍼붓지만, 푸른 눈동자는 일말의 흔들림 없이 그저 최소한의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전부 카운터 쳐낸다.

쉴 틈 없이 계속해서 파동을 몰아치던 유이의 그런 질풍노도의 러시 사이로 푸른 불꽃을 두른 맹금류의 발톱과 같은것이 솟구쳐 머리 반쪽을 그대로 뚫고 지나간다.


" 어거걱?! "


" ...흠! "


우뇌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 어버버거리는 그녀를 향해 반대편의 발톱이 뻗어나가 가슴팍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뚫는다.


" 나, 나...는...! "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뇌가 날아간 시점에서 즉사였음이 틀림없겠으나, 사도된 몸은 끝없이 깊은 속에서부터 뿌리를 돋아내 결손된 부위를 메꾼다.

찌그러진 양 주먹이 복원되기 무섭게 가슴팍을 뚫은채로 멈춘 발톱을 잡아 뽑아내며 그 반동으로 뒤로 물러난다.


기사는 그런 비현실적인 복원 혹은 소생에 가까운 힘을 목도함에도 여전히 어떤 주저나 떨림도 내비치지 않고있을 따름이었다.


" 나는 별의 자손..! 엄마의 하나뿐인 딸이야! 그런 내가.. 이런.. 이런 굴욕을! "


" 흐-응. 네가 자손? "


" 조류 주제에 주둥이를 -  "


" 그 조류한테 이렇게 얻어터지는 네가, 진짜로 별의 딸이라고 할 수 있을까? "


" 닥쳐..! "


" 정말 불쌍하기 짝이없네. 별의 딸이니 자손이니 뭐라니 하며 이런 상황에서 자기위로나 하고. "


" 이...이이...!! "





" 불쌍하긴. "


" ..이익?!....크....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 "



최후의 이성의 끈 마저도 린의 아무렇지 않게 쏘아붙인 한마디에 끊긴다.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고함소리가 터져오른다. 아니, 이미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별의 짐승의 소리였다.

 


" 죽여버린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리겠어 - !!! "



유이는 다시 발걸음에 파동을 터뜨린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파동은 뛰어올라 닿는 천장에서 터졌다가 바닥으로 향하고, 또 벽을 튕겼다가 또다시 튕겨나가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한다.

마치 제트분사처럼 사방으로 튀어다니는 모습은 그녀가 여태까지 전력으로 싸운 적이 없었기에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행태였다.


" 리카, 가까이. "


" 어... 응. "


멍하니 둘의 싸움을 바라만 보고있다가, 갑작스런 부름에 놀라면서도 천천히 다친 다리를 끌며 린에게 가까이 붙는다.

곧이어 리카가 1m도 안돼는 거리에 들어오기 무섭게, 파동의 반동이 리카가 있던 자리를 처부수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처럼 사방이 울리며 흡사 천둥을 연상시키는 파공음이 터지는 난장속에서, 시부야 린의 푸른 불길은 일관되고 차분하게 타올랐다.


죽여버리고 말 것이라는 무겁고 확연한 살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 중압감이 리카는 체감한다.

하지만 이 옆에 있는 기사는 그런 중압감에도 아랑곳 않는다.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의 잔해마저 모조리 무너트리며 튀어다니면 연이은 파동의 흐름이, 일순간 끊긴다.

동시에, 금발의 형상이 린의 바로 머리 위에 나타난다. 그녀의 양 손아귀는 당장이라도 불꽃을 뚫고 린과 리카를 붙들어 으깨버릴듯이 벌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부야 린은 당황하기는 커녕 차분하고, 또 재빠르게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에 검에서 손을 뗀 뒤 몸을 틀어 위로 향한다.

찰나의 순간에 재빠르게 위를 향한 행태에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못한 유이였으나, 이미 돌이키는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또한 그녀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지 않을 확신. 계속 가속해서, 음속을 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다가가 능력으로 터뜨린다. 

만일 파동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그대로 악력으로 머리를 붙잡아 뭉게버릴 일. 

그리고나서 어머니께 칭찬받고, 치나츠와 디너타임을 즐긴다. 그것뿐이다.

파동이 린의 눈앞까지 터지며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둘이 교차한다. 


바닥에 앞구르기로 가볍게 착지한 유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뭔가 잡히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시부야 린은 미동도 않았다.


바닥에 무언가 툭 떨어졌다.



승리.


드디어 자신을 모욕하고 어머니를 모욕한 새를 찢어발겼다.







...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떨어진 소리 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피가 뿜어지는 불쾌한 분수음이라던가.



뿌득, 뿌득.



대신에 다른 소리가 들린다. 뭔가, 씹어대는 소리. 살과, 뼈와. 금속 째로.




" 어.... 어 ? "


이상한 기분이 심해짐과 동시에, 뭔가 없어짐을 느낀다.

그녀는 양 팔을 올려다 보...




....이지 못한다. 


할 수 없었다.




팔꿈치 아래부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 팔이..? "


곧이어 뜯겨나간 단면으로부터 푸른 불꽃의 스파크가 튀어오르며, 격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 끄아아...! "


참지못하고 흘러나오는 신음.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신음마저 먹어 삼켜버릴 듯한, 으적으적 잡아뜯는 불쾌한 소리.


소리의 근원에는 푸른 불꽃이 있었다.

피가 들러붙은 푸른 손톱이 있었다.

푸른 두 눈동자가, 사람의 치아를 가지고 사도의 팔을 뜯어먹고 있었다.



" 너.. 뭐야.... " 저도 모르게 오오츠키 유이는 그렇게 물었다. 질문을 받는 이는 답하지 않았다.


" 뭐냐고...! " 자신감과, 분노,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했던 비취색 눈동자가 작게 떨린다.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팔을 잡아먹고있는 푸른 눈동자를 보고서 할 말도, 의지도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이 퍼진다.


설상가상으로 평소라면 이미 도로 돋아났어야 할 팔도, 다시 돋지 않았다. 아까전 까지는 머리도, 몸도, 팔도 모두 정상적으로 돋아나고 있었는데.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잡아먹히는 팔로 향할 수 밖에.



" 돌려줘... 내 팔...! "


" .... "


새파란 발톱에 붙들린 팔은 이미 살점이 거의 다 뜯겨 허여멀건 골격이 드러나 있었다.



" 돌려달라니까 !! "



고함치며 달려드는 어린아이 같은 때소리를 내며, 유이는 팔없이 몸을 날린다.

팔에 들러붙어있던 살점을 뜯던 이빨이, 대뜸 침을 한번 내뱉고서 먹던 것을 내던진다.


달려들던 유이의 이빨은 차마 닿지못한 채, 도약하는 무릎에 흉부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진다.



" 끄으윽... 꺼어업....! " 숨쉬는게 불편한지 숨 대신 기괴한 신음만 흘러나온다. 사실 그것 또한 본래라면 순식간에 회복되었어야 할 터였다.

별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팔의 단면에서 돋아나려고 듯 근육의 파편이 경련을 일으키며 떨 뿐 그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솟구치던 검은 뿌리들도 떨면서 스스로 형상을 비비 꼬고있을 뿐이다.

호흡을 겨우 가다듬고서, 오오츠키 유이는 몸을 일으키려고 한다.


일어나서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일어나서 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팅.



쇳소리.


칼끝이 바닥에 떨어진다. 바닥에 대고있는 검신에는 푸른 불꽃이 휘감겨 있었고, 그 불꽃으로 따라올라가니 푸른 검사의 모습이 한눈에 올려다보였다.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림이 멈추지 않고, 저도 모르게 조용히 이빨을 딱딱거린다. 푸른 안광을 눈이 마주치자,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오오츠키 유이는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 날카로운 이빨이 없었다.

먹을 물어뜯을 힘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푸른 검사의 불길이, 마치 짐승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아까 전까지 얕보던 새는 이제 또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녀는.. 오오츠키 유이는 불꽃 앞에서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었다.






먹이다.


먹이였다.



'푸른 새' 의.



" 아, 아아앗... 아아아.... "


순식간에 먹이로 전락한 두려움에 가득찬 눈동자에 당혹감만이 내비친다.


" 이걸로 끝이야? " 검사는 말했다.


바닥이 닿았던 칼끝이 올라간다. 그 끝을 가로로 세워간다. 

칼 끄트머리가 서서히 비취색 눈을 향했다. 불꽃과 함께 나오는 열풍에 그녀의 신실함, 용기, 신앙심.. 모든것이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몸이 떨렸다.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그저 벌벌 떨려올 따름이다.



그녀의 위력, 위압감. 타오르는 화염.

모든것이 이전에 알던 시부야 린의 것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다.

더 이상 싸움이 즐겁지도 않았다. 이미 싸움조차 아니게 된건 아닐까 라는 생각조차 스처간다.


싸움이 아니다.


'사냥' 당한다.


'먹이'가 되어 잡아먹힌다.


그녀로부터 뿜어지는 불꽃은 마치, 일전에 한번 맞붙었던 '푸른 -짐승-현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그 불꽃은 두렵기 그지없다..


' 도망쳐야해 ' 유이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전력이 밀리는데 마땅한 수단 없이 더 이상 싸우는건 무리수. 

아무리 천치같이 흥청망청 지내긴 하지만 그정도는 알고있다. 용병생활은 허투가 아님을 그녀의 그러한 사고가 바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마자, 검을 쥔 두 팔은 기다렸다는 듯 불꽃에 감싸인 칼날을 내지른다. 


두 팔꿈치로 겨우 칼날을 붙드는 것 같이 보였으나, 칼날에서 뿜어지는 불길에 물리쳐지고 목부분을 찔러 꿰뚫는다.

피가 샘처럼 솟구친다. 없는 팔로 뭐든 하려고 바둥바둥 거리지만, 팔꿈치 부분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커...허어.......커.... 살... 려....어.... 조... ㅅ...ㅏ ㄹ...려...죠... "



' 어머니...엄마...치낫츠... 도와줘... 살려줘...! '


고작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경멸과 조롱으로 일관하던 눈동자 속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자신에게 '대드는' 새새끼를 찢어죽여버리고야 말겠다는 앙칼진 마음씨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곧 있으면 자신이 영원히 죽어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에, 절망속에 헤엄치면 마음이 완전히 심해 속 깊은곳으로 철렁 내려앉는다.

엄마에게 칭찬받을 수 없다. 치나츠를 만날 수 없다. 더이상 웃고 떠들 수 없다. 자기가 하던 모든것들을 영원히 할 수 없게되고, 진짜로 죽는다는 미지속에 떨어진다는 현실에 떨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 '공포'가 그녀의 안에 완전히 자리잡은 것만 같았다.


그녀는 먹이로서, 그저 삶을 구걸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

칼날에 찢긴 성대로 어떻게든 하소연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더이상 목소리도 내지못해 꺽꺽거리는 모습을 앞에서.


잠시간의 조용함.


이윽고,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칼날이 천천히 들어왔던 곳의 반대방향으로 빠져나갔다. 




" 네가 빼앗았던 생명들이 그렇게 빌었을때 살려줬다면. "


" 꺼업... ! 꺼으윽...끅..! " 불붙은 쇠가 달구가 간 자리를 매만지며 뚤려버린 목구멍에서 공기를 토해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적의와 한심함이 뒤섞인 눈길로 내려다본다. 

사실상 두 팔을 날려버린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난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녀는 맹렬하게 눈앞의 사도를 해치운다던가 그런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유이의 느꼇던 바 그대로, 린의 시선에 보이는 처량한 그것은 이미 '적'이 아니었다. 


그 이하였다.


 

" 이렇게 되지도 않았겠지. "



뽑아내어 향하고 있던 칼끝마저 도로 내린다. 

다시금 허리춤으로 돌아간 검을 응시하면서, 먹이가 된 그녀는 목을 부여잡을 팔도 없이 끅끅거릴 수 밖에 없다. 

마음 속에 자리잡은 '공포'를 떨쳐낼 리 없이 새의 발톱과 부리가 자기 목숨을 빼앗지 않길 비는 것 밖에.



" 특별히 기회를 줄게. "


평소에 그녀가 했어야 할 말을 지금은 듣고있는 처지. 푸른 검사는 팔짱낀 채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오자 잘려나간 양 팔의 단면에서 다시금 푸른 불꽃이 튀어오른다. 튀어오른 불은 단면과, 그 안쪽으로 열기를 뻗쳐나가 말 그대로 팔을 '구워'버리고 있었다.

기껏 팔꿈치에서 조금 올라붙은 살점들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비명대신에, 구멍뚤린 바람소리만 터져나온다.


" 전부 말해줘야겠어. "


가죽장갑을 낀 검사의 손아귀가 바람구멍이 뚤린 목구멍을 한번 훑는다. 훑으면서 떠나가는 손과 함께 목구멍으로부터 작고 파란 실 같은 것이 흘러 빠져나오고, 거의 동시에 검은 뿌리들이 돋아나, 성대와 혈관을 찢고 뚤린 살점을 메꿨다.



" 유...유이에게... 뭘, 듣고 싶은건데.... "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아진 상황은 그거뿐이라는 것에서 그녀의 마음을 따라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네가 엄마라고 말하는 「별」. 그리고 오니기리교의 목적에 대한 것. "


" 무..무리...무리야.. 유이는 아무것도 말할수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 !! "


그녀의 대답이 오답이라고 말하는듯, 새까맣게 타들어간 단면에서 다시금 불꽃이 피어올라 피부 안쪽으로 근육, 혈관, 골격까지 파고들어 불사른다.

팔짱을 낀 진중한 얼굴에서는 절대 설득되지 않을것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 내비쳤다. 그 의지를 따라 불꽃이 꺼질 줄 모르면서 어깨를 향해 타고올랐다.

고통도 그 어느때보다 선명하여 참을 수 없는 격통이 올라온다. 어째서 여태까지 온 몸이 박살자고 산산조각나는 동안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지가 의아해질 정도의 아픔이었다.


" 엄마에에에에 대해...서어언..! 몰라아아아아아아아 진짜야! 진짜야아아아아아아아 제바아아아아알 멈춰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아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덧붙여서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기세등등 한 척 발구르며 흡수했던 것들은 더이상 주변에 없어. 무슨말인지 알지? "


오오츠키 유이는 바둥거리면서도 그녀의 말에 반응해 갈라진 지면의 균열 바깥으로 튀어나와 부스러져 있는 주황빛 수정조각들을 응시했다.


주황색 수정. 

인간의 생명을, 혼을 재료로 정제된 존재해서는 안될 자원.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되어있고 오로지 오니기리교만 알고있던 사실.

사도들은.. 적어도 오오츠키 유이 본인은 이것들로부터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공급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전력을 낼 때 바닥을 그저 분에겨서 파동을 퍼뜨린게 아니다. 파동으로 지하에 매장된 수정들을 부수면서 그 힘을 축적했었다.

바로 눈앞의, 시부야 린을 짓뭉게기 위해서 구태여 그랬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미 전부 막혀버린 것이다.


이 여자는 전부 알고있다.. 어째서 알고있는것일까..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노렸던걸까.


그 직후, 잠시동안 나지않던 좌절이 응어리진 눈물줄기가 다시 흘러내린다. 아파도 붙들수가 없다, 부여잡을 수가 없다.. 라는 것이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팔을 가눌 수 없는 불편함과 더불어서 그 체감은 더욱이 끔찍해졌다.

그러다가, 거의 어깨 부분까지 뻗어올랐던 불꽃의 고리가 유이의 호소에 반응한건지 멎어든다. 동시에, 그 아랫부분으로 바싹 타들어가있던 숯덩이들이 지면에 떨어져 깨진다.

이제 어깻죽지밖에 남지 않은 유이의 양 팔을 바라보며, 검사가 다시금 통보하길.



" 난 너를 쥐뿔만큼도 동정하지 않아. 말하면 살려주고, 아니면 그렇지 않을 뿐. "


" 히이...히이이익....제발, 살려..살려줘어어... "


잦아든 것 같은 공포가 다시금 심장을 쥐고 쿵쾅쿵쾅 튀어오르고 그녀의 온 몸은 바르르 떨린다. 

살면서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적이 없었기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길 빌 뿐이다. 신앙은 이미 뒷전으로 사라져... 용병시절의 구차하기 짝이없던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심리를 대변하듯 시큼한 암모니아 향이 흘러나왔다.


별빛을 향한 신실하고 광적인 믿음은, 이미 자신을 압도하고 뒤덮은 청색의 화염에 휩쓸려나가고 오로지 목숨의 처신 뿐이었다.

카미조 영지에서 본 신도를 자처했던 구차하고 멍청한 귀족들의 최후와 자신의 모습이 겹쳐가는 것만 같았다.


" 믿어줘어.. 유이는.. 유이는 '선택' 받았을 뿐이야.. 그거뿐이야... 그니깐.. "


" ....그러면, 목적은? " 체념한듯 린은 한숨을 쉬었다.


" 어..엄마의 부활.. 엄마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자리를 찾고있어..! "

" 자리라... "

" 이 이상은.. 후레짱만 알아..! 진짜야..! 그러고보니 너, 후레짱 본 적 있지? 니노미야 머시기를 찾으러 갈 때.. 그 미쳐있는 걔가...케엑! "


민감한 이름에 저도 모르게 반응한다. 니노미야 아스카.

그리하야 꽃힌 목젖으로의 강한 스트레이트. 순간 목 앞부분이 움푹 들어갔다가 작은 각혈과 함께 지체가 앞으로 꼬구라져 몸부림친다.

미쳐있던 여자. 분명 후미카와 함께 니노미야 아스카를 찾아갔을 때, 푸른 날개와 함께 또다른 여자가 하나 있었다.

눈앞에 구역질을 하고있는 이녀석은 그 여자를 말하는 것이겠지, 라고 짐작했다.

목젖의 고통이 어느정도 누그러지니, 유이의 눈은 슬슬 일어나는 고개에 따라 올려다본다.



" 말해줬으니까, 아는건 다 말 했으니까.. 이제...응? 응? 응..? "





" 아아, 그래. 살려줄게. 










'나는.' "






" 엣...? "



그녀의 등 위로 소름이 끼쳐올랐다.


말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린의 뒤편에서 매서운 속도로 무언가 유이의 몸에 부딪힌다. 부딪힌 것은 맹수같은 으르렁임을 멈출 줄 모른 채, 멀쩡한 팔과 멀쩡하지 않은 팔로 그 위로 올라타 목을 힘껏 쥐어누른다.



" 리...캌...! 케겍...! "


" 언니의 !!! 리나의!!!! 미리아의 !!!! 카오루의 !! 모두의 원수 ....! 잘도.. 잘도...! 용서 못해!!! 절대 못해 !! "



사자의 눈으로, 사자의 발톱으로 목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눌러쥔 채 그대로 체중과 완력을 싵는다.

바짝 졸리는 목구멍 너머에서, 작지만 미세하고 파란 불씨가 찰나에 튀어오른다. 


" 케....엑.....크에에에엑....."


" 머저리?! 언니가 머저리라고?! 아니!! 머저린 너야, 너! 너너너너너 ─  너어어어 !!!! "



" 끄...흨....게흑...?! "



" 용서 못해! 용서못해!!! 언니를 돌려줘!! 리나랑! 미리아, 카오루! 모두를 돌려달라고 - !!! "



" 칵...커겈....커어엌...!! "



" 죽어 ! 죽어! 죽어버려! 죽어어어어어어어어 !!!!! "




'투두둑! 뚜둑!' 




목 안에서 들려서는 안될 소리가 들려온다.

주체할 줄 모르는 복수의 열망과 이글거리는 분노가 터진 팔근육과 살점 사이로 솟구치는 핏줄기로 대변된다.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짜내어 오로지, 눈앞에 있는 오오츠키 유이의 목을 졸라 부숴버린다는 일념에 쏟아붇고 있었다.



.

.

.

.

.


목 안쪽이... 뜨거워.. 파란 불... 다시 살아날 수 없어..?!


유이, 영원히 죽어버려..? 싫어! 싫어! 그런건 싫어!


죽고싶지 않아! 나는 아직도 하고싶은게 많은데.. 



복수도 끝났고, 치낫츠도 만나고..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는데 !


이렇게 비참하게..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죽고싶지....



「 ───── . 」







따스한 빛...!




아, 엄마다. 엄마다...! 엄마다 !!!






제발, 이 못난 자식에게 손길을 내밀어주세요 ! 




그 때 처럼.. 다시 한번 그 눈길을.. 그 손길을 ....















「 ─── 쓸모없는 것. 」







어?


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엄마 ?


.....거짓말이지 ? 엄마는 나를 아꼈잖아. 나를 이해해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

 

이런 위험할 때에 도와주지 않는거야? 도와줘, 그때처럼 ─ 





「 돌려받겠다. 내가 건네준 권능. 나의 은총. 그걸로 말미암아 누리던 모든것을. 」





엄마! 제발, 안돼요 제발, 부탁이에요. 말 잘듣는 착한아이가 될게요! 신실하고 좋은 신도가 될게요! 아니, 좋은 사도가 될게요. 엄마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편식도 안하고 돌발행동도 안하고 화도 안내고 불평도 안하고 뭐든지


「 네 역할은 더 이상 없다. 」



앗... 아아. 안돼안돼! 그러지말아요! 그러지 말아줘요 !


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버리지말아줘




「 너는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으리라. 」







.

.

.

.

.

빛이.. 멀어져 ?


구원이 


따스함이 


상냥함이 


사랑이..

.

.

.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



대답해줘요 !


응답해줘요 !


두고가지 말아요 !




엄마...! 주인님..! 별이시여... 아아.. 아아아, 제발, 두고가지 말아줘...


제발.. 내치지 말아줘.. !!! 내 손을 잡아줘 !!!!



도와줘..............


제발 ....




제발, 부탁해요..




나를 버리지 말...아...줘...




엄마..






치..........나....................츠.....................











대....................................장....................................









버...............ㄹ............ㅣ.................지....................말..............ㅏ────────────────────── .



.

.

.



허공을 향해 없는 팔을 뻗으며 웅얼이는 목안에서, 목소리 대신 피가래가 들끓었다.

붙들린 목에서는 투둑투둑.. 뼈가 마디마디 으깨지는 하모니가 연이어 들려온다.


말했지만, 말하지 못했다. 최후의 단말마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자라나는 생명을 무참히 처부수던, 태연자약하던 흉악의 말로가 마침내 다가왔다.


그녀는 심판받았다. 그녀가 이룬 업보에 의해.


떨어진 눈동자는 이내에, 절망을 드러낸 채 선명한 비취빛을 잃고 붉게 변질되어갔다.





린은 검을 허공에 한번 휘둘러, 들러붙은 더러운 피를 털어낸 뒤, 도로 검집에 넣는다.

푸른 눈동자는 리카의 연녹색의 눈을 들여다본다. 방금 전까지 일련의 흐름을 모두 보고있었다.


바둥거리던 어깨가 도로 바닥에 떨어진다. 사도의 온 몸이 살아남으려는 경련이 반복되고, 잦아들다가, 이윽고 더 이상 움찔거리지 않았다.

마지막 최후의 경련까지 멈추기까지 목을 쥐어누르고 있던 팔이 멈추는 움직임과 함께 조르고 있는 손아귀를 해방한다.




" 으아아아아아아아 - ! "




손을 풀고 허공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죠가사키 리카의 얼굴에는 뭔가 텅 비어있는 것만 같게도 보였다.


허망해하는 그녀의 앞에, 거칠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눈동자 속에 빛을 잃은 얼굴이 들어온다.


눈물자국과 핏자국이 뒤범벅이 되어 널부러진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메만진다.

입을 열고 나오는 목소리도, 그녀의 모습처럼 뭔가 힘이 빠지게 들렷다.




" ..이걸로.. 끝난, 거지? 언니...리나...모두들... "


" ... "






" 하아... 유이...유이'언니'..."


리카는 절망속에서 절명한 두 눈을 감기고, 입에서 솟구친 피거품을 흘겨낸다. 

여느 누구에게도 버려진 채 비참하고 무참함 속에서 끊어진 생명의 흔적을 닦아낸다.




" 어째서 그런짓을 한거야.. 어째서.." 


순간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가, 도로 빠진다. 오만 감정이 교차한다.

그녀는 원수다. 

복수를 이뤘다. 

그치만 친한 사이였기도 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도 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든것인가.

어쩌다가 이런 결말에 다다랐는가.


어쩔 줄 모르는 만감의 교차 속에서 그저 긴 숨을 내쉴 뿐이다. 그것 외에는 할 수도, 하고싶지도 않았다.



" 복수했는데.. 상쾌해져야 하는데...왜이런 걸까... 기분이 나아져야 하는데. 어째서..나는.... "



눈이 감기니 마치 지쳐 잠든 것 같은 모습을 바라보며 김빠진 목소리로 그리 중얼였다.

복수 하겠다고, 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녀또한 수라의 길을 달려왔다. 그리하야 마주쳤을 때, 그녀는 너무나 무력했다.

하지만, 도움을 받긴 했으나 결국 복수를 이뤘다. 달성해냈다.


거기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죽은 이에 대한 동정과 옛 추억에 따른 괴로움 뿐이었다. 전혀 쾌적하지 않았다.

차마 원수로 전락했던 생명잃은 지체를 향해 웃으며 욕지거리를 토해낼 수 없는 자기가 답답했다.



" 아직 네가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 


그러한 리카의 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린은 나지막하게 중얼였다.



" 나를...내던지지 않은, 증거? "


" 그래. "


" 아냐! 나는 여지껏 복수를 위해서 모든걸..! "


" ....거짓말. "


" ...! "


" 네 사람들을 무엇보다도 아꼈잖아.. 내 눈을 똑바로 봐. 네가 말하는게 정말로 진실이야? "


린의 마지막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감각, 시부야 린은 마치 그녀에게 부탁하는 것만 같았다. 그 눈길로, 애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리카는 대답하지 않는 그녀에게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시부야 린의 그토록 처량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마치,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비를 퍼맞는 똥개같은 얼굴과 눈빛이었다.


강하지만, 처량하기 짝이없는 눈길을 리카는 그저 바라보았다.




" 사람으로 남아. 괴물이 되지마.. 소중한 이들을...위해서..."



린은 말끝을 흐린다.


마치 자기는 이미 늦었다는 듯이.




도대체 무슨 일일 겪은것인가. 무슨 사건이 일어났던 것인가. 

궁금한건 많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까까지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던 무력감은 없어져있었다.

자기 또한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반드시 해야하는 일.


리카는 질문을 던진다.


" 당신은 이제 뭘 할거야? "


" ..  가야지. " 린은 즉답했다.



" 어디로? "


다시금 물었다.


" 이 모든 것을 일으킨 근원을 찾으러. " 고개는 그저 허공을 향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 그래... "



그리고 침묵.

어색하기 짝이없는 적막이 계속 이어지다가, 깔고앉은 몸뚱아이를 두고 일어선다.

일어서는 팔 중 한쪽은 마구 터져 뼈가 거의 드러나고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 가.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할게. "


" 팔은 괜찮겠어? 엘릭서라도 - . "


린이 약가방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는걸 보자마자 손사래친다. 그리고서 조금이지만, 아주 조금이지만 입고리를 올렸다.


" 이정도는 일주일이면 나아. "


" 그렇군. 그러면, 너는 어디로 향하는거지? " 린 역시 아주 옅은 미소로 답과 질문을 병행했다.


" 언니가 납치당했어...그걸 찾아야해. "

" 납치? 죠가사키 미카가? "


린의 기억에 남아있던 죠가사키 미카는, 사욕이 강하지만 그만큼 동료에 대한 정도 대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했다.

어지간한 파괴적인 능력을 지닌 아이돌이 아니고서는 그녀와 대등하게 싸우는데에 많은 곤혹을 치뤄야 함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교묘하며 기술적인 전투가였다.

린은 신데렐라 혁명 당시에 자신을 쫓던 용병의 대장이자 적으로 한번, 제국군에 맞서 싸울 때 '앱솔루트 나인'이자 동료로서 한 번, 두 번의 목도를 경험으로 그녀의 대단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납치당했다니...보통의 것이 아님을 직감하며, 그녀는 눈동자를 번뜩인다.



" 혹시.. 내가 찾는 것과 네 언니가 연관되어 있을 지 몰라. "


린의 발언에 리카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터덜터덜 옷에 들러붙은 먼지를 털어낸 뒤 몸을 추스린다.


린은 말 없이 망토를 휘날리며 검을 뽑아들고, 휘둘렀다.


검에 감겨있던 불꽃이 뿜어져 불똥이 주변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불똥들 중 한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일으킨 불똥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 한 방향으로 짙은 아지랑이를 피우며 뻗어나갔다. 리카는 이러한 일련의 행위와 현상들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따름이다.


" 네 말이 맞는 모양이야. 분명히 이쪽 방향으로 갔군. 만일 언니를 찾으러 갈 생각이라면 나도 동행하지. 그리고... "


그녀는 가방에서 꺼내려다 말던 엘릭서를 리카를 향해 건네지도 않고 그냥 휙 던져준다. 그리고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낸 리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 ..동행을 허락한다면 엘릭서는 거부하지 마.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  

" ...그래. "


엘릭서를 손에 쥔 채 약간 주저하는 것 처럼 보이다가 뚜껑을 열어젙히고 입안으로 가득 들이붓는다. 약간의 식초향과 더불어, 비릿한 냄새... 이후에 퍼지는 시큼한 향이 입안 가득 번진다.


연이은 파동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터조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 흩어져 버린 지금 그녀가 더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 역시 없다.

그런 터전을 뒤로하고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떠나간다.



" 나중에 지옥에서 봐. "



바닥에 널부러진 지체를 향해, 한 때 복수의 대상이었던 것을 향해, 담담하게 작별을 고하며 걸음은 멀어져갔다.

그것은 그녀의.


죠가사키 리카 나름의 심판(Judgement)의 결말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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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가사키와 오오츠키 유이의 악연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갑툭튀한 새에게 복수의 태반을 빼앗겼다는건 조금 석연찮은 부분이지만.. 리카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갑자기 파워업! 으로 사도인 유이를 무찌르는것은 더 말이 안됬는지라 이렇게 스토리를 진행했습니다.


그나저나 린의 파워가 너무 강한거 아니냐구요?

그녀가 그러한 강함을 얻은 아래의 이야기들(링크) 에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데렐라 판타지 제 9장 - 사냥 1편>

<신데렐라 판타지 제 9장 - 사냥 2편>

<신데렐라 판타지 제 9장 - 사냥 3편>

다만,

유이와 죠가사키가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죠가사키와 오니기리교 사이의 이야기는 아직 이어집니다.


납치당한 미카를 찾기위해..

그리고 동행한 목적지에 분명 뭔가가 있으리란 확신을 가지고 함께하는 린.


그 이야기는 조금 텀을 두고 이후에 이어질 예정이니 잠시 한숨 고르셔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음 장인 제 14장에서 뵙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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