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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 우즈키] 첫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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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7, 2018 21:57에 작성됨.

유의사항

1. 상편 있습니다! 보고 오셔요!

2. 오리캐 등장

3. 우즈키의 양성소 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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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건.”


 길을 지나가던 우즈키는 길 건너편을 걷고 있는 나츠키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연한 만남이 기뻐 문자라도 보낼까 싶던 찰나, 그의 옆에 누군가 나란히 걷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아이였다. 초등학생쯤 될까. 근데 뭔가 이상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은 불안했고 시선도 이상했다.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이 모든 몸짓에서 정상이 아니라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쟨 누구지? 누구길래 나츠키 씨와 같이 있을까?
 그때였다. 남자아이가 갑자기 몸을 이상하게 꺾더니 그대로 중심을 잃고 꼬꾸라졌다. 나츠키는 빠르게 그를 잡아 넘어지지 못하게 막았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멈춰 섰다.
 깜짝 놀란 우즈키는 때마침 파란불이 든 횡단보도를 건너 그들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나츠키는 우즈키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나츠키의 표정은 우즈키가 처음 본, 그의 당황한 표정이었다.
 
 “우즈키? ...갑자기 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빠, 빨리 구급차를......!”


 우즈키는 휴대폰을 꺼내 허둥지둥 다이얼을 눌렀다.
 갑자기 격한 노성이 울렸다.


 “하지마!!!”


 우즈키는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 그 나츠키가, 소리를 지르다니. 저렇게 화난 표정을 짓다니. 믿기지 않았다.


 “......나츠키 씨?”


 우즈키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츠키는 이성을 되찾은 듯 화난 표정을 거뒀다. 그리고 그 자리는 씁쓸한 미소가 메웠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나츠키의 말대로 뻣뻣하게 꺾여있던 남자아이의 몸이 점점 풀어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곤 말했다.


 “이이이!!! 아으에아으!!!”


 침을 잔뜩 흘리며 옹알이 비슷한 것을 외치는 아이. 그를 보며 우즈키는 한 사람이 떠올렸다. 자신에 반에 있는 지체 장애인.
 순간 우즈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츠키는 언제나처럼 옅게, 하지만 평소와 달리 쓰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 정말로.”
 “......네.”
 “그럼 가볼게.”


 나츠키의 발걸음은 우즈키에게 서둘러 멀어지려는 듯 빨랐다.



   *   *   *


 그날 이후, 다시 만난 나츠키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게 마치 ‘그때 본건 언급하지 마라.’ 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져서, 우즈키는 정말 그날 나츠키를 만나지 않은 것처럼 그를 대했다.
 물론 궁금은 했다. 그는 누구일까?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은 가족이리라. 동생일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나츠키가 원하지 않기도 했고, 근래로 다가온 오디션 때문에 여유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대형기획사 961프로덕션에서 실시하는 오디션에 양성소 학생 전원이 참가하게 되었다. 대형기획사 오디션은 흔치 않은 기회다. 연습생이라면 누구나 잡고 싶어 하는 자리다. 양성소의 학생 전원이 연습과 레슨에 몰입했다. 과열된 분위기 속, 우즈키와 나츠키도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레슨사이의 쉬는 시간, 복도에 있는 자판기 옆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온몸은 땀투성이로 속옷의 털 한 올까지 다 젖어버린 듯했다. 평소의 배에 달하는 연습량. 명백한 오버트레이닝이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마음이 ‘이제 그만해.’라고 말할 때마다 악을 쓰며 외쳤다.
 ‘이번엔 반드시 돼야 해!’

 우즈키는 여자연습생 중 연습생기간이 가장 길었다. 같은 시기에 양성소에 들어온 동료들은 이미 데뷔했거나 일찌감치 접고 양성소를 떠났다.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데뷔한 애들은 전부 예쁘고 재능 있는 애들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한 애들은 못났느냐? 적어도 우즈키의 눈엔 절대 아니었다. 전부 자신보다 빛나던 아이들뿐.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걔들도 못했는데 난 할 수 있을까?'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의문은 우즈키의 마음을 좀먹었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믿음이 전부 헛수고가 될 까봐 사무치게 무서웠다. 미쳐버릴 정도로.
 이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결과를 내는 것뿐이다.
 
 “돼야해돼야해돼야해돼야해돼야해.......”
 “......즈키?”


 데뷔, 데뷔뿐이다. 더 이상은 이럴 수 없다. 이번 오디션은 반드시......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우즈키!”
 “네, 넷?!”


 갑자기 들려온 부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이온음료 캔을 양손에 하나씩 든 나츠키가 서 있었다.


 “왜 그래? 고개는 푹 숙이고 대답도 않고. 어디 아파?”
 “아...... 아니에요! 그냥 연습 땜에 지쳐서.”
 “그럼 다행이고. 자 받아.”


 나츠키는 캔 하나를 우즈키에게 건넨 다음 그녀의 옆에 앉았다.


 “고마워요.”
 “음료수 하나 가지고 뭘. 그보다 연습은 어때?”
 “......글쎄요.”


 우즈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캔을 양손으로 감쌌다.


 “열심히는 하는 데요....... 하하...”
 “......다 똑같네. 열심히는 하는데 잘 모르겠는 건.”
 “......나츠키 씨도 그러세요?”


 의외였다. 나츠키는 양성소 내에서도 상급의 실력을 가진 연습생이다. 그런 사람들은 확신에 차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나츠키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지. 이 양성소에서. 아니, 데뷔를 꿈꾸는 모든 연습생들 중 안 불안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잖아.”
 “......그렇죠.”


 씁쓸한 정적이 흘렀다. 이따금 나츠키의 홀짝거림만이 울렸다.
 나츠키는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말했다.


 “그래도 우린 연습해야지 계속.”


 그건 지금 우리가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네!”
 “그럼 갈게. 열심히 해.”


 의자에서 일어나 멀어지는 나츠키에 등에 우즈키는 외쳤다.


 “저희 둘 다 꼭 합격해요!”


 돌아본 나츠키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후, 우즈키는 인생에서 이렇게 열심히 몰두한 적이 없다 자신할 만큼 열심히 연습했다. 다리가 풀리고 생리통으로 허리가 빠질 것 같아도 참았다. 사소한 힘듦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합격하자고 약속했으니까.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오디션 날 당일, 우즈키는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머릿속으로 스탭과 춤선, 노래의 음계를 되 뇌이며 오디션장으로 향했다.
 오디션장 앞, 우즈키와 나츠키가 마주쳤다.


 “안녕.”
 “안녕하세요.”
 “컨디션은 어때?”
 “완전 좋아요.”
 “그래, 그럼 가자.”
 “네!”


 오디션은 남녀 별도로 진행됐다. 휘양찬란한 건물의 1층 구석에 있는 복도 끝에 마주 보고 위치한 두 개의 방에서 각각 진행되며 대기자들은 복도 벽에 붙어 쭉 놓인 파이프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식이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연습생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다들 아는 얼굴이니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모두가 간절한 상황에 긴장감이 풀어진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윽고 양옆 문에서 깐깐해 보이는 사무원이 한 명 씩 나왔다. 옅게 깔려있던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럼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들어오십쇼.”


 호명된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갈 때마다 가까워져 오는 자신의 순서에 우즈키는 긴장감을 억누르려 애썼다. 괜찮아. 연습했잖아. 진정하자. 진정.
 그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띠리링~. 띠리링~.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 모두가 벨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마토 나츠키였다.
 나츠키는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우즈키는 놀란 심장을 다스리려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전화하는 나츠키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리는 게 아닌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우즈키는 차마 다가가진 못한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나츠키는 우즈키의 시선도 눈치채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전화 속 누군가와 대화했다.
 이윽고 전화를 끊은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곤 갑자기 땅을 박차고 일어나 출구 방향으로 달렸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경악한 우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나츠키 씨?!”


 우즈키에 부름에 멈춰선 나츠키가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눈물이 고여 있고 표정은 당장에라도 울 듯 일그러져있었다.


 “갑자기 어디 가는 건가요?! 곧 차례잖아요!”


 나츠키는 우즈키에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뒤돌아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잠, 나즈키 씨!”
 “다음 우즈키 씨 들어오십쇼.”
 “예?!”


 때마침 찾아온 우즈키의 차례.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나츠키가 달려간 방향과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사무원을 번갈아봤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사무원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안 들어오십니까?”


 날카로운 어조가 우즈키의 심장을 관통했다.


 “...가, 가겠습니다.”



   *   *   *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우즈키는 혼이 빠진 듯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음정은 틀리고 댄스 중엔 넘어졌다. 질문엔 뭐라 답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실수한 나를 보며 한심하단 듯 키득거리던 심사위원들의 표정만 머리에 생생히 남았다.
 갑자기 시야가 물기로 흐릿해졌다.


 “......아. ......진짜.”


 고개를 하늘로 젖혀 눈물이 떨어지는 걸 막았다. 하지만 결국 눈물은 볼을 타고 떨어졌다. 한 방울은 기폭제가 되어 뚝뚝, 하염없이 뚝뚝 흘렀다.
 억울했다. 모든 게 다 억울했다. 오디션을 망친 것도.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바보같인 무식하게 연습한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제 실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다른 응시생들에 비해 특출 난 수준은 아니었을 거란 사실이 너무나 분했다. 매일같이 보니까 안다. 사무치게 안다. 양성소에서 나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 그 자체란 것을. 남들보다 오래 했는데도 특출나지 않다는 것을.
 당당히 합격해서, 나츠키 씨와 함께 합격해서. 기뻐하고, 서로를 축하하고 싶었다. 준비 기간 동안 지칠 때마다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버텨왔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았다. 난 꼴사납게 떨어졌고. 그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전부. 전부 헛수고였다.
 집에 도착한 우즈키는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안에서 “우즈키니?” 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 하지 않았다.


 “얘가 왜 대답을.......”


 퉁명스럽게 문을 연 엄마는 우즈키의 표정을 보고 말을 잊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슬픔으로 범벅이 돼 엉망이었다. 우즈키는 터지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엄 ...마아.......”


 서럽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코를 먹는 딸은 본 그년 안쓰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양팔을 벌렸다.


 “고생했어. 우리 딸.”


 엄마의 품에 안긴 우즈키의 통곡이 오랫동안 허공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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