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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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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3, 2018 00:01에 작성됨.

오랜만에 들어오는 이 곳은, 많이 낯설었던 거야.


미키는 낡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봤어. 전에만 하더라도 미키, 언제나 여기서 기분 좋게 쿨쿨 자고 있거나 했지만.....지금 와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네. 그저, 먼지 가득한 가죽 커버를 몇 번 쓸어보거나 할 뿐.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렇게 중얼거려보지만, 실은 알고 있어. 여긴 이제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장소가 되었다는 걸. 이곳의 원래 주인이었던 765 프로는, 이제 제대로 된 곳으로 이사해버렸으니까. 미키, 언제 한 번 거기로 가보기까지 했다구? 961 프로 같이 무지무지 높고 크고 빠방-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곳이었어. 이제야 좀 아이돌 얼티메이트의 우승자가 나온 곳답게 되었다고 해야할까나.


.....응. 그렇네.


그래서 거긴, 끝까지 들어갈 수 없었어.


문 하나만을 놔두고, 이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미키는 문고리를 붙잡아 돌릴 수 없었어. 왜냐면 미키, 961 프로였으니까. 그동안 프로듀서에게 욕심내고, 치하야 씨를 오해하고 또 오해해서 두 사람을 상처입혀버렸으니까. 이제와서 뻔뻔하게 얼굴을 보이기에는 참 면목 없는 거야~


그렇다고 또 961 프로에 돌아갈 수도 없었어. 그거야, 결국 져버렸는 걸. 치하야 씨에게. 쿠로이 사장은 드물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고는 했지만, 미키가 거절했어. 더 이상 모두의 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우우움.....그래서 결국 미키는, 961 프로에도 765 프로에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붕 떠있었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나도 몰라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봤어. 차라리 아이돌 같은 건 이제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만둔다고 해서 혼내는 사람,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하지만 싫었어.


미키, 역시 아직 아이돌 하고 싶은 걸! 그렇게 그만 두는 건 좀 비겁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리고......역시 765 사무소로 돌아가고는 싶었으니까.


.....그치만 역시 두려웠어.


치하야 씨, 미키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프로듀서도 모두가 미키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어. 그 말들은, 틀림없는 진심. 하지만 미키는 믿을 수 없었어. 진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을 수 없었어.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무서움이 한 조각 남아있었어. 만약 미키가 765 프로의 모두와 다시 한 번 만난다면.....특히, 치하야 씨와.....그걸 상상하면 할수록, 언제나 나쁜 쪽으로 흘러가기만 할 뿐.


그래서 미키는 아무도 없는 '옛날' 사무소에 들어온 거야. 이거라면 765 프로로 돌아왔으면서도, 치하야 씨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는 거니까. 아핫, 미키 나름대로의 묘안인 거야.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맹점이네.


".....역시, 아닌 걸까."


이상하게도 미키가 쭉 가지고 있던, 끝까지 버릴 수 없었던 열쇠가 딱 들어맞긴 했지만. 여전히 불이 들어오고, 책상이나 각종 케케묵은 서류 같은 것들도 그대로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돌아온 건 아닌 거였어. 이런 건 그냥 도망치는 것에 불과해. 응,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됐어. 그만두자. 집으로 갈래. 미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렇게나 내팽겨쳐둔 가방을 주워들려고 했어.


끼이익- 


그런데.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미키는 깜짝 놀랐어. 뭐, 뭐뭐뭐지? 귀신? 노숙자? 여기의 새로운 주인?  너무 놀라서, 그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린 미키에게, 또 다른 소리가 다가왔어.


"누, 누구.....잠깐, 너....."


담아두었던 것을 겨우 꺼내는 듯한, 조금 쇳소리가 섞인 것 같은 목소리. 안 돼. 미키, 빨리 일어나야 해. 도망쳐야해.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 미키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어. 이제부터 미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저 목소리가 들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렇게 주문을 걸고는 슬쩍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했어.


"미키."

"우....."


하지만 별 소용 없었어. 그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이, 이곳의 유일한 출입구를 떡하니 가로막아버렸으니까. 그 사람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왈칵, 하고 미키 안에서 솟아나는 무언가. 미키의 눈 앞을 살짝 흐리게 만들어. 그런데 있지, 참 신기하단 말야. 왜냐면 그 안에서도 오히려 선명하게 그 사람이 미키를 똑바로 바라보는 모습이 훅 번져왔거든. 단정한 두 갈색 눈이 보내오는 곧은 시선이.


무서워.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미키는 곧장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어. 그리고는 또 한 번 주문을 걸었어. 이제부터 미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앗, 이러면 모든 게 보이지 않을 테니 곤란하려나.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이제부터 미키는 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야. 좋아, 이거면 됐지? 


미키는 겨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는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발을 딛었어. 어디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도중에 무언가와 툭 부딪쳐 좀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어. 미키는 조금 옆쪽으로 피하고는 또 한 번 걸었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낡은 철제 문. 이 사무소의 유일한 출입구. 저 문고리만 잡으면 미키는 이제......


이제, 뭐?


"미키!"


미키가 멈칫했을 때랑, 무언가가 뒤에서 내 팔목을 확 잡아챈 것은 거의 동시였어. 처음에는 조금 아팠지만, 곧 어쩐지 안심이 되어서, 미키는 그만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버리고 말았던 거야.


"다행이야."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 들려왔어. 만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목소리로.


"생일이 지나기 전에 돌아와줘서."


.....아니, 실은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의 목소리였어. 여태까지 상상해왔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 순간 환청을 들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자상했어. 생일.....?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불쑥 꺼내드는 그 소리에, 미키는 조금 열이 오른 두 눈으로 벽을 봤어. 사람이 없었던 것치고는 착실하게 걸려있던 달력이 조금 뿌얘진 시야에 들어왔어. 아, 맞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치하야, 씨...."


팔목을 붙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풀려나갔어. 그것만으로도 허전한 기분이 들어서, 미키가 빙글 몸을 돌려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어. 이제야 그 사람의 이름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렀어. 그렇지만 잿빛 소매자락만을 안타깝게 스치고 마는 손 끝. 안 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겨우 만났는데 다시 멀어지게 되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


"후후, 하마터면 축하도 제대로 못 해줄 뻔 했네."


그대로 힘없이 내려가려던 손을, 미키하고는 또 다른 두 손이 조심스럽게 감싸쥐었어. 그 사람- 치하야 씨답지 않게 살짝 농담이 섞여들어간 말도 함께. 미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바로 치하야 씨의 팔 안으로 뛰어들었어. 


"치하야 씨, 치하야 씨, 치하야 씨....."


몇 번이고 치하야 씨의 이름을 불렀어. 그래도 뭔가 부족해서, 치하야 씨의 옷자락을 강하게 부여잡고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품 안에 부볐어. 그동안 쭈욱 혼자서 품고 있었던, 두려움, 슬픔, 외로움....미키로서도 정확히 콕 집어낼 수 없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한바탕 쏟아내고 말았어.


"웃, 흐윽....크응."


그런지 얼마나 지났을까. 미키가 훌쩍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 미키는 조금 무서워졌어. 갑자기 끌어안아서. 옷을 눈물로 엉망으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쭉 도망쳐왔던 주제에 이제 와서 미키 좋을대로만 굴어서. 


그래서, 치하야 씨를 화나게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미키는 아직 남아있던 울음을 억지로 집어삼키고는 슬쩍 위를 올려다보았어. 그렇다고 해도 이미 너무 많이 울어버려서일까, 분명 가까이 있는데도 흐릿하게 보이는 치하야 씨의 얼굴. 웃지 않고 있어. 겨우 그것만 짐작가는데도, 미키 안에서는 멋대로 결론을 만들어버려. 치하야 씨, 화났구나. 미키가 귀찮고 싫구나.


그러니까, 자. 이렇게. 치하야 씨가 손을 놔버리잖아. 


멋대로 생각해낸 결론을, 현실이 따라잡는 순간. 미키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마음이 차분해졌어. 미키의 가장 깊은 안 쪽에 차가운 얼음덩이가 억지로 들어와버린 것 같다고 해야할까나. 들떠올랐던 기분이, 억지로 가라앉아버리려는 그 때.


"그, 그렇게 울지 않아도.....자, 난 여기 있으니까."

"에....."


뭔가가 미키를 둘러싸는 것 같았어. 그게 치하야 씨의 두 팔이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서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치하야 씨가 툭툭하고 등 뒤를 두드리고 있었어. 조금, 어색하게. 치하야 씨답게.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앞으로도 쭉 미키, 네 생일을 축하해줄테니까."


그러니까 이젠.....울지 말아줘. 여전히 치하야 씨다웠던, 마지막 그 한마디는 미키를 정말 놀라게 만들었어. 그리고 미키를 그 어떤 것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기쁘게 만들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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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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