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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 Welcome, 765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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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0, 2018 15:47에 작성됨.

여담이지만, 카나가와 현의 니노미야라는 동네는 1st 비전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시골 촌동네는 아니다. ...흔한 맨션 하나도 보기 어려운 동네이긴 하지만. 아이돌마스터1에서 처럼 편의점가는데 자전거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좀 걸어가야 하는 건 맞지만. 아무튼, 여기에서 도쿄까지 통근하려면 까마득하다. 편도 2시간. 조금 세계선을 비틀더라도 자취하고싶다. 



문제는 이 동네가 765 프로덕션의 사무실이 있는 도쿄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예능 사무소와는 관계가 있을리가 없고, 촬영같은게 진행되는 해변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765와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지원을 해야하나? 그러기엔 765 프로덕션 자체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조금 찾아봤지만, 전화번호 정도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전화를 하거나 이력서를 송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생각을 하면 할 수록 고민만 깊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며칠 지나지 않아 종식되었다.



"자네! 팅하고 왔다!"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정체!

평소처럼 주변을 달리고 있는데 붙잡혔다. 

원판이 원판인지라 가끔 이상한 것들이 꼬이긴 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고대하고 있던 대사였으니. 근데 어느 쪽이지? 회장님? 사장님? 외견을 본 적이 없으니 알리가 있나. 항상 새카맣게 나오거나 음영진 각도로 밖에 못봤다고.



누구세요, 하고 물어보니 핫핫 웃으며 명함을 주었다. 회장님이었다. 

타카기 준이치로 765프로덕션 사장. ...대체 그 손톱만한 사무소에 사장도 있고 회장도 있을 필요가 있나. 어른의 사정임을 알긴 하지만 좀 웃겼다. 아직은 준지로 사장님이 아닌 준이치로 회장님이 사장으로 있으면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아마 2010년인가 11년에 어른의 사정으로 바뀌었을 거다. 여기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싶다. 



도쿄에 있는 사무소의 사람이 왜 카나가와까지 왔는지, 어째서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인지 물었다. 평범하게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 왔다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리고 역시 이유따윈 없이 '팅 하고 왔으니' 스카웃을 제의했다고 한다. 원판에서는 이미 765에 소속된 상태로 스토리가 진행되다보니 스카웃 제의되는 내용까지는 몰랐는데, 정말로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 뿐이었다.

...저거 스카웃 성공률 0% 아니었나?

생각을 할 수록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뭔가 맥이 풀리는 느낌에 우선 명함을 받고, 부모님께 상담을 해보겠다고 했다. 다소 과보호가 심한 우리 부모님이기에 이야기는 해봐야 할 것 같다. 뭐, 안된다고 해도 할거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그것은 진리. 그런데.



"안 돼."



...네?

오늘 놀랄 일이 좀 많다.

어머니께서 반대하실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괜찮다는 의견이셨다. 험난한 연예계지만 그래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도쿄까지 왔다갔다 하는 거리, 미성년자라는 점, 그리고 가장 큰 것은 현재의 내 상태. 사실 불안요소는 차고 넘쳤다. 어쨌건 나는 아직 14살의 중학생 여자 아이였고(물론 안 쪽은 그렇지 않지만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 거리를 감수하면서 고등학생 생활과 아이돌 준비를 병행하기는 누가봐도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나는 기억 상실과 언어 능력 소실을 가지고 있는, 절찬리에 재활 치료 중인 환자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과보호 중인 어머니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부활동을 하지 않으면 도쿄로 갈 시간은 충분하고, 가능한 한 막차 시간 전에는 돌아오도록 하겠다. 미성년자이니 만큼 귀가와 관련한 부분은 사무소와도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머니께서 직접 말씀해주셔도 좋다. 아직은 연습생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 까지는 늦을 일도 없다. 이후에는 그에 맞게 다시 계약을 갱신하는게 맞다. 이 부분도 확실하게 짚도록 하겠다. 댄스 레슨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은 재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등등.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고, 내키지는 않는 표정이지만 우선은 딸이 힘내겠다는 일이니 어렵사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간바리무새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너에게 빨강의 계보를 넘기기엔 아직 이르다! 라기보단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



그렇게 저녁 내내 벌어진 가족 회의를 통해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드디어, 아이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도쿄로 향했다. 일단은 계약을 위해서였지만, 겸사겸사 쇼핑도 할 예정인 것은 안비밀.

내가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미소녀다. 뭐, 왜, 뭐. 칙칙한 남정네가 대강 입는 옷과는 다르다. 옷걸이가 좋으니 뭘 입혀놓아도 어울린다. 평소에는 집에 있거나 기껏해야 운동하러 나가는 것 뿐이니, 주로 간편한 의상이었다. 아니면 트레이닝복이거나. 그것만 입어도 맵시가 난다. 여담이지만 셀카도 꽤 많이 찍었다. '이전'에는 카메라를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비주얼도 아니었고. 지금은 다르지. 어떻게 찍어도 괜찮다. 셀카 찍는 맛이 난다고 해야할까. 그러니 어찌 꾸미는 것에 맛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는 도쿄로 출근 도장도 찍어야 하니 외출복도 좀 사야할 것 같다. 원래 입던 옷도 있지 않냐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765 프로덕션이 있는 건물 앞에 서니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응.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 내가 봐도 이게 정말 뭔가 하는 회사인가 싶긴 하거든. 간판도 없지, 표시라고는 창문에 붙여진 덕지덕지 테이프의 765라는 글자. 건물은 낡아빠졌고 엘리베이터는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거 고장났던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다시 물어봤다. 정말 이런데가 괜찮겠냐고.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해보고 결정하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하고,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아직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여기서 엘리베이터까지 고장나있었다면 얼마나 더 엄마 표정이 썩어들어갔을까. 

밖에서 볼 수 있었던 창문처럼 덕지덕지 765라고 써있는 문이 보였다. 똑똑,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코토리 씨가 집중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보고있긴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다. 저 썩은 새, 또 무슨 이상한 딴 짓을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저기, 하고 어머니가 인기척을 내자 코토리 씨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나, 깜짝이야! 아하하, 죄송합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사장님에게 스카우트되어 왔고, 계약 건 확인 차 직접 왔다고 전했다. 분명 어머니께서 사장님과 연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약속 시간도 맞춰서 왔고. 

코토리 씨는 죄송하다며 녹차와 다과를 내어왔다.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나이가14살이다보니 평일 오전에 올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딱히 그렇게 불편했던 것도 아닌데. 그래도 코토리 씨 정도로 비주얼이 되는 사람이 울상을 짓고 있으니 이건 이것대로... 이상한 데로 빠지지는 말자. 어차피 허구헌날 봐야하는 얼굴이다. 765 Allstars+ 인원 모두 한가락 하는 비주얼의 소유자다. 침착침착. 

조금 기다리고 있으나 사장님이 누군가와 같이 나왔다. 살짝 일어나 인사를 하고 보니 파인애플이었다.

파인애플은 아니고 지금은 포니테일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인 타카기 준이치로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765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있는 아키즈키 리츠코라고 합니다."



사장님과 리츠코 씨가 어머니와 인사를 했고, 나는 사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했다. 리츠코씨, 지금은 현역이었구나. 아카바네 P가 오기 전에 프로듀서로 전직하게 되니 1년 안에는 그만 두겠네. 저 비주얼로 왜 아이돌을 그만둔거지.



"저..."



네? 하며 화들짝 놀라 답변하니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냐며 민망해한다. 너무 빤히 쳐다봤나. 죄송합니다, 현역 아이돌을 직접 보는건 처음이라서...하며 둘러대니 부끄러워한다. 아, 귀엽다. 쁘띠 피망 씨의 기분이 쳐 되는거에요!



어찌됬건 소규모라도 솔로 라이브를 하고 있는 아이돌을 직접 보게되니 어머니께서도 다소 안심이 되신 것 같다. 통근 시간이나 사무소의 지원 등에 대해 사장님과 이야기하고는, 나를 보며 정말 할거냐고 다시 한 번 물어보셨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알았다며 계약서를 확인하고, 사인했다. 

내 사인도 들어가긴 했다. 딱히 의미가 있나, 근데? 어차피 미성년자의 계약 대행 주체는 보호자인데. 그러고보니 하루카 사인이 어떻게 되더라? 'あ'자를 휘갈기는 느낌이었는데...음. 고민해보자.



사장님과 어머니가 따로 대화를 하기 위해 사장실로 들어갔고, 나와 리츠코 씨는 소파에서 따로 이야기를 했다.

정말로 아이돌을 할거냐며, 힘들거라고 이야기하는 리츠코 씨에게서는 진정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현역 아이돌이기도 하고, 아마도 프로듀서로 전향할 생각도 하고 있는 시기일테니 새로운 아이돌 지망생이 걱정스럽겠지. 선배님이시니 편하게 부르라고, 하루카라고 불러달라고 했더니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선배님'이라는 칭호가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이후에 '리츠코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놀렸더니 혼났다.



어머니가 사장님과 이야기 하는 동안 리츠코 씨, 코토리 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의 765 프로덕션 인원 구성이라던가 (그래봤자 나 포함해서 4명 뿐이지 않나?) 리츠코 씨의 활동, 추후 일정이나 활동 내용이 어떤 걸지에 대한 리츠코 씨의 경험담 등. 코토리 씨에게 학교에 나가고 있지 않아 당분간은 오전부터 오게 될거에요, 라고 했더니 놀랐다. 깊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조금 고마웠다. 저럴 때 보면 어른이긴 한데. 



본격적인 사무소 출근은 다음주부터 하기로 했다. 레슨 계약 문제라던가 하는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코토리 씨와 리츠코 씨에게 '다음 주에 뵐게요~' 라며 인사하니 표정이 밝아졌다. 아니, 코토리 씨는 표정이 발그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저 썩은 새.






스마트 폰을 샀다. 아이폰 3G다. 음악 플레이어가 주요 용도가 될 것이니 16기가로 했다. 어차피 오며가며 음악듣는 것 외에는 딱히 쓸 일도 없다. '이전'에도 딱히 듣지 않던 아이돌 노래를 듣게 생겼다. 아이돌마스터 노래도 아이돌 음악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한국의 노래는 내가 알던 것과 동일한 것 같다. 한창 아이유 붐이 불고 있었다. 나중에는 한국 쪽 아이돌과 콜라보레이션이라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적당히 한국 노래와 '이쪽'의 아이돌 노래를 구매하여 넣고 익숙해지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신칸소녀도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아직 데뷔하지 않은 것 같다. 애니마스에서는 얼굴만 비췄지 음악도 나오지 않아서, 한 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나중에 데뷔하고 나면 찾아봐야겠다. 코토리 씨의 곡과 리츠코 씨의 곡도 찾아서 넣었다. 타카네 보다도 커버곡이 많은 코토리 씨다보니 곡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체 왜 아이돌 그만 둔거지? '아침놀은 황금빛'은 한창 연재되고 있던 와중이다 보니 자세한 내용까지는 보지를 못했다. 그러고보니 플래티넘 마스터까지도 커버곡이 추가되던 코토리 씨 인데, '저쪽'에 신규 음원이 나오면 '이쪽'에도 추가되려나? 모르겠다.



'이전'에는 군대 가기 전 까지 통학을 했다. 지금처럼 편도 2시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시간 30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다. 2년 정도 하고나서 복학 후에는 포기했지만. 다른 것 보다 막차 시간을 지키는게 힘들었다. 술 약속이라도 있으면 빠져나오는 것도 고역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지금보다 편한 상황이었다.



지금이야 학교에 나가고 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아버지와 같이 나와서 오전 10시 쯤 사무소에 들어가고, 레슨과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오후에 귀가. 저녁 때에는 집에 들어가는 일정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가 걱정이다. 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사무소로 간다고 해도 오후 5시 ~ 6시 정도. 레슨에 스케줄이라도 하나 잡히게되면 집에 올 수나 있을지... 실제 데뷔를 하게 된다면 이사하는걸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세계선이 뒤틀릴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나 부터 살고 봐야지.



처음으로 출근 도장을 찍은 사무소였지만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간단한 교육과 향후 일정, 프로필 사진 촬영에 대한 이야기. 프로필 사진... 알고있었던 것 처럼 사장님은 사진 촬영에 '개성'을 강조했다. 리츠코 씨도 코토리 씨도 왜 이런 부분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것인지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몰개성의 대명사인 나, 하루카 씨다. 이제와서 개성을 찾아보라고 해도...잠깐, 눈물 좀 닦고. 개성있는 촬영이라고 해도, 그것은 개성이 아닌 엽기의 영역이다. 이력서같은 공적인 문서에도 첨부될 사진이니 정적이고 어느정도 예의를 갖춘 사진이 좋을 거라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다행히 멀쩡한 컨셉의 사진을 찍을 것 같다. '예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이 사람들, 이상한 데서 나사가 하나씩... 두 개... 음... 여러 개... 빠져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프로필 사진 촬영은 조금 떨렸지만 무사히 마쳤다. 처음이니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이전'에는 사진기 자체를 혐오하던 사람이었다고. 물론 비주얼치가 높지 않은 하루카이기 때문에 촬영 결과가 조금 걱정되긴 했다. 단순히 외모만 봤을 때 하루카의 외모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765 소속 아이돌들의 비주얼이 워낙 뛰어나야지. 실제 수치 상으로도 하루카의 비주얼 수치가 높은 편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다른 수치가 높은 것도 아니긴 하다. 보컬 특화이면서 보컬 수치도 아주 높은 편은 아니고. 댄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평범 이하다. 아니, 자기비하가 아니고. 수치가 그렇다는거다. 

의상을 몇 벌 갈아입으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현장에서 검토. 사용이 확정된 사진은 정리해서 나중에 다시 받아보기로 했다. 나쁘지 않은 사진처럼 보였고 간단한 보정 정도만 하면 될 것 같다는 사진사님의 의견도 들었다. 응, 내 비주얼 수치가 낮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시점에서 외모가 별로인건 아니야. 아닐거야. 아마도...



리본은 기본적으로 장착하기로 했다. 장착이다. 추가 옵션이 아니다. 기본 옵션이다. 돈 더 낼 필요 없이 딸려오는 부품이다. 

리본 없는 이미지로 가볼까 했지만 역시 포기했다. 세계선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내 사진이나 거울을 봤을 때 적응이 안됬다. 이미 리본을 기본 장착하는 얼굴이 되어버렷! 리본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렷! 같은 느낌이다. '이전' 알고 있던 하루카와 다른 점은 역시 손목 보호대다. 지금은 손과 손목 윗 부분까지 덮는 보호대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아대 형식의 짧은 보호대로 바꿀 예정이다. 다행히 상처는 가로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덮어진다.



수술 자국과 관련해서는 사장님과 리츠코 씨, 코토리 씨 모두 알고 있다. 사진 촬영이라던가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이 업인 이상, 숨기고 있다가 알게되는 것이 더 이상할 거다. 필연적으로 리스트 컷의 사유라던가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리츠코 씨나 코토리 씨는 정말 크게 놀랐다. 사장님도 놀라는 눈치였다. 코토리 씨는 나를 안고 울기까지 했다. 한창 감수성 여린 나이 2X살이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레슨을 진행하기로 했다. 보컬 레슨을 위주로 댄스와 비주얼, 연기 레슨까지 일자를 정해 병행하기로 했다. '이전'에 봤던 K-POP 아이돌들은 어떻게 연습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쪽'의 레슨은 기본적인 아이돌마스터 콘솔판과 분류가 같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려나, 익숙해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딱히 춤이라던가 춰본 적 없는데. 노래는 좋아했지만.



노래... 그러고보니 하루카는 보컬 타입이다. 그러면서도 노래에 취약했다. 진. 태양의 젤러시는 우울할 때 들으면 기분 전환이 되어 좋았다. 즉효약이다. 나카무라 선생님이 잘 못 했다. 게임판으로는 언제나 보컬 능력치는 상위권이다. 나름 보컬 특화 캐릭터다. 물론 '이쪽'에서 어느 쪽일지는 봐야할 것 같다. 내 목소리가 나카무라 에리코 보이스 기반이긴 한 것 같지만, 노래 실력은 별개다. 별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별개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다음 날은 사무소에 들렀다가 바로 리츠코 씨와 함께 레슨을 받으러 갔다. 보컬 레슨 룸은 근처 건물에 있었다. 다행히 여기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리츠코 씨에게 보컬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친절해보여서 다행이다. 누구와는 다르게 도깨비 중사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리츠코 씨를 보고 있자니 왜 그러냐며 질문을 받았다. 아하하, 웃고 말았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그리고 눈 앞에 UI가 나타났다. 보컬[Vo.], 댄스[Da.], 비주얼[Vi.] 능력치가 떠올랐다. 보컬은 40, 댄스는 25, 비주얼은 35라는 능력치가 적혀있었다. 100이 끝인가? 아니면 원포올처럼 상한선이 높은가? 이게 어느정도 능력치인거야?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뭐야, 이거?

쥐뿔도 없던 빙의 특전이 드디어...!



고개를 돌려 같이 레슨 중인 리츠코 씨를 봤지만 아무 숫자도 표시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내 쪽만 보이는 것 같다. 다른 사람 능력치가 보여야 비교라도 해보지, 대체...

'나 지금 당황했어요'라는 표정을 얼굴에 써붙이고 아와와 거리고 있으니 레슨 선생님이 와서 걱정했다. 처음이어서 너무 긴장한게 아니냐며 잠깐 숨을 돌리고 시작하자는 배려를 해주셨다. 리츠코 씨도 와서 걱정해줬다. 아니, 그런 것 때문은 아닌데. 어쨌든 좀 봐야할 것 같기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잠시 옆으로 나왔다.



리츠코 씨는 우선 혼자서 레슨을 진행했다. 레슨하는 것을 좀 보고 익혀두는게 좋을 것 같았지만,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고민하며 능력치 UI를 보고 있으니 능력치 수치에 대한 도움말이 떴다. 쓸데없는 데서 친절해! 그래도 고마워!

능력치는 20-80 스케일이었다. 메이저리그냐! MLB 식 스카우터냐!



능력치 구분도 정말로 MLB 식이었다. 플러스-플러스라고 불리우는 70점은 A랭크 수준,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인 플러스 등급의 60점은 B랭크 수준, 평균적인 50점은 C랭크 수준, 마이너 간당간당 수준인 40점은 D랭크 수준. 30점은 E랭크. 연습생 수준. 그렇다면 데뷔를 위해서는 적어도 35점 ~ 40점 수준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야빠였던 것을 감안해준 배려일까.



다행히 내 노래 실력은 즉전감 아이돌로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다행이야. 초창기 나카무라 선생님 같은 느낌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진. 태양의 젤러시(웃음)같은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다. '이전'에도 노래를 못부르는 편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남자치고는 매우 고음인 점과, 그 반작용으로 낮은 음을 내려가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하게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는 것을 부끄러워 할 정도는 아닌 정도? 발음도 지극히 정상이었어! 1st 비전의 하루카 씨와는 다르다, 하루카 씨와는!

하지만 댄스는... 넘어가자. 내가 알고있는 하루카와 다르게 아무 것도 없는 장소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니까. 비주얼도 연기나 다른 부분을 조금만 가다듬으면 무난할 것 같다. 우선 스탯만 보면 메이저리그를 기준으로 해도 즉시 전력 감이었다. 유망주다. 쇼 케이스 하자마자 AAA 승급할 각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숨을 돌리고 본격적으로 레슨을 시작했다. 원포올에서의 레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댄스나 비주얼 레슨도 비슷하려나? 애초에 비주얼 레슨이라는건 뭐야? 연기 수업하면 비슷한 효과가 있으려나? 복식 호흡을 하며 발성을 했다. 히─히─후─ 응? 이건 아닌데?

보컬 레슨 중이어서 인지 보컬 능력치에 불이 들어왔다. 경험치라도 쌓이고 있는 건가? 딱히 그렇다고 레슨 후에 결과 창 같은게 나오진 않았다. 여러모로 배려가 부족한 UX 디자인이다. 라이브 서비스 중인 게임이었다면 UI팀에 쳐들어가서 깽판놓아야 할 수준이다.



당분간은 보컬 레슨에 치중하며 비주얼 레슨을 겸하기로 했다. 아직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렵고 재활 중이기도 한 오른팔 때문에 격한 댄스 레슨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기 보단 사장님과 코토리 씨, 리츠코 씨가 적극적으로 말렸다. 두세달 정도는 미뤄도 된다며. 어느 정도 재활이 진행되기 전 까지는 격한 움직임은 엄금이란다. 오른팔을 쭉쭉 펴거나 손가락을 심하게 움직이거나 하지 않으면 괜찮을텐데. 그래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느껴저서 좋았다. 이게 바로 765의 배려구나. 왜 [단결]이라는 곡이 있는지 알 것 같다. 울컥해져서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이쪽'으로 오고나서는 눈물샘이 약해졌나보다. 자꾸 새어나오잖아.





레슨이 없는 날에는 가능한 한 리츠코 씨의 영업이나 행사에 따라다닌다. 돌아가는 형편이나 분위기를 알아두어서 나쁠 게 없다. 눈칫밥만 먹어도 1인분은 한다. '이전' 경험의 결과다. 프로듀서가 따로 없이 직접 영업을 하고 있는 리츠코 씨이기 때문에 항상 바빴다. 방송국에 이력서나 기획서 전달, 오디션 일정 파악과 참여, 가끔 코토리 씨에게서 전달받는 제안서나 행사 요청, 그리고 행사 진행이나 라이브 등등. 몸이 두 개, 세 개라도 모자를 것 같다. 사장님의 인맥이 있어 더 바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일들을 돕게 되었다. 

리츠코 씨는 C랭크와 D랭크 사이 정도 되는 것 같다. C랭크 정도는 되어야 지역 민방 같은 곳에서라도 섭외가 온다고 한다. 지금 랭크에서는 소규모 라이브 행사장이나 지역 행사 같은데에 주로 얼굴을 비추었다. 여담이지만 리츠코 씨는 조리있게 말하는 것은 잘 하지만, 진행 같은 건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류구코마치 행사는 리츠코 씨가 안내를 담당하지 않나? 이것도 경험이 쌓이면 바뀌나보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라이브 진행은 큰 일이다. 정신이 없다. 그나마 '이전'에도 오프라인 행사 같은 것을 주관하며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라이브는 또 다른 일이었다. 준비해야 할 것 들이 산더미였다. 의상, 화장, 백 스테이지 물품 준비 등 리츠코 씨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일부터, 물품, 음원 준비나 무대 소품, 행사장 세팅까지.



저녁에 행사가 있다면 아침부터 가서 준비를 한다. 현수막을 걸고 배경도 걸고. 판매될 굿즈를 세팅하고 무대를 꾸미고 음원을 확인하고 리허설 준비. 행사장 세팅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진행하시는 분들께 확인을 해야 한다. 점심도 못 먹을 때가 많다. 리허설 중에도 할 일은 많다. 대기 인원을 확인하고 코토리 씨와 함께 시간 확인. 리허설 종료 시간에 맞춰 입장 여부를 검토한다. 조금 더 빨리 입장해도 될까? 밖에 사람들 많이 기다리는데. 리허설을 주관하고 있는 사장님께 최종 확인을 한다. 다들 초록색 사이리움, 캐미컬 라이트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저걸 '들고'있다고 표현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전신에 탄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소름이 돋는다.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입장이 시작되면 더 바빠진다. 대부분은 순서대로 입장을 하게 되지만 입장할 때 꼭 입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흡연자들은 흡연 장소를 찾기도 한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웃는 얼굴로 친절 봉사 안내를 한다. 그러다보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라이브가 시작된다.



그나마 라이브가 시작되면 한 숨 돌릴 수 있다. 백 스테이지로 가서 코토리 씨에게 음원이라던가 더 준비할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고, 확인. 그리고 리츠코 씨가 갈아입을 의상을 준비한다. 스태프 용으로 준비된 물을 하나 까서 마신다. 살 것 같다. 대기실로 들어오는 리츠코 씨가 의상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다시 백 스테이지로. 코토리 씨가 기념품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고 배부할 수 있도록 세팅한다. 나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굿즈 판매대와 펜레터 상자를 치운다. 선물받은 화환이나 물품들은 다른 진행하시는 분들께 부탁한다. 내가 들 수 있을리가 없잖아, 저런 무게를.



행사가 끝나고 나가는 분들께 인사하며 기념품을 배포한다. 벌써 한 두번 얼굴을 봤다고 아는 척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능한 한 활짝 웃으면서 같이 인사한다. 같은 소속사라면 덕질의 확장이 용이하다. 당연히 잠재적 팬 층이다. 이미지를 굳이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라이브가 끝나면 765의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 보통은 야키니쿠다. 고기는 언제나 옳다. 그래봤자 사장님을 제외하면 여자만 3명이라서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고기는 옳다.



고기를 구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리츠코 씨의 아이돌 활동과 관련한 노하우라던가, 사장님의 이야기라던가, 코토리 씨의 업무 이야기라던가. 각각의 추억이나 옛날 이야기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의식적으로 나에 대한 과거나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피한다. 나와 관련한 이야기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항상 고마울 뿐인 배려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진학과 관련한 내용이 나왔다. 리츠코 씨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진학할 예정은 없다고 한다. 장래에는 프로듀서를 할 거에요, 라고 했다. 사장님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당장 아이돌을 그만두는 것은 반대하셨다. 리츠코 씨는 고민 중인 것 같다. 

문제는 나다. 진학 이후에는 사무소 활동 시간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당분간은 사무소에 왔다가 레슨만 하고 집에 가는 형태가 될 것 같다. 데뷔를 조금 앞당기고 학교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고민해보기로 했다. 댄스 수치는 그대로지만, 보컬과 비주얼 수치는 한 단계씩 상승했다. 45-25-40이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도 백업이나 대타, 추격조 정도로는 나올 수 있을 레벨이다. 사장님도 당장 데뷔해도 손색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 오른손은 재활 중이고, 상처는 아물었다지만 세밀한 동작은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조금 미뤄두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손목을 붙잡으니 리츠코 씨가 그 모습을 보고 쓴 표정을 짓는다. 그런 표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괜히 미안해진다.

아직 입학까지 한 두 달은 남았다.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지.



사장님과 코토리 씨가 먹는 맥주가 점점 늘었고, 코토리 씨가 주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늘 있는 패턴이다. 사장님은 허허 웃고, 리츠코 씨는 코토리 씨를 말린다. 코토리 씨는 피요피요거리며 왜 자기는 남자가 안생기냐고 소리친다. 실제로 피요피요하는 것을 보니 재밌긴 하다. 귀엽기도 하고. 역시 중요한 것은 외모다. 외모 지상주의가 득세하는 이유가 있다. 근데 아직은 괜찮지 않나. 정식 노선이 시작된 후인 2X세라면 슬슬 진지해져야 할 나이이긴 하지만. 나도 같이 깔깔 웃으며 수라장에 합세한다. 그러면 리츠코 씨는 배신당했다며 '하루카, 너마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사장님과 코토리 씨도 웃는다.



이 생활이 너무나도 즐겁다. 따뜻하다. 가족도, 사무소도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 뿐이다. 앞으로 올 아이들도 다들 착하디 착한 아이들인 것을 알고 있다. 치하야는 조금 걱정이 되지만.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니 괜찮을 거다. 이 생활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새학기를 앞두고 바빠졌다. 교복이나 가방같은 물품 준비부터, 아이돌 활동으로 인한 부활동 제외에 대해 학교와 조율도 해야했다. 진학할 학교는 부활동이 의무였기 때문에, 부활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유가 필요했다. 사무소에서 공문도 몇 번 보냈고, 나도 학교에 먼저 찾아가 인터뷰 비슷한 상담을 해야 했다. 



이전 학교에서의 기록도 당연히 넘어갔을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그거...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손목 보호대를 풀고 상처를 보여주었고, 상담 교사가 움찔했다. 자기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긴 하지만. 그럴거면 보여달라고 하지를 말던가.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 상태로 활동 기록에 대한 사무소의 공문이나 레슨 등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말투가 점점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의 영향인지 사무적으로 대할 때에는 어른같은 느낌이라서,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리츠코 씨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조금 자중해야지 싶어서 얼굴을 매만져 표정을 풀었다. 그러니 상담 교사 분이 안심했는지 같이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풀어진다기 보단 뭔가 작은 동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내가 좀 귀엽긴 하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자.



인터뷰? 상담? 아무튼 학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곧장 사무소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이어폰을 핸드폰과 연결하고 귀에 꽂았다. 아이돌의 노래는 보통 신난다.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풀리는 그런 느낌이다. 이런 노래를 작사하거나 작곡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중에 공부를 해봐야겠다. 싱어송라이터라면 나름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평소와 같이 사무소 문을 열... 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다. 응? 안을 들여다보니 불도 꺼져있다. 사장님과 코토리 씨, 리츠코 씨가 한꺼번에 외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코토리 씨는 남아있는데. 사무원이고 내근직이니까. 은행에라도 가셨나? 문 틈 위쪽을 뒤져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이따가 코토리 씨 오시면 드려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가방에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조금 외롭다.

그리고 갑자기 불이 켜졌다. 뭐야?



"서프라이즈~!"

"꺄아아아악!!!"



우당탕, 하고 뒤로 넘어졌다. 어머나, 세상에. 깜짝이야.

내가 여자긴 하구나. 이런 여성스러운 비명소리라니. 이 와중에도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사무소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크게 뜨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자니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은 코토리 씨와 리츠코 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케이크를 들고 있는 사장님이 계셨다. 



팡, 하고 코토리 씨가 들고 있던 폭죽이 터졌다.

이 기묘한 분위기는 뭐지.



오늘은 4월 3일이었다. 하루카의, 나의 생일이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전'에는 조각 케이크라도 사들고 모니터에 하루카의 일러스트를 띄워놓고 생일 축하를 했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고나니 오히려 잊어버렸다.



준비 할 때는 '깜짝 파티'라는 묘한 긴장감에 다들 생각을 못했던 것 같지만, 나는 현재 기억 상실이다. 따로 들었으면 알 수도 있겠지만, 보통 자기 생일을 물어보지는 않으니 모를 가능성이 더 컸다.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정보이니 딱히 모르진 않았다. 나도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다들 자기 생일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 현재 상태가 생각난 것 같다. 갑자기 미묘해지는 분위기에 주위를 환기시켰다. 일부러 더 크게 손사래치며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코토리 씨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괜찮다고 웃어보이고 사장님이 들고있는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리츠코 씨가 안겨들어 울었다. 마주 안고 토닥여줬다.

미안해. 미안해, 하루카. 미안해하지 마요. 왜 미안해 해요. 이런 멋진 축하를 해줘서 고마워요.

보고있던 코토리 씨도 결국 울어버렸다. 셋이서 얼싸안았다. 사장님이 뒤에서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봐주었다. 나를 이렇게나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생일 날짜를 몰랐던 것은 아니고, 부모님에게 들었던 내용이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하니 둘 다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사실 아직 그게 내 정보라고 와닿지 않은 것이지만, 조용히 있어야겠다. 그렇게 얘기하면 두 사람이 또 울어버릴 것 같다.



케이크를 잘라먹었다. 블랙 커피와 함께하는 케이크는 역시 최고다. 일본에서는 아메리카노 보기가 어려우니 그냥 블랙 커피를 마실 수 밖에 없다. 조금 아쉽다. 핸드 드립이라도 해야하나. 사무소에 커피 머신을 사다놓는게 더 빠를 것 같다. 사람도 많아질테니까. 사무소 주변에 커피 로스팅하는 가게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5년이나 10년 쯤 뒤에는 콜드 브루가 유행을 탈 테니, 그 때에는 스타벅스라도 가야겠다. 지금은 마시지 못하니까 더 아쉽다. 

커피 생각을 하며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자, 리츠코 씨가 대번에 걱정했다. 무슨 문제 있냐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웃어보였다. 정말로 실없는 생각이었는데. 코토리 씨도 리츠코 씨도 걱정이 너무 많아.



생일 축하를 받은게 얼마만이지.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집에도 케이크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일을 축하해주셨다. 아까 사무소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지만 상상도 못했다. 부모님께 생일날 생일상을 받아본 기억이 언젠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까는 나보다도 코토리 씨와 리츠코 씨가 먼저 울어버려서 달래기 바빠 타이밍을 놓쳤지만, 이번엔 다르다. 전력으로 울었다. 엄마가 토닥여줬다.



기뻤다.

나를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렇게 나는 '하루카'로 16살을 맞이했다.





이런 저런 해프닝이 벌어졌던 내 생일이 지나고, 입학식 일자가 찾아왔다.



학교까지는 도보로는 40분정도 걸릴 것 같다. 버스로 15분.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씨라면 운동삼아 뛰어야겠다. 입학식은 간단하게 치러졌다. 입학생 대표의 인사와 재학생 대표의 답사,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이어졌다. 언제 들어도 졸립다. 멍하니 있다보니 끝났다. 특이하게도 재학생들의 공연이 있었다. 축구부의 리프팅, 밴드부의 연주 등등. 축구부는 현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꽤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가보다. 어차피 별로 관심 없다. 부활동을 할 예정도 아니고. 마지막은 한 명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알아보길래 조금 자세히봤다. 많이 본 사람이었다. 오니가시마 라세츠가 카나가와 현 출신이었나? 재밌네. 나중의 악연을 생각해보니 조금 웃겼다. 



피핀 이타바시는 이미 데뷔를 한 아이돌이라고 한다. 그래봤자 D랭크 정도일 것 같지만. 지역 행사나 홍보에는 자주 얼굴을 비추는 편이라고 한다. 나중에 상담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저 녀석 덕분에 내 활동도 인정받기가 편했다고 한다. 서류나 인터뷰 같은 걸로 더럽게 귀찮게 했으면서 그게 편해진거라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가사키 료우마에게는 나중에 인사라도 해둬야겠다. 근데 저 인간 진짜 이름이 뭐였더라?



배정된 반을 찾아가 적당히 앉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적당히 창가 쪽 자리를 찾았다. 핸드폰을 꺼내니 리츠코 씨와 코토리 씨에게서 메일이 와있었다. 둘 다 입학식은 잘 하고 있냐는 안부였다. 아미나 마미가 하는 것 처럼 이모티콘을 잔뜩 써서 답장을 보냈다. 무슨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됬다. 피식 웃고 인터넷을 보고 있으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신가요? 하고 물으니 인사였다. 한 두명씩 있는 친화력 높은 아이였다. 어디 출신이냐, 혼자있는 걸 보니 먼데서 온 거냐, 이름은 뭐냐,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 아이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아이들도 찾아왔다. 네 명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니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자며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은 친구가 없고, 앞으로도 같은 사무소 아이들 외에는 딱히 친구가 생길 여지가 없기에 저런 어프로치는 반가웠다. 학교에 안 다닐 것도 아니고, 좀 빠지긴 하겠지만 계속 나와야 할테니.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둬야하지 않겠어?



선생님의 지명에 따라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마미 하루카입니다. 조금 사정이 있어 혼자서 이쪽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관심가져주시면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으니 많이 말 걸어주세요."



방긋방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관심종자다. 관심이 고프다. 그렇지 않으면 연예인 못 해먹는다. 내 자기소개가 재미있었는지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음, 좋아. 만족스럽다. 자리는 뒤 쪽의 문 앞으로 배정해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제비뽑기를 했다. 조만간 데뷔가 예정되어 있어 학교를 빠지는 일도 많을 거라고 미리 이야기했더니 배려해준 것 같다. 이것도 아마토우가 길을 닦아놓아서 생긴 일인가. 나중에 커피라도 사줘야겠다.



입학식은 자리 배정까지만 하고 끝났다. 첫 날부터 수업을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방과 후 일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그 3인방이 내 자리로 왔다.



"저기, 아마미는 뭔가 사정이 있는거야?"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품고 있는 사정이 너무 많은지라 어떤 사정에 대해 묻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당황하며 말했다. 자리를 추첨하지 않고 바로 배정받아서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물어봐서 미안하다며 깔끔하게 사과를 했다. 착한 아이들인 것 같다. 다행히 중학교 때의 일을 궁금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굳어진 표정을 풀고 괜찮다고 하며, 이야기해줬다. 아이돌 연습생이고, 그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빠지거나 조퇴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연예인 본 적 있냐, 노래도 하는거냐, 아마가세 토우마 님이랑 아는 사이냐 (님?) 등등. 리츠코의 사진을 보여주니 세 명 중 한 명이 알아봤다. 라이브나 레슨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신기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니 내가 더 신기했다.



뭐라도 먹으러 가자고 권유해줬지만, 아쉽게도 그 타이밍에 리츠코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체 쪽 사정으로 미팅이 미뤄졌고, 연습실 사용을 조금 당겼다고 한다. 점심도 못 먹고 가야할 것 같다. 3인방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보다 리츠코와 통화하는 게 더 신기한가보다. 세 명과 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가니 리츠코와 코토리 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왔다. 학교는 괜찮으냐, 다닐만 하냐, 힘들지는 않았냐,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냐... 니들이 엄마냐.

친구도 생겼다고 이야기하며 받아온 메일 주소를 보여주니 감격한 눈치다. 과보호는 엄마 만으로도 충분한데. 헛웃음만 나왔다.




문제 시 오열


이정도 분량으로 10개정도 더 올라가면 연재분을 따라 잡겠네요.
나 생각보다 많이 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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