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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카 단편 모음집

댓글: 4 / 조회: 639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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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0, 2018 01:24에 작성됨.

 - 1 -
 여느날과 같이 숙부님의 책방에서 일을 하던 날, 당신은 찾아왔습니다. 정장을 차려입은 걸 보아 직장인 같았습니다. 긴 앞머리 사이로 당신의 얼굴을 올려 보았습니다. 표정은 조금 긴장한 것 같았습니다. 사회초년생이라는 느낌일까요. 그를 멍하니 보다 아차 싶었습니다. 손님이구나. 또 책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네.


 “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나요?”

 “아니요. 오늘은 책을 사러온 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당신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혹시 아이돌 해보실 생각 있으십니까악?!



 혀를 씹은 당신의 눈가가 고통으로 찌르르 떨렸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진지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아이돌...말인가요?”

 

 머뭇머뭇 받은 명함을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양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찰했습니다. 그땐 몰랐지요. 이 작은 종이가 ‘일생’ 이란 이야기에 커다란 책갈피라는 것을.


 - 2 -

 사무소에 소속되고 가장 먼저 하게 된 일은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 감독님은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큰 개성을 돋보일만한 포즈를 요구하셨습니다. 저의 가장 큰 개성. 네,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이지요. 저는 책을 한가득 들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카메라 기사님은 사진을 몇 번 찍으시더니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잠깐 쉬었다가 할까?”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 걸까요. 하긴 당연하지요. 갑자기 자신의 개성을 돋보이라니... 저같이 요령 없고 음침한 사람에겐 무리입니다. ...역시 아이돌은 어울리지 않는 걸까요?

 의자에 앉아 쉬던 중, 프로듀서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후미카. 잘 안 돼?”

 “네. 아무래도... 저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라니... 저 같은 건 음침할 뿐인걸요.”

 

 도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저를 바꾸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을까 하여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잡고 따라왔건만, 이대로는 폐만 끼칠 것 같았습니다. 역시 그만두는 게...

 

 “프로듀서 씨. 전 역시...”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프로듀서는 제 말을 끊고 말했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느린 편인 저의 말을 끊은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차분하게 기다려주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잖아. 후미카, 너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세상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저 같은’ 이라느니 ‘전 역시 안 되나 봐요.’ 같은 말은 하지 말아줘.”

 

 그는 제 눈을 오롯이 보며 말했습니다. 그 시선에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어서 한참이나 그를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했습니다.

 

 “...그럼. 프로듀서 씨가 본 저의 개성은 무엇일까요?”

 “전부라고 말하고 싶지만.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그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눈.”

 “...눈, 인가요.”

 “응, 눈. 모든 걸 품는 파란 바다처럼 깊은, 앞머리로 가려도 영롱하게 빛나는 그 아름다움은 세상을 반하게 할 거야.”

 “...정말인가요?”

 “적어도 난 반했어.”

 “..."

 

 저번에도 그렇고, 어째서 이 사람은 연애소설의 대사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요. 화끈거리는 볼과 씰룩거리는 입을 고개 숙여 감춥니다.

 

 “왜 그래 후미카?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봅니다. 신기합니다. 분명 저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걸 힘들어하는데, 이 사람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신기한 사람.

 저를 믿어주는 이 신기한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저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 후미카 힘내자고!”

 

 휴식시간이 끝나고 촬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를 보신 카메라 기사님은 씨익 웃으셨습니다.

     

 “그거 좋은데?”

 

 저의 개성이라든가 매력이라든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곧은 당신이 아름답다 해준 이 눈 정도는 자신 있어 해도 되겠지요?


 - 3 -

 그것은 카나데 씨와 함께 협찬받은 옷을 수령하러 패션 스튜디오에 갔을 때 일입니다. 카나데 씨가 말했습니다.

 

 “후미카는 언제나 어두운 색조의 평범한 옷만 고르는구나.”

 “네? ...아, 저에겐 이런 것들이 어울린다 생각하여.”

 “그런가?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원판이 좋으니까 조금 더 화사한 컬러를 고르는 게 더 좋다고 봐.”

 “원판이 좋다니, 그런...”

 “아니라고 할 셈? 과한 겸손은 빈정거림이 되기 십상이야?”

 

 다그치는 듯한 카나데 씨의 말에 움츠러들고 말았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먼저 입을 연 건 카나데 씨였습니다.

 

 “후미카 내가 코디 해줘도 될까?”

 “네?”

 “따라와 봐.”

 

 카나데 씨는 제 손목을 잡고 스튜디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옷과 악세사리를 쥐어줬습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전부 받는 저는 착의실에 밀어 넣어졌습니다.

 

 “입고 나와.”

 “...제 분위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어찌 됐건 입고 나와.”

 

 커튼을 강하게 닫은 카나데 씨는 어딘가 화난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 못한 걸까요. 화나게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손에 쥐어진 옷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같이 화사한, 저에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들. 입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나가면 옷을 골라준 카나데씨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하는 수 없이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밀짚모자를 얹어 쓰는 것으로 갈아입기를 완료하고 거울에 비친 저를 봅니다. 이런 옷을 입는 건 처음이라 왠지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어울리는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착의실을 나가자 카나데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봐봐. 역시 잘 어울리잖아.”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 봐.”



 카나데씨는 나란히 놓여있는 스툴 의자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남은 의자에 카나데 씨가 따라 앉았습니다. 그리곤 손에 든 파우치에서 화장수를 꺼내 손에 비빈 다음 제 얼굴에 마구 비볐습니다.

 

 “잠, 잠깐. 카나데 씨. 뭐 하시는...”

 “가만히 좀 있어봐.”

 

 그녀는 당황하는 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을 계속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카나데 씨의 손길에 얼굴을 맡겼습니다. 카나데 씨가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바른 얼굴이 이렇다니. 후미카를 보면 온갖 화장을 하는 내가 민망해져.”

 “아뇨, 그렇지는... 저보다 카나데 씨가 훨씬 더 아름다우신 걸요.”

 “언뜻 보기엔 그럴지도 모르지. 지금 내 외모는 온갖 노력을 해서 도달한 최대치니까. 후미카는 아무것도 안 한 최하치고.”

 “...그게 무슨?”

 “이해하기 어려웠나? 흠...”

 

 카나데 씨는 머릿속에서 문장을 정리하듯 뜸을 들이다 말했습니다.

 

 “외모는 재능이야. 물론 관리를 하거나 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해. 하지만 노력으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절대값이 존재해. 지금 내 외모는 온갖 노력을 투자해 얻은 최대치. 내 일생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후미카 씨는 그 흔한 로션도 안 바르는 상태에서도 이 정도인 거야. 작정하고 꾸미면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혀. 말 그대로 재능이네.”


 대답하려 했지만 카나데 씨는 퍼프로 저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리곤 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 후미카가 자신을 깎아내리는 게. 주어진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고 쓰지 않는 건 바보 같은 거라고? 아니 바보를 넘어 죄에 가깝지. 그러니까 자신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도록 해. 그러면 후미카는 더 아름다워질 거야.”


 그녀가 퍼프를 땠지만 저는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안 있어 카나데씨가 상쾌하게 웃으며 브러시를 내려놓았습니다.

 

 “완성이야. 거울 앞에 서볼까?”

 

 그렇게 말하곤 커다란 전신거울 앞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거기에 비친 제 모습은 그전까지의 저와 다르다고 할까... 조금은, 아름다운 것 같아서. 동화 속에서 봤던 공주님 같은 자세를 취해보았습니다.


 “어머, 그 포즈 귀엽다.”

 “그런 것... 같죠?”


 저희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습니다.


 - 4 -

 그날은 당신은 프로듀서가 아닌 손님으로서 책방에 방문했습니다. 저는 새로 들어온 책들을 정리하느라 바빴고 당신은 그런 저를 도와줬지요. 덕분에 정리는 금방 진행됐고 어느새 딱 세 권 만을 남겨 놓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분류상 세 권 다 높은 위치에 꽂아야 했습니다. 당신은 책장용 계단을 가져와 놓아 준 뒤 바닥에 철퍼덕 앉았습니다.

 

 “아이고. 힘들어...

 “감사해요. 이런 일까지 도와주시고.”

 “괜찮아 아이돌을 돕는 게 프로듀서의 일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당신은 맨 아래쪽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 펼쳤습니다. 그는 책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네요.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실수로 책 한 권 을 놓쳐버렸습니다.

 

 “아.”

 “응?”  


 책은 제 쪽을 올려다본 당신의 콧잔등에 떨어졌습니다.

 

 “악!!!“

 “괘,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코를 움켜잡는 프로듀서의 눈가엔 눈물이 찔끔 고여 있었습니다. 떨어질 때 책 모서리로 떨어진 것 같은데... 저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프로듀서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코 보여주세요. 프로듀서 씨. 다쳤다면 빨리 치료해야 해요.”

 “별거 아니야! 그리고 후미카 너무 가까운데?!”

 

 직후. 돌아오신 숙부님은 저희를 보며 어딘가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절찬 청준 중이네. 둘 다.”


 - 5 -
 밸런타인데이 기념 악수회가 끝나고, 화려하게 꾸며진 대기실에서 손에 쥔 무언가를 내려보고 있습니다.

 프로듀서에게 드리려고 만든 초콜렛.

 저는 이걸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을까요? 스스로도 알 수 없습니다. 발렌타인 초콜릿의 의미는 두 개지요. 우정, 혹은...  

 얼굴이 뜨거워져 고개를 휘저었습니다. 역시 저는 당신을...

 하지만 안 됩니다. 저는 아이돌. 그는 프로듀서. 당신과 저를 잇는 관계는 누구보다 가깝지만, 그렇기에 잊어선 안 되는 절대룰이 존재합니다. 프로듀서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고동은 그 절대룰에 대한 반역. 역시 이 초콜렛은 주지 않는 편이...

 

 “후미카!”

 “네,넵!”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초콜릿을 등 뒤로 숨기며 몸을 돌렸습니다. 예상대로, 프로듀서였습니다.

 

 “왜 그래? 말 걸어도 듣지도 못하고. 많이 피곤해?”

 “...아뇨,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만약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한 거라면 꼭 말해야 한다? 저번처럼 ‘실례가 될까봐.’ 같은 이유로 말 안 하는 건 절대 용서 못 해.”

 “...네. 꼭 말할게요.”


 아, 또 이러네요. 요즘 당신을 보면 왠지 모르게 심장의 마구 뜁니다. 지금도요. 들리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당신과 대화를 하면 입꼬리가 올라가고. 당신과 눈을 맞추고 싶고. 당신이 저를 걱정해주는 게 기쁩니다. 

 한심한 저는 이 감정을 거스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 씨!”

 “응? 왜?”

 

 등 뒤에 숨긴 초콜릿을 프로듀서에게 내밀었습니다.


 “제 초콜릿. 받아 주실 수 있나요..?”

 

 그 뒤, 어리둥절해하는 프로듀서에게 의리초콜릿이라고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네, 우정이지요. 지금은.

 

 하지만 언젠가, 당신과 함께하는 여정이 끝난다면. 그때는...


 -6-

 아리스. 솜털같이 작고 귀여운 아이.

 저 깨끗한 눈에는 제가 어떻게 비춰 보일까요?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언니가 아닐까요? 그녀는 어른스러움을 동경하는 소녀니까요.

 

 아쉽게도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차분한 게 아니라 소심한 거고,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어린애처럼 겁이 많은 거 에요. 미안해요 아리스. 그런 언니가 아니라.

 

 하지만 이 아이가 저를 믿고 따를 때마다 너무 귀엽고, 저를 그런 사람으로 봐주는 게 참 고맙고, 당신이 말한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래서 전 이 아이 앞에서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고마워요. 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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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라는 여행에세이를 읽다가 삘 꽃혀서 쓴 단편들입니다.

 후미카는 저의 모스트 원픽 아이돌이지만 글감으로 확 꽂히는 게 없어 안 쓰다가 이제야 써보내요.

 사실 이 글들은 후미카의 공식일러에 맞춰서 쓴 녀석들이라 이해가 잘 안가실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를 업로드하면 아이커뮤엔 올라가지를 못 하네요. 어떤 일러인지 추론해 보시는 것도 재미가 아닐런지요...

...용량 제한 풀어주세요...

일러있는 버전은 여기로 https://ineedpen.tistory.c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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