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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시리즈 -치하야- 푸른빛 피날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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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6, 2018 13:09에 작성됨.


 -konda side-


 클럽 전체가 터질 듯이 요동쳤다.
 폭발하는 듯한 드럼, 끊임없이 울리는 베이스, 고막을 찢듯이 귀속으로 침범하는 일렉기타와 보컬, 뮤지션들의 열정. 관객들의 즐거움, 그로 인한 뜀박질. 환성. 무대와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이 작은 공간을 뜨겁게 만들었다. 
 무대에 위에는 3인조 펑크록 밴드가 벼룩 마냥 뛰어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
 이 지역 로컬씬에선 제법 알아주는 밴드로 특유의 쉽고 단순한 곡 구성과  사람을 저절로 뛰게 하는 강렬한 무대매너로 인기가 있다.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이어졌다. 마지막인 3번째 곡을 할 때 bar에 한 사람도 없었다. 전부 무대 앞에 서서 방방 뛰기 바빴다. 이 클럽에서 알바 하다 기분 좋은 상황 중 하나다. 일을 안 해도 되니까!
 
 펑크록 밴드 보컬 :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소리 질러어어어어어억!!!!!!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지, 사이비인가.


 이츠키 :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젠 또 언제 저기 갔어.


 화려한 악기 퍼포먼스를 끝으로 펑크록밴드의 공연은 끝이 났다. 무대를 내려가는 그들에게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야. 이거 다음에 하는 밴드는 힘들겠는데. 다음 밴드가...
 ...그 녀석들 이구만.


 이츠키 : 역시 저분들의 음악은 무지 신 나네요!


 땀범벅이 된 이츠키가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며 bar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난 차가운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이츠키 : 앗, 감사합니다!

 이츠키는 잔 안에 든 물을 순식간에 원샷 하더니 ‘캬하~.’ 하고 시원한 소리를 냈다. 나 분명 물 줬는데? 실수로 술을 줬나?

 이츠키 : 어? 선배 그 드럼스틱 뭐에요?

 이츠키가 주머니에 대충 꽂아둔 드럼스틱을 가리키며 물었다.

 곤다 : 원래 4번째에 하기로 했던 밴드가 갑자기 빠졌거든. 사장님이 드럼 솔로 쳐서 매우라고 하시더라고.
 이츠키 : 오! 오랜만에 선배가 드럼 치는 거 보는 건 건가요? 오랜만이네요!
 곤다 : 오랜만은 무슨 2달밖에 안 됐잖아.
 이츠키 : 어쨌든요. ...다행이네요.


 이츠키는 나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따뜻한 미소에 내가 느낀 감정은.

 죄책감.

 난 그녀가 생각하는 다행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되는 일을 할 생각이다.
 다시 열정을 가지고 음악을 한다는 선택지는 지금의 나에겐 써 보인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도 결코 달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쓰진 않으리라.
 그런 선택을 한 나에게 저 미소는 나에게 과분하고, 그래서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못 했다는 게 맞겠다. 그저 그녀를 따라 미소 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여성관객1 : 꺄아! 다들 귀엽다!


 관객들이 내는 요란한 소리에 이끌려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 위엔 3명의 앳된 소년소녀들이 올라가 있었다. 보컬 소녀는 마이크를 쥔 채 무대 중앙에서 눈을 감고 있었고 베이스 소년과 기타소년은 각자의 악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어이 쪼꼬미 기타리스트! 그 분장 뭐야?! 완전 록 한데!”, “거기 베이스 오빠 완전 귀엽다! 휙휙!”, “보컬 아가씨! 긴장한 거야? 왜 눈 감고 있어?”
 라이브 클럽 공연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연령대의 등장에 관객들은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그 흥미로움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얕봄.‘이다.
 ‘저런 애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 구경이나 할까?‘ 라고 생각하며 놀리는 것이다.


 이츠키 : 와~. 쟤들 다들 몇 살이지? 다들 완전 미소년 미소녀네. 귀엽다~.
 곤다 : ...절대 그렇게 볼 애들이 아닌데 말이지.
 이츠키 : 네?
 곤다 : 아니야. 그냥 한 번 쭉 봐봐.


 악기 설치를 마친 2명은 보컬 소녀의 양옆 조금 뒤에 바로 섰다. 이제 남은 건 연주를 시작하는 것뿐.
 하지만 연주는 시작되지 않았다. 보컬 소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고 양 옆의 두 명도 연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관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웅성거림은 점점 더 불어났다. 왜 저래? 혹시 긴장한 건가? 하긴 그럴만하지 꼬맹이들이. 기대했는데 역시 애들인가.


 점점 진득해져 가는 웅성거림을 멈춘 것은 베이스 소년의 손짓이었다.
 소년은 미소 지으며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포겠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당돌하고, 어찌 보면 건방지기까지 한 행동에 관객들 사이에서 강한 웅성거림이 일었지만 소년은 손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소음은 점점 작아져 이내 완전히 사그라졌다.

 클럽 안을 정적이 가득 채우고, 계속 눈을 감고 있던 보컬 소녀가 눈을 떴다. 그 눈은 놀랄 만큼 날카롭고 놀랄 만큼 무감정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악기를 바로 잡았다.


 이윽고 소리가 폭발했다.


 이 음악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폭력’이리라.
 'gain'을 대책 없이 올려 노이즈에 가까운 일렉기타. 폭주하는 일렉기타를 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베이스. 그 위를 당장에라도 사라질 듯 떠다니는 몽환적인 목소리.
 어떠한 무대매너나 소통도 없이 그저 연주할 뿐인, 어디서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그런 음악.
 음의 집합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절정으로 치달아 공연장을 빼곡하게 메웠다. 강해진 음압이 모두의 어깨를 무식하게 짓눌렀다.
 음악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음악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 소릴 들어!!!’
 
 그 명령에 거스를 수 있는 관객은 없었다. 그저 무대 위를 올려봤다. 환호도 비난도 하지 않고 그저 3명이 내는 소리를 귀에 담았다.
 관객들이 정신을 차린 건 밴드의 연주가 끝나고 난 후였다.
 공연의 직후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정적이 일었다.


 ...짝짝


 정적을 깬 건 작은 박수소리였다. 그 파열음은 낡은 종이에 붙은 불씨처럼 점점 번져 어느새 커다란 열기로 변했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박수와 환성이 클럽 내부를 가득 채웠다. 이 환호의 근본은 얕봄이 아니다. 새로 등장한 실력자의 등장에 보내는 환영과 경외다.
 이츠키도 눈을 흥분된 표정으로 물개박수를 쳤다.


 이츠키 : 쟤들 뭐에요?! 진짜 엄청난데요! 뭐랄까... 엄청 몽환적이랄까... 잘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대단해요!
 곤다 : 그러게, 뭘 어떻게 하면 저런 놈들이 나오는지. 하 참.


 무대의 3명은 내려가기 위해 악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까와 같은 어리숙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건 3명의 작은 거인이었다.

 이런 거 뒤에 하라니. 난감하게 됐네.


       *      *      *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곤다 : 안녕하세요. 클럽 매니저 겸 바텐더 타카나시 곤다 입니다. 오늘 라이브 클럽 ‘blue'에 찾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잘 즐기고 계신가요?


 “네~!!!” 


 곤다 : 다행이네요. 자 그럼... 어느새 4번째 순번이 되었는데... 원래 공연하기로 했던 밴드가 갑자기 취소해서 공백이 생겨버렸네요.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 버리면 오롯이 여러분 손해잖아요? 그래서 제가 드럼이나 좀 쳐서 메우려고 하는데 다들 괜찮아요?
 
 관객석에서 “오오~.” 하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호응 잘 해줘서 고맙습니다 관객님들.


 곤다 : 그럼 다들 좋아하시는 줄 알고 연주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차례 박수가 일고, 나는 무대 뒤쪽에 진을 치듯 설치된 드럼세트 안에 들어가 둥근 가죽의자에 앉았다.


 ...이 광경도 2개월만인가.

 눈부신 조명, 기대하는 눈으로 이쪽을 올려보는 관객들. 심장에서부터 손끝까지 퍼진 묘한 긴장감. 몸이 느끼는 감각은 그때와 똑같다.
 하지만 머리는 그때와 다른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허전함을 느꼈다. 언제나 무대 앞을 채우던 녀석들의 등이 없다.


 ...우울로 가라앉으려고 마음을 고개를 휘적여 끄집어냈다. 무대 위에서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양손의 드럼스틱을 돌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홀로 서는 무대. 드러머에겐 흔치 않은 일이다. 밴드에서 드럼이 맞은 임무는 다른 소리들이 편히 날뛸 수 있는 평평한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거친 격동이다.


 자, 달려보자.


 양옆 심벌즈를 내려쳐 질주의 시작을 알린다.
  하이햇, 스네어, 베이스, 탐탐, 심벌즈가 강렬한 자기주장을 펼친다. 이것들을 조화로이 어울리게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역할. 몸속의 모든 신경을 박자, 손과 발의 감각에 집중한다.
 하이햇은 땅바닥에 가득히 깔린 자갈, 라이드 심벌은 먹구름이 머금은 그릉거림, 레프트 심벌은 벼락, 베이스는 땅울림. 그 속을 말발굽 소리를 닮은 탐탐이 요란하게 달린다.
 달려라. 멈추지 말고 달려라. 지금은 받쳐 줘야 하는 멜로디들이 없다. 고삐 풀린 황소처럼, 노도 하는 거대한 말 때처럼 거침없이 달려라.
 드럼은 무대의 심장. 멈추는 순간 무대는 죽는다.
 힘차게 살아라. 살아서 계속 격동하자.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파열음, 손과 발의 저린 감각이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울려라. 울려라. 끊임없이 울려라. 이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외치듯 강하게 요동쳐라!
 질주의 끝은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난무로!


 “와아아아아아!!!!!!”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에게서 박수와 환성이 들려왔다. 난 가빠진 숨을 골랐다. 좋아 잘 된 것 같군. 무대 앞으로가 마이크를 쥐었다.


 곤다 : 이상 라이브클럽 ‘blue'의 매니저 겸 바텐더 타카나시 곤다였습니다. 뒤로도 계속 즐겨주세요.

 “형씨! 지금 바로 bar로 갈 태니까 한잔 줘!”

 곤다 : 엑. 남자는 사절인데.


 웃음이 터진 관객석 쪽으로 내려가 인파를 가로지르며 bar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바텐더 자리를 맡고 있던 이츠키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츠키:정말 멋졌어요. 곤다 선배!
 곤다 : 고마워.
 이츠키: 역시 곤다 선배의 연주는 뭐랄까... 거침없다고 해야 하나! 시원해요!
 곤다 : 그러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사모님.


 내 장난스러운 인사에 이츠키가 꺄르르 웃었다. 정말 이 애는 밝구나. 비유하자면 봄의 햇살이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귀엽다고.


 이츠키 : 아 맞다.

 이츠키가 bar 구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3명의 손님을 가리켰다. 

 이츠키 : 아까부터 선배랑 이야기하고 싶다는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베이스 소년 : 안녕하세요.


 나를 기다렸다고 하는 무리는 3명의 작은 거인들이었다. 베이스 소년은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고 2명의 소녀는 나를 힐끔 보고선 다시 음료수를 홀짝였다. 이 애들이 나에게 볼일이 있다고? 무슨?


 곤다 : 아 응... 네?
 베이스 소년 : 하하, 그냥 말 놓으셔도 돼요. 척 봐도 제가 한참 어린걸요.


 소년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지? 나이 많아 보인다고 디스하는 건가?
 난 소년의 옆자리에 앉았다.


 곤다 : 뭐... 그래. 그래서 나에게 무슨 볼일이?
 쿠모하나 :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하려고요. 아, 제 이름은 유우키 쿠모하나에요. 그냥 쿠모하나라고 불러주세요. 이쪽은 키사라기 치하야랑 호시 쇼코에요.
 곤다 : 아... 그래. 나도 잘 부탁해. 난 그냥 곤다씨라고 불러.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이끌려 나도 자기소개를 했다. 뭐야 이 녀석? 이런 게 요즘 어린 것들의 친화력인가? 아니 저 여자애들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곱상한 소년, 쿠모하나의 친화력이 특출난 것이겠지.
 이 녀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그냥 친근하게 대하자 였다. 어차피 이 소년소녀들이 이 지역에서 계속 밴드활동을 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싫어도 볼 인연이고, 무엇보다 이 녀석들의 행보가 궁금하기도 했다. 친해져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쿠모하나 : 무대 정말 잘 봤어요. 수준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어요.
 곤다 : 그래? 고맙네. 너희야 말로 깜짝 놀랐다고. 도저히 너희 나이에 갖출 실력이 아니야. 다들 중학생 맞지?
 쿠모하나 : 네. 다 중학생이에요.
 콘다 : 그걸 보고 누가 중학생밴드라고 생각하겠어. 어쭙잖은 성인 밴드보다 더 났다.
 쿠모하나 : 이제는 중학생밴드가 아니지만요.
 곤다 : 응? 누가 새로 들어오나 보네? 하긴 드럼이 없었지. 너희 수준에 맞추려면 드러머도 어지간한 놈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쿠모하나 : 네? 무슨 말씀이세요?
 곤다 : 응? 뭐가?
 쿠모하나 : 저희 밴드 드러머 곤다씨가 맞아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곤다 : ...뭐?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띄워졌다.


 곤다 : ...뭔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어.


 쿠모하나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쿠모하나 : 이상하다. 분명 사장님이 이미 다 애기 됐다고 하셨는데요. 못 들으셨어요?
 곤다 : 아, 잠깐만.


 갑자기 튀어나온 늙은... 아니, 사장님의 이름에 이 상황이 어렴풋하게 이해가 됐다. ...또 뭔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거야?!


 곤다 : ...미안한데 사장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해줄래?
 쿠모하나 : 저희가 오디션 보러왔을 때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드러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사장님이 마침 딱 맞는 드러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냐고 물으니까 오늘 공연의 4번째 순서의 오르는 드러머라고. 이미 드러머도 밴드를 구하고 있고 이미 얘기가 됐으니 무조건 저희 밴드에 들어올 거라고. 오늘 인사나 하라고 하셨어요. 
 곤다 : ...아니, 뭔. ...하아. 이 썩을 늙은이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도대체 사장님은 뭔 생각으로 저런 말도 안 되는... 애초에 난 곧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라고. 갑자기 새로운 밴드라니 당치도 않다고... 아니, 애초에. 아, 혈압이...


 이츠키 :  뭔진 모르겠지만 진정해요 선배?! 얼굴에 핏줄 올랐어요?!

 곤다 : 이 썩을 늙은이가...!
 치하야 :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네.
 쇼코 : 후후... 수라장의 기운 스멀스멀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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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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