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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나오, 함 해보겠습니데이! -1-

댓글: 4 / 조회: 603 / 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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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8, 2018 19:48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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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방 안에서 제대로 나가지도 않은 체 멍하니 TV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는지 몇주나 지났을까. 제대로 읽지도 못한 체, 그렇다고 맘처럼 찢어버리지도 못한 상태로 방안에 굴러다니고 있는 새하얀 해고통지서.


소형 텔레비젼 하나와 몸 하나 간신히 누일 수 있는 좁은 고시원 방 안에 앉아 더 이상 자기혐오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면 조용히 천장만을 바라본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머리는 핑핑 돌고, 우울함에 잠겨 손 끝 하나 움직이지도 못할 것만 같다.


두번의 해고.


대학 졸업 이후 운좋게 입사한 대기업, 346 프로덕션에서의 2년.

기세 좋게 맡은 아이돌은 사생활 문제로 레슨도,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데뷔조차 못한 체 도망, 그런 일이 2번이나 있고 나서 해고. 알고보니 입사조차 개인사업자 취급받아 단순한 재계약 해지로, 해고 무효소송조차 내보지 못한 체로 해약.


그리고 단지 346에서 있었다는 이유로 입사할 수 있었던 961 프로덕션. 

단 6개월만에 사장에게 밉보였는지, 잘리는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 박봉에 허접한 잡무만을 도맡은, 시간 낭비같은 시간이었다. 사장한테 인사는 90도로 할 것을 요구받았지, 사사건건 무시하며 '자네같은 쓸모없는 인간도 346에 있었단 말인가?' 라는 말에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음에도, 아무 쓸모 없었다.


그렇게 우울감을 되새김질하며, 며칠째 진지하게 내 장례식에 와줄 사람 숫자만을 헤아리던 순간, 몇달만에 처음으로 방치해뒀던 전화벨이 울렸다. 도쿄로 올라간다며 연락을 끊은, 학교시절 친구들일리는 없다. 346이나 961에서 겉돌던 나에게 제대로 전화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럼, 누구지..? 


그런 의문을 품고 충전기에 꽂힌 체 먼지만 쌓이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곤,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여, 큼, 여보세요? "

『아- 여보세요? 거기 P군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람 목소리. 보험이나 대출권유의 전화랑은 사뭇 다른 분위기의, 쾌활한 듯한 중년의 남자 목소리는 당연한 듯 내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잠겨 몇번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제대로 된 번호라고 내가 얘기했잖나, 오토나시군! 응? 아, 알겠네.』

『아무튼, 이 쪽은 765프로덕션의 타카기 사장일세.』

"아, 네. 안녕하십니까."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앉아 조심스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공손히 받쳐들었다. 단지 전화였음에도, 방안을 뒤져 안경을 쓴건 물론이다.


『자네를 몇번이나 지켜봤는데 말이야, 이게 말이지, 번호를 어떻게 알아내기도 전에 어디론가 자꾸 입사해버리더구만, 아하하하하!』

"아, 네에... 죄송합니다."

『으흠, 아니,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아무튼 간에, 자네, 지금 후리한가?』

"후, 후리요?"

『후리(Free)한가, 말일세. Free! 자네가 지금 소속된 프로덕션은 없는가, 이말이야!』

"아, 그런건 전혀 없습니다. 정말 전혀 없습니다. 연락 주고받은 곳도 없습니다."


어설픈 영어발음으로 이야기하는 전화 속 남자에게, 나는 보일리도 없는 고개를 연신 내저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몇번이나, 그에게 간절히 무직상태를 어필했다. 몇번이고 그런가, 오호, 잘됐구먼, 같은 말을 내뱉던 사장은 기쁜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프로덕션에 입사해보는건 어떻겠나? 회사 규모야 작겠지만, 지금이라면...』

"정말입니까?! 네! 내일, 아니, 지금 달려갈까요? 주, 주소는 제가 직접 알아가겠습니다!"

『아하하하, 좋아, 과연 내가 팅-하고 온 프로듀서군 그래!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하겠네. 주소는, 도쿄 오타구…』

"도쿄, 오타구... 야구치2정목... 네."


묘하게 쇼핑몰 홍보 문구같은 말을 꺼내려는 사장의 말을 자르곤, 황급히 메모지를 꺼내 그가 불러주는 주소를 적어놓기 시작했다. 말을 잘렸음에도 조금의 불쾌함도 없어보이는 목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쾌활했다.


"765프로덕션..."


그날 밤, 몇번이고 양복과 가방, 961에 입사하기전 여러곳에 제출했던 이력서의 체크를 한 후, 오랜만에 제대로 누워, 전화로 들은 프로덕션 이름을 생각했다.


"뭐 들어본 적은 있던 것 같기도 한데..."


비록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OK를 했다고 해도. 단 한번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프로덕션이라니. 이제서야 조금씩 사기일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이미 OK를 해버린 걸. 이번만큼은... 2년을 넘기자. 아니, 어쩌면 5년도 넘길 수 있을지 모른다.



02.


사무소의 문을 노크했음에도 문이 열리지 않아 직접 열어보자, 무언가 농땡이라도 치고 있던 듯 화들짝 놀랐던 사무원씨의 안내를 받곤,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건물의 단 한층. 심지어는 건물조차도 큰 규모도 아니고 매우 작은, 소규모의 회사. 창문에 애처롭게 발라놓은 765모양의 노란 테이프까지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게 만약 사기라면, 이 사장은 정말 사기를 칠 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 때묻은 건물의 사장실로 들어가자 과연 목소리 그대로의 얼굴을 가진 아저씨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럼, 차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응, 부탁하네 오토나시군."

"아, 감사합니다."


눈웃음을 짓곤, 초록색 제복인 듯한 옷을 입은 사무원은 그대로 사장실 문을 닫곤 단 두 사람이 사장실에 남겨졌다. 어제 전화에서 이야기한 사람이 저 사람인가... 


"으흠, 반갑네. 생각보다는 조금 일찍 찾아왔구먼."

"네, 일단 저기, 저, 시간보단 빨리 다니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싱긋 웃어보이며, 타카기 준지로라는 명패 뒤에 앉은 사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봤을 때하고는 꽤나 달라져있구만. 자네는."

"네? 아, 제가 너무 오랫동안 쉬어서 그게 여러가지 준비도 제대로 안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준비가 안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준비는 정말 완벽합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꼭 제대로 정리해서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옷차림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눈빛이 말일세."


눈빛? 뭔가 실망한 듯 흐음, 하곤 씨익 웃는 타카기 사장은 이내 머리를 몇번 긁적이곤 별일은 아니라며, 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달랬다.


"흐음,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뭐어, 그녀와 함께 있다보면 결국 돌아오겠지."

"그녀요?"

"으응, 자네가 담당할 나오양일세. 일단 오늘부로 자네는 우리 회사에 취직한다. 그걸로 좋나?"

"네!"


가계약서였지만, 가장 놀라웠던 점은 언제나 잘라낼 수 있는 개인사업자로서의 계약이 아닌, 765프로덕션의 정직원으로서의 채용이었다. 단순한 로드매니저로서의 단기간 채용으로, 기본급 7만엔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활. 고개를 연신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나에게 미묘한 웃음을 보내던 타카기 사장은, 나가는 길의 나를 다시 한번 붙잡았다.


"아참, 명함 받아가게. 어쨌든 연예계는 명함으로 돌아가니까 말이지."


[765프로덕션 메인 프로듀서 아이돌 프로듀스실 실장]


"..."

"후후, 꽤나 멋있지 않나? 어디서 무시당하면 안되니까."


단숨에, 실장까지 승진해버렸다. 못해도 6, 7년은 일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프로듀서 계에서는 최상의 직위. 346같은 아이돌 사업부같은 곳에서는 부장급의 밑이겠지만, 그 긴 박봉의 세월에 아무나 버티고 버텨 얻을 수 있는 직위는 아니었다.

기본급여는 월 21만엔. 3배이상 폭증한 것에 이어, 인센티브 조건까지. 계약서와 명함을 받자, 손까지 덜덜 떨린다.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라는 새로운 긴장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어쩌면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 남들이 한번에 들어가는 대학문마저도 한번에 들어가지 못한 나였다. 프로듀서라는 일을 맡고서도,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무시받고, 그러다 해고당한 경험도 몇번이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내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른다.


나를 고용한 이유부터, 이런 직급을 맡기는 이유까지. 타카기 사장, 아니 사장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성공해야만 하는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생기고 만 것이다.


"이제부터 자네에게 맡길 아이돌은, 요코야마 나오군일세. 그럼, 지금 당장 극장(씨어터)에 가보라고."


어느새 다가와 죽음이라도 본 것처럼 넋이 나간 내 어깨를 두드리며, 사장은 밴의 차키를 쥐어주었다.



03. 


"너희들 중에 누가 요코야마니?"

크다. 이 회사, 사무소만 작다. 큰 극장을 갖고 있는, 꽤 큰 회사였다.


씨어터의 지하, 연습실 문을 열자 다행히 쉬는 시간이 겹쳤는지, 한 쪽 벽면이 전부 대형 유리로 이어져있는 연습실의 한켠에 모여 지쳐 쓰러져 있는 아이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전부라고 해도 열댓명은 훨씬 넘는구나.


"호? 누구신가요?"

"네가 그 나오니?"

"마츠리는 마츠리 공주인거에요. 그것보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데요?"


그럼 왜 니가 나서. 요코하마 나오가 누구냐니까. 적당히 널브러져 있던 사람 중, 특이한 말투의 여자애가 벌떡 일어나 나를 이리저리 훑어본다. 이것 참. 개성이 넘치는데.


"아... 나는 765프로덕션에 새로 입사한.. 아니, 스카우트된 프로듀서인데."

""에에에?!!""

"진짜요?!"

"거짓말! 나오한테 단독 프로듀서가!?"

"우와, 그럼 이제 데뷔하는거야?"


말을 잘못 꺼냈을까, 그 한마디에 단숨에 일어나 나를 애워싸곤 꺄꺄-거리며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아이돌들. 그러고보니 765프로... 하면 원래 13명정도 나름 아이돌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나도 몰라. 결정된건 없어. 그래서 너희들 중에 나오가 없어?"


한번에 열댓개 씩의 질문이 미친듯이 고막을 두드린다. 누군가는 내 옷을 잡곤 꾹꾹 당기고, 앞에서는 자기를 보라는 듯 앞다퉈 얼굴을 내밀었다. 제대로 분간조차 되지도 않는데. 

그리고 내가 다시 한번 조금 짜증 섞인 말로 요코하마 나오를 찾는 순간, 뒤쪽, 내가 걸어들어온 문쪽에서 누군가, 관서 방언이 가득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으으응?! 누고?!  누가 내를 찾노!"


왼쪽으로의 사이드 포니테일과 파랑색 물방울 무늬의 슈슈 헤어밴드. 동글동글하면서 살짝 날카로운 눈에 약간 비대칭으로 자른 듯 매력적인 앞머리와 모두가 입고 있는 듯한 조금 헐렁한 트레이닝 복. 

땀으로 젖은 것을 닦았는지 하얀 목덜미에 걸친 흰 수건과 함께 나무로 만든 바닥이 쿵쿵 울릴 정도로 순식간에 나에게 달려온다.


"지가 나오입니데이. 그런데 누구싱교?"


공손한.. 듯한 말투로 앞에 손을 모으곤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서, 타카기 사장님이 전해준 『보자마자 알걸세!』라는 말의 뜻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하지만 최대한 위엄있게. 얕보여서 허둥대 제대로 아이돌조차 컨트롤 못한 지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곤 최대한 냉철한 표정으로 나오에게 말을 건낸다.


"아, 네가 그 요코하마 나오니?"


그리고 내 질문에 순간,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아아..."하는 듯한 주변의 안타까운 듯한 환성 소리와 함께, 

눈앞의 나오는 중심을 잃은 듯 휘청, 하곤 넘어지면서 손등으로 내 팔을 툭하곤 건드리는 정석적인 태클이, 물흐르듯 나에게 들어왔다.


"내는 야마다 안카나!"

"에, 요코하마 야마다?"

"지인짜 말 못알아묵네, 내는 요코'야마'라꼬!"

"아, 요코'야마'라고?"


이름을 완전히 잘못 알았을 줄이야. 구두로 전달받은 탓에, 나도 모르게 요코야마라고 착각해버렸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고, 주변 아이돌의 키득거림만이 들려왔다.


"그래. 함 해봐라."

"요코야마 나오."

"그래! 하, 프로듀서가 첨부터 이래가 믿을 수 있겠나!"


그리고 주변의 쏟아지는 웃음. 의도했던 프로듀서의 위엄은 전부 구겼고, 어쩌면 이 녀석들 중에 몇명에게는 첫인상이 조금 얕보였을지도 모른다는 무의미한 불안감도 든다.

그래도 여차하면 처음부터 차갑게 대해서까지 분위기를 잡기로 마음먹었던 내가 그녀를 미워하기 힘든건, 조용히 내 귓가에 그녀가 속삭였기 때문이 아닐까.


"잘부탁한데이. 프로듀서."

"...그래."


나도, 그녀만 들리게 속삭였다.

이것이, 우리 둘의 첫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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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획은 최소 14편으로 잡고 있어요.


프로듀서가 이름을 헷갈린 건 제가 처음 요코야마를 요코하마로 잘못 생각했던 경험에서 따왔습니다아..

요코야마 나오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아이커뮤의 모두가 나오 팬이 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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