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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과 만날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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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5, 2018 23:48에 작성됨.

당신들과 만날 수 있었기에――――



※ 이 단편은 실제 사건을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어두운 방 안. 빛이라곤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과 그것을 반사시키는 캔이나 병 따위가 전부. 들리는 소리 또한 짹깍거리는 시계와 타닥타닥 두들기는 타자 소리가 전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은 깊게 내려 앉은 다크서클과 붉게 충혈된 눈을 하면서도 타자를 멈추지 않는다. 내일까지 작성해야 할 기획서가 잔뜩이다.

[우우우웅]

핸드폰이 울린다.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깨어있는 엄마에게서 온 전화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반갑지 않다. 해야할 일이 많은 입장이라서 빨리 끊고 싶은 마음뿐.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여보세요?"

[뭐, 기분 나쁜 일 있니?]

과연, 부모라고. 한 번에 아들의 상태를 맞췄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한창 대학생인 지금 이 시간에, 학교 프로젝트 실에서 지금 기획서를 쓰는 처량한 입장.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하잖니, 프로젝트의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응'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기에 적당히 거짓말을 한다.

"별로"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럴 때는 분위기 좀 파악하고 그냥 알았어, 하고 넘어가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조금 귀찮고, 짜증난다. 빨리 끊고 기획서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왜 전화 했어?"

[아, 그게...아빠가 또 안 들어오셔서...]

"또 싸웠어?"

[아니, 싸운 건 아니고...]

우물쭈물하는 엄마. 이제 지친다. 집에 들어가면 허구한 날 싸우는 소리. 그리고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않아서 짜증나는데 이제 막 돌아온 아들한테 돌아오는 화살. 자식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믿는다'라는 한 마디만 하고 시종일관 방관하는 아빠와 반대로 지나치게 의지하려고 하는 엄마. 두 사람이 싸우는 원인이면서 철들지 않고 인터넷 도박으로 빚을 지고 사는 못난 동생.

그 세 사람 사이에 낀 나는 정말 미칠 지경이다. 거기에 겹쳐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상황. 달려가는 차를 보면 안 좋은 생각이 먼저 드는 하루 하루의 연속이다.

"나 지금 바쁘니까 이따 통화할게."

[...]

퉁명스러운 말에 침묵으로 답하신다. 그리고 곧이어 들리는 말

[너도 지금 엄마 무시하지.]

"...왜 또 얘기가 그렇게 되는데?"

[무시하는 거 맞잖아. 그러니까 지금 짜증내고.]

지금 내 상황에서 짜증나지 않는 사람 있으면 나왔으면 좋겠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싸웠다. 대판. 전화로 성질내고 끝끝내 내 성질 못 이겨 핸드폰을 집어 던져서 박살내버렸다.

솔직히 이제 상관없다. 그냥...

"죽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미칠 것 같았다. 프로젝트도, 가족 관계도, 교우 관계도. 뭐 하나 좋을 거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

컴퓨터에서 노래소리가 들린다. 기획서 쓰다가 졸 것을 대비해서 맞춰둔 알람 기능이다. 노래는 뭐...최근 유행하는 노래 아무거나 튼 거라 잘 모르겠다.

"...좋은 목소리..."

밝고 경쾌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는 이도 뭔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목소리다. 몸을 일으켜 노래의 주인을 찾아본다.

"...아마미...하루카?"

아, 765프로덕션의 그 아이돌인가? 연애계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961프로와 765프로로는 뉴스가 꽤 시끌벅적 했기에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노래를 들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경쾌한 목소리. 밝은 분위기. 왕도라고 느껴질 정도의 아이돌 노래소리. 끝내주게 잘한다...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내 맘을 치유하기에는 좋은 노래였다.

이윽고 노래가 바뀌고, 조금 서정적이고 우울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온다.

"...키사라기 치하야..."

하지만 그럼에도 가사는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 클라이막스의 걸어가자- 라고 하는 부분. 그럴 리가 없겠지만 아이돌이 나에게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좋았다. 지금의 나도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의 노래를 계속 반복하면서 765아이돌들을 검색해 보았다.

남성 같은 보이쉬한 스타일이지만 오히려 귀여운 키쿠치 마코토

땅파기가 좋다니, 이상하구나- 생각했던 하기와라 유키호

자는 것으로 하루를 다 보내는 호시이 미키

장난이 심한 쌍둥이 후타미네의 아미와 마미

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었던 아키즈키 리츠코

미스테리한 매력이 있는 시죠 타카네

천사 아이돌이라고 알려진 타카츠키 야요이

츤데레라는 것이 잘 어울리는 미나세 이오리

완벽하다고 하는 가나하 히비키

끝내주는 몸매의 미우라 아즈사

정말 개성 넘치는 아이돌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서포트해주는 전직 아이돌이라고 알려진 사무원인 오토나시 코토리씨. 어째 망상증 환자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이 사람도 고민 많겠지..."

하긴 고민이라고 하면 이 안경 쓴 프로듀서라는 양반도 심하겠지만

"...노래 좋다. 몇 개 더 들을까?"

기분이 한결 나아진 상태에서 아이돌들의 노래를 찾아본다.

타닥타닥 기획서를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머리도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음-! 좋은 시나리오가 됐는데?"

기획서를 완성했다. 이렇게 단기간에 끝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내용은 한 남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전형적인 스토리. 그럼에도 대중성 있고, 잘 먹히는 스토리. 이 시나리오의 제목은...

"...그녀들을 만났기에――――나는 죽지 않았다. 음, 좋아!"

이것이 내가 그녀들의 팬이 된, 그녀들에게 구해진 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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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쯤 전, 2016년.

안 좋은 가정사정과 교우 관계 등으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티게 해준 것은 아이돌들의 미소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지금까지 창작글에 써 놓은 글이 정말 밉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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