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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미카] 욕구계층이론에 기반한 외설적이고 도착적인 페티시즘의 생화학적 작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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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5, 2018 22:21에 작성됨.

난 좋은 언니일지는 몰라도, 좋은 딸이나 어머니는 되지 못할 것 같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이 망할 광년이를 보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자기 스스로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불효막심하고 괘씸한 존재인지를, 새삼스럽지도 않게 자각하는 건 두 분이 죽은 후에야 땅을 치며 후회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일단, 임종을 앞두고 내가 자랑스러운 딸이었냐고 당당히 물어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성장했으면 한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꼬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말이다.


"....후우."


후덥지근한 밤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TV에서는 매일 같이 최고기온 갱신을 외치며, 열사병으로 쓰러져가는 불우한 사람들의 소식을 알려온다. 천장 한 구석에서 돌아가는 에어컨의 존재가, 이 만큼 고마운 계절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탄산음료를 든 내 사진이 걸린 자판기를 지나 샛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뭔갈 던지면 충분히 닿을 법 한 거리에 봉투 한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에잇."


손에 든 봉투 무더기를 투척했다.

홀인원. 딱히 구멍은 없지만, 내가 던진 봉투 무더기들은 전부 다 봉투 무더기 위에 안착했다. 밤을 현대문명의 불빛 속에 던져두고 온 매미 울음소리가, 내 득점을 비웃기라도 하는 마냥 귓가를 찔렀다.


"예이★"


박수갈채에 포즈로 화답했다. V자. 피스 사인이다. 행여나 감시카메라 같은 게 없길 바라며, 종종걸음으로 에어컨을 찾아 돌아갔다. 무덥지근한 밤 공기가 새삼스레 발목을 잡고 끈적이며 내 조바심을 재촉했다. 무대 위, 카메라 앞이 아니라면 어지간히도 부끄러운 짓인 지는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나이를 먹었다곤 해도, 이제 대학생활 첫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뿐인 청춘이지만. 아니지, 아이돌로서는 조금 위험할려나. 장수하시는 분들의 고견을 슬슬 갈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나 언니라면 어떨까. 아직 나 같은 애송이가 상담을 받기엔 너무 이를까.


하지만, 적어도.

자취 생활 동안 일에 치어 사는 대학생이 살아남는 방법 정도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도 가득 차 있는 스케줄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나, 죠가사키 미카는 지금 홀로 살고 있다. 원인은 물론 대학과 일 때문이다. 가정불화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죠가사키 가에는 화목함과 상호존중이 흘러넘친다.



--



[방학되면 집에 온다면서]


타닥타닥. 액정 두드리는 소리. 글래스 커버가 손톱을 두드린다.


[보내줘어.......]


[언니의 방학 미시로 전무와 립스로 대체되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큰 가슴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사이, 리카가 비뚤어져 버린 듯 하다. 화목함과 상호존중이 흘러넘치던 죠가사키가는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가까운 시일 내에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한 번 참교육을 하러 가야 할 듯 하다. 아니지, 일할 때 만날 기회 있을 때니 그 때를 노리는 게 더 빠르려나. 아니면 키라리한테 넌지시 이야기를 좀 하거나. 그래, 키라리랑 미리아를 이용하는 게 좋겠어.

여동생을 엿먹일 생각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역시 난 좋은 언니인 것 같다.


[응 다음 토토키라 유치원생]


[그래서 님 애인은 사귐?]


대학 근처의 원룸, 에어컨 없인 지나갈 수 없는 밤이 깊어온다. 밤이 깊어갈수록 자매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서로의 명치에 박히는 죽창도 깊어지고 있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일이 있지만 알 게 뭐람. 지금 죽창각이 나오는데. 톱 클래스의 아이돌이 현장에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까일 리가 없잖아. 게다가 대기업 소속인데. 꼬우면 꺼지라고 하던가.....


".....씻을까."


일 때문인지, 아니면 후덥지근한 열대야 때문인지 스트레스가 조금 쌓인 것 같다. 에어컨을 빵빵 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브래지어 없이 몸 위에 걸친 티셔츠가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피부에서 배여 나온 물기운이, 옷 안쪽 맨살의 색을 드러내 버렸다. 젖어서 달라붙은 채로, 조금이나마 피부색을 감추려고 하는 듯 한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뾰족하게 솟아나온 곳이 진득거려서 버틸 수가 없다. 몸의 윤곽 전체에, 기분나쁠 정도로 달라붙어 있었다. 몸을 조금 비틀자, 가슴 사이의 빈 공간에서 체취가 올라왔다.

그제서야 팬티 안쪽도, 못 볼 꼴이 되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비싼 돈 주고 산 건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옷을 벗어던졌다. 이젠 몸에서 떨어지기 싫은 마냥 질질 끌려 올라가던 옷은, 결국 마지막 봉우리에서 한껏 튕겨져 올라갔다. 몸에 걸친 실오라기를 전부 빨래 바구니에 던졌다. 화장실로 들어가 미지근한 물을 온 몸에 끼얹었다.


"후우...."


체취와 땀을 씻어내리는 물소리가 귓전을 가득 메운다. 머리 말리는 게 또 한 세윌이긴 하지만, 불쾌감을 달고서 자느니 약간 수고를 하는 게 낫다. 에어컨 바람만으로는 마르지 않는 체액이, 미지근한 물과 함께 씻겨내려간다. 기분좋은 소리다. 잠시 호흡을 늦추고, 귀를 가득 메운 물소리에 한층 더 잠겨든다. 눈을 감고 그저 소리에 빠졌다. 

단조로운 소리. 눈을 감으니 한층 더 깊게 잠긴다. 피부를 때리는 물의 감촉과, 귀 속에 잠긴 물소리가 내 세계를 좁힌다.


한 순간이지만 영원했으면 하는 이 때에 마음을 빼앗겨,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샤워기를 잠그고, 몸을 닦았다. 마른 수건의 감촉이 기분좋다. 왠지 모를 기분좋은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세제 향기인가? 비싼 걸 사길 잘 했나 보다,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드라이기의 전원을 올렸다. 풀린 머리가 다 마를 때 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드라이에서도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나고 있었다.


"하암...."


샤워를 끝마치니 피로가 몰려왔다. 생물로서 당연한 반응이리라. 이제야 약간 차갑게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이, 기분 좋은 피로를 자극해왔다.

졸음이 몰려오는 내 앞에, 스프링이 탄탄한 매트리스와 약간 부풀어오른 이불이 보인다.


"......요오시!!! 다이브다!!"


확실히 말해두는데, 이 상황에서 다이빙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초월적인 절제력을 갖춘 사람이거나, 인격을 구성하는 감정이라는 요소가 결여된 인간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에서 다이빙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딸피가 눈 앞에 어른거리는데 풀피 타워가 그리 중한가. 그렇게 난 푹신한 이불과 침대의 감촉을 기대하며 침대에 뛰어들었다.


"후냐아아아아아아앙!!"


"쿠허억!!"


무언가, 튀어나온 덩어리가 내 명치에 박혔다.


"커, 커흑, 케흑...."


한 손으로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론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잡았다. 뭐라도 잡으면 고통이 좀 덜 해질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상태로 침대 위에서 구르니,


"쿨럭, 콜록.... 케하약?!"


이불과, 그리고 이불 안에 들어있던 것과 함께 굴러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등이 바닥에 부딛히는 순간 눈을 딱 감았다. 아팠다. 고통이 등 전체에 퍼지고, 등 전체에 열과 통증이 느껴질 때 즈음에 다시 눈을 떳다. 숨이 좀 트였다.

이름 모를 좋은 향기를 들이켰다. 부드러운 무언가가 얼굴과 코를 기분 좋게 누르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한번 더 들이켰다.


"스읍......"


정신이, 아찔해진다.

뭐지? 부드러운 덩어리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냄새가 난다. 침대 위도 아니지만, 이대로 잠에 빠져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빠져들고 있다. 피로가 충만한 몸을 나른함이 짓누른다. 정신은 향기 속을 헤메이다 간헐적인 발작을 일으키며 꿈결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그녀가, 내 육체를 짓누르고 마음을 미치게 만든다.


"시, 키......"


".....냐핫?"


찬기가 느껴지는 바닥.

그리고, 온기가 느껴지는 관능적인 무언가가 나를 덮어간다. 상스러운 수면의 애무에 무심코 혼절해 버렸다.



---



내 방을 습격한 미친년 이치노세 시키가 어떠한 인물인지 소개하기에 앞서, 우선 해야 할 일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자리에서 일어난다. 찬 바닥에서 자면 입 돌아간다. 당장 오늘 촬영인데 입 돌아가면 난리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한다. 응, 아직 충분하다. 몽롱한 정신 너머에서 자명종 소리가 들린다. 샤워하기 전에 미리 시간을 맞춰둔 걸까? 역시 톱 아이돌이란 평상시의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일어나 이 시발년아!!"


"음냐하~ 4분 33초만 더~"


"여기가 니네 집이냐?!"


"흐규흐규~ 시키는 엄마잃은 불쌍한 아이에요.... 더는 못 먹어양~"


"당장 일어나라고!!"


죠가사키 미카의 강려크한 짓밟기가 광년 이치노세 시키의 대가리랑 복부에 히트!! 시키는 얄팍한 이불로 가드를 올려보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크윽! 몸무게 관리에 실패한 아이돌이 모든 체중을 담아서 공격해올줄이야!!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서 체중계를 버렸단 말인가!!"


"마침 방 구석에 체중계가 있었지!! 니 진짜 죽여버릴거야!!"


체중계는 무겁다.

그리고 후미카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중세 시대의 냉병기는 대충 1kg정도만 되어도 사람을 충분히 죽이고 다녔다고 하더라. 아마 이 체중계는 1kg가 넘는다!! 물론 금속제다!!


"날 죽이면 리카가 무사하지 못할걸?!"


"핫-하! 죽어라-앗!"


광년이와 함께 여동생을 세트로 이 세상에서 치워버릴 수 있다니, 하늘께서 친히 내려주신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이 죠가사키 미카, 오늘 세상을 한 걸음 더 깨끗한 곳으로 인도하리라!


".....음, 시시해졌어. 겨우 그 정도 언니력으로 날 죽이려 하다니."


그리고 시키는 내 회심의 일격을 고양이마냥 바닥에 녹아내리며 달라붙듯 해서 피해버리곤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바닥을 기는 게 와인색 갯민숭달팽이 같다. 

저 화려한 색기는 극독을 품고 있다는 경고의 의미일까.


"시키보다 연하인 시점에서 미카가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냐하하~

시키가 변기 위에 걸터앉아서 고양이처럼 웃었다. 자기 화장실도 가릴 줄 아는 걸 보니, 머리 하나는 기똥차게 좋은 것 같다. 이치노세 전문 구제업자 이가라시 쿄코를 불러와야 할까.


"물론 이길 수 있지."


쪼르르르르. 이 물소리는 그 물소리가 아니다. 변기에서 나는 소리 아니란 말이다. 우리 아이돌은 소변 같은 거 보지 않는다. 물론 이치노세 시키의 소변이라면 천금을 내고도 사겠다는 씹변태 새끼들은 덤프트럭으로 퍼다가 세토내해를 메워버릴 정도로 차고 넘쳐나긴 한다만 없는 건 없는 거다.

그럼 이건 무슨 물소리냐고?

내가 양치하는 컵에 물 받는 소리다.


"한국에는 코렁탕이라고 하는 훌륭한 풍습이 존재하더라고."


"그거 풍습 같은 거 아니우우에에에베베벱......"


억지로 그녀의 얼굴을 잡고 코에 물을 들이부어주었다. 위로 물을 집어넣고 아래로 물을 뿌려대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흘러내린 물이 대충 걸친 가운과 맨살을 붙여버렸다. 선분홍색 살갖이 하얀 장막 뒤에 숨어 모습을 감추었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풍습이 있는줄 몰랐군.


"후우....."


이치노세 시키. 천재. 기프티드. 광년이. 미친년.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나보다 한 살이나 나이를 더 쳐먹었다. 게다가 머리가 좋은 건 진짜다. 뭔가 말도 안되게 어려운 계산을 머리 속으로 척척 해댄다. 공감각인가 하는 이상한 초능력 비슷해보이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서 모든 정보를 냄새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치노세 시키 가라사대, 보라색 맛은 모르겠는데 보라색 냄새 났어! 랍신다.


"음, 이건 야한 냄새네. 역시 그런 게 목적인 거야? M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S였네~"


"생리식염수 있는데 그것도 박아줄까?"


"좋지. 코가 먹먹하면 세상이 작아져버린다고. 어디 있더라?"


"거울 뒤쪽 두번째 서랍. 핑크색 뚜껑."


천재 미소녀라는 최고의 장점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미친 년이다. 천재는 미쳤다는 클리셰의 산증인인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재앙이라는 의미라면, 그녀의 존재는 천재라는 단어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푸슝! 음, 역시 야한 냄새야."


코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을 스윽 닦아낸 시키가 말했다.


"어디 키워주고 싶은 뉴비라도 찾았어?"


"날 들어다 박아줬으면 하는 사람은 있는데."


손가락 끝이 진한 분홍색으로 빛난다. 시키한테 박아대고 싶다는 사람은 태평양에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이고도 남아돌 정도로 있겠지. 시키한테 박아보고 싶다는 게 딱히 변태적인 욕망도 아닐 것이고.

변태일 리가 없지. 그래, 그럴 리가 없다고. 문제는 그녀가 평범한 인물을 고를 리가 없다는 점 정도인가. 평범한 변태적 페티시즘 따윈 그녀 눈엔 차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널 감당할만한 사람이 있을까?"


"여기 있잖아. 내 눈 앞에."


그런 그녀가, 날 보고 있다.


"오줌이나 다 싸고 말해."


옷을 벗어던졌다. 시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나 샤워할 거니까 나가."


그녀에게서 계속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식육목 맹수의 시선이 느껴진 듯 했다.



--



휴식시간.

일할 때는 이 미친년에 대한 단상을 머릿속에서 떼 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시로 상무는 내 기대를 처참하게 배신해버렸다. 전무로 승진해도 상무는 상무인 것이었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그 경영 방침에 언젠간 철퇴가 꽃히길 바랄 뿐이다.


"역시 상무님이야. 이렇게 좋은 스폰서를 어디서 구하겠어? 냐하하~"


미시로 전무는 자기가 스폰 서주는 아이돌한테까지 상무 취급 당하고 있었다. 시키의 경우, 나나 다른 아이돌처럼 종종 헷갈리는 게 아니라 일부러 상무로 부르고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 스폰서가 나를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미카랑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한 건 나니까 상무를 너무 원망하지는 마."


"니가 범인이였냐?!"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뭣 하다만, 최근 들어, 시키가 날 놓아주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정확히는, 나와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한 느낌이다. 어디까지나 내 억측에 불과하지만, 여자의 감 비슷한 녀석이 이 불합리한 추측에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었다.


"넌 이거 말고도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올 거 아냐...."


"그야 뭐, 아이돌 일도 들어오고 아이돌 일 아닌 것도 들어오지. 그래서 내가 투어를 잘 안 가는 거고. 약물 사용만 눈감아주면 투어 끝나고 바로 연구실에 틀어박혀도 괜찮을텐데."


얘는 주기적으로 투어를 보내서 몸 안에 쌓인 약물을 땀과 함께 강제적으로 배출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바쁜 이치노세 박사께서, 어찌하여 이런 누추한 곳 까지 발걸음을 옮기셨습니까?"


스태프가 사인을 보낸다. 슬슬 휴식을 끝내고 재촬영에 들어갈 시간이다. 기하학적으로 얽힌 전선들 너머, 각자 짤막한 용무를 마친 사람들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저들과 나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어쩌면 꿈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그럼 하늘에서 내려오신 재앙께선, 대체 이곳엔 어떤 용무로 오신 것일까. 단순한 자극? 아니면 스폰서와의 협정? 어느 쪽이든 나 같은 범인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까닭에 머리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고 촬영에 임한다. 일 할 때는 일에 집중하자.


"오오, 이것은 고민의 냄새가 아닌가. 이 초 천재 이치노세 박사님께서 그대의 고민을 화학적으로 해결해주지. 해피한 기분이 되는 약이 좀 있는데..... 물론 위법은 아니야."


"아직 위법은 아니라는 거겠지.... 으휴."


"그래서,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거야? 적어도 오늘 중에 실종될 예정은 없는데?"


"그런 건 평생동안 예정에 넣지 마."


카메라 앞에 서기 전, 화장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녀가 제작에 참가한 화장품이, 혹시 모를 잡티들을 얼굴에서 가려주고 있었다. 좋은 향기가 난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좋은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전문 조향사들은 후각을 유지시키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향기들을 피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녀에 한해선 그런 노력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진짜로 본 적이 없나? 어쩌면 그녀 또한, 그녀 나름대로 수면 아래에선 필사적으로 발을 젓는 게 아닐까?


"한 다음 주 즈음에 실종될 거니까 상무한테 미리 이야기 좀 전해줘."


"직접 전하시죠?"


"상무 화낸다고. 화내면 무섭잖아."


"당연하지!! 것보다 무서우면 하지 마!"


"호구.... 크흠, 스폰서가 사라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 지 미카가 알기나 해?!"


"몰라!"


"구체적으로는 베게 영업할 때 찍힌 비디오가 유출당한 아이돌의 1/2정도의 공포를 느낀다고!"


"무서워!!"


카메라가 우리 둘의 모습을 담았다. 이야기 내용은 오프 더 레코드로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왜 그녀는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상무에게 말했던 걸까? 사진을 찍기 위해 찰싹 달라붙은 그녀의 목덜미에서, 이름 모를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이라는 건 이렇게나 시선을 끌어모으는 것이었나? 왜 나였을까? 아니, 왜 이 향은 이다지도


"죠가사키 씨, 시선 이쪽으로 고정해주세요."


"네~"



--



단순한 미스로 얼버무릴 수 있다고, 그렇게 착각해버린 거다.

귀여울 정도다. 아니, 항상 귀여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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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가자 제발. 힘내라 실버메탈.

제목은 논문처럼 한 번 구성해 보았습니다. 제 안에서 시키는 연구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네요. 잘만 하면 저 아래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백합의 신이시어 제게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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