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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자는 말에,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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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3, 2018 14:43에 작성됨.

-하루카, 나랑 같이 살자.

-정말? 치, 치하야 쨩이 그렇게 말해주다니 너무 기뻐서 어쩌지~ 그렇지만 안 돼.


뚝. 


아주 짧고도 이상한 꿈을 꾼 어느날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꿈의 기억은 선명해져갔고, 어쩐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동안에도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해서 고역이었다. 일과인 런닝을 할 때도. 다시 집에 돌아와 씻을 때도. 식사를 마치고, 우선은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도.


봐, 이렇게.


나는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거울에 살짝 손을 대었다. 살짝 물기가 남아있던 손이 거울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 그 쪽에 잠깐 주의를 기울익고 있던, 조금 빽빽해진 눈이 거울의 정면을 향한다. 거울에 비친 한 얼굴. 이젠 눈물은 그쳤지만, 다시 또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이상한 얼굴. 울었다는 게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새빨간 눈. 


이런 모습,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입는 것만으로도 조금 갑갑해지는 교복 소매를 만지작거린다. 모두에게 경원시 당하는 몸. 이미 뒤에서는 수군수군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학교에 나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주는 일에 지나지 않아. 치기어린 마음이 학교에 나가지 말아야할 구실을 찾아나선다. 출석일수가 조금 걱정이지만, 아직 그렇게 위험한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까. 축 가라앉은 머리가 무겁고, 느릿하게 구실에 적당한 근거를 덧붙여나간다. 


그래, 그렇다면. 아까보다는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온 나는, 거리낌없이 블레이져를 벗어던졌다. 갑갑했던 게 다시 편해졌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스러질 것 같은 발걸음으로 다시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거리낌없이 그대로 폭, 하고 쓰러졌다.


기껏 정돈해놓은 시트가 사정없이 흐트러졌다. 단정했던 옷매무새나, 빗어내렸던 머리도 같이 흐트러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마음은 전부터 흐트러져있었다. 닦아버렸던 눈물이 다시 또 배여나왔다. 정말 어째서일까. 반쯤 물에 잠겨버린 듯한 머리에서, 꿈 속의 하루카를 건져올려본다. 언제나처럼 밝은 모습을 보였던 하루카. 내가 아무 이유도 맥락도 없이 꺼내버린 이상한 말에도 기뻐하던 하루카. 그리고는 역시 언제나처럼 밝은 목소리로, 거절을 이야기했던 하루카.....


"웃....."


안에 역한 쇠비린내가 들어찼다. 나는 시트에 뭉개다시피 맡겨놓았던 신체를 반쯤 일으킨다. 그리고는 구겨져있던 넥타이를 풀어버리고는,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휘릭, 툭. 검붉은 색 끈에 벽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고도 아직 분이 덜 풀린 듯한 손이 목 주변의 옷감을 확 잡아채고는, 잠겨있던 단추를 거칠게 풀었다.


"후우, 하아, 후우......"


답답해. 그래도 답답해. 얼마나 더 단추를 풀어야하는 거야? 이미 잔뜩 풀어해쳐진 블라우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맨살갗을 더듬었다. 금새 느껴지는 단단한 뼈의 윤곽이 기분 나빴다. 꿈이라는 건 어쩜 이리도 비합리적일까. 비논리적일까. 이치에 맞지 않는 걸까.


.....솔직히 그래도 상관 없었다. 비합리적이라도 좋았다. 비논리적이라도 좋았다. 이치에 맞지 않아도 좋았다. 꿈이라면. 깨어나면 사라질 그런 세계라면. 적어도 조금은 상냥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렇게 잔인한 거야. 하루카는 왜 나를 거절한 거야. 왜 그렇게 밝은 목소리로 안된다고 말한 거야. 꿈에서도, 깨어나서도. 쭈욱. 영문도 모르고 생겨나는 분한 마음에 입술의 안쪽을 꾹 씹었다.


-그렇지만 안 돼.


사실 그 뒤에 이어질 법한 말을 생각해보는 것은 쉬웠다.


-애초에 우리들은. 나하고 치하야 쨩은, 그런 말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도 아니니까.


나는 최근에서야 하루카를 겨우 성씨가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루카보다는 아마미 씨라고 불렀을 나날이 훨씬 길다. 하루카는 나를 '치하야 쨩'이라고 부르지만,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다. 하루카에게 나는 같은 예능계 사무소에 소속되어있는, 동료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당연한 사실을 상기해본다. 그래도 분한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였다. 나도 하루카를, 동료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뿐이다. 언제나 먼저 다가와주는 하루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당연한 사실을 좀 더 상기해본다. 그래도 분한 마음은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나는 과열되기 시작하는 머리를 양 손으로 부여잡고는,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시트가 금방 축축해졌다.


-하루카, 나랑 같이 살자.


그러니까.....어떻게 그런 말을 해. 애초에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각자에게는 각자의 공간이 있어.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걸 너그럽게 봐주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야. 내 공간에는 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나와 노래만 있으면 돼. 그걸로 완결되는 높고 단단한 성. 아무도 들어오지 말아줘. 그게 내 이상적인 공간이야. 그런데. 어째서.....나는 꿈 속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 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심정으로,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내뱉어버린 걸까. 동료이긴 해도, 친구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에게. 


-그렇지만 안 돼.


그리고 왜, 나는 그 말에 이렇게나 크게 충격을 받아버린 거야.


다른 것 전부는 선명한데, 그것만큼은 흐릿했다. 나는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유도 없이 괴로워했다. 이유도 없이 하루카를 생각했다.   어떤 한 사람을 이렇게나 생각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한 때 상냥했던 부모, 이제는 없어져버린 그 애를 제외한다면 하루카는 거의 처음으로 내게 가까이 다가와준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 꿈이 괴로운 걸까? 


별 것도 아닌, 너무나도 짧은 꿈에 사로잡혀, 쭉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보 같아. 조금 있다, 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몸을 굴렸다. 물기어린 눈이 흐릿하게 천장을 비췄다. 축축한 것이 잔뜩 얼굴에 묻어있는 감각이 불쾌했다.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를 대충 쓸어넘기며, 나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지독해진 나 자신을 마주한다. 


이런 모습으로는 절대 학교에 갈 수 없다. 학교에 나가지 않기로 한 건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만약 시간이 지나서 오후가 된다고 해도 쭉 이런 모습이라면, 사무소에도 갈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아, 그건.....곤란해. 나는 서둘러 엉망이 된 눈가를 손등으로 훔친다. 그리고는 이미 잔뜩 흐트러지고 구겨진 교복을 정돈한다. 어차피 벗어버릴 옷이라는 걸 그 다음에서야 깨달았다. 멍청해. 한 번 더 나 자신을 비웃는다. 이런 모습은 남에게 보여줄 만한 게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하루카에게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은 보이고 싶었다. 괜찮아 치하야 쨩? 그렇게 하루카가 걱정해주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동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구나. 그렇게 자각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만해. 원한다고 해서 받을 수 없어. 이번에는 정말 진지하게, 스스로를 타일러본다.  


치하야 쨩, 나랑 같이 살자.


그러면 내가 아닌, 하루카가 그렇게 말했다면.....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른 쪽으로 도피한다. 의미없는 가정. 그래도 나는 곰곰히 생각해본다. 만약에, 하루카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답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양 입술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갔지만, 미소를 그리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 나는 곧바로 막다른 벽과 마주해버린다. 하루카가 다가와주는 것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하루카는 딱 거기까지만 다가와줄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는, 하루카로 하여금 절대 저런 말을 꺼내지 않게 만들 것이다. 하루카가 뻗는 손은, 내가 둘러버린 성벽에 닿을 일조차도 없어.


"우읏....."


거울 안의 내가, 울상을 지었다. 안되는 일에 떼를 쓰는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끼릭끼릭. 나는 세게 물을 틀어, 제멋대로인 나를 지워내려고 했다. 물이 교복에 사방으로 튀어, 정돈했던 교복을 다시 엉망으로 만들었다. 몸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가는 습기가 기분 나빴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수도꼭지를 잠그고는, 근처에 걸어놓았던 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닦았다. 눈물은 그쳤다. 그렇지만. 나는 거울에 남아있는 물기를 손가락으로 슥 훑어보았다. 여전히 심통부리는 고집쟁이 아이가 남아있었다. 몸은 이렇게나 커져버린 주제에.


그 아이인 나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방에 돌아와, 푹 젖어버린 옷들을 악전고투하면서 벗어서 아무렇게나 내팽겨쳐버리고는 모든 것을 새로 갈아입었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기능에만 충실한 속옷. 푸른색 터틀넥 셔츠와 겉에 걸치는 하얀 겉옷. 너무 헐렁하지도 꽉 끼지도 않는 갈색 바지. 사무소에 오고가고 할 때, 주로 애용하는 복장.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헝크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는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학교에 가기에는 지나치게 늦어버렸지만, 사무소로 향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런데도 나는 착착 나갈 준비를 했다. 가방을 챙기고 양말을 신고, 현관으로 걸어가 조금 낡은 구두를 꺼내 내려놓았다. 발을 그곳에 밀어넣고는 힘주어 몸을 일으켰다. 소지품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는 꾹 닫혀있던 철문을 열었다. 훅 하고 들어오는 바깥 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나는 곧발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잠근 뒤, 제대로 점검까지 했다. 


"그렇네, 여긴 같이 살기에는 너무 좁아."


마지막으로는 갈라져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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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아 피할 수 없는 중2감성이군요 그래도 썼으니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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