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단편] 토모카 트랩 (朋花 Trap) - 1

댓글: 4 / 조회: 1585 / 추천: 8


관련링크


본문 - 09-26, 2018 18:03에 작성됨.

1.


매일 아침, 그에게 가장 먼저 인사해 주는 사람은, 건방진 꼬맹이였다.


아기 돼지가 어쨌느니, 천공기사단이 어떠했느니, 그런 어린 여왕님의 세계는, 사회인인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런 시건방진 열다섯 살 꼬마 아가씨지만, 주위에서 떠받들어주는 것 치고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주어진 일에 임한다.


그런 점은 꽤 마음에 든다. 조금만 더 순종적이고, 아주 약간만 솔직했다면 더 귀여웠을 텐데.


하지만 프로듀서로서는 이러한 그녀의 성격을 고칠 생각은 없다. 이미 그녀 특유의 내려다보는 성격과, 타고난 카리스마는 그녀 특유의 캐릭터로 굳어졌고, 훌륭한 프로덕션의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괜한 위험부담보다는 확실한 개성과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는 것이 기업이고, 765 프로덕션 역시 기업이다.


아침에 출근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의 문을 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안녕하신가요~프로듀서 씨~♪”


오늘은 그녀의 기분이 꽤 좋아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귀찮은 일은 적을 것이라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그래 안녕, 텐쿠바시 씨.”


“프로듀서 씨......?”


그러나 단숨에 차가워지는 토모카의 어투와 싸늘하게 식어가는 공기에, 뒤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갈색 머리의 사무원이 곤란한 웃음을 짓는다.


“안녕하세요, 아오바 씨.”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씨......”


그녀가 말끝을 흐리는 것은, 토모카의 귀신 같은 눈빛을 받아서겠지.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고, 그녀를 보았다. 그의 사정이나 토모카의 사정이 어쨌든, 아이돌의 모티베이션을 일부러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 토모카도 이를 알기에 토모카 특유의 카리스마를 프로듀서에게까지 뻗치며 그를 휘두르는 것이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텐쿠바시 토모카는 열다섯. 중학생이다.


“안녕, 토모카.”


무릎을 살짝 구부려 156센티, 자그마한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주며, 살짝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순간 갸르릉거리는 갈색 고양이의 모습이 보였지만, 이내 특유의 차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로 되돌아왔다.


“성모를 너무 쓰다듬으시는 것 아닌가요~? 천공기사단이 알면, 큰일이 나실 거랍니다~?”


“그래그래. 그렇게 싫다면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토모카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 순간, 책상에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던 사무원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아쉬운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뭐어...저는 딱히 싫다고 하지는 않았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 때문일까.


“슬슬 다른 아이들도 올 시간이니까.”


약간은 냉정하게, 그는 선을 그으며 말했다.


아이돌의 모티베이션을 걱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약간 자조가 섞인 프로듀서의 표정을, 토모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런가요.”


이해할 순 없지만 납득 한 얼굴로, 토모카는 그에게서 떨어져 그녀의 반 지정석이 된 연노랑색 일인용 소파에 얌전히 앉았다.


아직 오토나시 코토리가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상의 작은 소동은 없었다.


책상에 앉아 어제 그대로 켜 두고 갔던 엑셀 파일을 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혼자 수십 명의 아이돌의 스케쥴과 레슨, 컨디션 관리를 맡고 있다 보니, 스케줄표만 봐도 당일에 감당해야 할 업무가 상상 이상임을 매번 깨닫게 된다.


다행히 리츠코가 프로듀서의 업무도 겸하여 일부 업무를 분담해주곤 있으며, 별 도움 안 되는 코토리 이외에 아오바 미사키라는 꽤 만족스러운 수준의 사무원이 한 명 들어와 조금의 서류작업을 분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를 모두 감안하더라도 공식적인 765 프로덕션 유일 프로듀서의 업무 강도는 지옥 그 자체이다.


사장님도 몇 번이고 프로듀서를 새로 뽑으려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귀신같이 아이돌들이 단결하여 제지하는 바람에 단 한 명도, 심지어 여성 프로듀서조차 뽑지 못했다.


신뢰받는 것은 기쁘지만, 조금 도가 지나치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러던 와중, 달칵, 하고 사무소의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이에요, 프로듀서 씨. 그리고...아오바 씨.”


“어서 와, 시라이시.”


“좋은 아침이에요, 츠무기 쨩~”


시라이시 츠무기였다. 최근의 추가 오디션을 통해ㅡ사실상 스카우트가 먼저 진행되어 오디션은 형식이었지만ㅡ사쿠라모리 카오리와 함께 시어터 맴버에 추가된 아이다.


처음에는 연청색 장발과 살짝 긴장하여 힘이 들어간 눈동자를 보고, 프로듀서는 타카네와 같은 신비주의 컨셉을 잡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명명백백하게 치하야와 시즈카, 그리고 시호의 계보를 잇는, 몸도 마음도 언행도 푸르른 아이돌이 알맞다고 판단했다.


꾸벅, 작게 인사를 하고 프로듀서의 책상 앞을 지나쳐가던 츠무기와, 소파에 앉아 있던 토모카와 눈이 맞았다. 한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 하더니, 이내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텐쿠바시 씨.”


“좋은 아침이에요~시라이시 씨~”


“......”


아직 서로 익숙하지 않아서겠지. 그는 둘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리며, 눈앞에 있는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오토나시 코토리, 조금 일찍 오는 때가 한 번도 없어! 속으로 분노를 쏟아내며 이제 막 8시 45분이 된 시계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돌들의 스케줄이 정리된 엑셀 파일에 눈이 갔다.


아마미 하루카, 10시 레슨, 1시 예능 프로그램 녹화.


모치즈키 안나, 10시 레슨, 1시 예능 프로그램 녹화, 8시 드라마 촬영.


텐쿠바시 토모카, 11시 라디오 게스트, 3시 예능 프로그램 녹화, 8시 드라마 촬영.


시라이시 츠무기, 11시 앨범 녹음 작업, 5시 레슨.


“아, 제길.”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눈은 스케줄표의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 오전 11시에 맞추어져 있는 스케줄, 토모카의 라디오 게스트 참여와 츠무기의 앨범 수록 작업이다.


그래서 오늘 츠무기가 이른 시간에 출근했구나,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철칙은 아이돌들의 스케줄에는 반드시 참여한다, 이다. 물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몇몇 경우가 존재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 역시 그의 신념이다.


때문에 그는 아이돌들의 스케줄을 겹치게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었지만.


“......”


그답지 않게, 아무래도 피로가 쌓였었던 모양이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물론, 프로 프로듀서답게 지나간 일의 반성은 이쯤 하고,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로서 양쪽 다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첫 앨범 작업인 츠무기와 함께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토모카에겐 미안하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아이돌 활동도 제법 한 편이니, 리츠코에게 맡겨놓아도 괜찮을 것이다.


토모카가 조금 화를 낼 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의 실수이기 때문에 토모카가 조금의 어리광을 부려도 수용해 줄 용의도 있다.


그리고 시계는 아홉 시 정각을 가리켰다. 열한 시 스케줄이면 한 시간 정도는 일찍 도착하여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 이쪽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기에, 슬슬 출발을 해야 할 시간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오바 씨, 오토나시 씨가 출근하시면 오후에 사장님과 삼자대면할 것이라고 전해주세요.”


“앗, 네, 네...!”


리츠코도 포함하여 사자대면으로 해야지, 그는 속으로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작은 새를 어떻게 해체해버릴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씨~?”


하지만 옆에서 토모카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텐쿠바시 씨.”


“프-로-듀-서-씨~?”


“......토모카.”


졌다, 졌어. 투덜거리며 그는 토모카를 보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표정이지만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순간, 이 아이에게 오늘의 라디오 수록에는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가 두려워졌다.


“정말, 성모를 놀리시면 안 된답니다~?”


“딱히 놀리려던 건......”


“놀리신 거지요~?”


“......응.”


열다섯 아이에게서 나올 카리스마는 절대 아니다. 어째서 토모카의 팬들이 토모카에게 복종하다시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이럴 때마다 조금씩 납득이 간다.


“프로듀서 씨~? 11시에 라디오 수록이 있는 걸 잊어버리시진 않으셨지요~?”


“당연하지. 토모카는 T방송국으로 리츠코와 함께 가 줘. 리츠코에겐 연락을 해 두도록 할게.”


“......네에?”


잘못 들었나? 토모카는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가 아이돌들의 스케줄에 동행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리츠코가 전담하다시피 하는 몇몇 아이돌들을 제외하면, 이 능력 좋은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아이돌들의 스케줄에 따라가지 않는 경우는 0에 가깝다.


가능한 한 아이돌들의 스케줄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프로듀서의 능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의 책임감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사무소의 아이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아이돌들에게도, 하루의 시간 중에 프로듀서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인 것이다.


때문에 그 프로듀서가 스케줄에 따라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아이돌에게 위로의 대상이 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그 일이, 자존심과 정복욕으로 가득 찬 아이돌인 텐쿠바시 토모카에게 일어난 것이다.


“미안, 내 실수였어. 츠무기와 스케줄이 겹쳐버려서...아무래도 츠무기는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도 않고, 앨범 수록은 처음이라 따라가 줘야 할 것 같아.”


“......”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프로듀서의 변명은 이미 토모카에게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스케줄에 프로듀서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만이 토모카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나중에 반드시 벌충하도록 할 테니까, 이번만 봐 주면 안 될까......?”


“그, 정말로......”


“미안. 정말로 미안해.”


“......그런가요”


토모카의 기분이 눈에 띄게 다운되는 것이 프로듀서에게도 느껴졌지만, 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토모카를 따라간다면 츠무기의 기분이 다운될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고, 아직 업무에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ㅡ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프로듀서는.


토모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슴 한 켠이 쓰라리지만 프로듀서로서의 판단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성모는 속이 좁지 않다.


그래서 토모카는 애써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성모의 드넓은 아량으로 이해해드리지요~.”


“그래 준다면, 정말로 고맙겠어.”


“대신.”


억지웃음으로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토모카는 그녀의 조건을 이야기했다.


“이번 주말, 성모를 기쁘게 해 주세요~.”


“기쁘게 해 달라고? 어떻게......”


“그런 걸 성모의 입으로 말하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프로듀서씨가 생각하셔야지요~♪”


“으음...그래, 알았어. 안심하고 다녀와, 토모카.”


곤란한 표정의 프로듀서를 보며, 토모카는 후훗, 작게 미소 지었다.


약속은 얻어냈다. 대가가 꽤 컸지만, 그와의 사적인 약속이 토모카에게는 더 중요하다.


둘의 대화를 듣던 아오바 미사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765 프로덕션에 사무원으로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저 똑똑한 프로듀서는 그의 능력만큼이나 둔감하다는 것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가 토모카에게 무엇을 해 주던, 토모카가 기뻐할 리 없다. 아마 오토나시 코토리나 아키즈키 리츠코에게 물어보아도, 심지어 사장님께 물어보아도 같은 대답이 돌아 올 것이다.


혼자만 모른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


시라이시 츠무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765 프로덕션 소속으로 아이돌 활동을 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저 바보같은 둔감듀서는 남자로서는 최악이다.


그렇기에,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 연적의 불행일지언정, 츠무기는 속으로나마 위로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2.


무엇이던지 간에 토모카가 해 달라고 했다면 해 줘야 한다.


개성이 넘치고, 고집스러운 아이돌이 제법 있는 765 프로덕션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자존심과 고집이 유별나게 높은 아이돌을 고르라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드센 성격과 카리스마, 타인을 고압적으로 내려다보는 눈빛, 그리고 나름대로의 연예계 짬밥 때문에 토모카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이돌은 극히 드물다.


하루카나 치하야, 또는 아즈사 씨, 그리고 타카네 정도만이 토모카를 다룰 수 있을 정도이다.


리츠코는 프로듀서의 업무도 겸하니 논외로 치자.


때문에 이번 주말, 토모카가 자신을 기쁘게 해 달라고 했다면 해 주어야 한다.


물론 프로듀서의 힘으로 거부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아이돌 한 명 때문에 흔들릴 입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당하는 아이돌의 부탁이고, 내 실수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전심전력으로 만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토모카를 기쁘게 해 줄 것인가.


“프로듀서 씨?”


“앗, 아아아, 시라이시 씨, 미안미안.”


눈앞에서 츠무기가 토라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번을 불렀는데도 듣지 않으시네요.”


“미안해.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텐쿠바시 씨에 대한 생각인가요?”


“으음......아무래도.”


츠무기는 잠시 못마땅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그 눈빛 속에서 토모카에 대한 걱정이 엿보였지만, 이를 말해도 츠무기가 인정을 할지는 모르겠다.


“아, 앨범 작업은 다 끝났니?”


“아, 네에. 프로듀서 씨 덕분에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잘 됐네. 시라이시 씨는 재능이 있으니까, 분명히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어.”


“감사...합니다, 만.”


츠무기가 말꼬리를 흐리고 조심스레 나를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무언가 어려운 부탁을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직감이 호소한 대로, 츠무기는 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 프로듀서 씨는......언제나 다른 아이돌들과도 거리를 두시나요?”


“서로 친한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스캔들이나 이런 부분이 걱정이 되어서 말이지.”


“그, 그런데 어째서...그, 선배들이나 키타자와 씨, 텐쿠바시 씨는 이름으로 부르고......”


이래서 예외를 두지 않으려고 했는데.


“올스타즈 멤버들은 처음부터 내가 프로듀스한 아이들이기도 하고, 이제 와서 안 친한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 시호나 토모카는...그, 워낙에 귀찮...아니, 고집스러운 아이들이라서.”


말이 헛나올 뻔 했다.


“불공평해요! 불합리해요! 다른 아이돌들하고 평등하게 대해 주는게 프로듀서의 의무, 아닌가요? 그런 것도 모르시다니, 당신은 혹시...바보인가요?”


스카우트 당시 이후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바보 소리다. 속으로는 이미 박장대소하고 있었지만, 진지하게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는 츠무기에게는 내색하지 못했다.


조금, 놀려 볼까.


“그러면 앞으로 시호랑 토모카도 성으로 부르도록 할게. 츠무기가 건의했다고 꼭 말해 주도록 하고.”


정말로 이렇게 전달하면 츠무기는 시호와 토모카에게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작살나겠지.


“엣, 아, 아니...그러시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시...프로듀서씨는 정말로 바보신가요!?”


“아,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면 우리 시라이시 양은 뭘 바라시는 걸까요?”


대충 알지만, 그래도 놀려본다. 어째서인지 이 아가씨는 괴롭히고 싶어지는 무언가가 있다. 가학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앞으로의 프로듀스 방향도 그런 쪽으로 설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주로 생존 예능이나, 여러 분야의 프로들과 맞대결에 집어넣으면 시청률이 괜찮게 나오지 않을까.


“또 업무 생각 중이시지요, 프로듀서 씨!”


“아, 미안해. 직업병이라.”


“됐습니다. 둔감한 프로듀서 씨께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아이돌의 모티베이션은 중요하다. 그리고 선을 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올스타즈 멤버들의 경우에 비추어 본다면, 이름 정도 부르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시어터 맴버들 중에서 시호와 토모카의 선례가 있는 이상, 아마도, 언젠간 시어터의 모든 아이들을 이름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모티베이션을 위해서라도 한발 양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는 문제 없으리라.


“그래. 그러면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 츠무기?”


“흥, 됐습니...프로듀서 씨? 지금 뭐라고......”


“아, 싫었어? 미안, 시라이시 씨.”


“놀리지 말아주세요-!!”


츠무기가 투닥투닥 어깨를 쳤다. 아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도 아니었기에 피식 웃으며 츠무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자, 그만 해 줘, 츠무기.”


“아니, 그...내는 그러려던 게......”


당황하면 사투리가 나오는 버릇은 평생 못 고칠 것이다, 이 아가씨는.


“다음 스케줄이 하루카와 안나인데, 괜찮으면 그 아이들이랑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래? 시간이 많지 않아, 간단하게밖에 못 먹겠지만.”


“가, 갑자기 뭐꼬...내는 그.......”


“부담스러우면 사무소로 돌아가서 쉬어도 괜찮아.”


“싫다는 게 아이다! 아니, 그, 실례 했습니다 프로듀서. 저는 좋습니데이.”


“......”


애써 침칙한 척 하지만 아직 당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인다. 아무래도 선배들이랑 같이 식사하는 자리는 새파란 신입에게 부담스러운 자리이긴 하겠지.


하지만 츠무기도 승낙했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하루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이 시간이면 이미 안나와 같이 있을 것이다.


츠무기가 작업한 스튜디오와, 하루카네가 녹화하는 방송국은 인접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나와 츠무기가 그 쪽으로 가는 식이 되었다. 츠무기는 긴장한 듯 얼굴이 조금 굳었지만, 막상 식사를 하다 보면 얼굴이 풀릴 것이다.


하루카와 안나는 착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확신한다.


 


3.


“프로듀서 씨~!”


방송국 지하에 있는 라멘집에 들어가자, 하루카가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옆에서 안나가 작게 손을 흔들며 ‘안녕, 프로듀서 씨...’하고 빙긋 웃어주었다.


너무나도 평소대로의 하루카, 평소대로의 안나여서 안심했다.


“아, 츠무기 쨩! 이쪽이야, 이쪽.”


“......오랜만, 츠무기 씨.”


“아, 아마미 선배, 모치즈키 선배. 안녕하신가요.”


자신보다 한 살, 그리고 세 살 어린 아이들이지만 연예계 경력이라는 것 때문에 경어를 쓰는 츠무기, 하루카는 그런 츠무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츠무기 쨩,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하, 하지만 아마미 선배......”


“선배 금지. 성씨 금지. 시어터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렇지 않니? 안나쨩.”


“안나는...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렇지 않니?”


“......안나도...하루카 씨의 의견에...전적으로 동의해.”


한순간, 하루각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고, 안나는 반사적으로 그녀 특유의 토끼 귀 후드를 푹 뒤집어쓰며 조심스레 말했다.


“들었지, 츠무기 쨩? 다시 인사, 인사.”


“......안녕하세요, 하루카...씨.”


“으~음......뭐, 좋아. 그 정도로 타협할까나.”


아니, 그 부분은 타협할 생각이 없던 것 아닐까, 내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아마미 하루카라는 존재는 765의 최고참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그녀를 키워 온 나로서도 함부로 대하기 껄끄럽다.


765 내부에서의 짬밥만 따지면 나보다 오래 있었던 하루카이다.


물론 하루카가 경력을 내세워 나를 곤란하게 한 적은 없다. 가끔 심술을 부리거나 할 때만 튀어나오는 주제이고, 그럴 땐 보통 치하야가 하루카를 말려준다.


뭐, 여고생의 기분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과도 같으니, 딱히 신경을 쓰진 않는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라멘을 주문했다. 라멘이 나오기까지 자연스럽게 타카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방송 수록에 관한 이야기, 녹화에 관한 이야기, 츠무기의 앨범 작업에 관한 이야기 등등이 간단하게 오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하나 있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토모카가 기뻐할 만한 것이 뭘까.”


“네에에?”


하루카가 되물었다. 이상한 생물체를 보는 눈이다. 거기에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 토모카쨩은 갑자기 왜......”


“아, 그게 말이지ㅡ”


하루카와 다른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사정 설명을 했다. 츠무기는 오전의 일을 듣고 있었기 때문인지 특별히 집중하지 않고 녹차를 홀짝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하루카와 안나는 눈을 빛내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마무리했을 무렵.


“이건...프로듀서 씨가 잘못하셨네요.”


“안나도...전적으로 프로듀서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나도 알아. 그래서 토모카의 어리광을 조금 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여자아이들은 뭘 해줘야 기뻐할지 모르겠어서.”


“그런 거라면 삐요쨩이나 릿쨩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나요?”


당연한 의문에는 당연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코토리 씨한테 물어봐야 BL동인지요! 같은 답변만 돌아올 거고, 리츠코에게 물어보면 일단 혼부터 날 것 같아서.”


“아하하, 그렇네요.”


멋쩍은 듯이 하루카는 웃었다. 그러면서 평소와는 다른,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토모카쨩이 무엇을 좋아할지는 프로듀서 씨 스스로 생각해 주세요.”


“안나도...하루카씨랑...같은 생각이야. 바보듀서...씨.”


“......바보 소리 들을 정도였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프로듀서로서의 경력이 제법 된 만큼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접대하는 방법은 대강 알고 있지만,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기뻐할지는 전혀 모른다.


츠무기는 물론이거니와 하루카도, 안나도 도와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곤란하다. 토모카에게 대한 사죄인데, 사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 곤란한 표정을 읽었는지, 안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도...둔감듀서 씨를 위해...안나가 조언 하나...해 줄게.”


“정말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려왔다. 천사, 여신, 안나!


“으응...토모카씨에겐...선물보다 추억이...더 소중할 거야.”


“추억? 음, 어렵네. 그래도 고마워, 안나.”


“곰곰이 생각해 봐...프로듀서 씨.”


뭔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타이밍 좋게 라멘이 나왔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하루카가 쿡쿡 웃고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나중에 물어보도록 하자.



 
4.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님께 해결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받은 느낌이었다.


사실 과학은 답이 정해져 있고, 과학자들은 그것을 발견할 뿐이다.


그리고 토모카의 난제 역시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발견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으......”


하지만 사춘기 소녀의 감성은 사회인 남성이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더군다나 가설과 증명으로 이루어진 과학체계와는 달리, 사춘기 소녀의 역린은 건드리는 순간 멸망이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결과를 내야 한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거의 하루 종일 정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후 세 시의 토모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빙긋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지만, 오후 여덟 시의 토모카는 아니었다.


짓궂은 얼굴로 다가와 ‘주말을 기대하고 있답니다~♪’ 라며 나를 놀리고 도망갔다. 안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내, 프로듀서 씨.’ 하고 위로해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루의 스케줄이 끝나고 아이돌들의 귀가가 시작될 무렵이지만, 아직 사무소에 다수의 아이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토모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한 지 시간이 조금 흘렀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입을 열어도 괜찮으리라.


한 명씩, 한 명씩.

 



“저기, 도쿠가와 씨.”


“호? 프로듀서 씨? 공주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토모카와 라이벌이자 친구인 도쿠가와 마츠리에게 물어보는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잘 아는 만큼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 주지 않을까.


“혹시, 토모카가 기뻐할......”


“토모카에 관한 이야기라면, 공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에요.”


“엑.”


“프로듀서 씨 스스로 생각해 주세요.”


마츠리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정색하며 말을 하니, 더는 물어보기 힘들었다.



 
“있잖아, 모가미 양.”


“......네, 최저듀서 씨.”


“......”


오랜만에 보는, 시즈카의 경멸하는 눈빛이다. 이 흐름대로라면 설마ㅡ



 
“저기, 시호.”


“이젠 시간이 없어요, 프로듀서 씨! 스스로 생각해 주세요!”


“......”



 
“그, 타카야마 씨......?”


“......스스로, 생각해, 주세요. 바보씨.”


“......”


 


“있잖아요, 키타카미 씨.”


“프로듀서 씨는~ 조금 더 여심에 대해서 공부하셔야 해요!”


“......”



 
“마츠다아아아아! 네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해!”


“므흐흐♬ 프로듀서 씨, 거절한다구요~!”


“......”



 
“저기, 이오리 아가씨......”


“하아, 물어보러 다니는 거야? 정말로 최악이네, 우리 프로듀서는.”


“......”


 


“저기, 치하야...씨?”


“......(경멸)”


“......”



 
“그, 타카네......?”


“귀하. 때로는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실 줄 아셔야 합니다.”


“......”




“있잖아, 미키?”


“아후우~ 허니는 그런 둔감하고 무책임하고 바보 같은 면이 단점인거야, 아핫☆”


“......”



 
“그, 오토나시 씨?”


“왜 올스타즈 맴버들 중에 저만 성으로 부르시나요! 프로듀서와 사무원과의 친밀감! 친밀감이 중요하다구요!”


“애초에 오토나시 씨는 아이돌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혹시......”


“프로듀서 씨.”


“......”


“저희 사무소는 아이돌들의 연애에 대한 규정이 없어요. 사장님 방침이거든요. 들키지만 않으면 OK. 혹시 들켜도 사무소에서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니 마음을 막아서지 말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어요.”


“......저는 프로듀서입니다.”


“그러시다면야. 그래도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게 다에요, 소심듀서 씨.”


“......”



 
“죄송합니다, 사장님. 혹시ㅡ”


“팅! 하고 보내버리기 전에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게.”


“이런 씨......”


“뭔가 그 눈은. 사-장-님께 반항이라도 하려는 겐가?”


“자꾸 이러시면 961로 이적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쿠로이 양이나 프로듀스하러 말이지요. 그쪽이 월급도 훨씬 세던데. 쿠로이 사장이 콜도 넣어주고, 대우도 확실하고.”


“끄응......알겠네. 작은 조언이라도 하나 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두 번 말 하지 않겠네. 인간관계에 있어서, 선이라는 것은, 당사자들끼리의 문제일세. 제3자가 어떻게 판단하던,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이야.”


“아이돌 사무소 사장님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흐음. 자네가 프로듀서로 몇 년 차지?”


“올해로 3년차...입니다.”


“조금 이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자네가 납득하는 시기가 올 걸세. 그 때야말로 자네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듀서가 될 수 있을거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기억하게. 성공은 결과물일 뿐이네. 오로지 결과만을 생각하면, 쿠로이 녀석이랑 다를 바 없어지는 거네.”


“......”



 
결국 그 누구도 도움이 될 법한 조언은 해 주지 않았다.


아니, 조언을 안 해 주는 것 정도면 다행이고, 치하야나 시즈카, 시호와 같은 아이들은 경멸의 눈초리까지 보냈다.


최근 들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동료의 일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이다.


“하아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주말까진 몇 시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괜찮은 선물조차도 사 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안나는, 토모카라면 선물보다는 추억을 더 소중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억, 토모카가 기뻐하는 것, 아이돌.


머리에 번뜩인 생각이 있다.


토모카는, 팬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 최고의 추억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에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없다. 곧바로 라이브의 무대와 의상, 그리고 선곡 작업에 들어간다.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프로듀서로서의 역량, 여기서 보여주도록 하자.




5.


기대중이랍니다.


주말이 가까운, 금요일 오전부터 들려온 좋지 않은 소식에, 저는 그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프로듀서 씨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지요.


하지만 덕분에, 프로듀서 씨의 소중한 시간도 얻어낼 수 있었으니, 이것으로 샘샘이 되었네요.


일전에 첫 라이브 기념으로 프로듀서 씨께 선물받은 파아란 돌고래 인형을 들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돌고래에게서 프로듀서 씨의 얼굴이 일순간 겹쳐 보였고, 성모답지 않은 번뇌가 저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이랍니다.


어쩔 수 없이, 이 가슴의 고동을 숨기고 싶어, 침대 위에서 돌고래 인형을 꼬옥 끌어안고 눈을 감았답니다.


기대를 하면 안 되는데.


곰보다도 더 둔감한, 그리고 뱀보다도 더 영악한 프로듀서 씨가, 제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해 주실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다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는 것은, 어떤 형태든지 좋으니 최악만 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랍니다.


아아, 프로듀서 씨. 마리아는 정말로 바보랍니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저의 입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솔직하게 행동하고 싶었지만, 저의 몸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바보처럼 가면을 쓰고, 당신을 다른 아기돼지들처럼 대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언제쯤이면 저의 유리가면을 깨뜨리고, 이 거짓을 사랑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마도 당신같은 분이라면, 평생이 걸려도 이루어주실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당신 앞에서 더더욱, 새장 속의 마리아일 뿐이에요.


설레이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설레일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사랑의 함정에 걸린 것은 프로듀서 씨가 아니라, 저였나 봅니다.


그래서, 기대중이랍니다.



 
6.


탠쿠바시 토모카의 솔로 라이브! 선착순 1천 명, 피스케스의 맴버들도 함께하는 시간!


여러 SNS에 이 소식이 올라온 것은, 공연 시작 시간으로부터 불과 네 시간 전이었다.


당연히 천공기사단을 비롯한 텐쿠바시 토모카의 팬들은 난리가 났다. 선착순 1천 명이라는 말도 안 되게 적은 수치는 둘째 치고,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아이돌 그룹의 게릴라 콘서트는 종종 있는 법이었지만, 보통은 이렇게까지 촉박하진 않거나, 혹은 정말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표는 10여분도 채 안 되어 매진이 되었고, 암표 가격은 미칠 듯이 치솟았으며,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표를 구한 사람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담장 너머로라도 라이브를 구경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예계쪽의 기자들도 정신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765 프로덕션이 몇 년 전과는 달리 더 이상 그저 그런 프로덕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속 아이돌의 라이브는 좋은 기삿거리이기 떄문이다.


게다가 다른 신인도 아니고, 꽤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텐쿠바시 토모카의 라이브다. 이런 좋은 먹이를 놓칠 기자들이 아니었다.


때문에 팬들과 기자들은 갑작스러운 라이브의 배경부터 시작해 텐쿠바시 토모카의 이야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그들만의 추리를 시작했다.


765 프로덕션의 새로운 상술인가,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그 이외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쟁으로 과열될지언정, 텐쿠바시 토모카의 팬들은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볼 기회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팬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급하게 장소를 구하느라 스테이지가 크지 않았다는 점과, 사장 결제 없이 그의 판단 하에 진행되는 라이브라는 점이다.


전자는 좌석만 선착순으로 받고, 스탠딩에는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서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문제 없을 것이고, 후자는, 이 정도 규모의 라이브는 사장 결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만 세우면 문제 없다.


소규모 라이브 결정 하나를 독단으로 못 할 정도로 신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가 맡았던 프로젝트는 실패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째서 라이브를 시행했느냐에 대한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노미야 카렌과 니카이도 치즈루는 갑작스러운 공연 일정에 난색을 표했지만, 두어 곡 정도의 역할과 피스케스로의 활동이라는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승낙했다.


당사자인 텐쿠바시 토모카에게는 사정 설명을 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리허설 시간에 맞추어 공연 장소로 와 달라고 했다.


토모카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는 점이, 불안요소다.


“프로듀서 씨.”


조수석에 타고 있던 시즈카가 말을 걸었다. 음악 라디오 생방송 때문에 목을 가다듬고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었지만, 뭔가 말을 하려는 모양이다.


“모가미 양, 중요한 말이 아니면 나중에......”


“......치하야 선배님의 말이에요. 토모카씨의 라이브가 끝나면, 닥치고 무릎 꿇고 사과하세요.”


“뭐?”


“되묻지 마시고, 그냥 하세요. 놀랍게도 치하야 선배와 제 의견이 백 퍼센트 일치했거든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끝나고 토모카씨가 대기실로 들어오면 무릎부터 꿇으세요.”


“갑자기 무슨......”


시즈카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이, 그녀의 목 상태를 나쁘게 할지도 모른다.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시즈카의 말을 잘랐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대로면 토모카씨가 불쌍하니까 그래요!”


“모가미 양.”


아무리 그래도 언성을 높이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어른스럽지 못하게 화를 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시즈카에게 경고하듯 그녀의 성씨를 부르고 나서야, 시즈카의 말이 멈췄다.


“나중에 토모카와 이야기해보도록 할게. 너는 네 일에 집중해 줘.”


“......잘도 그런 눈치로 우리들의 프로듀스를 하시는군요.”


오랜만입니다, 혐성 시즈카 씨. 원래 폭언은 치하야나 시호의 역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시즈카가 밀릴 이유도 없다.


“모가미 양, 말이 심해.”


“프로듀서 씨가 토모카씨에게 하는 짓은 더 심합니다.”


“......”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기에, 제아무리 그라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그리고 모가미 시즈카는 그가 담당하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운전에 집중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라디오 생방송에서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다. 조금 참았다가 나중에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래도 한 마디 변명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기어코 그는 입을 열었다.


“최선...이라고요? 프로듀서 씨, 그냥 라이브가 끝나면, 무릎부터 꿇어주세요. 생각하지 마시고, 외우세요. 오늘은 토모카씨가 프로듀서씨께 무슨 말을 하던, 그냥 점잖게 받아주세요.”


“......노력할게. 다 왔다.”


“제가 드린 말씀, 꼭 기억해 주세요.”


원래대로라면 그도 시즈카를 따라서 그녀의 업무를 지켜보아야 했지만, 출발 전에 시즈카에게, ‘라디오 수록에 따라오실 필요는 없으니, 토모카씨 라이브 쪽으로 더 일찍 가서 준비해 주세요’ 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하면 따라가기도 뭣하다.


한숨을 쉬며, 시즈카가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기어를 당기며 엑셀을 힘껏 밟았다.



 
7.


직접 만나 본 토모카의 상태는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누가 봐도 명백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고, 나와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말도 안 하니, 이래서야 라이브 전의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조차 될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라이브의 주의사항이나 선곡, 연출 등은 카렌과 치즈루를 통하여 전달했다.


무엇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토모카가 라이브를 망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해서, 피스케스로 Brave harmony를 부르고, 두 명이 퇴장하면서 토모카의 마지막 솔로 무대로 넘어가는 거야. 엔딩곡은 새장 스크립쳐로 했어.”


“그렇게 전해두도록 할게요...”


“부탁해, 시노미야 양. 토모카가 나랑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건...프로듀서 씨 잘못이니까요.”


“......”


마음에 걸리는게 없잖아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일단은...치즈루씨가 토모카씨를 달래곤 있지만요...그, 나중에 프로듀서 씨도...토모카씨를 달래 주셔야 해요.”


“노력할게.”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에요...프로듀서 씨. 달래 주세요.”


이 정도면 천성이 소심한 카렌 치고는 굉장히 강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알았어.”


어찌 되었건 근본적인 원인은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카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지금 가서 달래라고는 안 한 것이 다행이다. 지금 가는 것은 가지 않느니만 못 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프로듀서 씨. 저희는...리허설을 하러, 가 보겠습니다.”


“수고해 줘, 시노미야 양.”


“네에, 프로듀서 씨.”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카렌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토모카가 원했던, 그녀를 기쁘게 해 줄 방법이 틀렸다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현재 토모카의 기분을 보면 확실하게 틀린 것 같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제로 되돌아간다면, 라이브라는 선택지만큼은 지워버리고 시작해야 할 정도이다.


여기에 리츠코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녀가 있었더라면 분명, 아이돌의 컨디션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진탕 혼이 나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대판 언쟁이 벌어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이번의 라이브가 잘 끝나기를, 그리고 토모카가 다른 사고를 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8.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앵콜 곡을 포함하면, 6-7곡 정도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 중의 두 곡은 피스케스의 맴버들과 같이 부르게 된다.


시노미야 카렌이 뭐라뭐라 설명해 주고, 니카이도 치즈루가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지만, 토모카의 사고는 이미 정지해 있는 상태였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크다.


상대가 둔감의 극치요, 일밖에 모르는 프로듀서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기대감이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분명히 어떤 방식이건 둘만의 시간일 것이다. 혹, 둘이 아니라면 최대한 두 명이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좋은 추억일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것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가장 많은 사람들과 함께, 프로듀서 없는 곳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토모카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경우였다.


그는 정말로 여심을 모른다. 아니면, 알더라도 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리라.


토모카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기대하지 말았어야지, 설레이지 말았어야지 하고 자신에게 되뇌어 보지만, 불가항력이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어느 사랑에 빠진 소녀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둘만의 시간에 설레이지 않을 수 있을까.


카렌도 치즈루도 토모카의 기분을 알기 때문에,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라이브에 참여했고, 이유는 그녀를 어떻게든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라이브 무대를 토모카 혼자서 담당하게 되어 버리면, 제아무리 텐쿠바시 토모카라 할 지라도 무대에서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프로듀서는 물론이거니와 토모카의 이미지에 치명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동료 이전에 연적이지만, 또한 연적 이전에 동료이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정도는, 토모카의 솔로 라이브 중간에 그녀들과의 유닛 곡을 섞어서, 그녀가 혼자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바보같은 프로듀서에게 토모카를 대신하여 시원하게 뺨을 한 대 날려주는 것 정도였지만, 그것은 라이브가 끝난 다음에 생각할 것이다.


세 명의 간단한 협의가 끝나고, 토모카는, 환호성 가득한 라이브 무대에 올라갔다.


오늘만큼은 사랑스러웠던 아기돼지들이 무섭도록 보고 싶지 않았다. 팬이 기뻐하는 것이 그녀가 기뻐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대를 망칠 순 없다. 자신이 무대를 망친다면, 자신의 경력은 물론이거니와 프로듀서의 경력에도 흠집이 가게 되고, 자신 때문에 프로듀서가 피해를 보는 것은 죽어도 싫다.


그래서 토모카는,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팬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오세요, 귀여운 아기 돼지들~. 성모의 사랑을 받으러 오셨나요~♪”


그리고, 노래는 시작되었다.



 

9.


스타팅 곡으로는 별무리의 심포니아.


제 2곡, 창조는 시작의 바람을 데리고.


제 3곡, DIAMOND DAYS.


그리고 곡의 마지막 가사와 함께, 피스케스 맴버 두 명의 등장.


곧이어 제 4곡, P. S. I love you.


프로듀서다운, 정말로 완벽하리만치 이어지는 선곡이었다. 뒤에 남은 Brave harmony와, 엔딩곡으로 장식될 새장 스크립쳐까지. 팬들을 위한 최고의 선곡임엔 틀림이 없었다.


이대로만 가면 라이브가 실패할 일은 없다. 프로듀서도 무대 맞은 편에서 스태프들과 무대 위의 맴버들에게 수화로 이런저런 지시를 쉴 새 없이 한다.


하지만.


토모카는 문득, 노래를 부르던 와중에, 가사가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는걸.]
 
[사랑은 덧없는 것, 각오는 하고 있어.]


 


“......”


후렴구에서, 순간적으로 토모카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을, 무대 위의 두 명과 프로듀서 이외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야......’


덧없는 사랑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그저 힘들고 쓰라리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텐쿠바시 토모카인가.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쟁취하는 것이, 그러지 못하다면 전력을 다한 싸움에서 패배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성모, 텐쿠바시 토모카이다.


제 5곡, Brave harmony의 시작과 함께, 토모카는 옅게 미소지었다.



[누구를 위하여 노래하는가.]


팬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리고 프로듀서를 위해.

 
[답을 알고 싶어서 쫒아다니고 있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저, 한 걸음 더 움직일 작은 힘이 필요할 뿐이다.


팬들에게 용기의 선율을 들려주는 자신이, 용기를 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자책하는 노래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노래다.

 



[지금 네가 있는 곳까지 (닿는 노래가 되어라)]
 
이 목소리가 닿기를.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까지.



 
텐쿠바시 토모카는 이를 악물었다.



 
다섯 번째 곡이 끝나고, 예정된 여섯 번째 곡은 새장 스크립쳐였다.


두 명의 피스케스 맴버들이 퇴장한 뒤, 무대 위에는 토모카만이 고요히 남아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회장 소리와, 뜨겁게 달아오른 현장의 분위기, 그리고 이를 대변하듯 토모카의 이름을 환호하며 다음 곡을 기다리는 청중들.


하지만 토모카의 눈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마지막 곡의 사인을 보내는 프로듀서를 보고, 토모카는 입을 열었다.


“즐거우셨나요, 천공기사단 여러분~? 그리고 아기 돼지분들~? 저를 보러 여기까지 오신 것, 정말로 대견하게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팬들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그러면, 마지막 여섯 번째 곡은ㅡㅡ”


팬들의 환호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새장 스크립쳐를 기대하며 열심히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브 무대를 토모카의 연한 하늘빛으로 뚜렷하게 뒤덮을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을 기다려 준 팬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하다.


지금부터 자신은, 아이돌 텐쿠바시 토모카를 보러 와 준 팬들을 배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텐쿠바시 토모카와 담당 프로듀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ㅡㅡ마리아 트랩 (Maria Trap), 이랍니다~♪”


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향지원팀이 당황하며 빠르게 음원을 찾는 것이 눈에 보였다.


피스케스의 두 맴버들이 피식 웃는 것이 보였다.


당황하는 프로듀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당황하는 저 프로듀서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아기돼지 여러분, 미안해요.


성모는 여러분들의 것이 아니랍니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한숨이 웃음이, 당신에게 향해져]
 
프로듀서 씨, 보고 계신가요.


 
[미치게 해 줘…]
 
당신에게 미쳐버린 저의 모습을


 
[모래를 씹는 것 처럼 뱉은, 어루만지기만 하는 선율]
 
서로의 거리감에 애타는 마음은, 마치 혀 끝의 모래와도 같았지만


 
[반해버린 눈동자를 속이고 있어]
 
내색하지 않고 당신을 대하고 있었답니다.


 
[「당신을 지배하고 싶어」라고]
 
하지만 당신을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싶어.


 
[붙잡혀버린 마리아님]
 
저, 텐쿠바시 토모카는


 
[숭상받을 수록 자유를 잃어버렸어]
 
당신에게 속박당해 버렸답니다.


 
[빛과 그림자, 욕망과 이성]
 
하지만 아이돌과 프로듀서이기에


 
[거짓과 진실]


마음을 숨기고, 가만히 기다렸답니다.



[(그만둬) 유혹해줘]
 
하지만 당신이 유혹하지 않는다면.


 
[(오지마) 안아 줘]


당신이 안아주지 않는다면.


 
[(들려줘) 말하게 해 줘, (끝내줘) 움직여줘]
 
적어도 제가, 말하게 해 줘요. 대답해 줘요.


 
[사랑해]
 
프로듀서 씨, 들리시나요.



 
“......”


이쯤 되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토모카의 눈동자는, 멀리서 보아도 명확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팬들도, 토모카가 이미 청중들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내가 졌다.


토모카가 부르는 노래의 감정은, 그 어떤 때보다도 노래 그 자체였다.


알면서도 외면해 왔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렇지만 소녀가 용기를 내어 고백한 한 마디는, 남자로서 반드시 대답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애초에 좋아하지 않았으면 담당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더라면, 프로듀스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이기에, 그녀를 톱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 그는 철저하게 마음을 닫고 벽을 쌓았다.


다른 아이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고백은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말했던 것처럼, 상호간의 ‘선’의 범위는 당사자들끼리 정하는 것이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미 자신과 토모카, 그리고 다른 아이돌간의 ‘선’은 자신이 그어놓은 기준을 한참 전부터, 아주 많이, 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호간의 새로운 ‘선’이 된 것이다.


이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거부하니,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될 리가 없다.


별 것 아닌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토모카에게는 그 실수가 크게 다가온 것처럼.


토모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준비한 라이브가, 그녀에게 가장 상처가 된 것처럼.


그것을 깨닫자, 오히려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핸드폰을 열고 한 군데 전화를 걸 뿐이었다.

8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