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세계는 싸움과 거짓말과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 무망(無望) -- 3-1= -- 4화 | 그것은 달콤한 애플티의 맛

댓글: 1 / 조회: 727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9-17, 2018 18:47에 작성됨.

--- 탁


체크메이트


또 한번의 패배를 선고하는 소리에, 내 의식이 돌아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졌고,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생명의 기운 하나 감돌지 않는 어둡고 칙칙한 방, 이곳만이 지금의 현실이였다. 몇시간 만인가 체스판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깥은 완벽히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조금 전 의식이 향했을 때 들리던 노동자들의 시위소리는 어디로 갔는가... 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이 어둠만이 답이겠지.


다시 시선을 방 안으로 돌리니, 언제부터 있었던지도 모르겠는 식을대로 식어버린 애플티가 있었다. 따뜻하고 싱그럽게 존재했을 것이였던 온기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물방울을 맺히게 하는 애플티는 이 공간의 온도보다도 차가웠다.
무겁게 가라앉은 차 속의 약간의 허브와 같이 심정은 물밑으로 고여 있었다.


그 존재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다시 데우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입 속에 털어넣었다. 차갑게 흐르는 액체가 목에 경련을 일으키고 사라졌고, 밑바닥의 침전물들이 마지막으로 컵에서 흘러내려 최악의 맛을 내게 전달했다. 이윽고 그 뒷맛마저 사라졌을 즈음, 그 곳에는 다시 두 사람만이 있었다. 그저 한없이, 눈을 돌리고 이 앞의 것에만 시선을 향하며... 대국은 재개되었다.



-----------------------------------



“자, 모처럼 여기에 왔으니까, 뭐라도 먹으라고?”


나와 그녀가 끝없는 싸움에서 벗어난 직후, 닛타 미나미는 우리 둘 앞에 한 잔 씩을 올려놓았다. 애플티인가...?


“대국 진행 도중 실컷 먹지 않았나? 미나미 네가 계속 시켜주었잖아.”


정말 지금와서지만 사실 우리가 빠져있는 사이에 그녀가 나머지 일들을 다 처리했으니...


“당연한 것 묻지 말도록! 어차피 집중하느라 맛이고 뭐고 이전에 뭘 먹었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냐니...    ...그런데 정말 왜였지...?”


“... 하아... 네가 에스더 씨 이야기를 꺼내니까 만나러 가자고 했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왔었지. 안그래? 그런데 이야기는커녕 둘이서 체스만 두다니... 뭐, 둘은 그걸로 이야기 한 것 같지만 나는 아직 하나도 모르겠거든? 일행을 방치하다니 정말로 성격 좋네.”


... 확실히 할 말이 없다. 느닷없이 자신만을 남겨두고 체스만 하고 있으면 그야...
그럼에도 끝까지 지켜봐주고 혹시 공복이 오지 않을까 챙겨주고 다른 사람들에까지 대응해주었다. 정말로 그녀의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 “정말로 미안(합니다). 미나미(씨)” ”


나와 에스더 씨는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 하아. 뭐 됐어. 너희들이 무슨 성격인지는 대충 알 것 같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빨리 마셔, 폐점시간 거의 다 됐어.”


“아하하...”


쓴웃음을 지으며 애플티를 들이켰다. 달달하고 따뜻하면서도 약간 씁쓸한 절묘한 밸런스가 게임 속에 잠겨진 감각을 깨우며 지친 머리에 당분을 공급했다.
순간 이곳에 포근한 공간이 만들어진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있던 긴장감이 실체화한 듯한 공간이 아닌, 편안하고 조용한...    들판, 그래 들판이다. 지금 우리는 도시 한가운데의 카페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에 펼쳐진 푸르게 만발한 들판 위에 있었다. 단지 이 한 잔만으로. 그녀가 왜 그렇게나 이곳에 오자고 했는지 알 듯하다.


“마음 같아선 디저트들도 ‘같이’ 먹고 싶었지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또 와서 먹자. 그때는 느닷없이 체스 시작하지 말고?”


“미안합니다... 처음 만남부터 상대를 무시하고 체스만 두다니... 제 잘못입니다.”


“으응... 아니야. 에스더 씨는 상대를 알기 위해 체스를 둔 거잖아? 첫 만남이라면 그게 당연한 거지. 다음에는 나를 알아줘. 뭐... 체스로는 못하겠지만.”


“네. 미나미 씨도 흥미 깊습니다. 차분히- 알아가야겠어요.”


어느새인가 우리는 모두 겉치레 따윈 집어던졌다. 더 이상 우리에게 그런 것은 필요없었다.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고, 체스만 둘 뿐인 엉터리 대담이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번지르르한 대화보다 훨씬 더 깊게 서로를 알고, 보여주었다.


그때는,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보병이 랜스에 궤뚫린 직후, 성채가 날카로운 포격을 날렸다. 창을 찌른 직후의 경직된 틈을 노린 치명적인 일격. 누가 보아도 먼지로 사라질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기사는 다시금 몸을 추슬러, 포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날아올 예상 궤적을 피해내는 것으로 한 수 앞서 다시 적진에 접근하였다. 상상을 넘어선 광경에 포격이 잠시 멈추자, 두 번의 포격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양 기사는 창을 휘둘러 성문을 부수었다.


그 직후, 기사는 쓰러졌다.


그리고 시야가 회전하는 그 순간, 기사는 ‘그것’을 보았다.
성채는 자신의 회피에 당황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인 공포감에, 움직이지 못한 것뿐이었다.
아군마저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그 기백, 먼 옛날의, 전설로만 말해지는 검성을 지금 이곳에 체현한 듯한 기술. 그곳에 있던 것은 이미 자신과 같은 존재 따위가 아니라...
한 명의 사신이였다.


몇 천 번이고 몇 만 번이고 보았던 그녀의 특기. 그녀가 가장 아끼던 말- 백은의 퀸이 다시금 앞으로 나와 내 진형을 부수려 하고 있다. 결국 한번도 막지 못했던 말,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부하는 말.
나는 언제나처럼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다음 먹잇감을 찾아 전장을 가로질러오는 그녀를 유격하러---


--- 삐리릭. 삐리릭.


주교를 진격시켰---


... 제길, 대체 누구냐...


“여보세요.”


[346, 이렇게 늦은 시간 미안하군.]


“미안한 줄 아나보면 고쳐주었으면 한다. 케이트.”


[... 긴급 사태라서 말이지.]


“또 뭔 놈의 사태이지? 스파이가 들어왔나? 단말이 내 뒤를 밟고 있나?”


또... 처리하면 되나?


[너와는 깊게 관련된 사태라서 우선 알려주지. ‘아냐스타샤’.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뭐?”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이름.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던 이름.


[...... 용건은 이상이다. 아무쪼록 컨디션을 해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 뚝.


전화가 끊겼다. 다시 소리가 사라진 방 안에서, 단 하나의 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니. 그러나 이렇게 그녀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그녀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나?


나는... 그녀와 만나 어떻게 하고 싶지?


거기에 지금으로서는... 나는 내 마음조차 알지 못한다. 수 년 넘게 그녀를 쫓고 있는 이 마음이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복수심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그때의 만남과 마음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는 헛된 믿음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여전히 나와의 체스 게임에서 몇 수 앞서고 있는 셈이다.


앞선다라... 그 표현도 적절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따라가지 못할 뿐. 그렇겠지. 이런 거짓된 마음으로 무얼 할 수 있나. 심지 없는, 뿌리 없는, 영혼조차 담기지 않은 채.


그저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입 속에 흘러 몸에 녹아들은 애플티처럼. 조악하게 따라했을 뿐인,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만든 애플티는 또한 추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달콤한 애플티의 맛.
지금은 시어져 버린, 수많은 실패작 중 하나로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썩어 문드러져 발밑에 나뒹구는, 나 자신.


...... 이제 체스를 할 기력조차 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이 방안에서, 변하지 않는 일상을 영위하며, 변하지 않는 세계를 마지막으로 바라보고는...


오늘도 잠에 빠졌다.



-------------------------------------------

후기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5023

2 여길 눌러 추천하기.